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2 로마제국 쇠망사 2
에드워드 기번 지음, 김희용.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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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2>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을 창건하고, 밀라노칙령을 내려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황제의 시대로부터 뒤를 이은 아들 콘스탄티우스황제 시대의 혼란상에 이어 갈리아군단에 의하여 추대된 철학자 율리아누스황제가 페르시아원정길에 전사하고, 역시 전장에서 추대된 요비아누스의 옹졸한 정치적 행보, 그의 뒤를 이은 발렌티아누스황제가 동생 발렌스와 제국을 나누어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분할하였고, 발렌티아누스황제의 사후에 발렌티니아누스의 사망·그의 두 아들, 그라티아누스와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서로마 제국을 계승하였고, 그라티아누스의 죽음 이후에는 테오도시우스가 동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르던 시기를 다루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비잔티움을 새로운 로마의 공표한 서기 324년부터 훈족에 밀려난 고트족이 로마의 영역에 자리잡은 서기 395년까지의 시기입니다.


<로마제국 쇠망사2>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리스도교의 공인과 이어 벌어진 삼위일체를 둘러싼 교리다툼으로 그리스도교 안에서 다양한 파벌이 갈등하고 대립하는 모습입니다. 그리스도교가 타 종교에 배타적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같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교리가 다르다고 해서 갈등의 수준을 뛰어넘어 권력을 쥔 쪽이 상대를 엄청나게 탄압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세력을 잃은 쪽에서는 숨어서 권토중래를 노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데, 소아시아의 동굴에서 숨어지내던 그리스도교인들이 로마제국이나 이슬람제국의 탄압을 피해서 숨었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반대파를 피해서 숨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1>에서 보았던 것처럼 종교에 대하여 비교적 관용적이었던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박해를 받았던 것은 제국의 수호신들에 대한 경배를 기피하는 정도를 넘어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배타적 행동을 서슴치 않았던, 그러니까 화를 자초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고, 역시 이교도에 관용적인 입장을 견지한 이슬람 세력을 무너뜨린 다음에 철저하게 짓밟은 것을 보면 그리스도교의 배타성에 대하여 생각을 더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로마군의 독특한 구성도 제국의 쇠망을 가속시키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광대한 지역을 정복하는데 주력했던 로마군은 본국의 인적자원만으로는 도처에 깔아놓은 전장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복한 야만족(철저하게 로마의 시각에서의 호칭이라고 생각합니다만)의 인적자원을 징발하여 군단을 창설하였던 것이며, 이들이 군대에서 능력을 발휘하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기 때문에 뒤에는 속주출신의 황제가 탄생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로마제국은 황제가 지배했다기 보다는 로마의 귀족들이 본토를 지키면서 황제들은 곳곳에 깔려있는 전장을 바쁘게 오가는 신세였는지도 모릅니다. 콘스탄니누스대제 시절에는 통합관리하던 제국을 116개의 속주로 나누어 통치를 위임하는 일종의 지방분권제도를 정착시켰던 것입니다.콘스탄티누스황제의 그리스도교의 공인 배경에는 정적을 제압하기 위한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고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기번은 그리스도교인들의 특성, 즉 종교집단의 결속력과 정신력을 활용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인에게 중요한 보직을 맡겼던 것이고, 그들은 황제에 대하여 충성을 다하였으며, 비그리스도교 관리들을 개종시키는 효과를 나타냈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기적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회사에 기록되어 있는 소위 기적에 대한 기번의 입장은 “참으로 훌륭하기는 하지만 믿을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로 교묘하게 혼합되었던 것(165쪽)"이라고 정리된 것 같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2>의 마지막 장에서 정리된 훈족에 관한 이야기는 다소 분명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훈족이 중국을 위협하던 흉노족이었고, 한나라가 자리를 잡으면서 흉노족을 압박하자 이들이 나뉘서 중국의 영토 안으로 이주해서 살게 된 집단과 서쪽으로 이주한 집단이 있었다는 것인데, 중국의 북방에서 유럽까지의 이동경로가 분명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공부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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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1 로마제국 쇠망사 1
에드워드 기번 지음, 김희용.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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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기독교문명이 부딪힌 현장을 돌아보면서 역사를 되짚어보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터키와 발칸반도로 이어지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로마제국의 유적들을 보았을 때, 제국의 역사를 더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방대한 분량에 선뜻 집어 들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시작하면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전체를 아우르는 독후감을 정리하는 것은 지나치게 개괄적인 것이 될 듯해서 한권 한권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로 즉위한 시점을 시작으로 보지만, 카이사르가 제국의 바탕을 만들었고, 옥타비아누스가 제정의 틀을 만들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로마제국의 끝은 395년 동서 로마의 분할,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혹은 1453년 비잔티움 제국 멸망 등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보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제국은 고대 로마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들은 기원전 753년에 로물루스가 로마라는 도시를 건설했다고 전하지만, 이는 허구적인 전설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10세기 무렵 이탈리아반도에 흩어져 살던 여러 부족들이 전쟁과 교류를 통하여 융합하게 되었고, 그 핵심은 라티움에서 테베레 강을 건너 에트루리아에 정착한 에트루리아인들과 기원전 8세기 중엽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로 건너온 그리스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8세기 무렵 이들을 중심으로 통합된 것이 고대 로마의 시작이었고, 초기에는 도시국가 형태의 왕국이었습니다. 기원전 500년 무렵 왕정이 무너지면서 귀족들과 평민계급에 의한 공화정이 시작되어 계급간의 투쟁과 타협이 이어지면서도 세력을 확장시켜나갔던 것입니다. 기원전 272년에는 이탈리아반도에 흩어져 있던 도시국가들을 아우르게 되었고, 이어서 갈리아 카르타고 등을 정복하여 지중해 전역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그리고 두 명의 안토니누스 황제로 이어지는 80여년의 행복한 시기(서기 98-180년)로부터 시작합니다. 제국 쇠망의 중요한 상황들을 살펴보는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기획의도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보입니다. 기번은 로마제국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쇠퇴하기 시작한 시기로부터 오스만투르크에 의하여 동로마제국이 망한 시점까지 대략 1,300년 동안을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있었던 일련의 변화를 크게 3개의 시기로 구분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로마의 군주정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쇠퇴하기 시작하여 고트족에 의하여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기까지입니다. 두 번째 시기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동로마제국이 영광을 구가하던 시기로부터 이슬람세력의 발호로 제국의 위엄이 축소되어가다가 서기 800년 샤를마뉴의 프랑크왕국이 제국을 재건하기까지입니다. 세 번째 시기는 이로부터 오스만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까지를 말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1>에서는 서기 98년-180년까지 안토니우스 가의 황제들 시대의 로마제국의 범위와 군사력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여 4세기 초반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 퇴위 이후 혼돈에 빠진 제국을 추스르기까지와 그리스도교의 발전과 박해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대체적으로 혈족을 후계자로 세웠지만, 3대 이상 이어진 경우는 별로 없으며, 근위대의 무력에 기대어 제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근위대의 기대치에 따라서 황제가 바뀌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로마군의 특징은 속주 혹은 정복지에서도 차출되는 병력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출신성분이 비천하더라도 군생활을 통하여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 최고 지위에 오를 수 있었고, 군의 위세에 힘입어 황제위에 오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능력위주의 사회였던 모양입니다.


1권의 마지막 2개의 장을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신학적 입장이 아니라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에 대하여 포용적이었던 로마제국의 정책에 따라 급속하게 세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그리스도교가 박해를 받게 된 것은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신학적 해석이 힘을 얻으면서 로마의 상징인 신들을 경배하지 않았던 것도 원인의 하나였으며, 사후세계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 신학적 해석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적과 순교 등을 부풀려졌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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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향기 -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
게르하르트 J. 레켈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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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를 보면 커피에 얽힌 이야기임을 알겠는데,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라는 부제가 묘합니다. 커피에 관한 음모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싶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모년 베를린 전망탑에 커피제조업체 드라쿠스가 커피솝을 낸 지 몇 달이 지난 12월 16일에 독극물 중독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날 독일 내 몇 곳의 드라쿠스 커피숍에서 모두 250명이 같은 독극물에 중독되어 병원에 입원한 것입니다. 한 두명도 아니고 250명이면 대단한 사건인 셈인데, 전국적인 반응은 약한 듯합니다. 아마도 방송사 수습기자 아가테와 커피 로스터 브리오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목표로 한 집단 독극물 사건은 용의자를 압축하는 것이 수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사업자 브리오니가 경찰제보 만으로 용의선상에 오르는 등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시간 늦추기 협회’라는 정체불명의 단체를 통하여 커피박탈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그 효과를 통하여 의회의 정책결정에 개입하려는 거대한 음모를 그려냈다는 아이디어는 참신한 것 같습니다. 수습기자와 커피로스터라는 아마추어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합으로 사건을 추적해가는 것도 무리다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 로스터 브리오니를 통하여 커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배워가는 점은 커다란 수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도입부에 둔 1554년 모월 모일 콘스탄티노플의 어느 카페의 일상적인 모습이 생뚱맞아 보입니다. 무슬림과 유대인과 기독교인 등, 종교구분이 없어 빈부와 노소 구분이 없으며 단지 여자만 빠진 다양한 군상들이 모여 천국의 음료 커피를 즐기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사건의 진실보다는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목표인 방송사는 몇 명의 기자를 투입해서 일단 이야기 거리를 뒤쫓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희생자 이야기예요. 이 명단을 보고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봐요. 언제나 그렇듯 유명인이나 인기인, 악명 높은 사람일수록 좋습니다.(36쪽)” 방송의 속성이 그런가 봅니다.


사는 동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쳐들어간 카페에서 브리오니를 만나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보려는 아가테나 그런 그녀에게 끌려들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서는 브리오니나 과연 가능할까 싶습니다. 16일에 시작한 사건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마무리되는데 말입니다. 그것도 베를린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그리고 다시 독일의 함부르크로 숨차게 오가면서 말입니다. 물론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그래도 년말이라는 시점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쉽지 않은 설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커피 전문가 브리오니를 통하여 커피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합니다. 발자크의 커피송가도 그 중 하나입니다. “커피가 위장으로 미끄러지듯 흘러들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각이 대군의 대대처럼 몰려오고, 기억은 돌격 행보로 달려드누나. 논리의 포병대가 돌진해 오고, 재기발랄한 착상들이 명사수가 되어 총력전에 끼어들도다. 인문들이 살아 움직이고 종이는 잉크로 뒤덮인다. 전투는 시작되고, 검은 물결 속에서 끝난다. 현실의 전투가 시커먼 포연 속에서 막을 내리듯(145쪽)”


그런가 하면 크리스마스를 앞둔 빈 시내의 풍경을 그린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바람 때문에 추위가 더 심하게 느껴졌고, 눈이 올 것 같았다. 거리에 은색 별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전기 촛불로 장식한 전나무가 바람을 맞고 서 있고, 값비싼 장신구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선물을 사러 나온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 어떤 쇼윈도 앞으로 떠밀려 갔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상품이 아니었다. 거기에서 파는 것은 ‘기분’이었다. 돈을 내고 잠시 머물며 온기를 느끼는 곳(198쪽)” 작가는 빈에서 비친 오스만터키의 영향을 섬세하게 그리기도 합니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제국과 오스만제국은 발칸반도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관계였는데, 오히려 빈에는 오스만제국의 풍습이 많이 전해졌던가 봅니다. 슈테판성당의 지붕을 오스만식으로 장식할 정도로 말입니다.


커피는 인간의 정신에 강력한 촉매제이자 가속장치 구실을 한다는 것인데, 작가는 이를 토대로 유럽에 커피가 도입된 이후에 혁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는 이론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커피 향기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 가속과 변화와 급격한 발전(231쪽)”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피를 대대적으로 없애면 저항이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민 지원 예산을 축소하려는 음모가 꾸며진 것입니다. 음모는 성공을 하고 우리의 두 주인공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 튼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마무리가 또 묘합니다. 그래서 리뷰도 묘하게 끝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읽는 재미는 쏠쏠했던 것 같습니다.


흔히 커피를 마시면 신경을 흥분시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오히려 카페인이 혈액순환을 자극하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이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자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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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흡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5
리카르도 피글리아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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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신문기사나 글을 읽으면서 필자가 행간에 숨겨둔 의미를 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는 요즘 세대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그런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올 초에 다녀왔던 아르헨티나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가 더러운 전쟁기간 동안에 내놓은 소설 <인공호흡>입니다. 읽어가는 내내 이 책이 소설인지 아니면 아르헨티나 문학사에 관한 책인지 종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작가가 주인공인 작가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행간에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작품해설을 읽으면서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공호흡>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제1부는 프란스 할스의 그림 제목이기도 한 ‘내가 어둡고 움울한 겨울이라면’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제2부는 ‘데카르트’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제1부는 <현실의 지루함>이라는 소설을 통하여 삼촌 마르셀로 마기교수의 삶에 얽힌 비밀을 다룬 소설가 에밀리오 렌시가 외삼촌과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된 서간문형태의 이야기가 앞부분에 등장합니다. 19세기 애국자 엔리케 오소리오의 삶을 재구성하여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마기교수는 조카에게 역사에 대한 시야를 넓게 가지라는 조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렌시가 마기교수의 부탁으로 그의 장인 루시아노 오소리오 상원의원을 찾아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대화내용은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그 안에 담겨있는 법칙 같은 것입니다.


1부의 마지막 부분은 정보기관의 검열관으로 보이는 아로세나가 등장해서 가로챈 편지에 숨겨진 메시지를 추적합니다. 이 부분에서 바로 행간에 의미를 담는 글쓰기라는 옛 기억을 되살리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전혀 다른 맥락의 글이 섞여 들어오기도 하는데, 이 점에 관하여 당시 엄격했던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읽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제2부는 렌시가 외삼촌 마기교수를 찾아 콩코르디아를 찾아가지만 마기교수가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마기교수를 기다리면서 폴란드에서 망명온 타르뎁스키와 아르헨티나 문학의 전통과 잠재력에 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르헨티나 문학에 미친 유럽문학의 영향으로부터 아르헨티나의 독자적인 행보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관련해서 이해가 어려운 대목이 있었습니다. “미래의 소설을 쓰기 위해 나는 과거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고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현재(이러한 공백이자 미지의 땅) 또한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으리라.(116쪽)” 유토피아는 오직 시간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며 세상에 그런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소설의 제목과 관련하여 군부독재의 탄압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문학에 한줄기 숨을 불어넣으려는 의도로 읽었습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하여 이야기의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고 엉뚱해보이는 화제를 이끌어다 비유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돈키호테>의 위작에 관한 그루사크의 책으로부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단테의 <신곡>, 심지어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히틀러가 1909년 10월부터 1910년 9월까지 거의 1년 동안 빈에서 종적을 감추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강제징병을 기피하기 위해서 체코의 프라하로 숨어들었더라는 것입니다. 프러시아 군국주의의 옹호자이며, 군국주의 사회를 건설한 당사자가 사실은 병역기피자였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하지만 실제와 허구를 교묘하게 짜넣었다고 하니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문학과 현실/역사,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읽기’와 삶의 세계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제시하였다고 옮긴이는 정리합니다.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의 아르헨티나 사회의 특수성을 감안한 책읽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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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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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우의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치료; http://blog.joins.com/yang412/12549788>를 읽고서 독서를 통해서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객들에게 맞춤한 책을 골라주는 서점주인의 감정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 <종이약국; http://blog.joins.com/yang412/13794961>을 읽고 커다란 여운이 남기도 했습니다. 아마 그런 기억 때문에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를 골라들었던 것 같습니다. 표지그림이 꽤나 섬뜩한 느낌을 주는데도 말입니다.


카를로 프라베티의 소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는 제목과는 달리 알쏭달쏭한 책입니다. 20개로 나뉜 이야기들의 작은 제목들이 ‘정원이야, 숲이야?’, ‘늑대야, 개야?’, ‘서점이야, 약국이야?’라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읽다보면 정말 답이 모호해지기는 것은 이미 이분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면 경계가 분명하지 않거나, 혹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많이 만나게 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진 빈집털이범의 루크레시오가 경험한 황당사건을 통하여 이분법적 사고가 정답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책읽는 이도 덩달아서 혼란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비어있는 줄 알고 들어간 집에서 소년 같기도 하고 소녀 같기도 한 묘한 분위기의 대머리 칼비노를 만난 루크레시오는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에 할 수 없이 칼비노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칼비노는 단순한 루크레시오를 헷갈리게 만드는데....


도서관에 간다던 칼비노가 루크레시오를 안내한 곳은 정신병원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이 뭐야! 정신병원이야, 도서관이야?”라고 묻는 루크레시오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결론에 왜 집착하느냐고 되묻는 칼비노는 “꼭 이것 아니면 저것일 필요도 없고, 그것일 필요도 없어요.” 라고 하는데, 그 도서관장은 한 술 더 떠서 “한꺼번에 둘 다 될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을 수도 있으며 모두 틀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에 가기는 틀릴 것 같습니다. 수능시험에서 답을 고를 수가 없을 터이니 말입니다.


장면이 바뀌면서 도서관장 에멜리나는 루크레시오를 약국, 아니 서점으로 안내합니다. 이 서점을 찾는 사람들에게 노부인은 “아침에 열 쪽, 정오에 또 열 쪽, 그리고 자기 전에 스무 쪽”을 읽으라고 합니다. 책을 마치 역처럼 처방하는 것입니다. 이 서점을 찾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특정한 책의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게 나아진다고 합니다. 물론 책을 읽는 동안 일상에서 멀어지기도 하지만 책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새로운 질문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중에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좀 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에멜리나는 루크레시오를 영화관에도 데려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관이 아니라 하얀 스크린에다 각자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려서 이미지를 화면에서 정신적으로 실행하여 판타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관은 다 만들어진 완제품 영화를 제공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펼칠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영화는 더욱 말초적이라서 그저 보는 순간에만 흥분에 빠질 뿐 생각할 거리가 별로 없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장자의 호접몽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꾼 사람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헷갈렸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분법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읽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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