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원주민의 전쟁과 평화 - 유까딴 1847-1902 중남미지역원 학술총서 14
정혜주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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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멕시코 칸쿤으로 가는 여행상품을 안내하는 광고가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칸쿤은 유카탄반도 북동쪽 끝에 있는 작은 섬인데 1970년까지는 100여 명의 마야인들이 낚시와 채집을 하며 지내는 조그만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광고를 볼 무렵 관광지로 개발이 되었을 때였던 모양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가보았더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개발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마야원주민들의 모습이 지금보다는 원형에 가깝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중남미지역원에서 연구하시는 정혜주교수님의 <마야 원주민의 전쟁과 평화>는 유카탄반도의 마야원주민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된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는 끄리오요들에 의한 착취와 탄압에 맞선 투쟁과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서로 교류하던 아시아-유럽-아프리카에서 멀리 떨어져 독립적으로 살아온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들로서는 1492년 컬럼버스의 도착은 재앙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마야 사람들에게는 1502년 유카탄 해안에 도착한 스페인사람들을 발견한 것은 재앙의 전주곡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1511년부터 황금을 찾아 유카탄반도 탐사에 나섰던 스페인 사람들은 마야원주민의 호전적 대응에 속수무책으로 패하였지만 그들의 신전을 장식한 금붙이는 사지라도 뛰어들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마야 원주민들이 제국을 이루고 살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 공부한 바에 의하면 마야사람들은 일종의 도시국가처럼 지역에 웅거하여 생활하고 있었고, 부족들이 인정하는 신의 대리자가 세워져 있지만 중앙과의 연대가 긴밀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러한 마야 부족의 특성은 스페인 사람들이 쉽게 파고들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즉 저항하는 마야원주민과의 전투를 통하여 학살하는 한편으로는 마야원주민의 지도층을 회유하여 다른 부족을 공격하는데 힘을 보태도록 하는, 즉 부족간의 갈등을 이용하여 지배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초기에 마야사회에 정착한 스페인 사람들을 통하여 마야 사람들의 신앙을 이용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300년이 지난 뒤에 멕시코 중앙고원에 위치했던 누에바에스파냐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이 결실을 맺어 멕시코가 독립을 쟁취하면서 유카탄반도의 마야원주민들 역시 독립을 얻었지만, 원주민들을 지배하던 라디노라고 부르는 백인 끄리오요들의 착취는 변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1847년부터 1854년까지 7년에 걸쳐 끄리오요들과 마야원주민 그리고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조 사이에 치열한 유혈충돌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패퇴한 마야원주민들은 반도의 북동쪽 밀림지역으로 밀려나 숨어살면서 47년에 걸쳐 소규모의 전투를 치르면서 저항하는 삶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저자는 54년에 걸친 마야원주민들의 치열한 독립전쟁의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제1장에서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마야 사회의 형편을 요약합니다. 독립적으로 생활하던 마야원주민들이 순식간에 노예신분으로 전락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제2장에서는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얻은 직후의 사회상황과 결국은 충돌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던 유카탄반도에서의 사회적 분위기를 설명합니다. 제3장부터는 제5장까지는 원주민과 라디노가 충돌하여 진퇴를 거듭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마야원주민들의 일부는 라니노 편에 속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아마도 원주민을 노예처럼 부렸던 라니노측이 원주민에게 조건을 제시하고 동원하였것 같습니다.

 

저자가 설명을 하고는 있지만 이해되지 않은 점은 원주민들이 승리를 쟁취할 수도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던 1848년 우기에 마야원주민 전사들이 대부분 옥수수를 심어야 한다면서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마야 사람들에게 옥수수 재배는 일종의 하늘의 뜻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적과 싸우는 마당에 옥수수 파종을 이유로 전장을 떠날 수도 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 점입니다. “그들은 복수보다는 자신들의 풍습과 전통적인 의례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205쪽)”라고 합니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인지 다른 속셈이 있었던 것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순수한 쪽으로 이해되는 마야사람들의 속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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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정호승 시집 창비시선 36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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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님의 시집 <여행>을 읽었습니다. 이즈음 여행에 관심이 많다보니 제목에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여행에서 느끼는 감성을 담은 시들이 아닐까 싶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표제시 ‘여행’을 보면,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떠나서 돌아오지 마라/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바람에 흩날릴 때까지/돌아오지 마라/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라고 되어 있어, 살아온 혹은 살아가는 나날이 여행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인의 여행은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입니다. ‘여행가방’에게는 “너는 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니 /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려고 그러니 / 이곳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아니야”라고 따지듯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무슨 미련이 남아 밍그적 거리느냐고 힐책하는 것 같습니다. 이어진 ‘종착역’에서도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 종착역이 출발역이 되기를 평생 기다린다”라고 역시 빈정거립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는 종착역. “바다가 아름답듯이 / 기차도 종착역에 도착해야 아름답다 / 사람도 종착역에 내려야 아름답다”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을 미루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맞이할 것을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김영희님은 ‘적멸에서 빈손’이라는 제목으로 된 해설에서 마더 테레사가 하셨다는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는 구절을 인용한 시 ‘토요일’을 두고, 인생을 여행에 빗대는 것이 인생을 사유하는 익숙한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멀리 철학적으로 갈 것도 없이, ‘인생은 나그네길 /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가요 역시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특히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시가 많아 보이는 것은 시인께서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합니다. 선친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한 그릇 자시고 싶었다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북촌까지 가서 봄눈으로 버무린 짜장면을 먹어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선친께 짜장면을 대접하지는 못했던 모양으로 마음에 맺혀있었기 때문에 시로 풀어낸 것 아닐까요?

 

마지막 시 ‘나의 관객들에게’를 읽으면서 혹시 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제 돌아가세요 / 저의 일인극은 끝났습니다 / 극장 밖엔 눈보라가 몰아칩니다 /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 눈물도 웃음도 다 끝이 나 / 이별 외엔 더 이상 보여드릴 게 없습니다 (…) 이제 곧 사막의 별로 여행을 떠나면 /저는 당신의 관객입니다” 저의 지나친 오지랖일까요?

 

누군가는 시집 <여행>에 담긴 시를 읽고 마음이 따듯해진다고 했습니다만, 저는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습니다. 삶의 끝자락에 서면 삶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고 아등바등거리는 사람이 많은데, 시인은 도포자락을 툭 쳐내듯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가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기 마련입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뜨거운 갈채에 감사합니다’라고 한 시인처럼 저의 삶에 힘을 보태주신 많은 분들에게 마음을 담은 감사의 말씀을 남길 기회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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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 타산지석 4
이희철 지음 / 리수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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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다녀온 터키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만, 터키라는 나라가 들여다볼수록 깊이를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터키에 관한 책들을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도 터키에 관한 자료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만, 그저 그만인 여행기로부터 터키의 역사를 아주 소상하게 정리한 책에 이르기까지 수준의 차이가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딱 여행사 상품으로 터키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도로 터키의 역사, 유물, 문화 등을 요약하고 있는 자료를 만나기는 쉽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블로그 벗으로부터 추천받은 책이 바로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이라는 부제가 붙은 <터키>입니다.

 

저자 이희철님은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있는 국립 가지(Gazi) 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 국제관계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공직에 들어와 외교부에서 근무하면서 터키에 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으며, 다양한 연구논문과 저술을 발표해오셨다고 합니다. 특히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을 맞아 웹 커뮤니티 ‘터키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개설하여 우호적인 한·터 관계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2002년 월드컵경기가 열리는 동안 터키팀에 대한 조직적인 응원이 이루어졌던 것이 이런 노력이 꽃을 피운 결과였던 모양입니다.

 

저자는 <터키>를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하였습니다. 1부 아나톨리아 이야기에서는 아나톨리아반도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유적들 가운데 한국사람들이 흔히 방문하게 되는 유적지를 중심으로 그 역사적 배경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를 사진을 곁들여 잘 요약하였습니다. 2부 터키 이야기에서는 터키의 본질에 대하여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터키인의 뿌리가 어디인지, 그리고 터키의 정체성, 그리고 터키가 이슬람을 국교에서 배제하게 된 배경, 그리고 터키사람들에 관한 다양한 주제들을 이야기합니다.

 

첫쪽을 넘기면 나타나는 터키반도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을 표시해둔 것을 보면 ‘우와~~~! 참 대단하다’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터키에는 고대 히타이트 유적에서 시작해서 성서에 나오는 사건과 연관된 유적도 있고, 고대 그리스문명은 물론 초기 기독교 문명, 비잔틴 문명 그리고 근세의 이슬람 문명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유적들이 이 땅에 흩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 유적을 구경하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웬만하겠습니까? 이런 터키의 일부라도 볼 수 있었던 것은 참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터키의 문화, 터키 사람들의 특성보다 터키의 유적에 할애한 비중이 작아서 빠진 유적지가 있는 점이라고 할까요? 물론 제가 이번에 찾아간 곳은 대부분 포함되고 있어 그곳들을 다시 새겨보는데는 큰 아쉬움은 없습니다만, 혹시 자유여행을 하시면서 다른 유적에 관한 정보를 모으시는 분이 있다는 아쉬워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사람들의 일상에 관한 풍부한 이야기들은 터키사람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터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 예를 들면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비롯하여 쿠르드족이나 아르메니아인들과의 갈등에 관해서도 정리가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세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요한 사실을 빠트리지 않았을 뿐더러, 글의 흐름이 참 자연스러워 쉽게 읽힌다는 점이 아주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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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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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여행을 준비하면서 읽게 된 책입니다. 체코, 크로아티아 그리고 슬로베니아 3개국을 대표하는 여섯 곳을 다녀온 느낌을 적고 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그만큼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체코에서는 프라하와 베네쇼프, 크로아티아에서는 두브로브니크와 자그레브, 슬로베니아에서는 류블라냐와 블레드입니다. 특히 저자가 번역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동유럽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런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것 같습니다. 문학이외에도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소재를 인용하였고, 동유럽보다는 저자가 여행을 하면서 불러일으킨 감흥에 어울리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제목이 궁금합니다. 우리말로 아점에 해당하는 브런치는 알겠는데 굴라쉬는 우선 생소하다는 느낌입니다. 굴라쉬는 헝가리의 전통음식인데 고기와 야채로 만든 스튜라고 합니다. 웬만한 저자 같으면 프롤로그에서 제목의 의미나 이번 여행에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점 등을 짚어줄 것인데, 이 분은 생뚱맞게도 차라투스트라를 인용하더니 파리의 호텔에서 컵라면 먹은 이야기를 너절하게 늘어놓더니, 다섯 쪽이나 되는 프롤로그의 마지막 줄에 ‘프라하가 멀지 않았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즉, 프롤로그만 읽어서는 독자를 파리로 안내할 것인지 동유럽으로 안내할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 하겠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여행지로부터 받아들인 느낌보다는 어쩌면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는 일상적인 것들을 소소하게 적고 있어 책을 읽는 시선이 자꾸 대각선으로 흘러내립니다. “파리에서부터 내 스케줄러는 피임약이었다.” 여성의 생리를 잘 모르는 남성독자라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딱히 두브로브니크에서 수영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굳이 여자로 태어난 것까지 하소연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체코의 바츨라프 광장의 첫인상을 적을 때는 최인훈의 <광장>을 끌어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느닷없이 양반김이 튀어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짧은 여행 후에 어느 나라 혹은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하여 섣부른 진단을 내리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태도는, 책이나 영화에서 만난 허구의 인물과 실제 사람들의 특성을 동일시하고 일반화하는 것일 테다.(50쪽)”라는 구절처럼 가끔씩 만나는 홈런성 멘트가 흘러내리던 시선을 붙들곤 합니다.

 

“번역은 고되고 피 말리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살인적인 노동량에 시달리면서도 아직까지는 지긋지긋한 마음보다 기대감과 애틋함이 더 크다. 새로운 일감이 수중에 들어오면 미친 사람처럼 훠어이 훠어이 제 발로 조그만 방으로 기어들어간다. 카프카에게 각혈이 그랬듯이, 이러한 자발적 감금은 ‘마음을 홀가분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79-80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이번 여행이 한 작품을 끝내고서 고생한 자신에게 수여하는 일종의 힐링여행이었나 봅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위한 힐링여행을 독자들과 공유하려 든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독자는 아마도 저자가 다녀온 여행지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는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도 묘한 인연으로 얽히는 느낌이 든다는 생각이 최근에 자주 들고 있습니다. 저자는 체코를 여행하면서 들른 식당의 메뉴판에서 발견한 유대인의 전통 음식인 훈제 혀요리(무슨 동물의 혀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이름으로부터 유대인을 언급하다가 이탈리아의 유대화학자 프리모 레비를 인용하기에 이릅니다. 요즘 읽고 있는 또 다른 책에서도 프리모 레비를 인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침공했을 때 저항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고,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그는 생존자로서 가질 수 있는 생각, 즉 살아남았다는 수치심과 죄책감이 점점 심해져 결국은 1987년 68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던 것입니다.

어떻든 저자의 일상 같은 생각들 사이에 섞여 있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 관한 이야기 조각들을 꿰어 정리해 둘 생각입니다. 그곳에 갈 기회가 있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아보도록 말입니다.

 

굴라쉬 브런치

윤미나 지음

270쪽

2010년 3월 3일

북노마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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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미술 아트 라이브러리 18
토머스 F. 매튜스 지음, 김이순 옮김 / 예경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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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이스탄불은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렀던 비잔틴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탄불과 이스탄불에서 만난 유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려면 비잔틴제국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뉴욕대학교 미술사학과의 토마스 매튜스교수가 쓴 <비잔틴 미술>은 이런 목적에 꼭 맞는 책이었습니다.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황제가 게르만족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610년부터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흐메드에 의하여 멸망한 1453년까지 지금의 비잔티움, 지금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 문화권을 비잔틴 제국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로마의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비잔티움에 새로 건설한 도시를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명명하고 천도한 3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1100년 이상 이어진 대단한 제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모든 제도는 로마의 것을 따르고 있었지만, 주민이라든가 언어와 문화면에서는 그리스적이었다고 합니다. 비잔틴의 문학과 법학, 신학 등은 매우 배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비잔틴 미술만큼은 현대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을 이루어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적 전통을 발전시킴으로서 고대와 르네상스를 연결시킨 것을 비잔틴 미술이 이룩한 가장 큰 업적으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제국의 발전과정에 따라 비잔틴 미술을 세 단계로 구분하여 특징을 요약하였습니다. 4세기 중반부터 6세기 중반에 이르는 초기단계에서는 새로운 미학과 이데올로기가 형태에 영향을 미쳐, 고대 미술의 점차적인 변형이 일러난 시기로 보았고, 9세기에 시작된 증기 비잔틴 미술은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이거나 정신을 중심에 두는 비잔틴 우주관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격조 있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으로 콘스탄티노풀리 점열된 이후 제국이 분열된 이후에 비잔틴 사람들이 작은 제국을 다시 세운 1261년 이후의 후기 비잔틴미술에서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된 <비잔틴 미술>에서 저자는 먼저 도시를 장식한 대규모의 건물과 여러 기념주의 설명을 통해 비잔틴 미술의 대표도시 콘스탄티노플의 흥망성쇠를 다루었습니다. 제2장에서는 이교적 요소인 이콘이 고대 로마의 초상화 전통과 결합되어 중세 르네상스까지 전해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제3장에서는 비잔틴 제국의 화려한 궁정과 저택, 그리고 이슬람 문화권을 포함한 지중해 세계의 패션, 필사본 회화에 나타난 전원생활 등 비잔틴 제국의 세속 영역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제4장은 비잔틴 교회의 건축과 장식 체계 등을 시기별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마지막 제5장에서는 비잔틴 미술이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전 유럽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합니다.

 

회화가 중심이 되었던 비잔틴 미술의 특징은 이전 시기와는 달리 새롭고도 심오한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회화 이미지를 발전시켰는데, 패널화, 모자이크와, 벽화, 금과 칠보작품 등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지난 해 여행한 스페인에서 만난 가톨릭 성당과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동방정교회의 교회의 건축이 보이는 차이에 대한 설명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먼저 서방교회의 주된 이미지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며, 그러한 십자가상은 긴 터널형인 회중석과 교회의 좌우날개의 교차부분에 있는 성가대석 위에 걸렸다고 합니다. 대조적으로 동방교회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주 소박하면서도, 축복하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올려다보게 되는데, 그리스도는 교회 중앙에 있는 둥근 돔의 원형 안에 위치하면서 마치 손을 뻗어 그 아래 본당에 모인 신도들을 끌어안을 듯하다는 것입니다(111쪽).

 

저자는 비잔틴 미술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엄청난 부와 지식을 누린 도시를 기반으로 형성된 비잔틴 미술은 1000년간 세계무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다음 콘스탄티노플이 완전히 몰락하기 직전에 비잔틴 미술은 유럽 미술가들의 창조력에 불을 지폈고, 르네상스 시대 미술의 가장 흥미로운 몇 가지 새로운 개념도 미잔틴 미술에서 발아한 것이다.(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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