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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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벼르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습니다. 언젠가 시각장애우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기 위하여 눈을 가리고 길에 나서는 체험을 해보았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한 것과는 정말 다르게 어렵더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실명을 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본 사람은 있을까요?


주제 사마라구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세상을 그려냈습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실명을 하고, 그 남자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실명을 하는 상황입니다. 마치 들불보다 빠르게 전파되는 전염병처럼 그저 같은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실명을 한다는 설정은 분명 의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급성 전염병이라고 해도 잠복기도 없이 발병하거나, 모든 사람이 발병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한 여자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발병이 아주 늦추어지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이 도시를 다스리는 책임자는 급성 전염병의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일단 발병한 사람을 모두 붙들어다 격리시키는 강력한 질병통제 체계를 수립하고, 심지어는 환자와 접촉한 사람까지도 발 빠르게 격리하는 조치를 취하지만, 이 병의 전파력은 발병하는 순간 통제력을 마비시키는 독특한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어떻든 눈먼 사람들을 모아놓은 곳에서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지키는 사람들의 지나친 경계태세로 인하여 환자가 죽어가고, 격리는 했지만, 간병은커녕 그들이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음식과 생필품의 제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필연적으로 악의 무리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주도되던 격리생활이 폭력적인 인물이 등장하면서 왜곡되면서 인간을 비참한 지경으로 몰아갑니다. 쥐꼬리만큼 배급되는 식품을 힘으로 장악하고 금품을 요구하거나, 심지어는 성폭행을 일삼으면서 인간임을 회의케 만드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힘은 묘하게 균형을 맞춘다는 자연계의 변치 않는 원리가 있습니다. 어느 한 편이 상황을 장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격리시설 안에서도 힘을 휘두르던 집단이 분명 나약해 보이는 한 여성에 의하여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시 희생을 강요당하던 여성에 의하여 불타 죽고 맙니다. 희생을 강요당하던 사람들은 그 사이에 탈출에 성공하지만, 이미 시설을 감시하던 군인들 모두가 눈이 멀어 철수한 상황입니다. 결국 도시의 기능이 마비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무정부상태에서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격리시설에서 같은 병실을 사용하던 일곱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면 생존을 모색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나아집니다. 결국은 처음 실명이 급성전염병처럼 번지는 상황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정말 이럴까 싶을 정도로 바닥까지 추락하지만, 그 가운데서 유일하게 병에 걸리지 않은 한 여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희망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래서 인간세상이 살맛나는 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눈먼 사람들의 시력이 발병했던 것처럼 갑자기 돌아옵니다. 그 구원의 공간은 안과의사의 집입니다. 이런 상황은 의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증상이 갑자기 나빠지는 전염병에서는 고비를 넘기는 순간 빠르게 회복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저자는 익명 속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려했음인지 등장인물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도시에 급성 전염병이 시작할 즈음에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통제능력을 보여주었던 정부가 후속조치에는 전혀 이성적이지 못한 점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전문가 집단은 무엇을 하는지 그저 군을 동원하여 격리하는데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메르스의 확산사태를 떠올린 것은 공연한 일이었을까요? 읽어가면서 점점 심란해지는 자신을 느끼던 힘든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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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 개정판 Meaning of Life 시리즈 11
어빈 얄롬 지음, 임옥희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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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에 [북소리]코너를 시작하고 두어 달쯤 지난 다음이라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강원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시는 김선희교수님의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 http://blog.joins.com/yang412/12474996>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하여 철학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모색해본다는 내용입니다. 리뷰를 마무리하면서 어빈 얄롬교수의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싶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시에는 책이 절판되어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추측에 머물렀던 것인데, 이번에 읽어보니 확신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인연도 있고, 책을 읽어보니 생각거리가 많아서 [북소리]에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어빈 얄롬는 세계적인 정신과 의사이자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정신과의 명예교수입니다. 정신의학분야의 전문서적도 저술하는 한편 심리치료에 관한 베스트셀러 소설의 작가로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미에 붙여둔 작가노트에는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가 사실과 허구를 잘 엮어낸 팩션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1882년의 빈은 정신요법의 메카이기도 했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적 구성요소인 니체의 절망, 브로이어의 정신적 고뇌, 안나 O(베르타 파펜하임), 루 살로메,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관계, 정신분석 치료법의 동향 등은 1882년 당시 실재했던 사실들이라고 합니다.


출판사가 요약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정신분석 기법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1882년, 성공한 의사 요제프 브로이어는 환자 베르타 파펜하임에 대한 강박적 욕망과 중년의 위기로 절망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 묘령의 여인 루 살로메로부터 은밀하게 한 무명 철학자를 치료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환자는 바로 만성적인 편두통과 발작, 루 살로메와의 실연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던 니체였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니체는 치료를 거부하고, 브로이어는 생각 끝에 기발한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의 절망을 니체가 철학으로 치유하고, 니체의 질병은 자신이 의학으로 치료하자는 것. 니체가 이를 수락함으로써 두 사람은 ‘대화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속마음을 감춘 채 치열한 지적 공방을 벌이며 마음의 벽을 높게 쌓던 두 사람은, 차츰 가면을 벗고 각자의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우정이 깊어지는 가운데 브로이어는 마침내 니체의 철학적 상담을 통해 자기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실존적 불안의 실체를 직시하게 되는데….” 이야기의 전개가 물 흐르듯 유연하고, 상황마다의 심리묘사가 뛰어나서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난 다음에도 여운이 길게 남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우선은 김선희교수가 주장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브로이어박사는 아내와 함께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동안 루 살로메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헤어진 친구 니체교수가 절망으로 자살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그의 절망을 치료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브로이어박사는 절망을 의학적 증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모호하고 부정확하며 관념적인 것이라서 의학적 치료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이어박사가 니체교수를 맡게 된 것은 아름다운 루 살로메의 부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루 살로메는 브로이어박사와 니체교수의 만남을 주선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루 살로메와의 만남과 이별에서 니체는 환희와 절망을 오갔고, 절망을 딛고 일어나 창조를 일구어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루 살로메가 가진 묘한 재능이 일조를 한 셈인데, 그녀는 당대의 수많은 창조적 인물들의 내면에 불을 질러 자극하는 특출한 능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니체가 그랬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랬던 것입니다. 니체와 루 살로메의 관계는 고명섭기자가 <니체극장; http://blog.joins.com/yang412/12970004>에서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고명섭 지음, 니체극장 311-351쪽, 김영사, 2012년).


니체교수를 진찰한 브로이어박사는 그의 지독한 편두통치료를 위하여 입원을 제안하는데, 편두통을 빌미로 니체교수의 자살의도를 확인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정작 니체교수가 치료를 거부하고 떠나려 하자 자신의 절망을 니체교수가 철학으로 치유하고, 니체교수의 편두통은 자신이 의학으로 치료해보자는 기발한 제안을 하게 됩니다. 브로이어박사의 절망은 안나 O라는 익명의 젊은 여자환자에게 빠져들었다가 아내의 강압으로 관계를 정리한 뒤에 생긴 것으로 설정하고 니체교수에게 치료를 부탁한 것입니다. 그런데 니체교수와 대화를 이어면서 설정했던 절망이 실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의학의 길에 들어서면서 환자와의 감정이 깊어지는 것에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적절한 관계로 윤리적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환자와의 관계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떻든 니체교수는 브로이어박사의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철학이 인간의 관념적 문제에 대하여 해결방안을 내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응용철학의 영역을 시도하는 셈입니다. 환자진료를 두고 간섭하는 아내와의 갈등이 깊어가고 있는 브로이어박사에게 니체교수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버리고 자기 인생을 탐구하는데 바쳐야 한다’(288쪽)라고 하면서 사고실험을 해볼 것을 권유합니다. 드디어 브로이어박사는 프로이트박사에게 최면요법을 부탁하게 됩니다. 스스로 최면상태에 들어 니체교수가 권유한 자유로의 도피를 경험하려는 것입니다. 최면상태에서 브로이어 박사는 아내 마틸데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집을 떠나 안나O가 입원하고 있는 요양원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향하던 마음이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돌아섭니다. 다음은 아내의 성화로 해고했던 에바를 만나 도움을 얻고자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이미 돌아섰다는 것을 확인하였을 뿐입니다. 브로이어박사가 향한 곳은 이야기가 시작된 베네치아입니다. 베네치아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자신을 변모시키기 위하여 수염을 깍고 적당한 옷가지를 찾지만 그는 결국 아내 마틸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브로이어는 부자집 딸인 마틸데와 결혼함으로써 사회적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었지만, 반대급부적으로 아내가 자신을 구속한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녀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 그는 다른 여자들, 다른 삶을 경험할 자유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아내를 떠나 자유를 얻은 상황에서 또 다른 구속을 찾아 안나O 그리고 에바를 찾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진실을 선택해야 한다’라는 니체교수의 조언대로 아내와의 결혼은 자신이 결정한 선택인 만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결국 브로이어박사는 니체교수의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절망을 치유하는데 성공한 셈입니다. 우리 시대에서 많은 브로이어박사를 만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자신의 절망이 잘못된 생각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찾게 되었다고 말한 브로이어박사는 그동안 접근하지 못하던 문제, 니체교수에게 비슷한 문제는 없는가 묻습니다. 루 살로메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압박한 것입니다. 니체교수도 루 살로메와의 관계를 털어놓으면서, 브로이어교수가 안나O와의 관계로 인한 절망을 치유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 또한 루 살로메와의 관계로 절망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브로이어박사 역시 루 살로메의 요구로 자신이 니체교수의 진료를 맡게 되었다고 고백하자 니체교수가 발작을 일으킵니다. 니체교수를 진정시킨 다음 두 사람은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루 살로메의 실체를 깨닫게 된 니체교수는 눈물을 흘립니다. 루 살로메가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니체교수는 자신의 눈물에 대하여 홀로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 브로이어에게 말하면서 역설적으로 안도감을 느꼈으며, 그러한 느낌을 브로이어와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강렬한 감동 때문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철학자의 눈물을 일반인과는 그 의미까지도 다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에 있어 눈물을 마음을 정화시키는 치료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브로이어박사와 니체교수의 이야기에서 욕망의 허상을 깨닫게 된 것도 큰 깨달음입니다만, 어느 의사에게도 중요한 두 가지를 다시 새긴 것도 수확입니다. 의사-환자와의 관계는 적절한 거리가 중요하다는 점은 앞서 말씀드렸고, 두 번째 중요한 점은 의사가 환자의 질병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방식입니다. 니체교수는 만난 브로이어박사는 90분에 걸쳐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철저하게 진찰을 합니다. 정리해보면, “우선 환자가 자기의 병에 관해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은 다음 체계적으로 각각의 증상을 조사했다. 증상의 처음 양상,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 치료에 대한 반응을 기록했다. 다음 단계는 몸에 있는 모든 기관계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머리끝에서 시작해 점점 내려와 발끝까지 샅샅이 살폈다. (…) 이와 같은 기능검사는 환자의 기억과 일일이 대조를 거쳐 아무 것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했다. 브로이어는 심지어 이미 진단을 확신하는 경우에도 그 어떤 것도 빼먹지 않았다. 다음으로 환자의 병력을 주의 깊게 살폈다. 환자의 어린 시절 건강 상태, 부모와 형제들의 건강상태, 직업 선택, 사회생활, 군 복무, 지리적 이동, 식습관과 여가 시간 선호도 등 생활의 다른 측면들을 샅샅이 살폈다. 마지막 단계는 통찰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지금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었다.(90-91쪽)”


여기 요약한 내용만을 보면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에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에서 환자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이유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중심으로 포괄적인 검사를 진행하고 검사결과에 따라서 문제를 압축해 들어가는 접근방식이 우리나라의 의료현장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와 관련하여 검사실 검사에 대한 브로이어박사의 견해는 참고할 만합니다. “빈 의대에서는 자네에게 뭘 가르친 게야? 오감으로 검사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프로이트박사? 실험실 테스트는 잊어버리게. 그건 유대인 의학이야. 실험실 결과는 자네가 이미 오감으로 검사한 것을 확인해주는 것뿐일세.(130쪽)” 요즈음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검사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세돌기사와 대국에서 승리함으로써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알파고의 다음 목표가 의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환자를 두고 누가 빠른 시간에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가를 두고 시합을 한다면 이런 방식의 진료에 익숙해진 우리나라의 어느 의사도 알파고를 이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니체교수의 수많은 저작물에 담긴 내용을 인용하고 있는데, 지나치게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보로이어박사가 니체교수를 처음 진찰할 때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죽은 자의 최후의 보상은 더 이상 죽지 않으리라!’라는 대목을 인용합니다.(115쪽). 아마도 제가 읽은 <즐거운 지식>이 같은 책이 아닐까 싶어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저자가 인용한 대목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농담, 음모 그리고 복수’라는 제목으로 된 독일식 압운의 서곡과 모두 5부로 구성된 <즐거운 지식>은 아주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짧은 경구의 형식을, 어떤 것들은 엽편소설(葉篇小說)처럼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를 읽고 난 느낌을 정리해보면, 가볍지 않은 두께만큼이나 생각거리가 많은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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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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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발칸여행길에 찾은 모스타르의 곳곳에는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이 남아 있었습니다. 크로아티아계의 포격으로 스타리 모스트가 무너져 내렸을 때 숨어있던 보스니아사람들까지도 위험을 무릅쓰고 네레트바강으로 나와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 스타리 모스트는 지금은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있습니다만, 도심 곳곳에는 여전히 복구되지 못한 채 폐허로 남아 있는 건물들과 건물벽에 마마자국처럼 남아 있는 총탄자국이 끔찍했을 전쟁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었습니다(http://www.medicaltimes.com/Users4/News/newsView.html?ID=1103908).


일정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사라예보에는 갈 수 없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사라예보는 보스니아전쟁 기간 중인 1992년 4월 5일부터 1996년 2월 29일까지 무려 1,425일 동안 세르비아계인 유고슬라비아 인민군과 스릅스카 공화국군에 의하여 포위되었습니다. 사라예보 포위전은 현대전쟁 사상 가장 긴 기간이라고 합니다. 사라예보를 포위한 세르비아계 병력은 13,000명에 불과했고, 포위된 사라예보에 주둔한 보스니아군은 70,000명이었지만, 무장에서 차이가 있었고, 지형적으로 불리함 때문에 수비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라예보는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서쪽으로만 열려 있는 분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라예보 주변의 고지를 선점한 세르비아 민병대는 대포, 박격포, 전차, 대공포, 중기관총, 로켓 발사기, 지대공미사일 등 중무기로 포격하였을 뿐 아니라 시내의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고 저격수를 동원하여 시민들의 통행을 위협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병력의 열세로 사라예보 점령에 실패한 세르비아계는 사라예보를 봉쇄하고 식량과 의약품의 보급은 물론 전기, 물, 난방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 모두 차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예보 시민들은 투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3개월이 지난 6월말 경 사라예보공항이 안전지역으로 편입되면서 유엔이 지원하는 보급품으로 연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듬해 중반에 완공된 사라예보터널은 포위망을 뚫고 외부세계를 연결하게 됨으로써 도시를 지키는데 필요한 무기와 생활용품을 들여올 수 있었던 것도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터널을 통하여 일부 시민들은 사라예보를 탈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위키피디아. 사라예보 포위전;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B%9D%BC%EC%98%88%EB%B3%B4_%ED%8F%AC%EC%9C%84%EC%A0%84)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사라예보 포위 당시의 있었던 일들을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사라예보 필하모닉의 첼리스트, 대학사격팀의 선수였던 애로, 회계사 보조로 일하는 케난, 은퇴를 앞둔 제빵사 드라간 등입니다. 작가는 네 사람의 등장인물을 통하여 세르비아계에 포위된 보스니아 사람들의 절박한 삶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1992년 5월 27일 하루를 연명할 빵을 사기 위하여 빵가게에 길게 줄을 섰던 사람들을 향해 날아온 포탄은 22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고 100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사건현장에 나타난 첼리스트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합니다. 희생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헌정되는 연주는 22일 동안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세르비아계의 공격에 맞서 저격수로 변신한 애로는 세르비아계 저격수로부터 첼리스트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세르비아계 저격수의 위협은 드라간의 외출에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저격수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건물의 그늘을 따라 걸으면 그나마 안전하지만 도로를 건너야 하는 교차로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은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차로를 안전하게 건너기 위하여 사람들은 지그재그로 달리거나 100m경주를 하듯 빠르게 달리기 마련입니다.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까지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사정이 있거나 성미가 급한 사람이 선뜻 나서기도 합니다. 드라간을 통하여 그 순간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 고통을 그려낸 것입니다.


드라간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아내와 열여덟 살된 아들을 이탈리아로 탈출시키고는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드라간을 통해 저자는 한 도시의 소멸과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처음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기억 속의 도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가능한 원래 모습 그대로 마음에 간직하기 위해 노력했다. (…)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고, 그러던 어느날 자신이 심지어 마음속에서도, 더 이상 도시의 소멸에 저항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주위에 보이는 것만이 단 하나의 현실이었다.(5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머물고 싶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렇게 두려워할 만큼 자신의 삶이 가치가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곧 죽을 수도 있다고 인식하면서도 ‘찾아올 공포에 맞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하여 ‘예스’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보며 놀라기도 합니다.


케난은 정기적으로 도심에서 떨어진 언덕에 있는 양조장으로 물을 뜨러 갑니다. 같은 아파트 아래층에 살고 있는 리스톱스키부인의 몫까지 여러 개의 물통을 챙겨들고, 거리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 먼 길입니다. 이러한 케난의 모습을 통하여 당시 사라예보 시민들의 힘든 일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 마침 양조장에 포탄이 떨어져 여러 사람들이 죽고 다치게 됩니다. 포탄이 떨어진 현장에서 케난은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포탄이 떨어지자마자 도망친 사람들, 즉 이타심이나 시민의식보다는 자기보호본능이 강한 사람이 있고, 도망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는 살 가망이 있는 사람들을 돕는 시민의식이 투철한 사람 그리고 멍하니 서서 다른 사람들이 도망치거나 구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 등입니다. 일상처럼 물통을 집으로 나르는 케난은 마지막 유형이라고 하겠습니다. 한순간 몸의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서 그는 자신이 지쳤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원한적도 없고 창조하는데 가담한 적도 없으며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느라 지쳤던 것(213쪽)’입니다.


작가는 네 사람의 등장인물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만, 첼리스트의 경우는 특별한 것 같습니다. 첼리스트가 사고현장에서 연주할 곡목으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고른 이유는 이렇습니다. “폐허가 된 도시 풍경에서 거의 지워졌던 무언가가, 다시 해롭고 가치 있는 것으로 재건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희망을 품는다. 이제 희망은 포위당한 사라예보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이며, 그마저도 대두분의 사람들에겐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다.(14쪽)” 첼리스트 스스로도 스물두번의 연주를 마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사라예보 시민들이 희망의 끈을 이어갈 수 있도록 북돋워주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써야만 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읽은 세르비아계는 첼리스트를 저격해야만 했던 것이며 보스니아 군에서는 그를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비노니(1671년-1751년)의 ‘아다지오 G단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이 곡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비발디와 함께 18세기 바로크 시대의 베네치아 악파를 대표하는 알비노니의 전기를 준비하던 밀라노의 음악학자 레모 지아조토(Remo Giazotto)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 드레스덴의 국립 도서관(Saxon State Library)에서 필사본 악보조각을 발견한 것이 계가기 되었습니다. 지아조토는 몇 마디의 선율과 베이스를 스케치한 악보조각을 보고 알비노니가 1708년경 작곡한 교회소나타 작품 4의 일부분일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악보를 바탕으로 현재의 ‘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된 ‘오르간이 딸린 현악 합주를 위한 아다지오 G단조’를 완성한 것입니다.


파이프오르간의 웅장한 선율에 화답하는 바이올린의 애처로운 선율은 듣는 사람의 가슴을 저리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첼로로 연주하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의 묵직한 선율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강한 울림을 주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세르비아계가 보낸 저격수도 첼리스트의 연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저격수가 조준기로 첼리스트를 겨눈다. 애로는 총을 쏘려다 멈춘다. 저격수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 올려져 있지 않다. (…) 음악은 거의 끝나 가는데, 그는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는다. (…) 그의 고개가 뒤로 약간 젖혀진다. 그의 감긴 눈을 본 그녀는 그가 더 이상 조준기를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그가 뭘 하고 있는지 알겠다. 너무도 명백한, 틀릴 여지도 없는 사실이다. 그는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다.(190-191쪽)” 같이 듣고 있는 그녀까지도 슬프게 만드는 음악이었습니다. 무겁고 느린 슬픔, 눈물을 자아내지는 않지만 울고 싶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슬픔 말입니다.


첼리스트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 애로는 세르비아계 저격수를 유인하기 위한 덫을 놓습니다만, 상대편 저격수 역시 자신을 목표로 덫을 놓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다행히 상대방이 쏘기 직전에 발견할 수 있어 죽음을 면하고, 거꾸로 마음을 놓은 상대방을 저격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이 남자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이 남자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교차되면서 많은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케난은 물을 뜨기 위하여 양조장에 갔다가 포격을 당한 이후로 매일 첼리스트의 연주를 들으러 갑니다. 매일 오후 네 시, 그 거리에 도착한 케난은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도시가 다시 살아나고 주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첼리스트가 약속한 스물두 번째 연주가 있던 날, 근처에 몸을 숨긴 애로는 느린 현의 진동을 받아들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연주를 끝낸 첼리스트 역시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고 울었습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첼리스트는 박격포가 떨어진 웅덩이를 채우고 있는 꽃더미로 다가가 그 곳에 첼로활을 떨어뜨립니다. 첼리스트가 사라진 뒤, 애로도 거리로 내려가 첼리스트가 떨어트린 활 옆에 자신의 소총을 내려놓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알리사였습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드라간은 세 사람과 동선이 겹치지는 않습니다. 작가가 드라간을 통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사라예보를 지켜보는 국외자의 시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르비아계 저격수들이 좋아하는 건널목에 카메라를 세우고 저격의 순간을 포착하려는 카메라맨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저격의 위험을 인식한 듯 카메라맨은 방탄복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하여 주변을 살피고 있습니다. 길을 건너려다가 카메라맨을 본 한 남자는 길을 건너기에 앞서 옷매무새를 단장하기까지 합니다. 그 순간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저격수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지 총을 쏘지 않는다. 남자가 맞은편에 도착하자, 카매라맨이 실망한 눈치다. 남자가 뛰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실망에 드라간은 화가 나고, 마치 동물원의 짐승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284쪽)” 사라예보의 비극적 상황이 외부세계의 저녁뉴스를 타게 되면 사람들은 끔찍한 참상에 대하여 한마디씩 거들 수는 있겠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드라간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건널목에 총을 맞고 숨져있는 남자를 끌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격수의 표적이 될 수도 있음에 용기를 낸 것입니다. 현실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현장에 남아 있는 끔찍했을 것 같은 당시의 흔적들을 직접 확인하면서 떨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역시 그들과 별 다를 것 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런 참상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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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즈음 조기 치매를 주제로 한 드라마 <기억>을 즐겨 시청하고 있습니다. 전공 분야이기도 하지만, 저 역시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인지라 관심을 쏟고 있기도 합니다. 치매의 증상과 경과가 다양하기 때문에 정형화된 치료나 간병이 어렵다고 합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데다가, 수임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치매증상으로 치료받고 있는 환자의 병력을 이용했던 적이 있어서 충격이 더 했던 모양입니다. 드라마의 특성상 경과를 압축해서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어 치매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키우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기억단절, 방향감각 상실, 분노조절 장애 등 치매환자가 보이는 증상 들을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기억상실에 관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는 인연 때문인지 마침 기억상실에 관한 소설을 소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입니다. 이시구로는 1954년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1960년 영국으로 이주했습니다. 켄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 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82년에 발표한 첫 작품 <창백한 언덕 풍경>은 일본을 배경으로 전후의 상처와 현재를 절묘하게 엮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89년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이 부커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작가가 등단 후 35년 동안 여섯 편의 장편과 한 편의 단편집만을 발표해 온 것은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성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품 마다 독특한 주제를 다룬 이시구로는 <더 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작가 50인에 선정될 만큼 현대 영미문학에서 중요한 작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파묻힌 거인>의 무대는 고대 잉글랜드이며 시대적 배경은 5-6세기경 브리튼족과 색슨족 사이에 벌어진 정복전쟁이 끝난 뒤라고 저자는 각주에서 설명하였습니다. 판타지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굳이 잉글랜드의 역사와 연계하여 이해하려 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브리튼족은 픽트족과 함께 브리튼섬에 살던 켈트족 원주민입니다. 픽트족은 아직까지도 기원이 모호하다고 합니다. 기원후 43년 로마의 점령 이후 브리타니아라는 이름의 로마속주가 되었습니다. 5세기 무렵 앵글로색슨족의 침공으로 지배를 받다가 프랑스의 브르타뉴지역으로 이주해나가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영국 사람들은 5세기 무렵 영국으로 이주한 고대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의 후예라고 합니다만, 앵글족과 색슨족에 더하여 주트족까지 포함된다고 합니다.


앵글족(Angle)은 발틱해 인접 지역에 등장하여 4~5세기 무렵에는 덴마크 제도와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로 이동하여 살다가, 영국의 동쪽 중부로 이주해왔다고 합니다. 색슨족(Saxon)은 독일의 니더작센과 베스트팔렌 지역에 살았던 종족으로 영국 동쪽 남부로 이주해왔던 것입니다. 주트족(Jutes)은 스칸디나비아의 데인족, 스베아족과 유사한 게르만계 민족으로 덴마크 제도 북부에 살았는데, 5세기 영국 최남부 색슨 왕국 아래쪽으로 이주해왔습니다.(위키백과, 브리튼인; https://ko.wikipedia.org/wiki/%EB%B8%8C%EB%A6%AC%ED%8A%BC%EC%9D%B8, 앵글로색슨족; https://ko.wikipedia.org/wiki/%EC%95%B5%EA%B8%80%EB%A1%9C%EC%83%89%EC%8A%A8, 참고)

소설을 소개할 때 줄거리의 수위를 정하는 것이 가장 곤혹스러운 점입니다. 때로는 스포일러가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출판사에서 공식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줄거리를 인용하곤 합니다. <파묻힌 거인>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대 잉글랜드의 안개 낀 평원,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토끼 굴 언덕 마을에 살면서 동족인 브리튼족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들 부부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며 온 마음을 다해 보살피지만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는 기억하는 것이 없다. 마을을 뒤덮은 망각의 안개가 이들 부부뿐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의 기억을 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안개는 사람들에게서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기억도, 오랜 원한과 상처에 대한 기억도 모두 가져가버렸다.


어느 날, 안개로 자욱한 기억 저편에서 비어트리스는 문득 자신들에게 다 큰 아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아들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다. 길을 떠난 노부부는 하룻밤 묵어가기 위한 마을에서 용감한 젊은 색슨족 전사 위스턴이 도깨비들에게 납치된 소년 에드윈을 구해내는 장면을 보게 된다. 액슬은 위스턴을 보면서 자신 역시 아마도 한창 나이 때는 위스턴과 같은 전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한편 도깨비에게 물린 상처로 인해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소년은 전사와 함께 마을을 떠나 노부부의 여정에 동참하고, 이들은 곧 낡은 갑옷을 입은 늙은 기사 가웨인 경을 만난다. 액슬을 알아보는 듯한 가웨인 경은 그러나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임무를 숨긴 채 이들과 동행한다. 힘겹게 찾아간 수도원에서는 수상한 의식이 행해지는 가운데 이들의 목숨이 위협받고, 흔들리는 바구니에 몸을 싣고 강물 위를 떠내려가다 도깨비에게 공격을 당하는가 하면, 독을 품은 염소를 끌고 산을 오르는 일도 있다.


그리고 이 위험 가득한 여행길에서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서로를 향한 사랑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그동안 잊혔던 어두운 상처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소설을 읽다보면 기억과 망각의 역할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의 과거 기억을 한 번에 통제할 수 있는 기전으로 ‘망각의 안개’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개가 많은 영국의 기후적 특성에 착안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시사철 안개로 뒤덮여만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안개가 없을 때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안개가 걷힐 때는 잊혀진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을까요? 액슬과 비어트리스가 예전에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안개에 특별한 무엇이 있다고 한다면 오랜 과거의 기억 뿐 아니라 최근의 기억마저도 망각의 저편으로 보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최근의 기억까지도 망각하게 된다면 사회적 관계는 성립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작가는 ‘과거의 일-설령 아주 최근 일이라도-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 마을 사람들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17쪽)’라고 설명합니다. 안개가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는 역할을 한다면 왜 안개의 효과를 차단하는 물질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요?


참, 액슬과 비어트리스가 살고 있는 토끼굴이라는 거주형태도 마음에 걸립니다. 작가 또한 이점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웅장한 문명들이 번성하고 있던 시대에 우리는 이곳에서 철기 시대를 간신히 벗어난 정도의 삶을 살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 사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13쪽)” 판타지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해달라는 주문 같습니다.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아들을 찾아가는 길에 색슨족 마을에 들어서게 됩니다. 색슨족 사람들은 토끼굴에 사는 브리튼족 사람들과는 달리 제대로 된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과거를 잊고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케리그라는 이름의 암용이 내뿜는 입김이 안개처럼 땅을 뒤덮고 사람들의 기억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케리그라는 암용을 죽이게 되면 사람들의 기억이 되돌아올 것인데, 색슨족 마을 인근의 산 위에 있는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케리그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도원에서 만난 조너스신부는 비어트리스에게 안개의 진실을 전하면서 안개에서 벗어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닐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안개는 좋은 기억 뿐 아니라 나쁜 기억까지 모두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 비어트리스는 나쁜 기억 때문에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로 몸을 떨 수도 있겠지만, 삶이 어떤 것이었더라도 함께 기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기억이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긴 여행 끝에 등장인물들은 암용이 머물고 있는 장소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각자의 역할이 드러나게 됩니다. 늙은 기사 가웨인경은 아서왕의 조카로 암용을 보호하는 일을 맡아왔던 것이고, 위스턴은 암용을 죽이라는 색슨족왕의 밀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아서왕이 마법사 멀린으로 하여금 암용의 입김으로 망각의 안개를 만들어내도록 한 것은 망각의 힘을 빌어 끝나지 않을 전쟁을 마감하고 평화를 이끌어냈던 것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기억이라는 재능을 주어 만물의 영장이 되도록 했을 뿐 아니라, 망각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주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다면 그 기억들의 충돌로 오는 스트레스로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반면 색슨족왕이 케리그를 죽이려는 목적은 다가올 정복전쟁의 길을 닦기 위함이었습니다. 케리그가 죽게 되면 묻혀있던 거인이 깨어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원한과 증오를 담은 기억이라는 거인이겠지요. 브리튼족과 색슨족은 또 다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러야 하고, 무고한 부녀자와 노약자까지도 죽음으로 몰리게 될 것입니다. 가웨인경과의 결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노쇠하여 힘을 쓰지 못하는 케리그를 죽인 위스턴이지만 오랜 세월을 브리튼족과 어울려 살아왔기 때문인지 결코 환호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브리튼족인 액슬과 비어트리스에게 멀리 떠나라고 말합니다.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아들을 찾아 토끼굴을 떠났을 때 작은 만에서 만났던 뱃사공으로부터 바다 건너 있는 특별한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복잡한 세상을 떠나 조용한 삶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섬에 들어간 사람들은 많아도 절대로 다른 영혼을 보지 못한 채 홀로 풀밭과 나무 사이를 거닐거나 한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이 유일한 거주자인 것처럼 행동한답니다. 부부가 그 섬에 들어가 같이 살려면 특별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강한 사랑의 유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공은 그것을 확인해야만 한답니다.


사공은 가장 소중한 기억이 무엇인지를 부부로부터 따로 묻는데,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기억을 이야기할 때는 진실을 숨기는 게 힘들다고 합니다. 부부가 사랑으로 이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도 사공의 눈에는 분노나 화, 심지어는 증오가 보일 때도 있고, 더러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다른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한답니다. 진정 오랫동안 이어져온 지속적인 사랑을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이렇듯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게 되면 사공은 두 사람을 배에 태워 섬으로 간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책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아내 혹은 연인과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보게 될 것 같습니다.


위스턴의 조언을 들은 두 사람은 그 섬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그 작은 만으로 가서 뱃사공을 만났습니다. 뱃사공은 두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을 물었고, 두 사람의 대답은 일치했습니다. 이제는 같이 섬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는데, 암용이 죽고 안개가 걷힌 다음에 사라졌던 옛 기억이 두 사람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두 사람은 같이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기억과 망각의 상보적 역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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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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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오베라는 남자>에서 나름대로 정한 세상 살아가는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남자를 그린 데뷔작으로 일약 주목을 받은 스웨덴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입니다. 이번에는 자상하면서도 뚝심 있는 할머니를 이어받은 8살 소녀가 주인공입니다. 무대는 할머니와 손녀딸 엘사가 살고 있는 4층 아파트입니다. 아파트라고는 하지만 각층에 두 집이 살고 있는 빌라입니다. 맨 위층에는 할머니의 집과 엘사가 엄마와 사는 집이 있습니다.


엘사는 우리말로 ‘미운 나이’라고 하는 일곱 살입니다. 물론 이야기 중에 여덟 살 생일을 지내게 되니 한창 미운 나이를 지나가는 시기라고 해야 하나요? 어떻든 엘사는 어른들이 ‘나이에 비해 아주 성숙하다’라고 평가하는 특이한 아이입니다. 할머니는 그런 엘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줍니다. 그것은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엘사로 이어지는 모녀3대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정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두 사람은 환상적 요소가 강한 특별한 관계인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깰락말락나라’라는 신비로운 나라를 같이 여행하고 그 기억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환상의 세계에서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동화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런데 엘사의 할머니께서 안타깝게도 암으로 돌아가시게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 할머니는 엘사에게 중요한 미션을 맡깁니다. 할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를 아래층에 사는 괴물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미안하다’라는 인사와 함께... 미션은 꼬리를 물고 등장합니다. 할머니는 아파트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남긴 것입니다. (생전에 이러저러한 일을 해서) ‘미안하다’라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미션에는 엘사로 하여금 할머니의 과거사를 이해하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얽혀 있는 인연을 이해하고, 떠나지 않도록, 즉 환상을 공유하도록 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기 때문에 그 연결을 파악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환상의 세계에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서 할머니가 엘사에게 들려주는 환상의 세계에 관한 동화는 기실 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드러납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즐기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을 뿐 아니라, <반지의 제왕>, <해리포토>등 판타지 소설들을 오마쥬하는 장면도 많이 나올 뿐 아니라, 인터넷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어 주로 젊은 층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가끔 위험한 일을 저질러야 할 때도 있다. 그래야 우리가 진정한 인간인거다(17쪽)”라는 구절은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나오는 모양입니다. 엘사의 할머니는 외과의사였고, ‘국경없는 의사회’처럼 구호활동을 벌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갈데 없는 사람이 생기면 집으로 데려와 아파트에 살게 했던 것입니다. 할머니가 구호활동에 나섰던 것은 자신이 고아출신이란 점도 작용했던 모양입니다.


할머니가 엘사에게 준 미션은 할머니 소유의 아파트를 엘사에게 물려주기 위한 조치였던 모양입니다. 엘사라면 아파트에 살고 있는 누구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엘사가 유언장을 읽기 전에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처였던 것입니다. 할머니가 남긴 마지막 편지는 엘사 자신에게 보내진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편지는 ‘사랑한다’가 아니라 ‘주글 수밖에 없어서 미안해(539쪽)’였습니다. 할머니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가 마음속으로는 그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할머니가 무엇을 원했는지를 기억해냈습니다. 결국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집을 팔고 이사를 가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들 사이에서 더 많은 동화가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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