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진가들 - 사진의 결정적인 순간을 만든 38명의 거장들
줄리엣 해킹 지음, 이상미 옮김 / 시공아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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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곁들인 글을 쓰다 보니 좋은 사진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무작정 많이 찍어 그런대로 괜찮은 사진을 골라보기도 합니다만, 여전히 갈증을 풀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에게 사진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는 부분입니다.


줄리엣 해킹이 쓴 <위대한 사진가들>은 사진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의 삶을 정리한 책입니다. 런던에 있는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사진 분야의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고 있어 사진 분야의 역사에 조예가 깊은 저자의 장점을 잘 살렸다고 하겠습니다.


‘들어가며’를 마무리하면서 적은 기획의도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의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예술사와 관련해 전기가 가지는 장점과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떠올리게 하기 위함이다. (…) 이제는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을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닌,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하는 두 개의 무대로 바라보아야 할 때다.(9쪽)” 즉, 전기와 그 사람의 작품세계의 조화를 이루어보겠다는 취지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자는 기획의도를 잘 살렸다고 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사진작가의 삶이나, 그 삶에서 도출해낸 사진예술에 대한 사진작가의 철학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글 속에 잘 녹여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사진작가의 삶을 논하기에 앞서, 그 사진작가의 사진을 준비하고, 글 중간에도 몇 점의 대표작을 곁들이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그 사진들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모두 38명이나 되는 사진작가들이 저자의 취재 대상이었던가 봅니다. 아무래도 잘 모르는 분야라고 해도 익숙한 이름이라고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정도에 불과해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저자는 180년이라는 사진의 역사에 등장한 무수한 사진작가들 가운데 후세에 인정받은 전기적 자료를 활용하다보니 제한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사진작가들은 분명 비범한 이미지를 창조해낸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가장 위대한 사진작가들이라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삶에서 찾아낼 수 있었던 공통점이라고 하면, 바로 사진이야말로 자신이 삶을 바칠 운명이라고 여겼다는 점입니다. 폴 스트랜드의 필림 이미지를 본 앤설 애덤스가 “마치 아기 예수를 만난 동방박사와 같은 전율을 느꼈다”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가하면 마거릿 버크화이드의 삶에서는 아이들의 재능을 어떻게 발견하고 살려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너는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던 반면, 어머니는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고, 쉬운 길을 택하지 말며, 꾸준히 노력해서 이루어라(522쪽)’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별 생각 없이 사진을 찍곤 하는 세태에서 “촬영을 할 때 피사체의 명시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했다(33쪽)”는 다이안 아버스의 철학은 참고할만한 경구도 있습니다. 프루스트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눈에 띈 대목도 있습니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다시 이야기로 만들어낸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전기 작가 조지 D. 페인터는 “그는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대체했다”라고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작가 루이스 캐럴이 사진분야에서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루이스 캐럴은 옥수퍼드 대학교의 교수였던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의 필명이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정리해보면 시대를 살아간 위대한 사진작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사진가들>은 자라는 아이를 둔 부모에게는 아이교육에 대한 생각을, 그리고 성장기에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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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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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누구도 찾아오지 않은 무인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때가 되면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유혹을 느끼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다소 생소한 핀란드와 스웨덴 사이에 있는 다도해를 무대로 하는 헤닝 만켈의 <이탈리아 구두>입니다. “추우면 외로움도 깊어진다”라고 시작하듯이 북유럽의 차가운 겨울은 견디기가 더 힘들 것 같습니다만, 무슨 사연인지 궁금증을 더합니다. 매일 오후 2시면 찾아오는 우편배달부 얀손이 유일한 방문객이자 환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면 외과의사 같은데 무슨 외과의사인지도 모호합니다.


“예전에는 그 엄청난 재난으로 인한 절망과 분노가 너무 고통스러워 이제 그만 끝낼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삶에서 커다란 충격이었던 사건이 주인공 스스로를 이 섬에 가두게 된 것 같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와 개 한 마리, 그리고 거실방 테이블에 집을 짓기 시작한 개미들이 주인공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벗입니다.


동지도 지나고 새해가 된지 세 번째 되는 날 아침, 얼음 목욕을 하던 주인공은 멀리 얼음장 위에 서 있는 방문객을 발견합니다. 보행보조기에 의지하고 서 있는 그녀는 40년 전에 자신이 버리고 떠난 연인 하리에트 크리스티나 회른펠트였습니다. 그녀는 주인공의 이름이 프리드리크 벨린이라고 알려줍니다. 망각속으로 사라졌던 연인의 등장은 벨린의 삶에 극적인 반전을 가져다 주는 서곡입니다. 사실 세상을 여일하게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언가 사건이 생기고 그로 인해서 변화가 있어야 삶이 재미있어지는 것 아니겠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무료한 듯하던 벨린의 삶에 생긴 극적인 변화를 담고 있습니다.


말기 위암으로 투병 중인 그녀가 옛 애인을 찾아온 것은 40년도 넘은 옛날에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인데, 조금은 쌩뚱맞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죽음을 앞에 두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합니다. 벨린은 하리에트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섬을 나서는 것을 보면 40년 전에 그녀를 떠났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고물자동차를 달래가며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찾아갔던 숲속 작은 호수에 도착하게 되는데, 한겨울의 작은 호수에서 물속에 빠져 죽음의 공포를 맞기도 합니다. 이런 장치는 약간 억지스러운 듯한 느낌도 듭니다. 한겨울에 그것도 작은 호수에서 얼음이 깨지는 사고는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받아낸 하리에트는 이번에는 이자까지 받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보면 벨린이 하리에트를 떠난 이유가 조금씩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리에트가 벨린을 안내한 곳은 둘 사이에 생겼던 딸 루이제가 살고 있는 캠핑카입니다. 두 사람을 닮은 것인지 루이제의 삶도 독특합니다. 아버지는 딸의 존재를, 딸은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이 너무나도 극적이지 않은 것은 다소 충격이었습니다. 북유럽 사람들의 쿨함 때문인가요?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탓에 갈등의 순간이 오고, 벨린은 혼자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하리에트의 방문은 그의 삶을 뒤집은 사건을 12년 만에 마무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잘 나가는 정형외과의사였던 벨린은 암에 걸렸다고 진단된 젊은 여자수영선수 앙네스 클라르스트룀의 팔을, 그것도 멀쩡한 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한 충격으로 의사를 그만두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녀를 찾아 뒤늦은 사과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녀는 문제 소녀들을 돌보는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신의 삶을 무너뜨린 벨린의 실수를 자신의 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쿨함이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섬으로 돌아온 벨린의 삶은 한 차례의 흔들림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수순을 밟습니다. 처음에는 개가, 그리고 앙네스의 쉼터에서 만난 시마가, 그리고 늙은 고양이가 사라집니다. 마지막으로는 죽음의 시간이 닥친 하리에트가 딸과 함께 찾아와 함께 죽음을 맞게 됩니다.


정말 보기 드문 등장인물들이 엮어가는 보기 드문 이야기가, 한때 잘못 생각으로 저지른 일일지라도 책임질 일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함께 살아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절대 함께 살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라도 말입니다. 루이제의 친구인 90세가 넘은 이탈리아 장인이 만들어준 구두는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는 길이 무엇인지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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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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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초에 쿠바에 갔을 때 헤밍웨이의 흔적을 참 많이 보았던 것 같습니다. 쿠바사람들이 미국 정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헤밍웨이는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가 묵었던 호텔이아, 헤밍웨이가 자주 찾던 식당과 바는 물론 헤밍웨이가 살면서 집필을 하던 핀카비 히아의 저택과 그가 쿠바 친구와 함께 배를 타던 꼬히 마루에 이르기까지 아바나여행의 상당부분은 헤밍웨이의 흔적을 뒤쫓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꼬히 마루가 무대가 되는 소설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노인과 바다>는 고등학교 다닐 무렵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그때는 참 지루한 이야기다 싶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일종의 모노드라마처럼 노인 혼자서 쏟아내는 말들이 별로 와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렸던 탓이거나 아니면 생각이 모자란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읽은 <노인과 바다>는 왜 퓰리처상을 받고 노벨 문학상을 받는데 기여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나이 듦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 산티아고의 불굴의 정신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오래도록 바다에서 살면서 체득한 앎이 크게 한 몫을 하게 됩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한 순간에 모두 깨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티아고가 거대한 청새치와 겨루는 과정에서 무리하거나 모자라지 않는 절묘한 낚시의 경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를 총동원하여 이룩한 성과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항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산티아고의 물고기를 얻어먹겠다고 염치없이 덤비는 상어들에게는 단호한 면을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는 뼈만 앙상한 청새치를 항구로 가져오긴 했지만 말입니다.


작품 해설을 하신 분은 산티아고는 햄릿형이라기보다는 돈키호테형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책도 읽지 않고 깊이 있는 사색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망망대해에 일엽편주를 띄워놓으면 무념무상, 자연이 가르쳐주는 것들이 절로 머릿속에 콕콕 들어박힐 것 같습니다. 즉, 그는 무엇을 읽어서 정보를 얻기보다는 바다에서 몸으로 체득한 앎으로 낚시를 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산티아고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의존하거나 구걸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려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덕목의 하나로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산티아고가 가진 자비한 마음도 귀한 것입니다. 너무 커서 배안으로 끌어들일 수 없어 배 옆에 붙여둔 청새치의 살첨이 끊임없이 덤비는 상어들에 의하여 뜯겨 나갈 때 청새치에 대하여 진심으로 미안해합니다. 너무 먼 바다에까지 나와서 청새치와 산티아고 둘 모두 망쳐버렸다고 후회합니다. 그리고는 “늙어서는 어느 누구도 혼자 있어서는 안돼”라면서 마놀린을 데리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물론 그동안 어획이 시원치 않아서 더 이상 마놀린을 데리고 배를 탈 수 없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어린 마놀린과 산티아고의 관계도 참 이상적인 듯합니다. 노인과 어린이의 조합이 얼핏보기에는 부조화처럼 보이지만, 소년은 노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바다에서 사는 법을 전수받을 수 있고, 노인은 소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상부상조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버리지 말아야 할 전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자신감이 넘치는 탓인 지 무엇이든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책이든 인터넷이든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무엇은 오직 세상을 앞서 살아본 사람들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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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사나이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7
그레이엄 그린 지음, 안흥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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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비엔나에 가면서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을까 해서 들고 갔던 그레엄 그린의 <제3의 사나이>입니다. 오래 전에 명화극장을 통해서 본 <제3의 사나이>는 마지막 장면만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어 원작을 읽어보고 싶기도 했던 것입니다. 앙상한 가지가 너무도 추워 보이는 도로 멀리서 다가오는 안나가 길가에서 기다리는 마틴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가는 마지막 장면이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비엔나의 분위기는 지금과는 달라도 엄청 달랐을 것이라서 원작의 분위기를 느껴본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럽을 대표하여 오스만터키에 맞서던 오스트리아제국이 비참한 지경에 빠진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터키 등과 함께 연합국에 맞섰다고 패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발칸반도를 두고 러시아에게 밀릴 수 없었던 배경이 있다고 합니다. 전후 연합국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를 분할하고 독일과 분리하는 정도로 마무리를 했던 것인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병합되어 연합국과 맞섰다가 패전을 당했던 것이고, 연합국은 양국의 국토를 분할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독일과 베를린을 동서로 나누어 연합국과 소련이 감시한 것처럼, 오스트리아와 비엔나 역시 소련을 비롯한 미영소 등 4개국이 분할 감시하였던 것입니다.


이 소설의 시기적 배경은 바로 4개국이 분할 감시하던 무렵입니다. 전쟁 후 물자가 부족한 비엔나에서 페니실린을 암거래하면서 폭리를 취하고, 더하여 불량 페니실린을 유통시켜 환자가 죽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암거래를 주도하는 해리 라임을 수사당국이 뒤쫓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인공 롤로 마틴스는 해리의 어릴 적 친구로 라임 덕에 비엔나를 여행하곤 했던 것입니다. 이야기는 해리 라임의 초청으로 비엔나를 방문한 마틴스는 라임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라임의 사고현장을 찾은 마틴스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깨닫게 되고 그의 죽음을 뒤쫓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라임의 애인이라는 안나를 만나게 되고...


극적인 장면은 없지만 해리의 죽음을 뒤쫓는 과정은 추리 스릴러물의 전형을 따르고 있습니다. 마틴스가 해리의 죽음을 캐고 나선 것은 해리와의 우정이 그만큼 순수했기 때문인데, 과연 해리 역시 마틴스에 대하여 순수한 우정을 가지고 있을까요? 하지만 사건을 파고들면서 마틴스는 해리가 자신을 대한 태도가 진실했는가를 되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해리가 주도한 페니실린 암거래의 불법성과 비윤리성이 적절한 처벌을 받아야 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마틴스는 교통사고로 죽었다던 해리를 만나게 됩니다. 해리로부터 자신을 페니실린 암거래에 가담시킬 생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해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지하 하수도로 도망한 해리를 경찰과 함께 뒤쫓고 결국 해리에게 총을 쏘아 맞추기까지 합니다. 마틴스가 해리를 찾아냈을 때 해리가 했던 “지독한 바보야”라는 말은 해리 자신에게 했던 것인지, 아니면 마틴스에게 했던 것인지 작가는 분명하게 정하지 않았습니다. 책읽는 사람의 몫으로 돌리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저는 마틴스에게 했던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돈을 벌 길을 주겠다는데 바보같이 발로 찼다는 의미겠지요.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게 전개되었던 것 같습니다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다르더군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도 다시 한 번 보시고, 소설도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정원 아래서>라는 소설이 같이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 와일디치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윈튼홀에서의 기억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것들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저 역시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저 환상이었는지 확인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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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0
구스타프 마이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책세상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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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이라는 개념은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의 <골렘; http://blog.joins.com/yang412/9549907>과 <닥터 골렘; 

http://blog.joins.com/yang412/11385707>에서 과학 혹은 의학이라는 학문이 가질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기 위하여 인용한 것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들은 “골렘은 유대인의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창조물이다. 진흙과 물을 섞은 뒤 마법과 주문을 가해 사람들이 만든, 인간을 닮은 자동인형이다. 골렘은 강력하며, 또 날마다 조금씩 강력해진다. 골렘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 할 일을 대신해주고 위협하는 적으로부터 보호해주지만, 반면 다루기가 힘들며 위험하다. 제대로 통제를 못 하면 골렘은 엄청난 힘을 마구 휘둘러 주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소개하면서 “과학이란 바로 골렘(Golem)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백과사전에 따르면, 성서(시편 139:16, 형상)와 <탈무드>에 나오는 골렘의 개념은 태아 상태거나 완성되지 못한 물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중세 무렵부터 오늘날 사용하는 골렘의 의미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16세기에는 박해받는 유대인들의 보호자로 인식된 것은 프라하의 랍비인 유다 뢰브 벤 베주렐이 만든 골렘의 전설때문이라고 합니다. 1915년에 발표된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소설 <골렘 Der Golem>은 이 전설을 토대로 쓴 것으로 유명하다고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골렘>의 말미에 옮긴이가 재구성한 작가와의 인터뷰에는 작가가 차용한 골렘의 개념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골렘은 중세 밀교신앙자가 창안해낸 존재인데 프라하의 랍비 뢰브가 게토지역의 유대인을 수호할 인물로 창조했다고 했습니다. 작가는 골렘을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하였습니다. 하나는 어둡고 미로 같은 게토지역에 감도는 집단적인 심리상태를 말합니다. <골렘>에서 이렇게 표현된 부분입니다. “한 세대에 한 번씩 하나의 정신적인 전염병이 번개처럼 이 게토 지역을 훑고 지나가면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어떤 목적을 위해 사람들의 영혼을 습격한다. 그때 어떤 독특한 존재의 윤곽을 신기루처럼 나타나게 한다 어쩌면 이곳에 수백년을 살았을 그 존재가 이제 형태와 모습을 갖추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59쪽)”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골렘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골렘>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아타나시우스 페르나트는 배를 타고 블타바강을 건너 조그만 비탈길 위에 있는 성으로 갑니다. 그리고 성안의 대리석 건물 계단에 서 있는 또 다른 아타나시우스와 그가 사랑하는 미리암이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다른 아타나시우스는 거울 속의 나를 보듯 나와 너무나 흡사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과연 누가 골렘이고 누가 아타나시우스인지 알 수가 없는 듯합니다. 어쩌면 자아(自我)와 외물(外物)은 본디 하나라고 해석하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과 같은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얼마 전에 프라하에 갔을 때는 단체관광이라서 게토지역에는 가보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게토지역을 보았더라면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 실비 제르멩의 <프라하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http://blog.joins.com/yang412/14300614>에 등장하는 여인이야말로 또 다른 형태의 골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게토에서 보석세공사로 명성을 떨치는 아타나시우스와 그의 이웃 셰마야 힐렐과 고물장수 아론 바서트룸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이 복잡하게 엮여 은원관계가 만들어지고 관계가 정리되면서 대부분 등장인물들이 죽음을 맞는데,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초반 분위기는 쉽게 몰입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골렘의 존재가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았던 것도 이유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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