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포루스 과학사 - 동서양을 넘나드는 보스포루스 인문학 1
정인경 지음, 강응천 기획 / 다산에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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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다녀온 스페인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같이 일하는 분들과 나누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꽃보다 할배>보다는 조금은 심각해 보이는 이유를 들어서 스페인을 구경하러 갔노라고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판구조론에 따른 지진발생현황자료에서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이 충돌하는 지중해주변에서 화산활동이 많고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이어서 자연스럽게 지중해를 둘러싸고 전개되어온 유럽의 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로 연결하였습니다. 유럽과 이슬람의 만남은 아무래도 도항(渡航)이 쉬운 보스포루스해협과 지브롤터해협을 통하여 주로 이루어져왔을 것입니다.

 

문명과 문명의 만남이 주로 전쟁이라는 파괴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지만 평화가 유지될 때는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발칸반도에서는 최근까지도 인종과 종교의 차이 때문에 충돌을 빚었습니다만, 또 다른 접점 이베리아반도에서는 1492년 기독교 왕국이 이슬람왕국을 축출한 뒤로 아직까지는 대규모 충돌이 일어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이슬람문명과 기독교문명이 서로에게 미친 영향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성품이 자연을 닮아 너그럽고 포용력이 컸던 까닭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스페인으로 가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대륙의 동쪽 끝에 사는 우리는 서쪽 끝에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단편적으로 배운 지식에 머물고 더 나아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최근까지 우리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친 사고체계 때문에 다양한 문명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중립적으로 판단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스페인에서 보고들은 이야기들을 여행칼럼으로 풀어내면서[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http://www.medicaltimes.com], 중세 무렵 이베리아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야기들을 찾아 읽으면서 생각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가기 시작하게 된 것이 저로서는 참 다행입니다.

 

마침 다산에듀에서 ‘동양과 서양의 장벽을 넘어 인문학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통합 교양서’라는 타이틀로 보스포루스 인문학 시리즈를 기획한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 <보스포루스 과학사>를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제게는 행운이었습니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보스포루스해협은 좁은 곳이 200미터에 불과해서 한걸음에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에게 반한 제우스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을 헤라가 눈치를 채자 이오를 암소로 만들었는데, 헤라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이오가 이곳을 건너 도망쳤다고 해서 ‘소가 건넌 해협’이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스포루스 인문학 시리즈를 기획한 강응천 문사철대표는 ‘우리는 오랫동안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는 넘나들 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 생각에 빠져 살아왔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유럽중심의 이데올로기의 산물에 불과하며 동과 서의 역사와 문화는 분명 오랜 옛날부터 수시로 교류하며 서로를 살찌워왔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만 유럽중심의 사고에 대한 반발로 아시아를 턱없이 높여 보려는 태도를 경계하면서 ‘동서양의 병진(竝進)과 교류를 과학, 미술, 문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살펴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철학에서 태동하여 발전해 나온 과학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객관적 관찰과 실험을 통하여 얻는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을 세우는 학문으로 정의합니다. 따라서 과학적 사실은 절대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관찰과 실험의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지면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의 영역에서도 변화해온 과정을 뒤쫓는 학문이 과학사입니다. 즉, ‘과학사(科學史)는 자연세계에서 인류의 역사적 발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정의되는 것입니다.

 

<보스포루스 과학사>의 저자 정인경박사는 ‘과학은 인간이 만든 언어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지구에 출현했을 때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게 되었는데, 그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과학을 창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럽문명이 그리스 철학에서 과학을 발전시켜온 것처럼 역사적으로 각 문명권은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과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근대들어 독보적인 발전을 이룩한 서양과학에 압도되어 개별 문명에서 발전시켜온 과학의 역사조차 도태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앎이 삶을 바꾼 수많은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부단히 자연에 부딪히면서 이해하고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냄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이용된 과학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고, 기술은 실용적 목적으로 개발한 도구라고 한다면, 결국 인간은 과학과 기술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기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근대 이후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는 기술문명을 받아들이기에도 벅찼던 우리는 과학을 앎으로서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다고 비판합니다. 과학과 우리의 삶을 연결하여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얄팍한 우리의 과학사적 인식은 서양과학의 성취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이 문제였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흐름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꿰뚫고, 인간 스스로 세계를 앎으로서 삶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었다는 통찰을 얻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스포루스 과학사>는 각각 ‘인류의 탄생과 문명의 발흥’,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세의 과학과 기술’, ‘과학혁명, 유럽의 지식과 야망’, ‘인간을 닮은 현대 과학기술’이라는 제목으로 된,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탄생과 문명의 발흥’에서는 고생물학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여 인류가 어떻게 지구상에 출현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그리고 황허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출현한 4대 문명에 중앙아메리카의 마야문명과 남아메리카의 잉카문명을 더하고 있습니다. 각 문명이 독립적으로 문자를 고안해서 사용하였다는 것을 중요한 이유로 보았습니다. 지역적으로 씨앗이 뿌려진 고대문명이 어디에서는 대약진을 하고 어디에서는 소멸하고 말았는가 하는 점에서는 기술이 학문으로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문명이 그리스문명으로 전해지면서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발전의 토대를 갖추게 되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문명 역시 나름대로의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기술발전이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문명의 자연철학이 우주의 근원물질로 물, 불, 흙, 공기와 같은 물질을 제시한 것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물질이 아닌 기를 만물의 근원으로 보았다는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기술은 유럽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인류의 4대 발명품이라고 하는 종이, 나침반, 화약, 인쇄술은 모두 고대 중국에서 발명되었는데, 종이제작 기술이 1500년 뒤에 유럽에 전해진 것을 비롯하여 지진계는 1700년이나 앞서고 대부분의 중국의 발명품은 유럽보다 1000년 이상 앞서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럽문명과 아시아문명 사이의 엄청난 격차가 생기게 된 이유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세의 과학기술’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스 학자들에 의하여 도약한 다양한 학문들은 로마로 건너가게 되지만 그리스학문을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로마가 국교로 삼은 기독교의 영향이 있습니다. 즉 과학의 발전은 기독교의 교리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그리스 학자들의 연구성과들이 멸실되거나 수도원의 비밀도서관에 숨겨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문명이 이룩한 빛나는 성과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에 인접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이슬람문명이 그리스문명을 계승하여 보전한 것은 물론, 인도와 중국에서 발전해온 성과들을 받아들여 진전을 이룩한 것입니다. 이슬람문명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근대에 들어 이룩한 과학혁명을 통하여 주도권을 쥐게 된 서양의 과학사학자들이 ‘과학기술의 주도권은 늘 유럽이 가지고 있었다’라는 유럽중심적 시각으로 세계과학사를 써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유럽이 고대 그리스학문을 계승하여 근대과학을 출현시킬 수 있었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일부 유럽의 역사학계에서 유럽의 중세를 암흑기가 아니라 고대의 문명으로부터 근대의 발전을 준비하기 위한 휴식기였다는 해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윤용수교수는 역사의 발전과정에는 잉태기와 성장기, 발전기와 쇠퇴기를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당한 측면도 있겠으나, 인류문명의 발달은 어느 한 순간도 중단된 적이 없고, 유럽이 인류문명의 무대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인류문명의 주역은 아랍인이었으니, 이들이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유럽문명이 암흑의 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지중해지역원 지음, 지중해 문명의 다중성 27쪽, 이담출판사, 2010년; http://blog.joins.com/yang412/13570031)

7세기 이후 아라비아반도에서 출현한 이슬람문명은 동쪽으로는 인도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서쪽으로는 북부아프리카를 넘어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하여 오랫동안 지배하면서 학문의 꽃을 피웠고, 빠르게 영토를 확장하면서 편입시킨 다양한 문명들을 녹여 새로운 경지로 발전시켜온 업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문명은 때마침 전해진 종이제작기술을 바탕으로 유용한 지식을 모아 번역하고 출판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특히 그리스문헌의 가치를 알아본 칼리프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그리스의 학문적 성과를 대부분 아랍어로 번역하여 각 지역의 도서관에 소장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후기 우마이야왕조의 수도였던 코르도바에는 도서관이 70여 곳에 이르렀고, 수십만 권의 장서를 소장한 곳도 여러 곳이었다고 합니다.

 

인류의 과학문명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이슬람문명은 분명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짚은 저자는 중국과 조선에서 일어났던 과학의 발전과정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세종조에 이룩한 천문, 과학, 의학, 언어 분야에서의 발전을 괄목할만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과가 이어지지 못한 것은 세종의 통치행위의 하나로 주도한 과학기술이 궤도에 올라 사회가 안정되면서 그 동력이 사라진 것이 원인이라는 해석입니다.

 

오랜 기간 암흑에 갇혀있는 유럽의 문명이 르네상스를 맞아 활기를 띄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아시아에서 전해진 종이, 화약, 나침반 등의 기술은 로마가 무너진 다음 할거하던 지방영주들 간의 전쟁을 통하여 빠르게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과학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리스에서 시작한 자연의 탐구는 자연을 명상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자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유용한 지식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결국 과학은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으로 과학혁명이 일어나게 되었음에도 동아시아에서는 반향이 크지 않았던 것은 유럽의 학문이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하여 선별적으로 전달되면서 유럽 학문을 낮추어 보는 경향이 생겼던 것도 원인이 되었고, 당시 동아시아의 우주론과 자연인식체계에서는 무엇이 우주의 중심인가는 큰 문제가 될 수 없었던 것도 기여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현대의 과학기술이 제국주의에 봉사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적시하면서 이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과학기술이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답을 구하려면 과학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과학사 공부를 통하여, 과학과 기술에 대한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문제의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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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일상과 축제 지중해 국가정보 시리즈 2
지중해지역원 지음 / 이담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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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오사카에서 열린 학회에 갔을 때 마침 지역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구경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부러 축제에 참가하기 위한 경우가 아니면 외국을 여행하면서 축제를 볼 수 있다면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번에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10월 12일 ‘스페인의 날’ 축제가 있었는데, 여행일정이 맞지 않아 마드리드와 살라망카에서 열리는 이 축제를 구경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여행사에서 일정을 맞추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도 조금 담아보았습니다.

 

‘스페인의 날’ 축제 건도 있었고, 세비야를 여행하는 동안 조형진가이드가 세비야지역의 축제 이야기를 소개한 적도 있어 스페인의 축제에 관한 것을 알라보기 위하여 고른 <지중해의 일상과 축제>입니다.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의 축제를 망라하다보니, 유럽쪽으로는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터키 그리고 이스라엘의 축제와 이슬람 공통의 축제를 따로 소개하였습니다. 각 지역의 축제는 해당 지역에서 머물면서 박사과정을 밟으신 분들께서 나누어 정리하신 것이라서 축제를 직접 체험하실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중해 지역의 축제들 가운데는 해외특파원 보고, 혹은 요즈음 유행인 세계여행 안내 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이미 본 적이 있는 것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900m 정도의 거리를 투우소에게 쫓겨 달리는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 발렌시아 인근 부뇰에서 백만개에 달하는 토마토를 서로 던지는 토마토축제 등이 있습니다. 세비야에서 가이드가 소개한 것처럼 부활절이 끝난 일주일 후부터 일주일 동안 열리는 세비야축제는 스페인의 4대축제 중 하나인데, 사순절 기간 동안의 기독교적 제한에서 풀려나 일상으로 돌아오며, 새봄을 맞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가 곁들여져 있다고 합니다. 축제 기간 중에 플라멩코를 입은 여성들은 세비야나를 추면서 축제를 즐긴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축제 가운데 종교축제일은 주현절에 관한 내용 가운데 아기예수가 탄생하였을 때 찾아

왔다는 세 명의 동방박사 가운데 발타쟈르(Baltazar)라는 이름이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스페인에서 우리와 내내 함께 했던 포르투갈 출신 버스기사가 바로 발타사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5일째 말라가지역에 있는 론다를 구경하고 스페인 가이드이 귀곡산장이라고 부르는 라 시에라호텔에서 묵은 다음날 버스에 타면서 발타사르에세 아침인사를 하려고 스마트폰에 저장해놓은 포르투갈 인사말을 찾으려다가 폰을 숙소에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날 발타사르 아저씨는 저에게는 동방박사였던 것입니다.

 

프랑스 축제를 정리한 장니나박사는 프랑스의 축제를 색깔로 표현하였는데, 다음 구절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파란 지중해라는 바다를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축제 양상은 남프랑스의 자연을 닮은 흙, 돌, 파스텔톤 건축물과 함께 푸른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이러한 축제의 모습 속에 내재해 있는 빛은 우리에게 과거 선조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삶을 배우며 현대를 살아가는 분주함에 여유로운 느림의 미학을 선물해주는 고마운 휴식이라고 생각된다.(68쪽)” 온통 떠들썩하고 분주한 우리네 지역축제와는 비교되는 점이 있는 것 같아 더욱 인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아 무슬림의 축제에 관한 내용 가운데 수니파와 시아파가 나뉘게 되는 배경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즉 무함마드 사후에 아부 바크르, 오마르, 오스만에 이어 칼리프에 오르게 된 알리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가 되며 따라서 알 리가 적법한 무함마드의 계승자라고 보고, 그를 1대 이맘으로 섬기게 되는 이슬람들이 시아파로 분류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반하여 수니파는 이슬람 부족들의 대표들 가운데 선출되는 칼리프가 무함마드의 정치적, 종교적 위치를 승계하는 전통을 고수하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이 책을 기획한 분들은 “각 지역 및 민족의 일상과 축제는 삶이 주는 기쁨과 고단함을 함께 노정하면서,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와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라고 보고 지중해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일상과 축제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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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문명의 다중성 - 교류와 갈등의 어울림 지중해지역원 인문총서
윤용수 외 지음 / 이담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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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같이 근무하시는 분들과 공유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물론 12박13일의 여정을 단 1시간으로 압축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강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기 위하여 가급적이면 많은 자료를 읽어보려 노력해왔습니다. 부산외대의 지중해지역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 성과를 일반이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하여 발표하고 있는 책들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윤용수교수님을 비롯한 7분의 교수님들께서 나누어 쓰신 <지중해 문명의 다중성>에서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등 삼개 대륙에서 피고 진 문명이 서로 부딪치고 스며들면서 만들어낸 결과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앎이 많이 부족한 고대 그리스와 카르타고의 갈등에서부터 가톨릭과 이슬람의 충돌, 그리고 레바논을 중심으로 한 현대의 갈등까지도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메카와 메디나에서 시작한 이슬람이 어떤 경로로 스페인까지 흘러들었을까, 그리고 시대별로 등장하는 왕조의 흥망성쇠에 대하여도 궁금했습니다. 윤용수교수님은 이슬람문명의 시작단계에서부터 갈등과 분화과정을 간략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정리하였습니다. 무함마드 사후에 칼리프시대를 거쳐 우마이야왕조, 압바시야왕조로 이행하면서 우마이야왕조에서 살아남은 왕족이 멀리 스페인까지 달아나 후우마이야왕조를 세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단시간에 동으로는 인도에서 서로는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대한 영토를 차지한 이슬람왕국은 전체 영토를 다스릴 수 있는 행정체제를 갖추지 못하였고, 지역별로 중앙왕국과 연계된 지역왕국을 용인하는 체제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다보니 지역의 왕국 역시 세월이 흐르면서 흥하고 망하기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슬람이 차지한 광대한 영토 안에서는 다양한 문명이 명멸하면서 남겨둔 지적 유산이 풍부하게 존재하였는데, 유목을 기반으로 하는 아랍민족의 특성상 이들 문명을 탄압하기보다는 품어 안아 새로운 문명으로 발전시키는 쪽으로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859년에 모로코의 페즈에 세계 최초의 대학 카이라완대학을 설립하였고, 970년에는 이집트 카이로에 알 아즈하르 대학을 세웠던 것으로 알 수 있고, 곳곳에 도서관을 설립하여 책자들을 수집하여 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에서 학문에 대한 이슬람의 갈증을 대표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변변한 문명 혹은 문화랄 것이 없었던 중세 유럽에서는 관심을 두지 안았던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을 새로운 해석한 결과까지 전달하는 역할을 이슬람 문명이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대에 지중해에서 충돌했던 로마와 카르타고의 대결이 로마가 아닌 카르타고의 승리로 끝났더라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하는 점을 모색하고 있는 최자영교수님의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카르타고와 로마의 패권 다툼에서 로마가 아니라 카르타고가 승리했더라면, 로마 대신 카르타고의 패권이 지중해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카르타고가 가지고 있었던 소규모 도시국가, 시민이 갖는 자유의 원리가 여전히 획일적인 군국주의, 의무, 법, 질서를 대신하여 지중해 세계에 존속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76쪽)” 존재하지 않은 가상의 역사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할까요?

 

임주인교수님의 ‘스페인 문학에 나타난 이단성’도 관심이 가는 글입니다. 이베리아 반도에는 이슬람, 유대교 그리고 가톨릭이 부딪히거나 공존하면서 살아온 역사가 있습니다. 이슬람이 이베리아반도에 이르게 된 것은 앞서 윤용수교수님께서 정리를 해주셨지만,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베리아반도로 이동한 경로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대교와 이슬람은 그 뿌리가 아브라함에 닿고 있어 공통의 조상을 두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서로 개종을 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지역에서 이슬람과 가톨릭 그리고 유대교가 함께 어우려져 살아가던 시기의 문화를 무데하리스모 문화라고 부르는데, 이 문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차이 속에서 공존과 화해의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날이 갈수록 민족간, 심지어는 같은 민족끼리도 지역적 차이로 인하여 갈등이 첨예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해결방안을 도출해낼 수 있는 무엇이 이곳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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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4-12-1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4 서재의 달인이 되신 걸 축하드려요. ^^

처음처럼 2014-12-19 23: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꼼쥐님....
저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네요...
요즘 한해를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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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주연으로 혹은 조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벌써 10년도 넘었습니다만, 짐 캐리가 주연으로 나오고 모건 프리먼이 하느님으로 나오는 톰 새디악감독 영화 <부르스 올마이티>는 코믹한 가운데 전지전능하신 힘을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하느님을 소재로 한 이야기도 시대에 따라서 진화하는 것 같습니다.

 

개구쟁이처럼 생긴 신세대 유머작가 사이먼 리치는 하느님이 우주라는 기업을 일구는 CEO로 나오고 죽어서 천국에 오른 사람들이 이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하는 <천국 주식회사>를 그려냈습니다. 천국 주식회사의 직원들도 지구별에 있는 회사처럼 천차만별인 것 같습니다. 맡은 일에 충실한 일중독인 천사가 있는가 하면 CEO의 기분을 맞추는데 관심이 많은 천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이 무엇인지 헷갈릴만도 합니다. 결국 그 기준이라는 것이 나중에 드러나기도 합니다. 물수제비뜨기를 일곱 번 성공시킬 수 있는 남자, 다섯 번 성공시킬 수 있는 여자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착함보다는 객관적이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세상에나....

 

하느님도 지구별 사람들이 열심히 올리는 기도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자신을 띄워주는 소리에만 관심이 있고, 카레이싱, 프로운동경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 이기도록 조작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실제로 천사들도 기대했던 것보다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일이 어렵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죠. 컴퓨터에 의하여 조정되는 인간사에 개입하는 무수한 요인들을 조금씩 움직여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마저도 쉽지 않기 때문에 매달 기적을 많이 일으킨 천사를 포상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전에 근무하던 부서에서 지구별 사람들이 보내는 엄청난 양의 기도를 분류하는 체계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이런 일을 하는 기적부에 새로 전입해온 천사 일라이자는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하느님이 사람들의 기도를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들어주지도 않을 기도를 분류하는데 힘을 쏟았는지 억울해서가 아니라 정작 간절한 기도를 들어는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저도 지구를 운영하는 게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래도 하느님께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조차 안 하시면,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일을 하실 마음이 없으시다면, 여기 계실 이유가 없지 않나요? 왜 일하러 나오시는 거죠? 계속 그러실 거면 왜 그냥 그만 두진 않으시나요?(72쪽)” 하느님의 답변이 무엇이었을까요? 골프약속을 취소하고 심각하게 고민을 하신 하느님께서 천국주식회사 전 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여보게 사우들이여, 심사숙고 후 나는 천국 주식회사의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오기로 결정했다네. 그동안 무척 즐거운 경험을 했지. 하지만 그만둬야 하는 시점을 알아채는 것도 성공의 일부라네. (…) 지구는 한 달 후에 파괴될 것이네.(74쪽)”

 

정말 엉뚱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만든 세상을 운영하는데 더 이상 흥미가 없다는 이유로 파괴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하느님이 말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없이 다니는 것 같아 보여도 개중에는 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일을 벌인 일라이자는 물론이고 일라이자에게 은근 마음을 두고 있는 크레이그가 나서서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합니다. 하느님과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단 하나도 들어준 적이 없는 기도문들 가운데 어떤 것이라도 골라서 한달 안에 성공하게 되면 지구파괴의 결정을 번복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기도를 들어주기 위하여 매일 10분씩 할애했지만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기적을 이루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인데, 막상 하느님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게임의 결과를 조작하는 일은 간단하게 끝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앞뒤가 맞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크레이그와 일라이자가 고른 기도문은 무엇이고 하느님과의 시합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과까지 적으면 리뷰가 정말 재미없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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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의 현상학과 현대문명 비판 논술.토론의 기초를 닦는 고전읽기 4
이종훈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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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박인철교수님이 정리한 <에드문트 후설; http://blog.joins.com/yang412/13364134>을 읽으면서, 어렵다는 후설의 철학을 비교적 쉽게 풀어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후설의 철학이 난해하다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요? 후설의 철학이 난해하다고 생각되는 이유에 대하여 <후설의 현상학과 현대문명비판>을 옮긴 이종훈교수님은 그가 남긴 방대한 원고의 전모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해온 점과 그가 일정한 철학적 체계를 형성하기보다 부단한 사유실험으로 다양한 문제영역을 분석하면서 발전시켜나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후설이 “이론과 실천, 가치를 포괄하는 보편적 이성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통해 궁극적으로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모든 학문의 타당한 이론과 인간성의 진정한 삶을 정초하려는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 즉 선험적 자아(주관성)을 해명하려는 선험적 현상학의 이념을 일관되게 추구하였다.”라고 요약하였습니다.

 

후설 현상학의 참모습을 온전히 파악하는 길은 ‘그의 저서를 직접 읽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바람직하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저술이 방대하고 대부분 철학 전공자를 위한 강의나 전문지에 발표된 내용이라서 그 내용을 이해하는일이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이 책에 담은 「유럽 인간성의 위기에서 철학」과 「현상학」은 분량이 많지 않고,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거나 백과사전에 명시적으로 규정하기 위하여 간명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버트런드 러셀처럼 후설 역시 수학자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수학자 후설이 철학자로 방향을 바꾼 것은 1884년부터 1886년까지 빈대학에서 브렌타노의 강의를 듣고, 철학도 수학처럼 하나의 엄밀한 학문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수학이 지니는 학문적 엄밀성과 정밀성의 영향을 받은 후설은 철학이 엄밀한 학문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기본적으로 어떤 편견이나 사심에 의해 이끌림 없이, 또한 확증되지 않은 어떠한 전제에도 기반을 두지 않는, 이른바 ‘무전제성의 원리에 부합해야 한다.’라고 보았습니다. 그가 보기에 일상적으로 믿고 있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철학적 지식이 되려면 별도의 철학적 정당화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통이 되어 온 객관주의에 물든 서양철학은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철학의 진정한 방법은 자연과학의 방법에 다름 아니다.’라고 한 브렌타노의 영향과 당시에 막 등장한 심리학에 눈을 뜬 후설은 수학적 개념을 심리적인 작용에 근거해 해명하려고 하였습니다. 1901년에 쓴 <논리연구 II>에서 자신의 철학을 현상학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기술적 심리학’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미 1764년 람베르트의 저서에서 등장하는 ‘현상학’이라는 용어를 가져온 후설은 현상학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현상학은 기술심리학이다. 따라서 인식비판은 본질적으로 심리학이거나 최소한 오직 심리학의 토대위에 구축되어야만 한다.(…) 일체의 이론적-심리학적인 관심을 떠나 인식체험을 단지 순수하게 기술하면서 탐구한 것을 경험적 해명과 발생을 지향하는 본래적인 심리학적인 탐구와 구분하는 것은 인식론적으로 매우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는 인식체험에 대한 순수 기술적 탐구를 기술적 심리학 대신 현상학이라고 말하면 좋을 것이다.(박인철 지음, 에드문트 후설 19~20쪽, 살림출판사, 2013년)”

 

「유럽 인간성의 위기에서 철학」은 1935년 5월 7일과 10일 두 차례에 걸쳐 오스트리아 빈문화협회에서 행한 강연의 내용입니다. 나치정권이 등장하면서 유럽문명에 위기가 닥치고 있음을 인식한 후설은 이러한 위기가 유럽 학문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근원은 자연주의에 의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선 물리학적 객관주의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있는 사실만 다루는 단순한 사실학은 있어야 할 당위의 규범을 다루지 못하는 단순한 사실인만 만들뿐이다”라고 하면서, 철학의 출발점인 그리스적 합리주의로 돌아가 인간의 보편적 기능이자 능력인 자율적 이성을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현대 유럽 문명은 근대 들어서 빠르게 발전한 정밀하고 객관적인 과학이 수학적 언어를 통해 자연을 일관되게 기술하면서 일궈낸 혁명의 결과인데, 이 과정이 심화되면서 수학의 역할이 점차 배제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정신적 작업으로 마무리되어야 할 자연과학의 결과해석과정이 생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일반적으로 모든 학문)은 정신적 작업수행, 즉 공동으로 연구하는 자연과학자들의 정신적 작업수행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과학의 작업수행은 정신과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범주에 속하는데, ‘자연과학’이라는 역사적 산물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려드는 것은 실로 배리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신과학의 연구자들은 자연주의에 맹목적이 된 결과, 보편적이며 순수한 정신과학의 문제를 제기하는 일뿐만 아니라, 정신성의 무조건적으로 보편적인 것을 그 요소들과 법칙들에 따라 추구하는 본질학, 즉 정신을 순수하게 정신으로서 탐구할 본질학에 관해 묻는 일조차 철저히 소홀하게 방치해왔다.(32쪽)”라고 비판했습니다.

 

유럽 정신의 뿌리라고 할 그리스시대에서 사회 환경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태도’가 일어나 체계적으로 완결된 문화형태로 성장하여 새로운 정신적 형성물이 태어났는데, 이를 철학(Philosophi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의 근원적인 의미는 ‘보편적 학문’, 세계 전체에 관한 학문, 즉 모든 존재자의 전체적 통일성에 관한 학문을 뜻하는 것인데, 인접한 문명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하여 더 풍요롭고 더 복잡하게 변화해나가는 힘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 학문인 철학은 어쨌든 그들에게만 특별히 부각된 것이 아니며, 그들과 더불어 비로소 세상에 출현하지도 않았다.’라는 반론이 나왔음을 지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 스스로도 현명한 이집트인과 비빌로니아인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실제로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47쪽)’라고 옹호합니다. 반면 오늘날 유럽은 인도철학이나 중국철학 등을 그리스철학과 동등한 수준에 배치하여 동일한 하나의 문화가 추구하는 이념 속에 넣고 있지만 단순히 다른 역사적 행태로 파악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후설은 세계 전체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실천적 태도와 대립되는 자연성을 변경시킬 수도 있는 이론적 태도 속에서 일어나게 되는 철학적 관조를 통하여 더 높은 단계의 실천을 지향할 수 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행하는 판단중지(Epoche)가 필요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후설이 말하는 판단중지는 세계를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소박한 자연적 태도로 정립한 것의 타당성을 일시 중지해 경험의 영역을 새롭게 보려는 것을 말합니다. “근원적인 관조에서 즉 완전히 ‘무관심하게’ 모든 실천적 관심을 판단중지해 생긴 세계를 바라보는 것에서 학문의 고유한 관조로 변경된 것을 해명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양자는 ‘주관적 의견(doxa)’와 ‘객관적 인식(episteme)’을 대조해봄으로써 매개된다(62쪽)”라고 했습니다.

 

후설은 소크라테스 이래로 정신적 공동체의 생활을 하는 인간은 여전히 객관적 세계의 질서 속에 배치되었지만, 인격, 즉 자아로서 인간은 목적과 목표를 지니며, 영원한 규범인 전통과 진리의 규범을 지니는 존재라고 하였고, 그와 같은 관념은 유럽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맥을 이어왔다고 하였습니다. 근대 이르러 발전한 수학적 자연과학은 능률성, 개연성, 정확성, 계산의 가능성을 지닌 귀납법을 완성해내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 방법의 합리성은 철저하게 상대적인 하나의 학문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단지 ‘주관적인 것’인 직관적으로 주어진 환경세계가 학문의 주제로 되는 가운데 망각되었기 때문에 연구하는 주관 자체도 망각되었고, 과학자 자신도 주제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때 후설이 관심을 가졌던 심리학에 대하여도, 실천적으로 매우 귀중한 경험적 규칙들을 많이 입증해냈지만 도덕의 통계학이 결코 도덕학이 될 수 없듯이, 참된 심리학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정신만 그 자체로 또 그 자체에 대해 스스로 존재하며 자립적이다. 그리고 오직 이 자립성에서만 정신은 참으로 합리적으로, 즉 참되며 그 근본에서 학문적으로 취급될 수 있다.(93쪽)”라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의 의미상 참된 자연은 자연을 탐구하는 정신의 산물이며, 따라서 정신에 관한 학문을 전제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신의 근본적 본질을 지향성 속에서 파악하고, 이것으로부터 무한히 일관되게 정신분석을 구축할 참된 방법을 형성하는 작업은 선험적 현상학으로 이끌어갔고, 선험적 현상학이 유일하게 자연주의적 객관주의와 모든 객관주의 일반을 극복했다(95쪽)”라고 했습니다.

 

정리하면, 유럽 학문의 위기는 합리주의 자체의 본질적 문제라기보다는 합리주의가 외면화된 것, 즉 합리주의가 ‘자연주의’와 ‘객관주의’에 매몰된 것에 있다고 후설은 보았고, 유럽의 현존재의 앞날은 본래의 이성적 삶의 의미에 대립해 소외된 채 유럽이 몰락하고 정신을 적대시해 야만성으로 전락하는 길과 자연주의를 궁극적으로 극복하는 이성의 영웅주의를 통한 철학의 정신에 기초해 유럽이 재생하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영백과사전」의 ‘형상학’ 항목은 1927년부터 후설과 제자 하이데거가 공동으로 집필하다가 견해차가 심해지면서 후설이 독자적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후설은 글머리에서 현상학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현상학’은 19세기말 철학에서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기술하는 방법과 이 방법에 입각해 등장한 아프리오리(apriori; 칸트 이후 ‘경험의 확실성과 필연성에 대한 근거형식’을 뜻한다)한 학문을 일컫는다. 이 학문의 목적은 엄밀한 학문적 철학을 위한 원리적 도구를 제공하고, 이것을 일관되게 실행함으로써 모든 학문을 방법적으로 개혁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105쪽)” 그리고 철학적 현상학에 평행하는 현상학적 심리학이 생겼는데, 오직 이를 기초로 해야만 학문적으로 엄밀한 경험적 심리학이 정초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순수 심리학의 주도적 이념을 정초(定礎)하고 전개하기 위하여 첫째로 심리적인 것에 관한 순수 경험과 이의 반성을 통해 그때그때의 사태, 사고, 가치, 목적, 보조수단 등에 상응하는 주관적 체험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그것들은 우리에게 ‘의식되며’, 가장 넓은 의미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을 ‘현상(Phänomen)’이라 부르며, 이것의 가장 일반적인 본질적 특성은 ‘무엇에 관한 의식’, 즉 그때그때의 사물‘에 관한’, 사고‘에 관한’, 계획․결단․희망 등에 관한, [요컨대[‘무엇에 관한 나타남’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110쪽)” ‘무엇에 관한 나타남’인 존재의 그 근본적 성격을 철학적 용어로 설명한다면 ‘지향성’입니다.

 

“현상학자는 현상학적 반성을 수행함에 있어 반성되지 않은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객관적으로 정립한 것이 함께 수행되는 모든 것을 억제해야만 하며, 이와 동시에 자신에 대해 곧바로 ‘현존하고 있는’ 세계를 판단의 형식으로 끌어들이는 모든 것을 억제해야만 한다.(116쪽)” 즉 현상학자는 철저한 ‘판단중지’가 필요하다.

 

현상학적 순수 심리학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하여 다음 네 가지가 요구된다고 합니다. 1) 지향적 체험 일반의 본질에 속한 특이성을 기술하는 것, 2) 어떤 영혼 속에서 일반적으로 본질적 필연성으로 등장해야만 하거나 등장할 수 있는 지향적 체험의 개별적 형태를 탐구하는 것, 3) 어떤 영혼의 삶 일반의 형태 전체를 제시하고 본질을 기술하는 것, 4) ‘자아’라는 명칭은 그 자아에 속한 ‘습득성’의 본질적 형식들에 관해서 새로운 연구의 방향을 지시하는 것, 등 입니다.

 

후설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아프리오리한 학문들, 즉 선험적 소박함 속에 형성된 학문들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현상학적으로 정초해야만 그러한 학문들을 방법적으로 완전히 정당화되는 진정한 학문으로 별화시킬 수 있다.(148쪽)”라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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