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 바다출판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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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 전에 본 영화 <아름다운 비행>은 난개발로 어미새를 쫓아, 버려진 야생 거위알에서 부화한 거위들을 남쪽의 철새 서식지로 이동시키는 과정을 담아 감동을 주었습니다. 거위들은 부화한 순간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는 인간 뿐 아니라 고양이도 부화한 갈매기를 날도록 돌볼 수 있다는 깜찍한 발상을 통하여 아무 생각 없이 자연을 위협하는 인간의 몰지각함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새에게는 천적에 가까운 고양이에게 알을 맡기고, 부화된 어린 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남쪽으로 이동하던 갈매기에게 바다를 뒤엎은 기름에 빠지는 일은 재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고로 바다에 쏟아진 원유를 뒤집어쓴 바다새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구환경에 인간이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는가를 말해줍니다. 예기치 못한 재앙을 만난 갈매기 캥가가 함부르크까지 어렵게 날아 검은고양이 소르바스를 만난 것은 그나마 천운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부두 고양이 한 마리가 한 약속은 항구 고양이 전체와 관계가 있다(64쪽)’라는 자부심 넘치는 함부르크 부두의 고양이들의 일사불란한 지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양이가 인간보다 나을 수 있다는 환경애호가인 저자의 생각을 담은 것 같습니다.


함부르크가지 비행하느라 남은 에너지를 쏟은 갈매기 켕가는 검은고양이 소르바스에게 세 가지 약속을 받아냅니다. 첫 번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낳은 알을 먹지 않겠다는 것, 두 번째는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보호해줄 것, 마지막으로 새끼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르바스는 켕가에게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세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한 소르바스의 노력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인간과의 대화에 나서기까지 합니다. 고양이들의 금기사항이지요.


알에서 태어난 갈매기-뒤에 행운아라는 의미의 아포로뚜나다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처음 만난 소르바스를 엄마로 인식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갈매기가 아니라 고양이라고 믿기까지 합니다. 잠시 침팬지의 이간질 때문에 소르바스를 비롯한 함부르크의 고양이들이 자신을 돌보는 이유가 키워서 잡아먹으려한다고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만, 아포르뚜나다는 자신이 결국은 갈매기이고 날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날아보지 못한 고양이들이 갈매기를 날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백과사전을 통하여 비행이론은 제대로 이해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일정부분 거리가 있다는 점을 시사힙니다. 하지만 새들은 본능적으로 날 수 있는 모양입니다. 동족인 갈매기가 나는 모습을 본 아포르뚜나다는 소르바스가 보는 앞에서 멋지게 날아오릅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소르바스의 눈가에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 방울들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고 적은 작가는 소르바스에게 ‘고결하고 숭고한 마음씨를 지닌 고양이’라는 명예로운 직함을 붙여줍니다. 사람보다 나은 고양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피노체트 정권의 탄압을 피해 해외를 떠돌면서 망명생활을 하던 세풀베다는 연극활동을 하면서 언론인으로 명성을 떨쳤고, 유네스코에서 일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린피스의 일원으로 환경보호와 소수민족 보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이를 작품에 반영해오고 있습니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은 유전이 있는 북해를 배경으로 기름으로 오염된 바다에서 죽음을 맞는 갈매기를 통하여 해양오염실태를 고발하고, 나아가 고양이 소르바스를 통하여 지구환경보호를 위하여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른들도 같이 읽고 배울 점이 있는 동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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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지금 가까워질 수 있다면 인생을 얻을 수 있다
러셀 로버츠 지음, 이현주 옮김, 애덤 스미스 원작 / 세계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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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익은 듯 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느낌이 나는 노래를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 발표된 노래를 개작하거나 편곡하여 만든 노래로 원곡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나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책읽기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고전을 읽다보면 생경한 단어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 걸림돌이 되어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현대적 어휘로 번역해서 책 읽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물론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저자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도 합니다. 인용하고 있는 사례를 현대적 사례로 바꾸고 원저자의 생각을 최대한 유추하여 해석한 저자의 생각을 담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저자의 생각을 직접 물어볼 수 없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재해석하고 있는 저자의 생각에 따라 원저자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하는 러셀 로버츠의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포털에서 애덤 스미스(1723-1790)를 검색해보면 대부분 <국부론>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고, <도덕감정론>은 제목만 언급되거나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대단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1776년에 발표되어 국부론이라고 생략해서 부르는 그의 저서 <국부(國富)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는 최초의 경제학 저서로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한 것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명한 명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란 모든 경제의 주체가 각자의 이해에 따라 경제체제를 이끄는 힘을 표현한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경쟁을 의미하는 개념이었습니다.(다음 백과사전, 스미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3s0245a)


경제학 저서로 알려지고 있는 <국부론>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자였던 것으로 오해를 받아온 것 같습니다. 1737년 글래스고대학을 졸업한 그는 도덕철학을 공부했고, 1751년 글래스고대학에서 논리학과 도덕철학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국부론>은 경제철학에 관한 책인 것입니다. 오늘의 화제가 되는 <도덕감정론, Theory of Moral Sentiments>은 1757년에 발표한 저서로 ‘행복하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다루었습니다. 러셀 로버츠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행복하고 좋은 삶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도덕감정론>은 여섯 차례에 걸쳐 개정판이 나왔고, 애덤 스미스가 사망한 다음 1790년에 마지막 개정판이 나왔는데, 마지막 개정판에서는 상당히 많은 내용이 고쳐졌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도덕감정론>이 다룬 ‘행복’이란 명제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숙성되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러셀 로버츠는 짐작합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의 저자 러셀 로버츠는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이콘토크>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경제학 지식을 쉽게 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로서는 <국부론>은 처음부터 흥미진진하였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었다는데, <도덕감정론>의 경우는 처음 읽기 시작해서는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3분의 1에 이르렀을 때서야 비로소 이 책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문장과 표현 또한 18세기 책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다소 건조하다.(23쪽)”라는 점이 걸림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로 앞서 말씀드렸던 고전이 가진 매력과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그 한계 때문에 로버츠는 번역이 아닌 재해석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아닐까 추측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소개된 번역본이 700쪽이 넘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대작인 <도덕감정론>을 읽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바쁜 시간을 쪼개 원본을 전부 읽을 엄두를 못 내는 독자들을 위해, 그의 통찰력이 빛나는 훌륭한 원본 문장들을 이 책에서 소개(24쪽)”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북소리]에서는 이미 근대프랑스문학을 전공한 앙투앙 콩파뇽교수가 <몽테뉴 수상록>을 재해석한 <인생의 맛; http://blog.joins.com/yang412/13695862>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도덕경> 등과 같은 동양의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서양에서도 고전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전은 재해석 작업이 그리 활발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방민호작가가 <심청전>을 재해석한 <연인 심청; http://blog.joins.com/yang412/13607900>을 냈을 때 많이 반가웠던 이유입니다. 심청전과 같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의 경우는 재해석한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새로운 시각을 금세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대하는 고전의 경우는 원작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맛>을 읽고 나서 <몽테뉴 수상록>을 읽기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아직도 읽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을 읽고 나서 <도덕감정론> 역시 읽어보게 될 것 같습니다. <도덕감정론>을 읽다보면 “인생의 의미와 도덕,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방식은 18세기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18세기 독자들의 절찬을 받은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이 250년이 지난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은 모두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제1장 ‘어떻게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는가’에서는 작가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읽고, 재해석하는 작품을 쓰게 되었는가를 설명합니다. 이어서 제2장에서부터 제9장까지는 <도덕감정론>에서 저자가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뽑아서 애덤 스미스가 인용한 상황을 현대적 상황으로 바꾸고, 그에 대하여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10장 ‘현재의 우리를 위한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조언’에서는 저자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애덤 스미스를 인터뷰하는 형식을 빌어 궁금한 점을 유추해보고 있습니다. 저자의 궁금증은 “(국부론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위대한 여정에 큰 도움을 준 당신이 어떻게 <도덕감정론> 같은 책을 쓸 수 있었습니까?(282쪽)”하는 것이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소득의 많은 부분을 남들이 모르게 자선 사업에 기부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그것 자체가 목적인 물질적인 야심을 매우 경멸했다고 합니다. <국부론>에서는 이타주의나 친절, 동정심, 평정심, 사랑스러움을 다룬 내용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질적 야심이 타인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을 <도덕감정론>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린 지주들이 주민들에게 땅을 똑 같이 나눠준 것처럼, 생필품도 똑같이 분배한다. 이런 식으로 지주들은 무의식 중에, 부지불식 중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인류가 살아갈 수단을 제공해준다.(283쪽)”라는 구절에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분배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나누어 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물론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요즈음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온 세상을 편하게(平天下)하려면 스스로의 몸을 닦아야(修身) 하는 법입니다. 그만큼 스스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의 깜냥을 아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의 저자는 ‘나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통하여 스스로를 알아볼 것을 권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기본 바탕에는 이와 반대되는 선한 본성도 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운명과 처지에도 관심을 갖는다. 또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기도 한다.(37쪽)” 이율배반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기적인 인간이 이타적인 면을 가질 수 있는 것은‘공정한 관찰자’라는 존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공정한 관찰자는 이성, 원칙, 양심, 가슴 속 동거인, 내부 인간, 우리 행동의 위대한 심판자이자 결정권자이다.(46쪽)”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공정한 관찰자는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려할 때마다 강하게 견제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존재는 물론 개개인마다 스스로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다를 수 있는데, 이는 스스로를 어떻게 단련해 가는가에 달려있다고 하겠습니다.


스스로를 알아보았으면, 다음 순서로는 행복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내가 인생에서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제대로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공정한 관찰자가 제 역할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를 기만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스스로의 욕망에 압도당하게 되면 공정한 관찰자의 외침을 외면하는 대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길을 찾게 됩니다. 자아도취이자 자기기만입니다.


다음 단계인 제5장에서는 잘되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배우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재미있는 고사를 인용하여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손에 딱 잡히는 결론은 없습니다만 답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은 내용입니다. 이어서 제6장에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면 된다.(167쪽)’라는 어느 정도 손에 잡히는 방법이 제시됩니다. 사랑받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두 번째 방법, 즉 지혜와 미덕의 길을 선택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리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더 훌륭한 방법으로 미덕을 갖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미덕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대하여 신중하고 정의롭고 선행을 베푸는 삶이라고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신중함은 자기 자신을 돌보고, 정의로움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선행은 다른 사람을 선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개개인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설명한데 이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장점으로 신뢰를 꼽았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러셀 로버츠는 “자신의 믿음이 악용될 거란 두려움이 없다면, 다시 말해 타인을 전적으로 믿게 된다면, 모두의 인생은 더 없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신뢰 역시 무수히 많고 자잘한 사람 관계들이 모여 만들어진다(251쪽)”라고 했습니다.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공정한 관찰자가 제 역할을 할 때 이는 스스로에게 되먹임이 될 뿐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까지 파급되어 선순환의 고리를 강화하면서 그 사회는 신뢰가 쌓여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정한 관찰자의 역할을 체제의 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꾸는 몽상가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권력을 쥔 사람들 가운데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시스템에 갇힌 사람들은 흔히 구성원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스스로 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별 인간들은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약하기 때문에 작기 때문에 더 훌륭한 삶을 살 수 있고, 이런 삶들이 모여 더 훌륭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소박하면서도 큰 꿈을 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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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안정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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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여행기를 읽는 것은 방에 앉아서 이국을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이미 다녀온 곳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반갑기도 하고, 혹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무엇이 있나 새겨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안정희의 <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는 좋은 책읽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모두 31개국의 75개의 도시에서 느낀 80가지의 생각을 적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저의 발자국이 찍힌 도시도 22개 정도가 되는 것 같아서 저자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까 기대도 해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것이 시기라든가 동행이 누군가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요즈음에는 여행기도 구어체로 쓰인 것이 쉽게 읽힌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여행기 뿐 아니라 일반 서적들 역시 구어체로 쓰는 경향이 늘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구어체로 된 글은 쉽게 읽히는 반면 아무 생각 없이 주르륵 읽어 내리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책을 덮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지요. 아홉 번째에 이야기에 가서 저도 다녀왔던 슬로베니아의 블레드호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본 것과 다르게 적고 있는 것은 당연히 눈총을 받기 마련이고 빠트린 것도 지청구를 받기 마련입니다. 블레드 호수의 섬안에 있는 성모마리아의 교회에 달려있는 소원을 비는 종은 저도 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종에 얽힌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야깃거리가 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그 슬픈 이야기 끝에 저자와 동행하신 분이 나눈 이야기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복잡한 교회당 안이었지만 종을 울리면서 비는 소원이 글쎄 배고픈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었다니 말입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도 블루 모스크, 아야소피아, 톱카프 궁전을 비롯하여 며칠을 돌아도 제대로 느껴볼 수 없는 곳을 불과 두어 장으로 압축해놓은 글은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지 않더니,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조금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필로그의 서두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매일 특별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기차도 버스도 배도 타지 않고 서재로 들어가 매일 새로운 곳을 여행했어요. 주로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떠났지만, 때로는 산을 오르고 사막을 걷고 바다 속을 헤엄치기도 했습니다.(312쪽)” 그렇군요.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뒤져보면서 여행지의 추억을 되살려보신 모양입니다.


저는 여행을 다니면서 보고, 듣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스마트폰의 앱을 이용하여 기록합니다. 분명치 않은 것들은 메모로 남겨 뒷날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렇지만 보고 들어서 느낀 점은 문장으로 완성해둡니다. 뒷날 긴글을 쓸 때는 여행지에서의 느낌이 쉽게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의미가 모호한 것도 글을 읽는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자꾸 되새겨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 꼭지로 쓴 ‘에메랄드빛 노스탤지어’라는 글이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이별하기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 어쩌면 세상에서 이별하기 좋은 곳은 없을 거다. 사랑하는 사람, 정든 장소, 살뜰한 물건과 헤어지는 게 좋을 리 없을 테니.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겪어야 한다면 행복했던 일은 가슴에 담고 힘들었던 일은 멀리 떠나보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오랜 시간을 멕시코에서 보냈다. 멕시코를 떠나기 며칠 전 나는 칸쿤으로 갔다. (…) 하늘을 바라보며 바다에 누웠다. 잔잔한 물결을 따라 내 몸이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그렇게 누워 마음은 멕시코에서 보낸 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높고 거센 파도가 몰려와 나를 물 밖으로 밀어낼 때까지. 우린 그렇게 이별했다. 느리고 고요하게.(308-309쪽)” 누구와 이별했다는건지, 같이 여행을 다니던 준이라는 사람과 이별했다는건지, 멕시코와 이별했다는 것인지 모호합니다. 뿐만 아니라 칸쿤의 파도는 잔잔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물 밖으로 밀어낼 정도까지 거세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다양한 색조로 변화무쌍한 바다가 일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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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3-08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곳을 갔어도 다르게 기억될 소지가 있지요. 의미 있게 다가온 부분도 다를 수 있구요. 언젠가 처음처럼님의 여행이야기가 세상에 한묶음으로 나올 것 같아요.

처음처럼 2016-03-07 21:17   좋아요 1 | URL
여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낼 수 없어 원고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금년 안에는 하나가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슬라보예 지젝 특강
슬라보예 지젝 지음, 민승기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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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여행에서 류블라냐대학의 슬라보예 지젝교수 등 17명의 현직 철학교수들이 영화 <매트릭스>에서 철학적 의미를 읽어낸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영화 한편을 두고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고, 특히 지젝교수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젝교수는 독일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새롭게 이론화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저술로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두 차례 방문하여 대중강연을 한 바 있다고 하는데,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는 2012년 6월 27일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의 초청으로 열린 같은 제목의 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당시 ‘아랍의 봄’에 이어 ‘월가를 점령하라’, 스페인의 ‘분노하라’ 운동 등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사회불복종 운동이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정치가 사회적 관심으로 대두되었던 것을 반영한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정치활동을 피안의 것으로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들에게 참다운 정치란 대중과 소통하는 것, 그러기 위하여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중문화에 대한 그의 관심이 크다는 점은 청중을 본론으로 이끌기 위하여 두 편의 영화를 인용하는 것으로 알 수 있겠습니다. 1930년대 허리우드가 만든 영화 <니노치카>와 1990년대의 영국영화 <브레스트 오프>입니다. 배경과 주제는 다르지만 커피라는 공통점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니노치카>에서는 커피는 동일하지만 우유 혹은 프림이 들어가는가에 따라 커피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암시하고, <브레스트 오프>에서는 커피를 빙자한 이중부정을 통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을 건드리는 기술(?)을 이야기합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커피 이야기를 인용한 것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은연중에 암시되는 함의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결국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도덕주의의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자본주의의 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지적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에 대한 비판입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현실에서 보면 더욱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이 또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은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해결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식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상황이 절망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온전히 그 삶의 일부가 될 것이 아니라 물러나 사유해야 한다.(67쪽)’ 그러니까 철학을 일상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강연이 끝난 뒤에 청중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정리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공산주의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저는 공산주의를 어떤 긍정적인 방식으로, 다시 말해서 미래의 더 나은 사회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이야기한 ‘공산주의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말은 유효하다는 것인데, 이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서의 공산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진리로서의 공산주의를 의미한다고 읽었습니다. 그가 여전히 맑스주의자로 남아 있다고 말한 점을 고려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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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3-05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꽤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처음처럼 2016-03-06 23:17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답을 찾아보려 애를 썼읍니다만,
능력이 부족했는지 분명히 손에 잡히는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가장 행복한 여행자들 - 지구 곳곳의 생생한 이야기
패트릭 피츠후프 외 지음, 박미숙 옮김 / 금토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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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사람도 여행관련 칼럼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독서계는 여행기가 블루오션인가 봅니다. 글쓰는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제목만 보고 고르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패트릭 피츠후프 등 22명(외 22명이라고 표지에 적은 것은 옥의 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이먼 윈체스터의 ‘앞글’은 여행기가 아니라 일종은 여행기 묶음을 소개하는 글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의 여행작가(지명도에서 차이는 있는 듯합니다만, 분명 여행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분들입니다.)의 길고 짧은 여행기를 담고 있는 <세상에 가장 행복한 여행자들>를 고른 것은 참 잘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다녀온 장소도 글 솜씨만큼 다양해서 프랑스 파리가 두 번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코스타리카 과나카스테, 자이르 킨샤샤, 인도 뉴델리, 베트남 사파, 미얀마 만달레이 등 전세계에 걸친 다양한 지역이 등장합니다. 이야기의 주제도 다양해서 코스타리카를 여행한 패트릭 피츠후프는 쿨레브라라고 부르는 독사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렇시아 남성의 숭고한 자연사랑 정신을 담았는가 하면, 조노 마커스는 경찰행세를 하면서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꾼들이 우글거리는 케냐의 몸바사에서 당한 급박한 상황을 풀어놓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팬암항공사 조종사를 지낸 조세프 디드리히는 고속도로에서 고장이 난 차를 고쳐주기 위하여 몇 시간을 쏟아 부은 자이르의 ‘시민’ 믈렝게의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환락의 도시 태국 방콕을 여행한 여성 자나 바흐는 자신이 꿈꾸었던 일탈을 결국은 포기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합니다.


아참, ‘나의 이번 여행이 아무런 목적이 없어 보이는 날이 있었다(48쪽)’라고 고백한 브래드 뉴샘이 인도 뉴델리에서 만난 귀청소부 알리의 이야기는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어디에선가 읽어본 내용입니다. 스물두편의 여행기 가운데 길이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글 솜씨로 보나 가장 압권이라고 생각한 것은 미국인 여행작가 제프 그린왈드가 현지가이드에 홀린 독일 유부녀와 함께 티베트의 성산 카일라스에 다녀온 이야기라고 보았습니다. 사이먼 윈체스터가 앞글의 모두에서 지적한 것처럼 여행이란 인내와 고통이 따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같습니다. 윈체스터에 따르면 여행을 뜻하는 ‘travel’은 고통을 의미하는 ‘travail’에서 왔고, 이 단어의 어원은 고대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고문도구를 뜻하는 ‘triphalium’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티베트 사람들이 캉 린포체, 즉 ‘눈으로 만든 귀한 보석’이라고 부르는 카일라스에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그린왈드는 카트만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의 네팔과 인도의 국경도시 네팔간지로 간 다음, 이곳에서 예티항공을 이용하여 해발 2,350미터에 위치한 시미코트라는 작은 공항으로 가서 트레일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물론 에티항공은 현지의 기상에 따라 예정된 비행편이 취소되기 일쑤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린왈드가 시미코트에 도착하자마자 고산병 증상을 호소하는 장면입니다. “모든 게 얼마나 빨리 나타나는지, 고통이 맨 먼저다. 한 걸음 한 걸음 헐떡임이 심해지고, 평상시에 비해 산소량이 적어지면서 뇌가 퍼덕거리고 관자놀이가 욱신거린다.(146쪽)” 겨우 해발 2천 미터 대에서 그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제 경우는 4천 미터 대에서도 그럭저럭 견뎠는데 말입니다.


정작 그린왈드를 괴롭힌 것은 고산병이 아니라 동행한 독일인 유부녀가 가이드를 독점하려는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폭발 직전에 도달한 그린월드의 화를 가라앉혀준 것은 같이 여행을 하게 된 래프팅 가이드 로이스였습니다.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 차 카일라스에 온 로이스는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다. 그들은 우리 자신의 분노를 다스릴 값진 기회를 주고, 자만심을 무너트리게 하기 때문이다.(163쪽)”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 역시 단체여행을 하다 보면 마음 쓰이는 순간들이 적지 않습니다만, 이럴 때마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새기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조금 자세하게 소개드린 그린왈드의 여행기는 물론 다른 21개의 여행기도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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