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등일기
김대현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놀라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794년 전인 221년 2월 26일부터 3월 5일까지 8일에 걸쳐 고구려의 좌보 목등이 썼다는 일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썼다는 소설 <목등일기>입니다. 작가는 목등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놓기 전에 ‘아주 오래된 일기’라는 제목으로, 목등이 남긴 일기의 사본을 입수하게 된 경위를 밝히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풀어내는데 있어 스토리의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적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작가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을 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써먹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돈키호테; http://blog.joins.com/yang412/13716932>에서도 세르반테스는 톨레도 잡화점거리에서 ‘아라비아의 역사가인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쓴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이야기’를 우연히 사들인 덕분에 2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밝힙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가운데 당시에는 금기였던 교회에 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으려는 장치였던 것입니다.

 

어찌되었던 <목등일기>의 작가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현존하는 옛날 사서에서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찾아냈을 뿐 아니라 기승전결이 탄탄한 소설로 만들어냈습니다.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어 결국은 잠들 시간까지 미루면서 독파하고야 말았습니다. 고구려 왕실에서도 왕권을 둘러싸고 피비린내나는 암투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왕실의 여자가 대신들과 정분이 나서 태어난 씨가 황위를 이어받았다는 설정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작가가 풀어가는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일면서도, 설마 그럴 수가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국 목등이 썼다는 일기에 적힌 이야기가 모두 끝난 다음, 작가의 덧붙이는 글까지 읽고 나면,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인지 맨 마지막 쪽에 ‘군소리’라는 제목 아래, “이 책은 물론 모두 소설이다.”라고 쓰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다룬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여전히 남는 것 같습니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 문학작품 등을 통하여 과거의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는데, 이들 매체의 특성상 가공의 이야기임이 분명한데도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즉, 이런 매체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경향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목등일기> 역시 고구려 초기의 역사를 왜곡하는데 기여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마음 구성에서 꼬물거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야기가 충분히 가능한 것처럼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자신의 아들을 황위에 올린 태후가 아들을 폐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고, 어머니의 야심을 눈치챈 황제가 모후를 감시하고 결국은 주살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는 것인데, 태후가 스스로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던 것은 고구려의 건국에서부터 초기 황권을 강화하는 동안에 모후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것을 기록하여 모후가 황위에 오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미 알고 있는 고구려사와 연관하여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이겠구나 싶었던 것입니다.

 

그 주인공은 차를 다리는 차비에서 시작하여 황제의 여인이 되고, 막후작업을 통하여 황자를 보위에 올리는 주진아라는 대단한 여성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궁녀신분의 그녀와 관계를 맺었던 목등이 충돌을 빚는 황제와 태후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해결사로 등장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한나라와 고구려의 역학관계도 엿볼 수 있으며, 고구려를 지키는 핵심세력이었던 조의라는 존재도 등장하기 때문에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한나라와 고구려를 둘러싸고 있던 존재들, 흉노나 말갈에 더하여 노랑머리에 파란 눈을 한 대완 사람들까지 등장합니다. 대완은 서역에 있는 나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든 이 책에 쓰인 이야기에 너무 몰입하시면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두 소설이니까요. 김대현 작가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미에 대한 공부를 하느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었습니다. 1982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입니다. 마꼰도라는 마을을 세운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아내 우르슬라로부터 7대에 걸친 자손들의 가족사를 담았습니다. 마꼰도는 젊은 시절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친구들이 바다로 나가는 길을 찾아 부인과 아이들, 가축들을 이끌고 가재도구들을 몽땅 챙겨 산맥을 넘었는데, 이십육 개월이 지나자 자신들의 계획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정착한 곳입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고독’입니다. 그런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고독의 정체는 마지막까지 읽어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작가가 등장인물의 고독을 처음 기록한 것은 우르술라의 먼 조카뻘이자,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친구의 딸인 레베카입니다. 열한 살에 고아가 되어 이들 집에 온 레베카는 두 사람의 딸 아마란따와 자매처럼 성장하다가 한 남자를 같이 사랑하는 삼각관계가 되면서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게 되는데, 결국은 두 사람의 큰 아들 호세 아르까디오와 같이 살게 됩니다. 레베카는 고독한 성격을 지녔다고 설명합니다. 그녀의 삶은 불꽃같은 사랑을 하고 남편이 죽은 다음에는 세상과 단절한 채 죽은 사람처럼 살다가 소문도 없이 숨을 거두게 됩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어떠한 행태로든지 고독하다라고 작가는 말하는데, 때로는 고독할 것 같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 빠진 젊은 여자도 고독하다고 적었습니다. ‘메메는 그 남자에게 미쳐버리고 말았다. 잠도 오지 않았고, 입맛도 잃었고, 고독 속으로 너무 깊이 빠져들어 아버지까지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변해 있었다.(1권 128쪽)’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여성이 고독하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점은 지나치게 현실적이기 못한 설정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4대째의 딸인 미녀 레메디오스가 승천하는 모습을 꽤 상세하게 설명하는 장면이나, 나는 양탄자 이야기 등은 읽는 이로 하여금 헷갈리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2대에서부터 등장하는 복잡한 관계, 예를 들면 몇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근친혼이라거나, 한 여자가 형제와 관계를 맺는 등 우리의 정서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비대칭적인 남녀비 때문에 생긴 사회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근친혼을 비롯한 혼인관계의 난맥상은 운명적으로 파멸로 마감하게 되는 것인데, 그 흐름새를 보면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모티브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마꼰도라는 지역이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 곳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역사적 배경에 근거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프랑스에서 온 창녀라거나, 집시들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터키인들도 등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이 지역은 주로 이베리아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나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노예들이 원주민들과 섞여서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현실에 바탕으로 두면서도 실제 삶보다 폭넓은 상황을 수용하고 있다는 작품설명이 쉽게 와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작품설명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백년의 고독>에는 불멸을 찾아다니는 길가메쉬의 모험, 오뒷세우스의 귀향여행, 영원을 추구하는 연금술사, 디오니소스적인 광란의 축제 등이 녹여져 있는 점이 이 작품의 격을 달리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이해하기까지 줄거리를 한참 정리해보아야 했습니다.

 

초반에는 유토피아와 같던 마꼰도는 중앙정부에서 관리가 파견되어 오고 중앙정부의 개입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하여 반발하는 반군운동의 중심이 되고, 반군과 중앙정부가 화해를 한 다음 마을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마을이 퇴락하는 모습을 보여 원시적 공동체에 대한 막연한 향수를 지향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남았습니다. 어떻든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남겨둔 채여서 더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 낭만과 야만이 교차하는 그곳, 화해와 공존을 깨닫다
이종헌 지음 / 소울메이트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지난달 발칸여행을 떠나면서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섯 권의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터키여행에서도 이종헌님이 쓴 <우리가 몰랐던 터키 역사기행>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던 바 있어서 큰 기대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발칸반도에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 옛유고연방에 속했던 3나라와 아우슈비츠를 필두로 한 동유럽의 6나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와 슬로바키아, 헝가리 그리고 독일입니다. 동유럽 여행은 미루어두었기 때문에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낭만의 길 야만의 길>이 소위 닥크 투어리즘 형태의 책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교훈여행’ 쯤으로 번역되는 닥크 투어리즘은 역사적 비극 및 재난의 현장을 찾아 자기성찰과 교훈을 얻는 여행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지난해부터 시작하고 있는 본격 해외여행을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현장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를 돌았고, 금년에는 터키에 이어 발칸을 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굳이 비극이나 재난에 국한하여 역사를 살펴보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닥크 투어리즘은 아닌 셈입니다. 세상사에는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는 것이니, 둘 다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발칸과 동유럽지역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전쟁의 비극을 중심에 둔 것은 어쩌면 비잔틴제국이 소멸한 다음, 오스만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힘겨루기를 했던 현장이 바로 발칸이었고, 그로 인하여 이 지역은 그리스정교,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가 혼재된 독특한 종교적 구성과 슬라브인과 롬인 그리고 투르크인들이 같이 혹은 갈라서 살아온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민족적 문화적 특성 때문에 발칸을 유럽의 화약고라고 부르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발칸 지역을 이야기할 때 흔히는 터키사람들이 지배하던 시절에 이곳 사람들이 힘들게 살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발칸 지역의 민담이나 전설을 통하여 보면 오해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불가리아 작가 요르단 요콥트가 수집한 불가리아의 민담과 전설 등을 담은 <발칸의 전설; http://blog.joins.com/yang412/13774940>을 보면 터키에 조직적으로 저항한 세력이나, 이민족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동족을 약탈하는 비적들을 별다르게 구분하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터키계의 지배층과 지역민들과의 관계가 우호적인 경우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발칸을 보면서 한반도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발칸여행에서는 세르비아는 보지 못했고 주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일부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유적이나, 베네치아공국이 남긴 유적, 그리고 오스만제국의 유적 등 다양한 것들을 볼 수 있었지만, 오스만제국의 통치기간을 거치면서 공존하던 민족들이 서로 학살하기를 서슴치 않았던 내전의 흔적을 보면서 끔찍한 세월을 어떻게 건너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로버트 베번의 <집단기억의 파괴; http://blog.joins.com/yang412/13514470>나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 http://blog.joins.com/yang412/13531811>을 통하여 유고 내전의 참상을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었습니다만, 보스니아의 모스타르를 방문해서 지금도 부서진 채 방치된 건물들이나 건물 벽에 흉측하게 남아 있는 총탄자국들을 보면서 당시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전쟁의 흔적들을 세밀하게 그려서 읽는 이로 하여금 찾아보고 싶도록 만듭니다. 또한 현장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는 점도 책읽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이산의 책 10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주원준 옮김 / 이산 / 199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소리]를 통하여 토니 주트교수를 여러 번 소개한 것은 근세사에 대한 그의 객관적인 시각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토니 주트는 타계하기 전에 루게릭병으로 진단받고 투병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것입니다. <기억의 집; http://blog.joins.com/yang412/13652730>의 서문에 그 과정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루게릭병이 진행되어 사지가 마비되면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는 피동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트교수는 생각하는 것만큼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잠자리에 들어도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시간이면 망각의 심연으로 사라져가는 기억의 편린들을 서로 맞추어 갖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했는데, 그 때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까지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의식의 흐름에 고랑을 파는 작업으로 비유한 주트교수는 밤새 파놓은 고랑들이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다시 파묻혀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그는 중세 기억술사들의 기억방식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중세의 기억술사들은 보고들은 것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거대한 궁전을 지었다는 것인데, 주트교수는 자신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스위스 빌라르 지방의 작은 마을 체지에르에 있는 살레라는 이름의 가족호텔을 이용하여 정리된 생각들을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주트교수는 자신이 이용한 기억의 방법을 두어 쪽에 걸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역사학자 프랜시스 예이츠가 쓴 르네상스에 관한 에세이들에 멋지게 소개되어 있으며, 조너선 스펜스가 쓴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에서도 언급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조너선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의 기억의 궁전>을 주트교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셈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리치가 설명한 기억술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1552년 10월 6일 이탈리아의 마체라타에서 태어난 리치가 1610년 5월 11일 중국의 베이징에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의 행적을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6세기 중반에서 17세기 초까지라면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의 신흥강국들이 유럽을 벗어나 아시아로, 아메리카로 세력을 넓히던 대항해시대입니다. 리치가 중국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보면 피렌체와 로마에서 공부를 마치고 포르투갈의 대학도시 코임브라에서 포르투갈어를 배운 다음 인도의 고아와 코친에서는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말라카를 거쳐 마카오에 도착한 것이 1582년입니다. 다음 해 중국의 자오칭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전교를 시작하여 사오저우, 난창, 난징을 거쳐 베이징에 거주허가를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리치가 중국인, 특히 관리들과의 관계를 맺는데 기여했던 것이 바로 기억술이었다고 합니다. 리치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기는 만력제가 다스리던 명나라의 말기입니다. 제국의 말기에 흔히 나타나는 혼탁한 사회상이 노정되는 시기였습니다. 당시 명나라 역시 과거에 급제해야 입신양명이 가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과거에 뜻을 둔 식자층이라면 당연히 리치의 기억술에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기억술은 리치의 인맥관리에 중요한 기술이었던 셈입니다.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은 리치의 기억술을 설명하는 ‘궁전짓기’에 이어 리치의 행적을 4 시기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각 시기의 도입부에는 리치가 남긴 성화 넉 점을 담고, 이에 관한 이야기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넉 점의 그림들은 리치와 친분이 있던 베이징의 출판업자 청다웨가 출간한 중국 서화집 <정씨묵원(程氏墨苑)에 실려 있는 것들입니다. 청다웨는 서양 그림과 로마자를 책에 담고 싶어 리치에게 부탁했던 것이고, 리치는 이를 통하여 중국인들에게 그리스도 생애의 주요 장면과 성서의 극적인 장면들을 기억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리치가 그리고 주석을 달았던 그림들은 갈릴래아 바닷가의 그리스도와 베드로, 엠마오로 가는 그리스도와 두 제자, 주님의 천사 앞에서 눈이 멀어버린 소돔의 남자들, 그리고 아기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그림입니다. 리치는 그림들이 기억을 저장하고 검색하는 기억의 궁전 자체의 기전을 보강하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고 들은 것이 오래 가지 않거나, 잘 못 기억하고 있어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곤 하는 저로서도 기억술을 습득하여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의 첫 번째 장, ‘궁전짓기’을 특별히 집중하여 읽었습니다. 궁전 짓기, 즉 정확한 위치짓기를 통하여 기억을 훈련한다는 생각은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연회가 열린 홀이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에 무너지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는데, 죽은 사람들의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 시모니데스는 사람들이 앉아 있던 자리를 기억해내서 시체를 확인시켜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과연 시모니데스의 기억이 정확하였을까요? 사실 사람의 기억이 저지르는 오류를 지적하는 책들이 많습니다만, 대니얼 L. 샥터교수의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http://blog.joins.com/yang412/12562617>은 읽을 만한 것 같습니다.

 

시모니데스 이후 기억술은 발전을 거듭하여 리치가 대학에서 공부할 무렵에는 수사학과 윤리학 수업의 기초과정에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수사학자 치프리아노 소아레스의 <수사학>은 1570년대 예수회 학생들의 필독서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기억술은 모든 웅변의 뿌리, 곧 ‘웅변의 보고’로서, 기억술에 의해서 사물 뿐 아니라 말을 어떻게 정리하고 또 이 기술을 어떻게 말의 ‘무한한 진보’에 이용할 수 있는 지를 기록했다.(25쪽)”라고 정리하였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극적인 다양한 이미지들을 창출하고 그 이미지들을 배치하는 훈련을 해야 하고, (기억을) 배치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는 궁전 같은 건물이나 웅장한 성당 등이 제시되었다’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기억술의 원리는 오늘날에도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의과대학의 해부학 문제를 예로 들었습니다. 3층짜리 생리학건물의 옥상에 있는 ‘두개골 방’에 프랑스 국기 같은 삼색 침대보에 관능적인 여인이 벌거벗고 누워서 작은 손으로 구겨진 100달러짜리 지폐를 수북하게 움켜쥐고 있는 이미지를 배치하고, “손님을 기다리며 벌거벗고 누워 있는 게으른 프랑스 매춘부(Lazy French Tart Lying Naked In Anticipation)”이라는 문장을 연관시킵니다. 이 문장에는 두개골의 눈구멍 위를 흐르는 신경의 명칭, 눈물샘(Lacrimal), 앞이마(Frontal), 활차(Trochlear), 외측지(Lateral), 코모양체(Naso ciliary), 내측지(Medial), 외전(Abducens) 신경을 의미하는 두문자를 담고 있습니다. 리치는 중국어로 쓴 <기법>이라는 기억술에 관한 책에서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각각의 장소에 배치하고 일관된 설명을 붙여 기억술을 익힐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6세기 무렵 이와 같은 방식의 기억술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530년대에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라는 사람은 <기술과 학문의 공허와 불확실함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기억술이 날조한 ‘기괴한 이미지’로 말미암아 인간의 자연스런 기억력이 둔화된다고 말했다.(33쪽)”라고 적었으며, 16세기 말, 프랜시스 베이컨 역시 기억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묘기가 얼핏 보기에는 인상적이기는 하나 광대의 속임수에 불과한 쓸모없는 기술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지난주에 [북소리]에서 소개해드린 세기 히로시의 <나를 위한 교양수업; http://blog.joins.com/yang412/13774397>의 핵심처럼 “얻은 지식들을 횡적으로 연결하여 ‘넓은 시야와 독자적 관점을 얻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기억술로 얻은 지식들은 그저 자기 과시욕을 채우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리치가 중국에 머물던 시기는 왜가 조선을 침략하는 국제적인 사건이 있었던 만큼 명나라에서도 외국인의 동향에 민감하고 전쟁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1603년 필리핀에서는 마닐라에서 급증하고 있던 중국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선제공격을 해서 2만명에 달하는 중국인 이민자와 상인이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카오에서는 예수회원,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일본인 들이 연합해서 마카오를 중국침략의 발판으로 삼으려한다는 소문까지 돌아서 중국인들이 마카오를 떠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은 우편제도가 없던 당시만 해도 멀리 나가있는 사람들이 고향에 소식을 전하려면 오가는 사람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소식이 오가는 데는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인편이 오가는 중에 죽거나 다칠 수도 있어서 소식이 전해진다는 보장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는 고향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 예수회 분부 등에 소식을 전하거나 전교에 필요한 책이나 물품을 부탁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명대에 이미 중국에는 유대인, 아랍인, 유럽인, 아프리카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가지고 온 종교의 의식을 치르는 예배당까지도 짓고 살았으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종교를 받아들이는 중국인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문화를 중국에 소개하였는데, 리치만하더라도 중국의 문헌을 유럽에 번역소개하기도 하였으며, 중국어에 익숙해지면서 유럽의 책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하거나 직접 집필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리치는 예수회의 사제로서 전교를 목적으로 중국에서 살았던 것인데, 특히 자기가 아는 만큼의 서양의 과학지식과 신학상의 수양을 원용하면서 기억술을 이용하여 중국인들의 전통 종교인 유교, 불교, 도교 등을 배제하고 예수교를 믿도록 평생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겠습니다.

 

리치는 저술을 통하여 중국의 전통종교의 본질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불교의 윤회설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리치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이 인간의 영혼이 여러 형태의 동물의 몸으로 태어난다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윤회설로부터 온 것이라고 단정하였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윤회설은 유럽인들의 도덕적 관념이 방만하던 시기에 고안된 우화적인 교훈에 불과한 것으로 오류로 가득한 윤회설이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다는 가설을 세웠던 것입니다. 리치가 윤회설을 강하게 부정한 것은 인간이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고, 다른 동물이나 식물은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는 천지창조의 기본틀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윤회한다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성립할 수 없게 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리치의 불교관에 대하여 당대의 유학자 위춘시는 리치에게 편지를 보내 불교를 비난할 만큼 불교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도덕적인 면에서 공통점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리치가 불교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위춘시는 리치에게 꼭 읽어볼 불교서적 목록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리치는 불교가 십계명의 첫 계명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 지난 2천년에 걸쳐 중국인들에게 영향을 미친 불교가 과연 중국인들의 도덕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었냐고 반문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중국의 지식층들은 리치가 타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궤변만 늘어놓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리치는 자신에 대한 중국 고관들의 비판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중국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지상에서의 우리의 인생은 덧없으며, 그리스도인만이 내세에서 영원히 환희로 가득 찬 삶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 리치는 중국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기술, 책략, 훈련, 기억술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프리즘, 시계, 성화, 유클리드 기하학, 책자, 만찬, 교부 등을 성모의 성스러운 인도 아래 총동원하였던 것입니다.

 

유한한 삶을 신념을 지키며 살아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마테오 리치야 말로 이교도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전하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킨 삶을 살았다고 하겠습니다. 그의 종교적 신념이 절대적 진리였는가 하는 문제는 별도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주원준 옮김

415쪽

1999년 8월 31일

이산 펴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을 읽고서 알랭 드 보통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읽은 보통의 책들은 <여행의 기술>만큼의 감흥을 얻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행의 기술의 보통의 첫 작품도 아니므로 루키 신드롬을 논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책을 만나게 되면 암암리에 기대를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행복의 건축>은 작은 아이의 책상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속으로는 ‘보통을 읽고 있다는 말이지?’ 하는 놀라움 같은 감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보통을 읽을 수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개정판이 나와 있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그의 다른 책을 읽을 때의 느낌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건축에 대한 보통의 식견을 담았다면 어쩌면 존 러스킨의 <건축의 일곱 등불; http://blog.yes24.com/document/7498515, 버금가는 정도의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보통은 이 책에서 건축물에 대한 평가의 기준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가?’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글의 제목도 ‘행복을 위한 건축’으로 정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집이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인 성소가 되었다(11쪽)’라는 구절이 주목받는 위치에서 읽을 수 있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떻든 건축에 있어서 아름다움이 행복에 우선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다고 보는 것이 보통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들어가서는 아름다움보다는 실용적인 면이 강조되면서 행복이라는 주제가 슬며시 물러나는 것 같습니다. 건축가적인 관점으로 건축을 보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은 대목입니다. ‘집,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에서는 이야기의 중심이 다시 종교와 예술로 넘어가서 행복과는 동떨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다양한 건축물을 이야기 대상으로 올려놓으려다보니 자연스러운 일일 듯합니다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여전히 행복이 있었더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건물의 미덕’을 논하면서는 질서, 균형, 우아, 일치, 자기인식과 같은 모호한 개념을 만나게 됩니다. 대부분의 주제어들은 대형건물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어서 행복과는 무관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들의 미래’에서는 건물이 들어설 터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사실 한국의 건축미 가운데 으뜸은 주변 경관과 절묘하게 떨어지는 조화에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기대했던 주제의 하나로 주변경관과의 조화를 기대했던 것인데,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일본 건축에서 ‘아름다움을 허세가 없고, 소박하고, 완성되지 않는 덧없는 것과 동일시 한다.’는 와비라는 개념을 인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장함이나 자연경관과의 일체감을 중요시하는 한국건축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인가요? 한국 건축계가 일본건축계보다는 국제화가 미흡한 탓일까요?

 

보통은 무수히 많은 사진자료들을 곁들여 자신의 설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처음 책장을 넘기다보면 마치 화보집 같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물론 사진에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을 직접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진이 담아낼 수 없는 분위기를 이야기로 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체코 공화국의 어떤 집 거실에서 우리는 벽, 의자, 바닥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의 가장 좋은 면들이 번창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예를 본다.(13쪽)”라고 적고 체코 브르노의 미스 반 데어 로에 식당의 내부 사진을 한 장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흑백사진 한 장이 조화를 이룬 실내의 모습을 구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복이 벽의 색깔이나 문의 형태에 달려 있다면’ 이라는 구절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은 당혹스럽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