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의 오류가 의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음을 알게 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http://blog.joins.com/yang412/12623266>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죽음을 붙들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절절하게 묘사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http://blog.joins.com/yang412/13423768>로 친숙해진 줄리언 반스의 신작 <용감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2005년 맨부커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가가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셜록 홈스의 창시자인 소설가 아서 코난 도일과 영국 사법 시스템에 상고법원을 만들도록 한 조지 에들지라는 두 실존인물의 삶을 통하여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사회의 정치와 종교, 사법체계, 인종의 문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 가운데 이야기의 시작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룬 1권의 초반인 ‘시작들’이라는 작은 제목을 단 1장은 아서와 조지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면서 다소 지루하게 전개되지만, 이 또한 당시 영국가정의 자녀교육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서는 에든버러의 남루하지만 고상한 가정, 조지는 스태퍼드셔 촌구석의 목사관이라는 판이한 성장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하여 상상력을 키웠던 아서는 의학을 공부하지만 결국은 셜록 홈즈라는 인물을 창조하면서 유명한 소설가가 됩니다. 반면 인도계 혈통을 가진 조지는 엄격한 아버지의 영향 아래 순종적으로 살면서 사무변호사가 됩니다. 1장에서는 조지의 삶을 결정적으로 꼬이게 만들 사건이 태동하게 됩니다. 여전히 결말을 읽지 않은 상태라서 단정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포스터라는 이름의 하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다가 해고되는 장면입니다. 이런 인물을 만나는 것 자체가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과의 만남도 운명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부는 조지의 삶이 꼬여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한편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아서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서와 조지의 이야기가 균형을 이루던 1부와는 달리 조지의 비중이 자연히 커지게 됩니다. 교직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두 사람이 결국은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조금씩 커지게 됩니다. 아서 혹은 조지의 이름으로 전개되던 이야기가 147쪽에 이르러 ‘아서 &조지’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면서 드디어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구나 싶었습니다만, 두 사람과 전혀 무관한 인물이 등장하여 말을 훼손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서나 조지가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점은 한참 뒤에서야 깨닫게 됩니다. 그만큼 반스는 치밀한 계산 아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1권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아서가 조지를 의식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황입니다. 아서가 받은 편지에 조지 에들지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것입니다.

 

2부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핵심은 조지가 사는 목사관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동물훼손 사건과 이를 수사하는 경찰이 조지가 범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양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범인이 조지를 타깃으로 벌인 탓도 있겠지만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인도계혈통인 조지가 이방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경찰에 의하여 범인으로 기소된 조지가 재판을 통하여 유죄로 판결 받고 감옥에 수감되는 과정을 보면 이러한 선입견이 경찰에만 국한된 것이 아나리 영국사회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결핵으로 투병하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보던 아서가 진이라는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아서의 아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http://blog.joins.com/yang412/13229364>를 즐겨 읽는다는 대목에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서기 1441년에 토마스 아 켐피스 수도사에 의하여 쓰여진 책으로 영어권에서는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혀 제 2의 복음서라 칭송받고 있다는 이 책이 등장하는 것도 저자의 장치인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1권에서는 동물훼손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조지가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되는 상황으로 마무리가 되어 사건이 어디로 전개될지 궁금증이 증폭되는 가운데 끝이 났습니다. 2권을 읽고 리뷰를 적었어야 하겠지만, 2권에서는 또 다른 관점들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일단 리뷰를 정리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중해의 끝, 북아프리카와 유럽의 인카운터 - 알제리-모로코-튀니지의 경제이해
서대성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페인-모로코-포르투갈 여행기를 마무리하려다보니 부족해 보이는 모로코에 관하여 공부하기 위하여 읽게 된 책입니다. 해가 지는 지역이라는 의미의 아랍어 마그레브 (المغرب العربي) 지역에 속하는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 세 나라의 경제상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모로코를 방문하였을 때 상당히 역동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2010년 튀니지에서 일어난 재스민혁명의 여파가 확산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기도 합니다.

 

북아프리카와 동유럽 발칸 등 이머징국가에서의 경제, 문화,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 이들 마그레브 지역국가들의 경제현황 및 사회적 변화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북아프리카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읽다보면 조금은 헷갈리는 점이 있기는 합니다. 머리말에 “(북아프리카) 이들 나라는 기원전부터 식민지 중심도시로 존재해오다가, 현시대에 이르러서야 독립국가를 형성하였다”라고 설명한 부분이 그렇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질적인 면이 있습니다. 베르베르족이 원주민이지만 기원전 소아시아에서 이주해온 페니키아 사람들이 카르타고를 건설하였고, 카르타고가 포에니전쟁에서 로마에 망한 다음에는 로마의 식민지가 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로마가 망한 다음에는 역시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계승전쟁에서 밀려나 우마이야왕조 사람들이 이주하는 등, 끊임없이 외부사람들이 이주해왔다는 점입니다. 15세기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대를 기점으로 유럽의 식민지배가 본격화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을 얻었다고 본다면 기원전부터 식민지였다는 설명이 다소 포괄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관점은 토착 원주민인 베르베르족의 시각에서 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산유국이면서 경제 규모를 고려한 탓인지 알제리에 할애한 분량이 모로코와 튀지니를 합한 분량과 비슷할 정도로 상세한 편입니다. 세 나라의 역사적 배경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경제현황은 알제리의 경우 매우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알제리는 면적만 따져도 한반도의 11배로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 전 세계에서도 11번째로 큰 나라입니다. 그리고 원유매장량 세계 14위, 천연가스 세계 8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라는 점입니다. 당연히 이 나라의 에너지자원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를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농업, 수산업, 식품산업, 자동차, 건설 및 장비, 섬유, IT, 의약, 보건, 환경, 유통 등입니다. 뿐만 아니라 해외국가들의 투자현황까지도 분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나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산유국인 알제리가 원전 건설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의 발전속도를 감안하면 알제리에서 생산하는 석유를 자체 소비에 충당하기도 버거울 상황이 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경제적으로 곤경에 빠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모로코에 대한 정보가 많지는 않았습니다만, GDP 기준으로 모로코가 아프리카에서 4위에 랭크되고 있다는 점, 카사블랑카, 라바트, 살레, 페즈 등 모로코에서 주목할만한 도시에 대하여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지브롤터 해저터널 사업에 대하여 처음 알게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입니다. 사실 지중해는 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하는 지역이라서 화산활동도 왕성하고 지진도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탕헤르와 타리파를 연결하는 페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만, 과연 해저터널을 유지할 정도로 통행수입이 보장될 것인가도 관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때 로마와 겨루던 카르타고가 위치했던 튀니지는 최근 일어난 재스민혁명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나라의 역사와 경제현황을 정리한 말미에는 이들 나라를 여행하는데 필요한 사항들을 간략하게 덧붙이고 있어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들러 심리학 입문 - 심리학 대가의 심리학 해설
알프레드 아들러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책을 읽어보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기도 합니다. <아들러 심리학 입문>은 그 질문과 맥이 통하면서도 질문을 하신 분이 생각한 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질문을 하신 분은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와 작가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 받을 용기>를 비롯하여 아들러 심리에 관한 <아들러 심리학 읽는 밤>, <버텨내는 용기>를 의미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이들의 설명을 들으면 아들러 심리학을 쉽게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한 차례 걸러진 생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고른 책이 <아들러 심리학 입문>입니다.

 

최근 아들러 심리학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타인과의 경쟁을 통하여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경쟁은 갈등을 낳고, 갈등은 고민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아들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고민들은 모두 인간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욕심을 가진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명제를 세웠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의 심리문제를 백 년 전에 내다보았으니 대단한 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심리학을 창시한 아들러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3대 심층심리학자로 꼽힙니다. 1870년 2월 오스트리아 빈의 유복한 유태인 가정에서 출생한 아들러는 4남 2녀 중 둘째였습니다. 차남인 저는 일반화된 차남의 성격에 동의하지 않는 편입니다만, 첫째와 비교되는 것을 싫어하고 욕심이 많은 둘째 특유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아들러는 구루병과 후두경련과 같은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던 데다가 다른 형제들보다 학교성적이 부진하였던 까닭에 나름대로는 열등의식을 가지고 성장했던 모양입니다. 그의 심리학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열등감, 보상심리, 인정욕구, 권력욕 등은 그의 성장배경에서 엿볼 수 있는 요소들이라고 합니다.

 

1895년 빈에서 의사자격을 얻어 정신심리학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아들러는 둘러싸고 있는 전체적 환경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인도주의적이고 전체적이며 유기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02년부터 프로이트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지만, 1907년에 출간한 <신체적 열등과 그에 대한 정신적 보상에 관한 연구>에서 “사람은 신체적 장애와 이에 수반되는 열등감을 심리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보상은 신경증 및 수많은 감정과 정신의 기능적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라는 가설을 세우면서 프로이트와는 거리를 두게 되었고, 종국에는 아동기 초기의 성적 갈등이 정신질환을 초래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1911년 결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음 백과사전, ‘아들러’편 참고)

 

알프레드 아들러가 쓴 것으로 되어 있는 <아들러 심리학 입문>에서 몇 가지 모호한 점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인생의 낙오자를 만들지 않은 아들러’라는 제목의 들어가는 말은 저자가 아닌 삼자의 글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필자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띕니다. “이 책은 아들러가 ‘어떻게 이 사람들을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시하여, 그 치료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라고 요약하고, “1장부터 6장까지는 사례와 치료법을 중심으로 정리해 놓았다.”라는 출판사의 소개글 역시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보겠습니다. 제1장 사회적 협력의 의미, 제2장 몸과 마음의 관계, 제3장 열등감 보상과 우월감 추구, 제4장 기억이 알려주는 비밀, 제5장 꿈의 이해와 사용법, 제6장 어려움을 해방시키는 용기, 등으로 나뉜 제목을 보면,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정리했다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 큰 아이가 임관을 하고, 오늘부터 임지에서 맡은 바 임무를 시작하게 됩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학교 공부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이를 학창시절 제가 창설한 진료동아리의 하계진료현장에 데리고 간 적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들러가 말하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지만, 세상에 나와서 해야 할 그 무엇이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늘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았는데, 큰 아이의 삶이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았기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러는 사회적 협력에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세 개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직면하는 모든 문제는 이들 관계의 방향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관계가 사람들의 현실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 세 가지 관계 가운데 가장 근본은 우리가 지구라는 혹성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며, 우리 주위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어 우리는 인류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뒤를 잇습니다. 그리고 이성 간의 관계가 마지막으로 직면하는 관계입니다. 이 세 가지 관계로부터 직업, 친구, 성이라는 세 가지 문제가 대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흔히 과거의 경험이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최면요법 등을 통하여 과거의 경험에서 지금 제기된 문제의 단초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들러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바로 그 의미에 의해 ‘스스로 결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잘라 말합니다. 즉 우리는 경험의 충격, 이른 바 외상으로 고통스러워할 게 아니라 그 경험 속에서 자신의 목적에 합치되는 바를 발견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우리 주변에 숨어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로 고통 받는 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써 1주기가 넘어가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은 세월호 사고의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들러는 인생의 경험에 잘못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흔한 상황으로 응석받이를 인용하였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스스로에게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들과의 협력의 유익함이나 필요성에 대해서도 배운 일이 없다. 따라서 곤란한 상황에 빠지면 스스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직 타인에게 요구하는 방법 외에는 모른다(34쪽)”라고 진단하고, 해답으로는 그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작고 올바른 방향으로 스스로 훈련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그들이 하는 모든 일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열등감이 개인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하는 부분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등감이란 개인이 어떤 일에 대해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그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자기의 확신을 언행으로 표현하는 경우에 나타난다(88쪽)’라고 한 저자는 “열등감에 빠진 사람은 자기의 활동 범위를 한정하려고 함으로써 성공을 향해 전진하기보다는 패배를 피하는 일에 몰두한다. 난관에 부딪히게 되면 망설이면서도 꼼짝도 하지 않거나 뒷걸음질 치는 모습마저도 보이게 된다.”고 합니다. 위험으로부터 몸을 사리는 행동 가운데 가장 철저한 표현이 자살이라고 합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자신이 직면한 모든 문제를 포기하고, 자시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다는 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자살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문제해결의 출발은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거나 부족함으로써 야기되는 열등감을 회피하거나 기만하려 들면 내재된 갈등요소가 축적되어 임계점을 향하고, 종국에는 파국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열등감으로 인한 강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불완전하거나 부족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 즉 우월한 부분을 극대화시키는 노력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좁게는 가족, 나아가 주변 인물은 물론 이들을 통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협력의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달성하고자 하는 우월이라는 목표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월이라는 목표는 개개인에게 있어서 매우 개인적이며 독창적인 것이다. 그 목표는 한 사람이 인생에 부여한 의미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 의미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의 독특한 인생 방식 속에서 만들어지며, 스스로 창작한 기묘한 멜로디처럼 인생을 관통하여 울려 퍼진다.(184쪽)”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는 전체를 아우를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정한 시각만으로 사안을 들여다보게 되면 그만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결정을 내림으로써 일이 잘못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열등한 상황을 우월한 입장으로 변환시키기 위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할 두 가지 사항은, 첫째, 우리가 선택하는 어떤 곳에서나 출발할 수 있다는 사실과, 둘째, 우리에게는 막대한 양의 재료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표현은 우리들이 같은 방향으로 돌며 인격이 형성되는 유일한 동기와 유일한 특수성으로 이끌어갈 것이며, 모든 언어, 생각, 행동이 우리 인간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아들러 심리학을 ‘사람들에게 미움 받을 용기,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라고 정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넘쳐나고 있는 자기계발서를 대하는 방식으로 해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열등감에 싸여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심리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완벽한 행복을 완성하기 위하여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위안을 삼기 위하여 회피의 수단으로 해석하는 것 아닌가 싶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나름대로의 완성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인데, 그 목표 자체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면 결국 무한경쟁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개인의 능력을 비교하면 금방 답이 나오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의 우월함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끼게 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이상행동으로 표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열등감을 과도하게 보상받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지구별에 태어난 이상 아들러의 세 가지 관계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과 그 개인을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결과는 개인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개인의 심리적 문제 역시 사회적 맥락 안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이성, 사회적 관심, 자기초월 등의 특징이 있는 반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열등감,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힘, 우월감 및 자기 안전을 위한 자기중심적인 관심 등의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다음 백과사전, ‘아들러’편 참고) 건강한 사람 역시 모두 완전한 존재라서 열등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때 느끼는 하지만 건전한 열등감은 타인과 비교해 생기는 것이 아닌, ‘이상적인 나’와 비교했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를 비교하였을 때 생기는 간격, 즉 열등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되는 셈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생활양식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우월한 무엇을 만들어 극복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아들러 심리학이 찻잔 속의 태풍처럼 잠시 지나는 신드롬에 그칠 것이라고 말합니다만, 완성된 삶을 위하여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
제프 다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존 러스킨은 <기억의 일곱 등불; http://blog.joins.com/yang412/13284036>에서 건축물의 기억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설명에서 폐허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건물의 가장 위대한 영광은 돌이나 금과 같은 재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영광은 건물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에 달려 있고 말하고자 하는 바의 울림과 엄밀한 관찰의 깊이에 달려 있으며, 또한 찬성이나 비난이 교차하더라도 인간애의 물결로 오랫동안 씻긴 그 벽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불가사의한 공감에 달려 있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그 증인이 인간을 마주할 때, 그리고 잠시 머물다 가는 모든 사물과 조용히 대비를 이룰 때 영광이 있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며 왕조의 탄생과 쇠퇴가 반복되고 지구의 표면과 해안의 경계가 바뀔지라도, 거기에 있는 돌은 그 고된 시간 동안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며 잊힌 시대와 다가올 시대를 서로 연결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래서 이미 그 민족 정체성의 절반을 구현하는 힘의 크기 안에 그 영광이 있다.(240~241쪽)”

 

제프 다이어의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바로 폐허로 떠난 여행기라는 카피에 홀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야기는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건물이 즐비한 로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실은 아테네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어울렸을 법합니다만, 그리시와 이탈리아라고 하는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건축물이 무너져 내린 폐허보다는 폐허화되어가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로마의 유적에 서 있는 거대한 돌에서 역설적으로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돌 사이에 펼쳐진 고요함에서 시간의 흐름에 무심해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리비아의 렙티스 마그나에서는 수직으로 세운 것이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궁극에 가서는 그마저도 무너져 수평적으로 된 것들이 주는 매혹에 저항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웁니다.(정말 어렵습니다.)

 

그리고는 뉴올리언즈, 태국, 암스테르담, 발리 등으로 여행이 이어지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여성과의 원나잇스탠드, 마약과 같은 일탈을 반복하면서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여행지에서의 일상이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호하게 나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행에 관한 내용일 것으로 기대했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망각이 이야기의 핵심이 되면서 저자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한 겹 내보이기도 합니다.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149쪽)”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고 했던 공자님이 들으시면 개 풀 뜯는 소리냐 하셨을 것 같습니다. 급기야는 호텔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 헤매기까지 합니다. 길을 헤매는 일은 캄보디아의 프놈펜에서 메콩강을 거슬러 시엠립으로 가는 길에 톤레삽에서 배가 좌초되는 일로 이어집니다. 그에게 있어 시엠립은 앙코르왓의 신비보다는 프놈바켕의 석양이 더 큰 의미를 남겼고, 프레룹사원에서 콜라를 파는 소녀와의 실강이기 더 기억에 남았던 모양입니다.

 

1999년에 방문했다는 파리의 에피소드를 읽기 시작하면서, 뉴올리언즈 여행이 1991년이었음을 상기하면서 이야기들이 여행순서와는 무관하게 저자의 기획의도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디트로이트에서 이 책의 주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로마에서 처음 기획할 때는 고대 유적지의 폐허에 대한 글이 될 참이었는데, 그 사이에 자신이 폐허가 되고 말아 읽기나 쓰기는 물론 집붕력을 요구하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기하고 있던 책쓰기를 디트로이트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야 디트로이트를 그저 운전해서 지나친 기억 밖에 남아 있지 않아 도시에 대한 구체적인 인상이 없어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바다의 블랙록 사막이야말로 저자에게는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책읽기를 마치고는 그저 어렵다는 느낌만 남은 것 같습니다. 다시 읽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불길함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자의 독서 두번째 이야기 - 길을 안다는 것, 길을 간다는 것 여행자의 독서 2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여행자의 독서; http://blog.joins.com/yang412/13651913>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랬기에 두 번째 이야기를 써낼 힘을 얻었겠지요. 새로운 여행지에서 읽으면 좋을 책을 골라주실 모양이라는 생각으로 두 번째 이야기를 펼쳤습니다만, 목차에서 무언가 다름을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구원을, 사랑을, 이야기를, 그리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는데, 두 번째 이야기는 추억을, 희망을, 낙원을, 그리고 낭만을 찾아 떠나지 말라고 넌지시 비틀고 있습니다. 반어법일까요? 그래서 더 꼼꼼하게 읽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여행과 독서의 즐거움이 줄지 않는 한 이런 원고를 계속 써보겠다는 욕심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런 욕심도, 의무도 없이 여행하고 책을 읽던 때가 행복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두 번째 이야기에 녹여진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을 읽고서는 첫 번째보다 더 참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두 21꼭지나 되는 이야기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더 많은 여행지 가운데 가본 곳은 오직 한 곳 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여행에 들고 갔다는 56권의 책들 가운데 제가 읽어본 책은 불과 10권밖에 되지 않는 것도 조금 그렇습니다. 그나마 년 전에 쿤데라 전집 읽기를 한 덕을 조금 보았습니다.

 

호즈를 제외한 5대주를 고루 포함하고 있습니다만, 아시아지역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잘 알려진 여행지보다는 처음 듣는 곳도 많은 것 같습니다. ‘추억을 찾아 떠나지 마라’는 이야기들 속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여행과 책은 대게 세 지점에서 만난다. 여행 전과 여행 중, 그리고 여행 후. 일상에서 만난 어떤 영감에 가득 찬 책은 독서가를 여행으로 내몬다. 길 위에서의 책은 여행자의 고달픈 길에 길동무가 되어준다. 여행 뒤에 만나는 책은 다녀온 땅에 대한 지식과 감상을 완성시켜준다.(22쪽)”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만 일상의 독서에서 여행을 결단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책에서도 가끔은 토로를 하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책을 꼼꼼히 읽는 편인가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읽기를 중단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일단 펼쳐든 책은 반드시 끝을 보는 저와는 다소 다른 책읽기 습관인 것 같습니다. 꾸준한 책읽기가 제일 어렵다고들 합니다만 길가기와 책읽기에 대한 저자의 이런 생각을 들으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길 가기와 책 읽기에 관해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 부지런히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부지런히 읽는 책이 가장 빨리 읽는 독서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막막했던 길들이 내 등 뒤에 납작 엎드려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뒤돌아보면 저걸 언제 읽지 했던 책들이 내 손때를 잔뜩 묻힌 채 서가에 꽂혀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한숨 쉬지 말고 가던 길을 갈 것. 읽던 책을 읽어나갈 것(329쪽)”

 

<여행자의 독서; 두 번째 이야기>까지 읽고서도 여전히 책 읽는 시간을 만들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는 저자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책을 읽고서 느낌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그저 책을 읽기 위한 여행은 여전히 호사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소개되어 있지 않으면 여행지 선정 목록에서 뒤로 밀리게 되나요? 사람들마다 여행의 목적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저자가 여행을 하는 목적도 분명 독특하면서도 의미가 있다는 점은 저도 인정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와 같은 여행을 꼭 따라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나름대로의 여행의 기술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제 경우는 여행을 통하여 나의 앎의 지평을 넓히는데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와서도 책읽기를 통하여 부족했던 앎을 넓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겨울 나그네>의 3번째 곡 ‘얼어버린 눈물’에서 인용한 대목은 리뷰에 남겨두어야 하겠습니다. “얼어버린 눈물이 떨어지네, 내 볼 위로 / 그럴 수 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울고 있었다니? / 오 눈물, 내 눈물아, 넌 그렇게 미지근하구나 / 하지만 이제 얼어버렸네, 차가운 아침 이슬처럼.(19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