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소담 - 오늘을 즐기는 당신을 위하여
권경민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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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에 누군가를 만나려다보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장소인 것 같습니다. 늘상 가던 곳을 가는 것이 편하기는 하지만 만나는 상대에 따라서는 뭔가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아쉽습니다. 그런 점에서 권경민님의 <맥주 소담>은 만남을 위한 장소를 정하는데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 같습니다. 강남과 이태원 그리고 홍대앞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서울 근교까지 무려 서른 곳이나 되는 곳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를 담았습니다. 청소년시절에 탐독했던 무협지에 나오는 무술의 비급처럼 숨겨두고 약속장소를 정할 때 깜짝 시연(試演)을 하듯 보여주면 상대가 놀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우리나라 맥주시장을 독점하던 두 맥주회사의 철옹성을 뚫고 들어온 외국산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외국산 브랜드가 워낙이 다양해서 역시 늘상 마시던 맥주를 마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을 뒤쫓는 정신이 없거나, 그저 타성적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탓일 것입니다. 최근에 굳히기에 들어간 맥주에는 치킨 혹은 치킨에는 맥주를 말하는 ‘치맥’에, 맥주에 소주를 타 마시는 ‘소맥’까지 맥주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는 문화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점도 아쉽다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도 저자가 <맥주 소담>의 2부로 구성한 맥주와 안주의 페어링, 조금 닭살 돋는 표현으로 ‘그 맥주의 소울푸드’ 역시 맥주마다 어울리는 안주를 주문할 수 있는 재치를 뽐낼 수 있게 만들어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감춰둔 맥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간략한 상식들도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선술집이란 우리말이 적당할 것 같은 펍(pub)이란 단어를 들으면 왠지 맥주 거품이 넘칠 듯한 커다란 잔들이 오가는 시끄러운 분위기의 맥주집이 떠오릅니다. 그래서인지 저자 역시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맥주파는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펍기행이라고 적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건물의 외경으로부터 내부 분위기 심지어는 셰프들이 음식을 만드는 장명과 그 음식 사진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사진을 곁들이고 있어 마치 해당 업소의 홍보물 같다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아마도 실내외 사진에는 관계자 이외에 그곳의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영업을 하지 않는 날 사진작가의 요구에 따라서 세팅된 모습을 담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집에서 주력하고 있는 맥주와 대표적인 음식메뉴는 물론 가격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어 누구와 만나는가에 따라 약속장소를 정할 때 좋은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대체적으로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다양한 나라의 맥주와 음식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 색다른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의 관심을 끌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곳의 펍 가운데 가본 곳이 딱 한 곳이 있습니다. 열두번째로 소개하고 있는 여의도 극동오피스텔에 있는 와바입니다. 이곳은 인근에 있는 남도식 음식을 깔끔하게 내는 <정오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 가는 코스였습니다. 2차로 가던 곳이라서 이곳 특유의 맥주맛이나 영국식 수제 피쉬&칩스를 제대로 즐긴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음에는 다른 곳을 들르지 않고 바로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2부에서 소개하는  맥주와 푸드 페어링에서는 설마 이런 조합이 가능할까 싶은 페어링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닭볶음탕과 비슷한 치킨 스튜나, 홍합탕과 비슷한 홍합 스튜에도 어울리는 맥주가 있다는 사실처럼 말입니다. 심지어는 퐁듀에도 어울리는 맥주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맥주는 그 다양성 때문에 역시 다양한 음식들과 궁합을 맞출 수 있는 모양입니다. 후기처럼 책의 말미에 붙여둔 ‘see you there’에서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있는 외국산 맥주가 무려 400종이나 되고, 우리나라의 맥주시장이 무려 연간 4조원 규모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젊었을 적 청계천 뒷골목에서 돼지갈비에 소주를 마시고는 옷에 밴 고기냄새를 뺀다는 핑계로 들렀던 종로3가의 로젠켈러의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가 새삼 그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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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 돈을 끌어당기는 여자의 39가지 습관
와타나베 가오루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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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위한 책도 읽는 이유는 혹시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메디칼 타임스>라는 보건의료신문에서 중매에 관한 칼럼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남자의 입장에서 이런 여성을 배우자로 우선 고려하는 선호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우선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미용, 건강, 자기계발, 성공철학 등 여성이 내적, 외적으로 아름다워지는 방법을 독자적 시선으로 분석해서 알리는 ‘멘탈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직업도 참 다양하다 싶습니다. 그런데 그 출발점이 블로그였다고 해서 새롭게 보았습니다. 블로그의 하루 평균 방문자수가 무려 1만6천명이고 매월 200만이 넘는 페이지뷰를 자랑한다고 합니다만, 저도 매월 방문자가 15만명(한때는 25만명에 이를 때도 있었습니다만, 최근에 저작권시비에 휘말리면서 하락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정도됩니다만, 블로그를 상업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이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미인이 되는 방법’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열고 매일 올리는 글을 읽는 방문자가 늘면서 제휴판매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파워블로그가 제조사와 계약을 맺고 상품의 리뷰를 올리는 것과 유사한 방식인 것 같습니다.  블로그를 통하여 구매가 이루어지게 되면 일정 부분의 수수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제휴프로그램에 대한 인식이 다양해서 수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숨기고 리뷰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돈을 버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돈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있다고 합니다. 흔히는 배금주의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돈을 아무 많이 좋아하게 되고, 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어내고 돈과 사이좋게 지내면 돈이 저절로 생긴다는 설명입니다. 긍정적 사고가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들 합니다만, 저자가 소개하는 39개나 되는 돈이 들어오는 생활방식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공감이 가는 점도 많습니다만 조금은 뜬구름 잡는 듯한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권위있는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라는 권고는 결국은 자신의 권고도 마찬가지라는 점이 충돌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경험을 별도로 정리한 플러스 스토리 가운데 ‘포기하지 않으니 방법이 생겼다’라는 내용은 저와 다른 적극적인 방식으로 해법을 찾아냈구나 하는 생각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젊었을 때 비슷한 상황을 맞았는데, 적극적으로 대출이라거나 가족의 도움을 구하는 적극적인 방식을 찾아보지 않은 저의 소심함을 다시 회상하면서 불편한 느낌이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꺼내면 들어온다는 개념을 잘 못 이해하면 우선 저지르는 소비성향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소비를 줄이는 검약한 생활방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저자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행동으로 부자의 자아상을 체감해보기 위하여 호텔라운지에 가서 한잔에 1만5천원이나 하는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이런 커피를 마실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 말이 자랑처럼 느껴지지 않고 허세로 비치는 것은 저의 좁은 소견일까요? 3개월 동안 그렇게 지출된 돈이 무려 18만원이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도 더 다신교적이며 기복성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저자의 경우도 책을 출판하고서 다른 사람들과 ‘금전운이 따르는 부적’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금전운 왕창 상승!’이라고 금색으로 쓴 책갈피를 만들었는데, 10만장이나 되는 책갈피를 신사에 가져가 ‘책과 책갈피를 갖게 되는 사람들을 위한 개운초복(開運招福) 기도’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일반 독자의 막연한 기대심리를 자극하는 상술을 발휘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돈이 가장 힘을 발휘하는 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모을 때가 아니라, 돈을 가지고 당신이 기뻐할 일을 할 수 있을 때다(218쪽)”라고 적은 것처럼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과 친구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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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가족 이야기 - 장수와 행복의 비결을 찾아서
대한의사협회.대한의사협회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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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한의사협회가 창립 100주년을 맞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한 사업으로 전개한 5대 가족 찾기 사업의 결과를 정리한 책입니다. 당시 전국에서 발굴된 5대 가족은 모두 26 가족이었습니다. 5대가족을 이루려면 각 세대가 20대 초반에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야 가능한데, 요즈음 같이 늦게 결혼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5대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26 가족의 사연들을 모아 분석한 결과 이들이 5대에 이르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돈독한 가족애와 건강한 생활습관 그리고 건전한 사고방식으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온 이들의 모습을 정리하여 우리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한 책이 바로 <5대 가족 이야기>입니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책에는 5대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게 된 비결,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특히 1대 어르신들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 그리고 그들에게서 배우는 백 년 삶의 지혜를 담았습니다. 몇 가지 특징을 보면 26가족의 1세대를 구성하는 어르신은 모두 여성으로 한국 여성 평균수명보다 12.3세를 더 장수하고 계셨다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한 분도 없었던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대간 평균 나이차를 보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1~2세대의 차이는 20.8세, 2~3세대의 차이는 22.3세, 3~4세대의 차이는 22.7세 그리고 4~5세대의 차이는 26.5세로 결혼 적령기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반세기 전까지 만해도 20대 초반이면 결혼을 하였지만, 이제는 20대 후반으로 늦어지고 있어 이제는 5대 가족은 정말 가뭄에 콩나듯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평균기대여명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치를 높일 수도 있겠습니다.

 

5대 가족에서 발견된 공통점은 1. 대화와 웃음이 많다, 2. 웃어른을 공경한다, 3. 항상 부지런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4. 1,2세대는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5. 첫 자녀를 일찍 낳았다, 등입니다. 특이한 점은 5대 가족들은 가족 규모가 일반 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가족 간의 교류나 모임이 더욱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남다른 가족애가 중요한 요소라고 보이는 대목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26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이 한 집안의 그것처럼 닮았더라는 점입니다. 한 가족에서도 쉽지 않은 식단에서부터 잠자는 습관에 이르기까지 거의 같은 패턴을 보였다고 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1. 세끼는 꼬박꼬박 챙길 것, 2. 소식, 적게 먹는 것은 기본, 3. 식단은 소박한 채식 위주로, 4. 수면은 확실하고 충분하게, 5. 사고는 밝고 긍정적으로, 등입니다. 제3부에서는 특히 1세대의 어르신들이 건강을 유지한 비결을 따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역시 핵심은 먹거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살고 있는 곳에서 나는 식재료, 특히 야채를 주로 먹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습관이 중요한 요소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장수비결은 열 가지로 요약되었습니다. 1. 내 일은 내가 한다, 2. 웃음, 3. 소식, 4. 부지런함, 5. 늘 배우는 자세, 6. 느긋한 성품, 7. 관용, 8. 일찍 일어나기, 9. 잠 잘자기, 10. 나이를 초월한 말동무 만들기 등입니다.

 

5대 가족을 이루는 윗대 어르신들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과 같은 격동기를 어렵게 넘기신 분들입니다. 살아남는데 행운도 따랐던 것 같습니다. 이들 가족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1세대 어르신들을 구심점으로 하여 작은 교류를 나누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류를 통하여 아이들은 가족애는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르신들은 아랫세대의 보살핌을 받으면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즉, 건강과 장수는 가족 간의 관심과 애정, 보살핌과 상호협력에 달려 있다고 정리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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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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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뛰어난 기억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억이란 것이 완전하지 못해서 잘못 인식한 것을 기억하기도 하고 스스로 왜곡시키기도 한다고 합니다. 생소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집단기억’의 개념은 [북소리]에서 소개한 바 있는 제프리 K 올릭의 <기억의 지도; http://blog.joins.com/yang412/13386852>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집단기억’은 에밀 뒤르켕의 문하생 모리스 알브바슈가 1925년도에 발표한 <기억의 사회적 구성틀>에서 처음 제시되었다고 합니다. <기억의 지도>를 감수하신 김문조교수님은 ‘집단 기억’이란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인식적 가교로써 ‘삶에 보탬이 되는 지혜나 교훈의 교훈’이라는 온축적 가치를 넘어, 역사의 물줄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려는 집합적 열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을 빚는 집단들은 상대 집단의 집합적 열망을 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일 것입니다.

 

대립하는 집단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치명적 사례로 제노사이드가 있습니다. 역시 [북소리]에서 소개한 허버트 허시교수의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 http://blog.joins.com/yang412/13180447>에서 인용한 글을 다시 인용해보면, 제노사이드는 ‘집단학살(集團虐殺)’이라 번역되고 “그리스어로 민족, 종족, 인종을 뜻하는 ‘geno’와 살인을 뜻하는 ‘cide’를 합친 말이며, 고의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파괴하는 범죄를 일컫는다.”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집단 학살의 정확한 정의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나, 법적인 집단 학살의 정의는 1948년 국제 연합 집단 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에서 나온다. 이 협정 2조를 보면 집단 학살을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한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집단의 일원을 살해하거나 심각한 육체적ㆍ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것, 고의적으로 육체적 파멸을 의도한 생활 조건을 강제하는 것, 집단 내 출생을 막는 것, 집단의 아동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 이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948년 유엔이 「집단 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을 마련하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집단이 저지른 것과 같은 대규모 학살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자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만, 세계대전 이후에 아프리카와 동유럽 등지에서 벌어진 이민족들 간의 전쟁에서 여전히 재현되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집단이 확대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른 집단과의 부딪히게 되고 필연적으로 전쟁이라는 치명적인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인류가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온 일이기도 합니다. 전쟁에서 사람이 죽고 도시가 무너지는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오월동주(吳越同舟)는 상황논리일 뿐, 정복당한 집단이 언젠가는 세력을 키워 복수에 나설 것을 걱정하기 때문에 정복한 집단을 아예 절멸시킨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정복자의 문화청소행위에 저항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애절한 감정을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민족을 말살하려면 먼저 그들에게서 기억을 제거하는 일부터 시작하지. 누군가는 그들 책과 문화와 역사를 파괴하지.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다른 책을 쓰고, 그들에게 다른 문화르 제공하고,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고. 그러고 나면 민족은 서서히 자신의 현재 모습과 과거 모습을 잊기 시작하지. 주변 세상은 그 민족을 더더욱 빨리 잊어 가고 말이야.(밀란 쿤데라 지음, 웃음과 망각의 책 297쪽, 민음사, 2011년; http://blog.joins.com/yang412/12898248)”

 

국제사회의 감시를 의식하여 인종청소행위를 대규모로 저지르지는 못하는 대신 이를 대체할 수단이 자행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로버트 베번의 <집단기억의 파괴>는 제노사이드에 병행하여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집단기억의 말살행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바로 건축물의 파괴와 같은 문화청소행위입니다. 저자는 영국의 건축잡지 <빌딩 다자인>의 전임 편집인을 지낸 건축저널리스트이자 저술가입니다.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유럽의 건축유산의 자료화면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했다는 저자는 인도에서 보스니아까지 무수한 파괴의 현장을 직접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정복자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방식으로 한 집단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그들의 정신이 담긴 건축물을 파괴해왔으며 또 지금도 파괴하고 있는지를 알아낸 것입니다. 전쟁에서 건물이 무너지고 도시가 파괴되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불가피하게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도서관이나 미술관 혹은 종교건물과 같이 집단의 현전(現前, presence)의 상징은 특히 의도적으로 선택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답니다. 이들 건축물들은 역사적 기억의 저장고이자 특정 집단의 현재를 과거 그리고 미래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건축물이 파괴되는 것은 전쟁의 부수적인 피해가 아니라, “건축물과 장소에 깃든 기억과 역사와 정체성의 말살, 즉 망각의 강요 그 자체가 목적인 분쟁에서 일어나는 특정 건축양식이나 전통에 대한 적극적이면서도 조직적인 파괴다.(9쪽)”라고 저자는 잘라 말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집단학살과 인종청소의 과정에서 건축물이 맞는 숙명을 살펴보고, 건물을 표적으로 한 테러 활동과 정복 활동, 사람들을 분산시키거나 결집시키기 위해 구조물을 세우거나 철거하는 행위, 과거의 잔해 위에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혁명적인 새 질서로 파괴된 건물들을 짚어가고 있습니다. 1938년 크리스탈나흐트(Kristallnacht; 수정의 밤, 1938년 11월 19일부터 10일까지 나치의 선동을 받은 독일인들이 유대인의 집과 사업장, 시너고그 등을 습격한 사건)로부터 시작된 나치 독일의 광범위한 유럽문화 말살행위는 물론, 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의 배려로 독립 국가를 이루게 된 이스라엘이 선주민 팔레스타인 사람과 문화를 말살하려는 행위들도 빠트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코소보 내전 기간 동안 세르비아 강경주의자들에 의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무슬림 문화의 파괴 실태,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신구교의 충돌, 중국 정부가 티베트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하여 저지른 문화파괴 행위 그리고 문화혁명기간 동안 저지른 중국의 권력층이 저지른 자기문화 파괴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뒤쫓고 있습니다. 다만 지리적 혹은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사건중심으로 서술하지 않고 문화파괴의 형태에 따라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어 사건들이 중복하여 인용되다보니 맥락이 매끄럽지 못한 느낌도 남습니다. 저자가 골라낸 주제어는 문화청소, 사기와 선전전으로 포장된 테러, 정복과 혁명, 갈등을 일으키는 분할, 그리고 재건 등입니다.

 

집단 간의 충돌은 대체적으로 종교적 이념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문화파괴행위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실용을 강조했던 시기에조차 라이벌의 종교적인 건축 유산을 파괴하는 쪽이었다. 반면 이슬람교는 비록 일관적이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믿음이 없는 자’들의 교회를 다루는데서 좀 더 유연했으며 파괴하기 보다는 모스크로 개조하는 쪽을 택했다.(27쪽)” 이슬람의 이런 관념은 바로 스페인의 코르도바 메스키타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785년 건축이 시작된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로마인과 서고트인들이 세웠던 교회에 지은 이슬람 사원인데, 메카의 사원양식을 고집하지 않고 교회의 주춧돌과 기둥, 건축양식까지 고스란히 이용하여 전형적인 교회 평면구조의 회교사원인 새로운 칼리프양식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김희곤 지음, 스페인은 건축이다 138-146쪽, 다산북스, 2014년; http://blog.joins.com/yang412/13381380).

 

물론 탈레반이 저지른 바미안석불의 파괴행위와 같이 완벽할 정도로 실효적이지는 못하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그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고 보존하여 후손에 물려주도록 하자는 진화된 문화유산의 보호개념은 계몽주의 시대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기념물이나 건축물은 쓸모를 잃으면 파괴되거나 대체 또는 개조되었던 것인데, 특히 자신의 전통이 아닌 문화유산까지도 존중해야 한다는 관념은 거의 계몽주의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건축물이 파괴되거나 무시되고, 내가 사랑할 수 없는 건축물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는 존 러스킨은 ‘건축은 성스러운 기억의 요체이자 수호자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건축이 역사가 되도록 하고,지나간 시대의 건축을 가장 귀중한 유산으로 보존할 의무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존 러스킨 지음, 건축의 일곱 등불 231쪽, 마로니에북스 펴냄, 2012년 http://blog.joins.com/yang412/13284036) 앞서 유엔의 「집단 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한 것은 탈레반이 예고하고 실행에 옮긴 바미안석불의 파괴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응방안이 마련되지 못ㅎ라고 결국은 석불이 파괴되고 말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미안석불의 사례처럼 국제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세르비아 반군에 의한 두브로브니크 포격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서구 언론은 세르비아 반군의 두브로보니크 포격을 세계의 집단 건축유산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고 포격을 멈추라고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얻었던 것입니다. 다만 두브로브니크에 들어서 있는 후기 르네상스건축물들이 서구인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같은 기간 동안 벌어진 발칸반도 일원에서 벌어진 이슬람유산의 파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미온적인 반응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반응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서구인들의 뿌리 깊은 문화적 근시안 또는 적대감 탓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파괴된 문화유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 역시 뜨겁습니다. 저자는 “재건은 그 재건을 가져온 파괴만큼이나 상징적이다. 건설은 파괴된 건축 환경을 이어 붙이거나 예전 삶의 결을 하나로 엮는 데 사용된다. 집단기억에는 새로운 시금석이 놓인다. 한때 비인도적인 기념물, 곧 일상의 예배 장소와 도서관과 분수였던 것은 재건을 통해 파괴를 야기한 사건을 떠올리는 의도적인 기념물이 된다. 역사는 어깨 너머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간다.(309쪽)”라고 재건의 의미를 새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질문화를 파괴해 망각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재건은 특히나 의심스럽다.’라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러스킨은 “복원은 건물에 가해질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파괴를 의미한다. 어떤 잔여물도 거두어들일 수 없는 파괴다. 더불어 파괴된 작품에 대해서 거짓된 묘사를 하는 것과 같다.(존 러스킨 지음, 건축의 일곱 등불 249쪽)”라고 하여, 파괴된 건축물의 재건에 대하여 부정적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진실을 표방하는 역사가 유산에 자리를 빼앗기는 사례가 너무 잦다’라고 지적한 역사학자 데이비드 로웬덜역시, 유산은 ‘이미 지나간 신념에 바치는 맹세이며 과거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자부심은 유산의 부작용이 아닌 근본인 목표’라고 하여 건축의 재건을 이용하거나 남용하는 이들을 경계하기도 합니다(315-316쪽). 저자 역시 “재건을 통해 건축물을 구조하는 임무에는 파괴 이후의 관습과 공식적으로 인정된 역사에 부합하는 거짓 기억을 이식할 위험이 존재한다. 재건된 역사는 그것이 위조된 것일때도 과거의 진본 기록으로 읽힐 수 있다.(324쪽)”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이 여전히 당면하고 있는 위기상황을 정리한 저자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건물을 세운 사람은 사라지고 없다 해도 죽은 건물은 사어(死語)처럼 슬픈 웅변이 될 수 있다. 파괴된 건물은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조각된 석조 칸막이와 목재 파편에 뒤섞여 포차 공동묘지에 묻힌 보스니아 무슬림의 고통을 대변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의 유산에서 발전한 공동의 세계유산이라는 관념은 물론이거니와 평등과 정의와 이성이라는 계몽주의의 가치와 객관적인 역에 대한 열망까지 위험에 처했다. 분쟁의 한복판에서 보호에 대한 약속이 헌신짝처럼 버려진 20세기의 역사가 21세기에 또다시 되풀이될지 아닐지는 다음 몇 년 안에 판가름이 날 것이다.(369쪽)”

 

저자가 핵심적으로 인용한 사례들은 주로 현재진행형인 것들이지만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문화청소행위에 대한 기록들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저지른 문화말살 정책을 저자에게 설명할 기회를 만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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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길을 가라
로랑 구넬 지음, 박명숙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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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는 ‘한 우물을 파라’는 것을 일생의 금과옥조로 받들어왔습니다. 심지어는 잘 못 선택한 길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을 가면 삶을 망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괴로움을 감내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생각 때문에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은 상황이라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전환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첫 번 결정이 어렵지 두 번째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보지 못한 길이 정말 아름다운지는 가보아야 알 수 있는 노릇입니다.

 

<가고 싶은 길을 가라>는 바로 삶이 안개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분에게 좋은 울림이 될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신경언어학 프로그래밍과 코칭 전문가로서 정신적 자기계발을 연구하는 저자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답을 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고 싶은 길을 가라>는 인도의 발리에서 만난 현자로부터 얻은 조언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라는 것으로 정리될 것 같습니다. ‘내면의 나와’, ‘(나의) 꿈과’, ‘두려움과’, ‘선택과’ 그리고 ‘(나의) 행복과’ 마주서 고민해보라는 것입니다. 각각을 주제로 삼은 이유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나에 대해 가장 무지한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에 내면의 나와 마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꿈을 이루면, 난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되므로’ 꿈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패달을 계속 밟고 있는 한 넘어지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하여 두려움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며, ‘우리가 선택한 일들이 우리 삶의 내용이므로’ 선택과 마주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디스 무엇을 하든 행복하기 위하여’ 행복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편을 잡고 있는 프랑스인 줄리앙은 여름휴가를 즐기려 찾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현자라고 불리는 치료사 샴탕를 소개받게 된 것 같습니다. 특별히 아픈 적도 없을 정도로 건강했다는데 왜 치료사가 등장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찾아간 샴탕선생의 진찰을 받으면서 왼쪽 새끼발가락에서 격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치료사는 줄리앙에게 ‘당신은 불행한 사람입니다.(20쪽)’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문제가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고 지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치료사와의 면담을 이어가게 됩니다. 치료사는 줄리앙에게 숙제를 내주고, 그 숙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픈 곳을 치료하는 치료사로부터 마음을 치료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줄리앙은 헷갈리게 되지만, 질병에 대한 서양과 동양의 인식에 차이가 있다는 설명을 듣고서 이해가 되는 듯 합니다. 즉, ‘서양에서는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요. 하지만 우리 동양에서는 두 가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일관성 있는 하나의 실체를 이룬다고 믿습니다.(43쪽)’ 사실 우리나라의 전통의학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만 실제적으로는 약제나 침술과 같은 침습적 치료행위를 주로 제공하는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줄리앙은 샴탕선생과의 만남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에게는 몸 전체에서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에너지와 자신만의 특별한 아우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치료사는 ‘믿음’에 큰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믿으면, 그 믿음이 행동할 때 선택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은 다른 이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믿음이 더 강화되는 결과를 낳습니다.(70쪽)” 즉 믿음이 선순환을 촉발해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치료사는 다양한 과학적 자료들을 귀띔해주는데, 심지어는 약제의 효능시험에 나오는 플라시보 효과가 심리적 믿음의 효과로 삼십퍼센트에 달하는 치유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는 사실도 일깨우고 있습니다.

 

옮긴이는 이 책을 읽은 분들이 각자 내 마음의 주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곧, 어떤 ‘선택’을 하는 주체가 나 자신이라는 의미이며, 그런 나 자신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232쪽)”라고 적었습니다. 스스로를 믿는 사람은 남의 탓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되라’는 조언을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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