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처벌 나남신서 29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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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금년에는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송사(訟事)와 관련된 일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올린 글내용에 포함된 사진이 지적재산권을 침해했으니 송사로 번지기 전에 관련 이미지를 구매하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피해정도를 입증할 자료와 적절한 배상규모를 제시해달라는 답변을 보냈는데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황입니다. 업무적으로는 신의료기술을 개발한 업체가 적절한 행정절차를 생략하고 판매한 진단기술에 대하여 심평원이 환수조처를 했는데, 해당 병원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하거나 자문을 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모두 법이 정한 기준을 위반해서 생긴 일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기준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를 살피는 일과 기준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한 처벌을 부과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폭증하고 있는 기준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항들은 자율에 맡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 기준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잘 전파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다면 계도차원에서 처벌을 면제하기도 합니다. 국민건강보험제도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의료서비스가 적절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심평원에서 일하다보니 관련기관에서 심평원을 오직 감시하고 처벌하는 기능만 가지고 있는 기관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계기가 되어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게 되었고, 몇 가지 느낀 점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광기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9772557>와 <지식의 고고학;  http://blog.joins.com/yang412/12912054>으로 만나본 적이 있는 미셀 푸코는 구조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철학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2년 전에 [북소리]에서 <지식의 고고학>을 소개하면서 우리사회가 푸코의 사상에 대하여 오해를 해온 점이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흔히 좌파적 경향이 있다고 알려진 푸코는 오히려 진보주의적 정서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고, 오로지 인간의 주체성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기획하신 분은 ‘역자 서문’을 먼저 읽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아마도 어려운 책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가 “근대적 정신과 새로운 사법권력과의 상관적인 역사를 밝히는 것(52쪽)”을 목표로 이 책을 썼다고 한 것을 두고, 이 책을 번역하신 오생근교수님은 “감옥, 죄수복, 쇠사슬, 처형장 등의 물질적인 형태뿐 아니라 범죄, 형벌, 재판, 법률 등의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푸코는 감옥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감옥과 감시체제를 통한 권력의 정체와 전략을 파헤친 것(6쪽)”이라고 요약하였습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의 역사를 정리하는데 있어 앙시앵 레짐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하던 잔인한 신체형이 강도를 낮추어가게 되는 과정과 처벌중심에서 훈육과 규범화된 규제로 대체하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감시를 강화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근대들어 처벌의 중심이 되고 있는 감옥의 운영에 관하여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글머리에서 인용하고 있는 1757년 3월 2일에 있었던 다미엥의 처형장면은 앙시앵 레짐의 시대에 벌어지던 처벌이 얼마나 끔찍했는가를 알게 해줍니다. “상기한 호송차로 그레브 광장에 옮겨진 다음, 그곳에 설치될 처형대 위에서 가슴, 팔, 넓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그 오른손은 국왕을 살해하려 했을 때의 단도를 잡게 한 채,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쇠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 버린다.(23쪽)”

 

이와 같은 끔찍한 처벌은 다중이 모인 자리에서 이루어졌는데, 신체적 형벌을 가하는데 일정한 기준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형벌은 평가하고, 비교하고, 등급을 정할 수 있는, 어떤 분량의 고통을 만들어내야 한다. 둘째, 고통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규칙이 수반된다. 셋째, 신체형은 일종의 의식을 구성한다. 그 의식에는 형벌의 희생자를 불명예스러운 인간으로 만들어야 하며, 만인에게 사법 측의 승리로 보여야 한다는 두 가지 요청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즉 처벌은 공정한 판단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로 인하여 범죄자가 받는 끔찍한 고통이 일반인에게는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억압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중대하고 잔혹한 사형을 내릴 만한 범죄를 본보기로 삼아 처벌하는 일이야말로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위한 것(79쪽)”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개적 형벌의 집행에 포함되는 과정으로는, 첫째, 죄인은 스스로 유죄임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하도록 하였습니다. 둘째, 자백을 반복하게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자백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셋째, 신체형을 범죄와 연결시키는데, 범죄당시의 상황을 재현토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까지 이어진 공개적 형태의 신체형이 중단된 것은 상황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처형장면을 보기 위하여 모여드는 군중은 양의적(兩意的) 역할을 가지는데, 처벌과정을 지켜보면서 두려움을 품도록 하는 목적으로 초대된 민중은 처벌을 보증하는 입회인이 되기도 했던 까닭에 어느 정도까지는 처벌행위에 관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군중은 범죄자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심지어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 정도가 지나쳐 범죄자를 보호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 경우에 사람들은 사법당국에 격렬하게 항의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민중의 의식이 깨어감에 따라 구경꾼으로 동원된 민중이 권력의 처벌을 거부하는 상황도 생겼다고 합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처형을 방해하고, 사형집행인의 손에서 사형수를 탈취하고, 폭력에 의존하여 죄인의 사면을 얻어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형집행인을 공격하고, 재판관을 매도하고, 판결에 대해 큰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는 것(105쪽)”입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형수가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하여 민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에는 오히려 권력이 농락당하고 죄인이 영웅시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형벌을 완화시켜 범죄에 적합한 것으로 해야 한다. 사형은 살인범에게만 부과해야 한다. 인간성에 위배되는 신체형은 폐지해야 한다.”라는 입장이 나오게 된 것은, 처형의 폭력성이 권력의 정당한 행사를 넘어서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개혁자들은 사회집단 전체를 통해 일반화될 수 있고,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처벌수단을 다음 여섯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마련하였습니다. 1. 분량의 최소화 법칙, 2. 관념성 충족의 법칙, 3. 측면적 효과의 법칙, 4. 완벽한 확실성의 법칙, 5. 보편적 진실의 법칙, 6. 최상의 특성화 법칙, 등입니다. 이 법칙들은 범죄로 인하여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이익을 상쇄할 수 있는 처벌효과로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범죄행위에 대하여 징벌적 효과를 기대하던 사법체계가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변화하면서 규율을 학습함으로써 징벌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규율은 신체를 통제하여 권력에 순종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규율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하여 시간과 공간에 따라 개인을 분할하는 기술이 필요하였습니다. 규율은 통제하는 신체로부터 네 가지 성격이 구비된 개체성을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공간배분의 작용에 의해서) 독방 중심적이고, (활동의 규범화에 의해서) 유기적이며, (시간의 축적에 의해서는) 생성적이며, (여러 가지 힘을 조립하는 점으로는) 결합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263쪽)”라고 합니다. 규율이 적용되는 대표적 집단은 군대입니다. 그밖에도 수도원, 학교, 구빈원 등이 있는데, 병원 역시 규율이 적용되는 대상이라고 해서 열심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병원이 강력한 규율을 요구하는 장소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페스트를 비롯한 전염병의 유행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환자격리 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도시에 페스트가 발생하면 우선 엄격한 공간적 분할이라는 행정조치를 내려 그 도시와 지방의 봉쇄는 물론이고, 그곳에서 나가는 것을 금지하며, 이를 위반하면 사형에 처하는 것입니다. 40일간의 검역기간이 끝날 때까지, “폐쇄되고, 세분되고, 모든 면에서 감시받는 이 공간에서 개인들은 고정된 자리에서 꼼짝 못하고, 아무리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통제되며, 모든 사건들이 기록되고, 끊임없는 기록 작업이 중심부와 주변부를 연결시키고, 권력은 끊임없는 위계질서의 형상으로 완벽하게 행사되고, 개인은 줄곧 기록되고 검사되며, 생존자, 병자, 사망자로 구별된다. 이러한 모든 것이 규율 중심적 장치의 충실한 모형을 만든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에 대응하는 방법이 질서이고, 질서는 모든 혼란을 정리해 주는 기능을 갖는다.(306쪽)”라고 했습니다. 개인의 일탈된 행동이 집단을 위기로 빠트릴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였기에 불편을 감수하였을 것입니다.

 

최근 페스트에 버금갈 정도로 위험한 전염병인 에볼라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하여 국제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보건의료전문가가 보이는 행태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에볼라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구호활동을 하던 의료진이 매개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구호활동에 나선 의료인이 감염되면 본국으로 후송시켜 치료하게 되는데, 치료과정에서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이 새로 감염되기도 하고,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에볼라환자와 접촉한 사람이 귀국한 다음 잠복기 동안 격리되지 않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전파하여서 발생한 것입니다(중앙일보 2014년 19월 25일자 기사. “뉴욕에도 에볼라 환자 … 접촉한 3명 격리 조치”; http://blog.joins.com/yang412/13534487).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의무격리가 인권을 침해한다면서 법적대응에 나선 의료인도 있다고 합니다(세계일보 2014년 10월 28일자 기사, “의무격리 논란, 美 간호사 입원 3일 만에 집으로”; http://blog.joins.com/yang412/13536130) 멕시코에서 시작된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해열제를 먹고 공항검색을 빠져나왔다고 자랑하던 사람의 무용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자신 때문에 검역체계가 무너지면 참혹한 상황을 빚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하고 답답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는 잠시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으로 다수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페스트에 감염된 도시의 사례에서 검역을 강화하기 위한 조처에 대하여 저자는 ‘죽음을 초래하는 질병에 대해 권력은 끊임없는 죽음의 위협으로 대처하였다’라고 비판하고, ‘중요한 것은 사회의 여러 역량을 강화시키는 일이다(321쪽)’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재앙이 될 수도 있는 급성 전염병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검역체계에 대한 일반의 인식수준은 오히려 근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저자의 주장이 공허한 울림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페스트의 사례처럼 극단적으로 봉쇄적인 규율이 있는가 하면, 메카니즘으로서의 규율이 있다고 했습니다. 권력의 행사를 보다 신속하고 경쾌하게, 그리고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면서 그것을 개선해나가는 하나의 기능적 장치이고, 미래의 사회를 위한 교묘한 강제권의 구상인 것입니다. 규율의 기능적인 전환을 통하여 규율구조를 확산시키고, 규율의 메커니즘의 국가관리를 통하여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것인데, 모두에서 말씀드린 심평원의 기능과 역할이 이러한 메커니즘에 따르는 사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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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세계사 1 -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피의 백작부인까지, 우아하고 잔혹한 유럽 역사 이야기 풍경이 있는 역사 1
이주은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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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선택과목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옛날에는 국사나 세계사도 대입시험에서 한몫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무슨 공부이든 시험을 대비한 공부는 재미가 없기 마련입니다. 특히 연대표에 따라서 나열되는 정사의 경우는 사건이 어느 해에 일어났는가가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정사보다는 더 재미있는 야사에 빠져들곤 했는지도 모릅니다. 최근 이베리아반도를 여행하면서 조형진 가이드가 이 지역을 다스리던 왕국이 어떻게 명멸했는지 설명하는 것을 듣고는 이 지역의 역사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유럽의 역사는 왕족끼리의 결혼에 의하여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관심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스캔들 세계사>는 블로그를 통해서 유럽의 역사를 딱딱하지 않게 정사와 야사를 섞어서 흥미롭게 적어온 이야기들을 묶어낸 그야말로 말랑말랑한 유럽의 옛날이야기 모음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저자가 머리말에 적은 것처럼 “역사 교과서에는 수많은 왕조가 세워졌다 무너지고 종교가 뒤바뀌고 신대륙에 도착하는 등 굵직한 사건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전쟁과 협정, 동맹과 침략 등 거대한 사건들 속에서 개개인은 배경에 불과하기 일쑤입니다.(5쪽)” 저자는 역사적 사건에 파묻히는 개인의 사연이 더 흥미롭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들의 삶을 나름대로 조명해보려 했다고 합니다. 이런 저자의 생각은 때로는 감정이 지나쳐 객관적이지 못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이 또한 역사를 해석하는 나름대로의 시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 22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윌리엄1세와 마틸다 왕비, 런던탑에 동물원이 세워진 이야기, 에드워드5세의 행방불명에 관한 사연, 그 유명한 헨리8세와 그 왕비이야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정체에 관한 논란 등 지역적으로는 영국이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제가 이베리아 반도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포르투갈왕국의 페드루 1세와 이녜스 데 카스트루의 불멸의 사랑과 카스티야 왕국의 후아나 여왕의 상처뿐인 사랑이야기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왕가의 결혼은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목표를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결혼이 행복하지 못하면 전쟁을 피할 수 없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포르투갈과 가까운 카스티야-레온 왕국 역시 혼인으로 동맹을 맺지만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었고, 포르투갈의 아폰수4세는 후계가인 페드루 왕자를 카스티야의 공주인 콘스탄세와 결혼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콘스탄세의 말동무로 따라온 사촌 이녜스 데 카스트루에게 페드루왕자의 마음이 기울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폰수4세는 이녜스를 처형하기에 이르지만, 나중에 왕위에 오른 페드루는 죽은 이녜스의 시신을 치장시켜 같이 왕비로 즉위토록 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이쯤 되면 페드루의 정신상태를 감정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페드루는 결혼하지 않았고, 사후에 이녜스와 함께 알코바카 성당에 나란히 안치되었다고 합니다. 성경말씀대로 심판의 날에 부활할 것이라 믿었다는 것입니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는 불멸의 사랑, 영원한 러브스토리로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다고 합니다만, 글쎄요.....

 

스페인 중부에 있었던 카스티야왕국의 후아나 여왕의 불행한 삶 역시 많은 예술가들이 다루는 소재라고 합니다. 후아나는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을 몰아낸 카스티아의 이사벨라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디난도 2세왕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얼굴도 보지 않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군요. 어려서부터 아주 총명했던 후아나는 아름답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열여섯의 나이에 부르고뉴 공국의 펠리페공작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펠리페공작이 너무 잘 생겼고 바람둥이였는데, 후아나는 집착이 강하고 질투가 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벨라여왕이 죽은 다음에 후아나가 카스티아의 왕위를 물려받게 되자 아버지 페르디난도 2세왕과 남편 펠리페공작이 카스티야를 차지하기 위하여 암투를 벌이기 시작했던 것인데, 안타깝게도 펠리페공작이 갑자기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후아나는 펠리페공작의 시신을 그라나다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후아나가 시체와 사랑을 나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후아나로 부터 왕국을 빼앗기 위해서 벌인 음모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후아나로 부터 권력을 빼앗고 그녀를 성에 가두었는데,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도 후아나의 아들 카를로스가 아라곤과 카스티야를 섭정하면서 어머니를 풀어주지 않는 바람에 46년간 성에 유폐된 생활을 해야 했다고 하니, 세상에 남편은 물론이고, 부모나 자식도 믿을게 하나 없더라는 이야기가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닌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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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
박소정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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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작가적 상상을 무한하게 펼쳐낼 수 있는 공간이 역사 속에 널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한복을 입은 남자>에서도 작가는 측우기와 자격루와 같이 당대로서는 획기적인 발명품을 만들어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영실이 어느 시점부터는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데 착안해서 장영실이 정화함대에 동승하여 로마에까지 흘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자신의 과학적 업적을 이어가게 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있습니다.

 

젊고 감성이 넘치는 박소정 작가님은 약재를 관리하는 내의원과 궁궐의 의복을 제조하고 재물과 장신구를 관리하는 상의원에 향장(香匠)이라는 직책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들 중 누군가 조향사(調香士)를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소설로 엮어냈다고 합니다. 후각에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주인공 수연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병자호란을 거쳐 연경에 볼모로 잡혀가는 세자와 봉림대군의 일행에 포함되어 조향에 눈을 뜨게 될 뿐 아니라 봉림대군과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안배하고 있는 점도 돋보입니다.

 

하지만 작가적 상상력이 지나치다 싶은 점도 없지 않은데, 봉림대군과의 우연한 첫 만남이 나주의 어느 객주에서 이루어진다는 설정은 당시 대군이 지방까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수연이 동래에서 나주로 그리고 한성으로 사는 곳을 옮기고 있는데, 상민이 거처를 이토록 쉽게 옮길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 남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야기가 물 흐르듯 하도록 설정을 그리한 것이라면 그만이지만, 역사물의 경우 고증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궁안에서 죽은 후궁이나 군왕의 시신을 궐 밖으로 빼돌리는 일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 인조에서 효종에 이르는 시기이지만, 이야기 내용은 지극히 현대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기생인 어머니를 두고 떠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밉다고 칭얼거리는 수연에게 어머니가 해준 말입니다. “사랑은 종잡을 수 없는 거야. 그러니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마음의 소리만을 듣거라(19쪽)” 어린 수연이 사랑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코는 안 막아?’라고 다시 물었다는 것입니다.

 

향기가 중요한 주제가 되기 때문이겠지만, 다양한 화초를 비롯하여 향을 내는 물건들에 대하여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사실을 많이 깨닫게 된 것은 책읽기의 부수입이 되었습니다. 궁중이 무대가 되는 역사물에서는 권력싸움과 사랑이 복잡하게 엮여야 재미가 더한 것처럼 젊은 시절을 마음을 주었던 단과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되는 봉림대군-나중에는 왕위에 오르게 되고, 효종으로 추존되는 정연 그리고 단을 마음에 두게 된 서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수연이 죽음을 맞게 되고, 정연과 단 그리고 서향의 도움으로 죽음을 가장하여 궐을 빠져나가게 되고 나중에는 정연까지도 궐을 버린다는 설정입니다. 사실 삶의 목표를 북벌에 두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종기 때문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고 있는 효종께서 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린다는 설정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는 말씀도 빠트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수연만을 뒤쫓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영화를 보듯 등장인물에 따라서 장면을 수시로 바꾸고 있는데, 상황의 변화를 속속들이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이어지는 상황을 단속적으로 설명하기도 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도 합니다. 사약의 부작용으로 실명한 수연이 조향을 위하여 들꽃을 꺽는 순간, 그녀를 끌어안는 누군가가 입은 측백향을 맡으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보니 서양에서는 향수를 뿌린다고 하지 않고 입는다고 표현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조선의 역사에서 향장(香匠)이라는 색다른 직업군을 발굴하여 이야기를 엮어낸 작가의 독특한 시각이 놀랍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고증의 문제는 잠시 미루어둔다면 재미있게 읽히는 한 편의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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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캘리그라피 - 모슬렘 아이덴티티와 아름다움
이희숙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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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이베리아 반도와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이슬람 건축물을 포함한 다양한 문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세밀하면서도 정교하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지만, 이슬람 문화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어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없었습니다. 아랍문자 역시 전혀 해독할 수 없으니 기묘하다는 느낌 정도만 남았을 뿐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아랍문화에 대한 자료를 검토하면서 이희숙박사님의 <이슬람 캘리그라피>를 만나게 된 것은 참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위키백과에서 “캘리그래피(영어: calligraphy, 그리스어: κάλλος kallos ‘아름다움’ + 그리스어: γραφή graphẽ ‘쓰기’)는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을 뜻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캘리그래피는 14~16세기 북부 이탈리아의 서풍을 이어받아 처음 시작했고, 영국의 에드워드 존스턴(Edward Johnston)이 이를 부흥시켰고, 기욤 아뽈리네르가 캘리그래피라는 용어을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중국에는 왕휘지 필체가 유명하고, 우리에게는 추사체가 유명하듯 문자를 아름답게 꾸며 써는 기술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즈음에는 워드를 사용하려다 보면 다양한 필체를 쉽게 적용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필체를 특별하게 고안하는 것도 쉽지 않았겠지만, 이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여 익혀야 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슬람 캘리그라피>에서 이슬람세계와 아랍문화, 그리고 이슬람 캘리그라피의 역사적 흐름을 정리하고, 이어서 현대에서는 이슬람 캘리그라피를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쿠웨이트에서 진행한 연구자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함마드에 의하여 창시된 이슬람은 알라를 유일신으로 하는 종교로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전한 알라의 말씀을 기록한 코란과 예언자의 말인 하디스를 사리아, 즉 거룩한 법으로 삼아 모슬렘-이슬람을 믿는 사람들 - 개인과 공공의 실제 생활을 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의 한 입구에는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신앙고백을 의미하는 샤하다, 기도를 의미하는 살라트, 순례를 의미하는 하지, 금식을 의미하는 소움 그리고 자선 헌금을 의미하는 자카트가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라고 합니다. 코란이 이슬람 캘리그라피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코란을 책으로 발간하고, 새로운 문체와 장식으로 발전시켜 모스크의 미나레와 아치 등에 새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초기 이슬람 문서에 나타난 캘리그라피는 체계적이며 모뉴멘탈하고 기하학적인 쿠픽문자와 평시 사용되는 흘림 글씨나 속기에 사용되는 곡선적인 나식문자가 있다고 합니다. 9세기 후 20여개 이상의 초서 문체가 있었지만 부침을 거듭하여 다양한 모양의 초서체가 남아 전해내려왔다고 하는데, 저자는 대표적 초서체의 발전과정과 그 모양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씨이면서도 예술적 향기가 넘치는 그래픽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슬람에서 캘리그라피의 중요성은 코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장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17쪽)’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코란의 68장은 ‘펜으로 그들이 쓴 것...(33쪽)’이라는 문구로 시작되며 96장에는 ‘하나님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을 펜으로 가르치신 분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캘리그라피는 이슬람 건축에서 중요한 장식 요소로 발전하게 되는데,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에도 아름다운 쿠픽과 여러 문체의 캘리그라피가 아라베스크와 기하학적 모티브가 얽힌 밴드렐리프로 모자이크에 새겨졌다고 합니다. 특히 알람브라의 모든 벽에는 ‘하나님이 없이는 승리도 없다’라는 문장이 새겨졌다고 합니다. 캘리그라피는 기하와 아라베스크와 함께 이슬람 오너먼트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동지중해지역에 자라는 아칸투스와 바인 스코롤에 기원을 두는 아라베스크의 기본 특징은 계속된 한 줄기에서 갈라지는 대신, 한 특수 식물이 어떤 방향으로 서로 성장하는 기하학적 패턴이라고 합니다. 기하는 틀짜기, 채우기 그리고 연결하기라는 세 가지 기능으로 구성되어(125쪽), 미적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노린다고 합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이슬람 예술에 대한 나스르의 다음과 같은 표현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 예술은.... 신성한 책, 코란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구현시키는 캘리그라피의 형태에 결합하고, 기하와 꽃패턴을 이용해서 물질을 고상하게 만드는 한 방법이다.(126쪽)”

 

저자는 역사적 유물에 남아있는 캘리그라피는 물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캘리그라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어 생소한 이슬람 캘리그라피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생소한 이슬람문화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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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즈음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퓨전 사극 <비밀의 문>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역사는 불변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새롭게 발굴되는 자료가 기존의 정설을 뒤엎기도 하고, 기존의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재해석의 범위가 지나쳐 역사를 왜곡한다는 우려를 낳기도 합니다. 특히나 역사학의 범주가 아니라 흥미본위의 드라마 혹은 영화의 경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KBS에서 PD로 활동하면서 숱한 히트 프로그램을 연출하였고, 영화에서도 히트작을 냈을 뿐 아니라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한 이상훈 작가님의 <한복 입은 남자>는 중세 역사를 새롭게 써야 할 가능성을 던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물론 충분한 근거가 뒷받침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세종시대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과, 중국 명나라 시절에 대항해시대를 연 정화, 그리고 이탈리아의 천재적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론의 시작은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였고, 다빈치의 비행기와 다연발 로케트의 스케치가 조선의 비차와 신기전과 흡사하다는 내용이나, 세종실록에서 홀연히 사라지는 장영실에 대한 기록, 명나라 정화의 마지막 대항해에 대한 미스터리 등을 기본 조각으로 하고, 그 사이에 빠져 있는 그림들을 채울 퍼즐조각은 혹시 존재할 수도 있는 가상의 기록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실의 이야기는 미스터리한 면이 강하다는 느낌이 들고 과거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다큐PD를 중심으로 현존하는 퍼즐조각과 가상의 기록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다룬 현재의 이야기와 재구성된 자료를 토대로 한 과거의 주인공들, 즉 장영실, 정화 그리고 다빈치가 연결되는 과정을 다른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책읽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작가는 장장 10여년에 걸쳐 역사적 자료를 빈틈없이 준비하고 충분한 고증을 거쳤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직은 추론 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장영실이 세계의 르네상스에 영감을 불어넣었을 위대한 천재 과학자였을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절대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허구가 아닌 것이다. 500여 년의 시공간을 뛰어 넘어 역사 저 건너편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쳤을 뿐이다.(520쪽)”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로마 교황청이 중심이 되어 신을 모시는 일이 우선인 유럽과 신으로부터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받아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이 우선인 동양의 철학적 차이를 장영실을 통해서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너는 나에게 배운 지식을 더욱 발전시켜서 과학과 기술이 세계를 지배하도록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신을 위한 세상이 아닌 사람을 위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본주의다. 과학과 기술이 인본, 즉 사람이 중심이 되어 백성을 편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보낸 조선의 임금의 뜻이자 또한 나의 뜻이다.(438쪽)” 그리고 보니 세종의 통치철학은 르네상스시대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 역사에 남아 있는 정화의 대항해는 아프리카까지 진출하고서 7차로 중단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정화가 로마에 나타났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정화의 선단이 로마에 가는 길에 장영실이 동행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놓고 있는 것이며, 유럽보다 먼저 제작된 정화의 세계지도가 유럽의 항해가들에게 전해서 지중해를 벗어나 먼 바다로 나서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정화를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포르투갈의 왕이 바스코 다 가마를 내보내 정화의 항로를 거슬러 올라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하기에 이르렀고, 정화의 세계지도는 컬럼버스와 미젤란으로 하여 대서양을 건너 동양에 닿을 수 있고, 세계일주가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부피는 만만치 않습니다만, 방송과 영화를 통하여 이야기를 재미있게 버무려온 작가의 날렵한 솜씨 덕분에 단숨에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저 측우기와 자격루를 발명했다고만 알고 있는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다시 조명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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