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프랑스 책방
마르크 레비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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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는 브로맨스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형제(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결합해서 만든 말인데, 남자들이 나누는 진한 우정을 말합니다. 때로는 로맨틱한 경지에까지 이르지만 동성애까지로 발전하기는 않는 관계를 말한다고 합니다. 남-남 케미라는 용어와 유사한 개념인데, 케미는 화학(chemistry)에서 유래된 말로 화학반응처럼 강한 감정교류가 있는 사람의 관계를 지칭합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런 친구를 몇쯤은 가지고 있을 듯합니다.


브로맨스를 설명하는 까닭은 <행복한 프랑스 책방>이 바로 그런 남-남 케미를 다룬 소설이라서입니다. 아니 남-남 케미를 중심으로 런던의 프랑스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사는 모습을 기르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네 시골마을처럼 말입니다. 남-남 케미의 주인공들은 이혼 후 각각 아들과 딸을 키우고 있는 홀아비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같은 점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자석에서 보는 것처럼 같으면 서로 튕기기 때문에 케미가 일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런던의 프랑스마을에 사는 건축가 앙투안은 파리의 서점에서 일하는 절친 마티아스를 런던으로 부릅니다. 은퇴하는 서점 주인에게 마티아스를 추천한 것입니다. 마침 런던에서 딸과 함께 살던 전아내가 파리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는데, 딸은 런던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도 이유가 된 것입니다. 앙투안의 전처 카린은 아들을 런던에 남겨둔 채 아프리카 다르푸르에서 인류애를 발휘하고 있다고 합니다.


치밀한 앙투안과는 달리 충동적이고 대충대충인 마티아스를 보면 두 사람 관계가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숱하게 연출되는데, 결국은 수습이 되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천생연분인 듯합니다. 앙투안이 꽁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기도 하구요. 전처와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티아스이면서도 새로 등장한 여성과 열애에 빠지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앙투안은 둔감한지 꽃집 여주인 소피의 사랑을 눈치 채지 못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일하고 있는, 혹은 살고 있는 뷰트 스트리트에서 레스토랑을 하는 이본, 꽃집을 하는 소피도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작가는 주변인물의 삶과 생각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그리고 있어 전체 이야기의 전개가 지나치게 두 사람으로 편중되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책방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다만 마티아스에게 운영을 맡기면서 그루버씨가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이곳을 당신에게 맡기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포피노씨. 처음에는 조금 적응하기 힘들 겁니다. 장소가 좁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이 서점의 영혼은 무척 거대합니다.(27쪽)” ‘서점의 영혼’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이 서점은 그루버씨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자신이 은퇴해도 문을 닫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업종이 바뀌는 요즈음의 가게들과는 다른 철학을 가진 서점 주인인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합니다. 할아버지가 터키의 이즈미르에서 하던 ‘프랑스 서점’이라는 간판을 런던의 서점에 단 것을 보면 마티아스는 터키계인 것 같습니다. 가업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뷰트스트리트에 사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열린 마음도 재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점을 마티아스에게 물려주는 그루버씨나, 갈 곳 없는 이주소녀 예나에게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본이나, 막막한 삶에 지쳐 차도로 뛰어들려는 그녀를 구하고 작은 도움을 주는 그루버씨, 그런가 하면 이본의 가게를 새롭게 꾸며주려는 앙투안과 건축사무소 주인 매캔지씨 등등... <행복한 프랑스 책방>에 등장하는 연인관계도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한눈에 반해서 끓어오르는 마티아스와 오드리의 관계가 있는가하면 이본을 해바라기 하는 매킨지소장, 앙투안을 향하는 소피의 은근한 사랑, 이본과 그루버씨의 오랜 사랑 등등... 다양한 사랑의 유형도 <행복한 프랑스 책방>에서 즐길 수 있는 재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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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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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치고 죽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진료현장에서 죽음을 만나면서 죽음에 관심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 경우는 병리학을 전공하고 주검을 마주하는 기회가 많았던 것도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공부를 하다 보니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해서는 모든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었습니다. 신경외과 수련의 과정을 마무리하던 서른여섯 살의 젊은 의사가 폐암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삶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숨결이 바람 될 때>입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저자가 말기 폐암의 진단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한 프롤로그와 암진단을 받기 이전까지의 삶을 정리한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 암환자가 되어 치료를 받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정리한 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 그리고 죽음 이후에 아내가 쓴 에필로그로 구성되었습니다. 각각의 과정에서 배울 점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어 [북소리]에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전공한 신경병리학도 3-4년의 병리학 수련과정을 거친 다음에 2년간의 펠로우십을 거치면서 별도의 수련을 쌓은 다음에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만, 미국의 신경외과 전문의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7년의 수련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아무래도 신경과학을 전공하는 일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의사라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예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폴 칼라티니는 조금 색다른 이유로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신경외과를 선택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부친과 삼촌 그리고 형까지도 모두 의사였지만,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탠포드에 진학한 저자는 영문학과 인간 생물학의 학위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진 저자는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답을 생각해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칼라티니가 말기 폐암을 확진받는데 6개월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신경외과 수련의과정의 마지막 해라서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점도 있겠습니다만, 미국의 의료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살짝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극심한 요통과 함께 체중이 빠르게 줄어 암 가능성이 높다고 본 저자는 1차 진료의사를 방문해서 ‘MRI를 찍어 확인해봐야겠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1차 진료의사는 ‘엑스레이부터 찍어봐야 할 것 같다’라고 대답합니다. 암을 진단하는데 엑스레이검사는 거의 효용가치가 없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요통을 진단하기 위해서 MRI검사를 하는 것은 우도할계(牛刀割鷄), 즉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이라고 본 것입니다. 요통의 원인을 밝히고자 MRI를 찍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MRI검사가 미국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진료비절감운동의 주대상이라고 합니다. 아마 우리나라 같으면 비급여대상인 MRI검사를 바로 시행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당시 1차 진료의 기본검사인 흉부 엑스선촬영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흉부 엑스선촬영을 했더라면 폐암을 진단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올 봄에 제가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허리와 폐의 엑스선검사를 시행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어떻든 엑스선검사결과는 괜찮아 보였고, 요통과 체중감소 증세도 가라앉았던 것이 칼라티니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로부터 몇 주 뒤에 가슴에 심한 통증이 다시 생겼고, 밤에 땀을 많이 흘리며, 체중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필자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이들 가족은 뉴욕 맨하탄 북쪽의 브롱크스빌에서 애리조나 주 킹맨으로 이사했습니다. 기독교신자인 아버지와 힌두교신자인 어머니는 인도 남부에서 뉴욕으로 사랑의 도피행을 했던 것인데, 자식들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어머니 입장에서는 사막도시로의 이주가 끔찍했을 것입니다. 스탠퍼드로 떠날 때는 절해고도로부터 탈출하는 기분이었다고는 하지만 킹맨의 자연은 성장기의 저자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의 키워주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얻은 커다란 울림은 그에게 작가의 길을 꿈꾸게 했을 것입니다. 대학시절 내 그는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고, 언어가 가지는 힘에 주목하여 영문학의 석사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학위논문 주제로 선택한 월터 휘트먼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휘트먼이 추구한 ‘생리적․영적 인간’의 존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법을 뒤쫓았습니다. 그 결과는 “의사만이 진정으로 ‘생리적․영적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 휘트먼의 말대로 의학을 공부하기로 한 것입니다.


의학의 도덕적 사명이 막중하다고 생각하여 진지한 자세로 수업에 임했던 그였지만, 해부학실습이 진행되면서 사체를 하나의 사물로 대상화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묘사한 해부학실습실의 풍경은 제가 해부학을 공부하던 시절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의미, 삶, 죽음 사이의 관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그는 그곳에서 강의하던 셔윈 눌랜드의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를 읽었고, 결국 죽음이란 직접 대면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특히 ‘가장 도전적으로 또한 가장 직접적으로 의미, 정체성, 죽음과 대면하게 해줄 것 같은 신경외과를 전공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신경외과 수련을 시작하면서 죽음의 무게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죽음과 맞서 싸우는 전사가 아닌 죽음의 전령사 역할에 머물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이 있고부터 환자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요즈음 제가 맡고 있는 암평가사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문가회의를 잇달아 열고 사례별로 인정여부를 결정하고 있는데, 환자거부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의사선생님들이 환자들에게 치료의 필요성을 설명하여 이해를 시키고 있습니다만, 환자의 선택권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시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반면 저는 그런 환자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도 담당의사의 몫이 아니겠느냐는 입장입니다.


그토록 민감한 사안에 대한 해답을 찾아낸 것도 이 책에서 덤으로 얻은 소득입니다. 그 부분을 인용합니다. “만약 내가 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과 예상되는 합병증을 무심하게 떠들어댄다면 그녀는 수술을 거부할 것이 뻔했다. 물론 나는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챠트에 환자가 수술을 거부했다고 기록하고, 내 일은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하며 다음 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115쪽)” 사실은 ‘하지만’ 이하가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압니다만, 저자가 어떻게 했는지는 이 책을 읽어 답을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쩌면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답을 이미 눈치 채셨을 것 같습니다. 신경외과의사로서 그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등을 포괄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폐암을 진단받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모교에서 교수를 제안받는 등 성공이 보장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폐암진단이 내려지면서 모든 것은 변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당장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가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치료를 맡은 종양학 전문의 에마 헤이워드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다양한 치료방법 중에서 외과의라는 그의 직업은 물론 복직의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최적의 치료를 추천하여 그의 동의를 얻어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세계적 수준의 종양학 전문의로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어 치료를 언제 진행하고 보류할 것인가를 잘 파악하고, 환자를 잘 배려하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저자의 흉부 엑스선사진의 소견으로 보아 선암종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역시 검사결과 PI3K변이가 있고, EGFR양성으로 비소세포성 폐암으로 진단된 것입니다. 표적치료제인 이레사나 타세바를 이용한 치료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예상되는 기대수명을 딱 잡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수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비쳤습니다. 치료 후 찍은 CT검사에서 종양이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그는 결국 수술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처음 꿈꾸었던 인생을 살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세상사는 생각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180쪽)”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폐암을 진단받기 이전의 업무로 복귀하는 것까지는 조금 너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수술하고 병실을 돌보고 밤10시에나 퇴근하는 강행군을 다시 시작하는 것 말입니다.


암진단을 받고 9개월째 수련과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가까워지면서 저자는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수백만 달러의 예산이 지원되는 연구소를 비롯한 높은 연봉 등의 조건으로 교수초빙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탠포드대학의 교수직을 놓친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 즉 암이 재발하거나 하면 아내가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위스콘신대학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폐암진단을 받기 전의 생활로 복귀하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암이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해왔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찾아내야 해요’라는 에마의 조언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임상의라면 새겨둘만한 내용입니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198쪽)”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치료가 마무리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운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수술실로 복귀한 7개월째 추적관찰을 위하여 찍은 CT사진에서 종양덩어리가 뚜렷하게 찍힌 것입니다. 표적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숨어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화학요법을 해야 했지만 부작용이 생기는 바람에 그마저도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의 수련과정은 인정을 받아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삶의 한 과정을 마무리한 셈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암진단을 받은 뒤에 시험관시술로 가졌던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죽음으로 향하는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울 수 있었고, 이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젠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칼라티니는 에필로그를 적지 못하였습니다. 딸 케이디가 태어난 8개월 후 죽음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에필로그는 그의 아내가 적었습니다. <바람이 숨결이 될 때>는 저자의 병세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마무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아내에게 재혼을 권하였지만, 아내는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인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별은 부부애의 중단이 아니라, 신혼여행처럼 그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결혼 생활을 잘 영위하여 이 과정도 충실하게 헤쳐 나가는 것이다.(262쪽)”라고 한 C.S. 루이스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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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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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대세가 되면서 한글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우려를 넘어 자칫 한글 체계가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카톡이나 트위터를 조금 하는 편입니다만, 자칫 오타를 낸 상태에서 보내고는 아차 싶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상대가 어려울수록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실수를 어쩌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가운데 젊은 여성작가가 한글을 제대로 사용하자는 책을 펴낸 것은 크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남성을 겨냥한 듯 ‘오빠를 위한’이라는 수식이 조금 튄다 싶지만, 모로 가면 어떻습니까? 젊은 오빠들이 자각하는 기회가 된다면 크게 문제 삼을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맞춤법은 참 어렵습니다. 저도 글을 적지 않게 쓰는 편입니다만, 대체로 글의 맞춤법 기능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빨간 줄이 나오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빨간 줄이 생기기 않아도 맞춤법이 잘못된 경우가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수의 책을 냈다고 하면서도 소설가 지망생이라고 자신을 낮춘 모습이 그렇습니다만,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전직 간호사라고 해서 일단은 반갑습니다. 글을 쓸 때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참고할 정도로 열성을 보이는 저자와는 달리 제 경우는 완전 편집인에게 떠맡기고 있는 형편없는 저자인 셈입니다.


저자는 흔히 헷갈리기 쉬운 맞춤법 용례 53가지를 모두 5가지의 범주로 구분해놓았습니다. 연애편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사용하더라도 여자를 꼬시려면 최소한의 맞춤법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만, 책을 읽다보면 출판사에서 기획하여 저자에게 집필을 의뢰한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여자들은 맞춤법 틀리는 남자를, 진짜, 정말, 진심으로 싫어한다고 밝혔습니다만, 남자들 역시 맞춤법 틀리는 여자를, 진짜, 정말, 진심으로 싫어하거든요.


시작은 ‘~라고 표기하기를 권하는 바입니다.’라고 점잖게 시작합니다만, 이내 부모님의 강요로 선을 보곤 한다는 둥, 남친을 꼬셔서 여관에 든 것까지도 그렇다고 쳐도 남은 OO을 다 써야 하지 않겠느냐는 둥, 젊은 여인네가 거론하기에 조금 거시기한 내용까지도 거침없이 다루고 있어 신세대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을 위하여 이 한 몸 희생한다는 갸륵한 뜻을 세웠던 모양입니다.


사실 저자도 잘못 알고 있어 뺨을 내리쳤다는 ‘얼만큼’은 저도 맞는 말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제 뺨을 내리쳐야 하겠습니다. 부사 끝음절의 ‘~이’와 ‘~히’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울 때 ‘~하다’를 붙여서 무난하면 ‘~히’를 사용한다고 배웠던 것 같은데, ‘깊숙이’, ‘수북이’, ‘끔찍이’가 맞는다고 하니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한글이 처음에는 띄어쓰기가 없었던 것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영어식 띄어쓰기를 적용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학교에서 배웠던 맞춤법이 시대에 따라서 여러 번 바뀌다 보니 옛날과 달라서 잘못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모름지기 글쓰는 사람이라면 맞춤법에 맞게 글을 쓰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새로운 맞춤법을 익히는 것에 소홀한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에필로그에 적은 저자의 자화자찬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맞춤법을 통달하겠다는 사명을 띠고 책을 펼쳤다. 어떤 페이지는 너무 재미있어서 미소를 띠었고, 어떤 페이지는 너무 야릇해서 홍조를 띨 수밖에 없었다. 변태적 성향을 띤 책이긴 하지만 맞춤범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191쪽)” 누군가의 서평을 인용한 것처럼 세 건의 홍보문을 작성한 저자의 재치가 빛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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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
스티븐 버트먼 지음, 김석희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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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발자취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고고학은 매우 흥미로운 학문분야라는 생각을 합니다. 옛사람들이 남겨 둔 삶의 흔적 혹은 표시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하여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학문분야가 세분화되고 있듯이 고고학 분야 역시 광범위한 영역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구상에 등장했던 모든 문명에 대하여 정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에서 다루고 있는 고고학은 선사시대로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중동과, 인도, 중국, 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고고학적 자료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버트만 교수가 서구문명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세 가지 흐름, 즉 이스라엘 문명, 그리스문명 그리고 로마문명을 전공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페인의 알타미라동굴의 선사시대 벽화에서 출발하여 이집트의 투탕카멘의 미라, 트로이와 크레타 등 지중해 일대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유적과 같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것들은 물론 덴마크와 영국 등 흔히 대하지 못하는 유적들까지 망라하여 26가지를 다루었습니다. 흔히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학문적이면서도 딱딱한 언어가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한때 이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들의 내력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깊은 동정을 느끼면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정직하게 서술하는 것이 고고학의 목적”이며, “유령들에게 신의를 지키고,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않은 유령들의 대변자로서 역할을 맡는 것이 고고학자의 의무”라고 말합니다.(20쪽) 그리고 ”여러분이 과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여러분 속에 잠들어 있는 인생무상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고, 눈부신 빛을 내면서 시간의 배경을 가로지른 희미한 모습들을 비록 잠시나마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것이 바로 이 책을 쓰는 목적이다“라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요즈음 읽고 있는 <로마제국 쇠망사>의 첫머리에서 로마제국의 터를 닦은 사람들 가운데 라티움에서 테베레 강을 건너 에트루리아에 정착한 에트루리아인들이 있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이 원래는 지금의 터키 중부에 있는 리디아에 살다가 기근이 들자 새로운 땅을 찾아 이주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설명에는 고고학적 설명이 있는데, 소아시아에 남아있는 고대 금석문 가운데 에트루리아어에서 발견되는 낱말과 어근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에트루리아 문명의 몇 가지 특징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혈액학적 증거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탈리아 중부의 혈액형분포가 이탈리아의 다른 지방과는 다르지만 터키 중부의 혈액형 분포와는 놀랄 만큼 비슷하다고 하는데, 어쩌면 이는 우연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천 년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종족들과 피가 섞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탈리아로 이주한 사람들은 북부에서 내려온 게르만계나 그리스에서 이주한 사람들과 함께 로마를 건설했으며, 지금의 터키 중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투르크계 사람들과 피가 섞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리노의 수의나 사해문서에 대한 해석을 일다보면 저자가 이스라엘문명을 전공한 까닭인지 기독교에 대하여 우호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즈텍, 마야 그리고 잉카문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유럽인들의 시각을 나타내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하얀 얼굴의 케찰코아틀이 다시 돌아온다는 전설 때문에 몬테주마의 아즈텍사람들이 코르테스에게 쉽게 무너졌다는 가설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전혀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본색을 알게 된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지만, 운명은 아즈텍 사람들 편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새로운 병력이 들어오고,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활용하여 협력을 얻어냈던 것이 주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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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2
김병모 지음 / 고래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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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두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고고학자 김병모교수는 여행의 즐거움으로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1.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현실로 눈 앞에 나타났을 때 느끼는 벅찬 감동, 2. 현지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과의 만남에서 받는 문화충격, 3. 원주민들의 음식을 맛보면서 느끼는 즐거움 등입니다. 아직은 현지의 원주민과의 만남에 무게를 둔 여행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크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2>는 한국 고대사에 감추어진 의문들과 한민족 구성 과정을 파헤친 30년의 여정을 담고 있는 시리즈의 두 번째 권으로, 남아시아 원주민들의 고인돌과 벼농사 문화와 한반도 남쪽의 한(韓) 문화와의 관계를 고고-인류학적으로 비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반부는 인더스문명, 유럽의 거석문화, 이탈리아 여행, 이집트 여행 등, 한반도와의 연관성이 다소 약해보이는 고고학적 여행에서 얻은 느낌을 적었다는 느낌입니다. 여행하는 물고기, 아마대국과 히미코, 그리고 중국의 고대문화 등 후반부는 한반도 남부에 정착한 사람들의 뿌리를 더듬어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신문 등을 통하여 가야국 시조 수로왕의 왕비 허황후가 어디에서 어떤 경로를 통하여 왔는지를 설명하는 글들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한반도 남쪽에서 발견되는 쌍어문이 분포하는 지역들을 찾는 여정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세운 가설이었던 것입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서기 48년 7월 27일 가락국에 도착한 붉은 돛배에서 내린 여인이 “저는 아유타국 공주입니다. 성은 허, 이름은 황옥, 나이는 16세입니다”라고 소개하였다고 합니다. 아유타국은 인도의 갠지스강 중류에 있는 아요디아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도에서 김해까지 과연 일엽편주에 의지해서 왔을까 하는 문제와 인도와는 분명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을 터인데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자가 추적해온 쌍어문의 분포를 보면 미얀마의 살윈강을 거슬러 중국 성도부근의 보주에 이르는데, 이곳이 바로 허황후의 뿌리가 닿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허황옥의 능비에 적힌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능’이라는 비문과 상통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인도, 미얀마 그리고 중국 등 쌍어문이 발견되는 곳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꿰어 연결하면 허황후 일행이 김해로 이주하게 되는 과정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집니다만, 허황후 일행이 김해로 향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수로왕은 왜 그녀를 받아들였는지 하는 부분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듯합니다. 하지만 김병모교수님의 거중을 통하여 중국의 보주와 김해시가 연결되어 왕래가 늘고 있으므로 서로의 자료를 연구하여 연관성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바입니다.


쌍어문이 발견되는 장소는 서쪽으로는 페르시아를 거쳐 가나안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일본의 규슈지역에서도 발견된다고 합니다. 쌍어문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오간 흔적이 남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있는 탓에 학문적으로 뒷받침되는 내용이라는 느낌이 다소 덜하다는 느낌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학문적 여정은 방송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일반에도 알려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배경에는 ‘머릿속에만 있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라는 저자의 철학이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연구 결과인 지식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야말로 연구의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방송매체 등을 통하여 자신의 앎을 널리 알리는데도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역시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는 것을 꼼꼼하게 정리할 필요를 다시금 느끼게 하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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