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 누구나 생애 한 번은 그 길에 선다
윌리엄 폴 영 지음, 이진 옮김 / 세계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죽음은 생명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사건이며, 아직까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왕래한 인간은 없습니다. 물론 임사체험이라고 해서 심장박동이나 뇌활동이 멈추었다가 회생한 사람들의 경험을 두고 사후세계를 보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역시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윌리엄 폴 영의 <갈림길>은 일종의 임사체험을 주제로 한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판타지소설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예수님이나 하느님이 등장해서 주인공 앤서니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영성을 다룬 종교문학으로 보아도 될 듯합니다. 아마 저처럼 종교적 배경이 없는 의사라면 임사체험이나, 사후세계, 영적 존재가 등장하는 분위기에 쉽게 빠져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른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면을 생각한다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단 주인공 앤서니 스펜서는 성공한 사업가로 많은 재산을 일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입니다. 부모님, 마더 테레사,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그리고 예수입니다. 그리고 보니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듯합니다. 어머니는 예수를 믿었지만 그는 믿지 않았습니다. “신이 있다고 쳐도, 끔찍하고 잔혹하고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존재일거라고, 좋게 봐줘야 냉혹하고 어둡고 비인간적이며 무심한 존재이고, 최악의 경우 어린아이의 마음을 유린하며 쾌감을 느끼는 괴물일거라고.(26쪽)” 생각합니다. 더하여 그는 살아있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전혀 알 수 없는 비밀의 장소를 만들어 놓고, 수시로 유언장을 바꾸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앤서니가 이렇게 변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 때문입니다. 열한 살이 되던 해, 어느 소년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어머니가 죽고 어렵게 자란 환경 탓인 듯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5살 된 아들, 가브리엘의 죽음이었던 모양입니다. “애원들, 약속들, 기도들은 모두 하늘에 닿지 못하고 공허함으로 돌아와 그의 무능함을 비웃었다. 가브리엘의 숨이 잦아들 때, 무엇으로도, 정말 그 어떤 것으로도 아이의 죽음을 돌이킬 수 없었다.(37쪽)”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믿음을 뒤집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분노가 전이되기도 합니다. 앤서니의 경우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십대시절의 첫사랑이자 두 번이나 그의 아내가 되었던 로리, 어쩌면 자신만큼 앤서니를 증오할 딸 앤젤라, 그리고 제이크.... 제이크는 앤서니의 동생입니다. 그런데 왜 ‘정말 미안하다’라고 하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습니다.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앤서니가 변하게 되는 것은 발작적으로 일어난 두통으로 쓰러지면서 머리를 자동차 트렁크에 부딪혔다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머리가 깨지는 사고를 당하고 병원으로 옮겨진 뒤입니다.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유체이탈이 된 영혼이 임사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다시 떠오르고 있었고 저 멀리 가느다란 불빛이 보였다. 불빛이 다가올수록, 혹은 그가 다가갈수록 점점 더 선명해졌다. 이게 죽음인가?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죽은 사람들이 불빛을 보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고 그는 그것이 신경회로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믿고 있었다.(38쪽)”

 

그의 영혼은 예수를 만나고, 그의 선조인 인디언 할머니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살면서 만들어낸 자신의 허상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소년의 몸을 잠시 빌리게 되는 앤서니는 키스를 통하여 다른 사람의 몸으로 옮겨 다니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삶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점점 깨달아갑니다. 이런 그에게 하느님은 단 한명의 생명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을 선물해줍니다. 생사의 기로에 있는 자신의 생명을 되돌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앤서니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리고 살아오면서 오해한 주변 사람들과 화해할 수 있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이맘때 천편 째 독후감을 썼습니다. 천여 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그 책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 년 전에 집을 고치면서 작지 않은 규모의 책장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사무실에도 꽤나 규모가 되는 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책장에 넣지 못한 책들이 곳곳에 쌓여가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읽은 책들이고, 글을 쓰면서 들춰보기도 합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바람에 쌓여있는 책들을 온통 뒤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을 때면 오카사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을 읽을 책 목록의 위쪽으로 진입시키기도 합니다.

 

이사를 갈 때는 책을 싸고 푸는 일이 큰일이기도 합니다. 아내의 불만이 한계에 이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책들을 정리한 적도 서너 차례는 됩니다. 우리 상고사를 열심히 공부하다가 결국은 수십권의 책을 근무하던 부대의 도서실에 기증한 것이 그 첫 번째였고, 먼지가 쌓여가던 기백권의 전공서적들을 내다버리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관심분야가 아닌 책들을 사무실에 만든 ‘병아리도서실’에 기증하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같이 근무하시는 분들이 자유롭게 읽거나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지난 해 다녀온 스페인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이슬람문명의 역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무함마드 이후 성립한 우마이야왕조와 이를 이은 아바스왕조는 동으로는 인도북부까지, 서로는 아프리카 북부를 지나 이베리아반도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게 되면서 이집트, 페르시아, 비잔틴, 인도, 그리고 그리스 등 다양한 문명들이 이슬람문명에 녹아들게 되었습니다. 이슬람 왕조가 이들 문명이 이룬 업적을 수집하고 번역하는 작업을 왕성하게 추진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아바스왕조의 칼리파 알 마문은 국립번역기관인 ‘지혜의 전당’을 설립해 번역을 적극적으로 장려했고, 후기 우마이야왕조의 수도였던 스페인의 코르도바에는 70여개의 도서관과 수많은 서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코르도바의 도서관은 44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프랑스의 전체 도서관이 보유한 장서보다 많았다는 것입니다.(윤용수 등, 지중해 문명의 다중성 11-47쪽, 이담북스 2010년; http://blog.joins.com/yang412/13570031) 이렇게 수집한 책을 읽고 연구한 이슬람문명은 오늘날 인류문명이 꽃을 피우는데 크게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일찍이 금속활자를 발명하는 등 인쇄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우리의 선조들은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조선 지식인들의 서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박철상님의 <서재에 살다>를 통해서 비록 실학파라고 분류되는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에 서책이 어떻게 유통되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재라 하면 요즈음으로 말하면 개인의 장서를 모아두는 장소라고 제한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나아가 교유하는 벗들과 공유할 수도 있었을 터이니 사설도서관이라고 확대하여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선 지식인의 서재로 제한을 둔 탓인지 조선조의 공공도서관에 관한 사항들은 언급되어 있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조임금의 서재 역시 개인의 서재로 규정한 것 같습니다.

 

조선왕조의 출판문화의 형편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본격적인 출판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한 송나라 때 아미 수많은 민간 출판사들이 출현했다. 이를 토대로 다양하고 수준 높은 목판본들이 출판을 거듭했다. 반면에 우리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21쪽)” 서적의 수요층이 한계가 있어 민간출판이 발달한 틈새가 없었고, 태종 시절 금속활자를 만들면서 관이 중심이 된 활자본 간행이 주류를 이루면서 국가정책에 맞는 서적을 중심으로 출판되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임진왜란 이전에는 중국에서 간행된 책들이 곧바로 조선에서 간행되어 유통되었지만, 문화적으로 낮추어 보던 청나라 시절에는 이마저도 사라졌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에는 금속활자를 주조하는 등 활발했던 도서출판이 세월이 흐르면서 침체되었다가 정조시대에 들어 활기를 되찾았다고 합니다. 조선조의 출판현황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서명응의 <규장자서기>의 한 대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세종 시대에 만든 활자가 아마 대대로 나라의 보물이 되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옥처럼 모양이 고르고 반듯하여 그것으로 인쇄한 책이 몇 백만 권인지도 모른다. (…) 그러나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지키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보관하지 못해 없어진 것이 십중팔구나 된다. 우리 임금께서는 세손 시절부터 이를 안타깝게 여기셨다. (…) 이렇게 내각과 외각에서 전후로 주조한 활자가 모두 30만여 자였다.(23쪽)”

 

세종 이래 간행된 서책의 규모는 수백만 권이나 될까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정조 시절에 간행된 도서의 숫자가 153종에 3991권에 이를 만큼 ‘방대’하였다는 <군서표기>의 기록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1772년 정조는 은자 2150냥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청나라에서 간행된 백과사전인 5,002책이나 되는 거질의 <고금도서집성>을 사들였다고 했습니다. 정조임금의 서재인 ‘홍재(弘齋)’가 수장한 책자의 규모가 방대할 것임을 짐작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서명응이 지은 홍재기(弘齋記)에서 왕세손 시설 정조가 “인을 체득한다는 것은 증자께서 말씀하신 ‘뜻을 크게 하라’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던 것을 기억하고는 “마침내 ‘홍(弘)’라를 공부하는 곳에 편액으로 걸었다.(17쪽)”라고 적은 부분을 인용하여 정조의 뜻을 새기고 있습니다. 정조는 서재를 그저 책을 모아두는데 그치지 않은 듯, 100책이나 되는 <홍재전서>를 남겼다고 합니다.

 

정조 무렵 서울에 생활의 터전을 두고 대대로 살아가던 양반 가운데 정치적으로 요직에 나갈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최상류층을 경화세족(京華世族)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들은 특히 청나라문물에 경도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특히 청나라에서 간행된 책자들을 앞 다투어 수입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조선에서 간행된 서책만으로는 만권의 장서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심상규가 4만권, 조병귀와 윤치정이 3,4만권의 장서를 보유하는 등, 서울 오래된 집들 가운데 천 권, 만 권의 책이 있는 사람은 손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정조가 규장각을 만들어놓고 유능한 중서층(中庶層) 인재들을 등용해 문화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경화세족 역시 비슷한 서재나 서고를 만들고 유능한 중서층 인물들을 겸인으로 부리거나 그들과 깊은 유대를 나누며 시대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에 서려고 했다.(181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여항문화(閭巷文化)로 치부하면서도 민간의 문화를 흥기하는데 일정부분 기여한 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설 도서관은 주인과 가까운 사람들만이 접근이 가능할 수밖에 없는 제한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규모가 되는 공공도서관을 확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조선의 지배층의 좁은 시야가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4만권의 장서를 자랑했다는 심상규의 가성각(嘉聲閣)은 심상규가 죽자 건물이 헐리고 장서의 행방도 묘연해졌다고 하니 서책의 수집도 어려울뿐더러 보관은 더욱 어렵더라는 점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차라리 그 책들을 나라에 헌납했더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합니다.

 

정조의 홍재에 이어 저자는 홍대용의 서재, 담헌(湛軒)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19세기 조선을 북학(北學)의 시대로 인도한 공을 기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를 통하여 공론화된 북학은 담헌 홍대용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홍대용은 35살이 되던 1765년에 동지사 서장관이 된 숙부 홍억을 따라 연행에 나섰다고 합니다. 친구로 사귈만한 청나라 지식인을 찾아 헤매던 홍대용은 부장 이기성의 소개로 엄성과 반정균, 육비 등을 만나 사귀게 되었고, 귀국 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멀리 떨어져 있던 조선과 중국 사이에도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경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엄성이 죽었다는 반정균의 부고에 홍대용은 애사(哀辭)를 짓고 향과 폐백을 갖추어 부쳤고, 마침 엄성의 대상을 치르던 날 도착하여 엄성의 가족은 물론 친지들이 감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반정균은 홍대용의 서재 담헌에 기문(記文)을 썼는데, “군자의 도는 마음에 잡됨이 없고 사물에 대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몸은 청명(淸明)하고 그 집은 허백(虛白)하니 아마 ‘담(湛)’자의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홍군은 매번 나와 성리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말이 아주 순정하였다. ‘담(湛)’자의 뜻을 체득한 사람일 것이다. 내가 비록 문장력은 없지만 군자의 도에 힘을 써서 좋은 친구에게 지지 않도록 하겠다. 아울러 홍군의 문장과 덕행을 중국의 친구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인데 어찌 감히 별 볼 일 없는 솜씨라고 사양하겠는가?(45쪽)” 서재의 기문은 써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 모두 자신의 문집에 실어 널리 알리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저자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연행에 따라나선 홍대용의 진정성이 청나라 지식인들을 감복시켰고, 이들의 우정은 두 나라 지식인들을 감복시키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처럼 홍대용의 진정성으로 시작된 조선과 청나라 지식인들의 교류는 미약하게 시작했지만 조선의 19세기를 북학의 시대로 만든 첫 걸음이었던 것입니다.

 

북학의 시대를 여는데 홍대용의 담헌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 만큼, 박지원의 서재, 연암산방을 뒤에 두었다고 해서 연암이 섭섭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암을 논하면서 <열하일기; http://blog.joins.com/yang412/13129725>를 우선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터입니다. 열하일기를 읽다 보면 연암이 명나라와의 관계에 매이지 않고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봉황성에서는 벽돌을 구워 집과 성을 쌓은 모습을 보고서 돌로 쌓은 우리나라의 성과 비교하여 장단점을 논했다거나, 성문의 누각을 세우는 공사에서 사용하는 거중기가 신기한데 창졸간에 이를 배울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는 장면 등입니다.

 

저는 번역본을 읽어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당대에 이미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던 <열하일기>에 대하여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박남수 같은 이는 “선생의 문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소설 나부랭이에 불과합니다. 이제부터 순수한 고문(古文)은 사라져버릴 것입니다.(49쪽)”라면서 연암의 <열하일기>를 불태우려 들었다는 것입니다. 선비가 써야 하는 글은 이런 글이 아니라 순정한 고문인데 이런 글을 우리가 배워 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정조 역시 당대의 선비들의 문체가 예스럽지 못한 것을 두고, 그 책임을 연암에게 물어 순정한 글을 한 편 지어 올려 <열하일기>의 죄를 속죄토록 하라고 영을 내렸다고 합니다. 연암은 정조의 명에 따라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금의 서재, 기하실(幾何室)에 대한 내용도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4만권의 장서를 자랑한 심상규의 가성각(嘉聲閣)은 다양한 영역의 서책들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금의 서재는 천문과 역서에 관한 책들로 채워졌고, 주인 또한 육예(六藝)는 도(道)의 끄트머리이고 수학은 육예 중에서도 끄트머리라는 벗의 지적에도 부끄러워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유금의 서재이름은 마테오 리치가 구술한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을 서광계가 한문으로 기록한 <기하원본(幾何原本)>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선비들이 성리학 이외의 학문에 관심이 없을 때였음에도 유금은 자신이 연구하는 학문에 대해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청나라를 통하여 쏟아져 들어오던 새로운 학문에 관심을 가졌던 조선의 선비들의 학문세계를 서재를 매개로 하여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아직 이름을 붙일만한 장서를 갖추지 못했지만 저의 관심을 나타낼 수 있는 서재의 이름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찰, 평범에서 비범으로
게리 클라인 지음, 김창준 옮김 / 알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한 번은 우연이고, 두 번은 인연이며. 세 번은 운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 번째인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의학을 전공하는 분들은 이미 알려져 있는 질환의 양상과는 다른 사례가 반복되는 것에 비교적 민감한 편입니다. 새로운 질환을 만날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기존의 질환의 범주에서 설명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하지만, 차이점은 분명하게 정리를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첫눈에도 기왕의 경우와 다르다는 것을 꿰뚫는 비범한 분들, 즉 통찰력이 뛰어난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추는 것은 복잡다단한 세상을 잘 살아내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바로 40년 이상 인지과학 분야를 연구한 자연주의적 의사결정이론을 창시한 게리 클라인박사가 <통찰, 평범에서 비범으로>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더 나은 이야기로의 예상치 못한 이동’이라고 통찰을 정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통찰은 우리가 이해하고, 행동하고, 보고, 느끼고, 욕구하는 것을 바꾼다고 설명합니다. 무엇이 깨달음이 번뜩이도록 만드는지를 뒤쫓기 위하여 저자는 다양한 자료에서 120건의 통찰의 사례들을 수집하여 분류를 해보니, 연결, 우연의 일치, 호기심, 모순, 창의적 절망이라는 서로 다른 다섯 종류의 전략을 통하여 통찰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통찰, 평범에서 비범으로>에서는 통찰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저자의 연구과정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1부, ‘통찰의 문으로 들어가다’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무엇에 눈을 뜨게 하는 통찰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찾는 과정입니다. 살아있는 벌레에 초록색 형광 단백질을 집어넣어 이 단백질이 어떻게 퍼져가는지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마틴 챌피의 사례, 역사상 최대의 폰지사기를 저지른 나스닥회장 버니 메이도프를 10년여 추적하여 결국은 자수하도록 만든 무명의 금융분석가 해리 마르코폴로스의 사례, 에이즈의 유행을 처음 알아차린 UCLA의 마이클 고톨리프박사의 사례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분들의 분야가 아닌 경우에는 다소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 경우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발견하고 이 세균이 위궤양 및 위암과 연관이 있음을 증명하여 노벨상을 받은 배리 마셜박사의 사례나 황열병이 모기에 의하여 매개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월터 리드박사의 사례처럼 질병과 관련하여 통찰력을 발휘한 사례들이 있어 조금 이해가 쉬웠습니다.

 

사례분석을 통하여 저자는 다섯 가지의 통찰에 이르는 전략들 가운데 연결, 우연의 일치 그리고 호기심이 ‘함의의 발견’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을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비일관성을 찾아내는 ‘모순경로’, 함의를 발견하는 ‘연결경로’ 그리고 막다른 골목을 탈출하는 ‘창의적 절망 경로’의 세 가지 경로로 압축해냈습니다. 이들 경로에서는 이야기를 재구성하기 위해 약한 닻을 사용하거나, 새로운 닻을 추가하거나, 약한 닻을 버리는 활동을 통하여, 행동, 보기, 느끼기, 원하기 등 우리의 이해를 바꾸기에 이른다는 결론을 맺게 되었습니다.

 

2부, ‘문을 닫다’에서는 통찰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짚고 있습니다. 행동에서의 어리석음이라거나, 결함이 있는 믿음, 통찰을 가로막는 조직 등의 요소들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과학자들이나 의사들 역시 자기 믿음과 모순되는 이례적인 일을 대충 얼버무리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지식 방패’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하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자는 문제를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통찰을 촉진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3부, ‘문을 열다’에서 설명하였습니다. 나 자신을 돕고, 다른 사람과 조직을 돕는 것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도움을 얻게 되는데, 이는 결함이 있는 믿음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제시한 통찰에 이르는 세 가지 경로 모형아 대체적으로 잘 맞아 들어간다고 하면서도 반드시 올바른 해법이나 만족스러운 결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에 대한 통찰의 경우가 그렇다고 합니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마술과 같은 통찰력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개인적인 노력이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든다는 것과 늙어간다는 것 - 마음의 평정에 이르는 10가지 길
빌헬름 슈미트 지음, 장영태 옮김 / 책세상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부터 노화방지(anti-aging)이라는 말을 일상처럼 듣게 되었습니다. 나이 먹는 것을 거부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남들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은 나이가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노화방지를 내세운 상술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저는 젊어서부터 새치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환갑을 넘긴 금년에는 반백이 넘어가고 있기 때문인지, 염색을 하면 훨씬 젊어 보일 것이라는 조언을 흔히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생긴 대로 살아간다는 원칙을 정하고서 들은 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책을 만났습니다. ‘영혼의 치유사’라고 하는 독일의 대중 철학자 빌헬름 슈미트가 쓴 <나이든다는 것과 늙어간다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노화방지’ 대신에 ‘노화의 기술(art of aging)’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나이 든다는 것에 맞서 살아가는 대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긍정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나이 듦의 멋진 기술, 즉 멋지게 나이 들어가기 위한 삶의 기술을 익히게 되면 인생이 아름답고 긍정할 만한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나이 듦의 자연적 의미는 각자가 자기 삶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점차 익숙해지는 것이며, 나이 듦의 문화적 의미는 지금의 삶을 좀 더 수월하고 풍성하게 해주는 정신적 원천을 발견하는데 있다고 정의하였습니다. 저자는 ‘마음의 평정’이야 말로 정신적 원천 가운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현대사회는 인간들을 욕망으로 선동하고 교란하며 삶을 심하게 소용돌이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평정에 대한 사람들의 동경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랜 세월을 삶의 기술을 뒤쫓아온 저자가 관찰과 경험 그리고 사유의 결과를 바탕으로 시기, 특성, 습관, 행복, 고통, 접촉, 사랑, 사색, 준비 그리고 그 후 라는 주제어로 정리하고 있는 ‘마음의 평정’에 이르는 10단계 과정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시기란 인생을 분기로 나누어 보았을 때, 중년의 위기와 갱년기를 겪게 되면서 나이듦이나 죽음에 대하여 생각을 시작하는 시기야말로 바로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어야 하는, 1단계라는 것입니다. 나이듦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 삶의 국면이 가지는 특성들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즉, 마음의 평정을 가능하게 하는 변화에 대한 열린 관심을 가지는 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누구도 노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살아온 방식, 즉 습관을 바꾸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좋지 않은 습관을 바꾸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만, 고통까지도 이미 몸에 배어 있다는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인 듯합니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살아오면서 겪은 노고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즐거움을 의식적으로 누려도 좋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은 소박할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 즉 너무 큰 것을 바라면 그것이 스트레스가 될 것이니까요. 다섯 번째 고통까지도 마음의 평정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고통은 삶을 해치기 마련이지만 그 고통마저도 스스로 결정한 범위 안에서 수용하다보면 마음의 평정을 이루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단계는 접촉인데, 외톨이가 되지 않고 누군가와 접촉을 유지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독서는 무언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정신적인 접촉이자 접촉받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단계는 사랑인데,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 단계는 사색입니다. 사색을 통하여 마음을 즐겁고 차분하게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돌아보는데서 그치지 않고 다시 눈을 미래로 돌려보면 삶을 마무리하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아홉 번째 단계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죽믕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죽음의 의미도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죽음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역설적으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단계는 죽음 이후의 단계가 되겠지요.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소멸하고 말까요? 자아를 완성한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살아 영원히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간파력 - 1등석 스튜어디스 출신 CEO가 당신에게만 코치해주는 '될성부른 남자'를 한눈에 알아보는 법
미즈키 아키코 지음, 이서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http://blog.joins.com/yang412/13219457>로 만났던 미즈키 아키코의 책을 다시 만났습니다.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이 우리말로 소개된 것은 2013년이고, <간파력>은 2012년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이 2009년에 그리고 <간파력>이 2010년에 발표가 되었으니, 우리나라에 소개된 순서가 바뀐 셈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느낌은 발표된 순서대로 소개되는 것이 옳았겠다 싶습니다. <간파력>을 읽고는 실망이 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등석 스튜어디스 출신 CEO가 당신에게만 코치해주는 ‘될성부른 남자’를 한눈에 알아보는 법”이라는 부제가 의미하는 것은, ‘좋은 남편을 점찍는 방법’이라고 한 마디로 잘라 말하면 될 것 같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수많은 미팅을 통해서, 스튜어디스로 일하는 동안에는 남자 승객, 특히 1등석 손님을 상대하면서 수많은 남자들을 만나고 관찰해온 결과 ‘될성부른 남자’를 감식하는 눈이 생겼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시원치 않아 거들떠보지 않았던 남자가 나중에 보니 잘 나가고 있더라는 이야기는 밀쳐놓더라도,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저자가 정말 남자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는 주장이 옳은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 차례의 이혼과 여러 차례의 사업실패를 겪고서야 어떤 남자가 행복을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 깨닫게 되었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싶습니다.

 

저자는 행복한 삶을 즐기고 있는 여자들의 특성을 분석해본 결과 첫째, 될성 부른 남자를 알아보는 ‘간파력’, 그런 남자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독특한 ‘매혹력’, 그리고 남자친구 혹은 남편을 ‘된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육성력’을 갖추고 있더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모두 61가지의 간파력에 관한 글과, 23가지의 매혹력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17가지의 육성력에 관한 이야기로 정리해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성공과 행복을 쟁취하는 여자들의 101가지 비밀무기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는 주장입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될 성 부른 사람’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더라는 이야기에서 잠시 읽기를 멈춥니다.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에서도 짚었던 이야기입니다.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으쓱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책을 멀리 한다고 해서 될 성 부른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공한 남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돈이 많고 매너도 좋고, 세련되고, 폼 나며, 빈틈이 없는 남자를 떠올리는 여성이 많을 것이다.(89쪽)”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저자가 말하는 ‘될 성 부른 사람’은 돈을 잘 벌거나 지위가 높은, 즉 세속적 의미의 ‘된 사람’을 의미한다는 느낌이 강해서입니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어 세속적인 성공하고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매혹력을 갖춘 대표적 여성으로 꼽고 있는 스튜어디스는 체계적인 훈련의 산물이라고 적었습니다. 균형잡힌 자세, 미소, 헤어스타일 등등 세심한 부분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 훈련한 결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만들어진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훈련에 마음까지 따라가는 것일까?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직업적인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즉 가식적일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될 성 부른 남자를 유혹하기 위하여 만들어내는....

 

‘육성력’이라는 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남자를 자신이 원하는대로 만들어낸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과연 그 남자는 언제까지나 육성하는 대로 따라 올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남자도 지키고 싶은 무엇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