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고 재미있는 인디언 신화 1
알폰소 오르티즈 외 엮음 | 양순봉 외 옮김 / 아프로디테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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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 Mythology)는 한 나라 혹은 한 민족으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로 실재하는 장소, 사물, 혹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사실로 믿어지는 전설과는 달리 믿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화세계에서는 신과 인간을 둘러싼 이야기들로 국한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역마다 독특한 신화가 전해오지만, 때로는 유사한 맥락을 가지는 신화도 있습니다.

요즈음 공부하는 아메리카대륙에 관한 것으로 보이는데다가, ‘황당하고 재미있는’이라는 수식어에 눈길을 끄는 바람에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저자들이 25년간에 걸쳐 80여개의 미국 인디언 부족들로부터  채집한 160여 편의 신화를 모아 ‘인간 창조’, ‘사랑과 갈망의 이야기들’, ‘코요테의 울음과 웃음들’의 3장으로 나누어 엮은 원본에서 58편을 뽑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앞선 두 개의 장에 실린 이야기들은 비교적 고전적인 이야기들이고, 마지막 ‘코요테의 울음과 웃음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19세기의 자료에서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 창조’에 담긴 이야기들은 인간과 신이 나뉜 과정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생활필수품이라 할 소금이나 옥수수, 들소나 말, 주술의식 등을 얻거나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든가, 남녀의 차이, 다른 인종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죽음은 무엇인지 등이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메리칸 원주민의 선조들은 핏덩이 신화를 믿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생긴 핏덩이를 토끼가 기르게 되었다던가, 자식 없는 늙은 부부가 기르게 되었다던가 하는 등입니다. 이런 신화 혹은 전설은 부족의 시조가 어디서 왔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여기 담긴 이야기들은 오래 전에 있었던 사건을 비유적으로 혹은 격을 높일 수 있도록 각색하여 후대에 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시각으로 해석하게 되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야기의 앞에, 혹은 뒤에 이야기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달아놓았습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토끼, 코요테, 사슴 등은 각각의 동물에 해당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싶습니다. 우리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를 그와 같은 성품을 가진 부족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과 갈망의 이야기들’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때로는 동물, 심지어는 달과 결혼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이들이 사물에서 따온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점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랑은 신성하고 썽 또한 그렇다. 이별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150쪽)”이라고 한 것처럼, 원주민들의 성에 대한 관념이 개방적이고 파격적인 경우도 있는데, 그들이 성적으로 더 난잡했다는 증거는 없는 듯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성관념이 그리 위선적이지 않았다는 저자들의 해석이 수긍되는 듯합니다.

워너브러더스의 만화영화 <루니툰>에 나오는 코요테는 매번 로드러너에게 당하는 것으로 나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습니다만, 신화에 등장하는 코요테는 악동이자 영웅으로 상상도 못할 장난을 저지르기도 하고, 위대한 문화의 전도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코요테와 익톰, 그리고 다른 모든 광대들은 모두 신성하다. 그들은 우리 삶의 필요한 한 부분이다. 예전의 우리 인디언처럼 한이 많은 사람들 또한 살아갈 힘이 되는 그들만의 해학이 필요하다.(263-264쪽)”라고 한 것처럼 백인들에게 핍박받는 동안 만들어진 민담 혹은 전설도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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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털 해골의 비밀 - 마야 문명의 신비
세리 루이스 토머스.크리스 모턴 지음, 유영 옮김 / 크림슨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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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털 해골의 비밀>이라는 제목보다 ‘마야 문명의 신비’라는 부제가 더 눈길을 끌었기 때문에 읽게 된 책입니다. 저자들은 마야문명의 실체를 소략하게 소개하고는 있습니다만, 알려진 것들에 대한 검증을 철저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크리스탈 해골의 비밀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들이 휴가차 찾은 과테말라에 있는 옛도시 티칼에서 가이드를 맡은 카를로스로부터 이 책의 주제가 되는 크리스털해골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됩니다. 피라미드의 측면에 새겨진 석조해골을 보면서 카를로스는 고대 마야인들이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들에게 죽음아란 완전한 끝이 아니넜어요. 따라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대하고 바라는 어떤 것이었죠.(10쪽)” 그리고 이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옛 전설에 따르면 실물 크기의 견고한 크리스털 해골 13개가 존재했는데, 이것들은 인간의 해골처럼 움직이는 턱뼈를 가지고 있어서 말하거나 노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먼 옛날 인류 최초의 조상들이 남긴 것으로 위대한 지식과 지혜의 원천이었다는 크리스털 해골을 뒤쫓기로 한 것은 어쩌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제작자라는 직업적인 본능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크리스털 해골을 찾아다니면서 유래를 캐는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마야, 아즈텍 등 유카탄반도에 흩어져 있는 고대문명의 유래는 물론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의 전설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면 곧바로 쫓아가 확인하곤 했던가 봅니다. 크리스탈 해골이 과연 고대의 유물인지 아니면 현대에 만들어진 가품인지까지 추적하다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아틀란티스대륙의 존재는 물론 인류의 조상이 먼 우주에서 온 것이라는 증명되지 않은 이론까지 두루 섭렵하는 바람에 이들의 작업에 대한 믿음이 점점 엷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야의 유적들이 오늘에까지 전해진 이유, 분명치 않은 이유로 무너진 마야문명의 유허가 순식간에 열대우림의 숲에 묻혀 외래인의 발길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들은 아즈텍이 스페인의 코르테스에게 맥없이 무너지게 된 데는 케찰코아틀 신화가 한몫을 했다는 이미 알려진 설명을 인용합니다만, 이는 정복자들이 왜곡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 같습니다. 치첸이사에서 만난 볼 경기장과 촘판틀리에 대한 설명은 참고할 만하였지만, 저자들이 언급한 카라콜은 치첸이사가 아니라 벨리즈의 카요구역에 있는 것을 착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아메리카 대륙에 흩어져 있는 유적과 전설의 흔적을 정리하는 한편 크리스탈 해골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하여 만난 사람들과의 인터뷰 혹은 관련 자료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사실여부를 충분히 검증한 흔적보다는 그 주장이 미심쩍은 점이 있다는 느낌을 풍기면서도 장황하게 인용하고 있어 그 주장이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저자들이 만난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이나 마야인들은 부족이 오랫동안 지켜온 비밀을 공개할 때가 되었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눈 지구적인 위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크리스탈 해골에 담긴 선조들의 영이 남긴 정보를 되살려 지구적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위기의 핵심은 지구를 오용하고 남용함으로써 일어나는 재해가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구 내부로부터 엄청난 균열이 일 것이며 자기장도 이동할 것이다. 아니, 이미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지구는 쪼개져 산산조각이 날 것이고 파편들이 지구 표면과 대기 중에 어지럽게 떠돌아다닐 것이다.(88쪽)” 이런 지구적 재앙을 어떻게 피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에 우리나라에서까지 지진이 활발해지고 있어서인지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역시나 신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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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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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박주영작가의 <고요한 밤의 눈>을 읽고서 몇 가지 독특한 느낌이 남습니다. B, D, X, Y, Z으로 약칭되는 다섯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상황들이 교차하는데, 특정 조직에서 활동하는 B, X, Y는 서로 연결이 되지만, 소설을 쓰는 Z는 주로 Y와 관련이 있고, D와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느슨한 관계를 맺고, X 는 D와 어느 정도의 접촉을 가지는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핵심인물은 조직의 스파이로 활동하는 B, X, Y 세 사람입니다. Z는 조직의 관리대상이고, D는 조직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46페이지로 나뉜 에피소드 가운데 44페이지는 이들 다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고, 때로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나 혹은 별도의 주변인물들이 화자와 연결되어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그런데 45페이지, ‘패자의 서’는 작가가 이 소설을 창작에 몰두하던 시절의 분위기를 그렸고, 마지막 46페이지는 등장인물 다섯이 등장해서 자기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는 단지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를 위해 다시 태어났다(314쪽)‘라고 적힌 프롤로그가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혼불문학상 심사위원들의 평이 나오고 마지막 47페이지에 적은 작가의 말로서 이 책이 끝나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책은 처음 만납니다. 그리고 다시보니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는 끝났다‘라고 적힌 에필로그를 이야기 앞에 두었습니다.

스파이가 세 사람, 아니 전직 스파이까지 포함하면 십여명 가까이 등장하면서 정작 스파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누군가를 감시하는 일 밖에는 없는 것 같이 잔뜩 품었던 기대가 허망하게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감시사회와 다름없는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작․감시당하며 정체성을 잃고 '내가 아닌 나로 사는' 무기력한 존재다“라는 현기영작가의 평가나 ”스파이들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과 구원의 길을 <패자의 서> 즉 소설에서 찾았다는 점이 흥미롭다“나는 은희경 작가의 평이 선뜻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몇 안되는 등장인물을 통하여 이야기 속의 사회가 감시되거나 조작된 사회라는 설정이 실감나게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설가가 던지는 ‘혁명’이라는 화두 역시 지나치게 막연하기 때문에 얼마나 파급력을 가지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작가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인용한 드라마, 다큐멘터리, 혹은 책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제 경우는 책의 말미에 이르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흔적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도서관은 모두에게 허용되는 구역과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 구역으로 나뉜다. (…) 도서관 아이들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혹여 들어갔다고 해도 길을 잃고 영원히 나올 수도 있다고(223쪽)”라는 부분에서는 보르헤스의 여러 단편들에서 등장하는 미로의 이미지와 <픽션들>에 수록된 「바벨의 도서관」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D로부터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보니 D가 X를 상담할 때 등장하는 ‘펠림프세스트’ 역시 보르헤스에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현실을 왜곡해서 이해하는 과대망상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남아서 어디쯤 진실이 드러날까 기대하기도 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야기의 첫머리에 나오는 D의 언니가 실종된 사건은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다시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였던 것 같다는 허무한 느낌도 남습니다.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X는 10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왜 그랬는지도 분명치 않고, 20세부터 15년간의 기억이 제한적으로 사라졌다는 설정도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직에서 취한 특별한 조처 때문이라면 특정인의 특정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꽤나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피소드의 관계를 연결하기 위해서 나름 신경을 써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책읽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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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 - 알퐁스 반 월덴의 14일
얀 포토츠키 지음, 임왕준 옮김 / 이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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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모두에 프랑스군 장교였던 저자가 스페인의 사라고사를 점령하였을 때 발견한 스페인어로 쓰인 원고를 프랑스어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옮긴이는 1739년 알퐁스 반 월덴이라는 스페인출신 젊은 장교가 왕명을 받들어 부임지 마드리드로 가는 66일간의 여정에서 만난 기이한 인물들과 기이하고도 해괴한 사건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것이고, 처음 14일의 여정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2편을 예고해놓고는 후속편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치 실재했던 것처럼 미완성으로 끝난 이야기라서 결론을 알 수 없으니 황당하면서도 미진한 점이 많은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도 귀신이 나오고, 마법이 등장하는 등 황당무계한 내용입니다. 시대적 배경도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옮긴이는 알림에 있는 프랑스군대의 사라고사 침공 시기를 1779년이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안달루시아지방에 나타났던 것은 1808년 2월로 알고 있습니다. 1807년 11월 대륙봉쇄령에 따르지 않은 포르투갈에 출병하여 12월 리스본을 함락한 나폴레옹군은 점령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추가병력을 보내 바스크지방과 바르셀로나지방에 주둔했던 것입니다.


<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는 일종의 액자소설이라고 합니다. 화자가 만난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는 것도 있지만, 독립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형식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아주 흡사합니다. 무대가 시에라모레나산맥이라서인지 산적도 등장하고, 이슬람교도, 유대인, 스페인 귀족, 집시, 마법을 수련하는 카발라학자 등등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체 이야기의 4분의 1도 안되는 도입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인지 잘 달리던 배가 갑자기 동력이 없어져 무력해진 모습입니다.


등장인물이 다양한 만큼 그들의 행적에 따라 무대가 이탈리아, 알제리 등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이베리아반도로 돌아오기도 해서 장면전환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도 익숙할 듯합니다.


읽다보면 주인공 알퐁스가 군인이라서인지 심지가 굳어 보이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그가 만난 쌍둥이 자매가 귀신이라고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라고 하지만, 비밀을 지켜달라는 자매의 요구를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옮긴이는 주인공 알퐁스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일종의 성장소설의 전형이라고 설명합니다. 옮긴이의 해설을 읽고서야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책에 담긴 이야기처럼 이 책 역시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폴란드 명문귀족 가문 출신의 작가 얀 포토츠키는 폴란드군의 공병장교로 복무한 적도 있고, 여행을 좋아해서 유럽 각국은 물론 아프리카, 소아시아를 거쳐 몽골과 중국까지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작가는 1803년부터 1815년에 이르기까지 12년에 걸쳐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1805년에 상페테르부르크에서 초고상태의 원고를 출간했다가 1813년에는 후속편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바도르, 스페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파리에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알퐁스가 66일 동안 겪은 이야기는 포토츠키는 물론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도 부분적으로 인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포토츠기의 원작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고 합니다. 포토츠키를 연구한 클라프로트에 따르면, ‘이 작품에서 스페인과 모슬렘, 시칠리아 풍습 등을 완벽하게 묘사했다.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졌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에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원고가 되었다. (…) 이것은 돈키호테아 질 블라스에 버금가는 불후의 명작(280쪽)’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샤토브리앙의 <그리스도교의 정수>에 대한 비판이며 이성과 관용의 계몽주의적 찬양이라고 말하는 비평가도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해석의 여지가 크다는 점만 보더라도 좋은 작품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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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실비 제르맹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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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프라하를 다녀온 탓도 있지만,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라는 제목이 주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읽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그녀는 누구이고, 왜 울면서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프롤로그를 열면 ‘그 여자가 책 속으로 들어왔다.’라고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에필로그’ 역시 ‘그 여자는 책에서 밖으로 나갔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인가? 엄청나게 크고, 심하게 다리를 절며, 거친 천을 아무렇게나 재단한 옷을 걸치고 다니는 그녀는 누구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라하의 곳곳에서 열두 번에 걸쳐 나타나 울고 다닌 ‘그녀의 나타남의 연대기’를 통하여 그녀의 실체에 접근해갑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녀의 발자국들로만 이루어진 것인데, ‘그녀의 발걸음 속에 부는 잉크의 바람에 불려 낱말들이 허리를 구부리며 간신히 균형을 잡고, 망각의 경계에 이른 기억 속에 깊이 파묻혀 있던 이미지들의 뿌리가 뽑힌(17쪽)’ 결과인 것입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작가는 그녀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걸음걸이가 보기 흉하고 어깨가 엄청나게 떡 벌어진 그 여자는 살과 피가 아니라, 눈물로, 오직 눈물만으로 된 존재였다. 그녀는 한 여자에게서가 아니라 모든 남자 모든 여자의 고통에서 태어났다.(36쪽)’ 그렇다면 그녀가 존재하게 한 모든 사람들의 고통은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백주 대낮에 등에 총알을 맞고 죽은 브루노 슐츠라는 사람이 일생 동안 수백통의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데생과 판화를 하고 여러 권의 책을 썼던 것인데, 갑자기 사라진 수백 통의 편지들이 갑자기 중얼거리기 시작하여 편지를 쓴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고 그 편지들을 읽은 모든 남자 여자들이 침묵과 망각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한 것입니다. 그 오래된 목소리들, 부서진 말들의 생명을 되살려놓은 것이 바로 그 여자입니다.


브루노 슐츠는 노란별을 달지 않고 거리고 나갔기 때문에 총알을 맞았던 것이고, 그 여자는 슐츠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빵덩어리, 아니 빵덩어리의 먼지와 피의 맛을 긁어모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슐츠의 어머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나 슬로바네흐 수도원의 담장 아래 피어나는 꽃을 노래하던 프란타 바스의 시를 살려낸 것도 그녀입니다.


프라하의 돌틈에서 태어난 그녀는 도시의 기억, 특히 어두운 쪽의 기억이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기억, 역사가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고통을 잊어버린 남자 여자들의 기억이라고 작가는 정리합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도시를 떠날 수 없었고 영원히 버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열두 번의 등장을 끝으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도시가 아니라 가시적인 것을 떠났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다시금 나무껍질 속우로, 나무뿌리 속으로, 포도의 아스팔트 밑으로 스며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번에 프라하를 찾았을 때 유대교의 교회당 시나고그와 그들을 모아 살게 했던 게토지역을 찾아 나섰던 것인데, 자유시간, 아니 천문시계가 울리는 시간에 쫓겨 광장으로 되돌아와야 했기에 중간에서 포기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핀카소바 시나고그에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손에 죽은 7만7297명의 체코계 유대인들의 이름이 벽면 가득 적혀있고, 클라우소바 시나고그에는 나치의 테레진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었던 어린아이들의 그림과 글들, 장난감, 책가방과 도시락 가방 등을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다음에 프라하를 다시 찾게 되면 그녀를 찾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인 실비 제르맹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역사에 뿌리를 둔 구체적이면서도 상상력 가득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고 소개되었는데, 옮긴이는 ‘그의 소설에서는 가족과 마을과 나라의 집단적 기억,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점철된 기억이 작가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의식으로부터 솟아오르곤 하는 것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소리를 내어 시를 읽듯 읽어야 제 맛이 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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