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 개국에서 노벨상까지 150년의 발자취
고토 히데키 지음, 허태성 옮김 / 부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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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6년 노벨상 수상자가 모두 결정되었습니다. 금년에 선정된 수상자 가운데 문학상부문의 밥 딜런이 단연코 화제의 중심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부문 수상자에 대한 관심이 덜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만, 요시미 요시노리가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것에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처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래 금년까지 22명이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최근 10년 동안 2007년, 2009년 그리고 2011년, 2013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두 명의 수상자를, 심지어 2008년에는 네 명의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요? 김대중 대통령님이 받은 노벨 평화상 말고는, 특히 학문적 영역에서의 노벨상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과연 노벨상을 받을 수는 있는 것인지 자조 섞인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구식 학문이 이 땅에 들어온 것이 불과 70년이고, 초창기 어수선한 마당에 전쟁까지 치르면서 먹고 사는 문제해결이 급선무였던 수십년을 빼고 나면 학문다운 학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니 우리나라 사정을 일본과 바로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체적으로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업적을 보면 평생을 바쳐 연구한 끝에 얻은 것들임을 본다면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일본이 받는데 우리나라가 못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틀린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사정이 비교가능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교토 대학 출신이 6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토대학은 노벨상을 많이 받는데 도쿄 대학은 그렇지 못한 사연을 비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 여건이 같은데도 수상자를 내지 못하는 것은 문화적 혹은 개인적 차이에 기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는 그런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낼 수 있는 책읽기가 될 것입니다. 신경생리학을 전공한 저자인 고토 히데키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과학부문의 노벨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를 동경해 물리학자를 꿈꾸며 물리학과 원자핵공학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다 중도에 의학으로 방향을 바꾸어 신경생리학을 연구해온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일본의 과학연구 수준이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잘 정리해냈습니다. 먼저 일본과학의 여명기를 소개하고, 이어서 일본과학 발전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그리고 패전 후의 일본과학계의 동향을 소개합니다. 4장에서는 저자의 전공분야에 해당하는 의학에서의 연구동향을 그리고 5장에서는 일본사람들이 노벨상과 인연이 깊은 이유를 정리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책에는 집필 동기나 책의 얼개를 설명하는 서론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옮긴이의 말을 앞에 두었습니다. 옮긴이는 “언젠가 노벨상을 꼭 받고 말겠다고 결심했던 젊은 날의 유카와처럼 이 책을 읽은 독자 가운데도 노벨상 수상을 목표로 하는 야심 찬 젊은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8쪽)”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이 책의 기획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국가행정과 과학의 관계에서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원자력 발전의 진행 여부, 구체적인 진행 방안에서 기술과 행정의 문제, 그밖에 연구에 대한 과학자들의 사회적 책임 등 우리의 현실과 매우 밀접한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고 했습니다.


저자의 설명이 때로는 변명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면이 있어 읽기에 거북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20세기 중반 동아시아의 세력판도를 요동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을 지나치게 일본적 시각으로 해석한 듯한 부분도 있습니다. 조금 길다 싶습니다만, 이런 대목입니다. “개국에 즈음해 일본은 서양의 기술과 학문을 배우고 스스로의 인프라를 갖추고자 혼신을 다했다. 그러한 태도는 중국이나 조선 등 여타 동아시아 국가와는 대조적이었다. 중국의 서태후는 독일의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고 전력 배선을 맡겼다. 조선에서도 여자 군주를 칭한 정순왕후 김씨가 일족의 이익을 중시해 전대의 개혁 노선을 말살하여 나라를 정체시켰다. 일본은 얼마 되지 않는 외화를 쏟아 부으며 목숨을 걸고 서양에서 배우고자 하였다.(25쪽)” 그와는 달리, 동아시아로 몰려온 유럽제국들이 청나라는 물론 동남아시아 지역을 유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은 반드시 독립을 지켜야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동아시아 3국은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처한 상황이 달랐습니다. 중국은 서구세력의 목표가 되었던 것이고, 조선은 서구 세력의 관심권의 밖에 있었으며, 일본은 목표가 되는 중국을 향하는 길에 숨을 돌리기에 맞춤한 곳이었던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처럼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아 식민지배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서구의 실체를 여전히 별 것 아닌 것으로 믿고 있었으며, 일본은 외세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고, 조선은 중국과 일본의 시각이 섞였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아시아를 집어삼키던 시기를 지나서 네덜란드가 동아시아항로를 이어받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일본이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외국인들의 본토상륙을 제한했던 막부였지만 서구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던 것도 한몫했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이나 조선에서 받아들이던 문명과는 차별화된 서구문물이 대륙진출을 꿈꾸어 온 그들의 야심을 채워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1866년 사쓰마 번의 사이고 다카모리와 조슈 번의 기도 다카요시가 삿초 동맹을 맺어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을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성립하였습니다. 1867년 1월 9일 메이지 천황이 즉위한 뒤에 들어선 메이지 정부는 구미 열강 국을 따라 잡기 위한 사회개혁을 모색하였습니다. 개혁의 목표를 부국강병에 두고 유럽과 미국의 근대 국가를 모델로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적 강화를 천황을 중심으로 추진했던 것입니다. 1872년 외무대신 이와쿠라 도모미의 견구사절단이 유럽으로 떠났는데, 도쿠가와 막부시절 서구 열강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개선하고, 서구의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습니다. 메이지정부는 다양한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선발하여 서구로 유학을 보냈고, 그들은 서구사회에서 인정을 받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예를 들어 코흐연구소에 갔던 세균학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는 연구소의 난제였던 파상풍균의 배양에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항독소를 제조하는데 성공하여 파상풍치료에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고, 그 업적으로 제1회 노벨 의학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럽과학계의 분위기 때문에 베링이 수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과학계가 두드러진 연구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국가로부터 독립된 민간연구소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고, 1913년 초에는 재계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민간연구소 설립이 힘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민간이 추진하면서도 상업화와는 무관한 순수과학에 집중하는 연구소를 만든다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싶습니다. 그 무렵 터진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정보전, 공학, 외교전, 전비 조달, 군진의학 등 다방면에서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한 끝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은 러일전쟁을 통하여 기술력에 따라 전쟁이 좌우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정부가 다양한 영역에서 과학에 투자를 한 것은 궁극적으로 대륙을 목표로 하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주축국의 일원이 되어 아시아 각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고, 종국에는 하와이를 침공하여 미국을 아시아지역의 전장에 끌어들였습니다. 일본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핵물리학자 니시나 요시오는 “바보스러운 전쟁을 시작했군. 미국의 진정한 힘을 모르니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곧 큰일이 날거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일본의 과학자, 의사들은 전쟁을 치르는데 필요한 과학적 뒷받침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일본 육군은 그때로서는 상상도 못할 규모의 세균전을 기획하였는데, 연구책임을 교토대학 출신의 이시이 시로가 맡았습니다. 바로 유명한 731부대입니다. 이 부대는 페스트, 콜레라, 파상풍, 이질, 티푸스 등 약 20종의 세균은 물론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독극물에 대한 실험도 진행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731부대가 800명의 희생시켜 실험을 진행했다고 적었지만, 위키백과의 731부대 항목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한국, 중국, 몽골, 러시아의 군인과 시민,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약 1만 명의 사람들이 생화학 병기의 실험 재료로서 살해되었으며, 731부대에서 개발된 생화학 무기로 인해 수십만 명의 중국인이 학살되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731부대에 대한 기록이 불충분한 이유는 전후 일본정부가 미군측과 비밀협상을 통하여 실험에서 얻은 자료들을 미국에 넘겨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아가 러시아에는 넘겨주지 않는 대가로 관련자들의 처벌까지 면제받았다고 하니 아우슈비츠의 전범재판과는 처리과정에서 너무나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사람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주도한 책임에 대한 구체적인 잘못은 인식하지 않고 그 비밀을 묻은 미국에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습니다. 독일이 전후에 보여준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성찰에 대하여, “일본의 맹우 독일은 전쟁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를 완전히 부정했다. 독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잃고 말았다. 반세기가 지나도 바닥 모를 상실감에 괴로워했다.(140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같은 사안에 대한 저자의 편향적 시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원자물리학 분야의 연구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미국이 독주하듯 만든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하여 종전을 앞당긴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원자폭탄제조는 미국만이 아니라 독일도 은밀하게 추진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것입니다. ‘전쟁이 격렬해지면서 원자폭탄을 빨리 완성하라는 군부의 압박이 심해졌다’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의 핵물리학자들 역시 전쟁 중에 원자폭탄 제조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국력이 달려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도 해군은 반년 안에 원폭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는데, 과학계는 이미 지난 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변했다는 것입니다.


러일전쟁에서 보았던 것처럼 일본은 전쟁과 관련된 기술개발에 상당한 투자를 해왔던 것입니다. 원천기술을 일찍 확보한 경우도 있는데 이를 사용가능한 수준으로 향상시키지 못한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일본의 GDP는 놀랍게도 세계 6위의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일찍 수용한 서구문물을 바탕으로 조선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을 식민지배하면서 부를 쌓아올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쌓은 부를 좋은 일에 사용하지 못하고 이웃을 괴롭히는 일에 사용하였으니 결과가 좋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편으로 저자는 패전 후 일본은 보유한 군사기술을 조선, 여객기, 신칸센 등 평화산업으로 전환하여 세계 2위의 국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자부심의 한 자락을 내비쳤습니다만,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기간이란 것도 장구한 역사의 한 토막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 옛날이여!’라고 할 날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고이치처럼 일본화학회에서조차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인물이 있다는 점이 일본 과학계의 힘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묵묵히 자신에 세운 학문적 목표를 향하여 매진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과를 재촉하지 말고 과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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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평전
다니엘 살바토레 시페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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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움베르토 에코의 부음이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처럼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품을 읽을 수 없다는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가운데 읽은 것보다 읽지 않는 것이 더 많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의 작품은 때로 인내심이나 집중력을 시험하는 듯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니엘 살바토레 시페르의 <움베르토 에코 평전>을 읽게 된 것도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흔히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작가, 그리고 기호학자, 역사학자’로 소개됩니다만, 이 책에서는 ‘미학사가, 기호학자, 문학 비평가, 매스 미디어 사회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설명합니다. 아마도 그의 글쓰기 여정에 따라 만들어진 호칭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에코가 쓴 글에 일관적으로 깃들여 있는 정신을 규명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미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508185>, <추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595766>, <긍극의 리스트; http://blog.joins.com/yang412/13493806>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만, 에코의 저작은 우선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움베르토 에코 평전>에서 에코의 글쓰기를 미학적 단계, 기호학적 단계, 문학적 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에코의 글쓰기는 중세미학의 연구로 시작했습니다. 1954년 통과한 박사학위 논문을 1956년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적 문제>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한 것이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관심이 미학에서 기호학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중세미학을 연구하면서 전위적 경향의 작가와 예술가를 접촉하면서 제임스 조이스를 재발견하게 되었고, ‘중세에 대한 애정과 현대성에 대한 열정이라는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양극 사이를 오가야 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기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가로의 변신은 현실적인 이유로 이탈리아 텔레비전 방송의 교양프로그램제작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큰 미술관에 가보면 르네상스 시대와 중세시대의 미술작품들은 한눈으로 보아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선이 분명하고 채색도 단순하며, 원근감도 없으니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제가 보기에는 촌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사람을 향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에코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미학이 결여된 시대는 중세가 아니었다. 오히려 현대 세계가 너무 협소한 의미의 미학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43쪽)”라고 했답니다. 제가 생각해도 현대미술이 중세미술보다 나은 점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종교중심의 중세시대 미학의 관점은 신이 현현하는 순간으로 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중세에 미적관조개념이 존재했다고 에코는 보았던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에 대한 분석은 1962년 출간된 <열린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데,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과 조이스의 <피니건의 경야>를 비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기호학에 관한 에코의 저작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읽어본 작품이 없는 까닭에 쉽게 와닿지 않더라는 말씀으로 건너 뛰겠습니다.


문학적 단계에서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그리고 <전날의 섬>을 다루었습니다. 모두에서 저자는 <장미의 이름>이 탄생과정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한 이유를 분석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프라하의 봄을 녹여내려는 이유였을 것 같기도합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에서 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당시 여건상 면책의 빌미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합니다만, 에코가 굳이 이런 방식을 인용한 까닭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중세판 탐정놀이를 다룬 <장미의 이름; http://blog.joins.com/yang412/12891200>에는 다양한 트릭이 숨겨 있습니다만, 그 안에는 보르헤스의 ‘도서관’과 ‘미로’의 개념이 숨겨져 있을 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까지 연계하는 놀라운 확장성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에코의 작품들, 작품관에 대한 비평서인만큼 읽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만, 그의 작품들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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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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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온 ‘세상의 모든 아침’의 진정한 의미가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Tous les matins du monde sont sans retour)(124쪽)”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17세기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 생트 콜롱브의 예술혼을 그려낸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고서야 말입니다. 파스칼 키냐르는 이 작품을 통하여 ‘현재진행형’의 상실을 은유하고 환유했다고 옮긴이는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의미가 참 난해한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유명한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였던 마랭 마레의 스승이었다는 생트 콜롱브가 비올라 다 감바에 현을 하나 덧붙여 더 깊은 저음을 연주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콜롱브씨는 아내가 죽은 다음에 비올라 다 감바에 빠져드는데,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자연 자체를 비올라 다 감바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죽은 아내를 불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는 기술을 배우고자 찾아온 마렝 마라의 연주가 끝나자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는 몸의 자세를 알고 있네. 연주에 감정도 부족하지 않고, 가볍게 활을 놀리고 잘도 퉁기지. 왼손은 다람쥐처럼 날쌔고, 생쥐처럼 잘도 내빼지. 꾸밈음은 기가 막히고 때론 매력적이지. 하지만 난 음악은 듣지 못했네(52쪽)” 즉 기교는 훌륭하지만 진정한 음을 연주해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로 받아주었지만, 그가 왕 앞에서 연주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치고 말았습니다. 왕으로부터 궁정악장으로 초대받았던 생트 콜롱브씨가 거절했던 것은 진정한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승으로부터 내쳐진 마랭 마라를 사랑한 큰 딸 마들렌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연주기술을 전수합니다. 결국 아버지에게 들켜서 사단이 나지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바람에 봉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왕의 궁정악단에 들어가게 된 마랭 마라는 마들렌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상심한 마들렌은 오래 앓게 되고, 그녀를 찾아온 마랭 마라가 연주하는 「꿈꾸는 여인」을 듣고는 목을 매 세상을 하직합니다.


작가는 생트 콜롱브씨를 통하여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자세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75쪽)” 어쩌면 아내의 죽음이 생크 콜롱브씨의 이런 삶을 결정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서 그녀를 다시 불러낼 수 있는 방편으로서 비올라 다 감바를 경지에 이르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든 아버지의 사랑은 지고지순한데 반하여 마들렌과 동생 투아네트의 사랑은 그저 경박해 보이기만 합니다.


배움의 과정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마랭 마라 역시 어느 날 자신이 쌓아온 음악적 성취가 덧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스승의 집을 엿보던 그는 누구냐고 묻는 스승에게 ‘궁을 도망쳐 음악을 찾는 이요’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음악에서 무엇을 찾으시오?’라는 질문에는 ‘회한과 눈물을 찾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제자는 마지막 수업을 청하고, 스승은 첫 수업을 베풀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음악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왕도, 신도, 귀도, 황금도, 영광도, 침묵도, 경쟁자도, 사랑도, 회한도, 단념도, 죽은자도 아닌 자신을 태우는 일이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눈물들」과 「카론의 배」, 를 비롯한 「회한의 무덤」, 전체를 연주합니다. 두 사람을 마주보고 눈물을 흘리다가 웃게 됩니다. 콜롱브씨는 자신의 연주를 이해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작품을 통하여 작가는 언어가 아니라 언어의 근원에 닿아야 한다고 옮긴이는 해설을 마무리합니다. 그러면서 언어의 근원이 무엇이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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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 떠나는 동유럽 지중해 배낭여행
조주영 지음 / 한비미디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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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눈에 띈 책입니다. 하지만 여행 자체보다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여행의 기록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꿈을 찾아 떠나는 동유럽, 지중해 배낭여행>은 2011년에 아침편지 문화재단이 주도한 동유럽과 발칸을 연결하여, 인천-체코-오스트리아-헝가리-루마니아-그리스-독일-인천으로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분들이 지원하여 65명의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참가자를 6명의 스태프가 인솔하여 다녀왔다고 합니다.


여정에 흩어져 있는 유적에 관한 이야기는 지나칠 만큼 소략하다는 인상입니다. 그밖에도 명상, 마라톤, 길거리 특강 등 다양한 내용의 활동이 곁들여져있어서 단순한 여행기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렸던것입니다. 다르게 표현을 하자면 담은 내용이 다양하여 초점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진들은 사진작가 백운수님의 작품인 까닭에 좋은 질을 자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 가면 꼭 그런 위치에서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밖에는 내용이 특이하다고 할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자기성장노트는 아마도 여행에 참가한 분들을 위하여 제시되었던 것들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과정을 굳이 동유럽까지 가서 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때로는 편향된 시각이 노정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루마니아를 여행하면서 국민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동방정교가 개신교를 핍박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구체적인 정황이 없어 이해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개신교가 다른 종교에 대하여 우호적인가하는 점도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발칸반도는 동방정교, 이슬람, 가톨릭 그리고 개신교 사이의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스만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종교 간의 갈등이 심하지 않았던 것인데, 근대로 넘어오면서 민족 사이의 갈등이 종교에 투사되어 심화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GMO 농산물에 대한 문제제기의 배경에는 미국과 유럽 사이의 곡물무역의 힘겨루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단은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잠정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유럽 쪽인 듯합니다. 때로는 확인되지 않은 사안도 섞여 있는 듯해서 가려 읽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물 관리를 잘하는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왕이었다(218쪽)’라고 했지만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의 물사정은 그리 심각한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을 다스리는 문제는 중국의 요순시대에 이은 하나라의 우왕이 치수에 성공함으로써 우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침편지에 관계하시는 분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인지 아침편지의 내용을 비롯하여 다양한 출처의 좋은 말을 인용하고 있는 것도 생활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70명이나 되는 큰 여행단에 끼어서 움직이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70명을 상대로 유적을 설명하면 다 알아들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구요. 무슨 일을 해도 일사분란하기가 쉽지 않을 터이니 말입니다. 여행사 상품을 주로 활용하는 제 생각으로는 대체적으로 20명이 안되는 규모가 딱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행과는 사이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 주최측이 있는 단체여행이면서 배낭여행이라는 제목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15박 16일의 긴 일정도 쉽지 않을 듯하구요.


다양한 크기의 사진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만, 지나치게 큰 사진들이 많은 편이고, 반면에 글씨의 크기는 작아서 읽어내기가 어려운 점은 편집상의 문제라고 보입니다. 책이 큰 것도 읽기에 불편한 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복되는 사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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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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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책 제목 그래도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가 되는 셈입니다. 그야말로 아프리카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처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개관하고 있습니다.


모두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먼저 제1장은 전 5억5천만년전부터 기원전 약5천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던 대륙이며, 원시인류가 처음 등장했던 곳, 그리고 그 인류가 사용했던 언어들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제2장은 기원전 5천년부터 서기 약 1500년까지, 나일강을 둘러싸고 찬란하게 꽃피웠던 이집트와 누비아사람들의 문명을 다루었고, 그밖에도 대륙에 흩어져 있던 종족들 이야기, 신앙과 종교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제3장은 서기 약 1500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입니다. 유럽제국들이 아프리카를 제멋대로 농단을 하던 시기입니다. 아프리카로서는 가장 아프고 슬픈 역사부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4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프리카 제국들이 해방을 맞은 뒤 보낸 격랑의 시기입니다. 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유럽에 기대어 폭력과 독재를 펼치면서 사욕을 채우던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드물게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헌신한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부족들 간의 치열한 전쟁이 있었고, 에이즈라는 끔찍한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그밖에도 가뭄이라는 재해까지, 온갖 나쁜 일은 모두 겪는 힘든 시기가 되었습니다.


방대한 대륙의 장대한 역사를 한권에 담으려다 보니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어 지역별 역사의 상세한 부분까지는 정리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메리카대륙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아프리카 역사도 유럽인들의 시각으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마구 다루어도 되고, 종교적으로도 문제가 많아서 개종시켜 구원받도록 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아프리카의 영성과 종교성의 전통이야말로 아주 다양하며 그들의 삶과 밀착되어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오만한 생각이라고 지적합니다.


아프리카의 비극은 인도로 향하는 동방항로를 개척하던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을 돌아내려가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겨루던 북아프리카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고, 신기한 모습의 이들을 유럽대륙으로 끌고가 구경거리를 삼았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다음에 원주민들이 격감하면서 노동력이 귀해지자 아프리카 사람들을 아메리카대륙으로 끌고가 노예로 부려먹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산업사회로 이전해가면서 아프리카대륙은 원료의 공급처이자 상품의 소비처로 인식하고, 그야말로 착취의 대상으로 간주하였던 것입니다. 유럽 각국들은 아프리카사람들과 그들의 땅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싸우고, 그 싸움에 아프리카 사람들을 동원하여 서로 피해를 입히는 뻔뻔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이와 같은 유럽사람들의 인식에 대하여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아프리카의 성자로 알려진 슈바이처박사에 대하여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면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그에게 아프리카 사람들은 대등한 동반자가 아니었다. ‘나는 너의 형제다. 그러나 너의 형이다’라는 것이 그가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설명할 때 쓴 말이었다.(155쪽)”라는 정도로 완곡한 표현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저자가 에이즈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 까닭에 에이즈 예방과 피해자는 돌보는 일에 대한 설명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프리카 어린이들에 대한 학대 문제도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상세함을 부족하나 아프리카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좋은 책읽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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