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집사 - 집사가 남몰래 기록한 부자들의 작은 습관 53
아라이 나오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4.0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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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집사>를 받아들고서 떠오른 의문은 ‘이 시대에도 집사라는 직업이 있는가?’였습니다. 궁궐 같은 집 현관에서 막 도착한 주인을 맞는 근엄한 표정의 집사는 과거시대의 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집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예 그런 집사를 보내주는 회사가 있다는군요. 우리나라는 아니구요. 이웃 일본에서 2008년에 버틀러&컨시어지 라는 집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집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로는 식사 준비와 운전기사 역할은 물론, 재무와 스케줄 관리, 비즈니스 자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양입니다. 문제는 아무나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 회사의 집사서비스를 받으려면 ‘총자산 500억 원 이상, 연 수입 50억 원 이상’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군요.


이런 부자들은 특별한 무엇이 있어서 남의 나라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삶이 좋을 지는 별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남다른 부를 쌓을 수 있었던 특별한 점은 과연 무엇이었는지는 조금 궁금한 것 같습니다. <부자의 집사>는 바로 그런 궁금증을 기록한 책입니다.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53가지의 특별한 습관을 투자비결, 소비원칙, 인간관계, 금전철학 등 4가지로 구분하여 정리했습니다. 저자가 모셨다는 100여명의 부자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인데도 특별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는 것인지 모호하기도 합니다.


부자들의 53가지 습관을 읽다보면 나도 저런 순간이 있었는데 싶습니다. 예를 들면 주식이나 부동산을 파는 시점을 결정하는 원칙 같은 것 말입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집을 팔려고 하는데 집값이 마구 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결정한 가격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 밑에서 꺽이더니 이번에는 마구 떨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집을 팔지 못하고 전세로 내놓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 팔려던 집값의 두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팔기로 결심한 시점에서 임자를 결정했습니다. 물론 팔고나서 집값이 계속 올랐지만, 산 분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아서 저도 만족했던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집을 사고 파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절감하고 업으로 할 일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그런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10원짜리 동전의 가치를 알고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읽고는 많이 놀랐습니다. 저도 언젠가 10원짜지 동전의 실질가치가 명목가치보다 높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10원짜리 수집하기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화폐를 매점매석하는 것은 범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부자들은 무엇을 살 때 일시불로 사는 습관이 있다는데 저 역시 그런 편입니다. 그리고 경기가 불황일 때라고 해서 지출을 줄이지 않은 편인데, 싼값에 호사를 즐긴다는 부자들과는 달리 내가 무언가를 사면 누군가 행복해질 것 같다는 소박한 생각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자가 되지 못하는가 봅니다. 적어도 부자가 가지고 있다는 습관을 몇 가지는 가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부자들의 인간관계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몇 가지 습관을 꼭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계를 맺는 방법이라던가 그렇게 맺은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연하장입니다. 젊었을 적에는 새해가 되면 연하장을 직접 고르고 문구도 직접 써서 보내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메일로, 그 다음에는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가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금년 말부터는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연하장을 구해서 평소 존경하는 분들게 보내드려야 하겠습니다.


정리해보면 딱히나 부자가 되어보겠다는 생각은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좋을 것 같은 습관 몇 가지는 챙겨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책읽는 이에 따라서는 부자가 되기 위한 책읽기도 되겠지요. 다만 걱정이 되었던 것은 부자들의 내밀한 것들을 결코 발설하면 안되는 집사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가 이렇게 부자들의 비밀을 까발리고도 사업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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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당한 자의 시선 - 원주민의 관점에서 본 스페인의 아스테카 정복 현대의 지성 160
미겔 레온-포르티야 엮음, 고혜선 옮김, 앙헬 마리아 가리바이 킨타나 나우아틀어번역, 알베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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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멕시코 지역을 지배하던 아즈텍제국(제국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이 불과 500여명의 병사를 이끄는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하여 멸망하였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단편적으로 알기로는 스페인군이 보유한 대포 등 당시 원주민들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신무기의 위력 때문이라고 했지만, 정복자와 원주민은 수적으로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인해전술로 대응했더라도 충분히 격퇴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코르테스가 유카탄반도에 상륙했을 때 그곳에 잡혀 살던 헤로니모 데 아길라르와 마야여인 말린체를 얻었던 것이 행운이었던 것 입니다. 아길라르는 마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였고, 말린체는 나우아틀어를 구사할 줄 알았기 때문에 스페인어-마야어-나우아틀어로 이어지는 통역으로 아즈텍인들과의 대화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나아가 결정적이었던 것은 유카탄 원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케찰코아틀 신화입니다. 케찰코아틀은 아스텍신화에 나오는 날개달린 뱀의 형상을 한 신으로 뱀은 땅의 권력을 뜻하고 날개는 하늘의 권위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풍요와 평화의 신으로 알려진 케찰코아틀신이 전쟁의 신의 음모로 쫓겨나고 말았던 것인데, 아즈텍사람들은 케찰코아틀이 하얀 얼굴을 하고 돌아온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아즈텍사람들은 코르테스를 처음 만났을 때, 다시 온 케찰코아틀로 착각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말린체로부터 케찰코아틀신화를 듣게 된 코르테스가 소문을 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알려진 것들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원주민 관점에서 본 스페인의 아즈텍 정복과정을 정리한 <정복당한 자의 시선>입니다. 아즈텍문명은 잉카문명과는 달리 문자가 있었기 때문에 기록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나우아족이 그림과 이야기로 적은 다양한 기록들을 정리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나우아틀 시인들이 남긴 정복에 대한 시가(詩歌), 작가 미상의 <1528년 틀라텔롤코 역사>, 사아군 신부가 집대성한 <플로렌스 고문서>, <틀락스칼라 화첩>, <아우빈 고문서> 등이 있다고 합니다.


아즈텍사람들의 기록을 보면 스페인군이 어림도 없는 군사력으로 압도적 우위의 아즈텍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멕시카-테노치트틀란과 속국들 사이에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되어온 앙금과 아즈텍의 마지막 왕 모테쿠소마의 오판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코르테스는 초반에 접전을 했던 원주민 부족을 유럽에서 가지고 온 신무기로 제압하면서 이들을 복속시켰고, 복속시킨 부족의 전사들을 결집시켜 멕시코로 진격해 들어갔던 것입니다. 즉 500여명으로 상륙했지만, 이내 아즈텍의 본거지를 지키는 군사력에 맞먹는 수준으로 군세를 키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틀락스칼라와 테츠코코 사람들이 대표적인데, 거기에는 이들 부족들에게 전해 내려온 케찰코아틀신화가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즈텍제국의 마지막 왕 모테쿠소마의 오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코르테스가 도래하기 10년전부터 있었던 몇 가지 심상치 않은 징조들은 제국의 멸망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믿었거나, 혹은 케찰코아틀신화를 믿었거나, 모테쿠소마왕은 백인들이 해안에 상륙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이들을 경계하기보다는 영접하는 입장을 취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체가 분명치 않을 때는 확인될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비슷한 시기에 전란을 겪었던 조선의 선조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모테쿠소마왕이 보낸 금으로 세공된 선물은 코르테스의 욕심을 자극했을 것이며, 아즈텍제국은 멸망시켜야 할 대상에 불과하였고, 유럽인 시각에서 보기에 희생제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즈텍 사람들은 야만인으로 보여 전교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살육의 대상이거나....


처음 테노치트틀란으로 영접해 들였던 스페인 군인들이 아즈텍 신전의 축제가 있던 날 끔찍할 살육을 저지르자, 아즈텍 사람들도 더 이상 이들을 영접해 모셔야 할 신이 아니라 싸워야 할 대상으로 보았던 것이고 치열한 전투 끝에 이들을 물리쳤지만, 추가로 도착한 스페인군으로 재무장한 코르테스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복당한 자들의 시선>에서는 스페인 사람의 도래를 암시하는 징조에서부터 아즈텍문명을 도륙한 정복과정이 마무리되기까지의 끔찍하고도 슬픈 과정을 잘 정리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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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보는 힘 - 처음 시작하는 관점 바꾸기 연습
이종인 지음 / 다산3.0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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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꼬여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전혀 찾을 수 없을 때는 차라리 문제를 놓고 쉬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쉰 다음에 다시 일을 붙들면 그렇게 보이지 않던 길이 갑자기 눈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혹은 관점을 달리해서 문제를 검토하다 보면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기도 합니다. <다르게 보는 힘>은 이처럼 관점을 달리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던 사례들을 모은 책입니다. 다산출판의 기획물은 홍대리 시리즈로 하여 책읽는 이에게 이미 친근해진 쉽게 읽은 자기계발서로 풀어낸 것이라서 자칫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홍대리가 홍팀장으로 승진을 한 셈이로군요.


이 책에서 적용하고 있는 문제해결방식인 트리즈(TRIZ)는 창의적 문제해결 이론(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의 머릿글자를 모은 것입니다. 물론 왜 S가 아니고 Z냐는 의문이 들 수 있겠습니다만, 이 방식을 고안한 사람이 러시아의 천재 발명가 알슐러츠 박사인 점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러시아어가 그런가 봅니다.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이후 소련 해군의 특허사무국에서 50여년을 일하면서 특허심사를 해왔는데, 200만여건의 발명과 특허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창의성은 끊임없는 훈련을 통하여 발전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트리즈방식을 고안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책을 쓴 이종인님은 신용보증재단 제주지점장이며, 국제트리즈협회의 레벨 3 자격인증을 받은 한국트리즈의 전문강사입니다. 이 책의 무대가 제주인 점이 쉽게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돌 하나로 두 마리 참새를 잡는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저자는 <다르게 보는 힘>을 통하여 제주와 트리즈를 같이 홍보하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하겠습니다.


<다르게 보는 힘>은 두 부분으로 되어있습니다. ‘모든 것은 문제에서 시작된다’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트리즈 이론의 뼈대를 사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핵심은 1. 문제를 해결하는 직선 코스는 없다, 2. 관점을 바꿔 문제를 의심하라, 3. 문제에서 기회를 발견하라, 등 3가지입니다. ‘생각의 그물을 치는 연습’이라는 부제가 있는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동원이 가능한 방법을 모두 펼쳐내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반드시 해결된다’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일종의 각론이자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박3일의 실전 트리즈여행’이라는 부제처럼 일상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트리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제주로 불러 문제해결을 길을 모색한 실전사례를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1. 문제 있는 삶들이 모이다, 2. 뒤집어서 문제를 바라보라, 3. 삶이 행복해진다 등의 순서로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책읽기에 앞서 저자 자신이 트리즈에 빠져들게 된 이유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그 어떤 문제도 없이 순조롭게 일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습니다. 나아가 어떤 사람은 잇달아 생기는 문제에 치어 일찍 죽음을 맞는 비극적인 삶을 살기도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만이 다릅니다. 문제를 뒤집어 볼 줄 아는 사람은 새로운 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통찰을 길러 보이지 않는 문제의 맹점을 발견해야 일상의 어떠한 문제에도 적용 가능한 생각의 지름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사실 살아가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두고 기억해두면 언젠가는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거나 다른 일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해결의 핵심은 ‘제대로 생각하는 일’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별 내용이 없어 보입니다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조언이 되기에 충분한 참고서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다르게 보는 힘

이종인 지음

272쪽

2016년 5월 19일

다산3.0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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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아틀라스 1
데이비드 미첼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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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가 만연한 학교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다룬 열세살 소년의 성장소설 <블랙스완그린>의 작가 데이비드 미첼의 세 번째 소설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읽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의 저자가 추천한 책이었는데, 그게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이탈로 칼비노의 걸작  <겨울밤의 나그네라면>에서 착안한 구조를 발전시키고, 다양한 장르를 녹여냈다고 해서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19세기에서부터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이르기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여섯 개의 이야기의 앞부분을 먼저 소개하고, 이어서 마지막으로부터 거꾸로 마무리하는 방식입니다. 서로 별개의 이야기이면서도 교묘하게 연결되는 이 작품은 작가의 다음 작품인 <블랙스완그린>에까지 등장인물이 된다고 합니다. <블랙스완그린>의 주인공 제이슨이 만나는 미스터리한 여성 에바 판 우트리버 데 크롬린크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두 번째 이야기 「제델헴에서 온 편지」에서 작곡가 로버트 프로비셔를 몰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역할을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의 배경은 19세기 남태평양 뉴질랜드 인근의 섬이며,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는 선량한 공증인 애덤 어윙을 주인공으로 한 「애덤 어윙의 태평양 일지」는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1930년대 영국의 재능있는 작곡가 로버트 프로비셔가 음악학교에서 처한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벨기에의 고성에 머물고 있는 당대의 유명한 작곡가의 일을 도와주면서 펼쳐지는 방탕한 삶을 그린 「제델헴에서 온 편지」는 서간체 소설의 형식을 가지며, 세 번째 이야기는 1970년대 미국에서 서부해안에 건설되는 핵발전소에 숨겨진 거대 음모를 파헤치는 여기자 루이자 레이의 모험담을 그리는 「반감기-첫번째 루이자 레이 미스터리」는 전형적인 스릴러 소설입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21세기 초에 영국을 무대로 최대의 베스트셀러소설을 출판한 출판업자 티머시 캐번디시가 곤경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 떨리는 시련」은 요양병원에 갇힌 통제된 삶을 시사하는 미래소설로, 다섯 번째 이야기는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디스토피아적 이야기로, 순혈인간을 모시기 위하여 만들어진 복제인간 손미의 이야기를 그린 「손미-451의 오리즌」 역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는 미래소설의 범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핵폭발로 인하여 지구의 모든 문명이 파괴된 머나먼 미래의 하와이를 무대로 한 양치기 자크리의 이야기 「슬로샤 나루터와 모든 일이 지나간 후」는 SF소설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들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는 다양하게 펼쳐지는 인간의 야만성과 이에 맞서는 주인공의 노력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서 문명과 야만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애덤 어윙의 태평양 일지」는 책으로 꾸며져서 「제델헴에서 온 편지」에서는 프로비셔가 읽게 되고, 프로비셔가 쓴 편지들은 친구이며 루이자 레이에게 핵발전소의 심대한 문제점을 바로잡는 숙제를 넘겨주는 물리학자 루퍼스 식스스미스박사에게 보내진 것들입니다. 「반감기-첫번째 루이자 레이 미스터리」의 원고는 출판업자 티머시 캐번디시에게 넘겨져 출판의 기회를 맞게 되는데,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 떨리는 시련」은 실패한 유럽식 민주주의 시대에 제작된 영화의 형태로 손미-451에게 전해집니다. 그리고 손미는 문명이 파괴된 먼 미래의 하와이에 사는 사람들의 구원의 여신이 되고 있습니다.

 

옮긴이는 서로 닮은 점이 없는 주인공들이 하나의 영혼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만, 쉽게 납득되지 못하였습니다.

끝으로 「손미-451의 오리즌」에 등장하는 한국은 제가 사는 곳 가까이 있는 대모산을 비롯하여 서울과 지방의 다양한 곳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마치 작가가 한국에 오랫동안 살지 않았나 하는 착각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이 복제인간의 비극적인 삶의 주무대로 선정된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 있어 궁금합니다. 황우석박사 덕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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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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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까지 굴러 떨어진 인간들이 부리는 역겨운 탐욕으로 읽어나가기 힘들었던 <눈먼 자들의 도시; http://blog.joins.com/yang412/13929327>에서 끝까지 답을 얻지 못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위기에 처한 도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정부의 정체였습니다. 초급성 실명전염병이 발생하자, 놀랄 만큼 신속하게 초기 역학적 대응-발병한 환자는 물론 그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찾아내 격리시켜 전염병의 확산을 차단시키는-은 완벽하게 했던 정부가 격리된 환자들을 방치하여 죽음으로 몰아넣는 방식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은 <눈먼 자들의 도시>의 완결편이라고 할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명 전염병의 확산사태가 종식되고 4년이 지난 뒤에 있던 선거에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으로 끊어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투표가 진행되는데 꼼짝을 하지 않던 시민들이 오후 4시가 되자 한꺼번에 투표소로 몰려나와 기표를 함으로써 선거관리책임을 맡은 사람들의 위기감을 덜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개표가 진행되어 종료되면서 사태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전체 유효표의 70퍼센트 이상이 백지였던 것입니다. 수도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평소와 별다른 점이 없었다는 점이 차이입니다. 일주일 뒤에 선거를 다시 하기로 했지만, 결과는 더 나빠져서 백지투표가 83퍼센트에 이르게 됩니다.


백색실명에 이은 백색투표 사이의 연결고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실명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백색투표는 투표용지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역시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질책이 담겨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각의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드러나지만, 백색실명사태가 종료된 다음 무기력한 대응으로 사태를 키웠던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없었던 것처럼 기억에서 지워버리기로 한 것에 대한 시민들의 무언의 시위였던 것입니다. 지우려한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 기억이라는 것입니다.


백색투표가 백색실명과 연결된다는 점은 처음 눈이 먼 남자가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내무부장관에게 제보를 하여 백색실명 사태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안과의사의 부인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내용인데, 아마도 그녀라면 백색투표와 같은 엄청난 일을 주도했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제보한 사람은 최초로 실명한 남자였는데, 알고 보면 그 남자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보았던 역겨운 군상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대통령과 총리는 그녀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수사하지 않기로 결정하지만 내무부장관은 이미 수사팀을 도시로 잠입시킵니다. 수사팀은 그녀는 백색투표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밝혀내게 됩니다. 하지만 내부부장관은 이미 그녀가 사태에 중심에 있다는 각본을 짜놓기까지 한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비밀이 없고,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도 저자는 세상에는 살맛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다만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한 기회주의자들이 벌인 무모한 작전이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더라면 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누군가 정의로운 일을 하는데 생명을 걸어야 한다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그 순간 평생 지킬 협정에 서명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자문할 날이 온다. 누가 여기에 나 대신 서명을 했는가.(377쪽)” 우매하면서도 잔인하기까지 한 최악의 권력을 한껏 조롱하고 있습니다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답은 침묵하고 있어 답답할 수도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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