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볼트의 대륙 - 남아메리카의 발명자, 훔볼트의 남미 견문록
울리 쿨케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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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훔볼트에 대한 기억 1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가는 모양입니다.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회의 마지막 날 시내구경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독일 분단과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그 문을 지나 훔볼트대학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헬름홀츠의 동상이 서 있는 건물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기념품매장에서 두 아이들을 위해서 대학 표시가 새겨진 후드티를 사왔는데, 두 아이들이 즐겨 입어서 다행입니다. 훔볼트대학에 들어가면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Die Philosophen haben die Welt nur verschieden interpretiert, es kommt darauf an, sie zu verandern)”라는 칼 마르크스가 한 말이 새겨있는데, 앞 문장보다는 뒤 문장에 무게를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1810년 프로이센의 황제 프리드리히 빌헬름3세의 칙령에 따라 교육부장관 빌헬름 폰 훔볼트가 세운 대학입니다. 처음 교명은 베를린대학교였는데 1828년 황제의 이름을 따서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교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설립자의 동생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주도하여 규모를 확대하였습니다. 나치로부터 탄압을 받았으며 2차 대전 중에는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교원들이 죽거나 실종되는 피해를 입어 종전 후에 문을 닫았다가 1946년 소련군정의 주도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1949년에는 동독의 독일사회주의통일당이 훔볼트대학으로 교명을 바꾸었습니다. 

 

이 대학의 졸업생이나 교수출신 가운데 40명이 노벨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를 창시한 프리드리히 엥겔스,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 등이 이 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와 요한 고틀리브 피히테,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문화비평가 발터 벤야민, 법학자 헤르만 헬러 등이 교수를 지냈습니다.

 

#훔볼트에 대한 기억 2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에서도 훔볼트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 등 여행에 관한 다섯 가지의 주제를 중심으로 여행의 품격을 논하였는데, <여행의 기술>의 서술구조에는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자신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저자가 안내자로 지목한 사람의 여행 이야기가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알렉산더 훔볼트는 호기심이라는 주제를 담은 보통의 마드리드 여행을 안내합니다. 주마간산하듯 스쳐가는 여행이 아니라 꼼꼼하게 관찰하고 느끼는 여행을 하라는 메시지를 담기에 알렉산더 훔볼트가 제일 마땅한 안내자였던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훔볼트의 남미여행에 관한 기록을 이렇게 인용하였습니다. “훔볼트는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해발 5,076미터인데도 눈 위로 바위 이끼가 보였다. 이끼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800미터 정도 아래서였다. 봉플랑 씨[훔볼트의 동행자]는 해발 4,500미터에서 나비를 한 마리 잡았으며, 거기에서 500미터를 더 올라가서도 파리를 볼 수 있었다.’(알랭 드 보통 지음, 여행의 기술 153쪽, 청미래, 2011년)” 알렉산더 훔볼트는 5년에 걸쳐 남미를 여행하면서 채집한 자료를 토대로 <신대륙의 적도 지역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30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식물지리학 시론 및 열대지역의 자연도>가 번역 소개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평론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훔볼트를 이렇게 평했다고 합니다. “훔볼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크라이턴 제독과 마찬가지로 이따금 세상에 나타나서 인간 정신의 가능성, 재능의 힘과 범위를 보여주는 경이로운 인간, 즉 보편적 인간의 한 예이다.(알랭 드 보통 지음, 여행의 기술 137쪽, 청미래, 2011년)” 훔볼트만큼 위대한 이름도 흔치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이름을 딴 지명, 동물 및 식물 이름, 기관 등은 헤아릴 수 없어,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정도가 비교된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훔볼트의 이름을 딴 거리는 셀 수 없을 정도이며, 미국에서도 훔볼트의 이름을 딴 도시가 여덟 곳, 카운티가 아홉 곳이며, 열아홉 종의 동물과 열다섯 종의 식물 역시 훔볼트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것은 페루의 앞바다를 흐르는 훔볼트해류 정도였던 것입니다.

 

마침 알렉산더 훔볼트의 남미여행 과정을 살펴본 책이 나왔기에 소개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저명한 일간지 벨트(WELT)의 기자로, 세계의 탐험여행을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이에 대한 저서를 여러 권 출판한 바 있는 울리 쿨케가 쓴 <훔볼트의 대륙>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소개한 훔볼트의 남미여행이 단편적이었던 아쉬움을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쿨케기자는 훔볼트의 성장배경으로부터 남미탐험 그리고 유럽으로 돌아와 저술활동을 통하여 남미에서 발견한 것들을 알리고 죽음을 맞기까지 훔볼트의 일생을 잘 요약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완벽함을 이야기할 때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다고 합니다. 훔볼트야말로 재능과 노력 그리고 배경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이 완벽함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가정적으로는 아버지 알렉산더 게오르크 폰 훔볼트는 프로이센의 대령으로 황태자의 근위관을 지내면서 황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고, 어머니는 부유한 위그노파 가문 출신으로 막대한 유산을 남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배경이라면 굳이 험지에 직접 가지 않아도 그의 형 빌헬름 폰 훔볼트처럼 국내에서 명망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을 터이지만, 알렉산더 훔볼트는 어려서부터 적도여행을 꿈꾸었다고 합니다. 특히 제임스 쿡 선장의 세계일주여행이 소년 알렉산더를 세계여행으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훔볼트는 그저 꿈만 꾸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세계여행에 필요한 지식들을 쌓아갔던 것입니다.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광산학을 공부하였고, 화산을 연구하기 위하여 이탈리아를 여행하기도 했으며, 동물학자, 식물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다방면의 지식을 쌓았던 것입니다. 공부한 것들을 확인하기 위하여 드레스덴, 프라하, 빈, 잘츠부르크, 파리 등에 있는 대학, 천문대, 학자들을 찾아다녔으며, 탐험여행에 필요한 최신 장비들, 고도계, 나침반, 온도계, 기압계, 수중계, 크로노미터 등을 사들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알파벳, 화살표, 상징 부호 등을 비롯하여 각종 분류에 사용할 약호 등을 정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를 해갔던 것입니다. 감나무 아래서 입을 벌리고 있다고 감이 똑 떨어지는 것이 아니듯 행운은 예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법입니다.

 

나폴레온의 프랑스군에 합류하여 북아프리카로 가려던 계획은 좌절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식물학자 에메 봉플랑을 만나게 되었고, 봉플랑은 훔볼트의 남미탐험의 동반자가 되었으니 훔볼트의 파리행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행운은 역시 훔볼트 편이었습니다. 남미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당시 남미를 지배하던 스페인의 허가를 받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작센공사의 도움으로 알현하게 된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4세는 훔볼트에게 여행허가증을 내주었던 것입니다. 

 

훔볼트와 봉플랑은 1799년 5월말 스페인의 북서쪽 갈라시아 지방의 라 코루냐의 항구에서 쿠바로 가는 배에 올랐습니다. 첫 번째 기착지 카나리아제도에서 해발 3,718m의 피코 데 테이데산을 등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5년간에 걸쳐 훔볼트가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에 걸쳐 탐험한 거리는 대략 25,000km에서 30,000km에 달하였고, 6,200종의 식물을 수집하였으며, 700여 가지의 천문 관측실험을 수행했습니다. 훔볼트는 자신이 경험한 것과 측정한 것들을 모두 6만여 쪽의 기록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자연과학자이면서도 인문주의적 성향을 가졌던 훔볼트는 남미에서 만난 인디오들이 선하다고 느꼈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노예를 매매하는 모습을 보고서 충격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에게 노예매매를 중지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남미지배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의 스페인 사람들과는 우호적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훔볼트는 오리노코강을 측량하기 위하여 내륙지방의 정글로 향했는데, 악어와 전기뱀장어가 득실거리는데다가 격류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인디오들을 고용하여 노를 젓거나 폭포를 만나면 배를 매고 육로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다. 자연이 문명화된 해안가와 원시의, 그리고 미지의 내륙 사이에 만들어 놓은 빗장 뒤로 왔음을 느낀다(127쪽)”라고 적었습니다. 훔볼트의 탐사는 그때까지 아마존을 나누고 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잘 못 알고 있던 것들을 바로 잡는 역할을 했음이 분명합니다. 오리노코강과 네그루 강 사이에 엘도라도, 즉 황금의 땅이 있다는 소문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도 말입니다.

 

훔볼트는 남미를 탐험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작성한 보고서를 유럽으로 보냈고, 그 보고서는 인기를 끌었습니다. 훔볼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명인사가 되어가고 있었던 셈인데 보고서가 뜸하면 훔볼트가 탐험여행 중에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방식이 탐험여행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누에바 바르셀로나에서 쿠마나로 향하는 도중에 영국의 무장선박에 나포된 것입니다. 이미 신문을 통하여 훔볼트의 탐험기를 읽은 바 있던 영국의 선장이 존경하는 훔볼트를 석방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니치 천문대의 관측자료까지 제공하는 후의를 베풀어 훔볼트의 천문관측에 크게 도움이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쿠마나에서 쿠바의 아바나로 향한 훔볼트는 오리노코강 탐험에서 얻은 자료들을 유럽으로 보냈고, 지금의 콜롬비아와 볼리비아를 거쳐 페루의 리마에 이르는 경로의 탐험에 나섰습니다. 그 여정에는 당시까지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던 볼리비아의 침보라소산 등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178쪽과 179쪽에 침보라소산의 탐험자료를 정리해놓은 것을 보면 훔볼트의 자료정리방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훔볼트와 봉풀랑이 등정한 높이는 5,881미터인데 이 기록은 그때까지 인간이 올라간 가장 높은 곳으로 향후 50년 동안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들은 침보라소산의 정상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는데, 고산병의 증세가 시작되었고, 인디오들도 5,100미터에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훔볼트는 이때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암석들이 스스로 양극을 다 가져 자기 바늘에 영향을 주는 이 산에서 암석이 안 보이는 평원이나 혹은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산 위로 도구들을 400m 더 높이 가지고 간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180쪽)” 화산학에 관심이 많았던 훔볼트는 만년설로 덮여 있는 정상에 분화구가 있는지 확인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침보라소산에서 페루의 리마에 이르는 동안 훔볼트는 잉카인이 만들어놓은 유적들을 보고 경외감을 가졌으나, 리마를 차지한 유럽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환멸에 가까운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리마의 항구 카야오에서 과야킬과 멕시코의 아카풀코로 향하면서 훔볼트는 차가운 바닷물이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발견했고, 이 조류가 남극에서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해류를 오늘날 훔볼트해류 혹은 페루해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837년 프로이센의 지리학자 하인리히 베르크하우스가 훔볼트해류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 정작 훔볼트는 ‘이것은 칠레부터 파이타까지, 뱃사람이라면 어린아이까지 누구나 다 아는 해류(202쪽)’라면서 이의를 제기해서 세인을 놀라게 했던 모양입니다. 

 

요즈음 여행을 하면서 SNS를 통하여 실시간으로 독자를 만나는 여행가들도 많습니다만, 언론을 통하여 탐사여행과정을 중계했던 훔볼트야말로 미디어여행의 효시라고 할 만합니다. 유럽으로 돌아왔을 때 훔볼트는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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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작게, 깊숙이 - 나를 매혹시킨, 서른 두 개의 유럽 마을을 걷다
권기왕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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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이유도 다양합니다. 사진작가이면서 여행작가인 권기왕님의 <느리게, 작게, 깊숙이>를 골랐던 이유는 아마도 제가 다녀왔던 스페인, 포르투갈, 터키 등의 지명이 눈을 끌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같은 작가가 같은 해 내놓은 <유럽 마을 산책>에서 다루고 있는 장소가 동일하고 사진도 같은 듯 한데, 다만 소제목만을 달리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불과 7개월 정도의 차이밖에 없고, 출판사까지도 같은데 말입니다. 

 

저자는 유럽 16개국의 32곳을 방문하여 느낀 점을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 수록된 장소들은 유럽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는 점이 독특합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유럽의 진짜 매력은 수백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옛 도시와 마을들, 그 마을이 품고 있는 풍성한 문화와 이야기에 있다(7쪽)” 그래서 대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에서 서른 두 곳만을 꼽았다고 합니다. 여행 중에 우연히 들른 곳도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저도 네 곳은 가보았기 때문에 저자의 느낌이 동참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서 독특한 점은 사진작가답게 아름다운 사진을 풍성하게 담고 있는 점과 이들 장소에 갈 수 있는 교통편을 요약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곳에서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를 안내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숙소를 정하지 않은 채 여행을 다녔습니다만, 유럽에서는 아직 그럴 엄두를 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대범하거나 유럽 여행에 도가 트였기 때문인지 현지에 도착해서 숙소를 구하는 편인가 봅이다.

 

읽어가면서 풀리지 않은 의문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설명이 끝나는 부분에서 무언가 미진한 느낌이 꼭 남는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독일의 바하라흐에서 만난 중세 고성에서의 하룻밤에 관한 글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그만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와, 눈앞에 끝내주는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슈탈레크 성의 아랫부분은 발 아래로 한참이나 내려앉아 있고, 라인강과 마을, 구릉의 초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나는 이 세상 어떤 특급호텔의 비싼 방이라 할지라도 이 작은 방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이면 다시 길을 떠날 여행자인 나는 반더포겔처럼 고성의 탑 꼭대기에 하룻밤 둥지를 튼 것이다.(12쪽)”

 

16개 국가도 산발적이지만 32개의 장소 역시 공통점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자의 설명을 따라 읽다보면 나름대로 독특한 점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장소들을 꼭 찾아가야 하는 이유를 발견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탈리아의 베로나, 스페인의 론다,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와 같이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장소들은 예외로 하고 말입니다.

 

다만 책장의 뒷면에 적어 놓은 책 제목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조금은 공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느리게; 거대한 유럽의 수도들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대도시에서는 심호흡 한번 어렵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천천히 걷고 천천히 보고 천천히 잠드는 그런 여행. 조금 작게; 화려한 수도에 비하면 너무나 수수한 마을들, 하루 이틀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이 곳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시간이 나를 따라 흐른다, 그리고 깊숙이; 마티스를 사로잡은 프랑스의 작은 마을, 방스. 소설 <향수>의 배경이 된 그라스. 파스칼의 산책길이 있는 그의 고향, 클레르몽페랑.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의 베로나와 시에나. 헤밍웨이가 사랑한 낭만 도시 론다.” 그래도 북적이는 수도조차 보지 못한 상황에서 느린 여행을 사치처럼 느껴지는 것도 해외여행 초짜인 때문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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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멋진 일주일, 크로아티아 - 7박 8일을 여행하는 최고의 방법 어느 멋진 일주일
이준명 지음 / 봄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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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한 발칸반도를 다녀왔습니다. 여행사 상품으로 다녀왔습니다만, 물론 여행사에서 짜놓은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 점도 일정 부분 있었지만, 발칸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못한 탓에 놓친 것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만약 발칸으로 떠나기 전에 <어느 멋진 일주일, 크로아티아>를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혹시 발칸여행을 기획하고 계신 분이시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책의 구성을 보면 자유여행을 위한 가이드북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만, 여행사 상품으로 여행하시는 분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내용을 가득 차 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부터 플리트 비체, 스플리트 그리고 두브로브니크 등 크로아티아의 대표적 관광지 네 곳을 상세하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먼저 크로아티아에 대한 역사를 포함하여 개괄적인 설명을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크로아티아 여행에 필요한 사항들, 항공권, 숙소, 준비물과 예산, 교통편, 음식, 여행에 필요한 크로아티아어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방문하게 될 4개 지역에 관한 사항들도 곰꼼하게 챙기고 있습니다. 중요한 볼거리, 역사, 지도, 교통 숙소, 식당 그리고 쇼핑 정보에 이르기까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특히 역사에 대하여도 필요한 만큼만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크로아티아를 아내와 함께 자유여행으로 다녀온 것 같습니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어 살아있는 여행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은 어두워진 다음에 도착한 자그레브의 옐라치치 광장까지 가서 자그레브의 지명이 유래된 만두셰바츠 우물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앞을 몇 차례나 왔다갔다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우물이 있는 것을 저도 몰랐고, 가이드 역시 설명해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리고 꼭 보았어야 할 성 마르크성당의 타일로 만든 지붕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지붕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성 마르크성당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것이나 역시 가이드의 설명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프리트비체 공원이나 스플리트 그리고 두브로브니크에서는 꼭 보아야 할 것들은 단체관광이라는 제한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보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여행사 상품으로 여행하는 경우와 자유여행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은 합니다만, 꼭 챙겨야 할 포인트를 중심으로 여행경로가 잘 짜여져 있다는 것이 장점이기는 하지만 쇼핑이라든가 선택관광이라는 요소가 개입되면서 일정이 빠듯하게 운영되거나 보아야 할 포인트를 건너 뛰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항공, 교통, 숙소, 식당, 카페, 쇼핑 등의 정보는 구성된 내용으로 보아 외국자료에서 인용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자유여행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행사 상품으로 여행하시는 분들에게는 역사, 볼거리 그리고 지도 등은 정말 꼭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넉넉하게 들어 있는 사진들도 필요한 사진에는 설명이 붙어 있어 역시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에 현지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들, 예를 들면 숙소 구하기, 현지 주민들과의 만남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 등 역시 자유여행을 즐기는 분들의 취향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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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2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처럼 2016-01-03 13:49   좋아요 0 | URL
제가 갔던 팀에서는 일정이 잘 조정되지 않아서 놓친 것이 많았던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빠트린 것들을 다시 챙겨 볼까 생각도 하고 있답니다.
 
러브 메이 페일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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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존 키팅선생님 같은 분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분 정도의 선생님을 마음속에 우상처럼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입원하신 고등학교 은사님을 뵈려 지방에 다녀왔습니다. 졸업하고서는 처음 뵙는 건데 병문안이 되어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을 소개해드렸지만, 제가 불편할까봐서 댁에서 가까운 병원에 입원하신 것 같습니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니 치료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새해 첫 리뷰를 소설로 쓰게 되는 것이 저로서는 드문 일입니다만, 은사님을 만나 뵙게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일입니다. 매튜 퀵의 <러브 메이 페일>은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에 마음에 담았던 소설가의 꿈을 뒤늦게 이루게 된 여자 주인공 포샤 케인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포샤 케인이지만 단독 주인공이 아니라 그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문학교사 네이트 버논, 그의 어머니 매브 수녀, 학창 시절 케인을 짝사랑했던 척 베이스가 각각 화자로 나와 이야기를 이어가는 공동 주인공의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도 등장하기도 합니다만, 포샤 케인은 네 사람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배역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러브 메이 페일>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셈입니다.

 

그런데 <러브 메이 페일>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은 삶에서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어 남들과는 다른 길로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뛰어넘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어쩌면 남들보다 부족한 것도 억울한데 그런 이유로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결말로 이끌 수는 없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결국은 더 큰 사랑이 그 실패를 감싸 구원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레브 메이 페일>이라는 제목은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제일버드; jailbird>에 나오는 “사랑은 실패할지 모르지만, 공손함은 항상 승리할 것이다(544쪽)”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http://blog.joins.com/yang412/13340292>을 통하여 커트 보네거트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만, 나름대로의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일버드>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첫눈에 반했다는 남자의 청혼에 넘어가 결혼한 포샤 케인이 새파란 애인을 집으로 끌어들여 정사를 벌이는 남편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첫 장면의 인상은 허접한 삼류소설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지만 남편을 사살하는 대신 고향집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선택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계는 운명이라는 신의 섭리에 따라 얽혀 있다는 조금은 구태의연한 느낌으로 바뀌게 됩니다. 운명으로 포장하기는 했지만, 결국 우연이란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은 거의 불가능한 것 아닐까요?

 

그녀가 부자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의 엽색행각 보다는 평소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 컸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꿈꾸는 행복한 결혼은 서로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그녀의 남편은 몰랐던 것입니다.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모르는 구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네 명의 주인공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등장인물들과의 관계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 버논선생님과 어머니 매브 수녀의 관계에서도, 척 베이스와 여동생 다니엘과의 관계에서도 느낄 수 있는 점입니다만, 가깝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가까울수록 이해를 더하기 위한 배려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버논선생님을 절망에 빠트렸던 에드몬드와의 관계가 어떻게 정리되는가와 버논선생님의 개 카뮈가 자살했다고 믿는 것에 대한 보완설명이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사는 옛 은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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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속지 마라 - 내 안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심리학의 진실
스티브 아얀 지음, 손희주 옮김 / 부키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읽은 <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까?; http://blog.joins.com/yang412/13802907>를 읽으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상담을 하러 오는 분들이 가지고 오는 문제들은 통제할 수 없는 행동, 마음, 사랑, 일과 꿈, 그리고 나를 가로막는 걱정들, 해결되지 못한 슬픔, 그리고 한없이 커 보이는 결점 등, 주로 심리적 문제들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중심으로 상담을 하러 오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걱정거리가 생긴 근원을 설명하였습니다. 즉 성장과정에서 만난 정신적 충격이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쳐, 장성한 다음에 성격이나 행동을 지배한다는 이론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저자의 설명에 빠져드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정말?’이라는 의문의 실체는 심리학을 전공한 저널리스트 스티브 아얀이 쓴 <심리학에 속지 마라>를 읽으면서 밝힐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책에는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심리학에 대한 일반적 앎을 뒤집어야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책을 쓴 스티브 아얀(Steve Ayan)은 독일 뒤셀도르프대학교와 이탈리아 나폴리대학교, 영국 리딩대학교에서 심리학과 문학번역학을 전공하였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원에서 과학저널리즘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현재 독일의 심리학 전문 잡지 『게히른 운트 가이스트』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저자의 배경은 심리학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가감 없이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아 고통을 받는 사람이 늘고 있고, 이런 사람들에게 ‘자아를 직시하라’는 구호를 앞세워 상담을 유도하는 심리상담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인문학 붐까지 더해지면서 심리학 관련 서적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환자에게 커다란 고통을 일으키는 심각한 심리장애는 분명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우울증, 공포, 중독, 강박과 같은 심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당연히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시험에 대한 공포,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사랑으로 인한 괴로움, 가족 간의 불화, 충족되지 못한 갈망과 같이 우리의 삶에서 흔히 부딪힐 수 있는 간단한 부정적 감정까지도 병으로 진단하고 치료받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심리학에 속지 마라>는 심리학 분야의 내부고발서가 되는 셈입니다. 마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 제4판>의 작성 책임을 맡았던 앨런 프랜시스교수가 새롭게 나온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 제5판>에 적용된 진단기준들을 지나치게 완화시켜 정신질환을 양산하게 되었다고 비판한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http://blog.joins.com/yang412/13392396>처럼 말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구성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심적 괴로움의 인플레이션을 다루면서 사소한 심리 문제가 왜 이토록 큰 문제로 여겨지는지를 파헤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을 다루며 어째서 심리학이 그토록 쉽게 근거 없이 떠도는 전설이 되었는지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리상담 숭배의 결과를 그려냈다.(17쪽)” 저자는 “쉴 새 없이 자신의 심리를 파악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본래 심리는 그런 목적으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17쪽)”라고 한 쾰른의 정신과 의사 만프레드 뤼츠의 말을 인용하여 심리상담을 남용하는 것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끊임없이 자아를 주시하고 자신의 상태를 심리 분야의 기준에 맞춰 측정하다 보면 일상에서 생기는 문제들이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저자는 오늘날 심리산업이 호황을 누리게 된 데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진단합니다. 심리학이 만들어낸 그럴듯한 내용을 잘 포장해서 독자의 흥미를 끌어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내려는 심리학적 전략에 따라 마음의 위로자형, 마법의 자장가형, 체크리스트형 그리고 헛똑똑이를 위한 자료형으로 심리학책을 분류합니다. 상담에 나서기 전에 자신의 위상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심리학에 관한 어느 정도 전문적인 책을 내는 것은 그들의 기본적인 행보인 것입니다. 심리학책 역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행복의 처방전을 나누어주고, 스스로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며, 마음속 깊은 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고 첨병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심리학책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대부분의 심리학책이 제공하는 조언이란 것들이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내용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반적인 특성을 자기에게만 해당되는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선택이 일상이 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출근하기에 앞서 어떤 넥타이를 맬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차를 운전할 것인가 아니면 지하철을 탈 것인가,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등, 전혀 심각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까지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합니다. 어떤 상품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면 새로운 기능을 얹은 상품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심사숙고하게 되지만, 막상 결정을 한 다음에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제목의 시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숲에서 만난 갈림길에서 선택과 배제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은 영국 시인 에드워드 토머스와도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프로스트는 1차 세계대전 무렵 영국에 머물면서 에드워드 토머스와 숲길을 산책하곤 했는데, 미국으로 돌아간 프로스트는 갈림길에서 어느 쪽 길로 갈까 망설이던 토머스를 가볍게 놀리는 느낌을 담은 시 ‘가지 않은 길’을 토머스에게 보냈다는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지 여부로 고민하던 토머스는 이 시를 받고서 군에 입대했고, 2년 뒤 북프랑스 전선에서 전사했다고 합니다. 토머스의 죽음을 조롱할 뜻은 없습니다만 ‘장고 뒤의 악수’가 된 셈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훗날 프로스트는 사람들이 너무 자신의 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그 시는 속임수 시”라고 유감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학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프로스트의 유감표명도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프로스트 전기작가 브라이언 홀은 “프로스트의 시는 사실은 하찮은 결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망설임에 대한 코멘트”라며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가든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는 법이라는 뜻”이라고 분석했다고 합니다.(한겨레신문 2015년 12월 23일자 기사. “안철수의 ‘가지 않은 길’”)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병이 되기도 하는 사람을 위하여 스티브 아얀은 세 가지 조언을 합니다. 첫째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선택을 통해서 이미 목적을 이루는데, 다른 해답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옳은 선택을 하려면 반드시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도 편견이다. 우리이게는 자아를 들여다보는 눈이 없다는 점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리치료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가지는 막연한 기대감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내용을 담았습니다만, 저자는 대부분의 심리치료법은 믿을 만한 자료도 별로 없고 약품치료와는 달리 엄격한 법률 자료를 바탕으로 검증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말로 하는 치료만으로 환자가 치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쏟아져 나오는 심리학 관련 연구논문들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만합니다. 대체적으로 심리학 관련 연구는 통계학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계자료를 해석하는데 따라서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한스 페터 베크 보른홀트와 한스 헤르만 두벤이 같이 쓴 <알을 낳는 개; http://blog.joins.com/yang412/9167274>를 통해서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리학 분야에서의 통계값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게르트 기거렌처소장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http://blog.joins.com/yang412/13240282>은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통계적 해석의 오류에 기인하는 심리학의 문제에 더하여 저자는 심리학적 가정의 오류도 심각하다고 지적합니다. 잘못된 심리학적 가정을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가정을 바탕으로 세워진 심리학적 가설 가운데 잘못되었다는 증거들이 이미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신처럼 신봉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고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잠재의식을 이용한 광고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있습니다. 광고에서의 잠재의식효과(Subliminal effect)는 영화 필름의 프레임에 감추어 둔 영상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커트를 넣어둔 영화를 본 관객들은 갈증을 느끼게 되고 결국 탄산음료를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1951년 미국의 마케팅전문가 제임스 비카리가 주장한 것이지만 이후에 근거 없는 주장이었다는 것을 실토하였다고 합니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위기상황 스트레스해소법(Critical Incident Stress Debriefing; CISD)의 효과 역시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났던 테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받은 CSID치료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지 않은 기억을 자꾸만 건드리는 것보다 그대로 덮어두는 것이 최선책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분들을 위해서라도 참고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근거가 확실한 것인지 분명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믿어왔던 ‘두뇌 운동으로 치매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 역시 누군가에 의하여 제기된 다음에 반복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옳은 것으로 믿게 된 일종의 심리학적 미신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은 유연한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요소가 우리의 정신에 반향을 일으킨다는 점, 그리고 이들의 인과관계가 불안정하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정신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용어라는 점 등입니다. 그 결과 준비된 허구와 현실을 혼동하기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심리학의 연구성과를 이해할 때 다음과 같은 점에 주의할 것을 당부합니다. 1. 모든 이론은 임시적이다, 2. 통계적 연관성을 원인과 효과로 혼동하지 말자, 3. 특정 집단에서 얻은 결과를 너무 다급하게 일반화하지 말자, 4. 개개의 경우는 개개의 경우로 놓아두자, 5. 혁신적인 주장은 예외적인 것일 뿐 일반화할 수 없다.(158-159쪽)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흔히 다음과 같은 속임수를 쓸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하라고 합니다. 1. 심리학자들은 때때로 근거도 없이 주장을 펼친다, 2. 상식은 이론 뻥튀기의 발판으로 사용된다, 3. 일단 이론에 이름을 붙여 있어 보이게 만든다, 4. 깊은 인상을 남기는 그림과 비유를 이용한다, 5. ‘무의식’을 이론 창출의 노다지로 활용한다, 6. 마치 불편한 진실이나 파장을 일으킬 만한 사실을 품은 척 지식을 포장한다.(170-173쪽)

 

저자는 심리학이 산업이라고 할 만큼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배경에는 대중으로 하여금 불안한 심리상태에 들도록 만드는 심리학의 교묘한 술수가 있었다고 비판합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사람들이 공연히 자신을 남과 비교하게 만들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삶을 추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좋으면 그것으로 좋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심리학에 휘둘리지 않은 요체가 될 것 같습니다.

 

혹자는 <심리학에 속지마라> 역시 심리학교본이 아니냐는 의문을 내놓기도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 이 책은 심리학 고발서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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