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의 세계사 - 인류의 문명을 바꾼 7가지 금속 이야기
김동환.배석 지음 / 다산에듀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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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기업에서 만든 광고에서 보면 우리가 실생활에서 쓰는 다양한 도구에서 금속을 제외하면 남는 부분이 별로 없어 웃기는 모양새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철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금속이 우리의 실생활을 편하고 윤택하게 해주고 있는지 아마 우리는 잘 모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김동환, 배석박사님 역시 <금속의 세계사>에서 ‘금속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서문을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인류를 1만년 전 우연히 금속 물질을 사용하기까지 무려 300만년을 오로지 흙과 돌만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하여 허덕여왔던 것인데,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로 단지 1만년 만에 경천동지할 변화를 일구어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짧은 시간에 금속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금속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왔는지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금속의 세계사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수십 가지나 되는 금속들 가운데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구리, 납, 은, 금, 주석, 철, 수은 등 일곱 가지의 금속이 우리에게 다가온 과정을 뒤쫓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고고학적 성과는 물론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모아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제일 처음 실생활에 끌어들인 금속은 구리였습니다. 고고학자들이 찾아낸 자료들을 보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구리제품이 발견된 곳은 이스라엘의 북동쪽, 요르단 국경에 가까운 텔 타프입니다. 이곳은 기원전 5100-4600년에 형성된 고대 유적지인데 대규모 저장시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2007년 이곳을 발굴하는 동안 길이 41밀리미터 길이의 부식된 구리 송곳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송곳은 이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구리 성분으로 만들어졌고, 놀랍게도 흑해연안의 그루지아공화국에서 나는 구리로 만들어졌고, 지표상에서 얻을 수 있는 구리가 아니라 제련과정을 거친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이렇게 고고학적 사실들도 매우 흥미로운데, 구리에 관한 이야기를 로마황제 카이사르가 권력을 잡은 다음 자신의 얼굴을 새겨 넣은 동전을 쓰도록 한 사실을 들어 구리가 우리의 실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장소라고는 해도 외국에 있는 장소는 머리에 쉽게 떠오르지 않는 점을 감안하여 저자들은 상세지도를 곁들이는 친절함에 더하여 현지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사진도 첨부하는 성의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당연히 유물의 사진을 기본이구요. 물론 대부분의 금속들이 외국에서 먼저 사용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야기속에 등장할 틈이 없을 것이라서 섭섭해하실 분들을 위하여 우리나라의 금속사용기술 등에 관해서도 빠트리지 않는 자상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옛날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놋그릇에 관한 이야기를 구리편에서 소개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된 원인(遠因)이 바로 조선이 개발한 우수한 은제련법을 일본에 전수해주었던 것이라는 사실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서 김감불과 김검동이 함경도 단천에서 채굴되는 납을 가지고 순도높은 은을 더 많이 제련하는 단천연은법을 개발해내는데 성공했다는 기록을 인용하면서, 이는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最高)의 은 제련법의 하나로 중국이나 일본, 또는 서양의 제련법에 비해 순도가 더 높은 은을 추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단천연은법은 중국과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하는데, 특히 일본에 전해진 단천연은법은 일본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대규모의 은이 매장되어 있었지만, 제련기술이 없어 방치되었던 것인데, 바스코 다 가마의 동인도항로의 발견에 이어 중국으로 진출한 유럽의 상인들은 일본의 은과 중국의 자기 등을 엮는 삼각무역을 키우면서 일본은 전세계 은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늘어났던 것이고, 이를 통하여 부를 축적한 일본은 네덜란드로부터 총기류 등을 수입하여 조선을 침략하는 기반을 쌓게 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으니,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일본입니다.

 

은 이외에도, 신라의 금관, 조선의 철화백자 등이 당당히 금속의 세계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방대한 자료에 우리의 역사를 녹여낸 저자들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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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어떻게 말할까 -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한 해
윌리 오스발트 지음, 김희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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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안락사가 확대되고 있다고 전하면서 안락사에 대한 다각적 시각을 소개하였습니다.(2015년 3월 1일자 중앙일보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안락사” ; http://blog.joins.com/yang412/13619515)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에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2013년에는 4829명의 네덜란드사람이 의사의 도움으로 죽음을 선택했는데, 네덜란드인의 사망 28건 당 1건 꼴이었고, 2002년보다 세 배로 증가한 것이라고 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두 명의 의사가 인정하면 안락사가 가능한데, 매년 그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락사제도의 도입에 찬성했던 네덜란드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해 초에 KBS 1TV의 [TV 책을 보다]에 패널로 초대되어 영국 작가 조조 모예스의 소설 <미 비포 유>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릴 기회가 있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369126). 이 책은 라포르시안의 [북소리]에서도 소개를 드렸기 때문에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16274). 교통사고로 목을 다쳐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삶이 불가능한 현실에 절망한 윌이 안락사를 결심하였는데, 마침 윌을 간병하게 된 루이자와의 사이에 사랑이 싹트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이 결심을 번복하지 않는다는 줄거리입니다. 방송에서는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안락사 시술을 받기로 한 날이 되기 전에 윌이 폐렴에 걸려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삶이 고달파 죽음을 결심하고 있는 환자가 굳이 정해진 날짜에 안락사를 시행하기 위하여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미 비포 유>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만, 안락사를 선택하는 환자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이 받게 될 심리적 충격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의사조력자살을 다루었던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 http://blog.joins.com/yang412/4074659>가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지 않고 외로운 죽음을 선택한 주인공과 그의 의사친구의 선택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시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던 ‘고개숙인 아버지’에 대한 연민에 묻히고 말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 비포 유>에서도 아들의 안락사 결정을 번복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던 부모가 결국은 아들의 결심에 따르게 되는데, 만약 부모님이 안락사를 결심하는 경우에 자녀들은 어떤 입장일까 궁금해집니다. 스위스의 언론인 윌리 오스발트의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가 참고가 될 것 같아 이번 주에 소개합니다. <미 비포 유>에서도 소개되었지만, 스위스는 자국민이 아니더라도 합법적으로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안락사가 불법인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안락사를 시술받기 위하여 스위스로 간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아버지가 선택한 죽음을 ‘자유죽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유죽음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http://blog.joins.com/yang412/13302734> 가운데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너무 늦게 죽고 몇몇 사람들은 너무 일찍 죽고 있어’ 그래서 “알맞은 때에 죽어라”하고 차라투스트라는 가르친다고 합니다. “삶을 완성시키는 자는 희망을 가진 자와 맹세하는 자들에 둘러싸여 승리에 찬 죽음을 맞는 것처럼 인간은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원하기 때문에 나를 찾아오는 자유로운 죽음을 권한다.(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25쪽, 민음사 2004년)”라고 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작가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에서는 자살을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금기시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였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이란 무수한 선택으로 구성되는 것인데, 탄생의 순간부터 죽어가는 과정이 삶이라고 한다면, 어느 시점에서 죽기를 선택하는 것 역시 각자의 삶의 주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으로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장 아메리는 “자유죽음은 부조리하지만,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자유죽음이 갖는 부조리함은 인생의 부조리를 늘리는 게 아니라 줄여준다. 적어도 우리는 자유죽음이 인생과 관련한 모든 거짓말을 회수하게 만든다는 점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 오로지 그 거짓이라는 성격 때문에 괴롭게 만든 것을 자유죽음은 원점으로 되돌려놓는다.(장 아메리 지음, 자유죽음 249쪽, 산책자 펴냄, 2010년)”라고 말합니다.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의 범주를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에서는 저자의 아버지가 선택한 조력자살로까지 확대한 것입니다.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의 저자 윌리 오스발트는 아흔 살인 아버지가 자유죽음을 결정하자,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면서 자유죽음에 대한 자신의 시각이 이중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독자를 위한 서문에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끊임없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내 문화권에서 흔히 그러하듯 죽어감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금기시할 필요가 무엇이냐 하는 물음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한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여기는 사람일지라도 인간의 품위 있는 죽음이라는 주제의 논의에는 동참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썼다(8-9쪽)”라고 전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인이 늘어가는 추세인데, 많은 노인은 이제 인생에 넌더리를 낼 정도로 늙어, 생의 마지막 시절을 곤궁하고 비참하게 보낼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아침 뉴스는 독거노인들의 시신기증이 늘고 있다고 전합니다(2015년 3월 8일자 머니투데이 기사. “버림받는 노인들…‘죽으면 내 시신 좀 가져가 주오’”). 자신의 시신을 의학발전과 질병치료에 기여할 연구목적으로 이용해달라는 숭고한 의미가 시신기증에는 담겨 있습니다.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밟아야 할 학습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해부나 새로운 수술기법을 연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독거노인들의 시신기증의 배경에는 “자신이 죽고 나서 자식들이 장례도 치르지 않을 것 같으니 스스로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이유가 더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장례비용 때문에 부모의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자녀도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사회복지의 구조적 결함으로 생기는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순리적으로 맞아야 할 죽음을 강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드는 것입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자유죽음을 희망하는 고모가 조력 자살단체의 도움으로 죽음을 맞았다고 하면서 자기도 그런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정작 어머니는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뇌종양으로 남편보다 먼저 죽음을 맞게 되었고, 그녀의 희망대로 수술이나 화학치료를 받지 않고 묵묵히 죽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미국계 회사의 대표이사를 지낸 저자의 아버지는 상당한 재산을 모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두 아들에게는 각각 2만 프랑을 남겨줄 것이며, 나머지 재산은 어머니에게 가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정작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면서 공개된 유언장에는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두 아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던 아버지는 재산규모를 자녀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저자는 이따금씩 돈다발을 안겨줘야 하는 미성년자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아서 유산을 얼마 받을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아버지가 가끔씩 주는 돈을 감사하게 받아썼던 모양입니다.

 

“아버지의 평생에 걸친 조급함, 어렸을 때부터 나를 따라다닌 그 찍어 누르는 강제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통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았음에도. 이런 나 자신이 이기적이고 냉정하게 여겨졌다.(84쪽)”라고 적은 것처럼 저자는 아버지 생애의 마지막 시기를 함께 하면서 아버지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를 기록하고, 살아오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을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자유죽음을 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저자의 아내는 생각이 달랐다고 합니다. 저자의 아버지가 고통스러워하는 우울증이 노인이면 흔히 앓는 병으로 치유가 가능한 것으로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아픔도 당연히 인생의 일부이며 죽어 가는 과정에서 아마도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며 중요한 의미를 일깨워 주는 것(85쪽)”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저자 역시 아내의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아버지 편에 서기로 했다면서도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저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에 동행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스위스 법에서는 유산상속권을 가진 자가 자유죽음에 동행하는 경우, 개인적 이해관계라는 동기를 의심받게 된답니다. 한편 저자의 아버지가 준비한 ‘사망의 경우’라는 제목의 서류는 참고할만합니다. 형제 각자가 받는 유산이 균형을 이루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것은 물론, <가장 먼저 할 일>, <부고>, <장례 절차와 규모>, <마지막 유지>, 심지어는 장례식에서 낭독할 고인 이력과 서신으로 부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 명단에 이르기까지 당장 장례를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정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아내를 제외하고는 가족 모두 저자의 아버지가 선택한 자유죽음을 수용하는 분위기였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가 만나온 베티나여사가 동의하지 않아 아버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인생의 기쁨을 충분히 누릴 수 없었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자책하였고, 아버지가 선택한 자유죽음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자녀들이 사무적인 변호사처럼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죽더라도 가까웠던 사람들만큼은 계속 평안하고 즐거운 삶을 이어 가지 바랐던 것인데, 베티나 여사가 괴로워하는 모습 때문에 마음 아파했다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다른 사람의 평안을 자기 의견대로 주무르려는 사람이야말로 월권과 오만이라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99쪽)”이라며 아버지를 설득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자유죽음을 적극 권장하는 모습입니다.

 

충격이었던 장면은 아버지 생의 마지막 날, 저자는 형과 함께 아버지의 죽음에 동행하고 그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흐린 잿빛을 머금어 창백해 보이는 푸른 하늘은 천천히 아침 햇빛의 서늘한 노란빛에 잠겨 든다. 오늘은 화창한 봄날이다. 죽기에 이 얼마나 좋은 날인가! 나는 이미 어제부터 오늘 어떤 옷을 입을지 궁리해 두었다.(136쪽)” 과연 얼마나 많은 자식들이 부모가 스스로 정한 죽음을 맞는 순간에 입을 옷을 고를 수 있을까요? 뿐만 아니라 모두 둘러 앉아 건배까지....? 자살하는 사람의 일반적인 심리는 복잡하기 때문에 주저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 조력자가 준비한 나트륨펜토바르비탈을 건네면서 “한스 그거 굉장히 써요”라고 말하자 “아, 괜찮아요. 인생에서 쓴맛은 충분히 보았소”라면서 죽음의 약을 단숨에 들이킬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이는 “품위로 이어지는 영원한 인생, 곧 존엄으로 빛나는 인생을 원한다면, 정신을 갈고 닦을 노릇이다. 이 책이 우리의 정신을 키워갈 계기를 마련해 주기 기대한다.(174쪽)”라고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췌장암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로 암을 이겨낸 카네기멜론 대학의 포시교수의 방식이 더 좋습니다.(제프리 재슬로 지음, 마지막 강의, 살림펴냄, 2008년; http://blog.joins.com/yang412/10248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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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을 용기 - 정신과 전문의가 찾아낸 기적의 금연 치유력
전지석 지음 / 스토리3.0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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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 전에 금연에 성공하였음에도, 금연에 성공하는 비결을 담은 책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금연에 성공한 것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담배를 즐기는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이면 꼭 내년에는 금연을 해보겠다고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정부가 담배값을 올리면 담배를 끊겠다고 하지만 그 역시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담배값 인상폭이 큰 탓인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지 지켜볼 일입니다.

 

저 역시 대부분의 담배를 피우시는 분들 처럼 초등학생 때 뻐끔담배를 피워본 것이 첫 경험이었습니다. 선친께서 담배를 피우시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었겠지요. 본격적으로 담배를 피운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생시절, 그것도 막바지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초조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학원의 어두컴컴한 복도구석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담배를 한 모금 빨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도 간다지만 친구 따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바로 흡연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담배피우기는 일취월장 늘어서 삼사년 만에 하루 두 갑을 피우는 골초가 되었습니다. 밤샘 공부를 하다보면 깨어 있는 시간이 두 배가 되니 연기로 날려 보내는 담배역시 두 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피우던 담배를 끊은 것은 결혼을 앞둔 해 여름에 하계진료봉사에서 무리를 했던 탓인지 심장박동에 무리가 생기면서입니다. 과로로 인한 것일 터이나 담배는 물론 커피와 술까지 끊는 것이 좋겠다는 주치의의 권고를 받았는데, 커피는 아내의 기호품이라서, 또 술은 장인어른께서 좋아하시는 바람에 각각 끊을 수 없었고, 담배만큼은 오히려 주변의 도움으로 금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금연을 결심하고 일주일 정도는 그저 손이 가는대로 하루 두세 가치 정도 피우다가 시나브로 끊게 되었는데, 금연으로 인해 심심해진 입과 손을 위하여 은단을 엄청 애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체로 3.3.3.의 법칙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3주일을 버티고, 다음 3개월, 그리고 3년을 버티면 담배에 대한 호기심마저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정신의학을 전공하신 전진석 선생님께서 쓰신 <담배 끊을 용기>는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금연에 성공하지 못한 분들이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그런 책 같습니다. 제 경우는 건강 상의 문제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큰 어려움 없이 금연에 성공했습니다만, 금연을 훼방하는 요소가 많은 분들에게는 보다 정밀한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자는 무작정 의지로 담배를 끊으려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담배를 처음 피웠던 기억’을 되짚고, ‘내가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따져본 후 ‘내 마음속 결핍의 근원과 상처를 치유’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억눌리는 흡연욕구가 도박과 같은 또 다른 중독성 행태로 전환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금연을 방해하는 요소 가운데는 금연에 대한 착각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여섯 가지의 착각을 소개하고 있는데, ‘독해야 성공한다’는 말을 첫 번째로 꼽았습니다. 농담이겠습니다만, 금연한 사람은 지독한 사람이니 가까지 하지 말고 합니다. 그런데, 제 경우는 그렇게 독한 구석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담배를 피울 때는 흡연에 좋은 효과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 효과라는 것이 피상적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반면에 폐암이라거나 만성호흡기질환과 같은 피해는 구체적이고 근거가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금단증상을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저는 심리적인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자의 경우는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이 좀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만, 제 경우는 엄청 졸렸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여름휴가철이라서 집에서 틀어박혀 삼시 세끼 밥을 먹고는 잠을 잘 수 있어 담배를 피울 짬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금연은 뭐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저 담배피우기를 그만 두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시작이고, 담배갑을 멀리 두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시작하십시오. 시작이 성공의 절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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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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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은 얼마 전에 북 콘서트에서 만났던 김탁환작가님이 독서에세이 <읽어가겠다; http://blog.joins.com/yang412/13552374>에서 소개한 작품입니다. 마침 쓰고 있는 스페인여행기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다녀온 이야기를 쓰고 있어서 꼭 읽어보려고 마음 먹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술비평가, 소설가, 사회비평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영국작가 존 버거의 소설입니다. 존 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하나의 장편 소설이면서도 모두 8개반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독립적이기도 해서 단편소설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의 독자들에게 주는 서문을 보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 드러납니다. “죽은 이들이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건 여러분도 나만큼-아니 어쩌면 더-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면 망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 합니다. (…)그런데 죽은 이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제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저 전통적이고 자연스럽고 인간다운 행위였죠. 그러던 것이,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이면 전부 ‘퇴물’ 취급을 하는 세계 경제질서에 저항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 너무나 다른 여러 역사 속의 망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서문에서 보는 것처럼 작가임을 암시하는 주인공 존은 리스본, 제네바, 마드리드 아일링턴 등 유럽의 여러 장소를 다니면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만나고,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읽다보면 존이 만나는 사람들은 죽은 이들이고, 그들이 죽을 때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존이 리스본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첫 번째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습니다. 오월의 끝자락에 포르투갈 사이프러스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어느 광장에서 존이 우연히 조우한 노파가 어머니였습니다. “얼굴이 보이기 한참 전에 걸음걸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도착하기 전에 앉을 생각부터 하는 그 걸음걸이. 내 어머니였다(12쪽)” 그렇군요. 작가는 곁을 떠난 사람들 중에서 어머니를 가장 만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망자들은 죽으면 지상에 머물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그렇다고 리스본에 와본 적이 있었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장소는 그냥 아무 장소가 아니라 만남의 장소인 것입니다. 어머니가 리스본을 머물 곳으로 선택한 이유는 전차가 다니는 몇 안 되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존은 어머니와 이스트 크로이든에서 사우스 크로이든까지 갔다 돌아오는 194번 전차를 즐겨 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와 동행하고 있음에도 위층의 맨 앞자리에 앉고 싶어 했습니다. 앞자리에 앉고 싶어 했던 것은 운전을 하는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모퉁이를 돌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합니다.

 

리스본을 여행할 때 가이드는 리스본이 아홉 개의 구릉 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했는데, 리스본 대지진의 기록을 정리한 니콜라스 시라디는 <운명의 날; http://blog.joins.com/yang412/13586205>에서 일곱 개의 구릉 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적고 있어 헷갈리고 있는 점이 명쾌해지는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도시가 몇 개의 구릉 위에 세워졌는가에 대해서는 좀처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로마처럼 일곱 개라 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숫자야 어찌됐든 도심은 가파른 절벽 같은 암반에 터를 잡고 있어서 몇 백 미터나 솟아올랐다가 곤두박질친다. 그리고 몇 세기를 지나는 동안 가파른 그 거리들은 현기증을 가져 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왔다.(20쪽)” 바로 그렇습니다. 구릉이라는 것이 높이가 애매하면 합칠 수도 있고 떼어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코메르시우광장은 아무리 사람들이 많아도 늘 반쯤 빈 듯한 인상을 준다(24쪽)’라는 표현도 어쩜 그렇게 적절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어머니와의 만남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던 탓인지 리스본에서의 이야기가 가장 긴 것 같습니다.

 

제네바에서는 딸 카티아를 만났고,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는 기숙학교의 교사였던 켄을 만납니다. 생뚱맞아보이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죽은 이들이 기억하는 과일들입니다. 멜론, 복숭아, 자두, 체리, 큐치 등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사상차림에 등장하는 조율시이(棗栗柿梨)라고 해서, 대추, 밤, 감, 배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일링턴에서는 학교친구 휴버트, 그리고 오드리를 만납니다. 대체적으로 이야기는 감정을 최대한 자제한 내레이션처럼 건조한 편입니다. 망자와 얽힌 이야기라서 일까요?

 

때로는 기억 속에 묻힌 옛이야기를 끄집어 내 곱씹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것이 아픈 추억일지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저의 속살까지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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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징비록 - 지옥 같은 7년 전쟁, 그 참회의 기록
조정우 지음 / 세시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지난 해 이순신장군의 리더십을 담은 소설 <이순신 불멸의 신화; http://blog.joins.com/yang412/13475791>로 화제를 모았던 조정우작가가 해전에 이어 육지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운 장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징비록>을 내놓았습니다. 요즈음 대하드라마로 방영 중인 주제이기도 합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징비록>은 조선 중기 문신 유성룡이 임진왜란 동안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입니다. ‘징비(懲毖)란 <시경> 소비편(小毖)편에 나오는 豫其懲而毖後患(예기징이비후환), 즉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라고 풀이하는 구절에서 제목을 딴 것입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따져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보입니다.

 

<소설 징비록>에서는 왜란 기간 동안 왜군을 떨게 만들었던 육지전의 명장군 네 분의 행적을 뒤쫓고 있습니다. 60전 60승을 기록한 육전의 신화 충의공 정기룡장군, 역시 수많은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홍의장군 곽재우, 한줌도 안 되는 군졸들을 중심으로 민간인들까지도 총동원하여 진주대첩을 이끌어 낸 충무공 김시민장군, 그리고 이름만으로도 왜군들을 떨게 만들었다는 김덕령장군입니다.

 

임진년 왜병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변변치 않은 관군을 궤멸시키며 단숨에 한양을 거쳐 평양성에 이른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임진년에 왜군이 전라도를 점령했다면, 아마 조선왕조는 그것으로 끝났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유는 전라도의 곡창을 지킬 수 있었기에 군량미를 실어 전선으로 나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왜병은 부산포에 상륙해서 한양까지 천리길을 싸워가며 갔느냐 하는 점입니다. 출병하기 전에 조선에 첩자를 투입하여 지리며 사회 분위기까지 철저하게 조사해갔다는 왜군이 말입니다. 당연히 한양에서 가까운 제물포에 기습상륙하여 단숨에 한양을 들이쳤더라면 전쟁이 터진 후에 우왕좌왕하던 조선왕실의 모습으로 보아 단숨에 항복을 받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기에는 전라도 해안을 지키던 이순신장군에 대한 사전정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규모 함대로 기습공격을 가하거나, 아니면 제주섬과 남해안의 중간 정도를 지나면 감쪽같이 우회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두 번째 궁금한 점은 개전 초기에 부산포에서 한양까지 파죽지세로 몰아가는 대신 전라도 곡창지대를 확보하여 전장 가까이에서 군량미를 확보하는 전략을 취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바다에서 이순신장군을 만나기를 피했다면 정유재란 때처럼 전라도를 침공하여 수군의 근거를 육지를 통하여 무너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점입니다. <소설 징비록>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쟁 초기에는 의병을 모집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군들은 가는 곳마다 마을을 불태우고 조선백성들을 도륙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후환을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미리 몸을 피한 백성들이 산중으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펼치게 되면 발목을 잡히는 꼴이 될 수밖에 없었을 터입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를 얻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가 <소설 징비록>에서 밝히고자 했던 것은 특히 의병장으로 전쟁에 참가한 세분의 장수는 물론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 역시 백성들의 헌신적인 참여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승리였다는 점에서 백성들의 적극적 참여에 주목하였다고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유부단하며 도망칠 궁리나 했던, 그리고 충성을 다 바친 장수들을 의심하여 징계를 하거나 심지어는 죽음으로 몰아넣은 선조와 왕을 둘러싸고 전쟁의 승리보다 당파싸움이 우선이라는 시각을 보였던 형편없는 관료들의 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에도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분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함은 아닐까 싶습니다.

 

듣기로는 김덕령장군의 활약은 왜란 중에나 왜란이 끝나고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전라도에서 활약한 장수들의 공적을 조사하러 왔던 이덕형이 조사를 마치고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파직을 당하는 바람에 조사된 내용이 조정에 보고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묻혀있는 역사를 발굴해서 국민 모두가 알도록 하는 일은 우리의 몫인 것 같습니다. 조정우 작가께서 앞으로도 숨어 있는 자료들을 발굴하여 재조명하는 작업을 꾸준하게 해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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