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 빈의 동네 책방 이야기
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류동수 옮김 / 솔빛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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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여행을 준비하고 있기에 눈에 띄었는지도 모릅니다. 조용한 동네 입구에 있는 고풍스러운 작은 서점이라도 눈에 띌까싶어서 골랐습니다. 작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뮌헨에서 태어나 빈에서 성장한 작가는 빈대학에서 심리학과 역사를 공부하고서, 아마도 서점에서 일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역시 서점에서 일하는 친구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회에 갔다가 소개받은 남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남편의 본거지가 함부르크인 까닭에 함부르크로 이사를 했던 것인데, 여름휴가 때 찾은 빈의 한 동네에서 서점 하나가 문을 닫게 되었다는 공고를 붙인 것을 보고서는 응찰했던 것이 덜컥 낙찰을 받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다시 빈으로 돌아와 동네서점의 주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요즘에는 인터넷서점을 통하여 대부분의 책을 구하고 있고 매주 동네 도서관을 찾아 책을 빌어서 읽고 있습니다만, 오랜 옛날에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동네서점을 드나들었습니다. 퇴근길에 들르거나, 혹은 저녁을 먹고 산책삼아 서점에 가서는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의 책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선채로 신간소설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것이 인터넷서점에 밀려 동네서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발길이 멀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내와 인연이 된 것도 서점때문이었는데, 약속시간이 조금 남아서 들렀던 서점에서 구입했던 책이 알고 보니 제목이 달라서 몰랐지만 이미 읽은 책이었던 것입니다. 아내가 책을 바꾸어주겠다고 제안하는 바람에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만남이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 책에는 동네서점을 경영하는 중요한 요점이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독서에 대한 인식이 오스트리아와 우리나라가 다르다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어떻든 시도해봄직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오스트리아 역시 아마존이라는 괴물에 밀려 동네서점들이 차례로 문을 닫아가고 있는 사정은 비숫한가 봅니다. 하지만 아마존의 운영체계에 숨겨진 문제점들이 언론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는 시점에 맞물려 새로운 운영방식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통하여 수년 만에 2호점을 내는 기염을 토하였을 뿐 아니라, 다양한 책을 섭렵하면서 쌓인 독서내공을 바탕으로 추리소설을 출판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을 위한 소식지를 만들고, 홈페이지를 통한 인터넷 주문도 받는 등 동네서점에서 대형서점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동네서점으로서의 주민친화적인 관계가 흐려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생깁니다. 서점이 동네 사랑방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시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서점에서 일하려면 도제과정을 통하여 수련을 받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즉 서점에서 일한다는 것이 그저 손님이 골라서 내미는 책을 돈받고 파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손님의 독서 성향을 파악하여 신간이 나왔을 때 적시에 소개하거나, 고객이 궁금증을 풀어주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년간 출간되는 책이 4만 종류가 넘는다고 합니다. 한해 200~300권 정도 읽는 제 경우도 1%도 읽지 못하는 셈입니다. 종류가 하도 많다보니 잘 팔리는 책이거나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책에 대한 정보만이 제한적으로 알려지는 것도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서점이 출판정보를 파악해서 단골들에게 제공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행사를 흔히 만나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출판사가 주도하는 행사인데, 유럽에서는 서점과 출판사가 공동으로 기획하는 경우도 많은가 봅니다. 특히 동네서점에서도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데 작가와 단골들의 성향을 잘 아는 서점 주인이 연결하기 때문에 저자와 책읽는 사람들 사이에 깊은 교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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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야 - 셰익스피어 희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재남 옮김 / 해누리기획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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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발칸여행길에 두브로브니크를 찾았던 인연으로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는 대학시절 잠시 활동했던 연극동아리의 레퍼토리인데 제가 활동하던 무렵에는 무대에 올린 적은 없었습니다.


<십이야>와 두브로브니크가 어떻게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는가 하면, 3차 십자군전쟁에 참전했던 리차드왕이 1192년 영국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드리아해에서 폭풍을 만나 조난당했는데, 두브로브니크 성 앞에 있는 로크룸(Lokrum)섬에 좌초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인연이 셰익스피어에게까지 전해졌던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 때는 성 밖에 있는 로브리예나츠요새에서 <햄릿>을 공연한다고 합니다. 인연의 실타래가 아주 질긴 듯합니다.


<십이야>는 1601년 ‘십이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째인 1월 6일에 열리는 주현절 축제일 전날 밤에 엘리자베스여왕이 이탈리아의 메디치 집안에서 파견된 오시노공작을 위한 잔치의 여흥으로 올리기 위하여 집필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오시노공작이 되는 것이군요. 무대는 사자왕의 난파사건과 관련을 지어 일리리아 지방, 즉 지금의 두브로브니크 지역이 되는 것입니다. 1막2장이 시작되면 난파된 배에서 살아나 바닷가에 상륙한 비올라가 “이봐요. 여긴 어느 나라인가요?”라고 묻자 선장이 “예, 일리리어라고 하지요”라고 대답합니다.


일리리아는 지금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알바니아 등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여러 부족들이 흩어져 살다가 기원전 4세기 무렵 부족들이 통합되어 일리리아왕국이 성립되어 스코드라(지금의 알바니아의 슈코더르)에 도읍을 정하였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의 침략이 이어지다가 기원전 167년 로마의 속주가 되었습니다.


<십이야>는 배가 난파하여 일리리아에 상륙한 쌍둥이 남매 비올라와 세바스티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남녀 4각 관계를 그린 희극입니다. 객지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남장으로 하고 오시노공작의 하인으로 들어간 비올라는 오시노공작의 인품에 반하여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오시노공작은 아름다운 올리비아 아가씨에게 온통 마음이 쏠려있습니다. 정작 오시노공작의 사랑을 전하는 전령으로 나선 비올라를 본 올리비아는 비올라에게 빠집니다. 이렇듯 물고 물리는 삼각관계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다가 상황을 모르는 세바스티언의 등장으로 더욱 복잡해집니다. 세바스티언을 비올라로 착각한 올리비아가 사랑을 고백하고 세바스티언 역시 그녀의 청혼이 싫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시노공작의 사랑은 올리비아가 세바스티언과의 약혼발표에 그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에서 비올라가 사실은 남장여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리는 설정은 아무리 희극이라고 해도 거시기한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인품있는 공작의 사랑이 지나치게 가벼운 것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그래도 극의 재미를 더하고 행복한 결말을 맺기 위한 설정으로 한바탕의 웃음으로 마무리되면서 공작의 가벼운 사랑도 묻히는 것 같습니다. 올리비아의 집사이기도 한, 덜 떨어진 맬볼리오를 놀리는 줄거리가 주인공들의 사랑을 돋보이게 하려는 작가적 장치로 이해됩니다.


해누리에서 내놓은 <십이야>에는 17세기의 판화와 19세기 화가들이 연극공연을 보고 그린 그림들이 넉넉하게 들어있어서 당시의 의상을 감상할 수 있는 망외의 소득이 있습니다. 그리고 억측일수도 있습니다만, 세바시티언이 탔던 배의 선장 안토니오가 일리리아의 오시노공작과 해전을 벌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비올라와 세바스티언은 베네치아나 제노바의 귀족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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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없는 나라 - 인디언 언어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에반 티 프리처드 지음, 강자모 옮김 / 동아시아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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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중북부 미네소타에서 공부하던 시절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북미대륙의 원주민의 삶에 관심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서부영화에서처럼 백인들의 시각에서 들여다본 것이 아닌 오롯하게 그들의 시각으로 설명하는 그들의 삶을 말입니다. <시계가 없는 나라>는 알곤킨문화센터(The Center for Algonquin Culture)의 설립하고, 미국 마리스트 대학에서 북미원주민의 역사를 가르치는 에반 T 프리처드교수가 쓴 알곤킨어를 쓰는 워버너키부족의 지파인 미크맥족의 문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알곤킨어족은 모두 84개나 되는 상이한 언어를 포괄한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귀에 익은 모히건어를 비록하여 매사추세츠어 등도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하여 캐나다 연해주 내륙 깊은 곳의 미크맥부족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마법사로 통하는 미크맥 원주민을 만나 그들의 삶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그와 같은 탐구활동을 정리한 것인데, 그들의 삶만을 기록했다기보다는 일종의 비교문화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의 장자를 비롯하여 인도의 베다 등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인용하여 비교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억측에 가까운 해설이라고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다 이전 인도의 북서부 지역에 거주하던 드라비다인이 유입된 아리아인에게 밀려 아메리카대륙으로 이주했을지도 모른다는 식입니다. 드라비다인들과 미크맥 원주민들의 철학이 유사한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메리카대륙에 살고 있는 원주민의 기원으로 베링해유입설이 오래도록 가장 유력한 가설로 인정되어왔지만, 북대서양 이주설, 남대서양 이주설이 있고, 최근에는 폴리네시아를 경유한 태평양이주설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고고학분야에서 2007년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러시아 동부 지역에 살던 퉁구스인이나 이누이트 등 몽골로이드 계열의 민족이 최소 12,000년 전에 베링 해협을 거쳐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드라비다족은 이란고원에서 출발한 타타르족의 일부가 흘러들어 인더스문명을 꽃피운 인도의 원주민으로 기원전 2,000년~1,500년 사이에 아리안족의 침입으로 인도 남부로 밀려나면서 남동아시아의 섬까지 흩어졌고, 일부는 한반도 가야로 유입되기도 했다고 보는 것인데, 이들이 다시 베링해를 건너 북미대륙까지 흘러들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장자를 동아시아 사상의 유일한 것처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장자는 제자백가의 한 사람이었을 뿐 백가쟁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시절에는 무수한 사상들이 분출하던 시기였는데 장자의 말씀을 지고의 선처럼 인용하고 있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미크맥 원주민의 삶과 유사한 생각과 비교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경계해야 하는 바가 아닌가 싶습니다.


불과 한 세기 이전에는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만,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에서 일곱 세대가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한 사람이 통상적으로 일생동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세대는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와 형제자매, 아들과 딸, 손자와 증손자 등 7대에 걸친다는 것입니다. 운이 좋으면 고조에 이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같은 가옥, 혹은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입니다. 증조할아버지의 행동이 나를 통해서 증손자에까지 전해진다는 것인데, 결국 가문의 정신 같은 것으로 이어져내려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워버너키 원주민들이 음식을 먹을 때 접시에서 일정량의 음식을 덜어내 땅에 제물로 돌려준다는 것도 우리나라의 고수레 풍습과 같은 것이라고 보면, 종족들을 비교해보면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풍습일수록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철학적 바탕은 지켜나가야 할 것이지만,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는 미크맥 원주민의 문화가 삶의 본류가 되는 것이 과연 옳은가하는 문제는 별개의 것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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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 만에 이기는 보고서
미키 다케노부 지음, 이수형 옮김 / 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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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와 발표 등을 주요 업무로 해온 지도 오래 되었습니다만,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늘 아쉬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계발이나 업무개선에 관한 책들도 적지 않게 읽어왔지만, 미키 다케노부의 <10초 만에 이기는 보고서>만큼 핵심을 짚는 책을 만나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10초 만에 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상업적인 분야가 아니라서 금세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획서, 보고서, 혹은 발표 자료를 만드는 일의 기본은 모두 통하기 때문이었는지, 읽어가면서 핵심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저자 미키 다케노부는 대학을 졸업하고 손정의 일본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비서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세상에서 가장 바쁜 회장에게 어필하려면 그야말로 10초 안에 회장을 이해시켜야 하는 소프트뱅크의 독특한 구조가 만들어낸 업무처리 방식이 자리잡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의 정확도와 속도는 이율배반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빠른 결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하고도 빠른 결정을 내리기 위하여 핵심을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생겼을 것 같습니다.


<10초 만에 이기는 보고서>는 모두 보고서 작성과 발표 과정에서 참고해야 할 10 가지 핵심을 정말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업무처리 보고서, 매출보고서, 요인분석보고서 등과 같이 보고서라는 면에서는 중복되는 듯한 것도 있습니다만, 상사의 특성상 성격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별도의 주제로 삼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보고서양식도 원용하면 어느 조직에서도 활용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프로젝트 관리시트, 파레토차트, 회귀분석, 프로세스 분석 시트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의의사록이나 프레젠테이션, 기획서 작성 요령은 정말 어느 조직에서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레토의 법칙은 오래 전부터 들어왔습니다만, 파레토의 법칙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이번에 처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색을 입힌 활자나 배경에 색을 깔아놓은 책을 읽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주황색 하나로 배경처리를 하고 있는 부분들이 정말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적인 흐름을 고려하면서 업무의 진척사항을 수치화하다보면 반드시 애로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이후에는 애로사항 해소(문제해결)에만 전념할 수 있다.(43쪽)”와 같은 경우입니다.


제가 쉽게 이해가 되는 설명이라고 했던 것은 아마도 작은 제목까지도 콕 짚은 듯해서일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문서를 작성할 때 어떤 관점에서 작성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바로 ‘윗선의 관점에서 가설을 세워라’라는 경우는 좋은 예입니다. 대부분의 보고서 작성자는 자신의 관점에서 사안을 들여다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어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게 됩니다. 부하직원이 피하고 싶은 것은 이 보고서가 경영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당장 상사로부터 질책인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액셀을 다시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히스토그램, 특성요인도, 층별, 산점도, 체크 시트, 관리도 등 업무파악에 효율적인 자료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레젠테이션에 관한 부분에서도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 경우는 대부분의 경우 발표자료를 직접 만들어 사용합니다. 때로는 사전에 연습을 하기도 합니다만, 큰 틀에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겠다는 방향만 정하고 발표장에 들어서는데, 일단 발표가 시작되면 청중과 눈을 맞추면서 반응에 따라 발표를 이어가는 편입니다. 발표자료의 작성 요령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비법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상사맨들이라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딱히나 상사가 아니더라도 보고서작성이나 발표와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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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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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모든 생명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숙명입니다만, 인간만이 유일하게(다른 생명체 역시 사유(思惟)한다는 증거가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단정한 것입니다.) 그 숙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해온 것 같습니다. 영생을 꿈꾸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간은 우선 죽음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피하는 소극적 대응을 구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어서 인간은 영생에 가름하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창조해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종교의 형태로 발전했던 것인데, 특히 불교에서는 죽음과 탄생이 반복된다는 윤회의 개념을 곁들여 현생의 고통을 견디어낼 수 있게 한 것 같습니다.


사유의 발전은 생명의 본질과 죽음의 원인을 분석하게 되었고, 생명을 연장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죽음이라는 생명현상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과거에도 유사한 움직임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죽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는 생각이 점점 확산되고 있는 듯합니다. 스스로가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주어진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함으로써 후회 없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죽음을 화두로 쥐고 정진하는 분들이 많은 지, 그 성과를 담은 책을 읽을 기회가 많습니다. 덕분에 저 역시 죽음에 관심이 많아지고,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도 죽음을 이해하는 하나의 공부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http://blog.joins.com/yang412/12623266>를 통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죽음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줄리언 반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금년에 우리나라 작가 한강씨가 받아서 화제가 된 문학상입니다. 줄리언 반스는 예술사와 19세기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는데, 특히 플로베르나 푸생에 정통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도 많습니다만, 작가는 오랫동안 ‘죽음’에 대하여 천착해왔다고 합니다. 그는 첫 소설 <메트로랜드(1980)>에서부터 죽음을 언급했다고 하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는 학창시절 절친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주인공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고, 사별과 살아남은 자의 삶을 다룬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http://blog.joins.com/yang412/13423768>에 이르기까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왔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 소개하는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2008년에 출간된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금년에 처음 소개되었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2011년)>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2013년)> 보다 먼저 나왔던 것입니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반스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예술가들의 죽음에 관한 일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몇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일반적인 책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에 관한 일화들이 반복해서 거론하고 있기 때문에 책읽는 흐름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완독한 뒤까지 남는 의문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에서는 그 무렵 죽은 아내에 대한 절절한 감정을 쏟아 부었던 그가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는 아내에 대하여 한 줄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사랑한 이의 죽음을 웃으면서 이야기하기에는 여전히 부담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앞서 죽음에 대한 인간의 사유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짚어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죽음에 관한 사유가 종교와 무관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털어놓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저자의 가족은 외조부모, 부모 그리고 그의 형 등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형과 자신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철학을 전공하는 형은 무신론자이며 저자는 불가지론자입니다. 어려서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저자였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불가지론으로 기울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그립다.(9쪽)” 절대적이며 완벽한 진실이 존재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는 교조주의(敎條主義)의 교조적(?) 입장에 반발하여 생긴 불가지론은 신의 존재와 같은 신학적 명제는 진위를 가릴 수 없으며, 사물의 본질은 인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왕에 가족 이야기가 나왔기에 정리를 하면, 옮긴이는 이 책이 반스 자신의 회고록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자는 “이것은 나의 ‘자서전’이 아니다. 그렇다고 ‘잃어버린 부모님을 찾아서’ 따위의 이야기도 아니다. (…)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불필요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헤아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64쪽)”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하려는 노력의 일환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철학자와 문학자는 여러 모로 다른 점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요양시설에 계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고인을 보겠느냐는 장의사의 질문에 형은 “고인의 시체를 반드시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플라톤이 말했다는 이유로 거절하지만, 반스는 오랜 세월 어머니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분노의 감정과 이별하는 절차가 필요했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시신을 마주합니다. 어느 집안처럼 반스 형제도 여러 모로 비교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이 커왔기 때문에 공유하는 상황이 많았을 터이나 형제는 기억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는 지적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녹여져 있지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뿌리가 깊었던 모양으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까지도 꽤나 다른 성격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교장을 지내셨던 만큼 권위를 인정받았을 터이나 어머니의 횡포에 속수무책이었던 모양입니다. 몰리는 입장이었던 아버지는 치매를 앓아 요양시설에서 조금씩 스러져갔지만,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길지 않은 투병 끝에 죽음에 이르렀던 모양입니다. 죽음을 맞는 것에서도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신이 그립다’라고 하는 불가지론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은 종교예술을 만날 때에 국한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즉 종교예술의 토대가 되는 목적과 신념의식이 그립다는 뜻으로 제한적으로 이해해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온 이유는 모든 신자들이 단순하게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통치자와 성직자가 강요했기 때문이고, 사회적 통제수단이었기 때문이며, 시골에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옛날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제 명에 죽지 못할 수 있었기에 신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학습을 요한다. 독서부터 죽음까지.(163쪽)”라고 스탕달은 말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딱히 죽음을 연습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별」,「마지막 수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알퐁스 도데 역시 죽음에 관한 비망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데는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는....) 실제로는 두 명의 의사가 불려 와서 한 시간 반 동안이나 당시 유행하던 인공호흡법을 시행하다가 그도 안되자 전기충격을 가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도데에게 명성을 안겨준 랑그(langue)와 의사들이 그를 되살리기 위해 잡아당긴 랑그(langue)의 아이러니를 꼬집고 있습니다.(프랑스어 랑그는 ‘언어’를 의미하기 전에 ‘혀’를 뜻하기도 합니다.) 숨을 거둔 다음에 일어난 구명과정이야말로 도데의 친구 에밀 졸라가 설명하는 ‘아름다운 죽음(une belle mort)’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상상하는 죽음을 맞는 최악의 상황은 격리, 물, 그리고 임박한 죽음이라고 하면서 뒤집힌 유람선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작가가 설명하는 “에어포켓, 암흑, 서서히 차오르는 물, 같은 배를 탄 힘없는 사람들의 절규, 그리고 숨 쉴 공기를 차지하려는 경쟁(166쪽)”이라는 참혹한 정경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는 듯해서 상상하는 것도 끔찍합니다. 반면 저자가 줄곧 그려오는 최고의 죽음은, “정확히 마지막 책을 쓸 수 있을 만큼의 기간과 명료한 의식만 남아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달려있다(167쪽)”라고 합니다. 이 또한 집필 중이던 작품을 미완성인 채로 죽음을 맞은 문학가, 미완의 작품을 남긴 채 숨을 거둔 미술가, 조각가 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적다보니 고백하는 일도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젊었을 때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비행기 추락사고와 같은 치명적 상황을 맞을 것을 걱정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자가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서 플뢰베르의 <부바르 페퀴셰>를 챙겼던 것은 물론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 단단하게 움켜쥔 플뢰베르의 책에서 저자가 각별하게 존경심을 표하게 될 한 문장을 가리키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오래도록 자신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아비오토포비아(Aviotophobia) 즉 비행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비행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비행기를 타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대대로 비행공포증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김일성의 경우 동유럽에 있는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하면서도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정적이 많아 자신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행기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지극히 낮다는 상식을 믿는 편이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역시 그런 끔찍한 일이 나에게 일어날 이유가 없다고 믿는 편입니다.


저자는 의학사학자 로이 포터의 죽음에 대한 소견처럼 기발한 생각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 의식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엄청난 변화를 맞을 게 틀림없을 테니까요. 생각해보니 제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면… 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의식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지 않으면 대단한 걸 허망하게 놓쳐버리게 될 테니까요.(185쪽)” 사실 공중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는 경우에 충돌하는 순간 죽음을 맞게 되는지, 아니면 충돌하기 전에 이미 혼절하여 의식이 사라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자신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 그리 즐거운 기억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금년에 번역 소개되었습니다만,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이 처음 발표된 시기에 대하여 제가 의문을 가졌던 부분이 있습니다. <볼레로 Boléro(1928)>,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1899)> 등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픽병으로 죽었다고 적었기 때문입니다. 픽병(Pick's disease)은 1892년 아놀드 픽(Arnold Pick)이 서서히 진행하는 언어장애를 특징으로 하는 치매환자를 처음 보고하였고, 1911년에는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가 이런 환자의 뇌에서 특징적인 픽소체(Pick body)를 발견함에 따라, 1925년 스파츠(Spartz)와 오나리(Onari)가 픽병으로 명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들어 임상양상에 따라서 전두측두엽퇴행 (frontotemporal degeneration)에 속하는 병리학적 진단명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즉 라벨의 사인은 전두측두엽퇴행의 범주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읽고 나서야 줄리안 반스가 그의 대표작들에서 차용하고 있는 죽음과 기억에 대한 개념들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파악되는 것 같습니다. 줄리안 반스가 화두로 붙들고 있는 ‘르 레베일 모르텔(le réveil mortel)’은 프랑스의 번역가 샤를 뒤보스가 제안한 용어로, ‘죽음의 숙명을 알리는 모닝콜’ 정도로 번역되는 ‘죽음의 엄존성과 삶의 필연성에 눈뜨는 계기’라는 개념이라고 옮긴이는 설명합니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통하여 저자가 얻어낸 ‘르 레베일 모르텔’의 이해에 공감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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