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그림 -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무서운 그림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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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그림인 것 같습니다. 그림을 잘 아는 분의 설명을 들으면 아 그렇구나하면서 새삼 놀라게 됩니다. 그 아는 만큼은 작품의 배경에서부터 그림을 그린 기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림 역시 공부를 많이 해야 그만큼 더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무서운 그림>은 제목이나 부제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인지 집어들었는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무엇을 담고 있었습니다.

 

모두 스무 점의 그림에 담긴 섬뜩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다른 그림들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작품도 있지만, 처음 대하는 그림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림들 가운데는 틴토레토의 <수태고지>에 곁들이고 있는 프라 알젤리코의 <수태고지>, 고야의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뒤즈 호의 뗏목>처럼 직접 보고 기억하는 작품도 있는가 하면, 그림이 걸려 있는 프라도 미술관이나 루브르박물관에서 보지 못했거나 볼 시간이 없었던 그림도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수태고지의 경우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틴토레토의 수태고지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고, 지금도 서울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운보의 성화전시에서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태고지를 그리는데 몇 가지 약속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필수적인 세 가지 요소로는 대천사 가브리엘,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령의 비둘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등에 날개가 달려 있고, 성모마리아는 붉은 색 옷을 입는 경우가 많으며, 비둘기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타고 마리아의 머리 혹은 가슴을 향하는데, 수태의 순간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또한 수태고지의 모습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천사의 방문에 놀라는 마리아, 수태하리라는 말을 듣고는 당혹스러워하는 마리아, 그리고 마침내는 이를 수긍한 순간의 마리아를 이어서 그린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수태고지 역시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운보의 수태고지 역시 한국적으로 해석하여 그린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시간이 없어 챙겨보지 못한 산드로 보티첼리의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면서 안타까운 한편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몰랐기 때문에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네 개의 패널로 그려진 연작의 그림은 단테의 신곡에 빗대어 인곡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었던 소설집 <데카메론>에 나오는 다섯 번째 이야기가 바탕이 된다고 합니다. 신분이 높은 가문의 여인을 사랑한 남자가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귀신들이 벌이는 복수극을 보고서 이를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결혼승락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정말 무서운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그림입니다.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경우는 고야의 그림과 루벤스의 그림이 모두 프라도 미술관에 걸려 있는데, 고야의 그림은 보았지만, 루벤스의 그림은 보지 못했습니다. 어떻든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사투르누스는 그리스신화의 크로노스인데, 카오스에서 태어난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자신의 아들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교접하여 거신 크로노스를 낳았는데, 우라누스의 폭압에 분개한 가이아가 크로노스를 사주해서 우라노스를 거세해 죽이고 신들 위에 군림했습니다. 그런데 크로노스는 우라누스가 마지막 순간에 남긴 “너도 네 자식의 손에 죽을 것이야”라는 말이 거슬려서 누이동생이자 아내였던 레아가 아이를 낳을 때마다 집어삼켜버렸다는 것입니다. 크로노스는 결국 제우스에게 살해를 당하고 마는데, 그때까지 크로노스가 삼켰던 제우스의 형제들을 뱉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야의 그림처럼 아이의 몸뚱이가 으스러지고 있다면 그나마 다시 살아날 희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오리잡 넓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을 보면서도 역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면 분명 무서운 그림 맞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을 혹시 볼 기회가 있다면 저자의 설명을 유념하여 감상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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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죽음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장왕록 옮김 / 책미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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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지난해가 되고 말았습니다만, 스페인 여행길에 투우장에 제일 가깝게 가본 것은 론다입니다. 론다의 느낌을 적는데 아무래도 투우 이야기를 빠트릴 수 없을 것 같아 자료를 찾아보는데 여행작가 박정은씨가 <스페인 소도시 여행>에서 론다를 소개하면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에세이집 <오후의 죽음>을 인용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허니문이나 애인과의 도주가 론다에서 성공할 수 없다면, 파리에 가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 낳다.”(박정은 지음, 스페인 소도시 여행, 151쪽; http://blog.joins.com/yang412/13552146) 고등학교 다닐 무렵, 여름방학을 바쳐서 헤밍웨이전집을 읽어내느라 더위를 잊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헤밍웨이가 투우에 몰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사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투우를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는 하지 못했습니다만, 적어도 투우장 구경을 할 수는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준비가 덜 된 여행이었던 탓에 론다에서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6유로를 내면 투우장과 투우박물관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데, 우리의 가이드도 귀띔을 해주지 않아서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처음 투우를 구경하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생각해봅니다. 헤밍웨이는 “처음으로 투우 구경을 하러 갔을 때, 나는 몸서리를 치게 되리라고 또 아마도 구역질이 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9쪽)”라고 하는데, 저도 그럴까요? 그의 말대로 투우는 확실히 잔인한 구석이 많고, 스스로 구하는 것이건 예측하지 않은 것이건 간에 언제나 위험이 있으며 항상 죽음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헤밍웨이가 투우에 매료된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 죽음이 있기에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폭력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유혈이 낭자하게 펼쳐지는 투우장에서 피에 대한 욕구가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요? 헤밍웨이 역시 자신을 동물과 동일시하는 사람들, 곧 거의 직업적으로 개나 그 밖의 짐승을 애호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쉽사리 동물과 동일시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인간에 대하여 더 심한 잔인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15쪽)”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오후의 죽음>을 ‘투우를 변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투우를 종합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쓴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투우에 관한 모든 것, 투우의 역사에 관련된 다양한 사건들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심지어는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겁에 질린 투우사가 소에게 떠받쳐 나동그라지는 모습을 상세하게 적으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까지 분석하기도 합니다. 가장 볼 만한 투우는 노비야다 투우이고, 그것을 보는데 가장 좋은 곳이 마드리드라는 것도 알려줍니다. 심지어는 투우를 구경하는 자리 가운데 으뜸이 투우사들이 망토를 걸쳐놓는 붉은 나무 울타리, 즉 바레라라는 것도 알려줍니다.

 

그런데 투우를 한번만 구경하려는 사람이라면 바로 론다가 제격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은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가거나 혹은 누구와 함께 도망칠 때 꼭 갈만한 곳이다.’라고 하면서 ‘여기서도 신혼여행이나 사랑의 도피행각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파리로 떠나거나 아마 각기 헤어져 새로운 배필을 구하는 것이 더 좋을 것(62쪽)’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보증수표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박정은 작가께서 헤밍웨이를 조금 오해하신 바가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오후의 죽음>을 읽고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본격적으로 투우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라는 생각은 분명한데, 투우 전문용어를 풀이한 100쪽은 그렇다고 쳐도 원본에 포함되어 있다는 100쪽에 달하는 사진과 설명을 통째로 빠트리는 바람에 투우에 대한 생생한 느낌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더하여 ‘한국 번역문학의 거장, 장왕록 서울대 교수의 번역’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번역 문투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지금 연재하고 있는 스페인 여행기(http://www.medicaltimes.com/Users4/News/NewsList.html?nSection=32)에서는 읽어보실 것을 권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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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차동엽 신부의 생의 찬가
차동엽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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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주간조선은 고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기 전인 1987년 절두산 성당의 박희봉신부에게 보냈다는 ‘존재의 진리에 대한 24가지 질문’에 대한 철학자 김용규의 답변을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24]라는 제목으로 연재하였습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차동엽신부가 그해 초에 출간한 <잊혀진 질문>에서 이병철회장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내놓은 바 있었습니다.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비교해 가면서 읽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 같이 소개합니다. 하지만 종교에 관하여 제가 아는 바가 많지 않기 때문에 피상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김용규는 어떤 과정을 통하여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답을 하게 되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의 절실한 심정이 담겨있음을 깨닫고, “인간적이고 숙명적인 질문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게 옳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차동엽신부는 “예사롭지 않은 질문도 있었지만, 롤러코스터 같은 우리네 삶의 여정에서 무심결에 후렴구로 내뱉는 물음도 꽤 있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질문지를 전해준 분께서 “이런 질문을 곧잘 받곤 하는데, 답을 시원스레 주지 못해 찝찝해한 적이 많습니다. 누군가는 한 번쯤은 통쾌하게 답변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신부님이 해보시는 것은 어떨지요?(5쪽)”라고 권하는 바람에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통쾌한 답변이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김용규는 신문연재라서 거두절미하고 신의 존재에 관한 첫 번째 질문으로 들어가는데 반하여, 차동엽신부는 이병철회장이 굳이 절두산성당으로 질문지를 보낸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140년 전 이곳에서 죽임을 당한 1만명이 넘는 천주교신자들에게 바친다는 소설 <흑산>이 ‘억압과 부자유의 소산’이라고 한 김훈의 절두산에 대한 소회를 인용하였습니다. 나아가 ‘소위 2040세대의 신음은 거칠고, 절망은 깊고, 분노는 격하고, 혼돈은 칠흑이다’라고 전제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을 급습한 문화적․사회적․정치적 지각변동에 대한 묘책을 여론의 표층이 아니라 심층, 즉 인간 존재의 밑바닥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답변을 하는데 있어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김용규는 열한 번째 질문,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1) 기독교(천주교, 개신교), 2) 유태교, 3) 불교, 4) 회교(마호메트교), 5) 유교, 6) 도교’과 열세 번째 질문,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1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에 대한 답변을 유보한 것을 제외하고는 질문 그대로에 대하여 답하고 있습니다. 반면 차동엽신부는 ‘난문쾌답을 위한 구조조정’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질문을 수정 보완했다고 했습니다. 종교 일반이 아니라 천주교 관련 물음들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저술들에서 산발적이나마 다루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독자들더러 찾아서 읽어보라는 느낌이 들어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합니다. 물음의 순서를 바꾸는 것은 시대에 따라서 물음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병철회장의 물음의 행간에 감춰져 있을 ‘처절한’ 물음을 끌어냈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물음을 ‘Big Q’로 하고, 동시대인의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물음을 ‘Real Q'로 표현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15개의 Big Q와 11개의 Real Q로 구조조정을 한 것입니다.

 

설명을 듣다보니 수련을 받던 시절에 본 시험이 생각났습니다.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데 범위가 너무 넓어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아 교수님께 슬쩍 여쭈어보았습니다. 어디쯤을 공부하면 좋을까요? 눈치를 채셨는지 교수님께서는 시쳇말로 센 힌트를 주셨는데, 막상 시험지를 받아놓고 보니 엉뚱한 문제였습니다. 시험지 여백은 넓은데 한 줄을 채우기도 어려웠습니다. 고민 끝에 교수님께서 내셨던 문제를 지우고 힌트를 주셨던 문제를 써놓고 일필휘지로 시험지를 가득 채웠습니다. 다음날 교수님께서 부르시더니 껄껄 웃으시고는 합격을 주셨습니다. 그 옛날이니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차동엽신부의 답변은 이병철회장의 절실하였을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물론 이미 고인이 되신 분께서 답변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고인에 대한 답이라기보다는 같은 의문을 가진 분들에게 공개적으로 주는 답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든 이병철회장의 질문에 대한 두 분의 답변을 비교해가면서 읽어보기로 합니다. 김용규는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시작합니다. 성서에서 하나님이 자신이 무엇인지 밝히는 대목을 인용하였습니다, ‘누구인지’가 아니고 ‘무엇인지’입니다. 호렙산에서 현신한 하나님께 모세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느님이 나를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까.”(출애굽기 3:13)라고 영악하게 물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라고 답했다는데, 고대 신학자들은 이 히브리말을 ‘나는 있는 자다’ 또는 ‘나는 존재다’라고 번역해왔고, 우리말 성경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애굽기 3:14)라고 재번역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신은 존재하는 자이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자, 즉 필멸하는 자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의 모습에 대하여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라고 김용규는 잘라 말합니다. 일찍이 히브리인들이 ‘바람’ 또는 ‘숨결’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을 뜻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든 형체가 있는 것들의 근원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창세기에는 분명,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라고 적고 있는 것은 왜 일까요?

 

차동엽신부는 여덟 번째 Big Q에 ‘이 세상이 신이 있다면 대체 어디에 숨어 있나?’라는 질문에 답을 하였습니다. 함석헌선생의 <도덕경>강의에서 화두를 풀었습니다. 조금 쌩뚱맞아 보이죠?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즉, “도를 도라고 부를 수 있으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으로 부를 수 있으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199-200쪽)” 이 구절에서 차동엽신부는 우리의 지식, 지혜, 언어, 개념이 지닌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신은 개념의 한계를 벗어나는 존재이기 때문에 증명할 수 없다는 답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신은 인간이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분’이라고 설명하는 김용규의 해석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차동엽신부는 노자는 물론 이슬람 성인 라비아 알 아다위야, 20세기 사상가 카를 힐티, 성 아우구스티누스, 베이컨, 중세 신학자 안셀무스, 토마스 아퀴나스, 칸트 등 신학자와 철학자들을 동원하는데 머물지 않고, 생텍쥐베리, 고은, 이어령과 같은 동서양의 문학가까지 동원하여 신의 존재를 논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신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사상을 논하는 강의에서 한 학생이 ‘God is no where!(신은 아무 데도 없다)’라고 적은 것을 다른 학생이 나가 ‘God is now here!(신은 지금 여기에 있다)’라고 바꾸어 강의실 분위기를 반전시켰다는 우스개까지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뒤 학생은 신이 여기 있음을 증명해야 했던 것 아닐까요? 말놀음까지 인용하는 것은 조금 그런 것 같습니다.

 

니체는 <반그리스도교>에서 그리스도교의 문제점으로 “‘신’ ‘영혼’ ‘자아’ ‘정신’ ‘자유의지’ 등과 같은 존재하지도 않은 것을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말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예수의 가르침 중에는 ‘죄와 벌’ ‘보상’의 개념, 즉 신과 인간의 관계를 멀어지게 할 만한 것들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가 죽은 것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실천의 철학을 가르친 셈인데, 정작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시켰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는 <자연신학>에 시계를 정밀한 기계의 대표적인 예로 들어 시계가 제작자가 있어 만들어진 것처럼 자연 역시 신이라고 하는 제작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서 지적설계론을 내세웠습니다만,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 http://blog.joins.com/yang412/12604835>에서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 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리처드 도킨스 지음, 눈먼 시계공 27쪽, 사이언스북스펴냄, 2004년)”라고 반박하면서 지구상의 생물을 진화를 통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우주물리학 역시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설명이 가능한 경지에 이르고 있습니다(크리스 임피 지음,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시공사 펴냄, 2013년;  http://blog.joins.com/yang412/13043832). 과학의 영역을 떠나 자연철학을 전공한 이브 파칼레는 는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http://blog.joins.com/yang412/12894271>에서 천문학을 비롯하여 물리학, 분자 생물학, 진화 생물학, 진화 심리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세월 쌓아올린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우주와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의 논리를 반박하는 데이비드 밀스의 <우주에는 신이 없다; http://blog.joins.com/yang412/12132803>에서는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 믿고 있는 신에 의한 천지창조설이 과학적 견지에서 보면 신화적 혹은 설화적일 뿐이라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근거를 마련할 수 없는 영역은 과학적 설명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설명이 가능한 영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진화론을 비롯하여 우주의 시원에 관한 것들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하여 “신은 불가사의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은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신을 만들었다. 하지만 마침내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를 알게 된다면, 신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며, 더 이상 신은 필요 없다.”라고 한 리처드 파인만의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병철회장이 신의 존재에 관한 질문에서 천지창조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을 인간의 지혜가 미칠 수 있는 한계 밖에 존재하는 자로 정의한 것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 남습니다.

 

천국의 존재에 대하여 두 분은 공히 믿음의 문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천국의 존재에 대한 근거가 없으니 그저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즉 비트겐스타인의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차동엽신부의 경우는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과 사후 천국에 갈 것이라는 믿고 순교하였다는 것을 근거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순교는 순교자의 개인적인 믿음이 바탕이 된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영원한 진리를 위해서만 목숨을 내놓는 법이라고 해도 진리라고 믿었던 것이 진리이기를 희망한 믿음은 아니었을까요? 삶의 고통에 관한 많은 질문들은 그야말로 종교에서 답을 줄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해서 논의 자체를 생략합니다. 종교가 필요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종말에 관하여는 간단하게 답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지구를 오남용함으로써 맞을 수 있는 생태학적 종말이 있을 수도 있고, 일정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우주 현상에 따른 우주적 종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 임피교수의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http://blog.joins.com/yang412/13159055>을 읽어보시면 그 다양한 가능성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평생 종교를 가지지 않았던 이병철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가지게 된 인생에 대한 절실한 질문들은 여전히 질문으로 남아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정리를 해봅니다. 물론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남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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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기회에 집중하는가 - 결단의 승부사, 손정의가 인생에 도전하는 법
미키 타케노부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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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는 위기(危機)를 “어떤 일이 그 진행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악화된 상황, 또는 파국을 맞을 만큼 위험한 고비”라고 설명합니다만, 혹자는 위기(危機)를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병존하는 것이라고 풀기도 합니다. 즉, 위험한 만큼 그 고비를 넘기면 기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야구경기에서 위험한 상황을 잘 넘기면 바로 기회가 생기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기회를 잘 살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다.

 

현재 일본 최고의 재벌인 손정의회장은 재일 한국인 3세로, 그의 할아버지는 도일하여 광산노동자로 일하였고, 아버지는 생선장사와 양돈업 등을 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일본 맥도날드의 CEO 후지타 덴의 조언으로 유학하여 UC 버클리에서 경제와 컴퓨터과학을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대학시절 마이크로칩을 이용한 자동번역기를 개발하였고, 유니손월드라는 사업체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일본으로 귀국하여 스프트웨어 유통업체인 소프트뱅크를 설립하였다. 1996년 야후재팬을 설립하였고, 2001년에는 브로드밴드 사업에 진출, 2004년 일본텔레콤과 프로야구단 다이에호크스 인수, 2006년 보다폰 일본법인을 인수히여 휴대전화사업에 진출, 2008년 애플의 아이폰3G 일본에서 발매하는 등 거침없이 사업을 확장해 일본 재계의 정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기회에 집중하는가>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회장이 위험을 성공으로 바꾸는 28가지의 비결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손정의회장이 직접 쓴 책은 아니고, 26살 때 소프트뱅크에 입사하여 손회장의 수행비서로 활동하면서 직원들을 대신하여 사업 계획을 직접 손회장에게 브리핑하는 등의 업무를 맡다가 프로젝트 메니저로 활동기에 이르렀고, 종국에는 독립하여 일본의 사회발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재팬 플래그십 프로젝트 주식회사의 CEO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단의 승부사, 손정의가 인생에 도전하는 법’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있는 만큼 손회장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노하우를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숱한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품고 있는 의문은 하나같이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면서도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차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언급하는 경우를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리스크를 취하지 않는 삶은 오히려 아주 위험한 일이다.(24쪽)’라고 진단한 것이 꼭 옳은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직업마다 나름대로의 특수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말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혹은 직업에 따라서는 굴곡없는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선인 경우도 있지 싶습니다.

 

‘20대에 이름을 떨치고, 30대에 최소 1,000억엔의 운영 자금을 모으고, 40대에 승부를 걸고, 50대에 사업을 완성하고, 60대에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준다(26쪽)’라는 손정의의 인생 50년 계획은 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이 될 수도 없으려니와 그와 같이 되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손회장의 아버지께서 어릴 때부터 자녀들에게 ‘너는 천재다’라는 이야기를 해주며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는 점은 새겨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에서 인정받지 못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자란 손회장이 매사에 두려움없이 도전하기 위한 요령은 ‘즉시 도전을 결정하고, 할 일을 구체적으로 나눠서 준비한다.(41쪽)’라고 요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손정의의 사업 플랜의 대강은 외국, 특히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검증된 브랜드를 발빠르게 일본에 수입하는 전략을 구사한 결과로 성공을 일구어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기업운영 사례는 국내에서도 몇몇 재벌기업들로 해오던 방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표를 정한 뒤, 역할을 분담하고 책임을 지는’ 회장의 리더십은 독특한 면이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가 배울 점은 손정의식으로 손정의를 뛰어넘을 수는 없겠지만, 배울 점은 분명 찾을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의 지혜와 지식을 집약해서 현실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빠르게 피드백을 수용해서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제공한다.(189쪽)”입니다. 물론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요령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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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아시아를 몰랐고, 아시아는 우리를 몰랐다는 자각을 바탕으로, <한겨레21>이 구심점 역할을 하여 아시아 20개여 나라의 언론인들과 민주화운동가를 하나로 묶어 ‘아시아네트워크’를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서구 중심의 외신에 의존하지 않고, 아시아를 온전히 아시아인의 눈으로 보자는 것이 아시아네트워크를 통한 언론실험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주제로 구성된 글들은 모두 다섯 묶음으로 나누고 있는데, 먼저 ‘해묵은 거짓말’에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도 독립투쟁의 원동력이었던 간디에게는 노동자들이나 계급평등을 염원하는 이들에게는 히틀러와 같은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수카르노에 이어 인도네시아를 이끌었던 수하르토 역시 1965년 10월 1일 공산당이 합법적인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일으켰다는 쿠데타인 G30S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상당부분이 날조되어 수하르토의 집권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인권투사라는 이미지를 앞세웠던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토지개혁이나 인권회복부문에서는 개선이 지지부진하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특정인, 특히 정치인의 경우 정적이 내세우는 논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반대의 주장 역시 같은 무게로 검토하고 비교해서 논리적이지 못한 쪽을 버리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단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참고할 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의 배경에 대한 분석자료에서는 얼마 전에 읽은 도올의 책에서도 같은 맥락의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새롭지는 않습니다. 다만 폴포트가 집권했던 시기(1975~1979년) 이전에 벌어진 미군의 캄보디아 폭격(1969~1973년)과 그로 인한 사망을 따져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폴 포트가 200만명을 살해했다는 주장은 미국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폴포트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필자는 1969~1973년 사이 미국의 폭격으로 60~80만이 죽었고, 폴포트 집권 직후에 10만명의 지식인과 시민을 처형하였으며, 1975~1979년 크메르루주 집권 기간에 과로, 질병, 기아로 사망한 70~80만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대캄보디아 구호사업을 차단하여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폴포트의 책임은 줄이고 미국의 책임을 늘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반대측 주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980년 광주, 1984년 필리핀, 1990년 랑군, 1992년 방콕, 1998년 자카르타 등 연쇄적으로 일어났던 피로 점철된 민주화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이미지를 던지는 듯합니다. 필진들이 공통적으로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6.25동란을 일본, 인도, 태국, 필리핀 등, 당시 관련된 국가의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있는 시도는 독특한 점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일본의 필자는 이 전쟁으로 일본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7살이었던 필자가 이웃에 있던 공장이 파산직전이었는지를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도의 경우는 이 전쟁에서 서방의 논리를 인정하면서도 비동맹정책을 내세워 중재자 노릇을 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참전을 강요당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존 할리데이와 브루스 커밍스 등이 내놓은 ‘잊어버린 전쟁’이라는 주장에 따라, ‘필리핀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고자 남한에 군대를 파견한다(86쪽)’는 주류의 입장에 반하여 미국의 용병론을 내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필리핀의 비주류논리를 이끌고 있는 월든 벨로교수는 “한국전쟁은 소련이 자유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북한군을 38선 공격대로 활용했다는 미국식 논리를 지닌 전쟁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 내부가 충돌한 가슴 아픈 내전이었을 뿐이다. 북한과 남한은 한국전쟁이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몇 년 동안 피로 얼룩진 전투를 해왔고, 그 분쟁은 미국과 소련 의도에 따라 국경분쟁 이상의 것으로 강요되었다.(88쪽)”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6.25동란의 경과와는 전혀 다른 시각이라고 보이는데, 무엇을 근거로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인도나 태국처럼 남아있는 당시의 자료도 변변치 못한 형편이라고 하는데, 이런 과감한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말입니다.

 

그밖에도 아시아에 강하게 불고 있는 민족주의, 성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 등 다양한 주제들이 다루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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