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진수 - 맛의 사계를 요리하다
단 카즈오 지음, 심정명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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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달도 차면 기운다고 하는데, 소위 쿡방의 위세는 여전히 기세등등한 것 같습니다. 역시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은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기본 적인 세 가지 요소라고 하는 의식주 가운데 으뜸인 것 같습니다. 쿡방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요리의 세계에 빠져드는 분들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밥하고, 라면 끓이는 것 말고는 잘하는 것이 없는 탓인지 음식 만들기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미각이 시원치 않은 탓인지 딱이나 미식을 찾는 성향이 아닌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음식 만들기에 재능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특히 일본 음식을 아시는 분들에게는 좋은 책읽기가 될 <백미진수>를 읽었습니다. 일본 문단 최고의 미식가로 알려진 단 가즈오의 에세이집입니다. 흔히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자신이 만든 음식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가즈오에게 음식만들기란 자신보다는 가까운 사람들과 같이 나누는 것을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일본 문단의 내로라하는 분들과 같이 음식을 즐겼다고 적은 것을 보면, 저자로부터 음식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일본 문단에서 명함을 내놓기기 조심스러울 것 같습니다.


<백미진수>에서 저자가 만드는 음식은 물론 퓨전인 것도 있지만, 일본의 전통음식, 특히 지역특산의 식재료로 만들어 옛날의 풍미를 내는 그런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음식도 제대로 아지 못하는 주제에 일본 전통음식은 정말 깜깜한지라 실감은 덜했지만, 그래도 음식과 관련하여 저자가 늘어놓은 사설(?)은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책의 앞부분에 보면 일본 열도의 지도가 나오고 이 책에서 언급되는 주요 지명을 표시할 정도로 일본 구석구석의 특별한 음식을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멀리는 미국, 포르투갈, 프랑스, 특히 가까운 중국의 경우는 화제에 많이 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음식은 딱 한 가지 ‘신선로’, 그것도 이름만 소개하고 있어서 의외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혐한론자인가? 아니면 한국에는 와본 경험이 없어 한국 전통음식의 깊은 맛을 전혀 몰랐던 모양입니다. 이 분이 중국음식을 많이 아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인 1944년에 보도반의 일원으로 중국 전선을 돌아다녔기 때문인 듯합니다. 보도반원이었다면 일본군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고 들은 것이 있었을 터이나 생전에 그 점을 다룬 글은 별로 없었던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후난에서 광시에 이르기까지 민가에서 담가 먹던 가양주를 징발(?)해서 즐겼다는 일화를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분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흥미로운 경험이라는 생각뿐인 듯합니다. 이 책의 기획에 방점을 둔 책읽기를 함이 옳겠지만, 저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는 분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식이나 식재료, 혹은 지인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은 일화 등만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구분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분위기에 딱 맞는 하이쿠를 곁들이고 있어, 역시 문학적 향취를 더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귀한 몸이 되었다는 아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아귀라는 생선이 그로테스크하고 물컹물켱해서 도마 위에서 칼질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가리에 갈고리를 걸어 매달아서 자른다라고 했는데, 아마도 저자가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아귀라는 생선은 생물로는 살이 연하지만 일단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매달아 조금 건조시키면 살이 수축되면서 쫄깃한 식감을 더하기 마련입니다. 살이 적당히 탱탱해지면 잘라서 매운탕을 끓이거나 쪄서 초장에 찍어먹었습니다. 아귀살은 별 맛이 없기 때문에 초장과 어우러져야 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귀찜이나 아귀매운탕은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만들어주시던 것보다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세계를 누비면서 음식을 만들고 즐긴 저자답다는 생각이 드는 한 대목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여행지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고 마시고 요리하는 일은 무척 즐겁다. ‘먹고 마시고 만드는’ 이 진정한 즐거움을 모르면 여행은 생각 외로 따분한 법이다.(130쪽)” 하지만 먹는 일이 여행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따분하기까지는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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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 황제가 된 철학자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대가들의 인생론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정미 옮김 / 리더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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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달 소천한 이탈리아 철학자이자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지적인 휴가를 보내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여행 중에 여행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건 매우 흥미가 넘치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움베르토 에코 지음, 연어와 함께 여행하기 45쪽, 열린책들, 1995년)라고 했습니다. 굳이 여행에 관한 책이 아니더라도 여행 중에 책을 읽는 것은 절대로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휴가뿐 아니라 출장길에도 책을 몇 권 들고 가는 이유는 비행기나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의 지루함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비행기나 버스를 타는 동안 특별하게 할 일이 없어 멍 때리는 시간을 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에코의 말을 조금 비틀어서 ‘휴가를 지적으로 보내는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목적은 여행이고, ‘지적(知的)’으로 보완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점점 들고 가는 책이 많아지게 되고, 기왕 가지고 갔으니 모두 읽어야겠다는 사명감이 끓어오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행보다도 책읽기에 매몰될 수도 있으니 적당한 수준으로 타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뚱딴지 같이 여행과 책읽기를 서두에 꺼내는 것은 지난 달 남미를 여행하면서 들고 갔던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드디어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은 그가 남긴 <명상록>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그리스어로 ‘자기 자신에게’라고 달았던 원제목의 뜻을 살린 제목으로 생각됩니다. 2천년에 가까운 옛날에 거대한 제국을 다스렸던 황제가 남긴 말들이 오늘날까지도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는 것은 삶의 본질에 대하여 천착했던 그의 고민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나를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하지만 그가 로마의 황제가 되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철인황제(哲人皇帝)라고 부르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는 로마의 전성기라고 하는 오현제시대(AD96~AD180년)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로마제국은 황제가 다스렸지만 제국 이전의 정치형태였던 공화정의 정신이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통상적으로는 제국의 황제는 적통의 자식이 제위를 이어가는 방식을 취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시절 로마제국은 황제가 자질이 있는 자를 아들로 입양하여 제위를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식이 아니면서도 자식인 셈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서기 121년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와 도미티아 루킬라의 아들로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3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죽자 세 차례 집정관을 연임한 할아버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베루스에게 입양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범상치 않은 싹을 보였던 그는 하드리아누스황제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집안이 플라비아누스 황제(69~96) 재위시절 황제를 중심으로 사회 및 정치권력이 집결되던 새로운 로마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몇몇 집안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제위를 계승하기로 정해져 있었지만 그가 어떻게 황제에 즉위하게 되었는가는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다고 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하드리아누스황제의 기획에 따라 오랫동안 황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했던 것으로 이런 과정은 제위기간동안 통치에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서기 161년 그가 로마제국의 제16대 황제의 제위에 올랐을 때 황위 계승권을 나누고 있던 양제(養弟) 루키우스 베루스에게 강권하여 공동 황제로 즉위토록 하였습니다. 동등한 법률상 지위와 권력을 공식적으로 나누는 공동 황제가 로마제국 사상 최초로 탄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169년 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루키우스 베루스가 공동 황제로서 한 역할은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제위기간 로마 사회는 안팎으로 불안했습니다. 재위 첫해부터 본국과 주변에 기근과 홍수가 있었고, 제국의 동방으로 침입한 파르티아를 격퇴하러 출정한 1개 군단이 궤멸하는 바람에 아르메니아 왕국이 점령당했습니다. 하지만 2년 뒤에 반격에 나서 아르메니아 왕국을 탈환하였고 다시 3년 뒤에는 티그리스강을 건너 파르티아를 공격하여 격파하였습니다. 168년에는 게르만족과의 전쟁이 발발해서 진퇴를 반복하다가 6년이 지나서야 강화협상이 타결되었습니다. 게르만족과의 전쟁은 제국의 군사나 재정면에서 취약점을 드러냈지만, 이를 해결할 묘수가 없어 임시방편의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드는 신호였던 것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앞선 황제들과는 달리 친아들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지목하였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금욕과 절제를 주장하여, 에픽스테토스, 세네카와 함께 스토아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꼽힙니다. 인간의 욕망이 민낯으로 부딪히는 전장을 누비면서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사유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철학자 황제는 사유를 통하여 정리된 것들을 12편의 <명상록>으로 남겼습니다. 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학문의 목적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이고, 그 대척점으로서 삶은 무엇인가?’, ‘삶에서 필연은 무엇이고, 우연은 무엇인가?’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주로 철학의 영역에서 답을 구하는 질문들입니다. 앞서 적은 것처럼 철학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구하려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배워온 과정을 적은 제1권은 ‘나는 할아버지 베루스에게서 훌륭한 품행과 노여움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915쪽)’라고 시작하는 것처럼 일인칭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보편적인 삶에 관한 것들을 적을 때는 이인칭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나의 영혼이여, 그대는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자신을 혹사시키는구나. 그러다가는 더 이상 자싱의 명예를 되찾을 은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그 짧은 인생도 거의 끝나가지만, 그대의 영혼은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말에서 축복을 찾으려고 하다니!(34쪽)’

몇 쪽씩 할애하여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의 생각들은 짧게 압축되어 있습니다. ‘기억하는 사람이든 기억되는 사람이든 모든 것은 연기처럼 흩어지고 사라진다.(71쪽)’라는 경구처럼 한 줄에 불과 한 것도 많고, 심지어는 ‘자연은 모두에게 유익한 것만을 제공한다(62쪽)’라는 말처럼 한줄도 채우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때로는 ‘얼마나 음흉하고 비겁하고 완고한 인간인가! 짐승이나 어린에처럼 우매하고 나태하고 변덕스럽고 야비하고 교활한 폭군.(69쪽)’이라고 적은 대목을 보면 황제에 대한 경구라고 보이기 때문에 <명상록> 자체가 황제를 위한 교과서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위에 적은 ‘폭군’은 아마도 네로를 말하는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명상록> 자체가 스스로를 다스려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한 자기 성찰을 적은 것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스스로가 폭군의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오만하고 불행한 자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마라. 그들의 의견이 그대를 지배하지 않도록 삶을 참된 관점에서 바라보라(62쪽)’라는 대목이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은 배움, 인생, 운명, 죽음, 인간 본성, 자연의 이치, 이성, 선과 악, 순응하는 삶, 사회적 존재, 영혼, 도덕적 삶 등을 주제로 하여 모두 12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아마도 같은 주제를 두고 사유를 거듭하였을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생전에 황제가 남긴 명상록을 후대 사람들이 주제별로 구분하여 엮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따라서 이 책을 처음부터 읽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관심이 가는 주제를 집중해서 읽는 것도 좋은 책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죽음에 관한 내용 가운데, ‘제단 위로 많은 유향 방울이 떨어진다. 어느 것은 먼저, 어느 것은 나중에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떨어지는 것 가체로는 별 다른 차이가 없다.(63쪽)’라고 적어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개념을 완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육체는 물론 영혼마저도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영혼불멸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어 종교로까지 승화시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영혼불멸을 믿을 수 없었던 이유를 황제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만일 사후에도 영혼이 살아있다면 우리를 감싸는 대기는 태고 이래로 죽은 자들의 영혼을 수용할 공간을 어떻게 마련하겠는가?(65쪽)’ 그리고 질문에 대한 황제의 생각이 이어집니다. 책을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히포크라테스를 인용하기도 합니다만, 의사가 하는 일에 대하여 언급한 대목이 딱 하나 있습니다. ‘만일 선원들이 선장의 말을 따르지 않거나, 환자가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선장이 배에 탄 선원들의 안전을 어떻게 도모하고, 의사는 환자의 병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123쪽)’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의료현장의 분위기를 개탄하는 의료인들에게는 달콤하게 들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관계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를 따지는 문제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즉 환자의 신뢰를 얻기 위하여 무엇을 보여주었는지 자신을 되돌아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설득을 통해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고 노력하라. 그대가 정의의 원칙을 준수하겠다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라도 감행하라(122쪽)’라는 대목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보니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장면들이 생각나게 됩니다.


독립된 주제로 구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상록>에는 유독 죽음과 운명에 관한 기록이 많습니다. 옮긴이는 그 이유를 ‘(죽음은) 스토아 철학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아우렐리우스를 비롯한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죽음이란 고통이나 종말이 아니라 해체와 소멸이라는 자연의 작용에 불과하다(270쪽)’라고 설명합니다. 생노병사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에서 죽음은 한 순간이지만 죽음은 어느 순간이라도 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삶의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따라서 죽음을 극복하는 순간 삶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명상록>에 실려 있는 황제의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도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말미에 붙인 옮긴이의 작품해설 속에 있는 한 구절이 바로 보석이라는 생각이 들어 옮겨봅니다. “우리를 행복이나 불행으로 인도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운명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다. 우주의 사건들은 일어나야 할 방식대로 일어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요, 운명이다. 인간이 여기에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다. 하지만 어떤 운명이 닥치든 초연하고 담담하게 대처할 수는 있다. 그것은 철학하기를 통해서다. 철학은 자기구원을 위한 수행인 셈이다.(271-272쪽)”


황제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자신이 보낸 하루를 돌아보고 스스로 정한 원칙대로 행하였는지를 점검했을 것입니다. 전장을 누벼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힘들고, 언제까지 번영을 누릴 것만 같던 로마제국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손에 잡히지 않는 위기감이 옥죄어 오는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하여 <명상록>을 꾸준하게 써내려갔던 것입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라. 절대로 격노하지 말고, 절대로 냉담하지 말고, 절대로 위선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 그것이 바로 도덕적인 인격을 완성하는 길이다.(148쪽)”라고 적은 것처럼 말입니다. 황제를 따라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라면 황제가 남긴 <명상록>을 하루 한쪽씩 꼼꼼하게 읽고 잠자리에 드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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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9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송상기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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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여행을 준비하고 다녀오면서 다양한 방면에서 남미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우라>는 멕시코시티를 무대로 한 작품이라서 골랐습니다. <아우라>를 쓴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파나마시티에서 태어났지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주의 다양한 국가를 돌아다니면서 성장했고 열여덟이 되던해 멕시코로 돌아왔습니다. 성장하면서 멕시코 역사에 대한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것이 작가로서의 소양을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우라>는 62쪽에 불과해서 중편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분량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몇 차례에 걸쳐 큰 변화를 주고 있어서 집중해서 읽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읽기를 마친 다음에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았습니다. 이런 독자의 반응을 예견했는지 작가는 25쪽이나 되는 집필배경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옮긴이 역시 열네 쪽에 달하는 작품해설을 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아우라>에 대하여 따로 할 말이 많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이야기의 줄거리 자체는 간단합니다. 긍핍한 생활에 넌더리를 내던 젊은 역사학자 펠리페는 오래 전에 죽은 요렌테장군의 비망록을 출판하기 위하여 정리할 사람을 찾는 미망인 콘수엘로와 계약을 맺고 그녀의 집에 기거하면서 유고 정리작업을 시작한다. 그 집에는 미망인 콘수엘로와 그녀의 조카라고 하는 아우라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작업이 진행되면서 펠리페의 마음은 아우라로 향하게 되고, 모호한 분위기에서 둘은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 시점이란 것이 실재상황인지 아니면 펠리페의 꿈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습니다. 처음에는 펠리페의 방에서 시작된 관계는 종국에는 콘수엘로의 방으로 옮겨지고 펠리페는 아우라와 콘수엘로가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게 됩니다. 비망록을 정리해가는 과정에서 펠리페 역시 젊은 시절의 요렌테장군이라는 반전이 추가되면서 간단한 듯 보였던 이야기가 모호하게 얽혀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결국 작품해설까지 모두 읽은 다음에서야 이야기의 전무가 밝혀지고, 특히 작가가 밝힌 집필 배경을 보면 작가가 긴밀하게 교류하던 영화감독 부뉴엘의 영향을 받아 죽음과 회생이라는 환상적 요소를 가미하여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일본의 영화감독 미조구치 겐조의 영화세계와 그 뿌리가 닿아있는 이야기들, 그러니까 일본설화 <오토기보코>, 그리고 그 원전격인 중국 명나라때 소설 <애경전>에 이르면서 부부가 죽음을 뛰어넘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초자연적인 이야기가 이어져왔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콘수엘로부인과 아우라가 동일인물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에 표시를 해둔 것을 보면 뭔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너는 이모와 조카를 번갈아 흘긋거리는데, 콘수엘로 부인이 동작을 멈추는 순간 아우라 역시 포크를 접시 위에 놓고는 아무 동작도 하지 않는 거였어. 불과 1초 전에 콘수엘로 부인이 했던 그대로 말이야(35쪽)” 거의 동시에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기가막힌 따라쟁이라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우라, 즉 콘수엘로의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래요 그녀는 늙고 혐오스러워요 (…). 펠리페,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요 (…). 그녀처럼 되고 싶지 않아요 (…). 다른 사람이 되고 (…).(53쪽)”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가 도입부가 지나면서 시나브로 2인칭의 화자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이 펠리페임에도, 화자 역시 펠리페임이 분명한데도 펠리페를 너라고 지칭하면서 상황을 설명해가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듯하여 책읽는 흐름이 무너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예견되었던 펠리페와 아우라가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실제 상황인지 아니면 펠리페의 환상인지도 모호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푸엔테스의 <아우라>는 멕시코시티에 있는 식민시대의 고택이 즐비한 돈 셀레스거리의 스산한 분위기를 살린 고딕소설의 전형이라는 점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딕소설은 공포와 로맨스를 조합한 문학 장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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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바라본 아르헨티나 - 루이사 발렌수엘라 중단편선
루이사 발렌수엘라 지음, 조혜진 외 옮김 / 소명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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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여성작가 루이사 발렌수엘라의 중·단편소설 모음집입니다. 1938년에 태어났으니까, ‘추악한 전쟁(Dirty War:1976~1983)’이라고 일컬어지는 군부 독재정권과 그 전후의 아르헨티나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작품에 녹아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추악한 전쟁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불법적이고 잔인하게 반대파와 좌파를 탄압하던 시기를 말합니다. 집권초기 위기상황의 재정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였지만, 임금동결과 금융규제철폐로 외채가 늘어나는 듯 사회가 불안정하게 되면서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던 것입니다. 추악한 전쟁기간 중에 수천명의 행방불명자가 생겼고, 지금도 5월의 광장에는 희생자들을 찾는 어머니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하여 공포에 찌든 아르헨티나의 사회상, 특히 독재정권 치하에서 여성에게 가해졌던 폭력의 실상을 충격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침대에서 바라본 아르헨티나>에는 ‘여기에서는 희한한 일이 일어난다’, ‘무기의 변화’, ‘대칭’, ‘침대에서 본 국가현실’ 등 네 편의 중단편 소설과 두편의 에세이 ‘인류학과 페미니즘 문학’, ‘반역하는 말’을 싣고 있습니다. 군부독재시절 아르헨티나의 사회상이 얼마나 끔찍했는가하는 것을 작품마다 독특하게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희한한 일이 일어난다’에서는 누군가가 잃어버린 분실물을 습득한 시민들이 이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횡액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냥 경찰서에 신고하면 될 것 같은데, 공연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겁낼 정도로 무서운 세상이었던 모양입니다.


‘무기의 변화’에서 로케대령은 라우라라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성을 성적노리개로 삼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여성을 감옥에서 빼내 성적으로 학대함으로써 복수를 하였던 것으로, 군부에 의하여 저질러졌던 고문과 실종자에 관한 문제에 더하여 여성에 대한 성적폭력의 실상을 그렸습니다. 사실을 읽으면서도 불편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상황묘사가 적나라하였습니다. ‘대칭’은 1947년과 1977년이라는 두 시점을 배경으로 하여 두 씽의 남녀관계를 비교하면서, 세월이 흘러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는 것은 적당이 덮어주는 관행 탓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침대에서 본 국가현실’은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오랜만에 귀국한 여주인공은 컨트리클럽에 있는 친구의 방갈로를 빌어 쉬게 되는데, 그녀가 쉬는 방갈로에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몇 가지 상황이 묘하게 겹치면서 혼란스럽게 됩니다. 군부의 탄압으로 몰락한 기층민들은 침대 밑에 숨어서 여주인공의 물건을 훔쳐가고, 창문 밖으로부터는 훈련 중인 군인들이 들어오고, 시중을 드는 마리아를 통하여 시간 단위로 환율이 치솟는 불안정한 경제상황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안정적이어야 할 의사는 택시를 운전해서 수입을 보전하는 이중생활을 하고, 동시에 성적으로 여주인공과 엮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현실에는 여러 층위가 겹쳐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하지않고, 군부대나 빈민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한 여자가 은신처를 떠나 머나먼 컨트리클럽으로 갔다.(92쪽)’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자는 추악한 전쟁이 끝나고서 귀국을 했기 때문에 저자의 자전적인 기록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외국에 체류하면서 전해들었던 조국의 끔찍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기록하였다고 보이는데, 옮긴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오랜 망명생활을 청산한 후 본국으로 돌아와서 느끼는 갈등과 부적응을 그린 자전적 성격의 이 소설에서 발렌수엘라는 권력이 폭력을 직접적인 형태로 행사할 때보다 미디어를 통해 거대 담론을 유포하는 간접적이고도 은근한 방식을 취할 때 정점을 이룬다는 사실을 지적한다.(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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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보장 -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의 속 시원한 고민 해결 상담소
송은이.김숙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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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김숙씨와 송은희씨가 잘 나가시나 봅니다. 하는 일마다 대박을 내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팟캐스트라는 것이 어떻게 하는지는 대충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찾아서 듣거나 사연을 보내는 분들이 많은가 봅니다. 그렇게 시작한 팟캐스트가 인기몰이를 하자 공중파까지 진출하시고, 단행본까지 내셨다니 정말 대단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두 분이 진행하시는 팟캐스트의 내용은 친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할 비밀을 들어주고, 그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해서 이름이 <비밀보장>이라 하셨다는데, 이래도 되는 것인지 먼저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라서 지켜줘야 할 일이라면 방송을 하면 안될 것 같고, 책으로까지 내는 것은 더욱 안될 말이 아닐까요? 이제는 공중파에서 전국방방곡곡을 넘어 세계로, 우주로(까지는 지나쳤나요) 소문낼 일이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책으로 나온 <비밀보장>에는 그동안 방송된 사연 가운데 고르고 고른 74개의 고민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주제는 별거 아닌 별거 같은 고민, 연애, 결혼, 금전, 취준 및 신입사원들 고민, 법률상담 등입니다. 그런데 읽고 보니 여기 나온 사연들은 언젠가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일상적이고, 고민이랄 것도 없는 고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이 진행하는 팟캐스트가 청취자의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아마도 두 분이 걸쭉한 입담과 두 분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화연결로 초대하는 전문가(?)의 깊이 있는 조언이 듣는이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설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방송으로 진행한 것을 활자로 담아냈을 때 방송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두 분이서 문제를 두고 주고받았던 내용이나 전문가의 조언을 대화체로 구성하였고, 특히 중요한 부분은 활자를 키우고, 점을 찍어 강조하였는데, 꼭 이래야만 했을까 싶었습니다.

다만 고민생들이 내놓은 문제에 대한 답변은 두 분의 연배와는 달리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에 꼭 맞는 것 같다는, 그러니까 제 생각과는 거리가 꽤나 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분의 직업을 생각한다면 문제의 정답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솔직히 조금 들었습니다. 물론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연에 대하여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하지마’라고 조언하는 것을 보면 진지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면접 때문에 고민하는 분에 대한 답변도 명쾌하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첫키스를 어디에서 할까? 혹은 결혼 날짜를 잡았는데 자고 싶다는 예비신랑에게 뭐라 답변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고민할 것 없이 그냥 자라고 답변해준다는 것이 옛날과 달라진 점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답변해주신 분들은 고민상담에 드린 답변이 문제가 된다면 책임을 지실거죠? 특집으로 정리한 법률상담소에서는 이런 문제는 다루지 않으셨던데....

앞에서부터 [쉬어가는 코너]에 나오던 이영자씨가 언제쯤 등장하나 궁금했는데, 결국은 특집코너에 나오시는 것을 보고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편집과 관련해서 한 말씀 드린다면, 개인적으로는 깔끔한 종이에 까만 활자로 찍은 글이 쉽게 읽히는 편입니다. 알록달록한 색지에 총천연색으로 강조한 활자는 시선을 교란시키는 듯해서... 그런데 요즈음 젊은이들은 이런 편집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세대차이란 것이 분명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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