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집 - 불굴의 인간 토니 주트의 회고록
토니 주트 지음, 배현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는 하지만 이미 읽었어야 할 책들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기억의 집>의 저자 토니 주트 역시 이미 친숙한 이름이 되었어야 마땅함에도 이제라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48년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킹스 칼리지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을 시작으로 옥스퍼드 대학, 버클리 대학, 뉴욕 대학에서 유럽역사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포스트워 1945~2005Postwar: A History of Europe Since 1945>를 발표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데, 저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책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를 들어는 본 기억이 있어 조만간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토니 주트는 불의를 목격할 때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본래적인 의미의 지식인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메카로 가는 길; http://blog.joins.com/yang412/13596903>의 저자 무함마드 아사드가 이슬람에 심취한 유대인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토니 주트가 조국 이스라엘의 잘 못을 비판하기를 서슴치 않았다는데서 유대인에 대한 저의 편견을 버리게 될 것 같습니다. <유대인 이야기; http://blog.joins.com/yang412/13617145>에서도 확인하였던 것처럼 저 역시 유대인들은 뛰어나지만 배타적인 경향이 강한 민족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10대 시절 몇 차례 여름방학을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 보내면서 이미 시온주의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키부츠는 타국 땅에서 뿌리를 못 내리는 디아스포라들을 본토로 귀국시켜 퇴보상태에서 구출해야 한다는 도덕적 목적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유토피아적 관점에서 시작된 노동 시온주의는 아랍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 바람에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상황을 초래하였을 뿐 아니라 구성원들에게 커다란 제약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트는 일찍 깨닫게 되었다고 저자는 고백합니다. “집단 자치 정부를 꾸렸다거나 소비재를 평등하게 배급한다고 우리가 더 교양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타인에게 더 관용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실은, 자부심이 극단에 이를수록 가장 악질적인 인종적 유아론만 강해질 따름이다.(103쪽)” 키부츠에서의 경험을 통하여 그는 이스라엘은 감옥과 같았고 키부츠는 감방같다는 것을 깨우친 것입니다. 특히 6일 전쟁이 끝난 다음 골란고원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혈기왕성한 유대인 젊은이들이 패전한 아랍인들을 잔혹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온주의와 결별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도, 코뮌주의를 믿는 이스라엘 정착자가 되는 것도, 모두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편적 사민주의자가 되었다.

 

<기억의 집>은 토니 주트의 사후에 세상에 나온 유고집입니다. 저자는 2008년 세칭 루게릭병이라고 하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으로 진단받고 투병하다가 2010년 타계하였습니다.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은 미치 엘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로 우리에게 알려졌고, 우리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http://blog.joins.com/yang412/11091960>로 우리와 가까워졌습니다. 루게릭병 환자는 대뇌와 척수에 있는 운동신경세포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조금씩 죽어가면서 증상이 나빠집니다. 처음에는 손과 손가락, 다리의 근육이 약해지고 가늘어지는 증상과 함께 말하기나 음식물 삼키기가 어려워집니다. 점차 근력이 떨어지면 움직이기 위하여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결국은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합니다. 우리 몸에 있는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세포가 죽어가는 것이라서 의식이나 감각은 죽을 때까지 정상을 유지 됩니다. 그래서 주트는 ‘자신의 육체가 마치 한 주가 지날 때마다 6인치씩 면적이 줄어드는 감방’같다고 비유했을 것입니다.

 

책을 받으면서 궁금했던 원제 <The Memory Charlet; 샬레의 기억>이나 <기억의 집>이란 제목의 의미는 서문에 이어 나오는 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밤’에서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어려움을 토로하는데, 특히 혼자서 보내야 하는 밤은 전혀 사소한 일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불면증으로 고통을 받아본 사람은 그나마 조금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만, 베개에 머리를 내려놓는 순간 대부분 꿈나라로 가는 저는 충분히 실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자의 해결책은 이렇습니다. “나의 삶과 나의 생각, 나의 환상과 기억, 잘못된 기억 따위를 샅샅이 훑는 것이다. 정신이 자신을 가둔 육신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사건과 인물 혹은 이야기에 매진하게 만들었다. 이런 정신적 의식은 나의 주의를 사로잡을 만큼 충분히 흥미로워야 하고, 귓속이나 등허리의 참기 힘든 가려움을 견디게 해줘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잠을 부르는 전주곡으로도 작용할 수 있도록 충분히 지루하고 뻔해야 한다.(29쪽)”

 

이렇게 밤의 시간에 기억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먼 기억까지도 추슬러 만든 이야기들을 다음날 구술하여 글로 정리하였는데, 문제는 저자의 말대로 ‘몇 시간 뒤에 회수 할 어떤 생각을 공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더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초기 모더니즘 사상가와 여행가들이 세부 묘사를 저장해 두고 회상하기 위해 이용한 기억 방식에 착안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조너선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의 기억의 궁전>에 언급되어 있다고 합니다. 기억술사라고 불러도 될 그들은 자신들의 기억이 머물 공간으로 거대한 궁전을 지었다고 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서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옛날 사람들은 기억이라는 것이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창고에 넣었다 꺼내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트가 밤새 엮은 생각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이용한 나름대로의 기억의 집은 1950년대 후반 가족들이 함께 갔던 스위스 빌라르 지방의 고즈넉한 마을 체지에르에 있는 가족호텔 샬레였다고 했습니다. 샬레 자체를 기억의 방아쇠에서 기억의 저장장치로 변모시켰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샬레의 구조 하나하나까지도 사실적으로 눈앞에 샅샅이 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방문하고 또 방문하고 싶은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샬레는 무한히 재구성되고 재분류된 회상들의 저장고 노릇을 하는 기억의 궁전이 되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 주트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매일 밤낮으로 샬레도 되돌아가 친숙한 좁은 복도를 지나 거실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안락의자 가운데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다음 날 쓸거리에 사용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불러내고 정리하고 배열한 다음에 그 이야기를 샬레의 객실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 작은 책에 실린 글들을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것들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라고 전제하고 그래서 ‘부모님이나 나의 유년 시절, 또는 전처와 현재의 동료들을 언급하는 지점에서 나는 글이 말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여기에는 에두르지 않는 솔직함이라는 장점이 있다.’라고 고백하면서도 이 때문에 상처를 받는 이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저자의 기억에 담겨있는 20세기 초반의 런던 변두리 마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자의 고집스러운 철학이 녹아들어 있다는 느낌을 첫 번째 글 「금욕」에서부터 엿볼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물자부족으로 배급을 실시하던 시기를 지나오면서 금욕이 몸에 밴 저자는 끊임없이 서민들의 금욕을 요구하는 위정자들에게 할 말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익을 위해 끝없는 상거래에 양보했고 우리의 지도자들이 더 높은 포부를 품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 더 나은 통치자를 원한다면, 우리는 통치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우리의 이기심은 줄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약간 금욕적일 필요가 있다.(42-43쪽)”라고 마무리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고향을 이야기합니다만, 저자는 그 범위를 더 좁혀서 ‘집을 마음이 깃든 곳’으로 말합니다. 사는 동안 많은 집들을 전전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스스로를 노숙자라고 한탄하면서도 네 살 때부터 열 살 때까지 살았던 런던 남서부의 퍼트니를 애틋하게 기억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열 살 때 살던 집에 관한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사라져버린 야트막한 언덕 꼭대기에 있는 집엘 가려면 돌계단을 헉헉거리면서 올라야 했고, 수도가 없어 한겨울에도 언덕 아래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 날라야 했습니다. 게다가 집 뒤로는 도시 변두리에 있던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미군들을 상대하는 그런 집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이듬해 언덕동네를 떠나 도심 가까이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어떻든 주트는 퍼트니의 골목길에서 빅토리아시대적 느낌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퍼트니는 그의 런던이었고, 런던은 그의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기억에는 고향동네에서 버스 혹은 전철을 탔던 일부터 기차를 타고 조금 멀리 여행하기, 혹은 배를 타거나 차를 몰아 유럽을 여행하는 일까지 담겨 있습니다. 여행을 통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테두리들을 벗어나는 경험을 맛보면서 생각의 틀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여행을 좋아한 저자는 “혼자서 어딘가로 가고 있을 때만큼 행복한 일은 없었고, 그곳에 다다르는 시간이 오래면 오랠수록 더 좋았다. 걸으면 유쾌했고, 자전거를 타면 즐거웠으며, 버스 여행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기차는 곧 천국이었다.(75쪽)”라고 말합니다.

 

앞서 저자를 역사학자라고 설명하였습니다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다소 변화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자는 늘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고, 심지어 열두 살 무렵에는 필요한 학위를 따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기도 했다는 것인데, 정작 30대 초반에는 옥스퍼드에서 정치학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중년에 맞는 위기의 포인트에서 아내를 바꾸거나 차를 바꾸는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자신은 전공을 바꾸었다는 것 같습니다. 동서냉전과 그에 따른 범죄의 책임에 관한 논쟁이 계기가 되어 체코어를 배우게 되었고, 프라하를 방문하였으며 동유럽사를 가르치고 저술하기 시작했으며, 종국에는 <포스트워>를 집필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중년의 위기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긍지를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덕분에 나는 포스트모던 학파의 방법론적 유아론(唯我論)으로부터 완전히 치유되었다. 덕분에 좋든 나쁘든, 나는 믿음직한 대중 지식인이 되었다. 우리가 서양 철학을 통해 꿈꾸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천상과 지상에 존재했고, 나는 그중 일부를 뒤늦게야 보았다.(181쪽)”

 

앞서 저자가 시온주의와 결별한 유대인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래도 저자 나름의 정체성으로 고민한 흔적을 「언저리 사람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자가 자랄 무렵 영국에서 유대인은 명백하게 문화적 편견의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부모님들은 조직적인 유대인 공동체를 멀리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유대명절을 쇠지 않았고 랍비들의 권고에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럽사를 가르치는 학자로서, 영국인인 동시에 유대인임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유대스러움’이 많이 통용되고 있는 현대 미국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유아론적 사고와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뿌리 없는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모욕적으로 불리면서도 스스로를 언저리 사람들로 규정하는 것은 저자가 살고 있는 뉴욕이라는 곳의 특별함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뉴욕이 여전히 세계의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인들이 모여 서로 부비로 살고 있으며 세계를 향하여 열려 있는 도시, 뉴욕. 그런 사람들에게 관대한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언저리 사람들」이 저자의 마지막 글이 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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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독서 -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여행자의 독서 1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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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하기만 한 회사 도서실이 소장한 책들 가운데 더는 눈길을 끄는 책을 찾을 수 없을 지경인데, 그나마도 폐쇄키로 했다는 소식이 암울했던 터라서 구청에서 운영하는 동네 도서관에 등록했습니다. 등록한 기념으로 고른 책이 이희인님의 <여행자의 독서>입니다. 요즘 들어 일과 무관하게 즐기는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만, 업무 차 여행을 떠날 때도 몇 권의 책을 골라 담곤 했습니다. 오가는 비행기에서 시차 때문에 설치는 시간을 위한 책읽기였기 때문에 굳이 여행지와 관련이 있는 책을 고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여행자의 독서>는 독특한 면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행지 혹은 여행과 관련이 있는 책을 나름대로는 고심해서 고르고, 현지에서 여유를 부리면서 읽고, 또 그 느낌을 확인한다고 할까요? 저자께서 “저로서는,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배낭을 싸는 시간, 그중에서도 어떤 책을 넣어 갈까 고민하는 시간들입니다. 어떤 책이 가고자 하는 땅과 어울릴까 고민하는 일은 여행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합니다.(5쪽)”라고 서문에 밝힌 것처럼 여행 중에 시간을 내어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고르는 시간에 의미를 크게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책과 여행’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점에서 책이 여행에 긍정적인 면이 있을 뿐 아니라 저자처럼 여행지에 관한 책을 가지고 간다면 여행이 책에 빛을 더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6쪽)”라는 멋진 말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광고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답게 재기가 반짝이는 것 같습니다.

 

우선 놀라운 것은 <여행자의 독서>에 올려 진 이야기가 모두 22꼭지나 되는데, 여행지는 그보다도 더 많다는 것이고, 모두 각각의 여행인 것 같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한해에 몇 차례나 해외여행을 다녀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 제목에 걸맞게 여행보다는 책에 방점이 찍히는 탓인지 여행지에서의 느낌보다는 그곳과 관련된 책 내용이 비중을 더 차지하는 글이 많다는 것도 독특한 점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꼽은 책의 내용 뿐 아니라 작가를 포함하여 다양한 배경지식까지도 풀어놓은 것을 보면 저자의 엄청난 책읽기 내공이 저절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일반적인 여행객이 그 고장의 명소를 찾는 여행이 아니라 책에 나오는 특정한 장소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합니다.

 

저자가 여행에 들고 갔다는 39권의 책들 가운데 제가 읽어본 책은 불과 6권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본 곳이 불과 4곳 밖에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다 싶습니다만, 가본 곳에 관련된 책인데도 읽지 않은 것이 많아 이번 기회에 찾아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본격적인 여행과 책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소개하고 있는 사진도 이야기해야 하겠습니다. 가끔은 풍경을 담은 사진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물론 저 자신을 사진에 담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만, 저는 누군가의 얼굴을 사진에 담는 일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럽다면 부럽고, 이래도 될까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떻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진들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아마도 사진 찍는 공부를 따로 하셨던 모양입니다.

 

어떻든 이 책에서 여행지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곳을 갈 때 이런 책을 들고가면 좋겠다는 도움은 분명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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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정글만리 1~3 세트 - 전3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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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네티즌이 선정한 올해의 책인 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작품을 이제야 읽게 되는 것도 남들과 같은 움직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인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태백산맥>, <아리랑> 등을 통해서 이미 친숙한 탓도 조금은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루어 순식간에 미국과 겨루는 단계에 이르렀고,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선두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특히 수천 년을 이웃으로 지내온 중국의 변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조정래 작가님 역시 1990년대 초반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갑작스럽게 몰락한 소련과 달리 건재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속살을 뒤집어 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고, 20여 년에 걸쳐 생각을 정리해온 결과가 바로 <정글만리>라고 했습니다.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국의 속살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비즈니스 세계를 일단 핵심 타깃으로 정하고 사람들의 관계를 엮었기 때문에 일단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 다섯 나라 비즈니스맨들이 벌이는 숨막힐 듯한 경쟁이 이야기의 기둥이 되고 있습니다.

 

<정글만리>는 중국에 체류 중인 상사원에게는 공감을, 실제 대중(對中)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중국 비즈니스의 노하우를, 한일관계나 한중관계에 관심이 적었던 학생들에게는 역사적 자각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중국과 중국인들의 감춰진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작가가 중국당국에 찍히지 않았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직설적이다 못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할까요?

 

특히 말로만 듯던 ‘꽌시(關係)’의 정체를 파헤치고 처음 듣는 ‘런타이둬(人太多)’라는 말의 의미와 그 이면에 있는 인명경시의 세태까지 남의 나라 작가의 손끝에서 까발려지는 것아 아플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북경을 찾아갔을 때, 중국 전통의학에 기반을 둔 생약제제를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안전이 뒷전으로 밀린다는 사실을 듣고는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거침없는 이야기 전개로 단숨에 읽어내게 될 뿐 아니라 밤늦게까지 책을 들고 있는 바람에 다음날 근무에 지장을 받기도 했다. 가끔 튀어나오는 부적절한 단어가 거슬리기도 하는데, 2권에 등장하는 짝퉁시장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쓰리꾼을 조심하라고 경계하는 장면은 소매치기라는 순화된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젊은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시류를 반영한 단어를 선택하는 경향이 필요하다고 해도, 작가라면 국어를 지키는 사명감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3권에서 중국역사로 전공을 바꾼 재형이 난징대학살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2차 세계대전을 치루는 동안 군국주의 일본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고, 전후 일본이 그 만행에 눈감고 있는 이유 등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는 점도 높이 사야 하겠습니다. 반면에 중국과의 비즈니스에서 조선족 혹은 북한과 연결되는 비중이 낮은 이유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전체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마무리되지 않은 점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종합상사를 명예퇴직한 전대광이 새롭게 시작한 사업의 향배라던가, 전대광의 조카 송재형과 리옌링의 러브스토리가 결혼으로 이어지는지도 궁금합니다. 뒤처리를 하지 않고 화장실을 나온 느낌입니다. 그리고 하필 이야기가 의료사고를 낸 성형외과의사가 쫓기듯 중국으로 진출하는 모습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의료사고가 아니라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모습으로 그리면 재미가 없을 것 같나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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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문화사
전완경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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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과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이슬람문명의 자취를 보면서 경탄과 호기심 그리고 의문 등 다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슬람’하면 전투적이라는 이미지만 그려지곤 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전쟁이나 테러에 관한 단편적인 뉴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오래 전 일하던 실험실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친구는 장난기가 넘치면서도 다정다감했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합니다.

 

이슬람문명하면 아랍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낸 것인데, 어떤 경로로 아프리카를 지나 이베리아반도에 이르렀으며, 이베리아반도에서는 유대인, 가톨릭과 공존과 충돌을 거듭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밀려났는지 등등 궁금증은 점차 증폭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한 책읽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무함마드 아사드의 <메카로 가는 길; http://blog.joins.com/yang412/13596903>이나, 정인경의 <보스포루스 과학사; http://blog.joins.com/yang412/13572745> 그리고 김재원 등의 <유럽의 그리스도교 미술사; http://blog.joins.com/yang41213620176> 등을 북소리에서 소개드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아랍문화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고 소개드리는 책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던 오해와 편견을 뒤집을, 아랍인과 이슬람 문화의 참모습을 발견하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이 책은 한국 중동학회 회장을 역임하셨던 전완경교수님이 쓰셨습니다. ‘아랍의 외교적, 경제적, 문화적 중요성이 더해 감에 따라 아랍과 이슬람 사회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줄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생각에서 기획하셨다고 합니다.

 

유럽문명이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로 전해진 다음, 르네상스시대에 다시 꽃피울 때까지 중세의 암흑에 묻혀있었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너져 내린 건물을 다시 복원하는데도 참고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고대문명을 근대로 연결한 무엇의 존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던 그 존재가 바로 이슬람문명이었던 것입니다. 이슬람문명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은 콧대 높은 유럽 사람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척박한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랍사람들이 동쪽으로는 인도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를 지나 이베리아반도까지 방대한 영역을 차지한데 더하여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고, 이를 근대 유럽에 이를 전수하기까지의 과정은 지중해지역원에서 정리한 <지중해 문명의 다중성; http://blog.joins.com/yang412/13570031>을 읽어 개략적인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역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인접한 문명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아람문화사>에서는 이런 아쉬움을 상당부분 채워주는 것 같습니다.

 

388쪽의 다소 많은 분량의 <아랍문화사>는 부록을 포함하여 모두 12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아랍인의 기원과 정체성(1장), 이슬람 이전 시대 유목생활 중심의 아랍인들의 삶과 그들이 일구어낸 문화적 성취(2장), 아라비아 반도에 이슬람 출현 배경과 과정 및 그 문화사적 의미와 이슬람 공동체의 성립과정(3장), 국가의 면모를 갖춘 최초의 아랍 왕국인 우마이야 왕조의 문화사적 의미를 아랍주의의 시각에서 집중 조명(4장), 이슬람 제국의 확장으로 중세 선진문화를 일구어내며 인류문명의 주체였던 아랍인들의 문화적 성취와 그 영향을 재평가(5장), 꾸란을 기록한 언어이고, 천상의 언어로 신성시되는 아랍어가 이슬람과 이슬람 공동체에서 갖는 의미(6장), 아랍 시로 대변되는 아랍 문학이 이슬람 제국의 확장에 따른 영향력 증대과정과 아랍 산문문학이 유럽의 산문문학에 끼친 영향(7장), 유럽인들의 지적 부흥운동이자 서구 근대화의 계기인 르네상스에 끼친 아랍인들의 역할(8장), 중세 이후 암흑기를 경험했던 아랍인들이 ‘나흐다(부흥)’로 불리는 지적 자각의 과정과 그들의 부흥운동(9장), 고대의 무지기, 중세의 전성기와 근대의 암흑기를 거치며 형성된 아랍인들의 인식과 그들의 사고관(10장), 아랍 특유의 관습 및 전통과 서구 사회제도가 혼합되어 있는 아랍의 사회제도가 갖는 의미와 특징(11장), 신라시대 이후부터 한반도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지속해 온 아랍․이슬람 세계와 한반도와의 역사적 교류 과정 등의 순서입니다.

 

아랍(al-Arab)이란 단어의 근원은 분명치 않으나 고대 셈족의 언어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데, 사막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민들이 유프라테스 강 지역 서쪽에 거주하는 민족들을 일컫는 말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슬람 이전 시대의 아랍인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아라비아와 시리아 사막에 거주한 유목민’을 가리키며, 아라비아 반도의 남부에서 농업을 기반으로 하던 사람들을 포함하지 않는 제한적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랍인은 바빌로니아인, 아시리아인, 히브리인, 페니키아인, 아람인, 아비시니아인, 사바인 등과 함께 셈족에 속하고, 이들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아들 셈의 후예들인 셈입니다.

 

반면에 이슬람 이후로부터 현대적 의미의 아랍인은 아랍어를 모국어로 말하고 아랍 세계에서 살거나 아랍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으로, 일반적으로 이라크에서부터 모로코에 이르는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는 19세기에 등장한 아랍 민족주의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이라크의 소설가이며 시인인 자브라 I. 자브라는 “아랍인이란 아랍어를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따라서 아랍으로 느끼는 사람(35쪽)”이라고 정의하였다고 합니다. 역시 스스로를 아랍인이라고 생각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모두 아랍인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으로 태어났지만 26살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평생을 이슬람의 진정한 정신과 문화를 알리는 연구를 해온 무함마드 아사드도 아랍인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궁금합니다.(무함마드 아사드 지음, 메카로 가는 길, 루비박스 펴냄, 2014년;  http://blog.joins.com/yang412/13596903)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아랍인들은 생존의 문제가 최우선의 과제였기 때문에 투쟁적일 수밖에 없었고, 글을 쓸 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랍 시의 언어와 리듬이라는 문학 유산을 남겼는데, 그들에게 있어 완벽한 인간은 싸우는 기술 이외에도 웅변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슬람 원년인 622년 이전을 ‘자힐리야 시대’, 즉 무지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페르시아가 대제국을 건설하는 동안 아라비아반도에서는 작은 왕국들이 성쇠를 거듭했고, 아랍사회는 부족들이 이합집산이 거듭되었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태어날 무렵 아라비아반도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분열되어 혼란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아이얌 아랍(Ayyam al-Arab), 즉 ‘아랍인의 싸움의 시절’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랍 부족 사이에 끊임없었던 분규와 증오와 반목, 불안한 상태가 유지된 원인은 치열한 생존경쟁과 혈연으로 뭉쳐진 단위 부족의 우상숭배 사상 때문(86쪽)”이라고 보았던 무함마드는 혈연을 초월한 종교사상, 즉 유일신을 믿음으로써 아랍족의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공백상태의 도덕적 윤리를 세우기 위하여 선행이라는 가치관을 제시한 것이라고 합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대상활동을 통하여 기독교나 유대인들과 접촉함으로써 성서의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초기에는 자신을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로 알리기보다는 아랍민족들에게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에게 계시된 최후의 심판을 알림으로써 우상숭배와 관련하여 혼탁해진 아랍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전교활동은 당시 메카의 지배계급이었던 꾸라이쉬 부족의 반발을 불러와 충돌이 불가피해지면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메디나 주민대표들과의 협상에 성공하면서 300여명의 신자들을 이끌고 622년 7월 메디나로 이주하였고, 이 시점을 이슬람의 원년으로 삼게 되었다고 합니다. 메디나로 거점을 옮긴 무함마드는 종교지도자에서 정치지도자로 변신하면서 이슬람 역사상 대전환기를 맞았습니다. 메디나의 8개 씨족으로 구성된 새로운 무슬림공동체를 성립시켰고, 이후 메카의 꾸라이쉬씨족에 속하는 추종자들로 구성된 9번째 씨족을 추가하였습니다. 메디나에서 종교적 이념공동체 움마를 토대로 사회적 통일을 이룬 무함마드는 메카와의 지하드를 선언하고 8년여에 걸친 전투를 통하여 승리를 쟁취하면서 반도의 대부분 아랍부족을 통일시켜 자신의 권위 아래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용하는 세계적 공동체의 바탕이 되는 보편적인 종교를 출범시켰고, 군대를 보유하며 체계적으로 조직된 공동체 내지 아랍국가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공동체는 합의에 의하여 칼리파가 결정되는 체제로 아부 바크르, 우마르, 오스만에 이르렀으나, 공평무사하지 못한 국정운영으로 내분이 일어 오스만이 피살되면서 무함마드의 4촌 동생이자 사위인 알리가 칼리파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의 친척이자 시리아의 총독인 무아위야를 중심으로 한 반란이 일어났고, 무아위야가 칼리파가 되면서부터는 칼리파를 선출하지 않고 세습하는 우마이야왕조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우마이야왕조는 지금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수도를 옮기고 영토 확장에 나섰는데, 661년부터 90년 동안에 걸쳐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에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전성기의 로마제국보다 훨씬 큰 제국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마이야왕조는 아랍인 우월정책을 펼치면서 아랍 부족 간의 긴장을 유발시켰고, 이슬람 초기에 이루었던 평등과 자유주의가 오히려 퇴조하는 상황을 만들어 결국은 압바스왕조에게 밀려나게 됩니다. 영토를 확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문화와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 유입되었고, 우마이야왕조의 칼리파들은 외래문화를 수용하고 흡수하여 통합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지식을 습득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라고 주문하고 있는 꾸란의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린 압바스왕조는 우마이야 왕조에 대한 사회경제적 불만세력이 주도하여 성립된 것으로 아랍부족에 의한 귀족정치가 소멸하고, 이슬람의 원칙에 바탕을 둔 평등사회정부가 탄생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우마이야 왕조는 아랍왕국으로, 압바스 왕조는 이슬람제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압바스왕조는 지금의 이라크의 바드다드를 건설하여 제국의 수도로 삼았고, 이슬람제국은 황금기를 맞게 됩니다. 압바스왕조의 이슬람문화는 그리스-로마의 지중해문화, 페르시아 문화, 인도와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 그들의 표현수단인 아랍어와 이슬람 신앙을 통하여 융합하여 완성한 것으로 특유의 유화력과 상대적인 관용성을 특색으로 한 다양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압바스왕조에 밀려난 우마이야왕조의 후예들은 이베리아반도까지 달아나 코르도바에 후기 우마이야왕조를 열었고, 역시 유럽이 중세 암흑기를 겪고 있을 때, 아랍어와 이슬람 신앙을 바탕으로 인류문명의 중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실제 르네상스는 15세기에 아랍무슬림의 문화부흥의 영향으로 일어났으며, 이탈리아보다 스페인이 유럽 재탄생의 요람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아랍인이 없었더라면 근대 유럽문명은 결코 성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랍인들은 고대 학문의 전달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재해석하고 사실을 규명하였으며 추가하였던 것입니다. 스페인의 안달루스나 모로코의 페스 등에 설치된 아랍의 대학에는 유럽의 학자들이 몰려들어 공부하였고, 이슬람은 이를 거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역으로 나누어 통치하던 체제에 더하여 유럽사회로부터의 십자군, 중앙아시아의 신흥세력, 몽골의 침공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하여 이슬람세계는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웃한 오스만 투르크의 강성으로 우선 타격을 입었고, 뒤이어 유럽제국이 밀려들면서 오랜 세월 침체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아랍은 다시 깨어나고 있습니다. 아랍민족주의에 입각한 부흥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다양한 이유로 두드러진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점을 볼 때,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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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의 교실 - 고대에서 현대까지 한 권으로 배우는
스즈키 히로키 지음, 김대일 옮김 / 다산북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받으면 먼저 표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전략의 교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했습니다. 우선 ‘고대에서 현대까지 한 권으로 배우는’이라는 부제가 달린 <전략의 교실>이라는 제목을 보면, 어디에 써먹을 전략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한 권으로 3000년에 걸친 전략의 에센스를 단숨에 파악한다!’라는 카피를 보면 “전략에 관한 모든 텍스트를 잘 요약하고 있나보다. 그런데 어디에 써먹지?”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습니다. 그 아래로 가야 ‘목표 달성, 매니지먼트, 조직에 도움이 되는 동서고금의 전략론 가이드’라고 작은 글씨로 이 책이 소용되는 곳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전장터에서 써먹었던 전략을 현대의 조직경영에 응용할 수 있는 요점들을 정리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요소가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는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자는 비즈니스 전략 컨설턴트로 전략론과 기업사(史)를 분석하여 새로운 혁신에 대한 힌트를 찾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삼아, 지금까지 많은 기업의 전략 결정이나 혁신을 도왔다고 합니다. 서론에 들어가면, “나는 고대의 군사 전략부터 현대의 경영 전략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주요 전략들의 핵심 내용을 발췌, 분류하고 정리했다.”고 하며, 이는 “역사와 시대의 흐름의 전환점에서 고민하고 있는 경영자, 팀을 이끌고 성과를 내야 하는 리더, 어려움이 있어도 실적을 내고 싶은 비즈니스맨 등 업무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차를 보면 모두 30가지의 영역에 맞춘 전략을 요약하고 있는데, 고대에서는 손무의 손자병법에서 고른 역전 전략을, 알렉산더 대왕으로부터 고른 돌파 전략을, 그리고 마키아벨리로부터 골라낸 지배 전략을 정리했고, 근대에서는 나폴레옹의 전력 강화 전략을, 클라우제비츠의 역전 우위 전략을, 리델 하트의 간접 접근 전략을, 그리고 윌리엄슨 머레이의 상황적응 전략을 정리하였습니다. 고대와 근대에서 얻어낸 전략은 주로 전투에서 적용되었던 전략으로부터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을 추출하고 있는데, 비즈니스가 반드시 전투적 요소만 있다기 보다는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갈 수 있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덟 번째부터 서른 번째까지의 전략은 주로 현대경영서들로부터 추출해내었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들만 추려보면, 오노 다이이치의 도요다 생산방식으로부터 최적화 전략을 이끌어냈습니다만, 도요다 생산방식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에서는 자기경영 전략을 이끌어냈고, 오래 전에 읽었던 김위찬과 르네 마보안의 블루오션 전략으로부터는 시장 창조 전략을 이끌러냈습니다. 전투를 이끌어가다 보면 전략은 아무래도 상황실에 들어오는 전장의 상황에 따라서 지휘부에서 결정하는 편인데, 전략에 적절한 전술이 더해져야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캐나다 맥길대학의 헨리 민츠버그교수는 ‘전략을 사전에 전부 계획해놓을 수는 없다(284쪽)’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눈에 띄는 대목 가운데 먼저 나치와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한 이유를 분석한 부분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면서도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전략보다 전투에서의 승리만 중시했다. 전체적인 모습이 아닌 부분적인 모습이 반영된 교훈만을 전달했던 것(92쪽)’이라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패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잘못을 망각 속에 묻어버리려 하는 한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 때는 혁신의 적합한 이론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된 상황에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새로운 이론은 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과거의 이론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접근방식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략의 교실>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빛을 발했던 뛰어난 전략들을 잘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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