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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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일상을 벗어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행이야말로 일상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싶습니다. <헤세의 여행>을 옮긴 홍성광님은 ‘여행을 통한 공간의 변화는 우리의 정신에 활력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여행을 통해 장소가 아닌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얻게 된다.(9쪽)’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통하여 얻은 다양한 생각들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기 때문에 글로 남겨놓은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사진을 찍어두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사진만으로는 기억을 되살리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희망의 발견>의 저자 실뱅 테송(Sylvain Tesson)은 “장거리 보행자에게 글이란 가장 강렬한 진정의 순간이다(…). 저녁마다 글을 쓰면서 여행자는 또 다른 표면으로 길을 계속 이어가고 페이지 위에서 전진을 연장한다.(89쪽)”라고 했을 것입니다.

 

여행의 감동을 글로 남기는 작업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뜻은 있으나 엄두를 내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종류의 글 역시 일반적인 글쓰기와 같은 맥락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행에 관한 글을 많이 읽고 따라하다 보면 점점 좋은 글을 남길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데미안> 등으로 우리와 친숙한 헤세는 당시 유럽사회의 유행처럼 많은 여행을 하고 그 느낌을 에세이로 남겼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에세이들을 모아 엮은 <헤세의 여행>은 여행의 느낌을 글로 옮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주로 보는 여행을 하는 저와는 달리 여행에 대한 헤세의 생각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36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헤세는 평소에 만날 수 없는 사람과 사물을 체험함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여행은 어떤 나라와 민족, 어떤 도시나 풍경을 여행자의 정신적 소유물로 만들려는 목적을 지녀야 하기 때문’에 “여행자는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낯선 것에 귀 기울여야 하고, 낯선 것에 담긴 본질의 비밀을 끈질기게 알아내려 노력해야 한다.(41쪽)”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핼 기록을 엮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1901, 1911, 1913), 보덴호 산책(1904),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1911), 테신지역의 소풍(1919~1924). 독일 남쪽 지역의 방랑(1920) 그리고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여행(1927) 등입니다. <싯다르타; http://blog.joins.com/yang412/10451704>에서 헤세가 불교에 매우 심취해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그 배경을 <헤세의 여행>에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리랑카의 석굴불교사원을 찾았을 때의 느낌을 헤세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이제 노 승려가 가장 안쪽의 문을 열었다. 그곳은 칠흑 같이 캄캄했고, 뒤쪽의 암석 동굴은 닫혀 있었다. 촛불을 들고 다가가자 어떤 거대한 형체가 불빛과 그림자 속에서 흔들리며 나타났다. (…) 전율이 느껴졌다.(238쪽)” 헤세는 생애의 절반 이상을 인도와 중국연구에 바쳤는데, 헤세가 유럽을 증오하고 도망친 이유는 유럽의 현저한 몰취미, 시끄러운 대목장 영업, 성급한 조바심, 거칠고도 조야한 향락욕 등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뇌와 불안과 절망의 세월이 여러 해 지나는 동안 유럽의 구원을 모색해야겠다는 생각도, 유럽을 적대시하려는 생각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왜? 존경하는 동양과 병들고 고통 받는 유럽 사이의 큰 차이는 사실 헤세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부처와 담만파다, <도덕경>이 고향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순수하게 들렸고, 더 이상 수수께끼 같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앞서 좋은 글을 읽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만, <헤세의 여행>에 나오는 주옥같은 글 가운데 하나만 뽑으라면 다음 구절로 하겠습니다. “저녁녘엔 호수나 그 뒤편 숲 속의 모래밭, 갈대나 풀밭을 찾아갈 시간이 된다. 호수는 따듯한 혓바닥으로 석양에 물든 모래밭을 핥고 있다. 낚시꾼들이 긴 낚싯대를 여윈 장딴지 위에 올려놓고 꿈꾸듯 개울 어귀에 서 있다. 산들은 저녁의 색조를 띄어가고, 저녁의 금빛 마법이 세상을 넘어간다.…(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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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보는 미국 살림지식총서 83
채동배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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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들어 유난히 쟁송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도 만나기도 했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보수적인 사법계가 쉽게 변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문지상에서 거론되는 사건들 가운데 화제가 되는 판결도 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바뀌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이건 아닌 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도 법학전문대학원제도가 정착되고, 배심원제도가 도입되는 등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제도는 미국의 사법제도에서 들여온 것입니다. 다양한 미국의 모습을 공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사법제도를 요약하면서 어떻게 우리나라에 적용할 것인가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는 채동배교수의 <법으로 보는 미국>을 읽었습니다. 벌써 10년도 넘은 옛날에 나온 책이기는 합니다만, 미국의 사법제도가 크게 변한 것이 없는데다가, 저자의 제안 가운데 법학전문대학원제도와 배심원제도가 이미 도입된 것을 보면 책의 내용에 대한 신뢰가 커지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미국 사법제도가 형성되고 전개되어온 과정과 연방 및 주정부의 법원조직이 어떻게 구성되며 사법체계에서 활동하는 법조인들은 어떤 과정을 통하여 자격을 얻게 되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영국인들이 신대륙으로 진출이 확대된 것은 영국국교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신교도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라고 합니다. 청교도들은 법률에 의한 규제를 혐오하고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상공업이 발전하고 인구가 빠르게 늘어가면서 소유권을 분명하게 해줄 필요가 늘었습니다. 법률가 즉 변호사의 수요가 늘게 되었고, 변호사는 영국 유학을 통하여 법률을 공부한 사람이나 현역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법률지식을 배우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법률대학원의 시조는 1870년부터 25년간 하버드 법률대학원장을 지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랭들이라고 합니다. 당시 하버드 법률대학원에서는 계약법, 재산법, 권침법, 헌법, 형사소송법 등을 개설하였고, 교육방법도 암기식이나 주입식이 아닌 문답법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오래 전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미드 <하버드의 공부벌레들>을 통하여 강의실 풍경을 기억합니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한국의 사법개혁 시리즈입니다. 그 첫 번째가 변호사 양성제도의 개선입니다. 이 책이 나올 당시 1만명에 달하는 법과대학생들 가운데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극소수를 제외한 법대졸업생들이 배운 지식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으며,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폭주하는 업무가 문제가 되던 시절입니다. 또한 재판전 증거교환제도와 배심재판의 필요성도 제기하였습니다. 세 가지 가운데 법학전문대학원제도와 배심원제도는 이미 도입이 되었습니다. 저자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중복되는 점도 있습니다만, 1) 재판 전 상로 증거교환제도, 2) 배심재판제도, 3) 형사피의자의 권리를 존중할 것, 4) 제1심의 권위를 높여야 한다, 5) 제한적 관할권을 가진 법원을 더 설립해야 할 것, 6) 법관의 임명제도의 개선, 7) 헌법재판소를 대법원에 흡수해야 할 것 등입니다. 읽어보면 미국의 사법제도를 통하여 충분히 검증된 것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법이나 법조계에 대하여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은 미리 밝혀둡니다.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검찰조직의 개혁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선 조직을 뜯어 고쳐 형사피의자의 인권을 우선하는 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등검찰청과 대검찰청을 설치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증인을 출두시키는 방법의 개선도 있는데, 영장보다는 조금 낮은 수준으로 판사가 서명한 소환명령서 혹은 출두명령서를 사용하면 증인이 검찰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최근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만,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저자는 미국의 사법부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모든 권리와 자유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만약 정부나 국가기관이 적법절차 없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침범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러한 불법과 횡포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주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우리나라의 사법제도 역시 이와 같은 정신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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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흔적을 찾아서
바바라 해거티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영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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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하는가? 신의 존재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목도 그렇습니다만, ‘생명의 DNA에서 죽음 이후까지, 뇌의 회로에서 우주의 과학까지 신의 존재를 찾아 나선 위대한 탐사’라는 카피에 끌려서 읽게 된 <신의 흔적을 찾아서>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현재까지의 과학적 방법론으로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다’입니다.

 

저자는 25년 경력의 탐사전문 작가인 바바라 해거티입니다. 과학과 종교의 해묵은 논쟁거리인 신의 존재증명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게 된 것은 저자의 영성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라는 기독교 교파의 가풍에서 자란 저자가 몸살에 걸렸을 때 타이레놀을 복용하여 증상이 호전되면서 종교를 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19세기 말경 미국의 에디 부인이 창립한 기독교의 분파로 죄, 병, 악은 모두 허망하다고 깨달음으로써 만병을 고칠 수 있다는 정신요법을 주장한다고 합니다. 이듬해 저자는 암에 걸려 있는 복음주의자를 인터뷰하면서 영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 몸보다 정신이 먼저 반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 어쩌면 위험이 닥쳤다는 신호가 느껴졌다. 나는 뒷덜미의 머리카락이 쭈볏해지는 걸 느꼈고 심장박동이 좀 빨라졌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지금처럼 말이다. (…) 나는 만질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는 어떤 존재에 조금씩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휩싸였다. 꼼짝할 수 없었다.(13쪽)” 이런 존재를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영적 경험을 한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이런 사람들에 대한 뇌과학적 연구결과를 뒤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유전자분석과 뇌화학적 분석 그리고 대뇌의 전기적 활동을 연구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임사체험이 등장하고,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를 정의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유전학적 연구로 영성이 높은 사람들에서는 VMAT2라는 유전자의 발현빈도가 높더라는 것인데, 이 유전자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라는 뇌활성 전달물질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고 있습니다.

 

신경과학자 마이클 퍼싱어는 저자가 생각하는 영적 경험의 정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우주의 온전한 존재가 무엇이든 그것을 경험할 때 그건 뇌의 활동이라는 것입니다.(179쪽)” 역사적으로 과학이 성취해온 과정을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코페르니쿠스가 바로 잡았고, 우리가 특별한 창조물이라는 환상은 다윈이 깼고, 프로이트는 우리가 논리적인 동물이라는 개념을 무너뜨렸다고 할 수 있다’라고 요약하면서, 인간이 동물종으로서 극복해야 할 마지막 환상은 바로 ‘신’이 인간의 뇌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존재라는 환상, 즉 우리가 그 존재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신의 존재나 영적 체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겠다고 하면서도 과학적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사례들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열두 살 된 소년이 13센티미터의 작은 망원경으로 토성을 보았다는 기억입니다. 아이들을 위하여 천문대를 방문하였을 깨 꽤나 큰 망원경을 통하여 토성의 고리를 관찰했던 저의 기억과는 거리가 있는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시신경이 손상되어 볼 수 없었던 여성이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누워있는 여자가 자신의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영적체험이 일어났다는 증거, 지문을 남긴다는 걸 과학은 증명해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은 마이클 퍼싱어의 설명으로 충분히 기각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과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지만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부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믿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 저자가 토마스 쿤이 내놓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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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과 패턴 - 복잡한 세상을 읽는 단순한 규칙의 발견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시공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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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5개월 가까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만,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은 더디기만 한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많은 생명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스러져간 이유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작은 문제들이 누적되어 쌓여가다가 어느 날 엄청난 사고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사회적 원자; http://blog.joins.com/yang412/11996671>를 통하여 ‘사회현상이 물리학적 원리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가설을 소개한 이론물리학자 마크 뷰캐넌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치, 역사, 자연재해, 생태계, 시장과 자본, 경제원칙, 인간의 행동에 대한 유사성을 찾아내 수식화하고, 컴퓨터를 통한 시뮬레이션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열다섯 개의 장을 통하여 1914년 6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던 사라예보에서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에서부터 1988년 미국 와이오밍주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엄청난 화재, ‘검은 월요일’이라고 부르는 1987년 10월 19일 월스트리트를 공황상태로 몰고 간 주가폭락사태, 그리고 자연재해 가운데 가장 예측이 어렵다는 지진에 이르기까지 사회현상에서부터 자연현상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명하다는 것은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라고 한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인용하여, 이 책에서는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접근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격변을 설명하기 위하여 ‘복잡계 물리학’이라고 하는 비평형 물리학에서 그 해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비평형상태에서 사물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그물망에서 발전하는 자연스러운 패턴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소용돌이치는 대기에서 인간의 뇌까지 방대한 영역의 자연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39~40쪽)”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가까이는 1995년 1월 17일 일본 고베에서 일어난 대규모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지켜볼 수 있었고, 2004년 12월 26일 태국 푸켓에서는 지진에 따른 쓰나미가 덮쳐 무려 30만명의 인명피해를 냈고, 2011년 3월 29일 일본 후쿠오카 지역을 덮친 쓰나미는 2만명의 인명피해와 함께 원전사고로 이어져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지진의 피해가 이렇게 큰 이유는 아직까지 대책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수준의 정확한 예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큰 지진이 발생하는 기전과 예보체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지진이나 자본시장의 끔찍한 파탄, 혁명이나 파국적인 전쟁 등이 모두 프랙탈과 멱함수 법칙에 의하여 작동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특히 흥미로웠던 건은 1988년 150만 에이커의 면적을 불태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대형 산불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을 찾았던 것이 1992년이었는데 아직도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저자는 삼림의 생태계와 산불의 관계를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증명해보였는데, 결론을 이야기하면 미국 삼림청이 1890년 이후 단 한 건의 산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방어조처를 취하다 보니 숲이 노령화되는 의도치 않는 변화가 생긴 것이 대형산불로 진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즉 “숲이 임계 상태로 유지되는 데는 산불도 일정한 역할을 하는데, 산불을 인위적으로 억제했기 때문에 잘타는 물질이 모든 곳에 높은 밀도로 쌓여서 초임계상태가 된 것(157쪽)”이라고 합니다. 작은 산불은 불에 잘 타는 물질을 제거해서 큰불이 나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비교해보면 작은 충돌 오히려 커다란 분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응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시공디스커버리 시리즈의 <공룡; http://blog.joins.com/yang412/13462207>에서 공룡의 멸종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읽었습니다만, 소행성 충돌설 이외에도 몇 가지 다른 이유가 검토되고 있다는 설명을 <우발과 패턴>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복잡계 물리학으로 자연과 사회현상을 설명해온 저자가 정작 끝에 가서는 ‘결론을 대신하는 비과학적인 후기’라는 제목을 붙여서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른다. 다만 어떤 행위를 성취하기 위해 사람들이 일정한 결합을 형성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이것이 법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346쪽)”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있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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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사 살림지식총서 84
이창신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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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대한 공부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살림지식총서 시리즈로 나온 <미국 여성사>는 미국의 여성사를 연구해 오신 이창신교수님께서 정리하신 책입니다. 미국여성사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에 관하여 먼저 생각해봅니다.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유관순열사의 항일운동을 폄훼하여 국정교과서에서 누락시키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사에서 3.1운동이 차지하는 위치는 자못 크다고 합니다. 개항이후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선에 머물던 여성운동은 3.1운동을 계기로 사회적 정치적 활동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1운동이 전국 규모의 시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제의 주목에서 벗어나 있던 여학생들을 주축으로 시위에 관련된 일들이 은밀하게 전파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해방 이후 주로 미국에서 들어온 외래사조를 타고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미국 여성사>에서 미국의 여성운동의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에서 저자는 미국에서 여성해방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것은 1960년대였다고 합니다. 여성사와 여성학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여성운동의 의미, 가치, 목표, 법칙 등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이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들은 유교적 전통에 짓눌려 살았다고 이야기합니다만, 미국의 일부 계층의 여성을 제외한 일반여성들의 사정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여성 사학자 러다 거너는 여성운동을 주도한 미국의 여성사가 발전한 과정을 4단계로 설명하였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보충사’로 유명한 여성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활동을 기록해놓은 수준에 머물던 시기이고, 두 번째 단계는 ‘공헌사’로 여성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나 주제 등을 정리하게 된 단계, 세 번째 단계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이미 연구된 여성들의 공헌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벗어나 재해석이 이루어진 단계, 마지막 단계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여성사학계가 ‘젠더’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역사분석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는 시기를 말한다고 합니다.

 

사실 1990년대 초반에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처음 접하게 된 ‘젠더’라는 단어가 그저 성별을 의미하는 sex를 대치하는 단어라고 이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젠더(gender)는 일반적으로 생물학적인 성의 개념인 성(sex)과 구분지어 사용되는 개념으로 특정 사회나 문화에 따라 형성된 성적 차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관념의 차이에 불과한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는 단어를 대치하는 새로운 단어를 도입하는 사례가 많은 것을 보면 필요한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미국의 여성운동은 크게 1기와 2기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19세기 중엽부터 참정권을 획득한 1920년까지를 제1기라고 하는데, 참정권을 획득한 다음에는 여성운동의 동력이 사라지면서 침체기에 빠졌다가 베티 프리단이 <여성의 신비>를 출판한 1963년대부터는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했던 1기와는 달리 남성과는 다른 차원의 여성성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즉 성에 대한 생물학, 심리학, 문학적 측면을 강조하는 한편, 여성문제, 여성운동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까지 관심을 확대하고 증진시켜나간 시기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60년대 들어 미국 시회의 현재와 과거 속에 나타나고 있는 듯한 안정, 조화, 풍요의 이면에는 불안, 갈등, 폭력이 깊이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한 신좌파 사가들의 등장과 맞물려 일어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신과파 사가들은 그때까지 미국의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집단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에서 3.1운동이 여성운동의 전환점이 된 것처럼 미국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6백만 명의 여성이 노동현장에 투입되면서 여성의 경제 참여가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여성사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이를 통하여 여성을 하나의 독립된 정체성으로 범주화시킨 것을 토대로 여성들의 역사를 일반역사 속에 편입시킬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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