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에서 만난 단원 - 김홍도의 제자가 되어 그림 여행을 떠나다
한해영 지음 / 시공아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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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제자가 되어 그림 여행을 떠나다’라는 독특한 부제도 그렇고, <저잣거리에서 만난 단원>이라는 제목도 심상치 않습니다. 어떻게 200년을 거슬러 올라가 1806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단원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이야기는 미술관에서 열린 ‘큐레이터와의 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한 우리의 주인공이 전(傳) 김홍도의 <부벽루연회도>의 설명을 들으면서 시작합니다. 안내를 맡은 큐레이터가 참가자들을 쥐락펴락하면서 그림으로 빠져들게 하고, 주인공은 그림 속 인물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림 속의 인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주인공은 미술관으로부터 사라지게 됩니다. 프롤로그를 ‘그림으로 들어가며’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으로 한 것처럼 그림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200여년을 거슬러 광화문통에 떨어진 주인공은 단원과 조우를 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단원이 이미 누군가 미래로부터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너무 놀라지 말게나. 자네가 온다는 연통은 미리 받았네.(29쪽)” 어떻게 가능했을까하는 궁금증을 저자는 외면하지 않고 뒤에서 설명하는 자세함까지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최근에 읽은 <너에게 닿는 거리, 17년; http://blog.joins.com/yang412/13550283>에서처럼 타임슬립을 매개로 하여 단원 김홍도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를 들어본다는 내용입니다.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민준이 시공간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처럼 우리 주인공은 단원이 이끄는대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면서 단원의 작품에 등장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작품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http://blog.joins.com/yang412/=13488647>을 읽으면서 한국화를 감상하는 법에 눈을 뜨기는 했습니다만, <저잣거리에서 만난 단원>은 전체로서의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부벽루연회>를 설명하는 것처럼 그림을 구성하는 세밀한 부분까지 들여다보면서 당시 사회상을 추론하기도 합니다만, <씨름>을 설명하면서 제시하는 속화(俗畵)의 놀라운 의미를 짚기도 합니다. 즉 단원은 <씨름>에서 평민이 양반을 제압하는 순간을 그려냈는데, 그 이유는 실력으로만 상대를 제압하는 씨름을 통하여 양반과 평민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다는 것이고, “보는 이와 그리는 이의 마음이 합쳐야 비로소 그림이 진가를 발휘하는 법(35쪽)”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웃음을 방편으로 한 속화를 그리게 된 것은 양반은 체면 때문에, 백성들은 끼니 때문에 웃을 새가 없어 긴장감이 팽팽한 웃음 없는 조선사회에 그림을 통하여 웃음을 찾아주려 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나아가 ‘속화를 통하여 서민의 일상에서 익살과 해학을 잡아낸 것인데, (백성의) 고단한 삶을 고단하게 그려서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하기보다는 웃음을 일으켜 삶에 새로운 시작을 제시했다(66쪽)’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페르소나라는 용어나, 단원이 언급하는 코쟁이들이 쓰는 말이라거나 하는 내용을 조금 앞서가는 것 아닌가 싶어 아슬아슬하다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씨름>에서 시작한 단원으로부터 직접(?) 듣는 작품해설은 <무동>, <서당>, <타작>, <빨래터>, <군선도>, <성하부전도>에 이르기까지 주로 속화를 중심으로 하여 저잣거리를 누비고 있습니다.

 

<군선도>에서 암시한 신선의 세계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마포에서 쪽배를 타고 금강에 이르는 일이 가능할까요? 어떻거나 금강으로 가는 길에 <선상관매도>, <도담삼봉>, <범급전산도>, <묵죽도>, <총석정도>, <소림명월도>, <주부자시의도>, <협접도> 등을 살펴봅니다. <명경대>, <창명낭화도>를 통하여 금강에 가는 방법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바로 선계의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곳에 눈 앞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단원은 이미 선인이었던 것입니다. ‘선인은 지혜와 사랑과 의지를 두루 갖춘 존재이며, 깨달음을 얻어 우주의 일부가 된 이들로, 선인이 지상에 인간의 몸을 가지고 내려와 선계의 법을 전하고 돌아간다.(136쪽)’라는 선교(仙敎)의 사상을 전하기도 합니다.

 

이제 저자는 <영원암>, <송하선인취생도>, <진주담>, <표훈사>, <은선대십이폭>, <효운동>, <구룡연>, <만물초> 등, 정조임금의 명을 받들어 금강산으로 가서 선화를 그리게 된 배경과 ‘천하절경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형상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선화그리는 법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결국 단원은 그림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였지만, 달이 차면 기울고 꽃은 피면 진다는 평범한 진리대로 말년이 그리 호사스럽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다만, “세상에 남겨진 선화가 너희의 진화를 도울 것이다!(249”라는 속내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저자께서 지나치게 앞서간 것은 아닐 듯 싶기도 합니다.

 

‘그림에서 나오며’라는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나무꾼이 산속에서 선인들이 바둑 두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돌아와보니 도끼자루가 썩을 만큼 긴 시간이 흘렀더라는 고사에서 힌트를 얻어 ‘그림 속 세상’을 구경할 생각이 들었음을 비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꿈은 세상을 넓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꿈이 널리 세상에 펼쳐지기를 같이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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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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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낙눈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고는 우산을 챙겨 출근했습니다. 가끔은 맞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겨울철에 운전을 하다가 생명이 오갈 정도의 사고를 두 차례나 당하고서는 눈이 내린다고 하면 외출을 삼가는 편입니다. 그런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날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인지 궁금해서 읽어보게 된 것입니다. 요즘 같은 겨울에 읽기 딱 좋겠다싶었습니다. 윤대녕의 <대설주의보>는 7편의 단편소설을 담은 소설집입니다. 표제작은 ‘대설주의보’는 최승호시인의 시집 <대설주의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제설차 한 대 올리 없는 산골에 소낙눈이 쏟아지는 정경을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 놓을 듯 /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이라고 표현하면서도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이라고 마무리하는 것으로 198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담아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날, 윤수와 해란이 차량통행마저 끊긴 백담사로 향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행히 해란은 백담사에 먼저 도착했지만, 조금 늦게 버스를 탄 윤수는 원통에서 그만 발이 묶입니다. 원통에서 길을 모색하면서 해란과의 만남을 돌아보게 됩니다. 취재차 찼았다는 일본 돗토리현의 사구에서 윤수가 목격한 일본인들의 모습이 충격적입니다. “사구 끝에서 일군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을 목격했어. 저마다 삿갓에 베옷을 입고 지팡이를 든 노인들이었지. 그들은 그림자처럼 묵묵히 해변을 따라 걷고 있었어. 저마다 얼굴을 감춘 채 말이야. (…) 옛날 일본인들은 죽음이 가까워지면 대개 여행을 떠났다고 해. 그중 한 부류는 벚꽃이 필 때 남쪽에서부터 열도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는 거야. 벚꽃을 따라 벚꽃이 질 때까지 말이야. (…) 또 한 부류는 베옷을 입고 죽음이 찾아오는 바로 그 순간까지 무작정 걷는 거야. (…) 마치 죽음에 입문하듯이 말이야.(89쪽)”

 

그 여행을 마치고 공황 상태에 빠진 윤수를 위하여 친구가 미팅을 주선했고, 두 쌍은 식당을 거쳐 노래방까지 갔다고 헤어지면서 다시 연락을 해도 좋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렇게 만난 해란을 자기 집으로 데러가 재우고 해장국까지 끓여주면서 두 사람은 1년 가까이 만나다가 처음 만날 때 자리를 같이 했던 해란의 친구가 끼어들면서 오해가 생겨 헤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헤어진 해란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해란을 이날 백담사에서 만나기로 한 사연이 담백하게 그려지게 되고, 여관을 잡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던 윤수는 기억의 흐름이 여기까지 미치면서 11시경에 여관문을 나서 백담사로 향합니다. 웃돈을 얹어주면서 백담사까지 가자고 사정을 해서 말입니다. 20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 걸려 백담사입구에 도착한 윤수는 눈덮인 산길 6킬로를 걸어서 올라갈 차비를 합니다. 어떤 절박함이 윤수를 이렇게 몰고 가는지... 그리고 해란 역시 스님을 졸라 차를 몰고 산을 내려오다 중간에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작가께서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실려 있는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사랑이 개입되어 엮여지는 관계임에도 때로는 이들의 관계가 적절한가?하는 의문에,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까지 생기게 됩니다. 하긴 교과서적인 평범한 삶이었다면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보리’의 주인공 수경은 남자친구가 소개한 유부남과 일종의 계약 같은 사랑을 하다가 암을 얻으면서 관계를 정리하게 되고, ‘풀밭 위의 점심’은 대학시절 만난 두 남자와 한 여자의 교차하는 사랑이야기를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을 모티프로 하여 그리고 있습니다.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 역시 삼촌과 조카가 한 여자와 나누는 엇갈린 사랑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생의 불가항력에 직면한 인물들을 통해 생의 불가항력에 시달린 삶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삶은 끝내 숭고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라고 출판사에서는 요약하고 있습니다만, 불가항력적인 사랑이었다는 등장인물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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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성의 소리영어 Plus - 영어를 우리말처럼 선명하게 듣는 가장 확실한 방법
윤재성 지음 / 스토리3.0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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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중앙일보에서 영유아 영어교육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찬반이 팽팽하지만, 주입식교육보다는 문화로 놀이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는데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영어를 공부해왔지만 지금도 제대로 말하거나 듣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기에 앞서 영어 말하기와 듣기를 집중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처음 학원의 초급 회화반에 등록하였을 때 자기 소개도 제대로 못해 쩔쩔 매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창피할 지경입니다.

 

제 사정이 그러면서 초등학교 입학하는 큰 아이는 따로 영어공부를 시키지 않고 데려가서 입학을 시켰습니다. 학교 수업 이외에 ESL반 수업을 병행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눈치였지만, 몇 달 만에 ESL수업을 마칠 정도 빠르게 적응했던 것 같습니다. 발음도 미국 아이들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빠의 콩글리시를 은근히 낮추어보는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모든 일을 나서서 해결해야 했으니 저도 답답할 노릇이었습니다.

 

<윤재성의 소리영어>는 저처럼 나이 들어 영어로 듣고 말해야 하는 사정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저도 미국행을 앞두고 미국 영화 빌어다보고 매일 밤 <투나잇쇼>를 시청하기도 했지만, 들리는 것은 더디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방법은 같았지만 반복해서 들어야 빨리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차를 운전할 때는 영어방송을 주로 듣습니다. 영어듣기도 결국은 아는 만큼 들리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듣는 원리를 깨치게 되면 알지 못하는 내용까지도 잘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인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해야 할 말은 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시작은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상대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없으면 대화를 이어갈 수 없더라는 것을 금새 깨닫게 됩니다. 말하는 것은 문법이 조금 틀려도 강약고저를 제대로 붙여 말하면 잘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커피마시는 곳에서 만난 친구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코리아에서 왔다고 말했는데 전혀 알아듣지 못하다가 스펠을 붙여주었더니 “아하, 코.리아?”라고 ‘리’에 강세를 두고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코’에다 강세를 두고 밋밋하게 이어 발음하니 못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독(不如一讀)’입니다. <윤재성의 소리영어>는 장황한 듯 하지만, 제가 미국에 공부하러 다녀오면서 느꼈던 영어로 듣고 말하기에 대한 고민과 깨달음의 핵심을 짚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국인 영어실력이 1만 시간을 투자해도 안되는 이유’로부터, ‘영어를 익히는 유일한 방법은 선명한 영어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과, ‘모국어를 습득하듯 글이 아닌 소리로 영어를 익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훈련을 해서 영어를 잘 듣게 된 사람들의 체험담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30개의 문장을 가지고 하는 실전 트레이닝으로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앞서 영어조기교육에 대한 기사를 소개드렸습니다만, 저자는 영어로 말하기를 배우는데 적기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필요할 때 배우면 된다는 것인데, 필요한 만큼 집중이 잘되어 학습효과가 높다는 것입니다. 해외연수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만, 그곳에서 한국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려 우리말로 대화를 하다보면 영어가 늘 리가 없습니다. 저 역시 근무하던 곳에서도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모두 떠나고 나서야 미국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영어가 늘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영어로 듣고 말하기’의 핵심이 되는 3단계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는 영어소리를 선명하게 듣고 똑같이 흉내내라, 2단계는 뉴스, 드라마, 영화의 소리를 듣고 최대한 흡수하라, 3단계는 머릿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크게 소리 내어 영어로 말하라. 저의 경험으로 보아서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훈련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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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밤
세사르 비달 지음, 정창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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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밤>을 읽게 된 배경은 스페인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과 세익스피어의 유언장에 담긴 비밀을 다루고 있다는 해설 때문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스페인에서 전개되지 않을까 싶었지지만, 전적으로 영국을 무대로 한 작품입니다.

 

저자 세사르 비달은 마드리드에서 출생하여 법학을 전공한 다음, 역사학, 철학, 신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며, 역사분야의 학술서와 역사적 사실과 자료에 기반을 둔 장르소설을 발표해왔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저작이 많은데도 2008년에 우리말로 옮긴 <폭풍의 밤>이 유일하게 국내에서 소개되어 있는 듯합니다.

 

영국, 아니 세계적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들은 많이 읽었고 무대에 올려진 작품들도 여러 편 감상했을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작업에도 참여한 적이 있지만, 그의 삶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폭풍의 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에서 따온 제목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유언장을 토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분석하여 셰익스피어의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졌음직한 이야기로 꾸며냈습니다. 놀라운 작가적 상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햄릿>에서 등장하는 실존하지 않은 인물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 알게 된 셰익스피어의 유언장 내용은 누가 보아도 의문을 품을 것 같습니다. 1564년 4월 26일일 태어난 셰익스피어는 18세가 되던 해에 26세인 앤 해서웨이와 혼인했고, 1583년 5월 23일에 딸 수잔나(Susanna)가 그리고 1585년에는 쌍둥이인 햄닛(Hamnet)과 주디스(Judith)가 태어났는데, 셰익스피어는 곧장 고향을 떠났고 행적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1590년경에야 런던에 나타났고 이때부터 배우, 극작가, 극장 주주로 활동하다가 1616년 4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햄닛은 어려서 죽었고, 유족으로는 아내 헤서웨이와 수잔나 그리고 주디스 그리고 큰 사위인 내과의사 존 홀과 포도주(葡萄酒) 제조업자인 작은 사위 토마스 퀸네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셰익스피어의 유언장에는 셰익스피어가 소유했던 대부분의 유산을 큰 딸 수잔나에게 상속하면서 그녀가 낳을 첫 아들에게 상속시키라고 되어 있었지만, 당시 법으로도 상속받을 권리가 있었던 아내에게는 ‘나의 두 번째 좋은 침대’만을 물려준다고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폭풍의 밤>의 작가 세사르 비달은 그저 의문을 품은데 그치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그 해답을 구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는 셰익스피어가 죽은 뒤 열흘 째가 되는 1616년 4월 25일 평생토록 해왔던 남편에 대하여 치를 떠는 앤 헤서웨이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유언장이 공개되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그 장소에는 아내 헤서웨이, 큰 딸 부부, 작은 딸 부부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여동생, 그리고 검은색 상복을 입은 남자가 셋, 그리고 푸른색 옷차림에 붉은 깃털로 장식한 노랑 모자를 쓴 복부가 비대한 사내가 모여있습니다. 푸른색 옷차림의 사내는 독특한 모습이지요? 그 사람이 지나칠 때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는 수잔나의 생각을 놓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유언장의 내용은 앞서 말씀드린 내용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저주를 들으면서 수잔나 역시 차갑고 오싹한 땀이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하느님에게 버림받은 자들이 어두컴컴한 지옥에서 겪는 무시무시한 형벌 같은, 우리 모두에게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유언장 낭독이 끝나고 나서 모두가 함께 돌아서는 길에는 무거운 침묵뿐이었다.(33쪽)”라고 분위기를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수잔나는 바로 푸른옷을 입은 남자의 방문을 받고 그날 밤에 자신을 찾아와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유언장이 그렇게 작성될 수밖에 없었던 놀라운 배경을 설명해줍니다. 푸른 옷일 입은 사내의 설명을 듣다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내용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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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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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상품을 고르던 중에 페루를 소개하는 내용에서 로맹 가리의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발견했습니다. ‘새들은 왜 페루에 가서 죽을까?’ ‘그곳에 가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막상 책을 받아들고 보니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표제작으로 모두 열여섯 편의 단편을 묶은 단편소설집입니다. 이야기의 길이는 다양해서 가장 긴 ‘어떤 휴머니스트’가 32쪽에 달하지만, ‘벽-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나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는 각각 10쪽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모든 작품들이 기승전결이 잘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반전은 뒷통수를 때리는 듯합니다.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를 예로 들면, 마르세유 부근에 작은 도시 투샤그에 서 있다는 위대한 탐험가 알베르 메지그의 동상에 관한 이야기는 반전도 모자라서 반전을 업그레이드시키기까지 합니다. 투샤그의 이발사 알베르 메지그는 사랑하는 피송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세계 여행을 떠나고, 가는 곳마다에서 고향사람들, 특히 사랑하는 피송양 앞으로 엽서를 보내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의 경쟁자였던 이발사 피샤르동에게는 “콩고에서 안부를 묻네. 이곳엔 보아 뱀들이 우글거리네. 자네 생각을 하며.(220쪽)”라는 엽서를 보냈는데, 피샤르동은 경쟁자인 메즈그의 동상을 세우는 운동을 벌이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길을 잃었어. 모래 위에 당신 이름을 쓰지. 난 사막이 좋아. 당신 이름을 쓸 자리가 많으니까. 목이 마르지만, 우리는 기운을 잃지 않고 있어. 구원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온다는 걸 여행가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거든. 습도가 높아서 당신 어머님이 고생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는데(221쪽)”라고 적힌 엽서를 받게 되면 어떤 여인이라도 애닯은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들지 않겠습니까? 도시에서는 메지그의 이런 엽서들을 묶어서 <알베르 메지그의 여행과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메지그의 여행은 훌륭한 탐험가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고향 처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떠난 것이라고 알려졌는데, 문제는 세계 어디에서도 그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는 점과 당시의 프랑스 신문 어디에도 그의 행적에 관한 기사가 나온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투샤그 주민들은 그가 에베레스트에 오르다가 산소결핍으로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고 했는데, 정작 그의 행적은 묘한 곳에서 드러나고, 그가 죽음에 이른 원인이 밝혀집니다.

 

‘영웅적 행위에 대해 말하자면’에서는 생텍쥐베리 등을 인용하여 일부러 죽음을 무릅씀으로써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파하는 강연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신사가 그의 논리를 깨기 위하여 강연자를 상어잡이에 초대하고 가상으로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데, 그 상황에서 강연자는 “제아무리 영웅이라도 죽음의 위험에 직면해서는 삶의 항구적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 그런 경우 영웅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사실(235쪽)”을 깨닫게 됩니다. 이 강연자는 다음 번 강연에서 어떤 결론을 내놓게 될까요? 작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훼방꾼의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작품이 유일하게 반전의 충격이 작은 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작품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는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입니다. 코네티컷주 이스트 햄프턴 공항에서 열린 인류의 개척자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환영대회의 장면을 스케치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보이던 상황 스케치는 어느 순간 ‘방사선’이 나오고 ‘가속화된 진화’ 그리고 ‘돌연변이’와 같은 심상치않은 단어가 튀어나오더니 ‘난 파리가 먹고 싶어’라는 아이의 칭얼거림이 나옵니다. 결국 미국과 러시아가 백 메가톤급의 핵폭탄을 터트리면서 시작된 돌연변이는 놀랄 정도로 인류를 개별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입니다. 통제받지 않는 핵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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