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지음, 박채연 옮김 / 부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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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중남미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남미 국가에 관한 책을 읽게 된 것도 묘한 인연 같습니다. 남미국가들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먼 지구 반대편에 있기 때문인지 지금까지는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브라질에서 월드컵대회가 열렸고, 금년에는 역시 브라질에서 올림픽경기가 열리는 등 다양한 이유로 남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하는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우루과이의 대통령을 지낸 호세 무히카의 독특한 삶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루과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그리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특히 농업부문의 개방에 민감한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우루과이 라운드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 같습니다. 국제교역에서의 시장개방을 확대하고, 농산물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의 새로운 세계교역질서를 마련하기 위하여 1986년 9월 우루과이의 푼타델에스테에서 시작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각료회담이 오랜 진통 끝에 1993년 12월 타결을 보게 되면서 일반적으로 ‘우루과이 라운드’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사이에 끼어 남대서양의 해안을 밑변으로 하는 삼각형 모양의 우루과이는 약 17만㎢(한반도의 0.798배)의 면적에 334만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로 수도는 대서양 해안에 있는 몬테비데오입니다. 저의 남미여행에서는 우루과이를 직접 방문하지는 못했고, 다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과수로 가면서 라플라타강 건너편이 우루과이라는 설명을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도시 게릴라 활동의 경력을 가진 극단적인 행동주의자가 일국의 대통령을 지낼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우루과이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1536년 정복을 시작한 스페인 사람들은 파라과이의 아순시온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이 지역을 통치했을 뿐 우루과이 지역은 1680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정착할 때까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뒤 스페인 사람들이 포르투갈 사람들을 몰아내고 1726년에 몬테비데오를 세웠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우루과이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데, 이 지역에는 원주민들이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럽의 이주민들과 접촉이 거의 없었고, 19세기 중반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부터 이주해온 백인들로 우루과이는 인종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백인국가가 된 것입니다.


파라과이가 181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부에노스아이레스와도 결별한 것과는 달리 우루과이는 1816년 포르투갈계인 브라질제국의 침입으로 합병되었고, 1828년까지 시스블라티네 지방으로 존재하다가 1830년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완충국가로서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립후 우루과이는 까우디오(caudillo)라고 하는 정치 엘리트들이 블랑꼬스(Blancos, 보수주의, 백색당)와 꼴로라도스(Colorados, 자유주의, 홍색당)라는 전통적인 두 정당에 참여하여 공동참여와 타협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이끌어왔습니다.


20세기 초반 집권한 홍색당은 공익회사와 외국은행을 국유화하고, 연금법을 제정하였으며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으며, 수출과 수입대체를 통하여 꾸준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까지 확장일로에 있던 수출과 극심한 보호무역에 기댄 산업화에 지나치게 의존하였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수출이 부진해지면서 시작된 외환부족으로 국가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서 20세기 중반 백색당이 집권에 성공하게 되지만, 이에 대한 반동으로 자본주의 체제 철폐를 내세운 뚜빠마로 민족해방운동이라는 도시 게릴라집단이 등장하게 됩니다. 중산층 직장인, 젊은 지식인, 학생들로 구성된 뚜빠마로는 폭력과 살인, 약탈을 저질렀으며 외국의 외교관을 납치하거나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군부 요인까지 살해하기에 이르면서 결국은 군부가 나서서 무장 게릴라들을 완벽하게 소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장게릴라와 무관한 사람들까지도 피해를 입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뚜빠마로의 극단적인 행동주의는 결국 군부독재를 불러와 1980년대 초반까지 군부가 정권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뚜빠마로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부패척결을 내세운 군부는 초기 경제상황이 호전되면서 민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경제상황이 다시 악화되면서 민주주의로의 회귀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1984년 선거에서 홍색당의 훌리오 마리아 산귀네따가 대통령이 당선되어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게 되었습니다(잰 니퍼스 블랙 편저, 라틴아메리카 문제와 전망 801-835, 이담출판사, 2012년; http://blog.joins.com/yang412/13813295)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의 삶을 조명한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La Revolución Tranquila>라는 제목을 붙이기는 했습니다만, 그의 삶은 결코 조용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열네 살에 정치에 뛰어든 것도 범상치 않은데다가 젊은 시절 앞서 소개한 뚜빠마로의 지도자로 활동한 것이나,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몬테비데오 근교에 있는 농장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퇴임한 대통령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재임시절에 감추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이 불거졌거나, 무언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무히카 대통령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소탈하며 무소유의 삶을 주장하는 그의 철학이 세인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언론은 그를 잊지 않고 챙기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세인들의 관심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가 스타의식에 사로 잡혀 있거나 대통령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남미국가의 경우는 선거에서 져 물러났던 대통령이 다시 권력을 잡는데 성공하는 사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을 쓴 마우리시오 라부페티는 우루과이의 기자이며 정치 칼럼니스트입니다. 다양한 해외매체와 무히카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무히카와 접촉할 기회가 많았던 것이 이 책을 쓰는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자는 무히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파악하여 부각시키고 있습니다만, 무히카의 삶의 궤적 가운데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점까지도 잘 포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전기를 기록하는데 있어 객관적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저자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도시 게릴라 출신 무히카 대통령에 대한 용비어천가처럼 읽히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비판적 시각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부작용을 가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자는 무히카가 평화주의자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뚜빠마로스 경력이 지워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루과이의 도시게릴라운동이 저지른 잘못은 군부의 정치개입을 유발시킨 것이 가장 큰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활동과정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입니다. 게릴라요원을 고발한 사람이나, 정치적 표적을 제거하기 위한 살인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투쟁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까지 살해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민간인의 죽음에 대하여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결정된 일이었는지 나는 모르겠다’라면서 책임을 회피한 무히카의 변명은 한나라의 지도자감이라고 보기에는 도덕적이지 못하다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활동비를 확보하기 위하여 은행 등 있는 자들을 약탈한 것 역시 윤리적이지 못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불법단체에서 지도자 역할을 한 사람이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정말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은 절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일입니다. 만약에 뚜빠마로의 행적을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한다면 군부가 독재를 펴는 동안 저지른 잘못을 추궁할 논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결혼 허용이나 임신중절수술 그리고 마리화나의 재배유통을 합법화한 것을 대통령 재임 중 이룩한 특별한 성과라고 내세울만한 것인가 싶습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없는 것으로 충분한 일을 굳이 결혼까지 허용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것을 라틴아메리카지역의 고질적인 문제인 마약의 밀거래를 분쇄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처라고 칭송하는 것도 과연 옳은가 싶습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우리네 옛말처럼 합법화된 마리화나를 사용하여 얻은 일탈적인 쾌감을 맞본 사람들이 쾌감의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마약을 찾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던가, 시리아내전의 소용돌이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받아들이는 결정, 나아가 콜롬비아 게릴라와 정부 사이의 협상을 중계하겠다고 나서는 등의 국제정치에 나선 것은 2013년부터 노벨평화상의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시작된 두드러진 행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그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실제로 저자 역시 무히카가 노벨평화상에 야망을 가지고 있음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성과 이외에 내정 운용에 있어서 무히카의 업적은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부정책은 민간부문이나 정부부문의 노동자들의 귀족적 행태로 인하여 개혁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좌파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노동부문이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었지만, ‘좋지만 불확실한 변화보다는, 나쁘지만 잘 아는 현상유지가 더 낫다’는 해괴한 논리에 맞설 대책을 내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신중하지 못한 말로 벌어지는 구설수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무히카 전 대통령은 전형적인 포퓰리스트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퇴한 대통령 무히카가 즐기는 소탈한 삶이나 그가 주장해온 삶에 관한 철학은 분명 배울 점이 있습니다. 2013년 9월 유엔총회에서 무히카 대통령이 한 연설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는 비물질적인 오래된 신들을 희생시키고, ‘시장 신’을 사원에 모시고 있다. ‘시장 신’은 우리에게 경제, 정치, 습관, 삶을 설계해 주고, 할부금과 카드로 외적인 행복까지 융자해준다. 우리는 소비하고 또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끼고, 그렇게 못할 경우 좌절과 가난을 짊어지고 급기야 스스로를 소외시킨다.(51쪽)” 소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가 경계하는 소비주의는 소비자체 보다는 낭비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필요한 것이 많아서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으면 삶이 여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사실은 사회의 문제는 남의 삶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불어넣는 바람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더 갈증을 느끼게 되고, 사회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는 것 같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서도 땀 흘린 사람들이 쌓은 것들을 부러워하고 뺏을 궁리를 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히카의 절제하고 자족하는 삶은 분명 배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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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
로버트 고든 지음, 유지연 옮김 / 펜타그램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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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외국여행이 일반화되었습니다. 해외여행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많다보니 여행관련 서적도 넘쳐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SNS에서도 만날 법한 신변잡기 수준의 값싼, 천편일률적인 감상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아서 금방 식상해지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소개하는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나 처음 나서는 사람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류학(anthropology)이라는 분야는 인간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시간을 따라서 종으로는 인간 역사의 전시대를 통하고, 횡으로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에 관한 일체의 현상을 연구대상으로 합니다. 인류학은 다양한 영역으로 구분되고 있지만, 크게는 인간의 체질현상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체질인류학(體質人類學)과, 인간의 사회문화현상들을 인문·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문화인류학(文化人類學)으로 나눕니다.

 

9세기 중엽 서구에서 시작한 인류학은 서구중심의 비교해석이 중심을 이룬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에 따른 다양한 인간현상들의 우열을 가리는 절대적인 기준은 있을 수 없고 상대적인 것으로 보는 상대적 관점이 확립되었습니다. 인류학의 기본이 되는 연구방법은 현지조사입니다. 연구대상이 되는 지역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관찰하고 질문하며 필요한 기록문서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행은 인류학 연구의 시발점이 되는 셈입니다.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을 쓴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은 미국 버몬트 대학교(The University of Vermont) 인류학과 교수이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 스테이트 대학교(The University of The Free State)의 연구원으로,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레소토,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리고 파푸아 뉴기니 등지의 현지 조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는 인류학적 연구를 위한 해외여행을 통하여 체득한 점들을 바탕으로 일반 사람들이 낯선 곳을 여행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였습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된 이 책의 제1부에서 저자는 메타여행적 특징들을 통하여 여행자들이 빠질 수 있는 잘못된 관점을 인류학적 시각으로 교정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제2부는 현지인들과 유대 관계를 설정하고 구축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방법들을 정리하였는데, 해외여행에서 기억해야 할 실용적인 조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해외여행을 통하여 그곳 사람들의 관습과 문화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보다 생산적인 성과를 위한 계획을 짜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먼저 1부에 담긴 내용을 요약해보면, 1장에서는 인류학적 관점과 인류학자들이 현지조사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해외여행을 통하여 무언가를 배우려한다면 고려해볼 점들을 정리했습니다. 2장에서는 해외여행에 나서는 동기를 살펴보는데, 의외로 많은 해외여행자들에서 동기가 분명치 않다고 합니다. 2장이 자기성찰적 관점에서 해외여행을 보았다고 하면, 3장에서는 현지 사회가 여행객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살펴봅니다. 아마도 동상이몽일 가능성이 높은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4장에서는 해외여행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법과 거주국에서는 볼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설명합니다. 5장에서는 여행안내서에 담긴 정보를 이해하는 방법과 실제 상황과의 차이도 설명합니다.

 

2부에서는 실용적인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6장에서는 여행 준비 목록을 짤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담았고, 7장에서는 여행에 꼭 가지고 가야 할 필수품이 무엇인지 소개합니다. 8장에서는 현지인과의 소통문제를 다룹니다. 현지인들과의 대화는 인류학 연구의 핵심이 되는 현지조사의 진수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런 활동을 둘러싼 쟁점들을 논합니다. 또한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정보를 모으고 학습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도 이야기합니다. 9장에서는 여행객들이 간과하기 쉬운 안전과 건강문제입니다. 보통 여행안내서에서는 볼 수 없는 개인위생과 배변에 관한 이야기까지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10장에서는 글쓰기입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느꼈노라!’에서 끝난다면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다녀온 해외여행이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퇴색될 것입니다. 여행의 완성은 글쓰기입니다. 해외여행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성찰함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심화시키는데 글쓰기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좋은 이야기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저자의 몇 가지 조언은 특히 주목할만 합니다.

 

 

<인류학자처럼 여행하기>를 읽으면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점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저자는 ‘문화적 상대주의’ 개념이야말로 인류학이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합니다. 앞서 잠깐 언급하였습니다만, 서구중심으로 인류학이 태동할 무렵에는 서구중심적으로 다른 문화를 해석하는 경향으로 편견과 차별이 뚜렷했습니다.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 슬픈 열대; http://blog.joins.com/yang412/13245374>

 

에서 레비-스토로스는 브라질 지역의 원주민과 조우한 서구사람들이 끊임없이 그 사회를 파괴하는 침략성을 보여 온 데 대하여 분노하고, 자신이 서구문명의 침입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사라져 버린 원주민 문명, 즉 ‘사라져버린 실체’를 탐구하고 있는 민족학자라는 역설적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한 비통함을 토로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해외여행에 나서는 이유는 대체적으로 다른 지역을 배우기 위하여, 혹은 자아발견을 위해서라고 합니다만, 여행동기가 분명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혹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새로운 상징을 수집하기 위한 키치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여행일수록 현지에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현지인들에게 여행객은 보호막이 없는 먹잇감으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아프리카 잔지바르의 관광지의 분위기를 소개합니다. 이곳의 여행안내인 가운데 거머리라는 의미로 부르는 파파시(papasi)들은 ‘금방 떨어질 것 같은 잘 익은 과일’이라는 의미의 마도도(madodo)라고 부르는 젊은 여성 여행객을 목표로 접근하여 성관계를 맺어 궁극적으로는 아프리카를 탈출하는 기회로 삼으려한다는 것입니다.

 

변비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처럼 해외여행에서의 저자의 관심대상은 거칠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해외여행에서의 성적 모험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만, 대체적으로 여행객과 현지인 사이의 관점의 차이가 존재할 수도 있으며, 그러한 모험을 시도하는 가운데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하여도 적시하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에서 즐긴 모험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후기에서는 자신이 당한 위험하고도 치욕스러운 부분을 읽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여행기를 읽은 사람들은 그보다 더한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가 커다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좀 더 분별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은 절대적으로 기억해야 할 항목인 것입니다. ‘여행은 무모한 행동을 부추기는 것 같다’라고 전제한 저자는 ‘자기 나라 어디에서도 후미진 골목을 혼자 걷거나, 교회에 갈 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거나, 모르는 사람 차에 선뜻 올라타지 않듯이 해외에서도 그런 짓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277쪽)’라고 경고합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참고하는 다양한 안내서에 관하여, 저자는 왜곡된 세계관이 넘쳐나고 있다고 잘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여행안내서는 정보제공, 홍보, 유인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고는 하지만, 행선지의 이미지를 매력적이고 멋진 장소로 구축하고, 여행희망자에게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두 가지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국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곳으로 여행을 떠날 마음이 생기도록 유혹합니다. 여행안내서는 그곳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보다는 화려한 볼거리와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부분의ㅡ 여행자들은 여행안내서에 적힌 내용을 자신의 여행기에 복사하여 확산시키는 역할에 머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행에 앞서 많은 것들을 꼼꼼하게 챙겨야 하겠지만, 저자는 건강문제를 제일 먼저 짚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한 달 이상 장기 체류하는 경우 떠나기 전에 건강 및 치과 검진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검진 결과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검진은 가급적 출발 몇 주 전 아니면 몇 달 전에 받는 게 좋다.(164쪽)” 젊었을 적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던 항목입니다만, 얼마 전부터는 신경이 가장 많이 쓰이는 점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하다가 병원에 가야할 정도로 아프게 되면 자신의 여행을 망칠 뿐 아니라 일행에게도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해외여행은 분명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에 기획단계에서부터 일지를 쓰기 시작할 것을 권유합니다. 준비과정을 세세하게 적는 것은 물론 여행의 동기, 기대하는 바, 예상되는 두려움 등에 대하여도 적는다면 자신을 성찰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은퇴한 후에 세계를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블로그에 올려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모은 린 마틴 부부처럼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기여하고, 추종자들의 숭배를 받기도 합니다.(린 마틴 지음,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글담 펴냄, 2014년; http://blog.yes24.com/document/790618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블로그 혹은 웹로그의 형식으로 쓰는 개인기행문과 여행일기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인터넷에서 나타나고 있는 탈억제효과(외부 요인에 의하여 억제력을 잃는 현상)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올린 글은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에게 공개됩니다. 글쓴이의 견해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지나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2008년 광우병 파동에서 겪은 바 있습니다만, 도를 넘어서는 반응을 보인 익명의 독자들에게 별도의 대응을 하지 않은 저와는 달리 최근에는 고소고발과 같은 적극적 대응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우려하는 또 다른 점은 SNS에 올리는 글은 보통 깊이 생각하지 않고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특히 여행 중에는 사려 깊지 못한 표현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으로 끝났던 문건이 이제는 사이버세계에 영구히 남게 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일신상의 심각한 피해를 부르는 화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 글쓰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행경험을 글로 쓰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 과시와 출세를 위하여, 이해나 소통에 기여하고자, 혹은 단순한 즐거움을 위하여 등 다양한 이유로 글쓰기를 합니다. 여행경험을 글로 옮길 때는 읽는 이를 즐겁게 하고, 생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이야기를 풀어내야 합니다. ‘이야기를 구성해가는 일은 여기저기를 어수선하게 땜질하는 것과 같다(294쪽)’라고 저자는 말하면서, 머릿속에 있는 초안을 키보드로 바로 옮긴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합니다. 저자 자신은 순서도를 만들어두면 이야기 조각들을 전체 맥락사이에서 연관성과 관계를 파악하는데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순서도에 따라서 이야기들을 다시 매만져서 이야기의 논리가 유연하게 풀려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옮긴이는 특히 디지털 기기와 각종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즉각적 소통이 가능해진 SNS시대에 바람직한 여행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이 책의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해외여행에서뿐만 아니라 자기 삶의 모든 순강을 새로운 방식의 여행으로, 또 그런 여행을 창조적인 혁명적 순간으로 바꾸어 보기를 기대한다고 말합니

책이읽기,로버트 고던 지음,유한일 옮김, 폐던 류학자처럼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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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6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담은 아직은 한번도 써보지 않았네요.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처럼 2016-02-23 01:27   좋아요 0 | URL
훗날 여행을 돌아보는데도 여행기는 많은 도움을 준답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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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랍 28일 한일 양국의 오랜 현안이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상이 타결되었습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책임을 질 일이 없다고 발뺌을 해왔던 것인데, 이날 일본의 기시다 외상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밝혔으며,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라고 해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연합뉴스 2015년 12월 28일자 기사, “한일 ‘軍위안부 문제’ 최종타결…일본 ‘책임통감’(2보)”]

 

군위안부는 과거에 정신대(挺身隊)라고 불렀는데, 노동력을 착취당한 근로정신대와 성적 착취를 당한 종군위안부를 포괄하던 명칭입니다. 일제는 여성을 전쟁에 징용하기 위하여 ‘여자 근로동원 촉진에 관한 건’을 결정하고 ‘여자근로정신대’를 편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일합병 이후 조선의 여성을 일본으로 팔아넘겨 매춘행위를 시키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1932년 상하이 사변(上海事變) 무렵 일본군이 민간여성을 강간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오카무라 야스지(岡村) 중장은 나가사키(長崎)의 지사에게 군대위안부 유치를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민간의 원성을 잠재울 뿐만 아니라 성병의 위험을 방지하는 효과를 노린 셈입니다. 나아가 일본군부는 유교적 윤리교육이 이어온 조선의 여성들에는 성병의 위험이 없을 것이라고 보아 미혼의 조선 여성이 종군위안부로 적절하다는 판단을 하였다고 합니다.

 

일본군이 개입하여 치밀하게 추진되었다는 증거로 인용되는 ‘제2차 특별요원 진출에 관한 조회(1942년 5월 발송)’에 따르면 29~35명의 병사 당 1명의 위안부를 두는 것으로 하고 지역별로 할당하여 동원토록 했다는 것입니다. 태평양전쟁기간 중 일본군은 미얀마, 트랙 섬, 필리핀, 테니안 섬, 마리아 군도, 수마트라, 셀레베스, 인도네시아, 오키나와(沖縄) 등지에서 위안소를 운영하였고, 동원된 정신대의 전체규모는 17만~2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조선 여성이 80% 정도를 차지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다음백과사전, ‘정신대’편 참조;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9j1238b)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먼저 짚어본 것은 2010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작품은 페루 육군이 운영하였던 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아마존 수비대원들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하여 페루 군부가 조직했던 ‘특별봉사대’라는 소설의 이야기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5쪽)”라고 전제하고, “1958년과 1962년에 아마존 지역을 방문하면서 너무나 확장되고 왜곡된 나머지 잔혹하고 처참한 우스개 꼴이 되고 만 특별봉사대의 존재에 관해 알게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주 진지한 어조로 사건을 말하려다가 이 이야기가 익살과 농담과 웃음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1956년 8월 창설된 특별봉사대가 1958년 12월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 1959년 폐지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군이 군위안소를 운영하였다는 사실을 페루 군부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착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본이 점령지의 여성을 강제로 동원하였던 것과는 달리 페루 군부가 직업여성을 활용한 시설을 운용한 것도 역시 일본에서 배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일본은 청일전쟁 때에도 일본여성으로 구성된 위안소를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인 위안부는 선불을 받았으며 돈을 갚으면 그만 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페루 리마에 있는 육군병참사령부에서는 아마존 지역의 수비대가 저지르는 끔찍한 만행을 중단시키기 위한 특별대책을 수립하고 그 책임자로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를 이키토스에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판토하대위를 책임자로 선정한 것은 ‘천부적인 조직력, 정확하고 엄밀한 질서 의식, 행정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효율적이고 진정한 감화력으로 연대 행정을 이끌었다’라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전체를 통하여 판토하대위에 대한 이런 평가가 아주 정확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페루 육군의 고민을 해결할 적임자였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아마존 수비대가 일으키고 있는 문제는 주둔 지역의 민간 여성들을 겁탈하는 일이 잦다는 것입니다. 1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43명의 여성이 임신을 할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늠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던 모양입니다. 당연히 지역주민의 분노가 끓어올랐을 터이나 지역 군부대의 조처라는 것이 사건을 저지른 병사와 피해를 입은 여성을 강제로 결혼시키는 정도였던 것입니다. 물론 처벌도 하고 경고도 했다고는 하지만 그 수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사실 군부대를 운용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엄정한 군기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특히 지역민과 마찰을 빚는 일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군기를 엄정하게 하는데 있어 지위의 고하를 따지지 않은 사례로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를 들기도 합니다. 보리가 한참 자랄 무렵 허도로 출정하게 된 조조는 “농작물을 해치는 자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목을 베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들의 행패로 백성들이 죽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조조였고, 민심을 잃으면 전투에서 승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리밭을 따라 행군을 하던 중, 조조의 말이 갑자기 날아오른 꿩에 놀라 날뛰면서 밭으로 뛰어들어 보리를 밟았습니다. 바로 칼을 뽑은 조조는 “내 스스로 목을 베어 군령의 준엄함을 보이겠노라!”면서 자신의 목을 찌르려고 하였습니다. 곁에 있던 참모들이 놀란 가운데 곽가가 “춘추의 법은 귀인에게는 해당치 않는다”라며 설득하였고, 조조는 못이기는 체하면서 자신의 목 대신 상투를 장대에 걸었습니다. 이에 곽가는 “승상이 보리밭을 침범해 마땅히 참수해야 하지만 특별히 머리털을 자르는 것으로 대신하니 그대들은 더욱 조심하라!”라고 해서 병사들로 하여금 군령의 엄중함을 깨닫게 했다는 것이며, 백성들은 조조를 우러러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페루의 육군도 군기와 군령의 엄정함을 보였더라면 병사들이 일탈된 행동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성적 욕망을 해결해주기 위하여 ‘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줄여서 수국초특)’를 창설키로 했던 것입니다. 판토하대위는 군인신분을 감추고 마치 민간이 운영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창녀를 고용하여 아마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의 요청에 따라서 공급하기 시작합니다. 이키토스에는 이미 성매매를 업으로 삼는 업소나 개인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세탁부라는 이름의 여성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수국초특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밀림에 흩어져 있는 부대에 수국초특 대원들을 보내기 위해서는 수송수단이 필요했고, 해군에서는 병원선으로 사용되던 군함 파치테아를, 그리고 공군에서는 카탈리나 수상비행기 ‘레케나’호를 제공하여 수국초특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하지만, 이름을 각각 ‘이브’와 ‘델릴라’로 바꾸어 배와 비행기가 군소속이라는 사실을 감추었습니다. 결국 수국초특은 페루 육군의 병참사령부가 창녀들을 모아 운영한 군위안부 조직이었던 것입니다.

 

1956년 8월 창설된 수국초특은 아마존 수비대의 열렬한 반응과 병사들이 민간 여성을 대상으로 일어나던 겁탈사건이 사라지면서 규모를 확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수국초특이 군부대만을 지원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오지의 일반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오지의 주민 몇 사람이 수국초특 소속의 여성을 태우고 수비대로 향하는 배를 납치하고 대원들을 겁탈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상황을 받고 출동한 군부대와 교전하는 과정에서 수국초특 소속의 여성 미스 브라질- 판토하대위의 아내가 남편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이키토스를 떠난 뒤에 연인관계로 발전하였던 것입니다-이 수비대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판토하대위는 휘하의 장병을 차출하여 미스 브라질의 장례식에서 의전을 갖추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도 그동안 감추었던 신분을 공개하여 육군 대위의 정복을 입고서 추도사를 낭독하였습니다. 결국 비밀리에 운영하던 수국초특이 군 조직임이 드러나면서 페루 군부가 곤경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비밀리라고는 하지만 외면적으로는 민간사업체가 군부와 독점적 사업을 해온 것으로 위장되어있던 수국초특이 사실은 군이 운영하던 시설이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판토하대위가 그와 같은 선택을 한 것은 수국초특이라는 조직이 결국은 군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미스 브라질은 군인에 걸맞는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일종의 순국이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군 고위층은 기밀을 유지해야 할 사안을 나서서 공개한 판토하대위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대위에게 전역을 종용하지만, 뼈 속까지 군인인 판토하대위는 어떠한 처분을 받더라도 전역은 불가하다고 버티게 됩니다. 생각 같아서는 미스 브라질이 교전 중에 아군의 총탄에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판토하대위는 군의 위상을 고려하여 이 또한 묻기로 한 것 같습니다. 결국 판토하대위는 한직이라고 할 수 있는 티티카카호 부근에 있는 포마타 수비대로 전출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됩니다. 판토하대위로서는 다행스러운 처분인 셈이고, 더욱 다행인 것은 기밀유지를 위하여 가족들에게까지 맡게 된 업무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은 까닭에 헤어졌던 아내와 포마타 수비대에서 재회하게 된 것입니다.

 

판토하대위가 창설한 수국초특이 아마존 수비대의 뜨거운 호응을 받아가며 조직을 늘려 가는데, 이를 먹잇감으로 여기고 달려드는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역겨우면서도 이야기에 양념을 더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광대한 아마존지역의 특성에 따라 인기를 끌고 있는 라디오 아마존의 ‘신치의 소리’를 진행하는 헤르만 라우다노 로살레스입니다. 일명 신치라고 부르는 로살레스는 판토하대위를 찾아와 사업을 보호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요구합니다. 첫 만남에서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수국초특이 군부대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매춘사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방송이 나가면서 대위는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하고, 주머니를 털어 신치가 요구하는 돈을 제공합니다.

 

수국초특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판토하대위를 곤경에 빠트린 것은 외국인 프란치스코 형제가 설립한 ‘방주의 형제단’이라는 신흥종교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동물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흘린 피를 받아 몸에 바르는 행위로 신도들을 끌어 모으다가 나중에는 어린 아이를 그리고 어른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탈적인 행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죽은 이를 성자로 숭배하도록 이끄는 사이비 종교집단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라틴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천주교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과 결합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은 지역적 특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읽으면서 저는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금방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오랫동안 화제가 되면서도 이 작품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페루의 수국초특은 군이 개입하여 설치 운영하고는 있다고 하지만 성매매여성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았기 때문일까요?

 

이 작품의 독특한 구성은 다양한 장면들을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은 가운데 섞여 있는 점입니다. 장면의 전환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이야기의 맥락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겉다르고 속다른 페루 군부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군기문제를 엉뚱한 방향에서 해결해보겠다는 발상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나마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오랫동안 화제가 된 탓인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제 자신이 못마땅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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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행렬
이샘물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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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SNS의 분위기를 몰아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만, 우리 사회의 현안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SNS에서는 이주민들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주민들이 간여된 다양한 사건사고가 늘어나면서 생겨난 불안심리가 작용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활동한 진료봉사동아리가 서울 근교에서 조선족 동포들을 대상으로 주말진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거리풍경은 마치 중국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만큼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조선족 동포 이외에도 동남아 각지에서 다양한 이유로 우리나라를 찾아 생활하고 있는 이주민의 숫자는 2014년 말 기준으로 180만명을 육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이주민들 사이에서, 혹은 이주민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사건들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주민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늘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위 3D산업의 일자리를 기피하는 경향이 늘어가면서 산업현장의 요구에 따라서 부족한 인력을 외국으로부터 들여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더불어 노동 강도가 높은 농촌의 총각이 결혼기피 상대로 꼽히면서 이들의 짝을 해외에서 구하게 되면서 우리사회에 이주민들이 급격하게 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주 배타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어쩌면 이주민 수용정책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엄격하게 적용되어 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정책적으로는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탓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고민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반도에 존재했던 고대국가들의 건국신화를 보면 부족 외의 집단과 통합되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가락국의 건국설화에 등장하는 허황후는 인도계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건국신화는 그렇다고 쳐도 고구려의 강역에는 여진과 말갈이 포함되었으며, 고려 때 원나라의 침입에 이은 영향으로 몽고계의 유입이 있었고, 조선조만 해도 여진족이 귀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선조들은 외국인에 대하여 그리 배타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국제결혼을 통하여 우리나라로 이주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가정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러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처우개선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필자 역시 이주민정책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주민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생기고 있는 사건사고의 반작용으로 일고 있는 부정적인 시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에도 관심을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우리 사회의 주요한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은 이주민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동아일보의 이샘물기자가 이주민에 대한 다양한 분야를 정리한 <이주 행렬>은 맞춤한 시기에 나왔다고 하겠습니다. <기자로 말할 것; http://blog.joins.com/yang412/13815634>이라는 책을 통하여 만나본 이샘물기자는 비롯 입사 5년차 기자이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젊은이였습니다. 입사 후 정책 사회부에서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를 출입하며 복지 분야를 담당하면서 이주민과 다문화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내쳐서 이 분야에 관심을 둔 학자, 공무원, 시민단체 활동가, 언론인 등이 모인 ‘이민·다문화포럼’의 회원으로 참여하여, 공부하고 토론하며 ‘다문화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활동파이기도 합니다. <이주 행렬>은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주 행렬>에서는 이주가 발생하는 기전과 나라마다 다른 이주민에 대한 시각 차이가 왜 생기는지 등에 관하여 윤리적, 정치적, 경제적 관점 등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주민 혹은 이주자의 정의를 살펴보면 UN 통계국에서는 자신의 거주국이 아닌 국가에서 최소한 3개월 이상 머문 사람을 이주자라고 규정하는데, 3개월 이상 1년 미만은 단기 이주자, 1년 이상 머물러 새로운 국가가 주요 거주국이 된 경우에는 장기 이주자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보니 저 역시 2년 가까이 미국에 머물렀던 적이 있으니 한 때는 장기 이주자였던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당시 제가 이주자로서 어떤 애환을 겪었는지 되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이주와 노동’입니다. 모든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이주민에 대한 국경통제가 과연 타당한 가를 논합니다. 물론 모든 이주민들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비교적 쉽게 이주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미국 조지타운대학의 제이슨 브레넌 교수는 ‘가진 것은 없지만 더 많은 기회가 있는 선진국에 가서 열심히 일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라고 지적합니다. 누구도 출생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우연히 선진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즐기게 된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의 앞길을 막는 것은 부도덕한 행태라는 것입니다.

 

자국 안에도 곤궁한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외국인까지 배려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미국의 조지메이슨대학의 브라이언 캐플란교수의 설명을 인용합니다. 즉, 선진국의 저소득층은 제3세계의 빈곤층에 비하면 생활수준이 훨씬 높고, 자선단체의 도움을 받을 길도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이주연구소의 하인드 하스박사는 국제적인 이주경향에 대한 다른 시각을 설명합니다. 맨손인 사람들은 이주를 꿈꿀 수조차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보다는, 더 발전된 나라를 보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면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주는 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내국인들이 이주자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는, 일자리를 놓고 이주자와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과 그럼으로써 임금이 하락되는 이중적인 피해를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는 일자리 상실이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있다면서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가 많아지면 일자리가 더 많아진다는 역설적인 해명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주민은 높은 임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원주민의 임금을 높일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두 번째 주제는 ‘이주와 복지’입니다. 이주민의 유입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유입되는 이주민에게도 복지 서비스가 제공되려면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하므로 세금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복지를 제한한다는 것도 적절치 않은 노릇입니다. 따라서 이주자에 대한 복지문제를 잘 설계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사회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편 저자는 이주자 역시 벌어들이는 만큼 세부담을 하고 있다고 반대논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주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역사가 일천한 까닭에 제대로 된 이주자정책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결혼이주자와 그 자녀를 대상으로 한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이 먼저 시행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주민들에 대한 지원범위가 일반 국민들이 누리는 복지의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어서 부정적 여론이 조성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세 번째 주제는 ‘이주와 국가경쟁력’입니다. 고급 기술을 가진 이주자는 어느 국가에서도 환영을 받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고급 기술을 가진 사람이 빠져나가는 ‘두뇌유출’을 부정적 시각에서 바라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선진국에서 취업의 기회를 얻은 이주자들은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를 가족들을 위하여 고국으로 송금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두뇌유출과 국부의 창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을 습득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본국의 성장전망이 높아지면 이를 활용하기 위하여 귀국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저출산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경우 이주정책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주자의 숫자와 출산율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은 형편입니다. 사실 젊은 층이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을 빠르게 개선하지 않는다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경고의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정인구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주정책 카드를 활용하는 것보다는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네 번째 주제는 ‘이주와 정치’입니다. 이주자가 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기 마련입니다. 중동의 난민사태에도 불구하고 유럽사회가 이를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주민의 증가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입니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의 무력충돌은 물론 이주민들이 정부를 대상으로 다양한 요구를 쏟아냄으로써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이주민에 대한 정책은 때로 국가 사이의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 사이의 긴장관계가 높아지기라도 하면 국가안보 차원에서 이주민 정책이 다루어지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나치 독일이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지키기 위하여 유대인을 비롯하여 열등인종으로 분류한 흑인, 집시 등은 물론 공산주의자, 장애인, 동성애자 등을 포함하여 600여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미국 역시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내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 12만 명을 12개의 수용소에 격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미국 정부는 일본이 적국이라는 이유로 이미 미국 시민권을 가졌고, 심지어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인들까지도 격리조치를 취하였다는 것입니다.

 

문화측면에서도 이주자가 많아지면 출신국 별로 집단을 이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차이나타운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강남 서래마을에는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이촌동에는 일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게 되면 그 지역에서는 한국 고유의 문화는 사라지는 반면 이국의 문화가 자리를 잡게 될 것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주민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우리 고유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주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문화도 고립된 상태에서는 오히려 퇴보하고 결국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하여 새로운 형태로 발전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반도는 아시아대륙의 끝에 위치하여 대륙의 문명이 모여드는 용광로의 역할을 했습니다. 다양한 문명이 흘러들어 새롭게 해석되고 발전적 형태로 재창조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문화를 인정하고 이주민 고유의 문화를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주거국 문화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통합의 묘를 살리는 정책도 필요할 것입니다.

 

저자는 이미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미래는 이주민에 대한 바른 정책이 수립되어 실행되는데 달려 있다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주민이나 원주민이 동등하게 대우를 받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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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호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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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해를 넘겼으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도 2년 전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사건 이후로 안전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높았지만, 크고 작은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사건사고에 대한 기억조차 그리 오래 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안전에 대하여 둔감해 보이는 우리사회의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궁금하던 차에 만나게 된 <안전경영학카페>는 이미 우리의 기억에서 흐려진 안전관련 사고가 왜 일어났었고, 어떤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다시 짚어보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는 누구나 안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모든 사고는 예방이 가능하며 사고로부터 예외인 사람은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특히 기업의 입장에서 현상적으로 드러난 안전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찾아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현장관리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기업의 입장에서 경영적, 기술적, 구조적 그리고 문화적 측면에서 안전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접근하였습니다.

 

사실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을 수습하고 생산활동을 재개하기 위하여 투입되어야 할 자원의 규모는 해당 사업을 통하여 얻은 이익을 상회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따라서 안전문제는 회사경영에서 핵심요소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전에 투입되어야 하는 자원을 불필요하거나 심지어는 낭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업하시는 분들은 안전에 관한 기준을 규제조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안전의 목표는 제로를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 즉 기준 조차 마련되지 않은 분야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사고는 그러한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형사고의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유사한 형태의 사고가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고는 기본이 무시된 곳에서 발생한다, 2. 사고의 영향이 광범위해졌다, 3. 사고는 정상작업보다 비정상작업 시 발생한다, 4.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하여 배우는 노력이 부족하다.

 

사실 현대사회의 작업장은 대부분 사람이 기계를 운용하여 일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고는 사람이나 기계 쪽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이 불안전하게 행동하는 것을 통제하는 것보다 기계장치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쉽다고 합니다. 즉 사람이 불안전하게 행동하더라도 이를 막아줄 수 있는 장치를 기계에 더하는 것으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현장에서 사고를 방지하는 체계를 총괄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관리자를 선임하여 현장을 지휘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자는 최근 우리나라의 기업에서 발생한 유독물질 누출사고와 유사한 독일 기업의 사고에서 사고 순간부터의 처리과정으로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비교하면서 사고는 경제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사고예방, 대응체계, 장치, 그리고 안전의식의 격차에서 오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결국 안전문화가 정착해야 사고의 발생도 줄일 수 있을뿐더러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의 처리과정도 일사분란하게 일어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기업도 안전에 관한 제반 규정대로 교육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모든 것이 형식에 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차를 운전할 때 안전벨트를 언제 매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옵니다. 안전벨트를 매고 시공을 거는 편인가, 아니면 시동을 걸고 안전벨트를 매는 편인가 하는 질문인데, 제 경우는 시동을 걸고 안전벨트를 맵니다. 다만 시동을 걸고 출발하면서 안전벨트를 매기도 하는 저자와는 달리 안전벨트를 매고서 출발을 한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안전벨트를 매고서 시동을 건 다음에 바로 차를 출발시키는 것보다는 시동이 걸린 차의 구동장치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여유가 있는 셈이니까요.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좋은 일터는 안전해야 하며, 이는 모든 구성원이 안전을 실천함으로써 구현되는 것입니다. 안전의식은 몸에 배우서 자연스럽게 반응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하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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