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눈뜨게 한 삶
김성찬 / 책만드는집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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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진료를 전공하신 선생님 가운데 자신도 암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급성심근경색증이나 뇌졸중과 같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죽음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게 될 것을 두려워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다 같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세상을 떠나신 장인어른께서는 말기암으로 진단을 받으시고도 거의 3년 가까이 투병을 해오셨습니다. 그 가운데 적어도 2년 이상은 비교적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셨는데, 3년째 들어 체력이 떨어지면서 생긴 폐렴을 극복하지 못하신 것입니다. 3년 가까운 시간을 버텨오셨다면 주변을 잘 정리하셨을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돌아가신 다음에 보니 그렇지 않은 면도 있고, 또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조금 더 사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곤 해서 역시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처음 암에 걸리셨다는 사실을 알린 것도 저이고 보면 암치료는 씩씩하게 잘 받아오셨을 뿐 아니라 돌아가시기 전에는 대세도 받으시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만나보셨다고 해서 나름대로는 행복한 죽음을 맞으셨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다만 오늘 읽은 <죽음이 눈뜨게 한 삶>을 진즉 권해드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말기암환자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는 거의 정답에 가깝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눈뜨게 한 삶>은 저와 갑장인 저자가 2006년 8월 말기대장암으로 진단을 받고 힘겹게 투병을 하면서 체감한 투병경험을 진솔하게 담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분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제목들을 보면 암과의 싸움도 결국은 스스로를 어떻게 다스리는가 하는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마무리를 위한 시작, 죽는 연습, 지금 이 순간에 살기, 밝은 마음으로 살기, 느린 마음 갖기, 죽은 것처럼 살기, ‘나’에게서 벗어나기, 좋은 말 하기, 명상하기, 사랑이 으뜸, 끊임없이 수행하기, 감사하는 마음 갖기, 종교적인 삶 등 투병과정에서 느낀 점을 28개의 화두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는데, 모든 내용이 마음에 절절하게 와 닿는 내용들입니다. 그 내용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은 항상 죽는 연습을 하여 내일 당장 죽더라도 아무런 여한 없이 죽을 수 있어야 한다.(25쪽)’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죽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죽는 연습은 밝고 평온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삶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과 근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려운 환경에서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일찍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야간에 법대과정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얼마 전까지와는 달리 합격자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저자가 살아온 길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수원을 거쳐 검사로 재직하면서도 다양한 도시를 돌면서 일이 우선이던 세월을 살아냈던 것입니다. 힘든 세월을 살아온 끝에 찾아온 불청객이 암이었으니 왠만한 사람이라면 ‘왜 내가 이런 불행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불만이 폭발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내 스스로를 추슬러 암과의 싸움을 시작하여 잘 버텨왔던 것 같습니다. 모두가 마음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종교를 가졌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종교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면들을 모아 삶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책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책읽기’와 ‘글쓰기’가 마음공부에 큰 몫을 해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책읽기는 새겨 읽으면서 글에 담은 저자의 생각을 사색하가면서 읽어야 참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기 때문에 정독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또한 글쓰기는 명상이 곁들여지는 효과와 함께 생각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힘을 가지게 되는 등 다양한 효과를 가지더라는 경험적인 말씀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고요한 마음, 즉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말기암환자는 검사결과에 일희일비하거나 치료성적에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면 치료효과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암질환이 치명적이던 시절에서 이제는 만성질환의 하나로 치부하는 시설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쉽지 않은 상대인 것도 사실입니다.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나 그 가족들, 혹은 암에 걸릴 것을 두려워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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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결산 보고서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장 짧은 대답
그레고어 아이젠하우어 지음, 배명자 옮김 / 책세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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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처음 읽습니다. 대부분의 저자는 서문을 통하여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나, 책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을 하게 됩니다. 조금 더 친절을 베푼다면 책의 구조와 그에 따른 내용을 축약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책읽는 이를 위한 배려는 전혀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장 짧은 대답’이라는 부제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어떻든 이 책은 저자가 내놓은 열 개의 질문에 대하여 저자 나름대로의 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 개의 질문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문제는 미루어두더라도, 가장 짧은 대답은 아니지 싶습니다.

 

저자인 그레고어 아이젠하우어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철학자이자 작가로 소설과 에세이 등을 쓰고 있는데, 이 책의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력은 특이하게도 추모기사 작가라는 점입니다. 저자는 지난 13년 동안 유명인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추모기사를 베를린 유수의 타게스 슈피겔지에 게재해왔는데, 무려 240편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자의 친구이자 신문사 대표 다피트의 제안으로 시작한 일인데, 평범한 사람들의 추모기사를 저자에게 부탁한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유명인을 위한 추모기사야 아무나 쓸 수 있는데 굳이 너에게 부탁하겠어?(11쪽)” 스스로를 수다스러운 삼류작가라고 부르는 저자를 포함해서 여러 명의 추모기사 작가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신문사 대표의 철학이 참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A4용지 두세 장 정도가 될 4,000자 정도의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한 대표의 말대로 아무리 작가라고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의 삶을 정리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책의 말미에 ‘직접 써보는 내 인생의 추도사’라는 제목으로 비어 있는 쪽을 붙여놓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삶을 정리하는 느낌으로 스스로의 추도사를 적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10여년 전에 돌아가신 선친께서 남기신 유고들을 정리하다 보니 사세(謝世)라는 제목으로 된 글에 살아오신 날들을 되돌아보시고, 어머님과 아들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을 남겨두셨습니다. 부지런히 유고들을 정리하여 선친의 유고집을 49제때 봉헌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저 역시 기회가 된다면 저자의 말대로 내 인생의 추도사를 써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모기사 전문작가(?)가 책을 읽는 이들에게 던지는 열 개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1. 스스로 생각할 것인가, 남에게 시킬 것인가? 2. 왜 사는가? 3. 나는 행복한가? 4. 나는 아름다운가? 5.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6. 무엇을 해야 하나? 7. 누구를 위해 해야 하나? 8. 신은 있는가? 9. 내 수호천사는 누구인가? 10. 죽어서도 살 수 있는가? 그런데 10개의 질문이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부터가 의문이 드는 것 같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질문을 제목으로 한 글을 읽다보면 저자의 말대로 가장 짧은 답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변죽을 너무 울리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을 마무리하면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책을 읽는 이가 만들어 보라는 식입니다. 첫 번째 장의 마지막에 던진 질문은 이렇습니다. “당신은 생의 마지막 한 시간을 누구와 보내고 싶은가?(38쪽)” 이런 종류의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은 잘 아시죠? 그렇습니다.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여 생각하여 상대를 정하고,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요? 글쎄요 지금부터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생각 없이 살아온 탓에 마음 속에 결정된 답은 아직 없거든요.

 

접어둔 곳이 많습니다. 눈에 띄는 몇 대목을 추려보면, ‘인간이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좋은 기억이다.(54쪽)’ ‘죽은 다음에는 삶이 없다(77쪽)’ ‘행복이란 없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행복해질 수 없다.(88쪽)’ 사랑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133쪽)‘ 장애인은 일반인보다 더 현명하거나 더 겸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고약할 때가 많았다.(159쪽)’ ‘너의 죽음이 아니라 너의 삶을 슬퍼하라.(163쪽)’ ‘죽음은 불필요하게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272쪽)’

 

정리해보면, 죽은 뒤에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느냐 마느냐가 작가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생전의 활동이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는가 하는 문제는 작가에 국한된 것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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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민담 전집 07 - 터키 편 황금가지 세계민담전집 7
이난아 엮음 / 황금가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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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국내 사정이 불안하다고 해서 망설이고는 있습니다만, 봄에 예정했다 미룬 터키여행을 올 가을에는 꼭 가보려고 합니다. 터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찾다 발견한 책입니다. 아무래도 민담은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다보면 터키 사람들의 진면목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모습이 우리와는 사뭇 달라 보이는 터키 사람이 우리와 피를 나누었다고 하는 인식의 배경에는 터키 사람들의 조상인 셀주크 튀르크족은 우리의 역사에서도 등장하는 돌궐족의 후예라서 우리의 조상과 뿌리가 닿고 있어서인가 봅니다.

 

출판사의 기획의도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민담이란 한 민족이 수천 년 삶의 지혜를 온축하며 가꾸어온 이야기로, 그 민족 특유의 자연관, 인생관, 우주관, 사회의식이 속속들이 배여 있다고 하겠습니다. <세계민담전집-터키편>에는 모두 22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세편인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왕실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어쩌면 터키 사람들은 왕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니라고 부르는 요정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꽤 있습니다. 호리병 속에 살면서 주인이 부르면 펑 하고 나타나 주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대체로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만나 본 그런 존재인데, 어쩌면 터키 사람들에게 전해진 아랍문명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미에 붙인 터키 민족의 배경과 터키 민담의 특징을 보면, 중앙아시아지역에서 중동지역으로 먼 거리를 이동해온 튀르크 족은 유목생활을 통하여 축젂된 경험이 민담에 녹아 있는데, 신화적 존재나, 초자연성, 전설 등의 역사성이나 사실성과는 거리가 있는 흥미 위주의 이야깃거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체적으로 허구적이고, 환상적 요소를 담아 흥미를 유발하고, 삶의 지혜와 도덕적 교훈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편역자가 뽑아 담은 이야기들은 정의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하고, 지혜와 용기를 숭상하는 터키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것들로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쉽게 읽히는 이야기들 가운데 역시 요정이 등장하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아랍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말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남았던 부분입니다. ‘내 운명을 찾습니다’편에서 요정의 힘을 볼 수 있습니다. “한밤중이었다. 잠을 청하던 아자르가 갑자기 칼을 빼 들었다. 아랍 인 거인들의 나타나 말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불태울까요, 무너뜨릴까요?’ ‘아니다. 불태우지도 말고 무너뜨리지도 마라. 시장의 궁전 앞에 그 궁전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궁전을 만들어라. 아침이 되기 전에 다 만들어 놓아라!’ 아랍인 거인들은 사라지더니 몇 시간 만에 거대한 궁전을 지었다.(23쪽)” 어쩌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역시 “에이~~~! 말도 안돼!”하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이야기는 이야기로 이해하였던 것 같습니다.

 

몇 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켈올란이라는 인물도 흥미롭습니다. 터키인의 지혜를 대표하는 인물로 민담에서 가장 사랑받는 존재라고 합니다. 가난한 부부 혹은 홀어머니의 아들로 등장하는데,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린데다가 대머리라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대표적인 루저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인물이 기상천외한 꾀를 내서 적을 쳐부수고 부자가 되는데, 왕이라고 해도 켈올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고 하니, 일반 백성들의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존재였을 것 같습니다.

맨 처음에 나오는 ‘요정에게 장가든 남자’에서 처럼 요정과 사랑을 하는 이야기는 현대에서도 많이 변주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오래되었지만, 지니라는 요정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 민담에도 등장하는 우렁각시가 터키민담에서는 요정에 해당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재미있게 읽히고, 권선징악이라는 도덕적 관념을 주제로 하고 있어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을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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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로 가는 길
앙드레 말로 지음, 김붕구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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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말로의 <왕도로 가는 길>을 만나게 된 것은 앙코르와트에 관한 이야기를 찾는 과정에서 앙코르 유적을 몰래 반출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앙드레 말로가 1923년 앙코르 유적을 찾았을 때 반띠아이 쓰레이의 중앙 사당에 있는 테바다(여신)상에 반하여 본국으로 반출하려다가 붙잡히기도 했는데, 이 여신상은 일찍이 서유럽 사람들에게 ‘동양의 모나리자’로 극찬을 받고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장관을 지냈던 이가 본국정부가 금하고 있는 해외식민지 유물의 반출을 꾀한 것도 웃기는 일인데, 그 과정을 소설에서 그렸다고 해서 읽어본 것입니다.

 

<왕도로 가는 길>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클로드와 페르캉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에서 유물을 반출하기로 합의를 하게 되는데, 젊은 고고학자 클로드는 반출한 유물로 한몫을 잡으려고 생각하였고, 원숙한 탐험가인 페르캉은 캄보디아 오지에 있는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무기구매자금을 마련하려는 목적 이외에도 이 지역에서 실종된 친구 그라보를 구출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여건이 어려웠던 그 시절에도 탐험의 실패는 죽음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페르캉은 죽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왔던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작가가 죽음을 천착하기 시작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의 첫머리, 홍해를 빠져나와 시암으로 향하는 배안에서 만난 페르캉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늘어놓는 과정에서 시암의 왕이 되었던 백인 메이레나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마치 종기가 곪듯이 한평생을 건 자기 희망에 속아 온통 곪은 사내, 자기를 둘러썬 거대한 나무들에 울려 되돌아오는 제 고함 소리에 스스로 혼겁을 하며 죽어가는 사내…(17쪽)” 분명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만들고 빠져들어간 고독에 지쳐 죽어갔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페르캉은 메이레나의 죽음을 자살로 이해합니다. “자살하는 자란 대개 스스로 빚어 놓은 자기 환상을 쫓아가는 법이다. 그러니 오직 자기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자살한다는 거야. 난 신에게 속아 넘어가는 게 싫단 말이야.” 나중에 페르캉은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내가 내 죽음을 생각하는 건 죽기 위해서가 아니야. 살기 위해서야.(146쪽)”

 

복잡하게 얽힌 가정사로 할아버지 아래서 성장한 클로드는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할아버지가 클로드에게 전한 이런 말이 인상적입니다. “아가, 기억이란 한 가문의 성묘(聖墓)나 다름없는 거다. 산 자들과 함께 산다느니 보다는 더 많은 죽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거다.(28쪽)” 그래서 유럽의 유서깊은 집안에는 조상들의 초상화를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는 모양입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앙코르 유적에 관한 보고서는 1908년에 나온 것으로 그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 사이에는 새로운 발굴조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를 참고해보면 앙코르 유적이 발견될 당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부조면은 오랜 시일 동안 나무의 습기와 폭우로 인하여 심히 파손되었으며… 원형 천장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원형 천장에 사용된 사암이 사원 내부에 무너져 옛 자취를 살필 수 없게끔 되었다. 이 극히 처참한 파손의 원인은 건축에 목재를 사용한 것으로 말미암은 바 크다고 추측된다…. 그 퇴적물에 뿌리박은 거목들이 지금은 벽의 높이를 능가하며 그 뿌리가 그물처럼 틈틈이 얽혀 벽을 둘러싸고 있으며… 이 지역은 거의 인적이 없는 황막한 밀림의 비경이다….(53-54쪽)” 하지만 고고학자라고 하는 클로드가 하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밀림 속에 숨어있던 유물들이 인간의 눈에 띄지 말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커다란 채석 망치를 들더니 온몸을 비틀고는 냅다 돌 뭉치를 후려쳤다. 돌가루가 다시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 하얀 줄기에 홀린 듯이 돌가루를 바라보았다.(113쪽)” 고대 장인들이 피와 땀을 쏟아 만들어낸 예술품을 그저 훔치기에 적당한 크기로 나누기 위하여 마구잡이로 부쉈던 것입니다. 어떻든 이런 과정을 통하여 잘라낸 유물을 달구지에 싣고서 밀림을 빠져 나오게 되지만 밀림 속에 숨어 있는 원주민에게 잡히는 신세가 되고, 페르캉은 그곳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왕도로 가는 길>을 여러 시각으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만, 제 경우는 죽음에 대한 작가의 열린 생각이 주로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서 죽음을 생각한다던 페르캉도 막상 죽음이 목전에 다가오자 죽음에 대하여 흥미가 사라지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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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수업 -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질문
박웅현 외 지음, 마이크임팩트 기획 / 알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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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생각수업>을 읽었습니다. 마이크임팩트가 매년 여는 ‘Grand Master Class’의 2015년 주제 ‘생각수업’에 초대된 진중권교수를 비롯한 아홉 명의 연자들이 발표한 내용을 다듬어 내놓은 책이라고 합니다. 흔히 방황하기 쉬운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엇은 시대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해왔던 것 같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들이 갈구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콕 짚어낸 무엇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세상을 살아본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별 내용이 없어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생각수업>은 지금 바로 돈이 되지는 않아도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순수한 ‘앎’과,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비하고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짚어볼 수 있는 ‘고민의 자리’라는 두 가지 화두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을 겨냥한 기획물이었다고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가를 드높이고 있어 이름만 들어도 아! 하는 아홉 분들―박웅현, 진중권, 고미숙, 장대익, 장하성, 데니스 홍, 조한혜정, 이명현, 안병옥님이 초대되었다고 합니다. 아홉 분의 연자들이 받은 명제는 ‘진정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자신의 인생에서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을 만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자들 스스로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의 전문 분야에 따른 최소한의 지식을 전달하는 한편, 그간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질문들을 청중들에게 던지도록 요청받았다는 것입니다.

 

광고를 하시는 박웅현님의 질문은 ‘왜는 왜 필요한가’인데 역시 광고를 하시는 분답게 심오한 질문을 준비하였지만, 내용을 보면 다양한 분들의 말씀을 끌어와 엮어내고 있는데 불과하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제시한 ‘동의할 수 없는 권위에 굴복하지 말자’라는 조언에 앞서 그 동의라는 것이 남이 보기에도 타당해야 할 것이라는 전제를 빼놓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본업인 미학에 관해서보다는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일반화되는 진중권님의 질문은 ‘우리는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인데 중요한 것은 가치중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이 필요할 듯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편향된 감각을 키울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 않는가 하는 점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님은 최근 번역한 <열하일기> 등을 통하여 우리 고전에 대한 사랑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으로 내놓은 동양의 의역학의 핵심이론이라고 하는 음양오행설이 입증되지 않은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현대의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한 전통의학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내용은 과학철학을 전공하신 장대익님의 ‘과학은 가치에 침묵하는가’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인간에 대한 앎은 인문학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그 앎을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본다면 이에 대해 가장 새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과학입니다. 이런 점에서 과학은 21세기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요약된 내용은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왜 인문학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 같습니다. 꼭 읽어본 책의 제목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생각은 어떻게 탄생하는가’라는 질문을 준비한 로봇공학자 데니스홍님의 말씀도 마음에 와 닿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창의력이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연결시키는 능력’인데, 창의력으로 연결시킬 거리를 많이 가지기 위해서는 공부하고, 여행하고, 호기심을 키워야 하며, 다르게 보고, 생각의 틀을 깨야 한다는 어려운 주문을 하셨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주문이 많고 복잡하면 싫어하는데 어떨까 모르겠습니다.

 

아홉 분의 강연에 무려 4천명이 넘는 청중들이 몰려 열광했다고 합니다. 좋은 말씀을 듣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아무리 좋은 말씀도 자신만의 틀에 걸러서 들을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저 한때의 유행에 휩쓸리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생각수업

박웅현 등 지음

316쪽

2015년 6월 25일

알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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