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 그린 베이징
왕천 지음, 임화영 옮김 / 이담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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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추억을 남기는 방법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글로 쓰기를 들었고, 이어서 그림으로 남기기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였던 것 같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정리하기에는 글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본 것을 남기는 방법으로는 그림이 더 나을 듯합니다. 요즈음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막상 나중에 사진을 들여다보면 별로 남은 기억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본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려면 사물을 잘 관찰해야 하고, 그런 가운데 느낌이 강하게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스케치의 경우는 사물의 핵심 인상을 굵고 간략하게 표현하는데 반하여 세밀화의 경우는 미세한 부분까지도 표현하기 때문에 더욱 현장감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펜으로 그린 베이징>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수년 전에 업무차 베이징을 방문했지만, 체류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천안문 광장에 잠시 서 있었던 것 외에 별다른 구경을 할 여유가 없었가 때문에 베이징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펜으로 그린 베이징>에 담은 다양한 소재들이 생소하기만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관점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베이징이라는 도시의 역사성이 될 것 같고, 두 번째는 베이징의 모습을 기억에 담아두려는 저자의 놀라운 정성이 될 것 같습니다.


<펜으로 그린 베이징>의 그리고 쓴 작가는 베이징영화학원의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중국국가천문에서 미술 편집을 담당하고 있는 왕천입니다. 중국의 수도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베이징이 최근 들어 불어닥친 개발의 바람을 타고 예스러운 모습들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골목골목에 배어 있는 전통과 문화, 역사의 흔적들을 담아내기 위하여 누각, 고성, 후퉁(胡同)이라고 부르는 골목,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포(老圃), 그리고 발전의 표상이 되는 신도시의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베이징의 다양한 모습들을 펜으로 그려내고 간략한 설명을 붙여두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풍경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면 사진을 찍을 때 어쩔 수 없이 끼어드는 불필요한 존재나 거치장스러운 것을 생략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생략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듯, 골목에 세워둔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슬쩍 그려 넣어 풍광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건물에 가지만 앙상한 나무를 그려 넣거나, 풍성한 숲을 그려 넣음으로 해서 계절감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2층의 창밖에 걸어둔 새장까지도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서 분위기를 달리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돌다리를 그리면서 물 위로 뛰어오르는 잉어를 그려 넣어 역동감을 주기도 합니다.


작가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대목은 그려낸 건물 가운데 적지 않은 것들이 붕괴의 위험이 있다던가, 개발붐을 타고 사라져 지금은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외세의 침략을 받는 가운데 훼손된 역사적 유적을 그려 침략자들의 반달리즘을 고발하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베이징 원인(猿人)의 유적이라거나 1,200년이나 된 은행나무를 그려낸 것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는 다른 풍물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허녠탕(鶴年堂)이라는 약국은 명나라 가정(嘉靖) 4넌(1525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중국 역사상 최초로 문인(文人)이 개업한 가장 오래된 약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과거 중국에서는 약국을 개설하는데 특별한 자격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중국신문만화연구회 쑨이쩡(孫以增)회장은 추천사에서 “이 책이 놓인 내 책상 위에서 마치 천 년 고도 베이징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라고 했는데, 베이징 역사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베이징을 갈 기회가 있으면 들고가서 현장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섬세한 작품과 설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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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다이어리 - Todo bien
권근혜 지음 / 갈래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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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고,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그리고 여행에 관한 글을 읽다보니, 나름대로의 기준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여행기를 읽을 때 지나치게 감성을 자극하는 경우에는 긴장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칫 작가에게 말려들어 지나친 환상을 가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 현지에 가보면 틀림없이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경우는 다소 건조한 느낌으로 여행기를 적다보니 읽는 재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와 비슷한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분들은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어떻든 <쿠바 다이어리>를 읽게 된 것은 쿠바의 의료를 직접 경험해보았다는 소개가 있어서였습니다. 지난번 쿠바에 갔을 때 현지 가이드는 쿠바의 의료체계가 대단한 것처럼 소개해서 제가 아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카리브지역의 따가운 햇볕으로부터 약한 피부를 보호할 생각도 없이 맨살로 돌아다니다가 화상을 입고 병원엘 찾아갔다는 것인데, 그것도 저녁 6에 찾아간 병원은 쿠바 국민을 치료하는 병원이었다는 것입니다. 쿠바의 의료전달체계는 1차 진료의사로부터 진료를 받고 증상이 심하면 상급병원으로 이송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도저도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서 처음 만난 의사는 아는 것이 없는지 상급자를 데려오기를 네 차례나 하는 바람에 똑 같은 이야기를 네 번이나 반복하고서도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처방전을 겨우 받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랬다가는 당장 TV방송에 나고 병원이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았다고 하니 눈에 콩깍지가 덮여도 단단하게 들러붙었던 모양입니다.


저자도 소개하는 요시다 타로의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http://blog.yes24.com/document/8702108>는 마치 쿠바정부의 연구비를 받고 쓴 보고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행간을 읽어보면 쿠바정부가 해외의 재난현장에 파견하는 대규모 의료진의 구성을 보면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의사와 의과대학생들로 구성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의료는 쿠바의 전략상품이기도 한 것입니다. 쿠바에서 자체 개발된 의약품을 사용한다고 합니다만 천연약초와 민간요법을 활용해서 자체적으로 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곧 우수한 의약품을 개발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경제논리를 따르느라고 자체 개발보다는 제약품 수입에 열을 올리는 우리나라와 비교되었다는 저자가 과연 우리나라의 제약산업의 실상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장기간에 걸쳐 쿠바의 곳곳을 돌아보겠다는 뜻을 세운 것은 오로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가 주어지는 곳이 바로 쿠바라는 환상에 매몰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안정적인 회사에 입사해서 겨우 8개월 근무해보고 자본주의의 바닥을 경험한 것처럼 치를 떨며 쿠바로 떠났다는 식이니 요즘 말하는 개념이 투철한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쿠바남자의 안내로 시골을 여행한다거나, 심야에 외진데 있는 나이트클럽을 찾아간다는 등의 발상이 정상적이라고는 보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제가 너무 보수적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본 쿠바는 오랜 세월을 국가통제 아래 갇혀 살아온 사람들이 종주국 소련이 무너지면서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겨우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당장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건물들에 사람들이 사는 것이 신기해보일 정도였고, 심지어는 묵고 있는 호텔방이 문이 잠기지 않는다는 것을 마지막 날 아침에서야 알았다는 것입니다. 저자도 쿠바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기대려는 경향을 몇 차례나 적었습니다만, 공항의 화장실을 막고 막무가내로 돈을 받는 경우는 황당무계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쿠바라고해도 한 달 이상 외국을 여행하면서 치밀한 계획 없이 기분내키는대로 여행하는 자유로움이 부럽기도 하면서도 대책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쿠바에서 무엇을 배워가지고 돌아왔을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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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집 - 책들이 탄생한 매혹의 공간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 지음, 이세진 옮김, 에리카 레너드 사진 / 윌북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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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책을 내는 동안 글쓰는 장소에 대하여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창작이 아니라서 피를 말리는 듯한 절박한 느낌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하시는 분들은 장소에 민감한 듯합니다. 작가들의 창작공간을 직접 구경해본 기억은 별로 없었습니다만, 올 초에 쿠바를 찾았을 때, 아바나 시내의 호텔 암보스 문도스나 아바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헤밍웨이의 집, 핑카 비히아에서 그가 남긴 창작의 공간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을 뿐입니다. 멀리 아바나를 볼 수 있는 망루가 있는 저택을 빙 돌아가면서 구경을 하다보면 방마다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모습이 여유가 있어 보였던 것 같습니다.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가 글을 쓰고 에리카 레너드의 사진으로 장식한 <작가의 집>은 유명 작가들의 명작을 탄생시킨 공간, 즉 작가의 집을 문학적으로 그리고 건축학적으로 톺아보고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셀마 라게를뢰프, 윌리엄 포크너, 크누트 함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 여섯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을 포함하여 모두 20명의 작가들의 창작공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에게 있어 집이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적은 저자는 ‘집은 작가들의 추억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들의 불안을 달래주며, 사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창조적 상상력은 머나먼 지평까지 날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7쪽)’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자와 사진작가는 작가의 세계에서 집이 가지는 의미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호기심을 정리한 것이 바로 <작가의 집>이었던 것입니다.


인도차이나에서 중국인 남자와 백인 소녀와의 연애를 그린 <연인>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창조와 고독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프롤로그를 썼습니다. <롤 V 슈타인의 황홀>과 <부영사>를 쓴 자신의 공간을 ‘고독의 장소’라고 소개한 뒤라스는 ‘고독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독은 저절로 만들어진다. 나는 고독을 만들었다.(17쪽)’라고 알듯 모를듯한 말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글쓰기를 위해서 이곳에서 혼자여야 한다고 작정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낡아 보이는 가구나 마른 꽃으로 어수선해보이는 집이 작가에는 포근한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책과 잡동사니들로 어지러운 방이 익숙한 듯 생각이 술술 풀려나가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코네티컷 하트포트에 있는 마크 트웨인의 집은 교회건축으로 유명한 건축가 에드워드 터커먼 포터가 지었는데, ‘주 전체를 통털어, 아니 어쩌면 미국에서 가장 괴상한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 ttp://blog.joins.com/yang412/14086194>에서 마크 트웨인 스스로 자신의 집의 독특한 모습에 대하여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을 얼마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이 집이 조화롭다고 했습니다. 특히 작가의 부인 리비가 아름답고 감성적이면서도 세련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던 것이라고 합니다. 집도 주인의 모습을 닮아간다고 할까요? 그런 점에서 가르도네에 있는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집은 주인의 독특한 풍모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군인이자 시인인 단눈치오는 정원 윗부분에 전함을 반쯤 파묻어서 사이프러스 나무와 올리브 나무가 무성한 산중턱에 배가 떠오른 것과 같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고 합니다.


작가들의 집들은 대체로 개인 박물관이 되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작가들의 창작공간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풍부한 사진들은 집안의 공간은 물론 집이 자연과 어떻게 어울리고 있는지를 가본 듯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습니다. 스무개나 되는 작가들의 창작공간을 모두 찾아가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만, 욕심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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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화
프란치스코 교황.안드레아 토르니엘리 지음, 국춘심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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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남미를 여행하면서 두 차례나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그가 태어나고 사제직을 맡아하던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곳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행지 멕시코시티에 가던 날 비슷한 시간에 교황께서 멕시코를 방문하시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미를 다녀와서 얼마 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책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담을 엮은 <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가 출간된 것입니다. 이 책은 바티칸 교황청이 공식으로 인정한 첫 번째 대담집이라고 합니다.


2013년 제266대 교황의 위에 오른 프란치스코교황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스Jorge Mario Bergoglio)입니다. 프란치스코교황은 몇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최초의 아메리카출신, 최초의 예수회 출신, 최초의 남반부 국가 출신 교황인 것입니다. 시리아출신의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전만에 비유럽권 교황이 탄생하였으며, 바오로1세 이후 35년만에 이탈리아계 교황이 즉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교황께서는 언제나 겸손하고 검소하게 생활하시며,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미쁘게 생각하신다고 합니다. 교황의 이러한 성품으로 2016년을 자비의 희년(Jubilee of Mercy)을 선포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희년(Year of Jubilee, 禧年)이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정해서 기념하는 특별한 해를 말하는데, 25년마다 돌아오는 정기 희년과 특별한 이유로 선포하는 특별 희년이 있습니다. 희년 기간 중에 교황이 제시한 조건을 지킨 신자들에게 죄에 대한 유한한 벌을 모두 사면받는 전대사(全大赦)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구약시대 종살이를 하던 이들이 희년에 해방되던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는 이탈리아 출신 바티칸 전문가이며 일간지 <라 스탐파>의 기자인 안드레아 토르니엘리기자가 교황의 참회예절에서 하는 강론을 듣다가 자비의 희년을 맞아 ‘자비와 용서’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 질문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드렸던 것이고, 교황께서 이를 받아들여 성사된 대담의 결과라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평소에도 자비에 무게를 둔 사역을 해오셨는데, 특히 ‘상처받은 이들이 교회의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리지 않고 거리로 그들을 찾아 나서서 그들을 모아들이고 그들을 품어 안으며 그들을 돌보고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33쪽)’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비록 교황께서 이 주제와 관련하여 교회를 비유하셨는데, 야전병원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심한 상처부터 치료한다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야전병원에서는 상처의 경중에 앞서 회생의 가능성을 먼저 고려한다는 것을 간과하셨던 것 같습니다. 상처가 아무리 심해도 생명를 구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치료의 순서가 넘어간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결국 구명하지 못할 환자에 매달리느라 시간을 소모하게 되면 살 수 있는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지면서 또 다른 희생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교황께서는 교회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초기 교회에서 사도들은 이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에게도 모세의 율법을 무조건적으로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저항을 이겨내야만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도 편견과 엄격함을 이겨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믿음의 문턱에 선 이교도의 마음 속에 성령께서 일으킨 불을 그리스도인들이 율법학자의 심리로 꺼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율법학자들은 때로 형식에 집착하는, 위선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는 초기 기독교가 신약의 관점에서 구약을 바라보던 시각이 어느새 반대의 입장이 되어버린 셈이라는 점을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용서하는 일에 결코 지치지 않으신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톨릭의 교리는 잘 모릅니다만, 프란치스코교황님이 전하는 말씀은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자비의 희년을 맞아 초기 기독교의 정신으로 려운 사람들을 궁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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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나라, 땅의 사람들 - 정직한 페루미술을 찾아서
유화열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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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남미여행을 준비하면서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문화원을 찾아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예술품은 물론 현대미술 작품도 꽤나 생소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막상 남미여행을 하면서는 라틴미술작품을 감상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라틴아메리카, 특히 페루의 미술세계를 돌아본 느낌을 정리한 <태양의 나라 땅의 사람들>이 반가웠는지도 모릅니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저자는 멕시코로 유학하여 산카를로스 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이 가진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학술진흥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예술을 연구하게 되면서 페루미술의 본바탕을 직접 보아야 할 것 같은 강박감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페루행 비행기를 탔던 것인데, 그래서인지 그녀의 행적을 보면 여늬 남미여행자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일단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리마를 기점으로 하여 쿠스코, 푸노, 아케피카, 이카, 아야쿠초를 돌아서 리마로, 이어서 카하마르카, 트루히요를 거쳐 다시 리마로, 마지막으로는 나스카를 다녀왔습니다.


우리는 흔히 페루하면 잉카문명만 떠올립니다만, 태평양을 따라 펼쳐진 안데스 산록에는 잉카 문명이 들어서기 전에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문명이 일어났다가 스러지기를 반복하면서 후대에 영향을 주어왔다고 합니다. 잉카문명에 이르기까지의 13개의 문명의 특징을 산악지역과 해안지역으로 구분하고 북부, 중부, 남부로 각각 구분하여 나누어놓은 저자의 착안이 독특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들 문명이 어떻게 후대에 영향을 미쳤는지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술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반영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페루 사람들과의 적극적으로 만나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꽤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내려오는 신화 혹은 민담도 적극적으로 채집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즈텍이 소수의 스페인군인에게 무너진 것은 지배부족이 피지배부족을 강압적으로 통제했기 때문에 피지배부족들은 스페인이라고 하는 외세를 빌어 복수할 기회를 구했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잉카제국 역시 피지배부족들의 반발심리를 이용하여 무너뜨릴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안타깝게도 스페인군에 호응한 원주민들은 스페인 군인들이 바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인데, 그런 순진한 생각이제 발등을 찍는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제국의 멸망에 이어 도와준 원주민들까지도 식민지배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저 야만인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방대한 지역에 흩어져 있던 문명의 흐름을 서로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인데, 고미술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있는가를 유추해내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진과 스케치 등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기획도 돋보입니다. 페루미술을 돌아보고 난 저자는 느낀 점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정직하다는 말은 왠지 재미없고 딱딱하고 고루할 것만 같아 미술에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허구나 환상, 때로는 지나친 감정이입으로 인한 과장도 서슴치 않는 게 미술 특유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페루미술에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은 마음에서 나온 간절한 정직함이 있었다. (…) 절박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인 것이 페루미술이고, 그런 탓에 그 정직함이 더없이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279쪽)”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는 정말로 먼 곳이다. 그래서 관심이 별로 없었지만, 최근에는 남미에 대한 관심이 불붙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다녀올 생각을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넉넉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터에 미술이라고 하는 특정부문에 대한 세밀한 기록을 내놓은 저자의 노고가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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