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사기꾼들 - 노벨상 수상자의 눈으로 본 사이비 과학
조르주 샤르파크 외 지음, 임호경 옮김 / 궁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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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타로점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하는 일이 꼬인다 싶어 답답한 마음에 위로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점이라는 것이 마음의 위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언뜻 눈에 띄어 집어든 책입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눈으로 본 사이비 과학’이라는 부제가 눈에 띈 탓일 것입니다. 점성술과 마술, 텔레파시, 차력 등의 본질을 논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신비의 사기꾼들>이라는 제목은 너무 나갔다 싶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비판의 날을 세우는 분들을 회의론자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마이클 셔머의 <과학의 변경지대; http://blog.joins.com/yang412/12502415>에서는 과학과 비과학 그리고 그 경계에 있는 학문들을 논함으로서 과학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셔머는 이 책에서 창조론, 대학살 반대론, 원격 투시, 점성술, 바이블 코드, 외계인 납치, 빅풋, UFO, 프로이트 정신분석 이론, 기억 회복 등을 비과학, 의사과학, 엉터리에 속하는 것들이라고 분류하였습니다. 그래도 사기꾼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삼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비의 사기꾼들>의 저자들인 조르주 샤르파크와 앙리 브로크는 직선적인 분들인가 봅니다. 저자들은 인류가 수백만년에 걸쳐 진화해 오면서 험난한 투쟁과 생존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온 끝에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대견한 오늘의 문명을 만들어냈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사회적 행동양식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사회구성원들은 나름대로 과학적 사고를 지니고, 그것을 제어할 줄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본능적 반감으로 과거에 집착하면서 미신, 점성술, 초자연현상, 교묘한 트릭에 이끌리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자신의 창조적 자질로 창출해낸 변화에 적응하는 데 있어서, 사이비과학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점성술사나 마술사가 대중의 눈을 홀리는 방법을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흔히 누가 직접 보았다고 하면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그런 경향 역시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억의 과정이라는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상기하려 할 때, 일종의 구축작업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구축 작업은 본질상 재구축 작업, 일종의 조작(꾸며내기)이기도 하다. 바로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 즉 모종의 신비적 현상에 ‘의심의 여지없는 증거로 작용하는’ 체험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이 증언을 매우 신중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47쪽)”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해서 달표면에 꽂아놓은 성조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바람이 없는 달에서 가능하지 않다면서 아폴로계획은 거대한 연극이라는 음모론이 허구라는 설명도 재미있습니다. 즉, 우주인들이 꽂은 성조기는 깃대에 직각으로 이어진 수평 가지에 성조기를 매달았는데, 깃대를 꽂을 때 힘차게 흔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기저항이 없는 달표면의 특성상 성조기는 관성에 따라서 오랫동안 펄럭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소 아쉬움이 남는 점은 체르노빌 사고를 인용하면서도 그로 인한 방사선의 위험이 그때까지 원폭실험 등을 통하여 대기중으로 배출된 방사성물질보다 양이 많지 않다고 설명하면서, 방사선의 강도가 천연 방사선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 방사선을 무조건 위험하게 보는 것은 우습기 짝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이 근무하고 있는 CERN을 격렬하게 비난한 물리학자의 반핵주의에 기반한 주장을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 것도 적절치 않아 보였습니다. 물론 어떠한 인위적 방사선도 존재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완전히 중단해햐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옳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유전자변형작물을 지지하는 견해 역시 적절한가 의문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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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 비정상의 시각으로 본 정상의 다른 얼굴
조던 스몰러 지음, 오공훈 옮김 / 시공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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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입니다(http://www.normal.go.kr). 박근혜대통령님께서 2013년 광복절을 맞아, “우리사회의 비정상을 바로 잡아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어갈 것”을 선언한 것이 시발점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부정부패, 부조리, 불법, 편법 등의 ‘비정상’을 바로 잡아, 법과 원칙이 바로 서고, 투명하고 효율적인 국가와 사회를 만들어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 ‘정상’을 구현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은 쉽게 구분이 될 것 같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모호한 구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관행이라는 인식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정상을 분명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을 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의 조던 스몰러교수가 쓴 이 책의 원제는 <The other side of normal>입니다. ‘정상의 이면’으로 번역을 하면 평범해 보일 것 같아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우리정부의 국정 아젠다를 끌어온 것같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은 정신의학 영역의 화두가 되고 있는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정신의학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을 길가름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합니다.

 

저자는 에드거 앨런 포가 <도난당한 편지>에 적은 “너무나 주제넘고 너무나 명백하며 너무나 자명하여 마땅히 고려해야 할 사항을 그냥 모른 척 간과하고 지나가버리면, (바로 이 때문에) 지적 능력이 고통을 받게 되지”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파악하다’라는 제목의 서문을 시작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도난당한 편지>에서는 누군가의 정치적 생명이 걸린 중요한 편지를 훔친 도둑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감추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중심 줄거리입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인용입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왔지만 기술적 장애와 심리적 장애로 인하여 제약을 받아왔다고 주장합니다. 기술적 장애라 함은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기에 마땅한 도구가 없었다는 것이고, 심리적 장애라 함은 저자가 ‘도난당한 편지 효과’라고 부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너무 자명한 일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어서 쉽게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문제입니다. 저자는 ‘정상’을 정의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이라는 말을 ‘올바른’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정상이라 함은 ‘올바르다, 표준이다, 혹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저자는 18세기 프랑스 생리학자 프랑수아 요제프 빅토르 브루세가 “병적 측면은 본질적으로 정상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건너뛰지 않고’ 정상적인 것으로부터 병적인 것까지 두루 계속해서 지나가기 때문이다.(12쪽)”라고 정리한 정상의 의미에 공감한다는 것입니다.

 

서문의 말미에 이 책의 구성이 잘 요약되어 있어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우리는 ‘정상’의 정의를 고찰한 다음, 이어서 과학에서 가르치는 생물학이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또 기질과 성격의 유전학적 뿌리를 탐구한 다음(2장), 생애 초기 사람의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3장). 이어지는 장에서는, 아동기와 성인기에 핵심을 이루는 정신적 기능 발달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 인지와 공감(4장), 애착 및 신뢰의 생물학(5장), 성적 매력의 근원(6장), 감정과 공포는 어떻게 학습과 기억을 형성하는가(7장)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내용을 쭉 따라가며, 우리는 이 분야에서 발견된 내용을 통해 이른바 정신 질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8장에서는 우리가 공유한 인간성, 우리 삶의 유일무이한 궤적, 우리가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의 측면에서 ‘정상의 생물학’이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16-17쪽)”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정신질환의 기준에 들어맞는 증상을 보인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해 [북소리]에서 소개했던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http://blog.joins.com/yang412/13392396>을 기억하신다면 이 질문에 공감하실 것입니다.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교본으로 사용되고 있는 정신장애진단편람 3판(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DSM-III)과 3판의 개정판(DSM-IIIR)을 정리하는 작업에 참여하였고, 정신장애진단편람 4판(DSM-IV)의 작성책임을 맡았던 듀크대학 정신의학과의 앨런 프랜시스교수는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에서, 최근 만들어진 DSM-5에서는 정신장애의 진단기준이 지나치게 완화되어 정신질환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그 이면에는 정신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제약회사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제가 전공하고 있는 병리학에서도 정상을 잘 이해해야 비정상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을 정의함에 있어서도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일이 중요할 것입니다. 문제는 정상이 무엇인지 밝히는 작업이야말로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저자는 먼저 정신질환을 정의하기 위하여 정상과 비정상의 정의를 내리는 일이 시간과 장소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역사적 순간이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서양의학이 주도해온 정신질환의 진단기준은 불안정한 마음과 고장 난 뇌와 같은 극단적인 증상만 분류하여 장애를 구성해왔지만, 이제는 정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마음과 뇌의 기본구조는 물론, 마음과 뇌가 어떻게 맞닥뜨리는 환경과 경험을 파악하는지 이해하면, 우리는 기능 장애가 어디서 발생하며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 체험의 범위에서 나타나는지 알아낼 수 있다.(49쪽)”라고 설명합니다.

 

사실은 ‘정상’이라는 개념에는 프랑스 출신의 천재 수학자 아브라함 드 무아브르가 18세기에 정립한 ‘정규분포’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통계학적 기술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정규분포는 물리학적 현상, 생물학적 현상 심지어는 사회현상에 이르기까지 경우의 수가 분포되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래프에 나타내면 평균을 기준으로 하여 양쪽이 대칭을 이루는 종모양을 나타내게 됩니다. 즉, 정규분포는 평균과 분산이라는 두 개의 숫자로 정의되는 개념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를 어디에서 끊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낮과 밤의 경계선은 없다’라는 아주 재미있는 비유가 나옵니다. 흔히 우리는 밤과 낮이 분명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물어보면 분명한 기준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밝은 낮과 어두운 밤은 분명 알지만, 해가 지면서 어둠이 내리는 것은 시나브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몰이라는 현상을 참고할 수도 있겠지만, 지역적 여건에 따라서 일몰의 분명한 정의가 쉽지 않은 문제가 남습니다. 그래서 정규분포곡선에서 표준편차를 이용하여 정상의 범위를 정하는 방식을 적용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보다 많은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기준을 도출해내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공감이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지는 것이기는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기질, 정서반응, 성격 등에 따라 정신질환에 대한 감수성에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 요소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요? 한 때 인간에 관한 모든 것들이 유전자에 담겨진 유전정보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유전적 요소에 더하여 환경요소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유전정보가 뇌에 작용하여 기질을 만들어 내는 과정과 양육을 통하여 정서반응이나 성격이 완성되는 과정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총론적인 이야기는 어느 영역에서나 전문적인 경향이 있어서 이해가 쉽지 않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호한 상태에서 요약설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이 부분은 생략하고자 합니다. 요즈음 주목받고 있는 후성유전학의 개념을 조금 소개하면, 환경이나 인간이 삶에서 얻는 경험은 뇌에서 일어나는 유전자의 발현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DNA 자체에 흔적을 표시하는 화학적 변화를 촉발하거나, DNA 주위에 있는 단백질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로서 종종 일란성 쌍둥이가 서로 상당히 다른 상태를 보이는 경우를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각론에 해당하는 공감과 믿음, 성적 취향과 기억에 관한 설명 가운데 저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기억에 관한 부분만 정리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나쁜 기억을 지우기 위하여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두려움과 정서 기억의 생물학’이라는 부제를 달아 나쁜 기억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7년 전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온 국민이 광우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공포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까지의 과학적 데이터들은 크게 우려할 사항이 아님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만, 특정 목적을 가진 세력들이 위험을 지나치게 부풀려 국민들의 눈을 가렸던 것으로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역시 저만의 잘못된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2008년 광우병 사태처럼 우리가 두려움의 위력에 유독 민감한 까닭은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에서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뇌는 자연선택을 통하여 두려움을 느끼도록 신경망이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세상이 온통 힘센 동물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우리의 조상은 살아남기 위하여 위험을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도록 진화된 신경조직을 갖추게 된 것인데, 이와 같은 진화의 산물이 지구의 우세종이 된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란 ‘인지된 위협에 대해 보이는 정서 반응’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특히 조건화된 경우 가중된 효과를 나타냅니다. 동료 가운데 닭고기를 먹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닭에게 쪼이는 무서운 경험이 고착된 때문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오히려 닭고기를 먹음으로서 무서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분의 경우는 공포의 대상을 회피하는 것으로 이미 두려움을 극복하는 기제를 갖추었기 때문에 도전이 필요치 않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선택한 것처럼 공포의 기억을 잊는 방식으로 회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불안해하는 마음이 깔려있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극단적으로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문제의 원인이 되었던 사건으로 돌아가 해결방법을 찾아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건사고가 많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과 같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사건을 겪은 당사자들이 조건화된 불안장애에 빠지는 경우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고 진단합니다. 외상이 심신을 쇠약하게 하는 심리증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는 광범위한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때로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우리의 기억이 시냅스에 새겨져 있는 것이라서 가소성이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학습하는, 즉 공포소멸을 통하여 불안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분자 수준에서 공포소멸이 가능한 약물이 개발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저자는 뇌와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새로운 문을 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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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박성혁 지음 / 다산3.0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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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두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름대로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어서인지 대학입시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입시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관심이 가는 책읽기였습니다. 사실 ‘공부가 유일한 재미였어요’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요즈음 청소년들은 공부를 잘 해야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이 귀에 딱지가 않을 정도로 듣고 있을 것입니다만, 그 옛날에는 학교에서 수업 열심히 듣고 숙제를 빠트리지 않고 해가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도 잘 어울려 놀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을 마루 귀퉁이에 던져 놓고 나가서는 해가 지도록 놀다 저녁 먹으라고 불러야 집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물론 저녁을 먹고 나면 졸다가 잠들기 일쑤였지요.

 

저는 그랬습니다만, 제 아이들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선행학습은 기본이고, 내신 때문에 체육 예능까지 과외를 해야 했으니 힘들었을 것입니다. 공부를 지겨워하던 아이에게 네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부여받았을 역할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흔한 학원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서 실컷 놀다보니 어느 날 갑가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밀려 있는 공부를 따라잡기 위하여 몰입하다 보니 공부가 재미있어지더라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의 저자도 있습니다. 서울대 법대, 연세대 경영대, 동신대 한의대에 모두 합격한 저자가 자신의 과거를 들어 공부가 지겨워진 청소년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에세이를 냈습니다. 아니 이 책은 자신이 공부에 마음을 두기 시작할 무렵, 그저 ‘너를 믿고 있겠다.’라고 하셨던 체육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책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겠습니다만,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합니다. 공부 역시 일단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마음을 굳게 먹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뒤에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책의 어디를 펼쳐보아도 ‘마음’을 먹는 일을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저자는 아마도 이 책을 청소년들이 읽어서 도움을 얻기를 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내용들은 비교적 고학년이 되어야 이해가 될 법한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선을 다했다는 말, 함부로 쓰지 마라. ‘최선’이라는 말은 내 자신의 노력이 나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라는 조정래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의 한 구절을 인용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과연 저자는 공부를 해보려 마음을 먹었다는 중학생 시절에 이 책을 읽은 것일까요? 저자가 이 책을 준비하여 내놓기까지 8년 정도 준비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현재 저자의 나이는 20대 후반을 지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요즈음 10대가 바라보는 것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만하더라도 10대도 이해하기 쉬운 흐름을 만들어가다가, 어느새 ‘공부는 나를 영혼이 강한 사람으로 단련시킨다’라는 제목처럼 공부를 해야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어른들의 상투적인 말을 꺼내놓고 있습니다. 즉,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예능계로 진출하는 꿈을 꾸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들 역시 공부를 잘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설명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연예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데 필요한 것들을 공부하는 일이 자신에게는 최선이겠지만, 그 길을 보다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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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 - 천부적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영어의 역사
필립 구든 지음, 서정아 옮김 / 허니와이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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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를 시작한 지가 벌써 50년 가까이 되고 있습니다만, 영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빌브라이슨의 <빌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http://blog.joins.com/yang412/13471036>에서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영어 단어에 얽혀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 그리고 영어를 둘러싼 미국의 역사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유럽에서 건너온 시점에 머물고 미국 영어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 즉, 인디언들과 이민자들에 관한 이야기 정도에 그쳐 영어의 짧지 않을 영어의 역사를 제대로 조망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국 작가 필립 구든의 <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는 빌 브라이슨과 유사한 구조를 따르지만, 영어의 근원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을 다루고 있어 영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바벨탑 이야기를 인용하여 만국 공통어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만, 인류가 동시 다발적으로 지구상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면 문자는 차치하더라도 당연히 공통적으로 사용하던 언어가 있었을 것입니다.

 

유럽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언어들은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고, 중세까지도 라틴어는 유럽사회에서 중요한 언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실생활에서는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마도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수많은 나라들로 쪼개지면서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토착어가 만들어지고, 그 언어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니 결국 언어라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역량에 따라 생명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영어는 영국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영국에는 처음부터 영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섬나라 영국에 처음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켈트인라고 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사라진 켈트어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기원 1세기 초 로마가 영국을 침략하였고 라틴어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라틴어가 확산되었는데, 400여년을 지배한 로마인이 돌아간 후에는 라틴어를 사용했다는 흔적조차 사라지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5세기 초 로마인들이 물러날 무렵 유럽의 북서부에 거주하면서 호시탐탐 영국 이주를 노리던 앵글로색슨족이 들어오면서 켈트인들은 서쪽으로 밀려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앵글로색슨족들은 문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문자가 없는 고대 영어가 살아남고 켈트어가 현대의 웨일즈어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대 영어는 현대 영어의 바탕이 되었는데, 여기에는 영국을 침공한 바이킹이라던가 노르망디에서 온 노르만족이 영향을 남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든 이민족들 간의 접촉은 언어를 풍부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인데, 영어에 힘을 불어넣은 것은 제프리 초서와 그 뒤를 이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였던 것입니다. 물론 결정적인 것은 영국을 세계의 제국으로 이끈 엘리자베스1세였고, 이어서 미국이 영어를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현재 지구상에서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가장 영향력 있는 언어가 되고 있는 것은 인터넷이라고 하는 기술적 요소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정보가 어떤 언어로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는데, 세계정세는 물론 과학 등 모든 학문분야를 미국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정보들이 대부분 영어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저자는 영어가 형성되고 발전하는데 기여한 다양한 요소들을 꼼꼼하게 챙겨 정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자료를 곁들여 눈으로 보는 재미도 있고, 흥미로운 사건의 경우는 별도 상자에 넣어서 따로 구별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 점은 읽는 흐름을 끊는 부작용은 있지만, 특별한 관심을 둘 수도 있는 장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발견한 진전은 영어의 발전에 인쇄술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적으면서도 금속활자가 구텐베르그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아시에서 발명된 것을 유럽에 소개한 것이라고 적은 것인데, 아쉬운 점은 한국에서 처음 발명했다고 적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그랬습니다.

 

영어가 발전해온 과정에 얽힌 세계사적 사건들이 잘 요약되어 있고, 때로는 영어 단어의 기원을 밝히기도 해서 영어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랫만이야’라는 의미의 'long time, no see'가 피진어에서 기원하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사용을 자제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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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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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100세 노인이 창문을 너머 도망칠 근력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100세 이상 생존한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고는 합니다만, 타인의 도움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분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의문은 그렇다고 치고, 두 번째로 든 의문은 “이 노인은 왜 창문을 넘어 도망쳤을까”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작가가 분명하게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저 양로원에 웅크리고 앉아 <이젠 그만 죽어야지>라고 되뇐 것은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몸뚱이는 늙어서 삭신이 쑤실지라도, 알리스 원장에게서 멀리 벗어나 실컷 돌아다니는 일이 치 친구처럼 여섯 자 땅 밑에 누워 있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지 않겠는가?(10쪽)”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기는 참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를 소진하는 것보다는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찾아나서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의 트렁크를 훔쳐 달아나고,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고도 이를 은폐하기를 반복하는 일이 가능하겠나 싶습니다.

 

어땠거나 사건은 주인공 알란 칼손이 100세 생일을 맞은 2005년 5월 2일 기념파티를 앞두고 스웨덴의 말름세핑 마을에 있는 양로원의 창문 넘어 도망치면서 시작되는데, 버스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이 맡긴 범죄와 관련된 돈 3750만 크로나로 채워진 트렁크를 들고 시외버스를 타고 떠나게 됩니다. 돈을 잃어버린 청년은 알란의 뒤를 쫓게 되고, 알란은 율리우스 욘슨, 베니, 예쁜 언니, 베니의 형 보세를 차례로 만나 범죄조직의 추적을 피하는 과정에서 볼트와 양동이를 살해하지만, 사체를 해외로 빼돌려 수사를 피합니다. 일반인이라면 우발적인 사고로 사람이 죽게 되더라고 이처럼 교묘하게 처리할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이들을 뒤쫓던 범죄조직의 우두머리 예르딘마저도 이들과 의기투합하게 된다는 설정을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진행이 됩니다. 알란이 100세 생일이 되던 2005년 5월 2일부터 스웨덴의 말름세핑에서 시작해서 6월 16일 일행이 인도네시아 발리에 정착하기까지와 1995년 말름세핑에 가까운 플렌에서 태어난 알란이 요양원에서 100세를 맞을 때까지의 행적을 뒤쫓고 있습니다. 알란이 100세가 될 때까지의 행적도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스페인에서 프랑코총통을 만나고, 미국에서는 트루먼대통령과 친분을 쌓게 되며, 이란에서는 처칠의 목숨을 구하고,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다가 그 정보를 모스크바에 건네주지만, 블라디보스톡에 수감되기도 합니다. 한국전쟁기간 중에 북한으로 탈출하여 김일성과 모택동을 만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를 거쳐 파리로 갔다가 이번에는 미국 CIA의 스파이가 되어 모스크바에 다시 잠입하면서 소련이 붕괴되는데 기여하고는 말름세핑으로 돌아와 요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의 얼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인연이 결국은 100세가 되던 날 일으킨 사고를 마무리하고 친구의 부인이었던 아만다와 결혼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알란이 100세가 될 때까지의 삶의 궤적이 007시리즈의 제임스본드보다 허무맹랑할 뿐 아니라, 두 건의 살인이 완전범죄가 성립되는 과정이 허술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세상 사람들이 열광하였다는 것이 신기하기 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최근 판타지물이 주목받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말입니다. 범인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심리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요? 언젠가 이야기가 막히면 등장인물을 죽이고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던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알란의 생애는 큰 흐름에서 보면 정교하게 짜 맞춘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있을 수 없는 우연이 연속된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깨어보니 꿈이었다고 마무리했더라면 훨씬 공감이 갔을 이야기라서 읽고 나서도 허망하다는 느낌이 진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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