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정병석 지음 / 시공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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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광화문이 뜨거웠던가 봅니다. 100만명의 인파가 몰려 촛불을 들었다고 합니다. 대통령님의 퇴진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하긴 대통령님의 퇴진요구는 어제 오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현 대통령님도, 바로 앞 전 대통령님도 취임하자마자 퇴진을 요구하는 세력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분이 당선되지 못했다고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 대통령더러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입니다. 세상이 이렇다보니 ‘나라가 망할 때가 된 것 아닌가’하는 걱정이 슬며시 생깁니다. 물론 왕조가 아니니 망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와 가장 가까웠던 조선왕조가 망한 원인을 분석한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에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조선왕조는 태조 이성계에 의하여 1392년 창건되어 1897년까지 이어졌고, 고종 이희에 의하여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어 1910년까지 일본제국과 합방되기까지 519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1100년 동안 이어진 베네치아가 있지만, 공화국이었고, 왕국 혹은 제국으로는 1088년을 이어갔던 비잔틴제국이 최장수왕국이었고, 그 뒤를 992년의 신라가 있습니다만, 하나의 왕국이 500년 넘게 존속했다면 대단한 일입니다.


중국의 역사상 첫 번째 통일왕국이었던 진나라는 기원전 8세기 중반 비자(非子)에 의하여 주나라의 부속국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기원전 221년에는 시황제에 의하여 천하통일을 이루었지만, 불과 15년이 지난 206년에 한나라 유방에 의하여 멸망했습니다. 한편 고구려와 두 차례 큰 전쟁을 치른 수나라 역시 581년에 성립되어 589년에 중국대륙을 재통일하였지만, 619년에 멸망하였으니 39년 동안만 존재하였던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에서 기원전 1046년부터 기원전 256년까지 이은 주나라가 가장 오랜 왕국이었는데, 춘추전국시대에 해당하는 동주(東周) 시대를 제외하면 서주(西周) 시대는 275년에 불과합니다. 중국의 왕조는 대체로 300년 정도 존속했던 것입니다. 땅덩어리가 넓으니 야심가도 많아서 왕국을 이어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반면 조선은 땅이 넓지 않으니 감시를 피해 세력을 키우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터라서 왕실 안팎의 사정이 어지간하지 않으면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고구려와 백제가 무너진 것은 신라가 당나라와 결탁하여 외세를 끌어들인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으며, 신라와 고려가 망한 것은 지방호족이나 중앙의 특정세력이 힘을 결집할 수 있도록 통제하지 못한 탓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의 멸망은 일단 일본제국이라는 외세에 의한 침략이 핵심요인이라고 하겠는데, 외세를 침략을 막아낼 수 있는 자체 역량을 결집하지 못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는 조선의 멸망을 가져온 내부적 요인으로 불합리한 제도를 지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을 쓴 정병석교수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역학을 전공하고 행정고시에 수석합격하여 노동관련 정부부처에서 근무하다 노동부차관을 역임하였습니다. 퇴임 후에는 경제사와 성장론을 중심으로 한 경제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는 아니나 정부관료로 오래 일하면서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의 멸망원인을 제도사적으로 접근하여 해석하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왜 어떤 나라는 가난하고 어떤 나라는 잘사는가?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답을 남한과 북한의 현 상황에서 구하려고 합니다. 즉, 오랜 역사에 걸쳐 하나의 민족으로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를 가진 나라였던 남한과 북한이 오늘날 경제력에서 엄청난 격차를 보이는 이유는 제도의 차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하버드대학교와 MIT의 경제학, 정치학교수인 대런 애쓰모글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교수 등이 쓴 「장기 경제성장의 근본 원인으로서의 제도」라는 논문에서 주장한 내용입니다. 해방 이후 남한과 북한은 지리, 기후, 자원, 문화, 종교, 언어, 인종 등 모든 조건이 동일하지만 오직 정치와 경제제도만 차이를 가졌던 것인데 경제적 성과에서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부사항을 챙겨보면 남북한 간에 정치와 경제제도 이외에도 상이한 점이 적지 않을 것이며, 그런 요소들이 경제적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는 “제도에 중점을 두는 경제성장론(즉, 제도론)의 관점에서 검토해보면, 남북한의 격차를 제도의 차이로 분석하는 것처럼 조선이 왜 쇠퇴의 길로 가게 되었는지도 보다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7쪽)”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저자의 관점은 분명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처럼 서로 비교할 상대가 있는 경우하고는 달리, 조선처럼 비교할 상대가 마땅치 않은 경우에는 해석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중국 혹은 일본의 제도와 비교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것은 저자가 조선사를 깊이 연구한 바 없으니 민족사관이니 식민사관이니 하는 특정한 사관에 치우침이 없다고 하였지만, 조선이 잘못된 제도 운용으로 결국은 멸망에 이르렀다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식민사관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조선의 제도사를 정리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중요제도에 담긴 경제학적 의미를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제도의 변천과정을 기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기술방식에서는 때로 자신의 주장에 합치되는 부분만을 선택하여 해석함으로써 같은 제도라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는 잘 들어맞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짐이 곧 국가이다’라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루이14세의 프랑스왕국과는 달리 조선의 정체는 왕정이었지만, 정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왕은 신하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또한 사헌부, 사간원과 같은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한 견제장치를 갖추어진 정부형태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에서 시행한 제도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는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차적 요인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선왕조를 움직인 기본철학은 성리학(性理學)이었습니다. ‘성명·의리의 학문(性命義理之學)’을 줄인 성리학은 중국 송나라의 주희(朱熹)가 공자와 맹자의 유교사상을 ‘성리(性理)·의리(義理)·이기(理氣)’ 등의 형이상학 체계로 해석하여 집대성한 것입니다. 성리학에서는 도교와 불교가 실질이 없는 공허한 교설(虛無寂滅之敎)을 주장한다고 이단으로 배척하였는데, 불교가 고려사회에 끼친 폐해가 크다고 본 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권근의 이기심성(理氣心性)론을 보면, 군주 및 지배층의 덕치(德治)·예치(禮治)·인정(仁政)·왕도(王道)의 실천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밝히고 있는 것처럼 조선왕조 초기 성리학은 왕조의 통치철학으로 합당한 것이었지만, 왕조의 중심을 차지한 사림집단의 비중이 커지면서 점차 양반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대중을 포용하는 정신이 희박해지고, 실무보다는 허례에 매달리는 경향으로 흐르면서 사회구조가 유약해진 것으로 저자는 보았습니다.


조선왕조의 지식계층은 고려시대에 세계최초로 개발한 금속활자를 개발한 선진인쇄술을 활용하여 지식의 확산에 기여한 것이 아니라 독점하는데 그쳤으며, 양반제도 및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4민체제 그리고 노비제도 등 착취적 신분제도를 운용한 것이 조선사회를 취약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소라고 보았습니다. 양반들은 중앙 뿐 아니라 향촌에서도 아전 등 향리들과 결탁하여 실질적 지배자로 군림하여 일반백성들을 착취하는 존재였을 뿐 아니라 농공상등 생업에 종사하지 않아 사회에 직접 기여하는 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조선왕조는 공업과 상업 활동을 억제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시행함으로써 부국강병의 길을 외면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종이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 의복을 만드는 원료가 되는 뽕나무나 면화 등 특용작물의 재배와 분업 등을 통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일을 권장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농지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었을 터라서 식량이 아닌 특용작물을 재배하기 위하여 농지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였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자도 지적하였습니다만, 조선왕조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였으며, 통일신라 이후로는 중국과 사대외교의 관계를 유지하여 군사적 충돌을 피함으로서 백성들의 군비부담을 줄이고자 하였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군비를 강화한다는 것은 중국에 시빗거리가 된다고 보았던 것이 아닐까요?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조선을 유일하게 문명한 나라로 상대할만한하다고 인식하였던 것이 결과적으로 문약한 나라가 되고만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명나라와의 선린관계를 지키려다 신흥 청나라가 명나라와 대결하는 마당에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려다가 호란을 당한 사정은 당시 왕실과 조정대신들의 정책적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이는 점입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왕조 안팎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현대적 방식으로 옛일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그리고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세에 서구사람들이 조선의 존재를 몰랐다고 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고려 왕조까지만 해도 예성강 벽란도가 국제무역항으로 널리 알려져 대한민국을 코리아라고 부르게 된 까닭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이 동방항로를 개척하여 인도에 도착한 것이 1498년, 중국 광동에 도착한 것이 1513년입니다.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라비아의 상인들로부터 얻은 항로정보가 도움이 되었을 터입니다. 또한 아라비아상인들이 벽란도에 드나들었을 터이니 불과 200여년 만에 고려에 대한 정보가 깜깜절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나라의 대외교류중단 정책과 맞물려 조선 역시 외국과의 교류를 끊고 살았던 것은 정책적 오류였다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저자는 조선이 성장할 수 없었던 이유를 경제성장론으로 설명합니다. 경제성장론에서는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려면 자본과 노동,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며 국가의 총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 등의 요인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조선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은 재정으로 움직이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였기 때문에 대규모 공사를 벌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건설은 물자와 노동시장을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공사를 벌이려면 조세율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백성의 부담이 늘어나게 되니 비용-효과적 측면을 면밀하게 계산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조선왕조는 상인과 기술자를 천시하는 등 상공업이 발전할 여건을 마련하기보다 오히려 상업 활동을 억제했다는 것이 정책적 실책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가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인식하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또한 상업 활동에 관심을 가진 백성들이라고 하더라도 이윤을 얻게 되면 양반들의 착취대상이 되는 것을 기피하였던 것도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저 자급자족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생산의욕을 북돋울만한 시장이 아예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혹자는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낮다고 말합니다. 경제적으로 성장해서 먹고살만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고 세상이 각박해지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과 행복한 것은 반드시 동행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조선시대에 살았던 우리들의 선조들의 행복지수는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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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브레인
양은우 지음 / 이담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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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을 지양하는 [북소리]에서도 자기계발 혹은 조직관리 등에 관한 책을 소개한 적도 없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이유는 이번 주 [북소리]에서 조직관리에 관한 독특한 시각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이 분야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조직관리에 관한 이론서들이 대체적으로 사회과학 혹은 심리학에 기반한 것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양은우의 <워킹 브레인>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조직관리의 기본 원칙들을 뇌과학으로 설명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고 보았습니다.


저자는 일리노이주립대학교(UIUC)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한 뒤 25년에 걸쳐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에서 전략기획업무를 수행했고, 그 후로는 기업컨설팅과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KMA(한국능률협회)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기업경영을 뇌과학에 접목한 이론을 개발 중입니다. <워킹 브레인>은 그 첫 번째 결실이라고 하겠습니다. [북소리] 독자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뇌과학은 이해가 쉬운 분야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과학에 대한 학문적 배경이 없는 저자가 조직관리 이론과 어느 정도는 접목에 성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건의료분야의 사정 역시 일반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업의 궁극적인 존재이유가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에 있다고 한다면 오늘날처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경영환경 속에서는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닐 것입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짚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기업경영의 기본 이론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체계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품질 좋은 제품을 대량생산하여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시장을 개척하려 부지런히 노력만 하면 어느 정도는 성공할 수 있는 경쟁체제였다.” 하지만 앞으로의 기업경영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경쟁체제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결국 사람이 내놓는 것이므로 기업경영의 핵심이 일관리에서 사람관리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경과학 분야가 최근 이룩한 괄목한 연구성과를 기업에 접목한 뉴로마케팅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처럼 사람의 관리 역시 두뇌의 특성을 이해해야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추론이 성립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인간 두뇌의 작동기전과 생물학적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여야만 개인이 가진 잠재력과 가치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조직관리 이론의 요체라고 할 리더십, 소통 그리고 조직문화 등 세 가지 영역의 이론들을 뇌과학적 방법으로 검증해낸 것입니다. 각각의 영역에서 다섯 가지의 대표적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먼저 브레인 리더십에서는 멀티태스킹, 공정성, 자극, 공감, 그리고 즐거움 등의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창의적인 사람은 다양한 분야의 앎을 끊임없이 추구하여, 그것들을 연결하여 혁신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창의력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성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두뇌는 내외부의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최근까지도 멀티태스킹 능력이 조직에 기여하는 바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업무효과를 얻기 위하여 멀티태스킹 능력이 뛰어난 구성원에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멀티태스킹이야말로 사람의 두뇌 특성을 거스르는 대표적 행동이라 사실이 심리학이나 신경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속속 발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와 흡사한 구조를 가진 컴퓨터 작업을 통하여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컴퓨터에 여러 개의 창을 띄워놓고 작업을 병행하다보면 처리속도가 떨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작업이 중단되는 심각한 상황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신경세포들을 신경섬유로 연결하는 신경망을 통하여 사고하고 상황을 처리하는 인간의 두뇌도 마찬가지입니다. 멀티태스킹을 하는 동안 사람의 의식은 여러 가지 과제에 분산될 수밖에 없는데, 흔히 모든 과제에 동시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은 사실 이들 과제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가지 과제만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 비하여 사고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멀티태스킹의 문제가 집중력과 주의전환 능력이 떨어지는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인지능력의 저하로 인하여 사고력과 판단력의 감소로 이어지게 되면 상황은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멀티태스킹은 A급 인재를 B급인재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 뇌과학에 기반한 조직관리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흥미로운 대목도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성추행이나 섹스스캔들에 시달리는 이유를 대뇌에서의 호르몬 분비로 설명합니다. 지위감이 높아지면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분비가 왕성해지면서 스트레스 호로몬인 코르티솔의 수준이 떨어지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높아져 강한 모습과 자신감이 드러나게 되는데, 성적 충동이 증가하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브레인 리더십에서는 언제나 바른 자세를 견지하고, 조직구성원을 공정하게 대할 것을 요구합니다. 누군가와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이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모든 직원을 공정하게 대하고 있는가’를 비롯한 11가지의 질문으로 구성된 체크리스트를 활용하여 주기적으로 확인해보기를 권합니다. 창의적 사고는 틀에 박힌 듯한 업무형태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업무와는 거리가 먼 분야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를 권합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뿅’하고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분야의 앎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무실의 분위기도 중요합니다.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공감하는 분위기, 즐거운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창의적 아이디어의 바탕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보여 조직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나 의심스러운 분위기에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기업들에서 입증된 바 있습니다.


두 번째 주제인 브레인 소통에서는 분노, 칭찬, 표현, 구체화, 자발적 참여 등 소통에 관한 이론을 뇌과학으로 설명합니다. ‘브레인 소통’에서는 두뇌의 정보입수와 재구성 과정 등 정보처리 과정과 그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다루었습니다. 제가 공직에서 일할 때 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신경과학적 이론으로 풀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오감을 통하여 받아들여 뇌로 보내고 그에 대한 판단을 운동신경을 통한 반응으로 나타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조직의 하부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정확하게 조직 상부에 전해지지 않거나, 혹은 전해진 것들에 대한 대응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 조직은 죽어있는 조직이라고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자는 ‘소통은 공감을 통하여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기술’이라고 정의하고, 소통의 궁극적 목적은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킴으로써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반만 옳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기 전에 상대방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상대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야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제대로 이해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브레인 소통편에서는 칭찬을 제대로 하는 법이 흥미를 끌었습니다. 흔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잘못된) 칭찬은 고래를 멸치로 만들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잘 했어, 역시 네가 최고야’, ‘당신이 없으면, 안돼!’, 혹은 ‘자네는 정말 성실해’, ‘얘는 참 얌전하고, 말을 잘 들어요’ 같은 칭찬을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요? 칭찬의 궁극적 목적은 자발적인 동기를 부여하여 업무에 대한 의욕을 끌어올리고 업무성과를 향상시키는데 있다고 본다면, 때로 칭찬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칭찬을 할 때는 일의 성과가 아니라 과정에 대한 칭찬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과가 조금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만족스럽다면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과정을 이해하고 칭찬을 하게 되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구성원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자네가 최고야’, ‘자네가 없으면 안돼’와 같이 막연하게 칭찬을 하면 그로 하여금 자만심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에 칭찬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체적 사항을 콕 짚어서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구성원의 사기를 고려하여 잘못한 것을 언급하지 않고 칭찬일색으로 가는 것도 잘못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야단을 치라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 고쳐야 할 것도 반드시 짚어서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조직관리 원칙입니다.


마지막 주제 ‘브레인 조직문화’에서는 무한경쟁, 집단 괴롭힘, 스트레스, 수면부족, 업무과중 등 직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을 다루었습니다. 최근에 많은 조직에서 추진하고 있는 성과연봉제는 현상에 안주하려는 소극적인 구성원들을 자극하여 성과를 높이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쟁을 통하여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려는 당근책이지만, 잘못하면 개인과 조직을 멍들게 하는, 득보다 실이 많은 제도라는 주장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직장만하더라도 집단지성의 요람이라고 말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집단의 힘을 이용함으로써 시너지를 극대화해 더욱 큰 성과를 얻고자 한다(221쪽)’라는 것입니다. 즉 집단의 힘으로 성과를 올렸는데,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업무성과로 변환시켜 구성원들 마다 차별화된 보상을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결국 동료들은 협업을 통하여 성과를 극대화하는 동반자가 아니라 밟고 넘어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만들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개인별 성과를 측정하는 방법이 공정하지 않다면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제도의 앞날은 뻔하다 하겠습니다.


구성원 간의 경쟁과 경직된 상하구조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조직의 효율적 운영에 커다란 장애가 됩니다. 물론 일정 수준의 스트레스는 개인을 자극하여 일을 효율적으로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만, 일단 한계를 넘어선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부정적 효과를 나타내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유발한 원인을 해결하기 위하여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사고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양이 고갈되고 사고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므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고력과 집중력이 저하되는 원인으로 저자는 신경세포의 파괴 및 재생의 억제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는데, 이 부분은 조금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신경세포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뇌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수용체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밖에도 신체운동과 두뇌활동과의 관계에 관한 우렁쉥이의 사례나 쥐의 수중미로실험 결과해석 등은 조금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구성원들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진정한 리더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려면 두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에 기반을 둔 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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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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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 세상사가 내 일이 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나쁜 일이 한꺼번에 몰려들면 세상이 왜 나만 못살게 하냐면서 한탄만 할 뿐 무엇을 어떻게 수습할지 망연해지기 마련입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의 처녀작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의 주인공 사라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마흔을 목전에 둔 11년차 광고 디자이너 사라는 그럭저럭 잘 살아온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 식대로라면 딱 아홉수, 그것도 모진 아홉수에 걸린 셈입니다. 중요한 광고주와의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 지하철에 노트북을 두고 내리지 않나, 긴장과 쌓인 피로 때문에 졸도를 한 것도 모자라 10년을 동거해온 잘 생긴 스페인 남친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면서 헤어지자고 합니다. 알고 보니 벌써 2년이 넘도록 새파란 어린 것과 사랑놀음을 하고 헤어질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 설상가상으로 스페인에 사는 아버지는 말썽꾸러기 남동생 때문에 하던 책방 문을 닫아야 할 판에 집까지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만, 사라는 정신줄을 놓을 지경입니다.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있다고 한 것처럼 사라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말하는 고양이 시빌이 나타난 것입니다. 시빌이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특별한 고양이 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사라는 시빌과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시빌을 사라의 생각을 읽어내기도 합니다. 그걸로 보아서는 시빌은 사라의 상상의 산물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사라는 시빌의 도움으로 위기를 헤쳐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시빌은 별난 고양이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니면 모든 고양이가 시빌처럼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고양이가 사람을 길들였을 뿐 아니라 사람을 입양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고양이들이 수천년 동안 삶의 길을 걸으면서 너희 인간들을 인도해왔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착각의 정도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이뻐해주면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생긴다더니 딱 그 짝입니다.


하지만 시빌은 특별한 고양이임에 틀림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먹을 땐 먹는 데 집중하고, 걸을 땐 걷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거’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멀티태스킹이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들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성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시빌은 사라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먼저 길을 걸으면서 지나치는 다양한 색깔들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이어서 파란색에 집중하고, 그 다음에는 초록색, 노란색… 그리고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모든 색을 관찰하도록 합니다. 이는 색체의 세계로 들어가는 훈련으로 다양한 색깔이 서로 녹아드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책깔에 이어서 소리, 냄새, 촉감, 등 오감에 대한 훈련이 이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판단하지 않고, 평가하지도 말고 그저 관찰만 하라는 것’입니다. 훈련은 고되었고,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며 지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시빌은 바로 그 불편함을 관찰할 것을 요구합니다. 좌절감과 쉬고 싶은 욕구, 근육의 아픔까지 음미해보라는 것입니다. 판단하지도 말고... 즉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마음속 모든 것을 모두 열어 보이면 마음을 옥조이던 고통의 사슬이 슬그머니 풀리는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정말일까요?


병가가 끝나고 회사에 다시 나가는 날 아침 시빌은 사라에게 고양이 명상과 스트레칭을 가르쳐줍니다. 가지가지 하는 고양입니다. 심지어는 사라를 채식주의자로 만들기까지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사라는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심지어는 소싯적 꿈꾸었던 작가수업을 시작하기에 이릅니다. 그 첫날 사라가 컴퓨터에 입력한 글은 바로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의 첫부분입니다. 이 소설은 마치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옮긴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작가의 경력을 보면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세상사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끌탕을 하면 손해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다보면 해결방안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굳이 말하는 고양이를 불러내지 않아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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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 무엇이 과학인가
팀 르윈스 지음, 김경숙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흔히 의심이 가는 사안을 논의할 때 과학자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잊혀가고 있습니다만, 2008년 광우병파동이 일었을 때,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과학자들로 인하여 사람들이 갈팡질팡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라고 주장하던 소위 전문가들은 ‘위험할 수는 있지만, 이미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위험수준이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을 사이비전문가라고 매도하는데 주력했던 것도 대중들의 신뢰를 얻으려는 수작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각설하고, 과학이 일반대중의 신뢰를 얻게 된 것은 그동안 과학이 이루어낸 놀라운 업적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의 서문을 잠시 인용하면, “과학적인 방법은 아득한 과거나 먼 미래의 비가시적인거나 무형인 사건에 대해서도 견해의 일치를 끌어낼 수 있을 만큼 누구나 인정하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려운 결정을 할 때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지 여부를 묻게 된 것입니다.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는 과학의 오늘날의 위치에 오르게 되기까지를 설명합니다. 즉, 과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합니다. 유명한 물리학자 파인만박사도 “새에게 조류학이 도움이 안되는 것처럼 과학자에게도 과학철학이 도움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을 보면, 과학철학은 과학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도 많은 모양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인슈타인박사는 “과학의 역사적․철학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대부분의 과학자가 지닌 문제인 현세대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철학적 통찰력이 가져다주는 이 자유야말로 진정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을 단순한 장인 혹은 전문가와 구별해주는 것 같다.”라고 말해 과학철학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다음의 국어사전을 보면, 철학(哲學)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인생관, 세계관 따위를 탐구하는 학문. 원래 진리 인식(眞理認識)의 학문 일반을 가리켰으나, 중세에는 종교가, 근세에는 과학이 독립하였다.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미학 등의 하위 부문이 있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과학의 뿌리가 철학에 닿고 있으니, 학문이 추구하는 근본 목표는 동일하나, 대상과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철학이 사유를 통한 진리탐구 즉 주관적 학문이라고 한다면 과학은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차이가 있겠습니다. 최근에는 주관적 학문 영역까지도 과학적 접근방식을 이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의 저자 팀 르윈스는 케임브리지대 과학철학 교수로 과학철학뿐 아니라 생물철학과 생물윤리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케임브리지대 장하준교수는 추천의 글에서 ‘특히 생물학 분야의 과학이론이 가지는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깊이 고려하는 전문가로 유명하고, 그의 명쾌한 강의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인기‘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도 어려운데, 그 어렵다는 철학이 융합된 과학철학에 관한 책을 읽으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북소리]의 독자들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그동안 이 분야의 책들을 읽어보셨을 터이니 말입니다. 이 책은 ‘과학이란 무엇인가’와 ‘과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해당하는 각각 4개의 질문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옮긴이는 역자서문에서 친절하게 그 내용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먼저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인가?(1,2장), 과학이란 시간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하는 것인가, 아니면 한 시대를 풍미하는 특정 문화처럼 어떤 시대에 권위 있게 받아들여지는 어떤 사고의 유형(패러다임)인가?(3장), 과학은 우리에게 있는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가? 아니면 과학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의존해 있는 것일까?(4장), 과학이 과연 가치중립적일 수 있는가?(5장), 과학과 도덕의 관계는 어떠한가?(6장), 또 다른 도덕적 주제인 인간 본성의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7장), 마지막으로 소위 말하는 ‘과학적인’ 세계관, 즉 인간사를 포함한 모든 세계 현상이 인과관계로 설명이 돼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입장을 받아들였을 때 과연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8장) 등입니다.


저자는 귀납법과 연역법으로부터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합니다. 논리학의 대표적인 방법론들이 근대 과학적 방법론으로 차용되었던 것입니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귀납적 방법은 여러 사례들에 대한 객관적 관찰과 실험을 통해 얻은 자료로부터 공통점을 추출하여 일반적인 원리를 찾아냅니다. 반면 연역적 방법은 이미 알려진 원리로부터 수학적․논리적 추론을 통해 개별 사물의 이치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정된 표본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의 일반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규명해야 하는 경우에 귀납적 방법론을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됩니다. 특히 과학의 영역에서 귀납법은 믿을 수 없는 추론방법이라고 칼 라이문드 포퍼는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포퍼는 대표저서 <추측과 논박>에서 역사를 통하여 인간이 과학적 지식을 축적해온 과정을 철학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오래 전에 [북소리]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추측과 논박1; http://blog.joins.com/yang412/12845276>에서는 ‘추측’이라는 표제 아래 과학적 논리를 세우는 과정에 중심을 두었고, <추측과 논박2; http://blog.joins.com/yang412/12845385>에서는 ‘논박’이라는 표제로 묶어 과학적 논리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정리하였습니다. 과학은 베이컨 이래로 중요한 철학적 화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으나, “과학은 그것의 관찰적 기초나 또는 귀납적인 방법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데 반해, 사이비 과학과 형이상학은 사변적인 방법이나 또는 베이컨이 말했듯이 ‘마음의 기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것(칼 라이문드 포퍼 지음, 추측과 논박 2권, 24쪽)”이라는 일반적 견해에 포퍼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과학에서 귀납적 접근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포퍼는 일종의 연역적 방법론을 대안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즉, “귀납적 추리에 의존하지 않고 과학을 한다면 과학적 일반화가 참되다는 결론은 절대로 합리적으로 내릴 수 없는 반면, 특정 일반화가 거짓이라는 결론은 내릴 수 있게 된다(40쪽)”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포퍼의 견해를 ‘반증주의’라고 합니다. 포퍼의 주장은 일견해서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 때문에 다양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중간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과학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말은 어떤 경우에는 증거자료에 개방적이고 창의적이고 또 예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과학자들은 경주마처럼 눈가리개를 하고 있을 때 가장 큰 발전을 이룬다.(68쪽)” 다만 포퍼의 반증주의가 아니더라도 지적설계이론이나 동종요법이론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는 비판적 평가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토마스 쿤을 포퍼의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흔히 과학적 이성주의와 과학적 진보주의를 제안한 포퍼와는 달리 쿤은 과학적 사고의 변화가 이성적이라거나, 과학 자체가 진보한다는 생각을 부정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쿤은 분명 과학이 진보한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과학이론의 변화가 이성적이라고 여겼다는 점을 저자는 분명하게 합니다. 과학에 대한 쿤의 새로운 철학은 <과학 혁명의 구조; http://blog.joins.com/yang412/12595326>에 담겨 있습니다.


과학사학을 전공한 쿤은 과학이 발전한 과정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개발된 방법에 따라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던 사실들이 확인되면서 추론에 의하여 세워졌던 이론을 뒷받침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까지 통용되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지금까지의 이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론이 제기되어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실들이 누적되다보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은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회현상에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런 현상을 과학혁명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저자는 과연 ‘과학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는가?’하는 의문에 대하여 ‘그렇다’라고 하는 ‘과학적 실재론’이 맞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려면 세 가지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첫 번째는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인 ‘미결정성’ 이론의 도전을 막아야 하고, 두 번째는 과학적 실재론의 유일한 지지 이론인, ‘기적은 없다’ 논증을 살펴보아야 하며, 세 번째로는 ‘비관적 귀납’으로 알려진 논증을 정면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근본적으로는 과학적 실재론자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과학사를 돌아보면 과거의 과학이 실패한 사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과학이 틀린 것으로 판명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과학적 통찰력에 대한 판단 자체가 회고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과학적 실재론자가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즉, 과학자의 임무는 탐구대상에 대하여 보다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옳으며,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2부에서는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각적으로 논의합니다. 그 첫 번째로는 ‘사전예방의 원칙’의 원칙입니다. 사전예방의 원칙이 기술발전을 저해하고, ‘유령 위험’에 대해 과민하게 규제적인 반응을 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건강이나 환경에 잠재적으로 크게 해가 될 수 있는 위험을 다룰 때는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안전한 것이 낫겠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안전과 관련된 정책을 결정할 때, 근거가 되는 과학적 연구성과에 대한 평가를 책임지고 있는 과학자들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한 생명윤리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저자는 자연도태를 결정함에 있어 생물은 이타적인가 아니면 이기적인가 하는 의문에 도전합니다. 진화론을 제창한 다윈은 이타주의가 진화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http://blog.joins.com/yang412/12583563>에서 진화론의 설명하기 위하여 어떤 형태로든지의 이기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에 대한 논란을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집단의 특성을 담은 문화적 유전자 미멤이 실재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저처럼 미멤의 실재에 대한 논란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조만간 정리된 이론이 나올 것 같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내용인데, 아직까지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행동이 결정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과학적 제국주의를 우려하고, 과학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과학이 발전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라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과학철학이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합니다. 다만 과학적 연구결과를 해석함에 있어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과학의 의미는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과학이 혼자서 답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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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 -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그리고 석유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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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인류가 처음 나무에서 내려온 것 자체부터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류는 근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었기 때문에 뭔가 바꾸어보는 짓을 쉽게 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도전이 지금의 인류가 있게 한 동력이었을 것이구요.


그렇다면 세상을 바꾼 무엇은 무수하게 많을 터인데, 굳이 다섯 가지를 골라 보았다고 해서 호기심이 동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섯 가지를 고르는데 있어 무슨 원칙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저자는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 등 다섯 가지 상품이 세상을 뒤흔든 대표적인 상품으로 골랐습니다. 소금은 모든 문명의 발상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점에서, 모피는 시베리아 개발과 북아메리카 서부 개척의 동력이었다는 점에서, 보석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충돌한 근본적 이유가 되었다는 점에서, 향신료는 근대의 시작을 유발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석유는 현대사회의 핵심적 에너지원이라는 점에서 골랐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피나 보석이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생각에는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다섯 가지 상품의 이면에는 공통적으로 유대인들의 철두철미한 장삿속이 깔려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저자가 오랫동안 코트라에서 일하면서 쌓은 경제현장의 느낌과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의 상술에 대한 연구에서 기획된 것으로 보입니다. 관심이 특정한 부분에 쏠리다보면 겪을 수 있는 부작용도 보이는 듯합니다. 즉 시야가 좁아져 다른 요소의 작용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적어지며, 모든 현상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등의 부작용말입니다.


첫 번째 주제가 된 소금 역시 모든 문명의 현장에 소금을 얻을 수 있는 곳과 관련을 가지고 있지만, 소금이 문명기원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자료 역시 저자의 시각에 부합하는 쪽으로 재해석하는 느낌도 있을 뿐 아니라, 자료의 정확도에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서해도 들어가는 세계 5대 갯벌로 지목된 캐나다의 동부는 북쪽에 있는 허드슨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베네치아가 아드리아해안가 염전에서 대량으로 만든 천일염을 알프스 지역에 공급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고, 이를 주도한 것이 베네치아의 유대인으로 지목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드리아해에서 소금을 대량으로 생산한 것은 오늘날의 두브로부니크를 중심으로 한 라구사공화국으로 베네치아와 오랫동안 경쟁하던 관계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반도 내에서도 피사, 피렌체, 제노바 공화국 등과도 지중해의 해상무역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지 소금이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부가 스페인으로부터 쫓겨난 유대인들이 주도한 염장 청어산업으로부터 기인했다는 것도 의문입니다. 스페인의 기독교 국가들이 레콩키스타에 성공한 이후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을 쫓아냈던 것은 사실입니다. 쫓겨 간 유대인들은 네덜란드에 자리를 잡고 양모 등을 소재로 한 직물산업과 금융, 유통 등의 상권을 장악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다섯 가지 상품 가운데 소금과 모피의 경우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과거에 중요한 상품이 되었을 수 있겠습니다만, 다른 상물에 관해서는 별도 언급이 없는 것도 형식면에서 빠져 보인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글의 흐름을 깨트리는 속되거나 거칠어보이는 서술이 있어 조금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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