미국의 거장들 살림지식총서 82
김홍국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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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겠습니다만, 미국이 세계경제의 중심축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미국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데 기여한 요소로는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을 들 수 있겠습니다만, 역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적 자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조그만 땅덩어리에 자원까지도 빈약한 우리나라의 지금을 만든 것도 바로 좋은 인적 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미국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만, <미국의 거장들>의 저자 는 일단 경제분야에서 돋보이는 23명의 업적을 정리하였습니다. 문화일보에서 정치와 경제분야에서 활약한 저자의 경험을 녹여낸 것입니다. 저자가 주목한 인물은 중공업 뿐 아니라 <플레이보이>의 휴 헤프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기업가뿐 아니라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 그리고 경영학의 피터 드러커교수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들 가운데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제일 먼저 꼽았습니다.아마도 미국의 경제전문 주간지 <포춘>이 밀레니엄 특징 ‘20세기의 기업가’에서 헨리 포드를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탁월한 경영인으로 선정한 영향을 받았지 싶습니다. 미국을 여행하면서 디트로이트시 근처에 있는 헨리포드 박물관을 찾았을 때는 그저 다양한 볼거리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작 포드가 가장 미국적인 삶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기업인이며, 컨베이어 벨트 체계라는 새로운 관리방식으로 대량생산체계를 창안하여 특권층의 전유물이던 차량을 일반대중이 보유할 수 있도록 대중화했다는 점이 고려된 것 같습니다. 1908년 탄생한 ‘T모델’의 자동차는 1927년 단종될 때까지 무려 1,500만 7,033대가 팔리는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 배경은 처음 대당 850달러이던 찻값을 290달러 수준까지 대폭 낮출 수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헨리 포드가 미국경제에 미친 긍정적 영향 이외에도 고임금을 내걸고 노조를 탄압하거나 회유한 사실, 컨베이어 벨트 방식의 조립라인을 도입한 것이 인간성상실로 이어진 결과를 낳았다거나 하는 부작용까지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서구식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 자체로서의 가치를 부각시키는 휴머니즘, 그리고 각 나라나 민족 고유의 문화적 특성과 장점들이 스러지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구식 성과주의의 편협함을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기여하는 기술문명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인용한 철강왕 카네기에서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관련 산업을 철저하게 독점하면서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여지를 없앤 행태를 비판하면서도 1899년 자신이 한평생 모은 재산 3억 5천만달러를 사회에 환원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개념을 기업과 경영에 접목시켜 시대를 앞서간 경영자였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인물들의 대부분은 저도 익히 아는 분들입니다만, 간혹은 그 분들이 일궈낸 기업은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이름은 낯선 느낌이 드는 분도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미국 경제를 이끌었던 경제나 경영계 인물들의 족적을 살펴 미국적 가치가 어떻게 20세기의 세계를 지배했는지 살펴보고, 이들의 모습에서 배울 점과 버려야 할 점을 가려내는 시각을 갖출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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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팀 보울러 지음, 양혜진 옮김 / 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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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이 도를 넘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지만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요즈음 일진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덩치가 크고 교실 뒷자리에 주로 앉던 그 친구들이 체구가 작은 친구들을 괴롭힌 적은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같은 반 친구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고, 학급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친구였을 뿐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데이비드 미첼의 <블랙스완그린; http://blog.joins.com/yang412/13413557>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만, 유럽 국가에서도 학교 안에서 왕따와 친구 괴롭히기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주로 체구가 작은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똑 같습니다. 최근 주목받는 영국의 청소년소설작가 팀 보울러의 신작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에서도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바람에 학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꼬맹이 고등학생 지니가 어느 날 닥친 폭력조직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구하기 위한 용감한 행동을 적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체모를 사람들이 집 밖을 배회하면서 감시하고, 그러다가 누군가 집안을 온통 뒤집어 놓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 같으면 당장 경찰에 신고하고 도움을 구할 것 같습니다만, 지니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니 그럴 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학교를 빼먹고 집안에 숨어 있을 때 엄마가 누군가와 함께 집에 돌아오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지니는 몰래 집을 빠져나가기도 하는데,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바람을 피우는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지니 이지만 막상 가족들이 위기에 몰리게 되면서 부모의 안위가 제일 큰 문제가 되고 마는 것을 보면 부모 자식 간의 핏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앞서 학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처리하는데 있어 우리나라는 사태가 악화되어 표면화되는 상황에서도 애써 사건을 무시하거나, 축소하기에 급급한 경향을 보인다고 들었습니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지니가 다니는 학교의 레이섬 교장선생님은 문제 학생들의 동태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이들의 학교생활을 정상화시키고 사건을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는 것 같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지니를 달래는 장면입니다. “누구든 이 학교 안에 너를 곤경에 빠뜨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게 누군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너는 내게 와서 이야기할 용기를 내야만 해. 그건 고자질쟁이가 되는 것과는 다르단다. 그건 용감해지는 거란다.(178쪽)” 흥미로운 일은 지니를 못살게 구는 스핑크 역시 정체모를 사람들이 심부름을 하는 말단 조직원이었고, 지니가 그 일에 휩쓸리면서 일을 같이 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스핑크의 모습에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엄석대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평소 집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도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다음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이고, 아내가 정체모를 남자가 쏜 총에 맞아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자 지니에게 작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실 지니의 가족을 어려운 상황에 몰아넣은 장본인은 어머니의 외도 때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니와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하여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해피앤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지니는 달리기를 잘하는데, 그 특기가 가족을 구하는 힘이 될 수 있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콩가루같은 집안의 부모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달리는 대목입니다. “나는 달리면서 운다. 아까는 너무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릴 수도 없었다. 언제부터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지금 울면서 공원을 지나고 주택단지를 가로지른다. 온통 엄마 얼굴이 떠올라 머릿속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아빠 얼굴도.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150쪽)” 지니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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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J. 페페(곽효정) 지음 / 현자의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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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뇌졸중으로 투병하시는 동안 형제들이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들 바쁘게 살다보니 명절과 제사 때나 만나던 것을 보면 갑자기 몇 년이 지나간 셈입니다. 전혀 기억에 없는 오랜 옛날 일까지도 시시콜콜하게 기억하고 있는 셋째를 보면 놀라곤 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저도 한 기억한다고들 했는데, 그 기억들이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기억을 화두로 붙들고 있는 저로서도 신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J 페페님의 <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이란 단어가 눈길을 끌어 읽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에세이를 써온 그녀는 “(이 책에) 일상의 장소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살던 집, 학교, 동네 수영장, 카페, 식당… 매일 지나던 길, 가족, 친구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8쪽)” 예민한 저자가 남들과 만나면서 느끼게 되는 자신과 남들의 마음에 생기는 상처와 그 치유방법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 역시 ‘기억’에 관심이 많은 듯, ‘최초의 기억’을 내밀었습니다. 리뷰를 적는 이 순간 지나 온 저의 삶 가운데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네 살 터울의 막내가 태어나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다음은 할머니와 외할머니 댁에서 지내던 생각들... 그리고 보니 저자와 최초의 기억을 이야기하던 분이 내놓은 최초의 기억과 같은 것인데, 아마도 동생이 태어난다는 사건은 그 나이에도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기억의 바닥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가 하면 치매에 걸린 환자들을 ‘기억을 읽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은 치매환자들은 기억을 잃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즉 보고들은 것들을 기억의 창고에 들여보내는 능력이 사라진 것이지 이미 기억의 창고에 들어가 있는 것은 여전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보고들은 것 가운데 느낌이 약한 것들부터 기억이 약해져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자는 기억을 지키기 위하여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기록도 즉시성이 있어야 정확한 것이지 시간이 지나면 왜곡될 수도 있습니다.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한 시간과 그 시간에서 얻은 느낌들을 정리해보려던 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과 함께 했던 시간에서 얻은 느낌들은 빠뜨리지 않고 적어보려고 합니다.

 

어느 날 새벽에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눈물이 북받쳤던 저자는 마음을 추슬러서 수영장에 나갔는데, 수영을 하는 동안 다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친지가 주셨다는 위로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울 수 있다는 건 건강한 거예요. 내 나이쯤 되면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나와 오히려 힘들어요.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는 자꾸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거든요. 그렇게 살다 보면 진짜 울어야 할 때에도 눈물이 안 나와서 씁쓸해요.(2341쪽)” 어머니와 이별을 한지 불과 열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탓인지 이야기를 하다가, 심지어는 혼자있을 대도 울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마음을 가라앉히기는 합니다만, 굳이 그런 모습을 남이 어떻게 볼까 걱정스럽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보시는 분들도 이해해주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는 살만큼 살아온 셈이라서 타인의 삶이나 생각에 호기심을 가질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저를 낳아주시고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두 분에 대한 기억이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분에 대한 기억들을 모아두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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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간 - 분석심리학자가 말하는 미래 인간의 모든 것
이나미 지음 / 시공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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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소천하신 어머님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 바람에 3년 가까이 [북소리]를 연재하면서 처음으로 원고마감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매주 [북소리]를 기다리시는 분들에게 저의 송구한 마음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네 아들과 며느리, 여섯 손자, 손자며느리와 손자사위 한 명 등, 참석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두 손녀를 제외한 어머니의 자손들이 모두 모여 이승에서의 이별을 슬퍼하였습니다. 뇌경색으로 입원하셔서 다섯 달을 투병하시다가 뇌경색 재발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미 예고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재활치료로 많이 회복되시는 중이라서 어머니의 죽음은 생각하지 싫은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장례를 치르노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절차도 있습니다만, 어머니께서 생전에 마련하신 가족납골묘에 모실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 장례소식을 먼저 적은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저의 죽음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본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파피루스에도 ‘요즈음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방탕하다’라고 적혀있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제 자신이 어머님 장례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나미 박사님의 <다음 인간>을 읽다보니 공연한 걱정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저자는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예견하고 있는데, 저자의 예견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미 변화의 조짐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미래를 제시하면서 현재의 모순에 눈을 감게 만드는 태도나 반대로 극단적인 디스토피아를 제시하면서 결국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는 식의 가짜 예언자적 태도 모두를 지양한다.(15쪽)”라면서 중립적인 입장임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느낌이 남습니다.

 

저자는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는 욕망도 인간도 관계도 사라진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는 다섯 가지 유형의 인간이 등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갖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무욕인간은, 극단적인 통제와 방임 속에서 결국 무욕인간 혹은 사이코패스 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사이에도 끼지 못하는 사이인간은, 기술의 발달로 국경이 ‘완전히’ 허물어진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아 정체성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오감만족을 삶의 최고의 가치이자 목적으로 꼽는 오감만족 지향형 인간은 너무나 많은 자극에 노출된 나머지 감각기관은 훨씬 더 빨리 지치고 권태를 느낄 것이라고 합니다. 지나치게 자아에 집착하던 것에서 벗어나 초월적 자기실현의 세계를 지향하는 탈자아형 인간은 물질주의, 외모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명상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로봇에 의해 양육되고 로봇과 사랑하고 로봇에게 아픈 몸을 맡기는 R세대는 이들의 사고체계에 부족한 감정적인 면을 어떻게 성숙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전작 <슬픔이 멈추는 시간; http://blog.joins.com/yang412/13388820>을 통해 처음 만난 이나미박사님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의학을 전공한 전문의입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뉴욕의 융 연구원에서 분석심리학을 공부하고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종교심리학을 공부하여 석사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학문적 배경을 토대로 융의 텔레올로지이론과 적극적 상상기법을 합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 상황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해보도록 내담자들을 이끌어 치료하는 법을 세운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심리분석은 내담자의 과거에서 원인을 찾고 그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판단하는데, 모든 것을 심리적 외상으로 환원하는 것은 사람들을 무력감에 빠지게 만드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저자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고착되어 자신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미래에 대한 적극적 상상은 일종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아프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다시 기운을 차려 움직이듯이 우리 한국인들 역시 미래에서 희망을 볼 때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14쪽)”

 

한편 저자가 신화와 오래된 역사를 인용하여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떤 집단의 원형적 심성이란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사람들의 내면에 쌓여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마르스는 절름발이 대장장이 헤파이토스의 아내이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와 혼외관계를 가져 하모니아, 즉 조화의 신을 낳았다는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21세기에는 정형화된 여성성이나 남성성이 지배하던 과거보다 성 정체성에서 훨씬 자유로운 새로운 형태의 가정이 등장할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를 것이라는 저자의 미래예측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그래서 해답은 무엇인데요?’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만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해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일까요?

 

어렸을 적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동네어른들이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꼬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커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몰려다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저는 퇴근하면 집으로 향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은 집에 들어와도 각자의 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잠이 들곤 합니다. 선친께서는 대화효(對話孝)를 강조하곤 하셨습니다만, 대학에 다니던 어느 해인가 형제들은 집에 없고 부모님 두 분만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 모습을 보고서 시골집에 자주 내려가기로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녁에는 어머님과 소주잔을 나누면서, 다음날 아침에는 아버님과 바둑을 두면서 서울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곤 했습니다. 물론 얄팍해진 주머니 사정도 빠트리지 않아서 서울로 올라올 때는 주머니가 두둑해지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저처럼 스스로 느끼고 깨닫기를 기다리면 될까요?

 

아이들이 성년이 되었습니다만, 아직은 짝을 찾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가정을 꾸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아내를 귀찮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혼자 사는 남자와 여자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각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저자의 예상을 읽다보니 저의 생각이 단순한 걱정을 넘어 심각한 우려 수준으로 확대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도시 공동체는 기존의 핵가족 중심의 폐쇄적인 주거 형태가 아니라, 혼자 사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노인이 사는 집에 아이를 혼자 키우는 젊은이가 동거하되 부엌은 따로 쓰는 등 사생활은 보장되지만 응급한 상황일 때는 언제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태입니다. 사실 가족도 불편해서 관계를 만들지 않은 사람들이 피도 섞이지 않은 타인과 공동체를 만들어 부딪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심지어는 다부다처제도 등장할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미 인류의 역사에서 검증되어 사라진 제도로 회귀할 수 있다는 논리적 타당성이 다소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는 상대방에게 애착을 가지고 헌신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요즘 확산되고 있는 ‘아이스 버킷’ 릴레이를 보듯이 아직도 세상은 살만한 구석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서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낙관주의적이라서 일까요?

 

의학의 발달에 따른 인간소외를 다루면서 의사인 저자가 한국이 세계의학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 예측을 내놓고 있는 것은 지나치게 팔이 안으로 굽은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의료서비스의 불평등한 분배로 한국의료의 질이 낮아질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커다란 불안요인이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한국의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의료비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는 의료소비자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같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의료평등주의가 결국은 의료의 질을 하향평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을까요? 유전자조작으로 새로운 생물종을 만들어낸다거나 뇌이식술을 통하여 생명을 연장한다거나 하는 지금의 생명윤리로는 허용되지 않은 기술이 개발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아마도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부정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나름대로 이해를 해보았습니다.

 

제사문화에 대한 저자의 언급은 상중에 있는 필자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기제사에서 가족들 사이에 분란이 있었다거나 큰 재산을 물려주고도 제사 같은 귀찮은 일은 만들지 않은 부모를 세련되고 여유 있다고 표현한 것은 저자가 제사의 의미를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부모제사를 잘 모셔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기복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제사란 돌아가신 분의 자손들이 모여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고, 그분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공유하면서 가족공동체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양보와 역할분담을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관계가 공고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슬픔이 멈추는 시간>에서 종교에 대한 저자의 열린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만, 이 책에서도 저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원불교, 힌두교, 기독교와 뉴에이지운동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종교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유라시아대륙의 동쪽 끝 작은 반도에 있는 지정학적 특성상 우리나라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여 알맞게 조화시키는 용광로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우리사회의 규범적 전통을 지켜온 유교에는 곁자리조차 내주지 않은 이유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대안 공동체 운동을 제시하면서 가정이라는 전통적 사회단위를 깨트려야 할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무너져가는 가정을 보완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하는 길은 없을까요?

 

저자가 원시기독교나 불교 공동체 사회와 비슷한 모습의 대안공동체가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비교적 재산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주거비용 및 기타 부대비용을 줄이고 여러 가지 문화생활을 즐기자는 취지로 만들어질 것이다. (…) 대부분의 가정이 해체된 뒤 비슷한 가치관, 종교관,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일종의 가정이자 종교 집단을 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214쪽)”라는 저자의 생각에 문제는 없을까요? 저자 역시 이들 집단에서 갈등은 없지 않겠지만 가족과 달리 언제나 탈퇴 가능하다는 점 특별한 공동체 활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가족들도 피해갈 수 없는 갈등요소들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탈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을 구성하고 있는 ‘새로운 죽음의 방식’도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고독사가 사회적 화두가 된지 오래입니다만 자살클럽이 늘어나고, 심지어는 잉여살해를 돕는 비밀조직이 등장할 것이라는 저자의 예측이 차라리 틀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존엄하게 늙고 존엄하게 죽는 것이 많은 사람의 화두가 된지 오래이며, 가까운 미래에는 대책 없이 늘어나는 의료비에 대한 압력 때문에 선별적으로 안락사가 합법화 될 것(225쪽)”이라는 저자의 예측 역시 틀릴 것 같습니다. 이유는 ‘선별적’에 있습니다. 자신이 그 선별되는 그룹에 드는 것을 용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어머님 장례식 때 ‘부모나 형제의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점점 늘어간다.(232쪽)’라는 저자의 예견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힘든 현재를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 단순히 화를 누르거나 자학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내 안의 잠재적인 힘을 찾아내는 것(234쪽)’이기 때문에 미래를 그려보는 일 역시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과 가치가 미래에는 어떻게 기능할지 상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저자의 마무리 말씀을 통해서 <다음 인간>에 펼쳐놓은 저자가 예견하는 미래의 상황들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역설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자의적 해석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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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의 계보 살림지식총서 37
안혁 지음 / 살림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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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고른 책입니다. 그리고 보면 영화 <대부>를 비롯해서 마피아를 소재로 한 영화가 대중의 관심을 끈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영화에서 등장하는 총격장면들이 그저 영화적 장치일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알 카포네가 시카고에서 붙잡히는 것으로 마피아가 암약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안혁선생님의 <마피아의 계보>는 마피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들을 많이 바꾸게 되는 기회사 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먼저 ‘마피아’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고 있습니다. 1658년 시실리의 한 문헌을 보면 이교도 신앙을 믿는 어떤 여성을 묘사하면서 ‘큰 뜻을 품은, 포부를 가진, 자존심이 쎈’ 등의 뜻으로 마피아(Maffia)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아랍 쪽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경향도 있는데, ‘대담한 사람, 용감하고 배짱있는 남자 또는 허풍선이’를 뜻하는 mabias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했다거나, 한때 팔레르모를 통치했던 Ma afir라는 사라센 부족의 이름, 시실리의 마르살라 지역에서 발견된 곳으로, 이교 신앙 등의 이유로 쫓기던 사라센들이 은신하던 mafie라는 이름의 동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날 범죄조직의 대명사로 쓰이기 이전에는 “뛰어난, 남자다운, 훌륭한”이라는 의미로 쓰이던 단어라는 것입니다.

지중해의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시실리는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코끝에 올려진 듯한 섬으로 지중해의 요지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외적의 침입이 잦았던 탓에 시실리섬사람들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하며, 적에 대하여 협심하여 대항하고, 일단 친구라 하면 그가 비록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절대로 배신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고 합니다. 즉 마피아란 시실리인들의 성격과 삶의 철학,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와 그들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요소, 그들의 기초 도덕을 아우르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민족의 자주성이라 시실리의 독립 따위 보다는 자기와 자기 일가족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의 갈등 역시 법에 호소하기 보다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시실리 사람들이 미국의 암흑가를 주름잡게 되는 것은 서기 1900년을 전후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대이민의 시기에 시실리를 떠나 미국으로 향하게 되면서인데, 1886년과 1902년 두 차례에 걸쳐 베수비오화산이 분화를 시작하면서 흉년과 기아가 닥친 것이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으로 건너간 시실리안들은 먼저 자리 잡은 아일랜드계와 유대계 사람들과 세력을 다투게 되었지만, 단결력과 근면한 천성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해갔다는 것입니다. 마피아가 미국의 암흑가에 터를 잡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바로 1920년 미국 전역에 확대하여 실시한 금주법이라고 합니다. 금주법은 미국 전역에서 술의 제조와 술의 수입 수출, 유통, 판매 등 술에 관한 모든 것을 금한 법이었지만, 술꾼들에게 금주가 원천적으로 불가하기 때문에 오히려 불법을 부르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시실리 출신으로 암흑가에서 주도권을 처음 잡은 이는 뉴욕 마피아를 창설한 귀제페 마세리아라고 합니다. 당시 뉴욕에는 다섯 개 정도의 마피아 그룹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살바토레 마란자노의 주도로 귀제페가 제거되고 마피아 패밀리를 통괄하는 리더십을 선보였고, 시실리의 오랜 전통인 오메르타(침묵의 맹세)를 비롯한 다섯 가지 계율을 내걸었다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미 정보국은 본토해안을 지키기 위하여 마피아의 세력을 활용하기도 하였고, 이탈리아반도에 상륙하기 위하여 시실리에 거점을 마련할 때도 마피아의 힘을 빌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암흑가 세력이 권력에 밀착하는 묘한 상황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알 카포네가 미국 갱스터의 대표적 인물로 기억합니다만, 알 카포네는 마피아가 아니라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아우트 피트라는 명칭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아우트 피트에는 비시실리 이탈리아 사람과 유대계, 러시아계, 영국계등 여러 인종들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에서 마피아가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마피아가 형성될 무렵 주요 소득원이 되었던 밀주사업으로부터 노조 경영 사업, 호텔 카지노 사업, 상납금, 금융업을 거쳐 마약사업에 이르기까지 사회변화에 따른 재빠른 변신으로 비교적 근래까지 활발하게 활동해왔다고 합니다. 많이 쇠퇴했다고는 하지만 암흑세력은 어느 시대나 존재했던 것처럼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세력이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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