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 역사도서관 교양 17
존 찰스 채스틴 지음, 박구병.이성형.최해성 외 옮김 / 길(도서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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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런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역시 커피 브랜드에 관한 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메리카노>는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의 과정과 의미를 정리한 책입니다. 옥스퍼드대학 출판부가 기획한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의 하나로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 발발 20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된 것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채플 힐 캠퍼스)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19세기 라틴아메리카, 특히 브라질과 리오데라플라타 지역의 정치문화와 대중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존 찰스 채스틴교수가 썼습니다.

 

북아메리카에서 열리는 학회에는 선뜻 나서게 되지만 남아메리카의 학회는 너무 멀어 그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멀다보니 관심도 적고 그러다보니 남미 여러 나라에 관한 정보들도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정열의 나라, 본고장 영국보다 축구를 잘하는 나라라는 막연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어서인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알레프>, <픽션들>,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등을 읽으면서도 작품 속으로 깊이 빠져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남아메리카가 얼마나 멀리 있는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여행작가 정은선님의 독특한 형식의 에세이 소설에 나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게스트하우스OJ에서 만난 나작가는 서울에서 복닥거리는 삶에서 벗어나려고 온 사람이었습니다. 나작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런 지옥 같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 곳이 어디일까? 여기가 생지옥이니까 가장 먼 곳은 당연히 천국일 것이다. 책상 앞에 놓인 지구본을 발견했다.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대한민국을 찍고 그 반대편을 찾아 오른손으로 찍었다.”(정은선 지음,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150쪽, 예담, 2009년; http://blog.joins.com/yang412/13685980) 직선거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곳이 바로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것입니다.

 

칠레와의 FTA가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남미가 우리나라와 많이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새로운 여행지로 뜨고 있다는 남미를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무언가를 버리려 가는 여행이 아니라 무언가를 찾으러 가는 여행으로 말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겠지요? 그래서 그들의 역사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사를 독립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한 <아메리카노>를 읽게 된 이유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독일의 박물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라틴아메리카 여행을 시작한 1799년부터 그가 죽은 1840년까지를 서술대상으로 하였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처럼 저 역시 ‘왜 훔볼트일까? 그리고 훔볼트가 누구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훔볼트인가?’하는 의문의 답은 이렇습니다. 19세기 초반 라틴 아메리카에서 독립투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데 적절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훔볼트가 누구지?’하는 의문을 가진 분은 2013년 4월에 [북소리]에서 소개했던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을 다시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여행의 기술>에서 알랭 드 보통은 ‘호기심’이라는 여행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하여 훔볼트를 인용하였던 것입니다. “훔볼트는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해발 5,076미터인데도 눈 위로 바위 이끼가 보였다. 이끼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800미터 정도 아래서였다. 봉플랑 씨[훔볼트의 동행자]는 해발 4,500미터에서 나비를 한 마리 잡았으며, 거기에서 500미터를 더 올라가서도 파리를 볼 수 있었다.’(153쪽)”라고 적어 훔볼트가 왜 뛰어난 박물학자인지를 알려주는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호기심이 여행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가를 잘 설명하는 인용이었습니다.

 

훔볼트는 스페인왕 카를로스4세를 설득하여 남아메리카 여행을 허락받았을 뿐 아니라 탐험비용까지도 해결하여 1799년부터 5년간 남아메리카를 여행하였습니다. 여행을 마친 뒤에는 파리에 정착하고 30권에 달하는 <신대륙의 적도지역 여행>이라는 제목의 여행기를 20년에 걸쳐 출간했습니다. 훔볼트가 여행을 떠날 무렵 만해도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는 전혀 없었던 상태였습니다. 훔볼트는 5년 동안 1만5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남아메리카의 북쪽 해안선과 내륙을 여행했고, 1,600가지 식물을 채집했으며, 크로노미터와 육분의로 측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지도를 새롭게 그렸습니다. 아마존 유역 주민들의 혈족의식을 지리와 문화적 특성을 연관하여 추론해냈습니다. 해류의 개념을 생각해냈는데, 오늘날 태평양의 동쪽 칠레와 페루연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남극의 차가운 바닷물을 적도방향으로 밀어가는 페루해류를 처음 발견한 공로로 훔볼트해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훔볼트가 카를로스4세의 허락을 얻어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할 무렵에는 지금의 멕시코지역으로부터, 브라질을 제외한 남아메리카의 전체 지역이 스페인의 식민지였습니다. 영토가 너무 광대하여 4개 지역으로 나누어 임명한 부왕이 다스리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멕시코와 괘테말라에 이르는 누에바에스파냐, 콜롬비아에서 베네수엘라에 이르는 적도부근의 누에바그라나다, 지금의 페루와 칠레가 포함되는 페루, 그리고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를 포함하는 리오데라플라타 등입니다. 하지만 고산지대와 아마존의 밀림을 지나는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메리카노>에서는 이야기에 앞서 알파벳순으로 소개하고 있는 등장인물만 해도 57명에 달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생소하면서도 긴 스페인 이름이 혀끝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어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편년체 방식을 취하여 정해진 기간 동안에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나열하고 있어서, 사건이 흩어져있고, 독립투쟁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지역을 넘나들며 활동하였던 탓에 서로 연관을 가졌던 부분이 머릿속에 쉽게 정리되지 않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기전체로 풀었더라면 이해가 더 쉬웠을까요?

 

콜럼버스가 발견한 북대서양항로를 통하여 스페인이 라틴아메리카를 쉽게 손에 넣은 과정도 이해되지 않는 바가 많습니다. 오랜 세월을 통하여 이 지역에서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을 꽃피워왔던 사람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이유가 그저 정복자들이 가진 신식무기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우리 사회에서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메르스처럼 그때까지 원주민들이 겪어보지 못한 천연두와 같은 신종전염병도 크게 기여한 바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밖에 더 생각할 무엇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식민당국의 탄압으로 줄어든 원주민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하여 아프리카에서 붙잡아온 노예까지 더해져서 스페인에서 이주한 사람과 원주민 등이 복잡하게 섞이면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정체성이 복잡해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스페인왕실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충성심은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도 미스테리입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독립의 기운에 싹트게 된 것은 아무래도 1789년 프랑스에서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리고 국민 의회를 열어 공화 제도를 이룩한 시민 혁명 영향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오랜 세월을 통하여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해온 신분차별을 지각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신분의 차이는 아프리카사람이나 원주민은 물론, 심지어 이베리아반도에서 건너온 스페인 사람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출생한 스페인 사람 사이에도 차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운동에 불을 당긴 결정적인 계기는 프랑스혁명에 이어 등장한 나폴레옹이 유럽의 지배할 야심을 가지고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한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침략에 대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응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1807년 포르투갈의 주앙6세는 리스본을 떠나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천도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반면 프랑스가 포르투갈을 공격하는 길을 내준 스페인은 이듬해 나폴레옹의 공격을 받고 카를로스4세 왕과 페르난도 왕자가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스페인은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나폴레옹이 왕위에 올라 스페인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의 반발도 거세었던 탓에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 주민들의 봉기를 대량학살로 진압한 프랑스에 대하여 스페인은 군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나폴레옹에 대항하게 됩니다. 프랑스가 점령하지 못한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저항협의체를 구성하고 군주가 없을 때는 주권이 각 지역에 귀속된다고 선언하였는데, 세비야가 핵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비야의 지역협의체는 누에바에스파냐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스페인 부왕령에서는 스페인왕실에 대한 충성도가 여전히 높았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독립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원주민과 메스티조(유럽인과 원주민의 혼혈)와 파르도(유럽인과 아프리카계의 혼혈)의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앞세워 광범위한 참여를 유도하였지만, 훈련을 받지 않은 반란군은 부왕령의 정규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야기된 군주의 부재를 틈타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려던 반란세력은 군주지지파에 밀려 반란이 실패한 것입니다. 문제는 영국의 지원을 받아 나폴레옹을 이베리아반도에서 축출하는데 성공한 뒤에 왕위에 오른 페르난도7세가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을 극단적으로 탄압하는 바람에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데, 원주민과 혼혈인들을 권력투쟁에서 배제한 채 크리요오(아메리카 태생의 백인)와 페닌슐라르(이베리아반도 출신의 백인) 간의 대립으로 발전하였으며 결국은 크리요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이후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 미국까지도 신생독립국가의 내정에 깊숙하게 간섭하였고, 상업적 침투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스페인의 식민통치의 특징은, “식민지 아메리카가 ‘공포, 무지, 가톨릭’이라는 세 개의 족쇄에 묶여 있었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혁명가 마리키타 산체스의 말에 잘 함축되어 있습니다. 처형과 폭력을 통해 주민을 지배하여 공포를 조장했고, 일반인의 시민교육을 박탈함으로써 자유로운 사상이 뿌리내릴 수 없도록 하였으며, 가톨릭교회는 이단심문소를 통하여 지배세력의 이런 행위들을 종교적으로 정당화시켰다는 것입니다.

 

90퍼센트에 이르는 문맹률에도 불구하고 독립투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확보된 인쇄기를 통하여 만들어낸 정치팸플릿을 통하여 자유주의 사상이 다양한 형태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독립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공화주의자였지만 이들은 지역 내의 대중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세계적 분위기가 공화주의를 지지하고 있었던 덕을 본 것입니다. 독립을 쟁취한 이후에도 라틴아메리카의 주민들은 여전히 기존의 사회적 위계질서에 따르는 보수적인 경향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주권재민을 기본으로 하는 국가형태가 자리를 잡기까지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19세기의 초반 대서양 양안을 뜨겁게 달구었던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인도양을 건너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의미를 “탈식민 세계의 주권을 확립한 것”이라고 저자는 요약하였는데, 식민지배를 탈피하여 주권이 인민들에게 있다는 점을 세계가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독립 직후에도 보통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유예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계기로 기승을 부리던 서양의 식민통치가 막을 내리게 되는데 ‘탈식민화의 최우선 원칙’이 크게 기여하였던 것입니다.

 

저자는 유럽계, 아프리카계 그리고 원주민의 혈통이 혼합된 독특한 라틴아메리카만의 다인종국가를 사회적으로 통합된 공화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초반을 달구었던 독립투쟁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씨를 뿌린 자유주의적 이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독립투쟁은 서양의 정치적 가치들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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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 아시아 문학선 1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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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하롱베이와 앙코르와트를 연결하는 여행을 다녀오기 전까지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청룡부대와 맹호부대가 부산항을 떠나던 장면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밖에도 우리소설로는 황석영님의 <무기의 그늘>, 이상문님의 <황색인>, 안정효님의 <하얀전쟁> 등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대체로 전쟁의 참상이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내용이나 베트남 전쟁의 근원까지 다루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굿모닝 베트남>이나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디어 헌터> 등, 역시 전쟁이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화하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영화 등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작품들은 모두 베트남전쟁에 뛰어든 외부인들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과연 베트남사람들은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치렀는지, 그리고 전쟁이 그들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 베트남전쟁 직전의 베트남사회를 그린 <하얀 아오자이>나, 베트남의 정글을 누비며 전투를 치른 참전작가 반레(본명은 레지투)의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이나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 등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전쟁의 슬픔>을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 바오닌은 196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일곱 살의 나이로 베트남인민군대에 자원입대하여 3개월간의 군사훈련을 받고 B3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소대원 대부분이 전사한 첫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입대 5개월 만에 소대지휘관이 되어 6년여에 걸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최전방을 누비며 전투를 치렀다고 합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전후방 개념이 분명치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만.... 마지막 작전은 사이공진공작전으로 소대원들과 함께 떤 선 녓 국제공항 점령 전투에 투입되었다(우리는 탄 손 누트 공항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베트남 공수 부대와 치열한 교전 끝에 공항을 장악했을 때 살아남은 소대원은 그를 포함하여 단 두 명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전사자 유해발굴단에 참여하여 옛 전투지역을 누비며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했는데, 이 모든 과정이 <전쟁의 슬픔>에 녹여져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퇴역군인들이 심각한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바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전쟁의 슬픔>에서는 작가 또한 PTSD로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작품의 초반에는 주인공 끼엔이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면서 그 지역에서 벌였던 전투장면을 회상하고 있는데, 작가의 입장에서는 기억의 심연에 묻어버리고 싶은 전투장면들이 저절로 살아나오는 고통을 다시 겪어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현재와 과거가 마구 뒤섞이는 것 같아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버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그 시간들에 붙박여 있었다. 내게는 내 삶처럼 내 영혼을 바꿀 재주가 없었다. 직감적으로 나는 과거가 내 주변에 몸을 숨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때로는 눈만 감아도 내 안에서 기억이 스스로 몸을 돌려 옛길을 쫓고 오늘의 현실은 통째로 풀밭에 내던져지곤 했다.(64쪽)”

 

전쟁터에서 있었던 일만 적었다면 아마도 작가는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장의 이야기에 더해진 끼엔의 사랑 이야기는 더욱 안쓰럽고 슬픈 것 같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뜨겁게 사랑하던 두 사람이었기에 전장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려는 욕심이 화를 불러 사랑하는 이를 곤경에 빠트렸던 것인데, 끼엔은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전쟁이 지나가는 6년의 세월은 많은 것이 변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집에서 만난 그녀를 안았을 때 끼엔은 그녀의 우아한 몸에서 한없는 행복감에 뒤섞인 혼란과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뭐가 잘못 되었을까요? 전쟁은 사랑을 망가뜨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망가뜨립니다. 지나친 욕심과 오해가 끼어들면 더욱 그렇습니다.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온 사람은 또 다른 전쟁을 마주하게 됩니다. 전쟁에서는 승리했을지 몰라도 그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희생자가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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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신 - 이기찬 무역소설 손에 잡히는 무역 19
이기찬 지음 / 중앙경제평론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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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홍대리 시리즈로 나온 <중국 천재가 된 홍대리; http://blog.joins.com/yang412/13447503>를 아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직장인을 위한 다양한 자기계발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홍대리 시리즈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우리 종합상사맨의 활동상을 그려냈습니다. 한 분의 저자가 모든 시리즈를 끌고가는 것이 아니라 주제에 맞는 분야의 전문가가 경험을 살려 집필을 하기 때문에 전문성도 높이고 또 시리즈의 기획의도에 맞게 재미있게 읽2010년에 <무역천재가 된 홍대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작품을 수정 보완하여 새롭게 꾸민 <무역의 신>입니다. 전작을 읽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새롭게 읽히는 맛이 있었습니다.

물론 무역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만, 소설로서도 충분히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무역 업무를 맡게 된 직장인이라고 한다면 처음 대하게 되는 무역 업무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기에 충분한 읽을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전자산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던 미래전자는 샛별처럼 등장한 제이테크의 추격을 받게 되는데, 미국의 해리스전자와 수출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숨통을 조여 오는 제이테크의 맹추격을 뿌리치기 위하여 해외진출이라는 맞불을 놓으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해외시장 개척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는 수출입업무의 경험이 전무한 홍대리에게 떨어지고, 일단 단독으로 해외무역의 활로를 찾아야 하는 홍대리에게 구세주가 등장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주인공이니까요? 대학에서 짝사랑을 하던 나현주 때맞추어 등장해서 무역의 달인인 아버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현주 아버지의 도움으로 무역실무를 배워가면서 수출을 모색하게 되는데, 무역업무를 하다보면 당할 수 있는 사건사고들이 등장하고 문제해결방법까지도 제시하게 되는 것은 무역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하지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도 순풍에 돛단 듯 풀리면 재미가 반감될 것이라는 점도 고려한 일석이조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1970년대 우리나라 제계에 전설이 되었던 율산실업의 등장과 퇴장에 관한 비사도 소개되어 있어 옛날 기억을 되살리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경쟁 상대가 있으면 엎치락뒤치락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미래전자와 제이테크는 미국의 해리스전자를 상대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게 되는데, 역시 미국회사와의 거래에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상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관계를 통한 거래가 결국은 승리한다는 결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단한 수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역시 정공법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입니다.

 

무역의 실무에 관한 스토리만 늘어놓아도 재미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랑 이야기가 들어가야 아무래도 읽는 재미가 더하기 마련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대학시절 현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허준표사장이 결국은 대진실업의 박성진회장의 딸과 결혼하면서 현주를 버렸던 것인데, 홍대리가 무역업무를 통하여 현주를 대신해서 빚을 갚아준 셈이 되나요? 그러니까 홍대리-현주-허대표가 대학시절 각축을 벌였던 1라운드의 승부는 허대표로 기울었다면, 세월이 흐른 뒤에 무역전쟁에서는 홍대리가 허대표에게 패배를 안기고 현주와 새로운 관계를 암시하는 부수적 성과까지도 챙긴 셈이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는 셈입니다. 박성진회장 역시 근무하던 회사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자금을 빼내어 회사를 대진실업을 설립했다는 비사까지 들어나기는 하지만 그와 같은 과거에 대한 벌을 어떻게 받았는가 하는 데까지는 확대하지 않는 묘수를 두고 있습니다.

 

물론 무역업무가 <무역의 신>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몇 줄의 조언으로 달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만, 일단은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 같은 것을 없애주는 효과는 충분히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역의 신

이기찬 지음

308쪽

2015년 6월 20일

중앙경제평론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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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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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는 우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도 충분하지 못한 가 봅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위라고 해도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가 봅니다. 충동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은 시절에 저지른 살인을 감추고 살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누군가에게라도 고백을 해야 마음속에 들어앉은 돌의 무게가 다소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을까요?

 

리안 모리아티의 <허즈번드 시크릿>은 우연히 발견한 남편의 편지의 겉봉에 쓰여 있는 “나의 아내 세실리아 피츠페트릭에게,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이라는 문구를 발견한 아내의 고심에서 먼저 인간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금하는 일을 지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판도라의 상자>라는 신화가 등장했겠습니까?

 

사리판단이 성숙하지 않은 시절 우연히 저지른 살인사건은 피해자 가족의 삶을 무너뜨리고, 오랜 세월을 웅크리고 있다가 또 다른 범죄를 낳게 되는 것을 보면 악연의 첫 고리를 꿰는 일이 무서운 비극을 잉태하는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악연의 사슬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작가는 세 개의 이야기를 별도로 시작합니다. 세실리아와 존 폴 부부 그리고 세 딸, 테스와 남편 윌 그리고 사촌 펠리시티, 레이첼과 아들 롭 그리고 며느리 로렌 등 세 가족에게 부활절이 들어있는 한 주일 동안에 일어난 일을 담고 있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을 교차되는 세 가족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도대체 세 가족이 어디에서 접점을 이루고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우선 먼저 노출된 비밀에 대하여, 과연 세실리아는 존 폴의 과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습니다. 폴의 어머니처럼 가족이라는 이유로 감싸 안는 것이 최선일까? 하지만 자수를 하고 잘못을 빌도록 이끌어가는 것이 옳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결정이 결코 쉽지만은 아닐 터이나, 묵은 악연의 고리를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오해를 받은 코너 휘트비선생이 애꿎은 희생양이 되지 않는 것은 사필귀정이라는 진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였을 것 같습니다.

 

세 가족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궁극적으로는 오래 전에 있었던 레이첼의 딸 자니의 죽음과 연결이 되는데, 그리고 보면 존 폴과 코너 휘트비, 지니와 테스 사이의 사랑방정식이 제대로 풀려가지 못하고 삐걱대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의 배경에는 의외의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존 폴이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신고를 하였더라면 평생의 마음고생은 물론, 악연의 고리로 인하여 딸 폴리가 희생되는 안타까운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부활절 일요일에 사건을 통하여 무너져 내린 세 가족이 어떤 상황을 맞게 될지를 보여주는데, 특히 세실리아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딸 폴리가 의식을 되찾으면서, 장애를 극복하면서 건강하게 자랄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테스의 남편 윌 역시 펠리시티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테스에게로 돌아오는데, 테스 역시 그 사이에 옛연인 코너 휘트비와의 일탈을 정리하고 남편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이런 결정이 쉬울까 싶기는 합니다.

 

이미 흘러간 물처럼 일어난 사건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지만, 에필로그를 통하여 작가는 “만약에 이랬더라면~~”하는 가정 아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을까 유추해보고 있습니다. 테스의 둘째 아이가 윌의 아이인지 코너의 아이인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의 경우는 유전자검사를 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을 터이나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 같습니다. 악연의 고리를 처음 만들어냈던 존 폴 역시 자니가 마르판증후군이라는 선천성 질환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자니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도록 했을 것입니다. 또한 자니를 담당한 부검의가 일을 제대로 했더라면 자니의 사인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면 <허즈번드 시크릿>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도 그편이 나을 것이다. 어떤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는다. 판도라에게 물어보자(535쪽)”라고 마무리한 작가의 생각이 어디에 있든지, 최선의 삶이란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일이 없으면 일단 필요조건은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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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뇌다
디크 스왑 지음, 신순림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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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의 한 분야인 신경병리학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신경계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도록 만든 구조가 바로 대뇌이기 때문에 그만큼 복잡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기관이기 때문에 지금도 밝혀지지 않고 있는 점이 많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관심대상이 점점 확대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뇌에 관한 무한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책을 만났습니다.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뇌과학자 디크 스왑이 쓴 <우리는 우리 뇌다>입니다.

 

우리에게 네덜란드는 그저 튤립의 고장으로 고정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유럽의 상권을 움켜쥐고 해외에 수많은 식민지를 두었던 대단한 나라입니다. 바로 유럽의 패권이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넘어가던 힘의 공백기를 잘 활용한 덕분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펠리페2세의 이단심문과 스페인군의 도심주둔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벌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등의 지원을 받은 북부 7개주는 1581년 먼저 독립을 선언하여 홀란드를 세웠고, 벨기에에 속하는 남부는 뒤에 독립하였습니다. 홀란드는 모직물산업과 어업 그리고 무역과 금융업을 기반으로 하여 융성할 수 있었는데, 모직물산업은 가톨릭을 국교로 삼은 펠리페2세가 축출한 무슬림과 유대인이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룩한 것이었습니다. 홀란드는 인도에 세운 동인도회사를 기반으로 하여 아시아무역을 장악하였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모델로 하여 성장했던 것입니다. 네덜란드는 오늘 날에도 유럽의 무역과 상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최문형 지음, 유럽이란 무엇인가 198-263쪽, 지식산업사 , 2009년; http://blog.joins.com/yang412/11033715)

 

저자는 “뇌는 우리가 생각하고 배우고 보고 듣고,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그리고 유쾌한 것과 불쾌한 것을 구별할 때 사용하는 우리 신체의 일부이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여, 뇌야말로 우리가 왜 현재의 우리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변을 숨기고 있는 기관이라고 추론하고 ‘우리는 우리 뇌다’라는 명제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뇌에 자리하고 있는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빚어내는 상호작용의 산물입니다. 야코프 몰레쇼트의 말대로 ‘콩팥이 소변을 생산하듯 뇌는 정신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만든 뇌의 신비를 시작부터 끝까지 뒤쫓고 있습니다. 즉 수태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변화를 요약한 것입니다. 다만 수태에서 출산에 이르기까지 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보다는 태아가 자궁 안에서 지내는 동안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독성물질이나 의약품 등으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발달장애는 물론 태아가 만들어내는 호르몬들이 부모를 어떻게 자극하여 모성행동 혹은 부성행동을 하도록 하는가, 성에 따른 행동의 차이가 어떻게 발현하는가, 심지어는 동성애적 경향이나 소아성애증이 생기는 이유 등입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의 원인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즉 동성애는 당사자의 선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동성애는 치유가 가능한 질환이라는 미국사회의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동성애적 성향은 태아가 자궁 안에 있는 동안 결정되는데, 여야의 경우는 유산방지목적으로 투여하는 디에틸스틸베롤이나 각성제로 사용하는 암페타민, 혹은 니코틴 등이 동성애적 경향을 높인다고 합니다. 남아의 경우에는 손위 남자형제의 수와 동성애적 성향의 가능성이 비례한다는 가설이 있는데, 아들이 자궁 안에서 분비하는 남성 물질에 대한 모체의 방어기제가 임신이 반복될수록 강화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흔히는 동물세계에는 동성애가 없다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약 1,500종의 동물에서 동성애적 행동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임신 기간 동안 수컷들 속에 노출되어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암컷 쥐는 다른 암컷 쥐와 교미한다고 합니다.

 

출산의 신비에 관해서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통상 모체에서 40주를 전후하여 2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태아가 모체를 떠나는 시점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는 것도 아주 흥미로운 점입니다. 필자의 작은 아이는 42주를 채웠는데도 세상에 나올 기미가 없어 유도분만으로 출산했던 적이 있어 호기심이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출산과정은 산모의 뇌에서 분비하는 옥시토신이 자궁을 수축시키면서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태아 역시 뇌에서 옥시토신을 분비하여 자궁수축을 유발시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출산은 태아의 혈당치가 떨어지면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태아의 혈당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는 모체가 태아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없을 정도로 태아가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태아가 소모하는 신진대사량이 모체의 15퍼센트를 넘기면서 진통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산모의 생체시계가 작동하여 분만이 야간, 특히 이른 새벽에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수면이 부족한 산부인과 인턴을 괴롭히는 새벽분만이 많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자는 분만이 순탄하지 않은 난산으로 인한 뇌발달장애로 부터 시작하여 우울증, 프래더윌리 증후군, 비만증, 군발성 두통, 기면증, 신경성 거식증, 자폐증 등, 뇌와 관련된 다양한 질환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대마초와 엑스터시와 같은 향정신성 물질이 뇌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마초(마리화나)의 경우는 긴장 완화와 종교적 혹은 의료적 목적으로 오랫동안 이용되어 왔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통증, 불안 및 수면장애, 암환자의 오심을 억제하기 위하여 처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습관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 대마초의 품질이 개선되면서 중독성 환각제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대마초를 오랫동안 피우면 다양한 뇌부위에서 변화를 일으켜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해마위축(기억이 감퇴됩니다), 편도체 위축(불안과 공격성 그리고 성행동의 변화가 나타납니다)과 같은 형태적 변화는 물론 정신분열증과 같은 기능적 장애도 유발시킨다고 합니다.

 

폭력적 성향이 왜 나타나게 되는지 별도의 장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폭력적 행동이 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공격성을 가진 종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공격성은 성별, 유전적 소인, 모태의 환경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임신의 중간 단계에 남성호르몬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경우 공격성이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서 공격성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폭력을 예찬하는 영화나 컴퓨터게임이 공격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뇌에 있는 편도체가 공격성을 좌우하는 역할을 하는데, 편도체의 어떤 부위를 자극하면 공격성이 누그러지고 어떤 부위가 자극되면 공격성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과 같이 편도체에 변화가 생기면 공격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치매로 요양원에서 지내던 81세의 여성이 룸메이트를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별도의 장으로 구분한 자폐증에 관한 내용도 주목할 만합니다.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는 대니얼 태멋을 인용한 자폐증에 관한 이야기에서 저자는 일부 자폐증 환자가 나타낼 수 있는 서번트 특성을 중점적으로 설명합니다. 자폐증을 일종의 발달장애라고 규정하면서도 유전적 요인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은 지난 20년간 자폐증환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이유가 진단관행이 변한 것 때문이라는 앨런 프랜시스교수의 진단과는 배치되는 것 같습니다. 프랜시스교수는 DSM-IV에 아스퍼거증후군을 새로 넣으면서 자폐증 환자가 세배가 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상인 범위에 속하는 괴짜와 아스퍼거증후군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앨런 프랜시스 지음,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223-226쪽, 사이언스북스, 2014년; http://blog.joins.com/yang412/13392396).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대표적인 뇌질환 역시 저의 관심분야이기는 합니다만, <우리는 우리 뇌다>에서 제가 가장 열심히 읽은 부분은 13장 도덕적 행동, 15장 신경 신학: 뇌와 종교, 16장 하늘과 땅 사이에 더 이상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17장 자유 의지-아름다운 환상 등입니다. 바로 정신세계와 관련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도덕적 행동에 관한 내용을 보면 인간이 동물적 충동을 억제하고 인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도덕적 결정을 관장하는 전전두엽이 발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전전두피질은 인지된 감정이 도덕적 관점에 합당한지를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전전두 피질은 사회적 신호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충동적이고 이기적인 반응들을 억제한다.(349쪽)”라는 것입니다. 영장류에서도 볼 수 있는 도덕적 규범은 사회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개인에게 일정한 수준의 제약을 두는 일종의 사회계약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도덕적 결정을 하는데 있어 뚜렷한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신의 존재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가 하는 의문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즉각 이해할 수 없을 때마다 신을 찾는다. 이를 통해 뇌조직의 소모와 손상을 줄일 수 있다.(379쪽)”라고 한 에드워드 애비의 말을 인용한 것은 종교가 인간에게 진화적 이점을 가져다주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모든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언어, 도구 제작, 음악, 예술 그리고 종교 등 다섯 가지 특징적인 표현방식은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앞서 도덕적 규범이 집단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처럼 종교 역시 집단을 유지하기 위하여 신의 이름으로 개개인에게 많은 규범을 부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종교가 가져온 진화적 이점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첫째. 종교는 집단을 결속시킨다, 둘째. 신앙에서 유래하는 계명과 금기는 집단보호의 측면에서 다양한 이점을 제공한다, 셋째. 어려운 시기에 종교적인 신념이 신자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는 반면에, 무신론자들은 신의 도움 없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넷째. 신은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에 답변을 한다, 다섯째. 종교는 사후의 삶을 약속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는 듯하다, 여섯째. 내가 믿는 신의 이름으로 다른 집단을 죽여도 되는 것은 항상 종교의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저자는 종교가 가진 진화적 이점을 말하면서도 종교가 없었다면 인간은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임사체험을 바탕으로 주장하고 있는 영혼의 존재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제시합니다. 임사체험자들이 주장하는 바들이 뇌과학으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학에서 오랫동안 주장해온 자유의지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필자는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신경세포가 활동을 하더라는 뇌신경생리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유 의지는 없다’는 결론에 이른 샘 해리스박사의 <자유의지는 없다; http://blog.joins.com/yang412/13064786>를 읽고서 다소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를 했던 것처럼 인간의 모든 선택이 찰나적인 직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불과 18쪽으로 요약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나 싶습니다. 그만큼 죽음은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다룬 내용 가운데 잘못된 저의 앎을 고쳐야 할 점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입니다. 흔히 심장이 멎어 뇌의 신경세포에 산소공급이 중단된 상태가 4~5분 경과하면 심각한 손상을 받아 돌이킬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뇌의 신경세포들은 사후 10시간 이내에 추출해도 배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신경세포는 산소결핍에 10시간은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문제는 신경세포가 아니라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모세혈관의 내피세포들입니다. 산소결핍이 4~5분 경과하면 손상을 입은 내피세포들이 팽창하여 적혈구가 모세혈관을 지나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네덜란드에서 뇌은행을 처음 설립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운 점이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정리를 해보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뇌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을 쉽고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쉽게 읽힌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뇌다

디크 스왑 지음

신순림 옮김

568쪽

2015년 4월 30일

열린책들 펴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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