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당, 동유럽 - 혼자라도 좋은 감성여행
윤정인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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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동유럽은 여전히 생소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몇 년전에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학회에 다녀오는 길이 쉽지 않았던 탓에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퐁당, 동유럽>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작가는 이미 해외여행의 경력이 7년에 접어든 베테랑 여행가로 나름대로의 여행에 관한 주관이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여행은 계획을 짜는 과정이 더 짜릿하고 재미있고, 실제 여행은 기획했던 것들을 돌아보면서 확인하고, 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께서 동유럽을 여행지로 선택한 것은 아무래도 익숙한 서유럽과 비교해보면 미지의 세계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발음조차도 어려워 순수함이 남아있을 것 같은 그런 곳들을 구석구석에서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고 그리스 등 8개국에 흩어져 있는 23곳을 지그재그로 잇는 여행일정을 짰다는 것인데, 지도에 그려진 여행경로가 너무 현란해서 전체 여행 일정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행지에 대한 설명은 여행경로와는 무관하게 ‘하나, 나만의 도시 지도 만들기’, ‘둘, 낯선 도시에서, 모험’, ‘셋, 동유럽 속, 숨은 매력을 찾아서’, ‘넷, 숨기 좋은 도시에서 잠수 타기’ 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분류로 뒤섞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행지 사이의 이동방식이 설명되기도 하고, 생략되기도 해서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는 정보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행을 떠난 목적이 일상과 사람에 지쳐있었기 때문에 그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고 하면서도, 낯선 사람들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게 되었다는 말씀이 쉽게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무모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해외여행에서 바로 모든 면에서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눈에 띄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혼자 여행하면서 교통편이나 숙소를 챙겨야 하는 부담 때문에 점차 여행사를 통한 여행을 따라가는 것을 선호하게 되기는 했습니다만, 앞으로는 쫓기듯 찍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체류하면서 그들을 느끼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서 저자가 꼽은 독특한 여행지가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작가가 다녀온 23곳의 여행지 가운데 이름이라도 귀에 익은 곳은 10곳이고, 실제로 가보았던 곳은 1곳에 불과해서 <퐁당, 동유럽>에 담긴 작가의 느낌이나 정보가 소중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삽입되어 있는 많은 사진들은 설명이 붙어 있기에 정보로서의 가치가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행지마다 덧붙여 놓은 여행노트에는 그곳에 가는 방법, 그곳에서 꼭 해보면 좋은 것들이나 관련 정보를 잘 요약하고 있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사이트를 밝혀놓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부분도 없지 않았는데,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의 할슈타드에서는 평소에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는데, 작가가 머무는 동안에는 비가 내리는 탓인지 한산했다는 설명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서울과 인천도 아니고 날씨가 나쁘다고 해서 예정된 여행지를 찾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 해외여행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할슈타트에서 머물 때 찾았다는 다흐슈타인산에 오를 때는 날씨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서 복장이나 장비를 갖추지 않은 상태임에도 산에 오르겠다고 하는 작가를 그냥 올려 보낸 매표소 직원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산에 오른 작가의 무모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동유럽이 순수함이 남아 있다고 해도 외진 시간에 외진 장소를 찾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밖에는 통상적으로 볼 수 없는 특이한 여행지를 직접 방문해서 보고 느낀 점을 꼼꼼하고도 유려한 필치로 정리해냈고, 설명을 붙인 많은 사진을 곁들이고 있어 읽는 도중에 정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매력적인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처음 접한 도시에 섞여서 낯선 사람 낯선 공기 안에 있으면, 나도 내가 모르는 낯선 누군가가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설레었다.(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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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수업 천양희 : 첫 물음 작가수업 1
천양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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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열심히 읽고 리뷰를 쓰시는 분들 가운에 작가를 꿈꾸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읽고 리뷰를 쓰고 있기는 합니다만,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에 관한 책에 관심이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첫 물음’이라는 부제가 달린 <작가 수업 천양희>는 천양희 시인의 에세이집입니다. 시인 자신의 시작경험을 담아 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 같습니다. 역시 표지에 있는 “계속 써라! 뭔가 멋진 것을 찾을 때까지”라는 카피를 달아 자신이 없어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글쓰기, 특히 시작에 관한 시인의 생각을 첫 번째 “첫 물음이 내 문학의 ‘첫’이었다”, 두 번째 “계속 써라! 뭔가 멋진 것을 찾을 때까지”, 세 번째 “시는 나의 생업”의 순서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글은 ‘왜 쓰나고요?’라고 질문하고 대답을 하고서는 “첫 물음이 내 문학의 ‘첫’이었다”라고 이어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 시작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는 사이사이에 자신의 시를 인용하면서, 그 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데, 설명을 듣고 시를 음미하다 보면 다른 맛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요”라는 시의 첫 구절이 눈길을 붙들었습니다. ‘강변역이 강변에 있지 않고 / 학여울역에 여울이 없다니요?’라는 부분입니가. 강변역이 강변에 있고 학여울역 부근에 여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던가요? 저도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말 그럴까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유년 시절은 존재의 우물”이라고 했다는 바슐라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유년의 기억은 퍼 내어도 퍼 내어도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샘인 것 같다’라고 하셨는데, 저에게 남은 유년의 기억은 불과 몇 자루 밖에 남지 않아서 퍼낼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과 범인의 차이일까요? 하지만 옥의 티도 눈에 띄였습니다. 유독 옥의 티가 눈에 잘 들어오는 편이라서.... ‘기린의 등에 매달려 진드기를 빨아먹고 사는 아프리카의 노랑부리할미새처럼...’인데 노랑부리할미새는 기린과 공생 관계에 있는 것이지요. 시인께서는 마치 새가 기생하는 존재인 것처럼 적고 있습니다만, 새는 먹이를 쉽게 얻고 기린은 기생충을 제거하는 셈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시집의 리뷰에서도 적었습니다만, 제게 시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인께서는 “시를 많이 읽고 느끼고 이해하게 되면, 시가 좋아지고 시에 대한 안목이 생기게 된다.(79쪽)”라고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시를 읽고 즐긴 것이 아니라 시를 분해하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청소년들이 시를 멀리하게 만드는, 왜곡된 시교육의 대표적 현상이라고 통절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시는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읊조려 느낌을 얻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한 가지 가슴이 찔리는 느낌이 들었던 점은 ‘천 개의 곡조를 다룬 후에야 음악을 알게 되고, 천 개의 칼을 본 후에야 명검을 알게 되듯이 천 개의 시를 쓴 후에야 명시를 알게 되는 것(115쪽)’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천 개의 리뷰를 써냈음에도 여전히 좋은 리뷰를 써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내 시도 내 삶의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시는 절실하고 진정한 내 삶의 다른 모습이다.(153쪽)”라고 하신 시인과는 달리 제가 써온 리뷰에는 고통의 알갱이가 담겨있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먼저 백 번을 읽어라’라는 제목의 글에 청나라 초기 문장가 장조의 <유몽영>에서 인용한 글을 다시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젊은 시절의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 가운데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구경하는 것과 같다. 모두 살아온 경력의 얕고 깊음에 따라 얻는 것도 얕고 깊게 될 뿐(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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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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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아무래도 던져진 증거를 바탕으로 범인을 추적해가는 과정에 동참한다는 인식이 주는 매력을 얼마나 충족하는가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 역시도 지방도시에서 부검을 담당할 무렵에 추리소설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만, 마니아 수준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추적한다는 틀에서 보면 많은 증거들을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정적 증거들은 뒤로 미루어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건의 내용이나 해결과정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미주알고주알 적으면 이 책을 읽을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송구한 노릇이 될 것 같아서 몇 가지 의문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사건은 1936년(일본천황의 연호를 적는 것이 왠지 거부감이 드는군요)에 일어난 사건이고, 소설의 화자인 이시오카 가즈미와 탐정 미타라이 기요시가 이 사건을 해결한 것이 1979년입니다. 작가는 프롤로그를 통하여 43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범인을 찾기 위해 일본 전국에서 지혜를 짜내거나 온갖 소란을 피웠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해도 대중의 관심이 40년이 넘도록 이어질 수 있을까요? 그 사이 더 업그레이드된 사건들이 줄을 이어 사회에 충격을 던지기 마련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가고 영구미제사건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작가는 첫 번째 희생자 우메자와 헤이키치의 수기-첫번 째 증거물-를 내놓습니다. 수기에서는 화가인 자신이 악마에 씌였고, 밤마다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미녀를 보는 환상에 빠진다고 고백한다. 그 완벽한 미녀-수기에서 아조트(azoth)라고 이름붙였는데, 사전적으로 아조트는 만병통치약을 의미합니다-는 두부, 흉부, 복부, 요부, 대퇴부, 하족부의 여섯 부분에 각각 해당하는 별자리의 여성으로부터 취하여 합성한다는 이야기인데, 결국은 여섯 명의 여성을 살해하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가는 자신의 여섯 딸이 각각의 별자리를 타고 났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살아있는 여성의 몸이 더 아름답지 살해당한 여성은 어떻게 보아도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잘라낸 각각의 부위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완벽한 여체를 실제로 만드는 것보다는 그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조트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우메자와가 밀실 상태인 자신의 화실에서 타살된 채 발견되고, 그의 계획에 따라서 딸들이 살해되었고 수기에 나와 있는 대로 토막 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체를 토막 내는 것은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메자와의 수기에서 나오는 두부와 하족부를 각각 분리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뿐더러 흉부와 복부, 요부를 분리하는 것은 고성능의 전기톱이라고 사용하면 모를까 일반적은 도구로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여섯 구의 토막 난 사체들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정작 아조트는 발견되지 않은 채인 것입니다. 저자는 사체가 발견된 장소를 비롯하여 발견된 사체의 남은 부위 등에 대한 정보를 친절하게 그림으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림에서 중요한 힌트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작가가 프롤로그에 ‘이 책의 진행에서도 해답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사건 해결에 필요한 모든 실마리가 독자의 눈앞에 분명히 나와있다고 한 대목이, 바로 이 그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사람의 신체는 자연에서는 시간이 경과되면서 육탈이 되면서 뼈만 남게 되는데, 요즈음의 법의학기술은 뼈를 조합하여 생전의 모습을 재현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표지를 보면서 여성의 몸을 하나의 띠로 마치 미라처럼 감싸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토막 살인을 의미한다는 것은 읽어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주인공들이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이 흥미롭다는 것을 떠나서, 사체를 토막 내어 일본 각지에 뿌리는 엽기적인 살인행태를 모티프로 삼은 것이 심히 우려된다는 생각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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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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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 안에 들어온 하느님이라는 주제로 만든 영화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목이 생각나는 영화로는 짐 캐리가 주연한 <브루스 올마이티> 밖에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리고 보면 하느님 우리들 속에서 같이 숨쉬고 있다는 생각만해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브루스 올마이티>에나오는 하느님은 세상사람들의 소망을 들어주는 것도 지쳐서 하느님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은 브루스를 불러다가 대행을 세우고 휴가를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데.... 그리고 생각하니, 사이먼 리치의 소설 <천국주식회사; http://blog.joins.com/yang412/13569396>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는 하느님이 등장하는 이야기 치고는 조금은 진지한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작가 한스 라트는 시나리오작가로 활약한 배경 때문인지 문체가 경쾌하고,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말에 재치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장면전환도 빠르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장소까지도 등장하는 것도 영화판에서 갈고 닦은 솜씨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누구나 사정은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합니다만, 눈앞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를 하느님이라고 주장한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혹시 겪다보면 넘어갈 수도 있겠지요. 사이비종교의 교주가 사람들을 현혹시키듯 말입니다.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에 등장하는 하느님 역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 아닌가 싶게 등장합니다만, 점차 그가 보여주는 신비한 능력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정말 하느님 아닐까 싶은 생각이 조금씩 커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왜 별 볼일 없는 심리치료사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그것이 궁금해지는 것 같습니다. “난 신이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난 많이 망가졌소. 당신이 날 도와주면 좋겠소.(49쪽)”라고 말하는 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

 

신과의 심리상담에 들어간 주인공 야콥 야코비가 ‘그냥 맨 처음부터 시작하지.(88쪽)’라고 상담의 운을 떼자, 자칭 신이라고 주장하는 아벨 바우만은 ‘빅뱅부터? 아님 어디서부터?’라고 되묻는데, 여러분 같으면 무어라 하셨겠습니까? 놀랍게도 야콥은 ‘자네의 역사가 시작된 지점부터 이야기해야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빅뱅보다 더 이전에 신이 처음 존재하던 시점부터 시작해보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정말 철학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이 없더라도 우리는 신을 만들어냈을 것이다.”라는 볼테르의 말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즉, 신은 우리가 만들어낸 존재라는 점을 깔고 있으면서도 신은 이미 존재하는 존재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어떻든 아벨은 창세기를 읊으면서도 자신이 세상을 창조한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에 대고 야콥은 빅뱅이론을 들고 나오는데, 빅뱅 이전에도 영겁의 텅 빈 공간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래도 세상을 창조한 신이라면 그 시점에도 존재하고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정곡을 찌른 셈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자칭 신인 아벨은 우주를 만들어낸 이유를 설명합니다. 영겁의 공간에 신 혼자서 덜렁 앉아있다고 상상해보라. 미치도록 심심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결국 천지창조를 하면서 자신의 모습과 닮은 인간을 만들어낸 이유는 바로 이야기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신이나 대화가 없으면 병이 들 수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라는 것일까요?

 

한술 더떠서 신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느껴.(…) 그래서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인간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99쪽)” 결국 신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 때문에 병들어가고, 결국은 자살을 감행하기에 이르는데....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라고 주장하기가 부담스러웠던지 작가는 신의 부활을 짐작하는 상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앞에서 인용한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도 인간의 기도를 들어주는데 신이 지쳐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만,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역시 인간을 돌보는데 지쳐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인간들이 신을 봐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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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
비토리오 로베다 지음, 윤길순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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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보았던 신비한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느낌을 간단하게 정리해 두긴 했습니다만, 크메르인들이 정글 속 깊숙이 감추어 두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침 연재하고 있는 스페인 여행기에 이어, 앙코르와트 여행기를 다시 정리해보기로 하고 자료를 찾고 있습니다. 비토리오 로베다의 <앙코르와트>를 읽다보니 앙코르와트 유적을 잘 정리하고 있어서 [북소리]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앙코르와트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비토리오 로베다는 지질학과 층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예술사를 가르쳤습니다. 1999년에는 런던대학 ‘동양과 아프리카’ 연구소에서 크메르 부조의 이야기 기법에 관한 논문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박사학위 하나를 받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서로 다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둘씩이나 받은 것을 보면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1998년에는 오늘 소개하려는 <앙코르와트> - 원제목은 ‘Khmer Mythology: Secrets Of Angkor Wat’(크메르 신화; 앙코르와트의 신비) - 를 출간했고, 2007년에는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Sacred Angkor: The Carved Reliefs of Angkor Wat’(앙코르 성지: 앙코르와트에 새겨진 구원)를 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Images of the Gods: Khmer Mythology in Cambodia, Laos & Thailand’(신의 이미지: 캄보디아, 라오스 그리고 타일랜드에서의 크메르 신화)를 출간한 것을 보면 크메르의 신화를 해석하는 일에 정열을 바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크메르 하면 캄보디아만 떠올리기 쉽습니다만, 앙코르 유적을 지을 무렵에 크메르제국은 지금의 태국과 라오스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씨엠립에 남아 있는 앙코르 유적만으로는 크메르 문명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겠습니다.

 

인접한 문화는 많은 영향을 서로 주고받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웃 인도에서 들여온 힌두문화와 불교문화가 크메르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베다는 크메르 문명을 이해하기 위하여 힌두교와 불교의 신화와 전설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합니다. <신의 이미지>에는 2,400개가 넘는 천연색 사진들을 인용하고 있어 읽는 즐거움에 보는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흔히 앙코르와트 유적이 남아 있는 앙코르(Angkor)는 옛 크메르 제국의 수도로, 지금은 캄보디아의 북서부, 똔레삽 호수 북쪽지역에 해당됩니다.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시대는 크메르의 힌두교도 황제 자야바르만 2세가 스스로를 “만국의 군주”라고 선언한 802년부터, 지금의 타일랜드 지역을 다스리던 시암왕국의 침입으로 수도 앙코르를 비우고 프놈펜의 남쪽으로 이주를 한 1431년 까지를 말합니다.

 

630여 년 동안 앙코르왕조는 28명의 왕이 이어서 통치를 했는데, 1150년 수르야바르만의 죽음으로 내전 중이던 1177년, 메콩 강과 똔레삽 호수를 타고 수로로 침공한 참족(Champa)에게 정복당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야바르만 7세가 중심이 되어 이를 격퇴하였다는 것입니다. 앙코르 왕조는 힌두신앙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참족의 침략을 물리치고 왕으로 등극한 자야바르만 7세가 불교신자가 되면서 앙코르왕국의 종교가 힌두교에서 불교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흰두교 사원에 부처를 모시게 되었는데, 외적의 침입으로 왕조가 위기에 몰리게 되면 민심을 달래기 위하여 종교를 바꾸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흰두의 신이 나라를 제대로 지켜주지 않아 환란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부처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야바르만 7세가 죽은 다음에 힌두교가 다시 부활하게 되면서 불상을 훼손하는 반달리즘이 횡행했다고 합니다.

 

크메르 제국이 오늘날에도 신비에 싸여 있는 이유는 왕국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입니다. 오직 사원 벽에 산스크리트 어로 새겨져 남은 적은 기록만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1296년 중국 원나라의 사신으로 앙코르를 방문한 주달관(周達觀)(1266년-1346년)이 남긴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가 유일한 기록물이라고 합니다. 주달관은 1년 정도 머물면서 앙코르의 종교나, 법제도, 왕위, 농경, 노예제도, 새, 식물, 목욕, 의식주, 도구, 동물, 상거래 등을 관찰하고 40장 분량의 기록을 남겼는데, 개인기록인 탓에 주관적인 점을 걸러내고 본다면 당시 앙코르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묻혀 있던 앙코르와트 유적은 19세기 들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1860년대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던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오가 앙코르유적지를 발견하고, 여행기에 앙코르유적의 신비한 모습을 담았던 것이 유럽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면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캄보디아 사람들 사이에는 앙코르 유적의 존재가 구전되어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앙코르 유적의 존재를 공론화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앙코르의 지배자들은 앙코르지역은 더 이상 신의 가호를 받을 수 없는 저주의 땅이 되었다고 선언하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을 모두 소개(疏槪)하는 전략을 구사했다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땅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불행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크메르인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금방 자연이 돌아와 사람의 흔적을 지우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앙코르 유적은 만물이 왕성한 열대몬순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떠난 뒤에 금방 밀림으로 뒤덮였을 것입니다. 목재 건축물들이었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을 터이나 돌로 만든 앙코르유적은 역설적으로 자연의 힘으로 천년이 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건축물 위에 떨어진 나무열매가 싹을 틔워 내린 뿌리가 사람들이 쌓은 돌더미를 움켜쥐는 효과를 나타냈기 때문에 붕괴를 막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어서 최근에는 거대하게 자란 나무들의 힘으로 건축물의 균형이 깨어지고 있어 보존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한계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앙코르 유적은 이 지역을 식민통치하게 된 프랑스정부가 발굴에 관심을 보일 때까지도 밀림에 묻혀 있다가 프랑스 극동학원이 탐사와 발굴하는 작업을 주도하여 숲을 제거하고, 제단을 수리하고, 배수로를 설치하여 붕괴를 막았습니다. 하지만 폴포트가 주도한 캄보디아 내전으로 중단되었다가 1993년 이후에 재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프랑스와 일본이 합작한 국제위원회를 만들어 보존에 힘쓰고 있습니다. 제가 앙코르와트를 방문했을 때도 일본 동경대학팀이 실측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비토리오 로베다는 <앙코르와트> 서문에서 “8세기부터 13세기까지 이름 모를 예술가들이 조각한 크메르 부조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그 복잡함이 빚어내는 예술성에 압도되어 그것을 더 연구해보기로 했다. 이 책은 그러한 부조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밝히려는 시도이며, 크메르 부조로 되살아난 신화와 전설을 개괄하고 있는 첫 책이기도 하다.(5쪽)”라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특히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크메르적 독창성’, 즉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언어를 창조해냈음에 주목하였습니다. 바푸온 사원의 이야기 부조가 보여주는 익살과 해학, 앙코르와트의 ‘우유바다 휘젓기’와 ‘역사 속 행렬’의 추상적 명징성, 랑카 전투의 화려한 역동성을 따라올 만한 부조는 같은 시대의 인도나 중동, 유럽의 부조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공식기록으로 남아 있는 크메르 제국의 역사가 희소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크메르 제국의 정체를 어떻게 그려낸 것인가를 설명하는데 40여 쪽에 가까운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유적에 남겨진 부조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크메르의 신화와 전설을 소개합니다. 크메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신화와 전설로는 라마의 전설, 크리슈나 신화, 시바 신화, 인드라 신화를 비롯한 흰두 신화들이 있고, 여기에 불교 신화가 더해져야 합니다. 이어서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부조들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앙코르와트를 포함하여 모두 열여덟 곳의 유적에 남아 있는 부조들을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유적들은 발굴이 완료되어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지만, 여행일정 때문에 돌아볼 수 없는 곳도 많아서 타 프롬, 바욘,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이왕 테라스, 바푸온, 그리고 앙코르와트 등 다섯 곳의 부조만을 볼 수 있었을 따름입니다.

 

크메르의 부조가 가지는 의미는 ‘건축의 미학적 가치를 높여주는 장식적 요소’에 더하여, ‘앙코르의 종교와 신화, 역사, 윤리, 도덕에 관한 중요한 개념들이 들어 있는 일종의 암호문’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따라서 부조는 오늘날처럼 사원을 찾는 방문객을 교육하고 계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왕실 구성원과 종교의 권력자들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일종의 의식절차를 기록해두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세부사항까지도 정확하고 분명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유산 가운데 의식절차를 기록한 의궤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크메르의 부조에 담긴 이야기들은 대개는 인도신화나 불교설화에서 뽑은 사건이나 크메르의 역사에 있었던 사실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앙코르와트에서는 ‘우유의 바다 휘젓기’라는 흰두 신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저자가 정리한 신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전설은 세계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데바와 아수라가 불로장생의 영약 암리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천 년 동안 치열하게 싸우면서 시작된다. 얼마 후 지친데다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던 그들이 비슈누에게 도움을 청하자, 비슈누가 나타나 서로 싸우지 말고 협력하라고 한다. (…) 그들은 만다라 산을 축으로 삼아 우유의 바다를 휘젓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만다라 산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비슈누가 자라 쿠르마로 변해 자신의 딱딱한 등딱지로 산을 떠받친다. (…) 그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영약은 우유의 바다를 천 년이나 휘저은 다음에야 얻을 수 있었는데, 이때 이와 더불어 여신 락슈미(스리 데비)와 코끼리 아이라바타, 말 우차이슈라바,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 압사라들이 나왔다.(88쪽)” ‘우유의 바다 휘젓기’ 이야기는 앙코르와트 동쪽 회랑의 남쪽 날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비토리오 로베다의 <앙코르와트>는 부조의 해석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조가 많은 곳, 예를 들면 반티아이 스레이, 바푸온, 앙코르와트, 반티아이 삼레, 바욘 등 부조가 많은 유적에서 특히 부조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길게 이어지고 있지만, 부조 이외의 것들은 간략한 설명으로 지나가고 있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앙코르와트를 예로 들면, 사방의 회랑벽을 장식하고 있는 부조는 물론 각각의 문 위나 모퉁이에 있는 작은 방의 부조까지도 설명을 하면서도 65m에 이르는 중앙탑이 흰두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중심축인 ‘메루산’이라고도 부르고, 중앙탑을 중심으로 하여 네 귀퉁이에 있는 10m 정도 낮은 탑들은 메루산 주변의 봉우리를 의미한다거나, 중앙사당에는 수르야바르만2세의 유골이 안치되었다는 등의 설명은 빠져 있기도 합니다. 또한 앙코르와트의 2층에 안치된 불상에 관해서도 따로 설명이 없습니다. 20세기 초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금강산에 있는 절을 찾았던 장 드 팡주가 “이내 독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를 들으면 달빛 가득한 앙코르 사원의 거대한 층계 꼭대기에 웅크린 승려들의 독경 소리가 떠오른다.(장 드 팡주와 콘스탄스 테일러 지음, 프랑스 역사학자와 스코틀랜드 여성 화가가 본 20세기 초 한국, 52쪽, 살림출판사 펴냄; http://blog.joins.com/yang412/13469781)”라고 소략하지만 강렬한 느낌을 남긴 것과 비교하면 아주 건조하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코르유적에서 만나는 수많은 부조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만간 앙코르와트 여행기에서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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