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직면하는 27가지 난감한 순간
브루스 툴간 지음, 김광현.도상오 옮김 / 이담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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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치의 계절입니다. 선량(選良)이라고도 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서는 분들의 과거 언행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오랜 세월을 두고 자신을 다듬어온 분이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상속자들> 앞에 붙었던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부제가 떠오릅니다. ‘다모클레스의 칼(Sword of Damocles)’이라는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얻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원전 4세기 전반에 시칠리아의 시라쿠사를 다스리던 참주(僭主) 디오니시오스 2세의 측근 가운데 다모클레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왕의 친구이기도 했던 다모클레스는 왕의 자리가 근사해보였던지 부러워하다가 질투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 친구의 모습이 딱했던지 왕은 다모클레스에게 하루 동안 자신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소원을 이룬 다모클레스는 꿈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왕좌에 앉아 하루를 되새김하다가 섬뜩한 느낌이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한 올의 머리카락에 매달린 칼 한 자루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놀라는 다모클레스에게 왕은 ‘권력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네’라고 말했습니다. 왕의 자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호화롭게 보이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입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말은 부러워만하지 말고 스스로를 갈고 닦아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역량을 발휘해보라고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오늘은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를 안내하는 책을 소개합니다. 경영컨설팅 전문가 브루스 툴간이 쓴 <팀장이 직면하는 27가지 난감한 순간>입니다. ‘탁월한 리더가 되기 위한 리얼 팁!’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고, 바로 아래 정답이 적혀 있습니다. “준비된 ‘1:1대화’를 시도하라” 팀장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1:1대화’, 바로 ‘긴밀한 소통’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다양한 조직에 대한 경영컨설팅 과정에서 수집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관리자로서의 능력과 역량을 높이고, 개인과 조직이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과정형 팀장이 되라>, <X세대 관리법> 등의 베스트셀러를 내기도 했습니다.


저자가 경영컨설팅 회사 레인메이커 싱킹(Rainmaker Thinking)을 창립했습니다. 그 회사에서는 경영세미나, 포커스 그룹인터뷰, 설문 조사 등을 통하여 수많은 리더들로부터 ‘팀장으로서 관리하기 가장 힘든 상황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수집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그 답변을 바탕으로 정리된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가려 뽑은 27개의 상황이 90% 이상의 응답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저자는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은 조직 내의 리더들이 참고하면 좋을 관리지침서가 되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팀장을 꿈꾸는 분들에게 더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습니다.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 무엇을 놓치기 쉬운가하는 문제가 첫 번째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즉 팀장이 되는 순간부터 고참 팀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에서 맞는 어려운 상황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문제적 상황에 들어가기 전에 리더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기본사항을 먼저 정리해두었습니다. ‘리더여, 기본에 충실하자’입니다. 그 기본이 바로 소통입니다. ‘우리 조직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60%이상의 사람들은 ‘더 많은 소통’을 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소통에 대한 욕구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니면 소통을 내세우는 리더일수록 제대로 된 소통은 외면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팀원 가운데 관심이 가는 팀원만 챙기는 팀장이 많습니다만 조직을 원활하게 이끌어가려면 모든 팀원에게 골고루 관심을 나누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팀원들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늘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팀장들이 많습니다. 저도 가끔 느끼는 것입니다만, 어느 조직이든 대부분의 리더들은 다음과 같은 4가지의 치명적인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1. 별로 중요하지 않은 미팅에 너무 많이 참석하기, 2. 끝나지 않는 이메일의 행진, 3. 의미 없는 형식적인 대화, 4. 서로 방해하기 등입니다. 그리고 회의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도 추가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처음 모셨던 과장님의 방에 들어가면 ‘요담 3분’이라는 팻말이 있었습니다. 3분 안에 대화를 마무리하려면 미리 말씀드릴 내용을 잘 요약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27개의 상황들은 어려움의 수준이나 빈도와는 무관하게 상황의 성격에 따라 공통점이 있는 일곱 가지의 틀로 나누었습니다. 1. 신임 팀장이라면 이것부터 챙겨라, 2. 자기 관리가 안 되는 팀원을 방치하지 마라, 3. 어떻게 팀 성과를 끌어올릴 것인가?, 4. 팀원의 문제에 직면하라, 5. 꼭 필요한 팀원, 함께 가라, 6.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7. 상황에 맞게 변신하자, 등입니다.


7개의 영역 가운데서 첫 번째 신임팀장에 관한 문제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팀원이 바라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기존 팀 안에서 팀장으로 승진한 경우, 외부에서 팀장이 영입되는 경우, 새로 팀을 구성하는 경우로 구분하여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를 논의할 뿐 아니라, 새로운 팀원을 뽑을 때 고려할 사항까지도 챙기고 있습니다. 그만큼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들을 충분히 고려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팀 내에서 승진한 팀장의 경우 팀원들과 업무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평적 관계에서 수직적 관계로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서로 인식하지 못하여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연공서열 등에서 선임자가 팀장이 되었을 때는 팀장과 팀원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큰 문제가 없겠지만, 연공서열을 깨는 승진인사의 경우는 갈등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할 것입니다. 결국 대화를 통하여 서로의 역할을 받아들이면 갈등이 생기지 않을 것이지만, 새로운 팀장이 권위를 내세우거나 과중한 목표를 설정하는 등 팀원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부하가 많아지게 되면 갈등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팀장으로서 팀을 이끌어가는 기본 철학과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팀원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팀장과 팀원이 서로 신뢰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팀장이 팀원들에게 기대하는 자기관리의 4대 기본원칙, 시간 관리, 의사소통, 조직화, 기본 문제 해결 능력 등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수시로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팀이 지향하는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팀원이 팀의 분위기를 흐리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에는 같이 갈 것인가 방출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같이 가야겠다는 판단이 서게 되면 가급적이면 빠른 시간 안에 대화를 통하여 팀의 흐름에 동참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같은 일을, 같은 수준에서 반복적으로 이행하는 조직은 결국 구성원을 타성에 젖게 만들고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지게 합니다. 따라서 목표를 상향조정하여 달성토록 주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팀이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인적, 물적 지원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지원이 없다면 여력이 바닥난 팀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업무처리 속도가 떨어지거나, 부여받은 업무만 처리하는 팀원, 업무처리과정에서 오류가 많은 팀원들의 경우 원인분석을 통하여 문제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조직이 적용하고 있는 성과관리제나 재교육 프로그램들을 활용하도록 합니다. ‘혁신’이 화두가 되던 시절이 있습니다. 당시에 혁신과제를 도출하느라 기본 업무가 뒷전이던 것이 가장 큰 부작용이라고 자조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혁신도 의무적으로 하게 되면 오히려 방해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업무처리방안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팀원들 사이에서, 때로는 팀원과 팀장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팀원들 가운데 예민하거나, 오지랖 넓거나, 논쟁적이거나, 불평불만이 많거나, 남을 탓하거나, 화를 잘 내는 팀원이 있는 경우에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자는 “이 팀원들이 자신의 부정적 행동을 좋은 의사소통 습관으로 바꾸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면 당신은 인간관계 갈등의 가장 흔한 요소를 없앤 것이다(209쪽)”라고 말합니다. 결국 1:1대화를 통하여 문제적 팀원의 행태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팀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전체 팀원들이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팀원들이 양해할 수 있다면 들어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수용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팀원의 진가를 발견하고 그가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아끼는 팀원이 조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매끄럽게 처리해야 하는데, 사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조직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 대하여 저자는 이런 처방을 제시합니다. “최고 팀원은 당신이 앞으로도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원하는 사람이기에 좋은 인수인계 계획을 세워서 실행할 수 있게 하고 총체적인 과정을 밟게 하고 매끄러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떠나는 것을 늦춰야 한다.(253쪽)” 물론 그 사이에 상황이 바뀔 수도 있고, 새로 올 후임자가 업무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감정이 부딪칠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자의 권유가 실제로는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 같더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하여 업무의 내용을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미 팀장의 직무를 오랫동안 수행해온 분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화두, ‘성장은 끊임없는 변신을 요구한다’를 읽게 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제가 자문하고 있는 사업 가운데 맞춤한 사례가 있습니다. 수술환자에서는 감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술 후에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술 1시간 전에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하면 수술 후에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감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술 1시간 전에 항생제를 적절한 항생제를 사용하고, 수술 후에는 항생제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염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외과선생님들이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문제가 없더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안내로 많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팀장 역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변신이 필요합니다. 팀원들을 이끌어가기 위하여 스스로가 변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상사에게 새로운 시도에 대하여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다음에 팀원들과의 개별적인 소통을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당신에게는 배움의 과정이 될 것이며, 어쩌면 실수도 나타날 수 있고, 접근방식을 수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팀장들은 무의식적 자동관리, 체계적이지 못한 환경, 명확하지 않은 요점, 되는 대로의 소통 등으로 일이 꼬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조직의 세포책임자 팀장이 지켜야 할 조직관리의 기본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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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격 -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일상인문학 3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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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의 [북소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총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입니다. 국민을 대변하는 선량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행태나 면면이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품격’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너무 열심히 보았던 탓도 있지 싶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품격(品格)을 ‘사람의 품성과 인격’이라고 풀이하고 있어, 의문을 더하게 만듭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질이 성격이고 품성이라고 한다면 성격에 지적이며 도덕적인 요소를 추가한 개념이 인격이므로 품성은 결국 인격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결국 ‘격(格)’이라는 한 글자로 압축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삶의 격’을 갖추는 방법이라고 풀어도 될 듯한데, 마침 ‘삶의 격’을 논한 책이 있어 소개하려는 것입니다. 독일 철학자 페터 비에리가 쓴 <삶의 격>입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 런던과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철학, 고전언어학, 인도학, 영어학을 공부하고 철학적 심리학, 인식론 그리고 윤리학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독일 마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사를 강의했고, 1993년부터는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언어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는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리스본행 야간열차; http://blog.joins.com/yang412/13549241>를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직 전체를 위하여 한 사람의 생명을 버려야 할 것인가? 무고한 생명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의사는 그를 살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방치해서 죽음을 맞도록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악인의 생명을 구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태양의 후예>에서도 다루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의사는 손을 내밀까 말까 고민하는데 오히려 군인은 살려내라고 권하는 장면이 참 역설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삶의 형태로서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고민해왔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존엄성이란 아주 중요한 것이며 절대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존엄이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집단적 사고에 빠져 있는 이웃도 있습니다. 존엄을 인간의 특성으로 규정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저자는 인간이 삶이 살아가는 특정한 방법, 즉 사고와 경험, 행위의 틀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기본적인 방법론으로는, ‘자신의 경험을 매번 이해하고 인과관계에 관해 스스로 묻고, 존엄성에 대한 경험에 담긴 직관적 내용을 끝까지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존엄한 삶의 형태를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여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내가 타인에게 어떤 취급을 받느냐 하는 것, 두 번째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 세 번째는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지켜진 존엄, 손상된 존엄, 잃어버린 존엄이라는 일상적인 경험 안에는 세 가지 차원의 관점이 뒤얽혀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분리해내기가 수월치 않은 점도 있으나 개념적 이해를 돕기 위하여 서로 다른 경험으로 분리해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간 삶을 전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하여 존엄한 삶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며, 다만 개념을 명료하게 하려는 자신의 시도에 책 읽는 이들이 동참해주기를 희망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특성이라는 관점보다는 삶의 형태로서의 존엄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이 있다고 본 삶의 요소로 여덟 가지를 골랐습니다. 독립성, 만남, 사적 은밀함, 진정성, 자아존중, 도덕적 진실성, 사물의 경중에 대한 인식, 유한함을 수용하기 등입니다. 하나하나가 결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영화 등 다양한 소재를 버무려 주제논의를 풍성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덟 가지의 주제를 모두 짚어볼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제 마음대로 고른 몇 가지 주제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첫 번째 주제는 중요하기 마련이라서 빠트리면 섭섭할 것 같습니다. ‘독립성으로서의 존엄성’입니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관계에 얽혀들기 마련입니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하고 싶어 합니다. 삼자가 보기에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을 사는 사람 역시 자신의 관점에서는 스스로 주도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삶에서 주체가 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의 중심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일에는 드러난 혹은 숨겨진 동기가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주체적인 인간은 이러한 것들을 피동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심을 통하여 파악하고, 앎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아닌 타인이 정해놓은 목적을 달성시켜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개인의 자유의 범위에 관한 내용이 있어 요약해봅니다. “국가 권력이 우리 삶에 간섭한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다 반존엄적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의회에서 통과되는 법은 대부분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허용이나 금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러한 법들이 전체적으로 우리의 존엄성을 지켜주려는 목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굴종시키거나 독재 권력을 쥐려는 목적이 아니라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사회적 이익을 창출하려는 의도인 것이다.(44-45쪽)” 이처럼 저자는 타인과 그들의 개입을 존중하는 일이 반드시 주체로서의 자신의 존엄을 해치는 일은 아니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의료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는 딜레마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여 읽는 이 나름대로의 해답을 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종교적 혹은 사회적 요인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거부하는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닌 것이 현실입니다. 의료진의 시각만으로, 혹은 환자나 보호자의 시각에 끌려서 내리는 의사결정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두 번째 주제는 ‘만남으로서의 존엄성’입니다. 만남은 곧 타인과의 관계가 열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계란 두 개의 주체가 부딪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선가 접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만남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존엄한 삶의 형태의 두 가지, 즉 ‘타인이 나를’, 그리고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 역시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의 일방적인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접근이 될 것입니다. 상대를 인정함으로써 상대의 존엄을 존중해주면서 교감하는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을 통하여 친해진다고 해도 지켜야 할 거리는 지키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어서 논의하는 ‘사적 은밀함을 존중하는 존엄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닌 타인이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즉,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 뼘에 불과할 수도 있고, 아니면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할 수도 있습니다. 타인이 그 억지로 이 공간을 침범하거나 우리 스스로가 잘못된 명분으로 그 공간을 개방할 경우에 존엄성은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의료인의 경우 치료과정에서 환자의 사적공간에 들어서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지, 즉 환자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최근 이성의 의사-환자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을 인식의 차이라고 쉽게 생각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환자의 사적공간은 흔히 개인적 결함과 관련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 결함을 가진 환자와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는 의료인들은 환자의 사적공간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내용을 삼자에게 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네 번째 주제 ‘자아존중으로서의 존엄성’으로 건너갑니다. 주체로서의 인간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이 삶의 격을 지키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존엄한 삶의 형태에 대한 세 번째 차원에서의 접근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자아상은 내가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당연히 현재는 물론 미래의 자신의 모습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주체로서의 인간은 자신을 평가할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의 행위와 감정이 존중받아 마땅한 것인지 아니면 잘못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자아는 때로 자기애(自己愛)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아상이 성립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공정한 관찰자는 이성, 원칙, 양심, 가슴 속 동거인, 내부 인간, 우리 행동의 위대한 심판자이자 결정권자이다.(러셀 로버츠 지음,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46쪽, 세계사, 2015년;http://blog.joins.com/yang412/13839244)”라고 한 애덤 스미스의 ‘공정한 관찰자’가 가장 이상적인 자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섯 번째 주제는 ‘사물의 경중을 인식하는 존엄성’입니다. 사물의 경중을 인식한다는 것은 주체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인식하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자신이 지켜야 할 존엄성의 출발인 셈입니다. 흔히, 당면했을 때는 죽을 것만 같던 문제도 시간이 흐르면 별거 아니더라고 생각하게 된 경험이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중요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과 겉으로 보기에는 심각해보이지만 곧 지나갈 중요성을 지닌 것의 차이, 즉 사물의 경중을 인식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사물의 경중을 인식하는 일은 균형과 조화에 대한 감각을 길러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흔히 ‘매일 매일을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매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이어지는 수많은 날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여러 가지 일들을 기반으로 하는 연속적인 인생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이 인생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삶의 마지막 순간에 서서 자신이 밟아온 삶을 되짚어 보라고 권합니다. 즉, 상상 속에서 생의 마지막까지 가보고 그 종말의 순간에 서서 지금까지 자신이 사물의 무게를 올바르게 쟀는지 물어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가능할까요? 누구나 경험해보지 않은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고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의 장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죽음 이야기가 나온 것은 마지막 주제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존엄성’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노화나 질병은 주체로서의 독립성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를 인간으로서의 삶이 서서히 소멸해가는 과정의 하나라고 본다면 거부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죽을 수 있도록 놓아주는 것이야말로 죽음을 존엄하게 맞는 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일이 존엄을 지키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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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노스탤지어 - 모던의 흔적을 찾아가는 인문 여행 두 번째 티켓 4
하상일 지음 / 이담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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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연구년을 외국에서 보내기로 했다는 분들을 가끔 봅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잠시 미국에서 살아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외국에 나가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예전에 살아본 적이 있다면 쉽게 자리를 잡을 수도 있겠지만, 젊을 때와는 여러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또다른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수 있는 점은 장점이 될 것 같습니다. 중국의 상하이에서 연구년을 보내셨다는 하상일교수님께서는 중국에서의 생활을 기록으로 책으로 묶어내는 쾌거를 이루셨네요. <상하이 노스탤지어>가 바로 그 성과입니다. 일종의 뒤에 오시는 분들을 위한 안내서가 될 수 있고, 또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 될 수도 있어 양수겹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연수기간 동안에 일제 침략시기에 중국, 특히 상해로 이주한 한국 문인들의 활동을 연구주제로 삼았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상해상학원에서 한국학 강의를 진행하는 한편 정한 주제에 따른 연구활동을 병행하는 힘든 일을 하는 와중에 이국의 생활을 기록으로 정리하기까지 하셨다니 참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상하이 노스탤지어>는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상하이에서 정착하는 과정을 담은 일상, 상하이의 음식,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돌아본 상하이의 도시풍경, 문화 그리고 상하이 밖으로 나가 중국의 관광명소를 돌아보는 기회도 가져보신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가족들과 함께 갔었고, 먼저 가 계셨던 학교 선후배의 도움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정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먼저 오신 분들이 뒤에 오는 분을 챙겨주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즉, 돌보아주신 분들께 보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 오는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것이 먼저 돌보아주신 분들게 보답을 하는 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교수님은 단신 부임하셔서 정착하고 생활하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연구는 물론 자신의 일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일상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한국에서 하지 않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상하이에서는 아마도 출퇴근이나 구경하는 것도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서 차를 가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그래도 대중교통을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편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자들이 5월 15일 한국의 스승의 날을 챙겨주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중국 젊은이들의 마음씀씀이가 참 넓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저 역시 미국에서 5월 15일에 선생님들께 감사의 선물을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인 스태프가 놀라던 선물을 받고 쑥스러워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진도 참 잘 찍으시는 것 같습니다. 음식은 물론 풍경 등 상하이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장면들을 잘 찍어서 곁들이고 있어서 내용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역시 요즈음 출판의 대세는 읽는 책보다도 보는 책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널리 알려진 관광지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를 소개하시는 것도 남다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아이링이나 쑹칭링의 고택을 방문한 것이라던가 윤봉길과 루신과 관련된 장소를 찾는 것도 그렇습니다. 요즈음 상황 같아서는 제가 상하이를 가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머지 않은 미래에 상하이를 찾게 된다면 <상하이 노스탤지어>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모던의 흔적을 찾아가는 인문 여행’이라는 부제는 아마도 일제 식민시절의 문화양식이라던 모던 그룹에 속하던 문인들의 뒤를 살펴보겠다는 생각으로 보입니다만, 그 비중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 조금 아쉽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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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를 바꾼 짐머만의 전보
바바라 터크먼 지음, 김인성 옮김 / 평민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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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은 아시아와 아메리카대륙의 식민지경영으로 부를 쌓아가던 유럽제국들의 세력경쟁이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예정된 파국이었을 것입니다. 그 발단은 세르비아계 청년이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제국의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암살한 사건이었는데, 역사적 사건은 우연의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암살의 위기를 피할 수도 있었다고도 합니다. 황태자의 암살로 오스트리아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대영제국,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러시아제국, 오스만제국은 물론 불가리아, 이탈리아, 프랑스는 물론 아시아의 일본제국까지도 참전하였고, 미국은 전쟁이 후반에 이를 때까지 중립을 지키면서 연합국에 전쟁물자를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면서 연합국과 동맹국 사이에 평화협상을 중재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미국이 연합국에 가담하여 전쟁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독일 외상 짐머만이 멕시코주재 독일공사에게 보낸 한통의 비밀전문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2월 1일부터 무제한 잠수함 공격을 시작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계속 중립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멕시코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동맹을 제의한다: 함께 전쟁 수행, 함께 평화 체결, 넉넉한 재정 지원, 멕시코가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에서 잃었던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점 양해. 세부 협상은 공사가 알아서 할 것. 공사는 미국과 전쟁 발발이 확실해지는 순간 [멕시코] 대통령에게 위 사실을 극비로 알라고 대통령 재량으로 일본에게 즉각 지지를 요구하며 동시에 우리와 일본 사이를 중재하도록 제안할 것. 우리의 잠수함 무제한 작전으로 이제 몇 달 안에 영국이 강화를 맺도록 할 거라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주지시킬 것. 회신 바람. 짐머만(217쪽)”


그러니까 독일은 미국이 연합국으로 참전하면 전쟁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참전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연합군에 제공되는 군수물자를 차단하기 위한 양수겹장으로 미국 내 거주하는 독일인들이 봉기를 일으키고, 멕시코가 미국을 공격하여 전선이 생기도록 하는 성동격서의 전략을 구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짐머만의 비밀전문은 연합국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고, 이 가로채 미국 정부에 전달되고, U보트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 영국의 배에 탔던 많은 미국인들이 죽는 사건을 계기로 전문이 신문에 공개되면서 미국내 여론도 참전으로 기울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공개된 비밀문서와 관련된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짐머만의 전문이 제1차 세계대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하였습니다. <짐머만의 전문>의 2장부터 8장까지는 전문이 보내지기 전에, 독일이 전문을 발송하고 영국이 전문을 가로채기 직전까지, 1차 대전의 발발을 둘러싸고 세계 열강들의 사정과 관계, 역사적 배경을 소개합니다. 여기에는 신생국가 미국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멕시코와 충돌을 빚으면서 쌓인 필연적 갈등과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일본제국의 야욕이 곁들여지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옮긴이는 역자서문에서 저자의 <중국에서의 스틸웰장군과 미국의 경험; Stilwell and the American Experience in China>에서 인용한 ‘역사는 잘못된 계산의 나열이다(History is the unfolding of miscalculations.)’라는 구절을 글 제목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대통령 윌슨이 연합군을 지원하면서도 동맹국과 연합국간의 평화협상을 주선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나, 미국의 참전을 저지하기 위한 독일의 빌헬름황제의 꼼수들이 모두 역지사지하지 못하고 상황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더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짐머만의 전보>를 읽다보면 20세기 초의 정보전도 참 대단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이미 유럽 열강들은 아시아, 특히 일본을 내심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아시아를 넘어 대륙과 대양을 넘겨보고 있었다는 것도 말입니다. 제국주의적 사고로 헛된 꿈을 꾸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도 그런 망상을 꿈꾸고 있는 일본사람은 없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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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로 보는 이탈리아 기행 - 세계 인문 기행 2 세계인문기행 2
다나카 치세코 지음, 정선이 옮김 / 예담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사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돌아보고 싶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조각보처럼 쪼개진 여행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밀라노 근처 스트레사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러 갔다가 한나절 밀라노를 보았다던가, 발칸을 여행하면서 밀라노에서 귀국비행기를 타느라 베네치아를 보게 되었다던가 하는 식입니다.


언젠가는 통으로 이탈리아를 보게 될 것을 기약하면서 기회가 되는대로 조금씩 공부를 해보려고 합니다. <문화와 예술로 보는 이탈리아 기행>은 일본의 영화평론가 다나카 치세코의 여행에세이입니다. 영화평론이라는 전공을 살려 이탈리아를 무대로 한 영화를 주제로 삼아 이탈리아의 대표적 도시,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시칠리아, 밀라노, 그리고 로마에 대하여 적고 있습니다.


일단은 저도 가보았던 베네치아에 대한 저자의 이런 느낌에 공감합니다. “바다를 향해 한껏 열려 있는 기분 좋은 도시! 빛나는 대리석의 모자이크로 빼곡히 뒤덮인 교회와 나란히 서 있는 건물들의 화려한 장식, 이 모두가 웅대한 무대장치다.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고, 이 순간 베네치아는 나의 것, 나만을 위한 것이라며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여행자의 나르시시즘을 노골적으로 부추긴다.(59-60쪽)” 누구나 베네치아에 오면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든다면서, 저자는 베네치아에 머무는 동안 맛보는 행복감은 파리의 상제리제 거리에 서 있을 때보다도, 빈의 숲속에 발을 들여놓을 때보다도 훨씬 크다라고 고백합니다.


베네치아를 무대로 한 영화로는 비스콘트감독의 <여름의 폭풍(1954년)>과 데이비드 린 감독의 <여정(1955년)> 두 편을 인용하였는데, 오래 된 영화이고, 명화극장에서도 본 기억이 없어서 영화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실감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베네치아를 다녀왔기 때문인지, 나름대로의 이해는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두 편의 영화는 우연히도 계절이 모두 여름이었네요. 그래서 인지 봄의 베네치아와 가을의 베네치아의 느낌을 특별하게 적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레가타가 끝나면 비를 뿌리며 가을이 온다.(레가타(Regatta)는 원동기 없는 배를 사용한 여러 사람의 보트 경기입니다) 베네치아의 비는 아주 몰인정하다. 바다에는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배는 사정없이 흔들린다. 산마르코 광장까지 물에 잠긴다.(83쪽)” 제가 베네치아에 갔을 때가 가을이 깊었을 때였는데, 산마르코 광장에는 나무로 만든 통로가 놓여있는 것을 보면 밀물에 바닷물이 들어차는 모양이었습니다. 영화이야기를 빼고 나면 베네치아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적은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아내와 함께 간 발칸여행에서는 밀라노는 말펜사공항에서 비행기를 탄 것 말고는 구경한 것이 없습니다. 학회에 갔을 때, 두오모를 중심으로 구경한 것이 전부인데, 스칼라극장, 아케이드 갈레리아 등을 돌아본 것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미술관 등도 휴관이라서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밀라노의 도시의 여왕이다’라고 했다는 옛 시인의 말씀에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두오모의 일부에서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옥상에 올라가보아야 한다는 것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기회에 두오모를 가볼 기회가 있다면 꼭 옥상에 올라가 보겠습니다. 알프스까지 보인다고 하니 말입니다. 갈레리아의 황소 불알에서 세바퀴를 돌았으니 언젠가는 밀라노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시칠리아는 모르더라고 로마, 피렌체, 나폴리는 꼭 가보아야 할 곳으로 새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유럽의 분위기가 살벌해서 눈치를 보아야 할 것 같아서 아무래도 당장은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좋은 사진을 넉넉하게 삽입하고 있어 눈이 많이 호강하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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