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 치유의 도서관 ‘루차 리브로’ 사서가 건네는 돌봄과 회복의 이야기
아오키 미아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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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얻은 소감을 적는 방법도 정말 다양하다는 생을 하게 만든 책입니다.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는 일본 나라현 산촌에 있는, 70년 된 고택에 자리 잡은 인문계 사설 도서관 루차 리브로(LUCHA LIBRO)‘의 사설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서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도서관의 이름 루차 리브로라는 이름에 담은 의미를 따로 설명해두지는 않았습니다만, 단어적인 의미만을 보면 책에 대해 고심하다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저의 과거에는 언제나 삶의 어려움이 자리해 있습니다.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을 살아내기 위해 책을 끼고 지내왔다는 대목에서 유추해낸 것입니다.


바닷가 도시에 있는 대학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던 화자는 복합골절로 적지 않은 기간 병원 신세를 졌고, 정신과 병동에도 입원한 바가 있습니다.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정신적 긴장감으로 생긴 정신질환이었습니다. 결국 대학 도서관의 사서직을 버리고 나라현의 산속 마을 히가시요시노무라에 있는 고택을 사서 사설 도서관을 꾸민 것입니다.

도서관에서는 독서모임도 운영하고, 도서관에 대하여 그리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누리망 통신을 내보내기도 하기 때문에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는 듯합니다일반적인 도서관과는 다른 점이 많은 도서관이기에 이런 책도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서문과 소제목의 이름을 보면 화자가 산촌에 루차 리브로를 개설한 이유를 알듯합니다.


화자는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를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제가 읽어온 책과 그 독서를 둘러싼 기억을 펼쳐놓을 것입니다. 그 궤적은 사막을 걷던 사람이 오아시스를 발견하여 물을 마시고 살아남은 지점을 표시한 선과 점 같아서, 하늘을 나는 새가 보면 땅을 기어가는 별자리처럼 보일디조 모릅니다. 이 별자리가 나중에 오는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어, 물이 샘솟는 장소를 표시해주기 바랍니다.(8)” 그러니까 루차 리브로는 치유의 공간인 셈입니다.


도서관 안팎의 분위기,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도서관이 있는 산속 마을 히가시요시노무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책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책읽는 모임에서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독서모임의 이름도 살아가기 위한 판타지 모임입니다.


책의 앞부분에는 루차 리브로 안팎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실었는데 나무숲이 감싸고 있는 고택의 모습에서는 도서관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으나 집 안을 보면 도서관이 틀림이 없습니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도서관 안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숲속에서, 개울가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치유의 책읽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의 도서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양한 책들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아쉬운 점은 일본 작가 중심이고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책도 적지 않은 것 같아서 찾아 읽고 작가가 책에서 논의한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듯합니다. 그래도 원서에서도 포함되었는지 아니면 우리말 번역본에만 있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말미에 이 책에서 인용된 책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으로 절판되지 않은 책의 목록를 실어놓은 것은 좋은 의도였다는 생각입니다. 절판된 책도 도서관에서 찾아 읽을 수 있으니 목록에 포함되었더라면 좋았겠습니다.


이 책에서 인용한 책들 가운데 읽어보면 좋을 듯한 책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책을 꼽아보았더니 12군의 책을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책을 읽은 뒤에 바로 읽어본 책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라는 만화책이었습니다. 영국 작가 필리파 피어스의 작품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인용한 이유는 히로시마 교육위원회에서 초등학생 대상의 평화 학습교재에 실려 있던 <맨발의 겐>의 내용을 삭제한 것에 대하여 의문을 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에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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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보는 판타지 요재지이 한권으로 보는 시리즈 (큰방) 4
포송령 지음, 여설화 옮김 / 큰방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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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을 앞두고 중국 관련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기묘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의 책읽기였습니다. 이 책은 청나라 초의 극작가이며 소설가로 알려진 포송령(蒲松齡)이 쓴 문어체의 소설집 <요재지이(聊齋志異)>를 평역한 책이라고 합니다. <요재지이>는 중국의 괴담이나 괴기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나 그런 작품을 쓰고자 하는 작가 지망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72세에 과거 1차 시험이 동자시에 합격하고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창작에 전념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요재이지>는 그가 75세에 죽은 51년 뒤에 간행되었다고 합니다.


<요재이지>에 실려 있는 이야기들은 신선을 비롯하여 여우나 유령, 귀신, 도깨비, 그리고 이상한 인간들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제목도 <기묘한 이야기>가 된 모양입니다. 이야기들른 한결같이 작가가 민간에서 채취한 이야기들입니다. 사람들이 특히 흥미를 가지는 편인 요괴, 정령, 동물과 인간이 나눈 사랑이야기가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옮긴이 역시 <요재지이>의 특별한 위치를 고려한 까닭인지 환상문학을 지망하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비법을 안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해제 다음에 곧바로 판타지 베스트셀러의 원칙 열 가지를 제시하고, 그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주요 작품의 말미에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나 괴물, 요정 등에 대하여 산해경 등을 인욘한 <판타지 Note>를 덧붙여 놓았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사람을 알아보는 기술입니다. 이는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기담이나 괴담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36꼭지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현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황당무계하고, 혹세무민하는 것들이라서 가볍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육판관이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수명에 관한 대목은 새겨둘만 했습니다. 육판관과 가깝게 지내던 주자명에게 여명이 닷새 남았다고 전하자 주자명은 판관의 힘으로 늘릴 수 없겠느냐고 묻는다. 육판관의 대답은 어려운 소리야. 생과 사는 천명이기 때문에 내 힘으로도 어쩔 수 없네. 이봐, 살아있는 건 즐겁고 죽는 것은 슬픈 거라고 생각을 말게.(97라고 달랩니다.


천자문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도 알아두면 쓸모가 있을만한 이야기입니다. 천자문은 위(, 220-265)나라의 종요(鍾繇)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조조, 유비, 손권이 나오는 삼국지에서 조조가 한나라의 헌제를 모셔다가 위나라를 열었는데, 조조의 아들 조승이 헌제로부터 양위를 받아 황제에 올라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많은 무리들이 헌제를 다시 옹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종요 역시 죽음을 각오하고 문제에게 헌제를 다시 모시고 강요하지 말고 진정을 양위를 받으라 청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노한 문제가 종요을 하옥시켰지만,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아 섣불리 참하지 못하다가 계교를 꾸몄다고 합니다. 즉 하루의 말미를 주고 사언체 250구의 글을 짓되 중복되는 글자가 하나도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짓자니 명을 구걸하는 느낌이 들어 고민하던 종요는 결국 글을 지었다고 합니다.


천지와 우주로 움직일 수 없는 이치는 물론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도와 법칙을 비롯하여 임금에 대한 충의, 어버이에 대한 효성, 그리고 인간사회에 대한 의리와 도덕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글짓기에 사력을 다한 까닭에 종요의 검은 머리가 하룻밤 사이에 하얗게 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제는 종요를 방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두려워질 법도 합니다만, 개명한 요즘에는 이런 이야기는 그저 읽고 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거나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화젯거리로 써먹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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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 루쉰문고 5
루쉰 지음, 한병곤 옮김 / 그린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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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트래블의 중국문학기행을 떠나기 전에 구해서 여행 중에 읽었습니다. 1924년부터 1926년 사이에 쓴 산문시 26편과 1927년에 쓴 제목에 붙여라는 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26편의 시 가운데 앞부분의 13편은 여사대 사건 전에, 나머지 10편은 여사대 사건 이후에 썼다고 합니다.


루쉰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습니다만 그의 정체성을 아직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어서 중국문학기행의 기행문을 써가는데 어려움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루쉰은 1881년에 태어나서 1936년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기의 중국은 청나라가 몰락해가고 외세가 몰려드는 가운데 군벌들의 세력 다툼, 신해혁명, 국민당과 공산당의 충돌 등이 이어지던 격변기였습니다. 1937년 항일이라는 공통적 가치를 내세운 국공합작을 시작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게 1949년이니 루쉰은 국공합작도 보지 못한 셈입니다.


루숸이 중국근현대문학의 아버지로 꼽히게 된데는 마오쩌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1930 년 중국의 좌파 작가 연맹이 창설될 당시 루쉰 역시 힘을 보탰던데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오쩌뚱이 중국 공산당을 주도 하던 시절에는 기승전 마오쩌뚱이었으니 그럴만도 했겠습니다. 루쉰의 정체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루쉰이 문화혁명 이후까지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들풀>을 우리말로 옮긴 한병관교수는 들풀의 해제를 적지 못하고 첸리췬의 해제를 인용했습니다. 그만큼 <들풀>이 난해함을 표하는 것 같습니다. 루쉰의 소설이나 수필도 어려운데 산문시를 읽고서 그 의미를 이해하는 일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할 일 같습니다. 다만 읽으면서 얻은 느낌을 첸리췬의 해설과 엮어 나름대로의 생각을 몇자 저어보려 합니다.


첸리췬 역시 26편의 산문시 전체를 다루지 못하였는데, 그림자의 고별을 이야기하면서 루쉰의 강력한 주체 정신과 의지가 담겨있다고 했습니다. 몇 작품을 읽어오면서 루쉰에 대해 느꼈던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나는 차라리 무지에서 방황하려 하오'라는 댕속을 존재에 대한 거부라고 해석한 점에 대하여 다른 관점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번역된 시를 읽을 때는 무지(無知)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주석을 보니 무지(無地)였습니다. 땅은 실체가 있는 것이니 시인이 무지(無地)를 헤맨다고 한 것은 공()으로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표한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작가 시인이 불교의 개념을 많이 다루어 온 점을 고려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늙은이, 여자아이, 그리고 길손이 등장하여 앞길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갈건지 계속 갈건지를 이야기하는데, 첸리췬은 루쉰 자신의 생명철학을 총괄한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길손이 앞을 향하여 나아가기로 한 것은 루쉰 생명의 마지노선 혹은 절대 명령으로 생명의 몸부림이라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거부한, 철저한 '()''()' 속에서 그가 유일하게 선택하고 견지한 것"이라면서 공()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무()를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입니다. ()는 실체가 없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공()과는 개념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사라는 시에서는 편을 가르는 군벌의 어느 한 편에 가담한 지식인을 꼬집는 느낌인데, 그 결말이 무물(無物)의 진 속에 같혀 늙고 죽었다면서 결국은 무물(無物)의 물()이 승자였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국공 어느 편에 기댄 지식인도 결국은 무너질 것임을 암시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죽은 뒤라는 시의 주석을 보면 쑨원이 죽은 뒤에 일부 언론이 그의 과오를 지적하자 쑨원을 전사(戰士)에 언론을 파리에 비유한 전사와 파리라는 글을 쓰기도 했답니다. 쑨원은 중화민국의 건국자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기피인물이 아닌 점을 고려하였을 때 루쉰의 철학이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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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이야기 1
무라사키 시키부 지음, 세투우치 자쿠초.김난주 옮김, 김유천 감수 / 한길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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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이야기>는 에치고 유자와로 가는 길에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소개하면서 조사한 자료를 보았더니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에서 <겐지 이야기>에 담긴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는 내용이 있어 짧게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한편 50세가 되던 해에 전집을 발간하면서 학생 때 쓴 일기와 글들을 정리하면서 발표한 <소년>에서도 <겐지 이야기><겐지 모노가타리 고게쓰쇼>를 읽었다는 이야기를 통하여 <겐지 이야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치매 전문가 사이토 마사히코가 쓴 <알츠하이머 기록자>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게 <겐지 이야기>를 읽어드렸다는 대목을 읽었고, 동네 도서관에 겐지 이야기(1-10)이 있는 것을 보고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겐지 이야기>는 서기 1000년 무렵 이치조 천황시절에 쓰여져 천황과 중궁을 비롯하여 황실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졌다고 합니다. 모두 54첩에 이르는 대하소설인데 이야기 초반에는 겐지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인 천황과 생모의 사랑이 그려지고, 후반에는 겐지가 죽은 후, 그의 자손들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따라서 겐지를 중심으로 하여 4대에 이르는 장편 연애소설인 셈이다.”라고 옮긴이는 적었습니다. 등장인물이 430명에 달하고 200자 원고지 8,000매에 이르는 대작입니다.


<겐지 이야기1>에서는 출생 전부터 겐지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까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겐지의 첫 여성관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두중장, 좌마두, 식부승 등 가까운 이들과 궁궐의 숙직소에서 비오는 날 밤의 여인 품평회를 여는 장면에서 이미 무수한 여인들과 관계를 맺었음을 암시합니다. 이 무렵 죽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천황의 사랑을 받게 된 후지쓰보에 대한 연심을 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결국 후지쓰보가 사가에 나가 있을 때 밀회에 성공하여 회임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열일곱살 때에는 지방의 영주의 후처 우쓰세미의 숙소에 잠입하여 억지로 관계를 맺게 됩니다. 하지만 우쓰세미는 겐지의 접근을 거부하게 됩니다. 이 무렵 좌대신의 딸 아오이와 혼인을 하게 되지만, 겐지의 여성편력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겐지 이야기2>는 열여덟살부터 스물다섯살까지의 여성편력을 담았는데, 스물두살 때는 정실부인인 아오이 부인이 분만 후에 갑자기 죽음을 맞습니다. 겐지는 자신과 관계를 맺던 육조 미야스도코로의 산 귀신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겐지의 여성편력은 나이의 고하를 가리지 않으며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측면에서 18세기 이탈리아 사람으로 바람둥이 혹은 난봉꾼으로 손꼽히는 자코모 카사노바를 연상하게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카사노바는 마음에 둔 여성의 마음을 얻어 관계를 맺는데 반하여 겐지의 경우 마음에 들면 어둠을 틈타서 강제로 관계를 맺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겐지 이야기3>에서는 겐지가 스물여섯이 되던 해에 배다른 형제 스자쿠 황제가 사랑하는 오보로즈키요 상시와 밀회하는 장면이 아버지 우대신에게 발각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고키텐 황태후가 나서서 겐지와 후지쓰보 중궁과의 밀회에서 태어난 아들을 천황으로 옹립하려는 모반을 획책하고 있다고 꾸민 것입니다. 겐지는 유배형이 내려지기 전에 스스로 스마로 내려가 은거하게 됩니다. 사람들과의 왕래도 끊고서 말입니다. 25개월이 지난 뒤에 복권되어 다시 도읍으로 돌아오게 됩니다만, 아카시의 뉴도라는 유력자의 딸과 연분을 맺고서 딸을 낳게 됩니다. 도읍으로 돌아온 뒤에 스자쿠 황제는 겐지와 후지쓰보 중궁 사이에서 태어난 동궁에게 양위를 합니다. 겐지의 지위는 더 높아지고 조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전과는 달이 새로운 인연을 맺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겐지 이야기4>는 겐지의 나이 서른살의 겨울부터 서른여섯살의 초여름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겐지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아오이 부인의 아버지 태정대신이 죽고, 후지쓰보도 죽음을 맞아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냅니다. 겐지는 아카시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을 집으로 데려와 자식이 없는 무라사키 부인이 기르도록 합니다. 겐지는 식부경의 딸 아사가오 재원에게 연심을 품지만 아사가오 재원이 받아주지 않습니다. 젊었을 적보다는 적지만 여전히 염문을 뿌리는 중입니다. 그리고는 육조원이라는 거대한 주택을 지어 자신의 연인이었던 여인들이 모여 살도록 합니다. 전개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서포 김만중이 1687년에 썼다는 <구운몽>이나 19세기 중반에 남영로가 썼을 것으로 짐작되는 <옥루몽>의 분위기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겐지 이야기5>는 겐지의 나이 서른여섯 오월에서 서른아홉살 시월까지 3년반에 걸친 이야기입니다. 육조원에서 생활하는 다마카즈라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여기에는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의 문학론이 겐지를 통하여 소개됩니다. “이야기란 지어낸 것을 근거 없는 허황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훌륭한 작가가 지은 이야기는 정말로 느껴져 감동한다. 일본기같은 역사서는 그 일부에 지나지 않고, 이야기야말로 신대로부터 이 세상에 생긴 온갖 일들이 적혀 있다. 좋든 나쁘든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가운데 그냥 보아 넘길 수 없고 그냥 들어 넘길 수 없어 마음에 남은 것들을 쓴 것이다. 착한 사람만 그리거나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을 쓰면 오히려 흥이 덜하다.”


<겐지 이야기6>봄나물 상봄나물 하가 합본되어 있습니다. 봄나물 상은 겐지의 나이 서른아홉에서 마흔한 살 봄까지의 이야기이다. 스자쿠 상황은 셋째 황녀 온나산노미야의 장래를 생각해서 겐지와 혼인을 시킵니다. 봄나물 하에서는 준태상천황에 오르는 등 영화의 극치에 이른 가운데 가시와기가 온나산노미야를 범하여 임신을 시킵니다. 겐지도 뒷통수를 맞을 수 있단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기사와기는 겐지와는 달리 심약했던 듯 죽음을 맞게 되었고, 겐지는 가시와기의 핏줄인 가오루를 자시의 아들인 듯 위장합니다.


<겐지 이야기7>에서는 겐지가 마흔 일곱 살 되던 해에 사랑하는 무라사키 부인이 죽음을 맞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구름 저 너머로라는 첩에서는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어 겐지의 죽음을 암시하합니다. 그러니까 <겐지이야기>가 실질적으로 끝나는 시점인 셈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겐지가 죽은 후에도 13첩의 이야기를 더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겐지 이야기7>구름 저 너머로뒤로도 향내나는 분홍매의 두 편이 더해지는데, 이야기의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이라고 합니다.


<겐지 이야기8-10>의 주인공은 겐지의 부인 온나산노미야와 기시와기의 불륜으로 태어났지만 겐지의 아들로 위장된 가오루와 겐지와 아카시 중궁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겐지의 핏줄 니오노미야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겐지의 배다른 형제인 하치노미야의 세 딸과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는 두 사람의 성품이 선친들의 성품을 닮아 있다는 점일 듯합니다. 영화든 소설이든 속편의 재미가 본편만 못한 경우가 많은 것처럼 겐지 이야기의 속편에 해당하는 <겐지 이야기8-10>에서는 이야기를 너무 꼬아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 무라사키 시키부의 작품이 맞을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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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딜레마 - 의사들에 관한 서문 포함
조지 버나드 쇼 지음, 이원경 옮김 / 좋은땅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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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환자-의사 관계를 꼽기도 합니다. 환자와 의사가 서로 신뢰하는 관계였을 때 완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거래관계로 이해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환자가 제 역할은 다하지 않으면서 의사는 최선을 다해달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사 입장에서도 환자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 한계를 두는 경향이 생기고 심지어는 방어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의사의 곤궁한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최근의 그런 경향 때문에, 그리고 버나드 쇼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읽어본 <의사의 딜레마>입니다. <의사의 딜레마>1906년에 초연된 동명의 희곡과 2011년에 쓴 의사들에 관한 서문이라는 제목의 수필 48꼭지를 담았습니다. 희곡 의사의 딜레마는 쇼가 콘월의 메비지시에 머물 때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저명한 외과의사 암로스 라이트 경을 만났을 때 있었던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당시 조수 한 명이 암로스 라이트 경에게 다가오더니, 새로운 옵소닌 치료법을 적용할 환자 모집단에 결핵 환자 한 명만 더 받아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치료할 수 있는 환자의 수는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암로스 라이트 경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치료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어떤 요소가 중시되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연극의 주요 인물로 6명의 의사와, 타락한 화가 루이스 두비댓과 그의 매력적인 부인 제니퍼 두비댓이 등장합니다. 먼저 콜렌조 리전(콜리 경)은 창작의 계기를 열어준 암로스 라이트 경을 모델로 한 의사로서, 옵소닌을 발견한 공로로 극의 앞부분에서 기사작위를 받게 됩니다. 그가 개발한 옵소닌 치료는 아직은 대량생산되지 않은 상태로 이미 정해진 환자들에 추가하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는 한 명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때 새로운 환자가 두 명이 등장합니다. 화가 루이스와, 리전의 동료 의사입니다. 화가는 뛰어난 예술가이지만 도덕적으로는 타락한 반면, 동료는 도덕적으론 나무랄 데가 없지만 의사로선 무능합니다. 도대체 누굴 살리는 게 더 나으냐가 리전이 당면한 곤궁한 상황입니다.


의사들에 관한 서문이라는 수필모음은 쇼가 희곡을 구실 삼아 쓴 48개의 수필로 구성되었습니다. 수필의 내용은 의료윤리와 공중보건, 생체실험의 폐해, 통계적 착각, 의료의 상업화, 약물과 수술의 오남용, 의사의 미덕과 고충 등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있습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쓸 당시는 20세기가 열릴 무렵입니다. 작가는 수필을 통하여 당시 영국 사회의 의료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았는지를 낱낱이 짚어내고 있습니다.


물론 100년도 넘은 그때의 문제점 가운데 적지 않은 점들이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은 문제도 있고, 새롭게 등장한 문제들도 있습니다. 특히 보건의료체계를 국가가 관리하게 되면서 의학과 의료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관리자 집단이 정책의 방향을 주도하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을 추구해온 까닭에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도 많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의 붕괴를 가져왔던 사건이 대표적인 새로운 문제점입니다. 필수의료 담당의의 수급부족을 단순히 의과대학 정원 확대로 채울 수 있다는 단순무식한 정책결정이 가져올 파국을 예견한 의료계의 집단반발을 구태의연하게 해왔던 집단 이기주의로 몰면서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면서 버틴 정책당국의 문제는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의료대란이 마무리되는 것으로 일단 수습은 되었습니다만, 필수의료의 붕괴는 머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돌아가는 사정을 짐작하는 의료계 인사들의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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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bid3 2025-12-04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의료민영화는 이제 결정된 것과 같습니다.
세계 역사에 없던 초고령사회 때문이죠.
서울대 의대를 절대적인 신으로 여기는 한국인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마도 의료민영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정한 대재앙이 닥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서울대생들 많은 수가 의대를 진학하기 위해 휴학합니다.
이유는 제가 상기 기술한 이유때문입니다.
의사 수입이 현재보다 최소한 10배 이상 늘것이 이 노다지판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죠.
의료 사고 등등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할 것이고 이제 한국인들은 하소연도 못하게 될 겁니다.
지금도 재판해봐야 거의 백전백패지만.

이게 눈에 훤히 보이니까 한국의 기득권 자녀들인 서울대 생들이 다 휴학하는겁니다.
의사될려고.

아시겠습니까? 이것이 진실이죠. 한국인들 누구가 피하고 싶은
의료민영화가 되는 것은 정해진것이고 그러면 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지금 미국처럼 중층과 하층은 병 걸리면 이제 마약으로 가는 길만이 남은 겁니다.
정해진 길입니다.

다들 철저히 대비하시길.
각자도생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각자도생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