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 7년 동안 50개국을 홀로 여행하며 깨달은 것들
카트린 지타 지음, 박성원 옮김 / 걷는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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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아내와 함께 발칸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넣어가지고 갔던 책입니다. 사실은 지난해 봄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해외여행을 혼자서 다녔습니다. 모든 해외여행은 공무였고, 관광을 목적으로 한 여행은 없었습니다. 그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혼자서 여행하는 이유>의 저자는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궁금해졌던 것 같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여행짐에 넣어가지고 갈만한 책은 아니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오스트리아의 여행칼럼니스트이며 셀프심리코칭 전문가라고 합니다. 두 분야에서 최고라고는 합니다만, 이런 류의 소개는 믿거나 말거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여행을 빙자한 심리적 조언을 담은 책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독자의 심리상태에 따라서는 큰 도움을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는 ‘우리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효과적으로 자아 탐구의 과정을 진행하려면 혼자 여행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방점은 ‘혼자서’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혼자서에 방점을 둔다면 굳이 여행을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짬, 즉 시간과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여행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행을 하려면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집을 나서면서 현관문을 닫고 자물쇠에 열쇠를 꽂는 바로 그 순간’이 여행이 실제로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한 프랑스 철학자 미셀 옹프레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목적지에 이르는 동안에 수많은 상황들 그리고 사람들과 부딪혀야 한다면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는 그런 상황으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려면 살고 있는 공간에서 세상과의 접촉을 끊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결국 저자가 내세운 자아탐구라는 거창한 화두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여행이 주는 새로운 자극이 바로 여행을 갈망하는 큰 이유임을 토로하고 있고, 여행을 통하여 얻는 경험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여행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방법 등등 여행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바로 안전한 여행이었습니다. 흔히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인데 모두 아홉 가지의 체크리스트가 가장 마음이 와 닿았습니다. 특히 저자처럼 여성인 경우에 반드시 새겨둘만한 것들입니다. 1. 안전한 지역인지 확인한다, 2. 중요한 서류는 복사해서 따로 보관한다, 3. 귀중품은 호텔 금고를 활용한다, 4.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들을 경계한다, 5. 술을 마시다가 만난 사람과 술자리를 이어가지 않는다, 6. 강도를 만나면 물건을 아끼지 말라, 7.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목적지를 분명하게 밝히라, 8. 관광객 티를 내지 마라, 9. 자신의 여행일정을 지인과 공유하라, 등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혼자 하는 여행에서 얻은 바를 늘어놓고 있습니다만,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7년간 250회 이상 비행기를 타고 1000번 이상 낯선 도시에서 밤을 보내고, 50개국을 홀로 여행하며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냈다’는 카피를 읽다보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7년이면 364주이고, 2,555일입니다. 거의 격주로 비행기를 타고 집을 떠나 여행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여행이라는 것이 그냥 훌쩍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바쁘게 보낸 시간들 속에서 과연 자아를 찾을 수 있었다는 말을 믿어도 될까요?

 

출퇴근하는 지하철이 사람들로 넘쳐나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 시간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시간을 이용해도 스스로의 문제를 진단하고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칼럼을 쓰기 위한 여행이라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하여 집중하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나, 누군가와 같이 하는 여행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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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민담 전집 10 - 폴란드·유고 편 황금가지 세계민담전집 10
오경근·김지향 엮음 / 황금가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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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옛 유고연방에 속하였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를 중심으로 발칸지역을 여행하면서 산과 강이 우리의 것과는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민족 구성이나 종교 등의 차이도 확연하게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발칸여행을 마치고 이 지역을 더 이해하기 위한 책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민담전집-폴란드, 유고편>도 그런 맥락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폴란드와 유고슬라비아 사이에는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있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발칸국가에 속하는 유고슬라비이아와 동유럽의 북부에 위치한 폴란드가 서로 연관이 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실린 민담들을 읽다보면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공통점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유고연방지역이 오랫동안 오스만 투르크에 지배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제국 등 주변 강대국들이 부딪히던 현장이었던 것처럼 폴란드 역시 같은 나라들이 개입하여 국토를 분할하여 지배를 당한 고통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웃한 유고슬라비아 등을 점령한 터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폴란드의 민담에서도 간혹 터키사람, 터키풍습에 관한 이야기가 섞여드는 것 같습니다.

 

피침을 당한 나라의 서러움과 언젠가는 떨치고 일어나 되갚아주겠다는 각오 같은 것을 담고 있는 민담도 적지 않습니다. ‘바다의 눈’ 이야기에서는 몽골인과 독일인이 침입하여 불을 지르고 약탈하였으며.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나무 말뚝에 꽂아 죽이거나 잡아서 노예로 끌고 갔다(97쪽)라고 적어 이민족의 끔찍한 만행을 기억하면서, ‘타트리산맥의 잠자는 기사’에서 처럼, 민족을 구원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간절함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물론 유럽국가 특유의 마녀와 마왕에 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있고, 특히 예수와 베드로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아마도 이 땅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이 가지고 온 민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유고민담에서 특이한 것은 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에서는 곰이 쑥과 마늘만을 먹는 수행을 이겨내고 여자로 환생하여 환웅천왕과 결혼을 하여 단군왕검을 낳는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유고의 민담에서는 한 여자가 산에 올랐다가 곰을 만나 같이 살면서 아들을 낳은 다음 마을로 돌아왔는데, 아빠곰과 살던 아기 곰이 인간세상으로 나와 겪는 이야기인데 끝에 가서는 이 모든 이야기는 내가 지어낸 것이라는 ‘똥그랑 땡’ 같은 결말을 지어 너무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유고사람들이 싱거운 모양입니다.

 

오랫동안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은 지역이라서 유고의 민담에는 터키 사람이 등장하곤 하는데, 주로 유고사람한테 당하는 처지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악마와 그 제자 편에서 보면 악마의 재주를 배운 사람이 터키인에게 말을 팔고서는 마술을 써서 돈을 빼앗는 장면 같은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터키사람들에 대항하여 싸운 산사람들에게 꼼짝 못하고 당하는 모습 같은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그런데도 터키사람은 허세를 부리는 식으로 그려집니다. 어느 터키 인이 물을 마시려고 길에서 벗어나 개울 쪽으로 갔다고 하이두크에게 잡혔다. 그는 길 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동료에게 소리쳤다. ‘이리 와 봐! 내가 하이두크를 잡았거든!’, 잡았으면 이리 데려와 보라는 동료의 말에 이 터키인은 ‘이자가 가려 하지 않네’라고 대답합니다.

 

폴란드에서 구비문학이 발전하게 된 것은 18세기 들어서라고 하고, 1830년 러시아의 점령 통치에 반발하여 일어난 11월 봉기를 계기도 불이 붙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일환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고에서는 19세기 초 부크 스테파노비치 카라짗피가 구비문학작품을 채록하기 시작하면서 민담들이 기록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동유럽 지역의 민담들은 마녀와 마귀, 요정 등 초자연적인 존재에 관한 이야기, 왕가를 둘러싼 암투와 사랑 등이 주요 소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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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전설 대산세계문학총서 49
요르단 욥코프 지음, 신윤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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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여행을 앞두고 제목에 끌려 고른 책입니다. 이번에 여행하게 될 옛 유고연방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 불가리아 작가 요르단 요콥트의 단편소설들이라고 합니다. 사실 불가리아나 유고연방이나 오랜 기간동안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는 통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요르단 요콥트(1880~1937)는 불가리아 산문 문학의 3대 산맥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발칸의 전설>에 담긴 이야기들은 주로 터키의 지배당시의 불가리아의 사회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영웅이, 때로는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삶은 대부분 영웅적이고, 때로는 죽음을 넘어선 사랑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발칸이라는 이름이 불가리아를 동서로 횡단하는 스타라 플라니나 산맥을 일컫는 중세 터키어라는 사실을 주석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불가리아 사람들은 상당히 낙천적이지 않나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 마을에 불길한 전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촌로는 ‘무릇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는 법이지. 불길한 징조라도 한편으로 나쁜 것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좋을 게 아닌가. 불가리아에는 좋고 터키에는 나쁜(77쪽)’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불가리아 사람들은 자연을 경외하는 경향이 있는가 봅니다. ‘양치기의 비애’편을 보면 마을을 둘러싼 세 개의 숲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숲은 세 개였는데, 교회 숲, 영감 숲, 집시 숲이었다. 바람이 불어오면 항상 하 숲만 소리를 낼 뿐, 다른 숲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로마냐 평원에서 서풍이 불어 내려오면, 교회 숲의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영감 숲과 집시 숲은 바람막이에 가려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치 교회 숲이 들려주는 오래된 하이두틴의 전설을 듣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이번에는 다른 두 숲이 똑같이 어둡고 비밀스러운 언어로 교회 숲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 북녘의 밝은 하늘 아래서세 숲이 출렁일 때면 그곳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우리곁으로 줄달음질쳐 왔다. 장맛비가 보이지 않는 빗줄기를 억세게 퍼붓듯, 폭포수가 한꺼번에 우르르 쾅쾅 쏟아지듯, 아니면 숲 가운데 둥지에 모여든 숲의 요정들이 풀밭에서 한바탕 춤판을 벌이며 떠들고 웃어 젖히는 듯했다.(135-136쪽)” 여기서 하이두틴이란 터키 지배 시대 산에서 생활하면서 터키에 대항하여 불가리아를 보호한 사람,또는 그와 상관없이 강도짓을 일삼덕 사람 모두의 통칭이라고 합니다.

 

여기 실린 작품들은 1925년 지방사학자 다나일 콘스탄티노프가 수집한 제브라냐의 민요, 민담, 전설 등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마을마다 전승되어 오던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때로는 사실일까 싶기도 한 것들도 있지만, 특히 식민지배자 터키에 대하여 대항한 영웅에 관한 이야기는 과장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젊은 혈기를 주체 못하는 젊은이의 충동적인 마음을 다스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성모의 화신이라고 믿는 암사슴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 현명한 아가씨의 이야기에서도 예쁜 동무의 정인의 마음을 홀려 많은 사람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집시여인의 충동적인 삶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열 개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 어느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들일 것 같습니다.

 

저자는 여기 실린 작품들을 통하여 500년에 걸친 이민족 터키의 지배 속에서도 불가리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던 ‘불가리아인의 본질’을 일깨우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럽 이야기와는 색다른 느낌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다르고, 자연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우리에게 소개된 작품들이 많지 않은 점이 아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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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열차 - 꿈꾸는 여행자의 산책로
에릭 파이 지음, 김민정 옮김 / 푸른숲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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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에 부산에서 대구로 가면서 무궁화열차를 탄 적이 있습니다. 낙동강변을 따라 느리게 달리는 열차의 차창 풍경이 오래 전 기억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정해진 궤도를 따라가는 여행이지만 KTX의 차창밖으로 둥둥 떠 흘러가는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젊었을 적에 고향에 가면서 야간열차를 탄 적이 있습니다. 침대차는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었는데, 만원인 열차에 겨우 입석으로 끼어 탔는 지라복닥 거리는 열차 안을 피해 승강대에 서서 컴컴한 밖을 내다보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이러니 야간열차여행의 낭만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작가 에릭 파이의 <야간열차>에는 낭만과 환상 같은 것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공산독재시절의 동구권을 야간열차로 여행하면서 검문을 당하는 장면처럼 은근 긴장되는 장면도 있기는 합니다.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곳곳은 물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대륙을 가로질러 몽골, 중국까지도 여행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이렇듯 다양한 장소를 그것도 야간열차를 타고 찾아가보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나라마다 열차 안 풍경이 다소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열차여행에 관한 영화와 문학작품들을 이끌어와 여정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열차여행에서 크로노스, 즉 시간의 개념을 이끌어오는 비유가 놀랍습니다. 상대성이론으로 보면 여행하는 사람이 가만히 있는 사람보다 아주 조금이나마 덜 늙어 있다는 폴 랑주뱅의(Paul Langevin)의 ‘쌍둥이 형제 패러독스’가 그것입니다. 이 패러독스가 이론적으로 틀린 것이라고 해도 여행의 주는 신선한 경험은 생각에 여유를 주어 분명 젊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열차에 친숙한 것은 가족사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증조할아버지가 철도수리공이었고, 증조할머니는 건널목지기였는데, 할아버지 역시 역에서 근무를 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내전에 휘말려있는 나라로 향하는 야간열차가 지나기라도 하면 선로변경장치를 감독하던 할아버지는 특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간철도여행을 발칸반도에서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김정일이 열차로만 여행하는 것을 꼬집는 장면도 나옵니다. 다른 독재자들처럼 비행기라면 질색을 하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차가 역에 잠시 멈춰 설 때면 우리는 다시 바깥세상과 연결되곤 했다.(200쪽)” 고 적은 것을 보면 열차가 달릴 때면 작가는 환상에 빠져드는 모양입니다. 열차여행에 관하여 작가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한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열차가 달리는 선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평행선하면 직선의 이미지가 휘딱 떠오릅니다만, 그런데 작가는 ‘모든 직선은 곡선이다’라는 아인슈티인의 말을 인용하여 그런 생각을 쉽게 바꿀 수 있도록 만듭니다. “철로가 제아무리 곧게 뻗어있다 한들 결국은 원을 그리게 마련이니까(270쪽)”라고 설명합니다.

 

장 레이의 단편소설 <슈크루트>에 등장하는, 아무 열차에나 올라 타 아무 역에서나 내린 다음 그곳을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을 흉내내다보니 발칸반도 끝에서 막다른 골목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알바니아의 러쏀이라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저자가 발견했다는 ‘쿨라’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찾아보았습니다. 쿨라(kulas)는 단단한 석조 가옥을 말하는데, 피스(fis)라고 하는 대가족으로 살았던 알바니아사람들의 오래된 전통 가운데 벤데타(vendettas)라고 하는 ‘피의 다툼’은 여러 세대에 걸치도록 이어지곤 했다고 합니다. 이런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다른 씨족의 공격으로부터 가족들을 방어하기 위한 가옥 형태가 쿨라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야간열차가 쇠퇴해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느림을 대표하는 야간열차도 버텨내기가 고단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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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교양 수업 - 내 힘으로 터득하는 진짜 인문학 (리버럴아츠)
세기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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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이후로, 모처럼 빠져들게 만드는 일본 번역서를 만났습니다. 세기 히로시의 <나를 위한 교양수업>입니다. 저자는 도쿄지방재판소와 최고재판소 등에서 30년 가까이 법관으로 근무하다가 메이지대학 법과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절망의 재판소>가 2014년에 처음 번역, 소개되었습니다.

 

<나를 위한 교양수업>은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를 추구하는 책읽기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사실 [북소리] 덕분에 책을 조금 읽는다고 소문이 나면서 책읽기나 글쓰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문제는 늘 답변이 궁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체계적으로 배워서 시작하지 않은 탓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나를 위한 교양수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는 답변의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버럴 아츠란 말이 알듯 모를듯해서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인터넷검색을 해보면 꽤 널리 알려진 개념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제가 시야가 좁다보니 놓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리버럴 아츠란 중세 서양에서 자유시민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으로서의 7개의 지식영역으로, 문법, 논리학, 수사학(修辭學), 수학, 음악, 기하학, 천문학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저자는 요즈음 대학의 교양과정에 속하는 과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단순한 교양과목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폭넓은 기초적 학문과 교양(6쪽)”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대학의 교양과정에서 배우는 과목들이 바로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 아닐까요?

 

리버럴 아츠건 교양과목이건 정작 핵심은 저자가 말하는 대로 개별과목을 통하여 얻은 지식들을 횡적으로 연결하여 ‘넓은 시야와 독자적 관점을 얻을 수 있는 것’에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네 옛말 대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리버럴 아츠의 최종 목표는 ‘혼자 힘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확장함으로써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게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중세 때는 자유 7과가 그랬다고 쳐도 현대에 와서는 학문의 영역이 세분화되었을 뿐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학문들도 있어 굳이 일곱 과목을 뽑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저자의 경우는 자연과학, 인문사회, 철학, 비평, 논픽션, 그리고 예술의 각 분야까지 들었습니다만 그 밖의 영역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공부한 병리학에서는 총론을 다룬 다음에 각론으로 들어가 세밀하게 정리하는 체계를 좋아합니다. 저자 역시 같은 생각인 듯합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정리한 이 책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1부에서는 리버럴 아츠에 대하여 깊고 넓게 재인식하고, 그것의 의의와 효용성을 설명합니다. 2-4부에서는 자연과학, 인문사회, 철학, 논픽션, 문학, 영화, 미술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저작과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해설합니다. 물론 이 책에서 인용한 작품들은 저자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우리가 배울 점은 리버럴 아츠가 지니는 의미를 고려하여 작품선택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내용을 익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앞서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분화된 학문의 영역은 깊이까지 더해지면서 점점 독립적이 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인접 학문의 영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둘 여력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학문 간의 벽을 허물자는 ‘통섭’의 개념이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리버럴 아츠는 통섭의 개념을 뛰어넘어 ‘무장르’, ‘무경계’를 추구하는 통 큰 통합을 말하고 있습니다.

 

리버럴 아츠는 지적인 동시에 감각적인 방식으로 각 장르 혹은 작품의 본질을 평가하여 장르 사이에 공통점이 있는지, 전체에서 개별 작품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분야에서 제공하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지식, 정보, 감각을 종합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또는 그 관점들 사이를 이동하면서 유연하고 강인한 사고력, 상상력, 감성을 익힐 수 있다. 또한 통찰력과 직감에 따라 본질을 파악하는 사고방식도 얻을 수 있다.(24쪽)”라는 것입니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2장 ‘어떻게 교양을 쌓을까’라고 보았습니다. ‘진정한 교양을 몸에 익힐 때 중요한 것은 개개의 대상을 접하는 과정에서 비평적이고 구조적인 사고방식과 사물을 파악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 저자는 책이나 작품을 읽는 여섯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각각의 방법의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대화의 정신으로 읽는다. 대상 하나하나를 심심풀이 오락으로 소비하거나, 반대로 작품에 나타난 것을 완성된 권위로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인간을 대할 때처럼 대화하면서 내적으로 깊이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

2) 작품의 상호관계를 파악한다. 작품이 역사적, 체계적인 전체 속에서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이다. 더불어 그 작품이 같은 장르 속에서 어떻게 위치하는지, 또한 동시대 다른 장르의 작품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3) 작품과 작품 사이에 다리 놓기. 여러 대상에서 얻는 다양한 관점에 공통되는 보편적인 것, 보편적인 물음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대상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작품을 접할 때 이전 작품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그들 사이에 대화의 다리를 놓는다.

4) 다른 세계의 방법도 써보기. 어떤 사항에 대한 방법이 다른 사항에 대한 방법으로 유추적으로 이용될 수 있고, 그와 더불어 다른 사항을 이해하고 비평하는 방법도 될 수 있다. 이 또한 방법 사이에 다리놓기가 될 수 있다.

5) 자기 생각을 돌아보기. 비평적이고 구조적으로 사물을 파악하기 위하여 자신을 상대화하고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즉,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서도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6) 자기인식 능력을 키우기. 자기 생각을 돌아보기와 관련하여 자신의 관점이 성장과정이나 입장, 이해관계 등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객관적으로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론에 들어가서는 저자가 뽑은 자연과학, 인문사회, 철학, 논픽션, 문학, 영화, 미술 등의 분야를 크게 3개의 영역으로 묶었습니다. 2부에서는 자연과학을, 3부에서는 철학, 인문사회, 논픽션을, 그리고 4부에서는 문학, 영화, 미술 등을 묶어서 예술로 구분한 것입니다. 각 부의 처음과 끝에는 각각 개괄과 요약을 붙이고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세부분야가 광범위한 탓인지 독립적으로 구성하였는데, 여기에는 생물학, 뇌신경과학, 정신의학, 천문학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로 머리말을 시작할 정도로 저자는 연역법적 사고보다는 귀납법적 사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저자는 자연과학의 바탕이 되고 있는 근거중심주의를 리버럴 아츠 역시 지켜야 한다고 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생물학의 영역을 논하면서 저자는 콘라드 로렌츠,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에드워드 윌슨, 라이얼 왓슨 등의 이론을 골랐습니다. 다섯 사람의 이론을 보면 앞서 소개한 여섯 가지 책읽는 방법을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행동학을 인간의 행동으로 유추한 콘라드 로렌츠의 이론의 제한점을 소개하고, 이어서 유전자 이기주의를 주장한 리처드 도킨스와 진화는 우연의 산물이라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이견을 소개하고, 사회생물학을 바탕으로 중용적 입장을 세운 에드워드 윌슨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유전자가 지시하는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악을 논한 라이얼 왓슨을 인용한 것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다른 점, 즉 윤리적인 방향으로 선택의 자유를 실현해나가야 한다는 왓슨의 주장이 주목할 만하다고 본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뇌과학과 정신의학은 아직도 미지의 장이 많은 영역이라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저는 오히려 ‘그 밖의 이야기’로 퉁쳐버린 영역들, 즉 자연과학의 총론에 해당하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나 우주의 시원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너무 짧게 요약되어버린 것이 아쉽게 생각됩니다. 2부를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인간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다루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인간보다 우선해야 할 세계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소략하게 정리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3부에서 다룬 철학, 인문사회, 논픽션 역시 하나로 묶기에는 너무 방대한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저작들을 통해 우리는 사물을 비평적이고 구조적으로 바라보고 파악하게 되어, 새로운 발상과 인식을 펼치고 사고방식의 틀을 깰 수 있게 될 것(120쪽)’이라고 총론적으로 요약하였습니다. 특히 고전으로 남을 만한 인문사회과학 영역의 책에서 우리는 ‘좁은 학문의 영역을 초월하는 새롭고 참신한 발상이 담겨 있고, 다른 여러 학문과 관련되어 있으며, 수사법을 비롯한 문장술이 뛰어나다는 것’ 등을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3부를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이 영역은 대단히 넓을 뿐 아니라 각각의 저작 내용이나 그 가치관과 세계관도 천차만별이므로 정리된 하나의 견해로 묶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저자가 이 책에서 인용한 철학, 인문사회, 논픽션의 주제를 좁히는 대신 깊이를 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 대한 논픽션 부문에서는 엠마누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 찰머스 존슨의 <블로우백>,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 그리고 노엄 촘스키의 <노엄 촘스키의 미디어 컨트롤>을 인용하여 다양한 시각을 대비시킨 반면, 자서전 부문에서는 프리모 레비의 저서들 가운데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 그리고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골라 깊이를 더하고 있는 점이 돋보였습니다.

 

4부에서는 문학, 영화, 음악, 그리고 넓은 의미의 미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술 영역도 장르의 경계를 두지 않는 발상으로 각각의 작품을 즐기면서 ‘대화하고 배우는 자세’로 접근할 것을 주문합니다. 다만 “그때그때 재미있으면 된다는 ‘소비의 관점’으로 읽는다면 작품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예술 분야에서 마니아적 성향으로 특정 장르만을 수용하는 것은 골동품을 수집하듯 독특한 즐거움은 얻을 수 있으나, 시야가 좁아져 전체를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술 영역은 작품이나 창작자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분야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가지고 있지만, 리버럴 아츠의 시각으로 본다면 깊이와 강도, 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작품이 주는 정보와 감각 그리고 거기서 얻는 인상이 깊고 강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문학에서는 도스토엡스키, 톨스토이, 허먼 멜빌, 마르셀 푸르스트, 카프카, 카뮈 등 여섯 명의 고전 작가를 인용하여 분석하였습니다. 문학의 한 장르로서 SF를 별도의 장으로 독립시켜 논한 것은 과학과 문학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는 점에 무게를 둔 것 같습니다. 나아가 사색과 문명비평서로서의 기능을 하는 SF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SF물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탓인지 저자가 추천하는 책들이 대부분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와 음악은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쳤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역이 광범위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거나 예술은 확실한 리얼리티를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과 세계의 의미를 밝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특히 즐거움이라는 요소가 있어 배우기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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