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선택한 사람들
숀 아처 지음, 박슬라 옮김 / 청림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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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D. 리버먼교수의 <사회적 뇌, 인류 성공의 비밀; http://blog.joins.com/yang412/13607119>을 소개하면서 인간은 고통을 회피하고 쾌감을 얻기 위하여 사회적 관계에 관심을 늘리도록 진화해왔다고 내용을 요약하였습니다. 즉, 사회적 관계망을 확대함으로써 인류는 더 현명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사회 안에서 타인들과 관계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며,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 중요한데 일련의 과정들은 대뇌의 신경망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점을 기능성 MRI를 이용한 실험데이터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사회적 뇌, 인류 성공의 비밀>의 리뷰를 마무리하면서 ‘인간이 결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회적 관계망 하나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 오히려 위험해 보인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버드대학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행복학’ 강좌를 이끌고 있는 숀 아처교수의 <행복을 선택한 사람들>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숀 아처 교수는 주장은 사회관계망을 잘 만드는 능력, 즉 ‘사회지능(SQ)을 지능지수(IQ), 감성지능(EQ)에 더하고,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행동과 실천으로 옮기는 긍정지능이야말로 중요하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번 주에 숀 아처교수의 <행복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북소리]에서 소개하려고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먼저 IQ, EQ, SQ가 개발되어온 배경을 설명하였습니다. 지능지수(IQ, Intelligence quotient)는 언어 및 수학능력을 측정하는 도구로 개발된 것으로 1980년대까지는 인간의 잠재력을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IQ로 직업적 성공을 예측하는 적중도는 20~25퍼센트에 불과했는데, 이 정도 예측력이라면 동전을 던져 어느 쪽이 나올지 맞출 확률보다도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EQ는 하워드 가드너가 개발한 지표입니다. 자신과 타인의 감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야말로 IQ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피터 샐러비와 존 D. 메이어는 감성을 이해하는 능력이이야 말로 인간의 잠재력을 예측하는데 있어 IQ보다 훨씬 유용한 지표라면서 그 능력을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 EQ)라고 불렀습니다. 감성지능이론은 심리적 압박이 극심한 비즈니스세계에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로 인식되면서 대니얼 골먼이 쓴 <EQ 감성지능>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심리학계는 IQ와 EQ의 유용성을 두고 격론을 벌였습니다. 이어서 가드너는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능력을 구분한 사회지능(Social Intelligence, SQ)이라는 개념을 새로 내놓았고, 역시 대니얼 골먼이 <SQ 사회지능>이라는 책으로 비즈니스세계에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번에도 유용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IQ, EQ, SQ의 세 가지 지능은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것을 따질 이유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지능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증대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세 가지 지능은 모두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두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피라미드의 높이를 정밀하게 측정하는데 처음 성공한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가 사용한 등변삼각형모형을 인용하여 IQ, EQ, SQ을 삼각형의 세 변에 배치하고 이들을 통합하여 삼각형 내부의 성공의 영역을 창출해내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방안을 도출해개기에 이른 것입니다. 즉 세 가지 지능을 한데 모으고 결합해 증폭시키는 능력, 바로 ‘성공 가능한 현실을 보는 능력’, ‘긍정지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 손 아처교수는 하버드 대학교의 최고 인기강좌인 ‘행복학’ 강좌를 기획하고 강의한 행복학의 권위자입니다. 스트레스 요소로 가득 찬 비즈니스 세계에서 행복과 긍정적 문화를 조직에 심어 효율적인 업무 환경을 구축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그 성과를 전파하는데 매진해왔습니다. 저서로는 <행복의 특권>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긍정의 원칙을 사용하여 직장에서의 성취도를 향상시키고, 직업적 목표와 야망을 달성하고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IQ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EQ는 그 ‘방법’을 보여주며, SQ는 ‘누구와 함께’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28쪽)”고 합니다. 그런데 세 가지 지능이 우수하면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노력을 하지 않으며, 불평불만이 많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긍정적인 미래를 능숙하게 창조하는 사람들을 보면, 쉬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여건이 어렵거나 심지어는 장애물을 만나도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내며, 심지어는 실패마저도 성공으로 뒤집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긍정적 변화를 창조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행동할 때, 우리는 뇌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위대한 성공과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 기억하라. 지능이 높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은 그 지능을 잘 활용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는 데 달려 있다.(29쪽)”라고 정리합니다. 그리하여 성공과 행복으로 향하는 다섯 가지 긍정 원칙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원칙은 가장 의미있는 현실을 선택하기 위한 ‘현실 설계’입니다. 다양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관점까지 더해서 세상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훈련함으로써 긍정적이고 참되며 가장 중요한 현실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두 번째 원칙은 가치 있는 목표에 이르는 길을 그려내기 위한 ‘마음지도’입니다. 삶에서 중요한 지표들을 세우고 삶의 방향을 헷갈리게 하는 미끼들을 가려내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된 현실에서 도망치는 탈출로가 아닌 성공으로 가는 길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세 번째 원칙은 성공 촉진제를 활용하는 ‘X-지점’입니다. 남들보다 먼저 출발하고, 낮은 목표부터 접근하여 성취하며 목표의 크기를 확대해나갑니다. 네 번째 원칙은 긍정적 신호를 증폭하고 부정적 소음을 제거하는 ‘소음제거’입니다. 잠재력의 발현을 돕는 중요하고도 믿음직한 정보만을 가려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특히 긍정에너지를 발휘하여 걱정과 불안, 두려움, 비관주의 등 내적 소음을 능동적으로 제거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다섯 번째 원칙은 주변에 긍정적 현실을 퍼트리는 ‘긍정인셉션’입니다. 일단 자신의 긍정적 현실을 창조하고 이를 타인에게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로서 IQ, EQ, SQ가 통합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은 저자의 긍정이론의 총론에 해당하는 ‘긍정지능의 놀라운 특권’에 이어 다섯 가지 긍정원칙에 대한 설명을 별도의 장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긍정원칙을 설명하는 장의 끝에는 앞서 설명한 원칙을 실천에 옮기는 방법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원칙, 현실설계를 설명하면서 다양한 시각을 훈련하는 방법으로 미술관 찾기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의 프로그램을 인용한 것입니다.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의학공부에도 시간이 부족하여 허덕이는 학생들을 미술관으로 데려가는 이유는 예술적 감각을 키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점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그들의 뇌가 새로운 시각을 수용해 세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화가들이 묘사해놓은 그림 속의 인물들을 나름대로 해석한 결과를 공유하다 보면 나와는 다른 시각을 배우는 기회가 됩니다. 년전에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완독한 분들과 자리를 함께 하면서 같은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037226). 특히 동질적인 구성원들보다는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점을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http://blog.joins.com/yang412/13258160>를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조직의 다양성이 높을수록 다양한 타인과의 네트워크가 강한 사람일수록 융통성과 적응력이 향상될 뿐 아니라 혁신과 성공을 이룰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마음지도에 관한 원칙은 리뷰를 쓰는 시점에서도 미진한 점이 남아있는 부분입니다. 이 원칙은 저자의 해군 ROTC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끌어낸 것 같습니다. 지도에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중요한 지점이 있는가 하면, 챙겨볼 이유가 없는 지점도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지도에 담긴 다양한 정보를 분석해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지표들을 융합하여 성공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라는 의미로 읽었습니다. 하지만 더 나은 방식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남아 있습니다.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은 있겠지만, 경로라는 것은 결국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갈림길마다 나름대로의 선택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은 어떨까 싶어서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 남는 것 같습니다. 선택에 있어 절대적인 기준이 없었던 경우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갈림길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라는 기준을 정하고 있으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고 후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도보다는 갈림길에서 적용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기준을 나름대로 정하는 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상의 경로(critical pathway; CP)가 미리 준비되어 있다면 적정한 진료를 최단 시간에 적용하여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종의 응급진료지침을 활용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세 가지 방법, 즉 나만의 의미지표 표시하기, 유연하게 마음지도 기준점 잡기, 탈출로보다는 성공의 길 먼저 그리기 등과 같은 실행기준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겠다 싶기는 합니다.

 

특히 성공 촉진제로 활용하는 ‘X-지점’을 두라는 세 번째 원칙을 고려한다면 마음지도 이론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X-지점의 대표적 사례인 마라톤 풀코스에서 결승점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면 천근만근처럼 무겁던 걸음이 갑자기 날개를 단 듯이 속도가 저절로 붙는다는 것입니다. 즉 마라톤 선수의 뇌에서 강력한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지친 몸을 일깨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몸에 새롭게 활력을 부어주는 X-지점을 가능한 빨리 발견할 수 있도록 마음의 지도를 그려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승점에 가까이에서 뿐 아니라 언제든 이렇게 높은 에너지와 집중력을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저자와 같은 긍정심리학자들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X-지점에 대한 인지적 보상을 얻기 위하여 반드시 결승점에 가까이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은 결승점을 본다는 행위 역시 뇌에서 결승점을 인식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승점까지 남은 거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 우리 몸의 에너지와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촉진제를 적절한 시간에 분비함으로써 일찍 성공을 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마라톤 선수들 가운데는 일찍 스퍼트를 하는 경우에 결승점에 도달하기 전에 지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소음을 제거하고 긍정적 신호를 증폭시키는 소음제거에 관한 네 번째 원칙에서도 중요한 점을 깨닫게 됩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광우병파동에서 겪은 것처럼, ‘그 어떠한 긍정적 주장이나 논거도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이길 수 없다(223쪽)’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을 하기 전에 사건이 진짜로 일어날 확률을 따져보고, 사소한 걱정에 휩싸여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근심, 걱정과 사랑, 책임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세 가지 에너지 파장으로 비관주의의 내적 소음을 제거하는 적극적 대응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하여 해결할 문제가 크고 복잡할수록 의식과 무의식을 포괄하는 긍정적 현실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다고 했습니다. 행복하게 살아가기에도 인생을 짧습니다. “[북소리] 독자 여러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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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 관하여
안현서 지음 / 박하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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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라는 메시지의 의미가 복잡하다. 열여섯 살짜리 소녀가 장편소설을 써냈다고 하니 분명 대형 사건입니다. 그것도 단 여드레 만에 400쪽이 넘는 분량의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원고지 30매의 리뷰를 쓰는데도 너댓 시간은 끙끙대야 하는데 이 어린 작가는 누에가 비단실을 잣듯이 막히지도 않고 술술 써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잠은 잤는지 궁금합니다.

 

<A씨에 관하여>는 장편소설이면서도 세 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를 에필로그에서 묶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들 뒤에 A씨라는 신비로운 존재가 숨어서 주인공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개가 있었다’에서는 A씨에 관한 소문만 무성할 뿐, 등장했는지 조차도 분명하지 않고, 그의 존재에 대한 정보가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도 알 수 없습니다. 원단집 할아버지의 입을 빌어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는 어떤 존재. 영원한 시간을 갖고 이 거리에서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을 조용히 도와주는 신기한 사람.(49쪽)’이라는 변죽만 울리고 맙니다. A씨는 두 번째 에피소드 ‘고래를 찾아서’의 말미에 슬쩍 등장합니다. ‘그런 그녀의 짓궂은 표정에 잠시 움찔하더니’라고 적어 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영화의 해피엔딩을 축하하며. Mr. A’라는 글을 남겼다면서 다시 오리무중으로 몰아넣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 ‘Train ticket’에서는 실체를 드러냅니다. ‘환상속에서 돌아왔군요’라는 말고 함께 묘한 웃음을 남기고 사라지는 남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순간 A씨는 한 사람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퍼뜩 떠오르기도 합니다. 참.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온 원단집 할아버지와 현씨가 나오기도 합니다. 두 이야기가 같은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세 가지 에피소드의 주인공과 현씨가 모두 등장해서 A씨의 존재를 증명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A씨의 존재는 책의 말미에 붙여둔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열여섯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물을 관찰하고 있고, 표현해내고 있기도 합니다. 강을 정의하는 것도 그렇지만, “밤안개는 강처럼 흘러가지만 생물을 몸에 품지 않아. 그런 면에서 오히려 안개 그 자체가 살아 있다 말할 수 있어. 그 누구도 이 밤안개의 시작과 끝을 본 적이 없지. 한마디로 알 수 없는 존재인거야. 그래서 안개는 그 어떤 이름 아래 구속되지 않고 의미를 부여받지 않아. 그저 떠돌 뿐이야.(66쪽)”라고 밤안개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십대가 즐겨 말하는 투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작가 또래인 만큼 어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이 특히 그렇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주인공 소녀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존재들, 개, 노인, 꼬마, 철학자, 염세적인 남자, 그리고 살인자가 등장합니다. 요즈음 드라마에서도 다루고 있는 주인공의 다중인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와 의미를 인식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인 것입니다. 철학자가 등장해서인지 작가가 쏟아내는 철학적 화두들은 작가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정말 가능한가 싶습니다. 그 가운데 노인의 존재는 ‘누군가와 공유했던 모든 기억들이 거짓이 될까 두려워 만들어낸 존재로 과거의 기억들을 주제로 감정을 나누려는 의도가 담긴 것인데, 이는 친구를 잃은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고 해도, 그 사람과 같이 했던 기억들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는 것이지요.

 

가끔씩 또래의 친구들과 나누는 언어로 표현되는 부분이 어색한 느낌을 줍니다만, 이야기의 전체 구도나 펼쳐놓았던 장치들을 수습하는 재주가 뛰어난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몇 번씩 보여주는 엄청난 반전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벌써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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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오퍼스 9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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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모티프로 한 <사진에 관하여; http://blog.joins.com/yang412/13505861>와 <타인의 고통; http://blog.yes24.com/document/7834214>을 읽으면서 수전 손택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한 면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주장에 공감하는 점도 많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그런 인연에다가 특히 질병에 대한 그녀의 사유를 담았다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각기 따로 출판되었던 <은유로서의 질병(1978)>과 <에이즈와 그 은유(1989)>를 하나로 묶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는 일반적으로 있는 그대로 기술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담아 설명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손택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이미지나 은유 등의 해석을 덧씌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고 주장해왔다. 그렇지만 그녀의 글에서도 나름대로의 해석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손택은 결핵과 암에 대한 은유의 역사를 살피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다섯 살 때 결핵을 앓다 숨진 아버지와 마흔 두 살 때 본인이 앓게 된 유방암이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아버지가 결핵으로 숨졌다는 사실을 손택에게 철저하게 숨겼다고 하는데, 그 배경에는 결핵이라는 전염병의 가족력이 손택이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의 배려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질병, 특히 치유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질병을 신비화하는 경향을 비판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손택이 <은유로서의 질병>을 쓴 십년 후에는 친구가 에이즈로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에이즈라는 질병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에 경종을 올리기 위하여 <에이즈와 그 은유>를 발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은유로서의 질병>을 발표한 시점이나, <에이즈와 그 은유>를 발표한 시점의 의학수준으로 결핵이나 암, 그리고 에이즈는 일반적으로 치유가 가능한 질환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질환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신비화하거나, 혹은 종교적 이유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유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작가는 문학작품 혹은 개인서한 등을 통하여 이들 질병과 관련된 서술을 두루 인용하면서, 그와 같은 서술이 나오게 된 배경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질병에 대한 저자의 인식이 분명하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결핵은 하나의 기관, 즉 폐의 빌병으로 알려진 반면에 암은 어느 한 기관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다음, 몸 전체로 확산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23쪽)”라고 적었습니다만, 결핵은 우리몸의 대부분을 침범하는 전염병이며, 암은 특정 기관마다 특정한 종류의 암이 발생할 수 있고, 신체로 전이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는 다양한 행동양식을 보이는 질환인 것입니다.

 

질병에 대한 작가의 리뷰는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질병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않는 과거의 은유가 과연 질병이 생기는 기전이 상당히 밝혀지고 치유가 가능하게 된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입니다. 다시 예를 들면, “결핵이 병든 자아의 질병이듯, 암은 타자의 질병이다(101쪽)”라는 저자의 주장이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질병은 늘 사회가 타락했다거나 부당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고발해 주는 은유로 사용되어 왔음’을 지적하고(106쪽), 오히려 이러한 상상력을 부추기기보다는 가라앉히려는 목적으로 질병의 은유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하였습니다. “질병이 가장 큰 불행이듯이, 질병이 가져오는 가장 큰 불행은 고독이다. 질병이 감염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환자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을 때, 의사조차도 찾아오는 것을 두려워할 때.... 이것은 환자에 대한 사회적 추방이며 파문이다.(163쪽)”라는 부분이야말로 저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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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 루이스 세풀베다 산문집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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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루이스 세풀베다의 산문집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칠레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FTA를 체결한 나라입니다만, 지리적으로 먼 탓인지 관심이 낮은 것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술을 끊은 탓에 칠레산 와인을 마실 기회가 없어서일까요?

 

칠레는 남아메리카대륙의 서쪽으로 태평양을 끼고 남북으로 약 4,300km에 달하지만 폭은 175km인 띠모양으로 늘어진 나라입니다.3세기에 걸친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1810년 독립을 선언하였고, 1818년에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민주주의를 따라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여 왔지만, 20세기 초반 군부 쿠데타로 독재정권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1964년 기독교민주당 정권으로 거쳐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사회주의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197년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공군 장성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였다. 16년간의 군부독재기간 동안 정치적 반대자들을 고문하고 학살하였는데, 피살자가 3000여명, 고문피해자가 만여명, 가혹행위를 당한 사람이 1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피노체트의 독재정권에 대하여 민주화운동이 이어져 1989년에는 선거를 통하여 정권교체에 성공하였습니다.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는 피노체트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펼치다가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떠돌면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적고 있습니다. 특히 가난과 독재정권 때문에 꿈을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칠레의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의 손길에 대한 격렬한 분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의 대표작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의 실제 주인공인 노인과 인디언부족을 만나게 된 과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민족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이 절로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산문에서부터 칠레 사람들의 지극한 자존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피노체트 독재가 무너지고, 일 주일 뒤 머물고 있던 독일을 떠나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찾아간 세풀베다가 라 빅토리아 거리를 찾아가던 장면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산티아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구경하러 몰려든 관광객들이나 이것저것 캐묻고 다니는 사람들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다.(24쪽)” 사실 남이 살고 있는 곳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 첫 번째 산문은 20여년 전에 기고한 기사이기도 합니다.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가 그의 발길이 닿은 다양한 곳에서의 경험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첫 번째 글이 그에게는 매주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20여넌 전에 쓴 육필원고를 다시 만났을 때의 느낌은 어떨까요? “누구든 오래전에 쓴 글을 우연히 발견하면 오랜만에 자기 자신을 만난 듯 가슴이 뭉클해지기 마련이다. 글을 읽자 과거의 기억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9-10쪽)”

 

이 글은 사진작가 안나 페터젠이 찍은 아이들의 사진에서 발견한 순수한 모습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산티아고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이자 억압과 고통의 상징인 라 빅토리아에 사는 아이들이었지만, 그들은 해맑은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독재정권이 무너진 시점에 이 아이들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서 그들의 사진을 다시 찍기 위하여 찾아갔던 것입니다. 8년 전에 해맑은 모습이던 그 아이들 가운데 하나는 어쩔 수 없어 물건을 훔치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수소문해서 찾은 아이들은 담배를 달래서 피우면서 ‘꿈도, 희망도 모두 사라지고 없다’고 말합니다. 한창 꿈에 부풀어 있을 나이의 십대가 꿈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신산한 것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그 아이들을 모아 다시 사진을 찍는 작가 안나는 손수건을 꺼내 눈을 훔쳤다고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세풀베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적었습니다. 산티아고에 사는 아이들의 모습이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이를 알리기로 한 것은 “어린아이들의 순수함과 따뜻한 사랑이 넘쳐 흐르는 세계를 힘껏 지키고자 하는 전 세계 남자들과 여자들이 읽게 되기를(62쪽)”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다고 해서 세풀베다가 문약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면 실수하는 것입니다. 망명길에 머문 리카라콰에서는 <시몬 볼리바르 국제 여단>의 의용군으로 지원하여 총을 들고 싸운 경험도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핏줄에는 프랑스혁명을 이끈 민중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혁명정신은 여전히 마음 속에 살아있다고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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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심청 - 사랑으로 죽다
방민호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고전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한 작품을 만나는 경우가 아주 드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판소리 수궁가를 새롭게 해석한 방민호교수님의 <연인 심청>을 만나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판소리 심청가는 물론이고, 책으로 된 심청전을 제대로 읽은 기억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연히 심청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버지 심봉사의 몫도 적지 않습니다. 딸을 낳다 죽은 아내를 대신하여 갖은 고생을 해가면 젖먹이를 키워낸 심봉사가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다 개울에 빠지고 말았는데, 공교롭게도 심봉사를 구해준 것은 몽운사 화주승이었습니다. 화주승은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객쩍은 신세타령을 하는 심봉사에게 공양미 삼백석이면 ‘눈을 뜰 수도’도 있다고 부축입니다. 그리고 보면 그 옛날에도 근거없는 의료행위를 하는 무면허 의사들이 도처에 숨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간사해서 공양미 삼백석에 눈을 뜰 수 있다는 허황한 희망을 품게 된 심봉사는 입이 가벼운 사람이었던지 딸 청이에게 전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청이는 임당수를 지나는 뱃사공들이 제물로 바칠 처녀를 산다는 도사공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제물로 사달라고 청합니다. 이리저리해서 청이는 임당수에 제물로 바쳐지고, 공양미로 바칠 삼백석을 얻은 심봉사는 몽운사에 시주를 하지만 눈은 떠지지 않습니다. 한편 임당수에 뛰어든 청이를 동해 용왕이 구해서 연꽃이 담아 세상으로 내보내고, 연꽃을 본 뱃사람들이 건져 왕궁에 바쳤다는 것이죠. 연꽃에서 나온 청이를 본 왕이 왕비로 삼았고, 청이는 아비를 걱정하여 맹인잔치를 열었는데, 잔치에서 만난 아비를 알아보고 부르는 바람에 놀란 심봉사가 눈을 뜨게 되었다는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우리의 고전을 그대로 적으면 읽어도 별다른 느낌이 없을 터인데, 작가는 우리가 아는 주요 등장인물에 조역을 대거 배치하고 있습니다. 열다섯 심청을 둘러싼 삼각관계 귀동이와 윤상이입니다. 귀동이 어머니가 청이네 집을 제집처럼 도와주지만 정작 청이의 마음은 건너 마을 장상서 댁의 서자인 윤상에게 끌리는 모양입니다. 외로운 처지가 비슷해서일까요? 부모보다는 사랑을 선택하는 요즈음 젊은이와는 달리 청이는 아버지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선택을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평생을 눈 못 보는 아비를 봉양해야 하는 자신의 신세에 절망하였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려운 살림임에도 밥투정이나 하고 투전판을 기웃거리는 아버지를 둔 딸이라면 충분히 절망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게다가, ‘너나 나나 아버지답지 않은 아버지 때문에 고생이구나’하는 윤상의 말이나, ‘오매불망 눈 뜨기를 원하는 아버지를 위해 자기를 송두리째 바칠 수 있다면, 그것은 부질없는 삶을 결말지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이가 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는 심청의 모습에서 유추하게 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또 다른 장치를 두었습니다. 심청과 심봉사가 천계의 자미원에서 죄를 짓고 인간세계로 귀양온 몸으로 죄를 씻어야 하는 숙명이라는 점입니다. 청이는 심지어 죽음으로 아비를 봉양하는 모습으로 상제의 용서를 받게 되지만, 심봉사는 작가가 새롭게 투입한 계투요원 애랑이라는 창부에게 홀려 딸이 목숨과 바꾼 돈을 홀딱 빼앗기고, 그나마 남은 돈마저도 마무리투수 뺑덕어미에게 빼앗기고 빈털터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심봉사의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구제받을 수 없는 바닥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아비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 청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심봉사를 구원의 길로 안내하기 위하여 작가가 배치한 장치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청이의 영원한 보디가드 윤상은 구중궁궐에 숨겨진 암투의 희생양이 될 뻔한 청이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칩니다. 청이는 윤상의 상여를 붙들고 “만약 사람이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이렇듯 한 생애를 걸고서야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생에 저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오라버니를 사랑하고 그 사랑 속에서 행복을 얻음이 아니요, 앞 못 보고 어리석은 아비를 구하여 바른 길로 제도하는 그것이었나 봅니다.(386쪽)”라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작가는 사람은 미리 정해진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천계의 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삶에 끼어들어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천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합니다만,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모습은 별로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연인 심청>이 계기가 되어 우리 고전을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한 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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