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사슬
김영진 지음 / 참윤퍼블리싱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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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근무하는 김영진위원님께서 연초에 건네주셨던 <담배와 금연요법>을 통하여 담배의 폐해에 관한 전문적인 내용을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시는 글솜씨가 대단하시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집을 내셨다고 보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김위원님의 문집 <먹이 사슬>을 받아 목차를 살펴보니 수필에다 소설까지 싣고 있어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가끔 원고청탁을 받곤 하지만 저의 글은 성격이 모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말에 정리해두신 수필의 정의를 보니 제가 쓰는 글이 크게는 수필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책은 머리말부터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먹이사슬>에는 문단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을 모아 엮었다고 하시니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먹이사슬>은 열네 편의 단독 혹은 연작 수필을 한 묶음으로 하고, 이어서 한편의 연작 중수필을 한 묶음으로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세편의 소설을 모았습니다. 제 경우는 가벼운 소설을 주로 읽어온 탓에 깊이가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김작가님의 소설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들더라는 말씀을 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방역이라는 개념이 없던 그 옛날 장티푸스가 번진 시골에서 일어난 해프닝을 엮은 소설 ‘수리부엉이’는 아무래도 의학을 전공한 탓에 실감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설 ‘황금벌판’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 없는 농군이 잘 살아보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입니다. 쌀이 남아도는 요즘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만, 논 한마지기에 목을 매달던 옛날 농부들은 아마도 절절한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 사회의 구조가 바뀌는 길목이라는 시대적인 안타까움에 절망하는 주인공이 너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소설 ‘남양의 절벽 위에 서다’는 저에게 생소한 바다낚시를 소재로 하고 있어 대물을 건 주인공의 그 짜릿한 느낌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투 끝에 끌어올리는 집념에 박수가 절로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남양의 모습은 물론 낚시가 진행되는 과정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읽는 제가 마치 남양 절벽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수필로 실린 ‘현대의학이 걸어온 길’은 아무래도 현대의학의 역사에서 가려 뽑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일부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동양의학과 마찬가지로 여건이 비슷했던 전통의학에 뿌리를 둔 서양의학이 현대의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잘 정리된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저 역시 서양의학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서적들을 두로 섭렵한 바 있어 김작가님이 이야기하려는 뜻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먹이사슬>에 실린 작품들을 뒤에서 거슬러 살펴보는 것이 편치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맛있는 것을 먼저 먹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맛있는 것을 맨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두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후자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도 좋고 중수필도 좋았지만, 앞부분의 경수필들에서 느낀 소감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미룬 것입니다.

 

경수필은 아주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국내외 여행기나 세시에 관한 이야기들도 있고, 문필가로 활동하면서 만난 인연을 소개하는 글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이 끌린 글은 문집의 표제이기도 한 연작수필 ‘먹이사슬’입니다. 메뚜기, 우렁이 그리고 가물치 잡기, 돼지, 닭, 누렁이 등 시골집 마당에서 흔히 보던 짐승 등, 어린 시절을 보내던 시골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담으신 글입니다.

 

‘마른 논바닥을 거닐며 자세히 살펴보면 손가락이 하나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들이 숭숭 뚫려있다. 그 구멍에 손가락을 깊숙이 찔러 넣으면 딱딱하고 차가운 감촉이 손가락 끝에 와 닿는다.(46쪽)’ 우렁이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본 사람만이 그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연작수필 ‘먹이사슬’에 특히 마음이 가는 것은 저 역시 김작가님처럼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보면 김작가님께서 저와 연배가 비슷할 뿐 아니라 성장배경까지도 비슷한 데가 많아 김작가님의 글이 울림이 큰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옛날의 기억은 점차 가물가물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글로, 혹은 영상으로 기억을 보강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옛일을 말해주는 분들이 많지 않은데다가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아쉽기만 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작가님의 <먹이사슬>은 576세대에게는 옛 추억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옛일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작가님. 앞으로도 더 많은 기록을 남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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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하루 종일 인터넷만 해요
한덕현 외 지음 / 시공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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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많은 부모님들이 걱정을 해본 경험이 있거나, 지금 당장도 걱정하고 계실 문제라는 생각을 합니다. 바로 우리 아이가 인터넷 중독은 아닐까 하는 고민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 아내가 가끔은 제가 인터넷 중독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는 모양이더라구요. 제가 블로그에 빠져 있을 때 말입니다.

 

<우리 아이가 하루 종일 인터넷만 해요>는 바로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한 책입니다. 중앙대학교 게임과몰입상담치료센터에서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청소년들을 진료하고 계신 한덕현, 이영식 교수님과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정책에 관심을 두고 계신 신의진의원님이 참여하여 썼습니다. 저자들은 인터넷 중독이란 ‘과다한 인터넷 사용으로 금단과 내성이 생겨 이용자의 일상생활에 장애가 발생하는 상태’라고 정의하지만, 아직은 공인된 진단은 아니라고 합니다. 따라서 특히 성장기에 있는 소아청소년들에게 인터넷 중독이라는 진단을 내리는데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청소년층에서 과도한 게임 이용과 스마트폰 사용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만, 인터넷 중독의 범주에는 게임뿐 아니라 채팅, 음란물, 인터넷 도박, 정보 검색, 인터넷 쇼핑에 대한 중독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분명 세상을 바꾸어 놓은 문명의 이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저자들은 먼저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의 실체를 요약하였습니다. 부모세대에는 익숙하지 않은 인터넷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인터넷 중독 혹은 인터넷 게임 장애의 본질을 저자들이 직접 경험한 사례를 들어 정의합니다. 그리고 인터넷 중독을 예방하는 방법과 치료하는 방법까지 설명을 하고 있어 이런 문제고 고민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제가 인터넷 중독이 아닌가 싶었던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책을 읽고서 생각해보니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 중독은 정보 과다형, 관계 집착형, 게임 중독형, 웹서핑형, 사이버 섹스 중독형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정보과다형이나 웹서핑형의 가까운 인터넷사용 행태를 보인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블로그를 운영해오면서 관계집착형의 행태를 보이는 분을 만난 적도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좋아하는 게임은 있지만 중독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나치게 게임에 몰입하는 것 아닐까 걱정한 적이 있습니다만, 아이들의 생각과 부모의 생각에는 분명 온도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즉 문제를 인식하는 시각에서 차이를 보일 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도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바람에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더욱 꼬이게 만드는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부모의 협조가 인터넷에 빠진 청소년들을 치료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인터넷 사용에 관한 문제로 자녀들과 충돌을 빚다보면 가족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녀들을 이해하고, 또 부모가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시킬 수 있다면 자녀들의 인터넷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중독’이라고 하면 손을 쓸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만, ‘인터넷중독’에 대한 연구들이 쌓여가면서 다양한 치료방법들도 개발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분야를 진료하고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 필요한 것은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더 좋읗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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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이운경 옮김 / 한문화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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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발칸을 여행하면서 들고 간 책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발칸 사람의 생각을 읽어보기 위하여 골랐습니다. 하지만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이라고 표시된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는 출판사의 의도적인 왜곡이 개입된 것 같다는 생각에 불쾌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책의 기획을 맡아 엮은이로 소개된 영국 킹스대학 철학과의 윌리엄 어윈교수를 편집대표로 내세웠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윈교수는 17명의 집필진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책을 기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출판사에서는 가장 많은 분량의 원고를 썼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책이 소개되어 잘 알려진 지젝을 내세웠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지젝을 넣어 검색해보면 단독과 공저를 포함하여 무려 55종이나 되는 책들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은 1949년 유고연방 시절의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나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파리 제8대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철학으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전체주의와 인종주의를 반대하고, 정치에도 관심을 보여 1990년에는 개혁세력을 대표하여 슬로베니아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젝은 SF 소설, 영화, 오페라 등 다양한 영역의 문화 예술을 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비평을 내놓고 있어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방문하여 두 차례의 강연회를 가져 성황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의 저서들 가운데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를 고른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우선 정치나 철학적 주제는 아무래도 무거워서 여행하면서 읽기에는 부담스러울 것 같았습니다. 반면 말랑해 보이는 문화예술 분야를 철학적 시각으로 분석해본다는 접근방식이 색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영화 <매트릭스>는 내용을 잘 알고 있어, 그에 대한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한 몫을 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이 장면을 이렇게 처리한 이유가 뭘까 등을 심각하게 생각해가며 영화를 보지는 않습니다. 그저 마음에 와 닿는 대로 느끼는 편이라고 할까요?

 

오래 전에 동아리선배와 한담을 하다가,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졸업>은 제가 엄청 좋아하는 사이먼과 가펑클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배경에 깔려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졸업 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방황하는 모범생 벤자민(더스틴 호프만粉)이 어머니 친구인 로빈슨(앤 밴크로포트粉)의 유혹으로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의 딸 일레인(캐서린 로스粉)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로빈슨부인이 개입하여 반대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헤어지고, 일레인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식장을 찾은 벤자민은 교회 2층에서 유리창을 두드리며 일레인을 부르고, 결혼식장을 빠져나온 일레인과 달아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 <졸업>에 대한 동아리 선배의 말씀은 일레인의 결혼식이 진행될 때, 벤자민이 두드리던 유리창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가르는 단절을 의미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 선배는 저와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보았던 것입니다.

 

최근에 대중가수가 발표한 신곡을 둘러싸고 해석이 왜곡되었다고 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고 ‘정신 나간 괴짜가 맞다’라는 느낌을 적었더니 ‘겉으로 드러난 형식에 너무 치우친 해석’이라는 댓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저의 해석도 다양한 해석의 하나로 보아주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얼마나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작품이야말로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최근 대중가수의 해석도 보호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혹시 출판사가 노이즈 마케팅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라면 그런 상업적 행위는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영화 <매트릭스>는 정말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매트릭스>를 보고 그저 화려한 액션장면과 네오가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컴퓨터 그래픽이 신기하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에 참여한 열다섯 명의 철학자들은 다양한 철학적 관점에서 영화 <매트릭스>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형제는 이 영화에 많은 철학적 주제를 짜 넣었다고 인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라는 논의에 동참한 철학자들은 영화를 만든 작가와 예술가들이 의도한 의미들을 그저 전달하는 것에만 그쳤는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윌리엄 어윈교수는 영화 <매트릭스>를 철학자들의 로르샤흐 검사(Rorschach test)로 이용해보려 했다고 합니다. 이 검사는 스위스 정신의학자 로르샤흐가 고안한 심리검사로 ‘좌우 대칭의 불규칙한 잉크 무늬가 어떠한 모양으로 보이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나 정신 상태, 무의식적 욕망 따위를 판단하는 인격 진단 검사법(네이버 사전)’입니다.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에 동참한 철학자들은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 불교, 허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각자의 관심 분야의 틀을 가지고 이 영화를 읽어 냈습니다. 철학자들이 <매트릭스>와 같은 대중문화의 산물을 가지고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놀음을 하게 된 것은 사람들이 대중문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철학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중문화를 매개로 하여 철학에 대한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애처롭게(?) 보이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윌리, 너는 왜 은행을 털지?’라는 질문을 받은 전설적인 마피아 윌리 서튼이 ‘그곳에 돈이 있으니까.’라고 답변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앞서 소개해드린 동아리 선배처럼 영화의 바탕에 깔려 있는 의미를 잡아낼 수 있는 힘이 생길까 하는 기대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영화 <매트릭스>를 분석하기 위하여 철학자들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칸트, 니체, 사르트르, 셀라스, 노지크, 보드리야르, 콰인 등 우리에게 익숙한 철학자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를 해석하는데 있어 얼마나 다양적인 접근이 가능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윌리엄 어윈교수의 경우는 <매티릭스>가 성서적 비유를 하고 있다고 단정합니다. 1999년 부활절에 영화를 개봉한 것도 의도적인 것이지만, 주인공의 이름 네오 역시 유일신을 의미하는 'The One'의 순서를 거꾸로 한 것이며,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구원자임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만나게 하는 오러클은 예언자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를 노예상태로 제어하고 있는 거대한 음모세력에 대항하는 세력들이 숨어서 거사를 준비하는 장소가 바로 시온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마이클 브래리건교수는 불교의 원리로 <매트릭스>를 들여다봅니다.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거울이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울은 그 앞에 있는 사물들을 비춰냅니다. 등장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춰내는 거울이야말로 깨달음의 극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울은 궁극적으로 구속되지 않은 마음, 무심(無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네오가 무심을 터득하는 순간 무한한 능력을 얻는 장면이야말로 불교적 사상이 녹여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네오의 죽음과 소생 역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네오는 모피어스를 구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맞게 되지만 트리니티의 간곡한 기도가 그를 되살려냅니다. 기독교식으로 해석하면 네오의 소생을 부활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네오가 인류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예언자가 “아마 너의 다음 생애겠지.”라고 하는 말은 불교에서 말하는 환생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레고리 바샴교수는 <매트릭스>가 기독교적 주제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티베트 불교, 선불교, 그노시스주의 등 다양한 종교적 요소들이 혼합된 카페테리아, 즉 다원주의적이기까지 하다고 주장합니다. 전통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격을 부여하여 인간의 죄를 대신한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역시 인간이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폭력도 마다하지 않아서 기독교의 교리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종교를 수용하는 종교적 다원주의자들은 다른 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자신의 종교적 전통만이 진리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오만하고 극단적인 우월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는 제국주의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에 참여한 철학자들의 관심은 전통적인 관점의 철학에 머물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주제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제이슨 홀트교수의 관심은 기계가 과연 영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그런데 컴퓨터가 발전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하는 단계에 이른다면 인공지능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일 것 같습니다. 그런 가능성마저도 외면하고 논의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 홀트교수의 생각입니다. 제가 요즘 즐겨보는 복면가왕처럼 편견을 깨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매트릭스>에서는 마음과 육체의 관계를 설명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매트릭스에서 죽으면 여기서도 죽나요?’라는 네오의 질문에 모피어스는 ‘육체는 정신이 없으면 살 수 없어’라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마음과 육체가 별개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심신일원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니얼 버윅교수는 모피어스의 입장을 마음을 설명하는 환원적 유물론, 제거적 유물론, 그리고 이원론의 세 가지 이론 가운데 환원적 유물론에 가깝다고 설명합니다. 유물론과 이원론을 대비시켰을 때, 유물론자들은 마음을 포함해서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전적으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반하여 이원론자들은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는 비물질적인 요소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환원적 유물론은 감각을 통하여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전자적 신호로 바꾸어 뇌가 해석하고 통합한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거적 유물론에서는 마음의 상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 이원론은 마음이라는 상태는 전형적인 비물질적인 것으로 보아 물질적인 육체와는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과 내세는 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트릭스의 지배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 상태에 대응하는 실재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런데 <매트릭스>를 보는 관객들은 매트릭스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의 개연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트릭스>는 묘한 구석이 많은 영화입니다. 분명 꾸며낸 이야기, 즉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관객들은 그 허구에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매트릭스 철학하기>처럼 말입니다. 사라 워드교수는 이를 허구의 역설이라고 설명합니다. 1) 우리는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해서만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2) 우리는 허구가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 우리는 허구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한다.(120쪽) 결국 실재(實在)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논란을 영화 <매트릭스>를 통하여 느껴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과 사이버공간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현실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이유로 현실에 대한 시각이 왜곡되는 것이라고 지젝교수는 말합니다. 그리하여 사이버공간이 인간들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며, 이는 인류가 세계에 지나치게 개입한 데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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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 0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처럼 2015-11-17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바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qualia 2015-11-17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녘 출판사는 아이유한테 오히려 감사패 혹은 금일봉을 줘야 할 거예요. 아이유가 논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가 역주행 대박을 치고 있으니까요. 가만 생각하면 서로 짜고 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음모론도 제기될 만한 것 같습니다. 위기에 빠진 출판계를 구하기 위해 아이유가 자기 한 몸 희생하기로 했다... 동녘 측의 아이유 유감 표명은 백보를 양보해 해석하더라도 계산적/의도적이었던 게 확실하다고 봅니다. 게다가 나중엔 사과까지 했으니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한 것이죠. 아이유한테 소아성애자니 아동성애자니 하면서 마녀사냥으로 몰고간 네티즌/누리꾼/블로거들 또한 오히려 그 자신들이 위선과 이중성으로 찌들어 있다는 사실을 자기폭로한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또 아이유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거나, 누리꾼들의 위선/이중성을 비판하거나, 동녘 측의 순수하지 못한 노이즈 마케팅 활용 꼼수를 비판하는 평론가/음악가/블로거들한테 갖은 험담을 퍼부으며 소아성애/아동성애 조장자로 낙인을 찍는/찍었던 자들한테도 먼저 자기자신을 돌아보고 위선과 이중성에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누가 소아성애/아동성애를 조장하고 옹호한단 말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처음처럼 2015-11-18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qualia님께서도 같은 맥락을 짚으셨군요....
사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해석에 관한 부분은 작가의 것이 아닌거죠...
해석의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한 자체가 적절치 못한거죠.
그래서 혹시.. 하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인문학 습관 - 나만의 업業을 만들어가는 인문학 트레이닝북
윤소정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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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인문학이 대세인가 봅니다. 저 역시 인문에 관심을 두고 꾸준하게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에 왕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와는 달리 깔끔하게 정리된 요점이 필요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가 봅니다. 그래서인지 기존의 인문학 공부법을 깨뜨리고 새로운 인문학 트레이닝을 개발하려는 아이디어도 나오나 봅니다.

새로운 교육문화를 창조하겠다는 이념으로 ‘인재양성소 인큐’를 만들었다는 윤소정씨가 그동안 개발해온 자기계발 프로젝트의 일부를 <인문학 습관>에 담아냈다고 합니다. 저자 소개를 보면 한마디로 당찬 젊은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설마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1일 2~3천명이 방문하는 블로그의 주인이라고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프로젝트에 돌입 첫 스텝으로 일주일 만에 300만명이 찾는 파워블로거가 되었다.’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제 경험을 보더라도 개설하자마자 일주일에 300만이 찾은 블로그가 지금은 하루 2~3천명이 찾는다면 평범한 블로그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성격을 미리 말씀드리면 저자가 서론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무작정 책을 읽으면서 눅라 무엇을 말했는지에 대해 논하는 공부는 멀리하고, 대신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자기계발서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진짜 공부법이라고 하는 이 방법에 인문학이 힌트를 준다고 했습니다만, 과연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이 이런 종류의 학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자가 9개의 장으로 나누어 요점을 정리하고 있는 내용들은 인문학 공부를 통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깨달음을 얻은 것은 책을 읽어서가 아니라 어머니를 포함하여 누군가로부터 얻어들은 이야기들을 통해서입니다. 아마도 그 분들은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몸으로 체험하였거나 광범위한 독서를 통하여 얻은 지식을 통합하여 얻은 것들이라고 보입니다. 그런 것들은 듣는 것만으로는 본래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저자는 2010년 1월 27일 아이패드를 출시할 적에 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사진에서 Technology와 liberal arts라는 단어를 볼 수 있습니다. 기술과 인문학으로 우리에게 소개된 단어입니다.

최근에 읽은 <나를 위한 교양수업>의 저자 세기 히로시는 ‘중세 서양에서 자유시민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이라는 의미의 리버럴 아츠를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폭넓은 기초적 학문과 교양(6쪽)”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개별과목을 통하여 얻은 지식들을 횡적으로 연결하여 ‘넓은 시야와 독자적 관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리버럴 아츠의 핵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세기 히로시의 설명대로라면 누군가로부터 얻어 듣거나 교육을 통하여 습득한 지식만으로는 자기만의 철학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부하여 얻고 사유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나가는 일이야 말로 인문학의 요체라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 습관>에 담긴 저자의 톡톡 튀는 생각들은 살아가는 방식을 몸에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에 잘 맞도록 정리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입니다만, 사람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저자의 방식이 잘 맞는 분들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에 맞는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저자는 1년 동안 365권의 책을 읽었다는 친구에게 그 중에서 기억하는 문장이 몇 개나 되냐고 물어서 친구의 말문을 막게 했다고 했습니다만, 책을 읽어 그 안에 있는 문장을 얼마나 기억하는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 책에 담긴 내용을 마음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리뷰로 적어두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지요. 자신과 다른 방식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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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
잭 캔필드 외 지음, 황주리 옮김 / 이레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냈다’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http://blog.joins.com/yang412/13776317>를 읽고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일주일에 이틀 이상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야 하니, 이런 분에게 여행은 무슨 의미일까 궁금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고 있는 곳에서 한발짝도 바깥세상에 나가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분에게 여행은 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행복한 여행자>는 여행을 통하여 행복을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39명으로부터 얻은 행복한 여행이야기를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스티브 칙맨 등, 세 사람 편집을 했다는 것입니다. 세 사람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행복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내놓지는 않았고, 서문도 공동으로 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느낌만으로는 “영혼을 위한.... ” 시리즈로 유명한 잭 캔필드의 필명에 얹혀간 기획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한 여행에 관한 경험들을 받아서 단순하게 편집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보내왔다거나,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다거나, ‘당싱의 꿈을 살라’, ‘그곳에 가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 ‘삶을 변화시키는 여행’, ‘사랑에 대하여’ 등의 제목으로 나눈 사연 등에 관하여도 전허 언급이 없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보내온 사연들에 대하여 편집한 분들의 짧은 조언이라도 붙였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문에 적고 있는 길지 않은 글마저도 정형화된 것은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행은 삶을 확장시키고 풍요롭게 만드는 무한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여행은 우리를 새롭고도 낯선 충격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는 방법들을 변모시키는 신기한 풍습들과 새로운 얼굴들과 마술적 순간들과 무수히 조우한다.(6쪽)”라는 구절이 대표적입니다. 사실 “여행을 향한 자유를 연습하고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좋은 것들을 고맙게 여기며 대담하고 새로운 빛 속에서 삶을 바라보도록 부추길 것(7쪽)”이라는 저자의 희망조차도 과연 그럴까 싶습니다.

39편의 여행경험 가운데는 감동적인 내용도 있고, 부러운 내용도 있으며, 때로는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것도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일 나에게 이런 목적으로 글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여행에 관하여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공항에서의 식사’에 관한 이야기는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전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여행경험이었습니다. 미국이라서 가능한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가는 동안 친구가 사는 댈러스 공황에서 비행기가 환승하게 되었는데, 환승대기 시간 동안 친구와 식사를 하는 기발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연발이 되어 환승시간이 짧아져서 식사시간을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댈러스의 친구는 미리 준비한 식사를 주차장에서 같이 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입니다. 사실 격식을 갖춘 식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공항의 식당에서 간단한 음식을 나눌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대단한 우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자 이제 다 왔다’라는 제목의 여행이야기는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한 여횅의 추억인데 찔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 때 여행이라도 나설라치면 초등학교 2학년인 큰 아아니 4살 아래인 작은 아이에게 언제 어디로 간다는 정도만 설명하고 구체적인 여행계획은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아이들이 여행에 동행하기를 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해서 여행을 자주하기 때문에 미안한 어머니가 여행지에서 사진으로라도 가족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가상하더라는 생각과 함께 역시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씀으로 리뷰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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