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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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워 1945~2005>로 널리 알려진 유럽의 근대역사가 토니 주트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장문의 서평의 <재평가; http://blog.joins.com/yang412/13741266>는 지식인과 사상, 국가와 사건들에 대한 20여개의 비평 글을 담고 있습니다. <재평가>에는 미리암 아니시모프의 <프리모 레비: 어느 낙관주의자의 비극>을 비평한 내용이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던가 봅니다. 프리모 레비의 데뷔작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게 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나치의 수용소에 관한 기록으로는 오래 전에 읽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http://blog.joins.com/yang412/5396723>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http://blog.joins.com/yang412/13929327>를 읽으면서 인간이 극한상황에서 과연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인간이 타의에 의하여 극한 상황에 몰린 대표적인 사례이며 관련된 기록이 풍부한 나치의 수용소에 관한 기록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던 것입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인 인간인가>는 한계 상황에 몰린 인간은 어떤 행동양식을 보이는가에 관한 좋은 기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다른’ 가람들을 거기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되기 전부터, 그리고 그 후까지도 우리들 사이에서 다른 기본적인 욕구들과 경합을 벌일 정도로 즉각적이고 강렬한 충동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씌여졌다. 그러니까 무엇보다 먼저 내적 해방을 위해 씌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수용소에서부터 훗날을 위하여 일상을 꼼꼼하게 기록한 사람들은 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살아남았고, 그 기록을 잃어버리지 않은 행운을 얻은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후에 이런 증언을 듣게 된 사람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았다 뿐이지 고향에 남았던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 고초를 겪었다라거나, 다 끝난 일을 가지고 어쩌자는 것이냐,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냐 등등 증언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이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생각지 못한 문제가 대두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이와는 달리 살아남았다는 것이 수치와 죄책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존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타협을 거부하고 죽은 사람들과는 달리 타협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다른 사람의 희생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등등... 결국 레비는 68세가 되던 해 태어나고 자란 집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생존자>에서는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혹은 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인간이라면 참아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대우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기록을 읽었습니다만, 수용소마다 양상이 다양했던가 봅니다. 프리모 레비가 그려낸 아우슈비츠의 모노비츠에 있는 제3수용소의 경우는 끔찍할 정도는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나갈 수밖에 없었던 수용소의 일상을 감정을 빼고 건조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단테의 <신곡>에 비유하여 우회적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였다고 할까요?


어떻든 레비에게는 운이 따랐던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통제의 수준이 그렇게 강도 높지 않았던 것은 전쟁이 말기로 치달으면서 노동력 부족이라는 변수를 만난 것이나, 화학을 전공한 덕에 실내에서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체력의 소모가 극심하지 않았던 것, 독일군이 퇴각하기 직전에는 성홍열로 병동에 입원할 수 있었던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존자>에서도 언급되었던 점입니다만, 죽음으로서 영웅이 되던 시대는 갔습니다. 살아남는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하는 것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화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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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기둥 - 고대문명의 수수께끼를 찾아서
곤도 히데오 외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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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는 일은 누구나 관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문자가 생기기 이전의 뿌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구전해 내려오는 옛 기억들이 얼마나 정확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고, 문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면 해독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명의 기둥>은 인류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입니다. 지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대 문명의 흔적들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고대 오리엔트, 미노스 미케네,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중국, 인더스, 시칸, 마야․아스테카․잉카문명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초고대사에 속하는 아틀란티스 대륙, 무 대륙, 레무리아 대륙에 관한 이야기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들 대륙은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뒷받침할만한 자료가 충분하기 않으나, 고대의 기록 등을 바탕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대표저자 곤도 히데오 도카이대학 문학부 교수를 비롯하여 관련 분야의 전문가 열 분이 참여하였는데, 조지대학의 리앙보만교수를 제외하고는 일본의 전문가들입니다.


‘고대사는 늘 변한다. 고대사는 우리의 시계를 벗어나 있다. 새로운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지면 고대사의 판도는 하루아침에 뒤바뀔 수도 있다.’라고 옮긴이가 역자 서문에서 적은 것처럼 고대사는 역동적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리암보만교수가 기록한 황허문명에 대한 내용은 옛날 배웠던 것과는 차이가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확실한 증거가 나와도 우리는 그것을 상상력으로 부정하고 나름대로 고대사의 지도를 그려낼 힘(?)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라고 한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플라톤이 아틀라스제국의 발상과 그 문명을 기록했다는 <크리티아스>의 내용 가운데 ‘(아틀란티스 제국은) 전시에는 6만 지구별로 징집하여 육군은 중전차 1만대, 경전차 6만대, 병사 1백만명, 해군은 군선 1천2백명, 수병은 24만명이라는 대군을 거느렸다.(25-26쪽)’라는 기록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기록할 당시의 그리스 사회의 여건을 고려하여 부풀렸다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녔을 것이라는 영국 기록은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야지마 후미오교수는 지금은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해독이 불가능할 것 같은 고대 문자를 해독해낸 과정도 정리하였습니다.


대륙별로 흩어져 있는 고대문명이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인접한 문명과는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 등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면서도 쉽게 이해되도록 정리하고 있다는 점도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문명의 발상지를 아직 가보지 못한 까닭에 실감이 덜 하지만 중남미의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으로 이어지는 고대 남미 문명의 경우는 최근에 다녀왔기 때문인지 관심이 더 가고 나름대로 이해도 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생략하는 바람에 흐름이 끊어지는 아쉬움도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페루의 경우에는 잉카제국으로 통합되기 이전에도 흩어져 있던 작은 규모의 집단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 가운데 시칸, 차빈, 나스카 문명 등 일부만을 다루어진 것은 다행이면서도 다소 아쉽기도 합니다. 고리가 분명치 않던 마야, 톨칸, 아즈텍 문명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미문명에 관해서는 관련 연구가 풍부하지 않은 탓인지 소략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리앙보만교수의 중국문명에 관한 기록은 모호하던 황허문명의 실체를 아예 무너뜨리고 새로운 개념을 세우고 있습니다. 황허 유역에 문명이 들어설 수 없었던 지리적 여건을 설명하고 양사오, 룽산에서 나온 고고학적 자료를 토대로 은나라의 문화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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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이용대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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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도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황금가지>야 말로 대학에 다닐 무렵부터 지금까지 1위에 올라있던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읽기를 미룬 것은 책값이 만만치 않아서이거나 900쪽이 넘는 두께에 질려있었다는 핑계 때문이었습니다. 회사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은 그야말로 황금을 발견한 셈인데, 막상 빌어보려 할 때 도서관이 폐관되고 소장했던 책들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바람에 엄청 아쉬웠습니다. 다행히도 회사가 이사하고 다시 개관한 도서관에서 <황금가지>를 발견했을 때 바로 대출을 신청했습니다.


인류학, 종교학, 신화학 분야의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황금가지>는 제임스 조시 프레이저 경의 역작입니다. 1854년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태어난 프레이저 경은 글래스고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880년 중반부터는 인류의 고대사, 고대문화와 비서구 문화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연구의 성과로 1997년에 <토테미즘>을 그리고 1890년에 <황금가지>를 펴냈던 것입니다.


초판에 2권으로 출간된 <황금가지>는 1900년에 나온 재판에서는 3권으로 늘었고, 1906년 ~ 1915년 사이에 나온 세 번째 판에서는 12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이 되었습니다. 1936년에는 보충판을 덧붙여 전체 13권으로 만들었습니다.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축약본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1922년 4월에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에 대한 위험한 단락, 여가장제에 관한 고찰, 신성한 매춘에 대한 감미롭고 불경스런 구절처럼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들을 제외한 축약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국어 번역본은 1922년판 축약본에서 삭제되었던 많은 부분을 다시 복원하였고, 원본의 장과 절을 무시하고 69개의 짤막한 장으로 분할했던 편집체제도 복원하여 원본 13권의 편집체제와 순서에 따랐다고 합니다.


편집자는 <황금가지>가 가지는 의미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황금가지>는 인류 지성사 가운데 가장 위험하고 요동치는 시대의 산물이며, 그 시대가 바로 오늘의 우리 시대를 낳았다. 이 판본은 시대감정을 되살려서 이 저작이 구상된, 그리고 그 정신을 담아 쓴 19세기 말의 최첨단을 점하는 여러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 인류학적 담론의 내재적인 문학적 가치가 더 분명하게 드러날수록 독자들의 관심은 그 방면으로 더욱 쏠릴 것이라고 믿는다.(51-52쪽)”


이 책의 제목 <황금가지>는 영국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가 아이네이스의 삽화로 그린 그림 <황금가지>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저자는 적었습니다. 저자는 이 그림이 이탈리아의 로마 부근의 네미라고 하는 숲지대의 작은 호수를 꿈같은 환상의 분위기로 그린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편 터너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드>의 한 대목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황금가지가 달린 거대한 나무 하나가 / 지옥의 강을 다스리는 조브 신의 왕비에게 바친 / 숲으로 둘러싸인 계곡에서 자라고 있다. / 그 나무줄기에서 꽃핀 황금가지를 잘라내기까지는 / 어떤 유한한 존재도 그녀의 저승세계를 엿볼 수 없도다.(18-19쪽)” 옛 사람들은 네미의 작은 호수를 ‘디아나 여신의 거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저자가 네미호수를 거론한 것은 디아나신전의 사제직 계승에 관한 규칙을 설명하기 위해서이고, 그 관습의 조잡성과 야만성으로부터 4권 46장에 걸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프레이저가 <황금가지>에 방대한 분량의 비교문화 연구결과를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여행을 통하여 얻은 자료를 포함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보글 가문 출신의 어머니 덕에 보글 가문의 많은 여행가들로부터 얻은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비서양 사회에 대한 무수한 기록, 인종학 계통의 서지(書誌)와 식민지 행정관들의 회고록, 선교사들의 관찰문들을 광범위하게 모아 읽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1887년에는 현장에 있는 일꾼들에게 결혼풍습, 상속규칙, 신화와 제례 등 특정 문제에 관한 정보를 요청하는 질문지를 보내 얻은 자료들을 두고 공통되는 고리를 찾으려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 방대한 자료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관한 것들도 소략하게나마 인용되고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에서는 설날 종이에 우상을 그리고 몸이나 마음의 고통거리를 적은 다음 태우는 습속이 있다거나, 정월 대보름 전날 액운을 날려 보내달라는 소망을 적은 연을 날리는 민속놀이를 적었습니다(662쪽). 또한 출산 후 산모와 아이가 신분에 따라 일정 기간 햇볕을 쪼이지 않도록 금한다는 것도 적었습니다.(772쪽) 일본 북부의 아이누족의 곰과 관련된 토템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술하면서도 우리의 단군신화는 빠져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조선의 민속을 너무 소략하게 다루지 않았나 하는 서운함이 남습니다.


프레이저가 <황금가지>를 기획한 의도는 원시종교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서 미개인의 관습과 사상이 기독교의 근본 교리와 놀라우리만치 유사하다는 점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사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고자 했던 것입니다. 특히 페니키아, 프리지아, 이집트와 같은 고대 근동지역의 종교적 숭배의식과 고대 그리스의 종교적 신화 등에 나타나는 희생제의(犧牲祭儀)는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양이라는 신성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된 뒤에는 동방에서 유래한 농신제와 같은 토속적인 행사가 기독교문화에 녹아들어 다양하게 변형된 모습으로 전해지게 되었다는 점도 적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초자연현상을 경험하면서 이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주술(呪術)을 만들어냈는데, 동일한 원인이 언제나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감주술의 기본개념은 근대과학의 그것과 일치한다고 프레이저경은 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종교는 자연의 운행과 사람의 인생을 지시하고 통제한다고 믿는, 인간보다 우월한 힘에 대한 회유 내지 비위맞추기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인하여 종교가 태어나면서 주술의 개념이 약해지게 되었습니다. 프레이저는 초자연적인 힘을 달래기 위하여 인간을 대표하는 왕을 내세워 살해하다가 이어서 왕자, 노예, 범죄자를 왕의 대리인으로 내세워 살해하는 것으로 변하였고, 이윽고 동물로 대신하였으며, 근세에 와서는 인형 등으로 대체하는 축제의 형식으로 남게 되었다고 정리합니다. 성경에서도 이와 같은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장자살해와 이를 숫양을 대체하여 제물로 바치게 된 것이라든가, 왕의 아들인 예수의 살해와 부활은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믿어온 관념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이 책이 출간될 무렵이라면 충분히 논란이 될 수도 있었던 예수의 십자가형에 관한 설명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예수의 처형과정은 그 무렵 로마에서 유행하던 농신제와 흡사하지만, 이보다는 오히려 바빌로니아의 사카에 제전에 더 가깝다고 했습니다. 사형당할 예정인 범죄자를 데려다가 왕의 의복을 입혀 왕좌에 앉혀 왕으로 대접을 하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매질을 하고 십자가형에 처하게 되는데, 그 대신에 한 사람을 방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는 혹세무민했다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반면 예수를 대신하여 방면된 바라바는 살인과 선동을 한 사실이 분명한 사형수였다는 것입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였지만 사제들과 장로들의 사주를 받은 군중들의 압력으로 사형을 결정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풍요로운 수확과 종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희생제는 다양한 지역에서 있어왔습니다. 동물은 물론 곡물에도 정령이 있어 주기적으로 달래줘야만 했던 것입니다. 저자가 특히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희생제의 의미를 별도의 장으로 기록한 것은 아마도 이 지역을 지배한 스페인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 풍성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즈텍 사람들은 위대한 신 비츨로포츠틀리를 비롯하여 케찰코아틀, 소금의 여신 윅스토시와틀 등 다양한 신들에게 희생제를 올렸는데, 대개는 전쟁포로나 노예들이 희생의 대상이었습니다. 희생제는 신전의 꼭대기에서 이루어지는데, 희생대상을 돌제단 위에 눕히고 예리한 칼로 가슴을 열어 심장을 꺼내 신께 바친 다음, 시체는 신전의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희생된 노예의 주인이 시체를 집으로 메고 가 나누어 먹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희생자의 가죽을 벗겨 이를 뒤집어 쓴 사람이 20일 동안 시가지를 돌아다니면서 신으로 대접을 받았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 피부가 썩으면 고약한 냄새를 견뎌야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메리카대륙에 식인문화가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는 점은 유전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마르타 솔데빌라(Marta Soldevila) 등은 대륙간 인종별로 프리온 유전자의 코돈 129번에서 MM형의 유형을 조사하였더니 극동아시에서는 93%로 가장 높았고, 남아시아 61.8%, 유럽 52.2%, 중동아시아 45.8%, 아프리카 36.1%, 그리고 아메리카 6.1%였다고 합니다. 특정 지역에서 식인 풍습이 일찍 사라질수록 프리온 유전자의 코돈 129번에서 MM형의 비율이 높아진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Soldevila et al. Prion susceptibility and protective alleles exhibit marked geographic differences. Human Mutation, Variation, Informatics and Disease; 22:104–105; 2003)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 역시 <식인과 제왕; http://blog.joins.com/yang412/14052086>에서 메소아메리카에서는 15세기까지 신전에 바쳐진 희생자들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식인문화가 광범위하게 남아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수렵․채집민 소집단 및 촌락사회에서 신앙과 관행에 따라서 포로들의 심장을 먹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희생자가 보유한 힘이 자신에게 이전되기를 희망하였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 기회도 되었을 것인데, 특히 식인의 관행이 메소아메리카지역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던 것은 구대륙, 심지어는 안데스 지역과는 달리 희생제물이 되는 인간을 대체할만한 가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총균쇠>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착생활을 시작한 이후 돼지나 소, 개를 길러 단백질 보충과 노동력으로 활용했던 구대륙과는 달리 신대륙에서는 가축화하기에 마땅한 동물이 없어, 안데스지역에서 알파카나 기니피그와 같은 소동물 정도를 가축화했을 뿐으로 구대륙과 비교된다하겠습니다. <총균쇠; http://blog.joins.com/yang412/12850611>을 읽고 저는 이 점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정리해두었습니다. “인류사적으로 가축화와 작물화가 가능한 동식물의 부존이 대륙 간에 차이가 있었던 이면에는 가축화 혹은 작물화를 시도하기 이전에 해당 대륙에 거주하는 집단이 포획대상의 멸종을 고려하지 않고 남획한 것도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인근으로부터 자원을 들여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각 대륙의 특성을 보면, 유라시아대륙은 동서축을 중심으로 이동이 쉬운 구조인 반면, 아프리카나 남북 아메리카의 경우는 남북축을 중심으로 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문명의 확산속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프레이저 시절만 해도 유럽사회는 유럽이 아닌 지역을 미개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황금가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인류학에서는 어떤 종류의 문화도 나름대로의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문화와 비교하여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축약본 임에도 900여 쪽이 넘는 긴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주술과 종교 그리고 과학은 사유의 이론에 다름 아닌 것으로 틀림없이 완전하고 최종적인 것이라고 결론짓기 어렵다고 정리합니다. 그리하여 ‘지식의 발전은 끊임없이 멀어져가는 목표를 향한 무한한 전진’으로 우리는 그 끊임없는 추구에 불평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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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과 제왕 - 문화인류학 3부작 넥스트 3
마빈 해리스 / 한길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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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분야의 책은 참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주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식인과 제왕>을 우연히 발견한 것은 인류학이 가진 힘을 새삼 깨닫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서론에서 저자는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인류는 앞으로 위로 전진하고 상승하는 진보를 계속 거듭해 나아간다고 보는 낡은 빅토리아식 발전관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문화발전을 보다 사실대로 설명하는 발전관을 들여앉히는 데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물질적․정신적 복지와 생산증가 및 인구억제를 위한 여러 제도의 비용과 효과, 그리고 이 양자 간의 관계를 밝혀보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식인풍습, 사랑과 자비의 종교, 채식주의, 유아살해 그리고 생산의 비용과 효과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자유로운 의사와 도덕적 선택이 사회제도의 발전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석기시대의 사람들이 그 이후의 어느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여유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16세기 유럽사람들이 발견한 신대륙에 사는 원주민들이 전쟁을 벌이고 적의 목을 베어 전리품으로 모으고, 포로를 산채로 불태우거나 종교의식에서 인육을 먹는 것을 보고 이들이 미개하다고 단정한 것을 두고, 저자는 문명화되었다고 믿었던 유럽 사람들도 인육을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신대륙의 원주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역사에는 공통된 문화적 틀을 유지하게 하고, 변화에 최초의 시동을 걸며, 같은 또는 다양한 방향으로 변환과 변혁을 결정짓는 프로세스가 있으며, 그 프로세스는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합니다.


석기시대 이래로 인류는 식량의 공급과 수요를 맞추기 위하여 손쉽게는 유아살해나 노인살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채집과 사냥으로 식량을 구하던 인류가 농업과 목축을 통하여 식량을 얻게 되었지만, 이는 삶을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도록 하는데 기여하였을 수는 있지만, 투입해야 하는 노동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집단의 수요를 채우기 위하여 다른 집단과의 전쟁이라는 차선책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잦아지면서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원시국가의 형태가 자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앞서 신대륙 원주민들의 식인풍습을 인용했습니다만, 마야와 아즈텍에서 식인풍습이 자리하게 된데는 마땅한 단백질원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의 선주민들이 야생동물들을 남획하여 멸종하면서 이를 대체할 가축을 개발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구대륙에서 소, 돼지, 말, 낙타 등 다양한 동물을 가축화하고 있었고, 안데스지역에서는 라마나 기니피그를 가축화하고 있어 넉넉하지는 않지만 단백질원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신에게 인간을 희생물로 바치는 의식은 메소아메리카 지역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보면 고대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메소아메리카에서는 인신공양과 더불어 식인의 풍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서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국가가 형성되는 배경까지도 재화와 용역의 배분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중세 무렵까지도 문명수준이 압도적으로 높던 중국의 국가체제가 벌전하지 못한 것도 재화의 배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데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요즈음 주목받고 있는 출산율 저하나, 영아살해 자녀유기 등의 끔찍한 사회현상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어린이 양육이 가져오는 순이득이 그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더 유리할 때는 자녀를 많이 낳았을 것이나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특히 진화의 방향이란 누구도 예측이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적 진화발전 방향이 제도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열려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인간의 자유의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지금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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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여행 바이블 - 물빛 가득한 영혼의 휴식처
오동석 글.사진 / 서영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오동석님의 <크로아티아 여행바이블>은 요즈음 쓰고 있는 발칸 여행기에 참고하려고 고른 책입니다. 저자는 동유럽에서 10여년을 살았으며, 유럽의 현지 가이드를 하면서 여행작가 겸 투어리더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가 쓴 글을 보면 아주 다양한 자료를 잘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 포스토이나 동굴, 크르아티아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그리고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를 ‘발칸여행의 판타스틱 포’로 꼽았습니다. 마침 제가 다녀온 발칸여행 상품에서도 이들 네 곳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는데, 저자의 말씀이 충분히 공감이 가는 것 같습니다.

 

‘물빛 가득한 영혼의 휴식처’ <크로아티아 여행 바이블>에서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베네치아, 보스티아 헤르체고비나의 4개국의 명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보지 못한 곳을 소개하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가본 곳이 빠져 있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같은 발칸(광범위의) 국가들의 경우는 여행지다운 곳이 부족하다 못해 없는 곳도 있다고 잘라 말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좋은, 아니 유능한 가이드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여행에서 처음 5분에 해당하는 것은 도착지 숙소라는 것입니다. 여행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는 개념을 잡는 것은 첫날 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행은 후반으로 갈수록 좋아야 한다는 점도 공감합니다. 처음에 좋은 곳을 보면 뒤에 보는 것들은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발칸 같은 경우는 여행사 상품이라고 해도 다양하게 구성되고 있어서 기회가 되면 다시 가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빠지지 않는 판타스틱 포의 경우는 다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크로아티아 여행 바이블>에는 여행지에 대한 다양한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역사를 포함한 인문 지리를 망라하고 있어서 이 지역에 대한 앎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발칸여행기를 쓰면서 많이 인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원전을 밝혀서 읽는 분들에게도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의 경우는 원자료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진에 대하여도 이야기하면, 아주 좋은 사진을 곁들이고 있는데, 같은 장소도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사진 설명이 붙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책으로 묶어 내다보면 설명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여행칼럼을 쓸 때는 요점만 추려가 간략하게 정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칼럼이 끝나더라도 나중에 얻는 자료는 꾸준하게 추가해서 보완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점점 길어지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는 가급적이면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크로아티아 여행 바이블>에서는 그런 점이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사라예보의 라틴 다리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당하는 장면은 순전히 우연의 연속이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예정된 장소에서 저격이 이루어진 것처럼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은 맞지만 당시 발칸반도를 둘러싸고 있던 제국들 사이의 힘의 균형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는지를 설명했더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발칸을 여행하면서 보았던 것들 중에 궁금했던 것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답을 얻은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우리 일행을 안내한 가이드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인솔에 가이드까지 겸하는 바람에 힘이 들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한 발칸 여행을 다시 다녀오는 느낌으로 읽었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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