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씽크_오래된 생각의 귀환
스티븐 풀 지음, 김태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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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에도 다녀간 바 있는 닉 부이치치(Nick Vujicic)는 자신의 지체장애를 딛고 일어섰을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희망을 심어주는 설교사이자 동기부여 연설가입니다. 그는 유전질환인 해표지증(海豹肢症, phocomelia)이라고 하는 테트라-아멜리아 증후군(Tetra-amelia syndrome)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우리말로는 바다표범손발증이라고 하는 이 질환은 양쪽 팔 또는 다리가 없거나, 있어도 불완전한 선천성 기형입니다.


지금은 잊혀진, 해표지증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탈리도마이드 약화사고입니다. 1957년 독일의 제약사 그루넨탈(Grunenthal)이 개발한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는 뛰어난 진통, 진정효과를 보이는 반면 동물시험에서 많은 양을 써도 독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별다른 부작용도 없는 ‘기적의 약’이었습니다. 특히 임산부의 입덧에 잘 들어서 처방전 없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매 이듬해부터 해표지증을 가진 기형아출산이 늘었고, 1961년 11월 독일의 한 신문이 탈리도마이드가 기형아출산과 관련이 있다는 기사를 내면서 결국 시장에서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철수 전까지 이 약은 유럽과 아프리카, 일본을 포함해서 40여개 국가에서 사용되었고, 그 사이에 탈리도마이드 복용과 관련된 기형아 수는 10,0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탈리도마이드 관련 기형아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이 약이 FDA에서 승인받는 과정에서 켈시(Frances Oldham Kelsey) 심사관이 안전성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보완을 요구하는 바람에 시판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국민보건과 직결된 사안에서는 산업을 고려한 규제철폐보다는, 엄격한 심사기준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놀라운 점은 시장에서 퇴출된 탈리도마이드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964년 이스라엘의 한 대학병원에서 심한 피부통증을 호소하는 남성 한센병 환자에게 탈리도마이드를 처방하여 증상을 극적으로 개선한 바 있는데, 이를 계기로 탈리도마이드의 항염증치료효과가 재발견되었고, 한센병 환자의 합병증 치료제로 FDA의 허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탈리도마이드가 혈관생성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탈리도마이드로 인한 해표지증은 입덧이 심한 임신초기에 태아의 팔과 다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리도마이드의 혈관생성억제효과는 항암제개발로 이어졌고, 2006년에는 셀젠(Celgene)사에서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로 FDA의 허가를 얻었습니다. 저주받은 약, 탈리도마이드가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규제철폐가 능사가 아니라는 것과 용도폐기된 약품도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각광받는 신약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는 바로 두 번째 배울 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리씽크>를 소개합니다.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스티븐 풀은 ‘재발견의 시대’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제 때를 만난 아이디어’들을 다루었습니다. 이 아이디어들은 수백 년, 심지어는 수천 년 전에 태동한 것도 있는데, 누군가에 의하여 조명을 받기 전까지는 잊히거나 심지어는 조롱당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리씽크(rethink)의 의미’는 ‘1. 어떤 생각을 다시하다. 재고하다, 2. 생각하는 방식을 달리하다’입니다. 혁신을 이끄는 창의적 사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창의성은 종종 다른 영역에 속하는 기존 아이디어들을 통합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7쪽)’라는 저자의 생각은 ‘통섭’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부합합니다. 저자 역시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들어 “통섭의 천재‘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리씽크>에서 발견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헤겔철학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헤겔이 인간 사유의 산물 자체, 즉 ‘개념(Idee)’을 일종의 논리적 범주로서 스스로 운동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처럼, 저자 역시 “아이디어의 세계는 움직이는 표적과 같다. 아이디어가 상어처럼 살아 있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아이디어는 어떤 대상인 동시에 과정이다. 계속 재고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다(18쪽)”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3부로 된 이 책의 1부의 ‘명제’에서는 오래된 아이디어가 가진 잠재적 힘을 논하고, 2부 ‘반명제’에서는 모든 아이디어가 이전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물론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아이디어라고 해도 과거의 요소를 포함한다는 한계를 분명히 합니다. 3부 ‘예측’에서는 잊힌 아이디어 가운데 써먹을 만한 것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논합니다. 정반합(正反合)의 개념으로 정형화된 헤겔의 변증법을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물은 본질적으로 끊임 없는 변화 과정에 있는데, 변화의 원인이 내부적인 자기부정, 즉 모순에 있다는 변증법적 설명이야말로 저자의 아이디어에 부합한다고 본 것 같습니다.


제1부 ‘명제’를 읽다보면 ‘옛 것’이라고 하면 무조건 터부시 하는 우리사회의 의식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찍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말한 선현들의 심오함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옛것의 충격’이라는 제목으로 ‘명제’편을 시작한 저자는 2001년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이 기마대를 운용하게 된 뒷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위성전화와 레이저로 폭탄투하를 유도하는 현대전에서 기마대가 왜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전투현장을 떠올릴 수 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겨우 몸을 빼낸 미군이 19세기의 전쟁이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이론에 눈을 돌렸는데. 그의 <전쟁론>이 미완성이었기 때문에 이라크전쟁에 이르서야 ‘현지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옛 아이디어가 폐기된 것은 기술적 제한이 있었다거나 하는 등, 당시의 상황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키백과에서는 다윈이 <동물학(1796)>에 ‘모든 온혈 동물은 자신의 일부를 변형하는 힘을 갖고 있고, 이렇게 개량된 형질은 자손에게 이어진다’라고 기록했다고 적고, 라마르크는 <철학적 동물학(1809)에서 “동물들은 일생동안 자신의 필요에 의해 특정 형질을 발달시키며 이를 자손에게 물려준다”라고 적어 다윈의 학설을 이어받았다고 정리하였습니다. 하지만 <리씽크>의 저자는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다윈보다 앞선 것이라면서 라마르크의 불운을 안타까워합니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20세기 들어 발전한 유전학의 설명에 힘입어 진화의 핵심이론이 되었고,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용도폐기되었습니다.(위키백과, 용불용설 참조) 하지만 최근 유전자의 발현과정에 후천적 요인이 작용하여 유전될 수 있다는 후성유전학이 발전해감에 따라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힘을 얻게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빠진 조각을 제대로 찾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편견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 불운한 의사 제멜바이스의 사례도 있습니다. 19세기 말 비엔나 종합병원의 산부인과에서 근무하던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는 당시 치사율이 높던 산욕열의 원인을 발견하고 예방대책을 마련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세균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의대교육이 이루어지는 산과병동과 조산사교육만 이루어지는 산과병동 간에 산욕열의 발병비율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 제멜바이스는 산욕열로 사망한 산모의 부검을 마친 의사와 의대생들이 병동에서 산모를 진찰할 때 소독제로 손을 씻도록 하자 산욕열이 경이롭게 감소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제멜바이스는 이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지만, 기존의 산과학계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제멜바이스의 블랙박스는 세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부재였던 셈입니다. 문제해결을 위하여 블랙박스를 해체하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과거에 용도폐기된 기막힌 아이디어를 오늘에 되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리씽크가 그 길의 안내자입니다.


2부 ‘반명제’에서는 모든 아이디어가 이전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설파합니다. 16세기 후반 들어 수리천문학이 발전하고 새로운 과학적 도구들이 발명되면서 고전시대부터 전해온 명제들이 모두 옳다는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고대의 권위에 매몰되어 새로운 생각을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새로운 이론을 낸 사람조차도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1514~1564년)의 명저 <인체 구조에 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가 나오기 전까지 갈레노스의 해부학이 절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129년 9월 1일 ~ 199년?)가 해부학의 이론을 정리할 때만해도 인체해부는 금기사항이었기 때문에 동물해부를 통하여 얻은 지식이 전부였습니다. 유럽에서 인체해부가 가능해진 것은 12세기 들어서였고, 인체해부의 오랜 성과를 베살리우스가 집대성하여 갈레노스 해부학의 아성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유럽의 지성들이 고대의 권위에 기대는 분위기는 오래도록 이어졌습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하여 고전역학의 기반을 세우고, 미적분학의 발전에 기여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 가운데 1명으로 꼽히는 아이작 뉴턴조차도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업적에 겸양을 표시하였습니다. 여기서 거인은 그리스에까지 거슬러가는 선대 학자들을 의미합니다. 토마스 쿤과 함께 과학사회학의 토대를 마련한 로버트 머튼이 <거인의 어깨 위에서>서 밝힌 이 말의 근원은 1130년에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들과 같기 때문에 고대인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멀리 볼 수 있다.”라고 한 사르트르의 베르나르에 이른다고 합니다.


저자는 망원경, 컴퓨터처럼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등장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도 일반적으로 평가받는 것보다는 더 많은 과거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라고 한 발 물러납니다. 완전히 새로워 보이는 이론과 기술에도 뜻밖의 조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듯한 아이디어라도 궁극적인 진실성 여부가 여전히 확정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다시 동력을 얻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상식에서 어긋난다고 해도 상식을 뒤흔드는 것이 리씽크의 역할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음모론 역시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MMR백신이 자폐증을 초래한다거나, 아폴로 우주계획의 달착륙이 조작되었다거나, 심지어는 지구가 구형이 아니라 편평하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이미 증거들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멸되지 않는 음모론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린 아이디어도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아무 아이디어도 없는 것보다는 틀린 아이디어가 되돌아오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틀린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유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천동설을 뒤엎은 코페르니쿠스에 지동설에 반대한 티코 브라헤의 이론을 예로 들었습니다. 태양을 비롯하여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무너뜨린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이 나름의 천구를 따라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밖에 있는 천구에는 고정된 항성들이 있다고 생각한 오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초신성의 폭발을 관찰한 티코 브라헤는 코페르니쿠스에게 남아 있던 천구의 개념을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물론 지구와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과 항성이 공전한다는 주장이 오류였지만 말입니다.


3부 ‘예측’에서는 어떤 오래된 아이디어를 되살려서 바로 지금 세상을 개선할 수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분배정의와 선악의 판단 등을 논하면서 저자는 ‘오래된 생각이 되돌아오려면 사악한 역사를 한쪽으로 치워서 불가촉 지위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라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매사에 편견을 가지고 확신하지 말 것을 주문합니다. 이로써 지금은 숨겨져 있는 진실이 모습을 드러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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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 신은 혼자서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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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체험을 통하여 사후세계와 영적존재를 다룬 <갈림길>로 만났던 윌리엄 폴 영의 신작 <이브>를 읽었습니다. 전작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이번에는 천지창조와 아담과 이브의 탄생과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의 영성추구가 한층 진전을 보인 작품으로 보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릴리는 천지창조와 아담과 이브의 탄생의 증인으로 선택받았습니다.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앎이 거의 없는 제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천지창조가 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았던 것인데, 신이 천지와 아담, 이브를 만드는 과정을 증인이 지켜본다는 설정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증인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구체적인 설명이 없습니다만, 지구에서 온 듯한 릴리가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어쩌면 다중우주의 개념을 적용하고 있는 듯합니다. 또한 릴리가 도착한 곳의 과학 수준은 엄청 발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체의 이식은 물론 의식을 조절하고, 치명적인 장애도 쉽게 조절이 가능한 놀라운 세계입니다.


릴리의 역할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은 존에게 마더 이브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오늘 자신의 아이가 태어날 것임을 예고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에 사는 사람 모두가 마더 이브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도깨비에서 우리가 보았던 ‘삼신 할매’라는 여신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태어난다는 여자아이는 누군가의 몸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컨테이너에 실려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 망신창이의 상태의 10대의 소녀가 실낱같은 생명을 유지한 채 실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유전자 정보는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고 합니다.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일인 듯합니다. 존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돌봄으로 그녀는 차근차근 회복해갑니다. 그리고 세 사람의 방문을 받습니다. 고고학의 창시자 제럴드, 분류학과 철학의 창시자 사이먼, 그리고 영혼 심리학의 창시자 아니타입니다. 그러니까 동방박사에 해당하는 셈인가요? 이들 세명의 박사의 역할이 미묘합니다. 특히 사이먼의 경우 존을 비롯하여 릴리를 지키고 도와주는 사람들과는 다른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사이먼은 릴리가 태초의 증인이며, 모든 이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은 데까지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성경말씀과 같은데, <이브>에서는 두 사람이 같이 에덴동산을 떠나지 않습니다. 아담만이 떠나고 이브는 에덴에 남은 것입니다. 사이먼의 사주에 따라 릴리는 아담의 선택을 받아 역사를 바꾸려 시도합니다만, 아담은 릴리를 거부하고 자신의 마음은 여전히 이브에게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이먼은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은 뱀의 유혹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아담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릴리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마약중독인 모친의 강요로 몸을 팔다보니 몸이 망신창이가 된 것입니다. 그것도 대여섯 살에 그랬다니 이 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릴리는 아담과 이브의 관계를 되돌리는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치유함으로써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아담과 이브는 물론 릴리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이’의 사랑을 믿는데서 치유의 힘이 생기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상황이 정리되고 있습니다. 전체의 이야기가 릴리의 상상 혹은 다중성에 기인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릴리는 병원에 입원하여 1년이 넘도록 치료를 받아왔는데, 주치의 이블린은 릴리가 비극과 상실의 아픔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어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릴리를 도와주었던 존은 자원봉사자였구요. 창세기의 깊은 의미를 모르면 이야기의 가닥을 잡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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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 지음, 김호동 옮김 / 사계절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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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의 고전 중의 고전 <동방견문록>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년전에 다녀온 크로아티아 코르출라섬 출신이라고는 주장도 있지만, 코르출라 역시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을 때이니 베네치아출신이라는 주장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어떻든 17살이 되던 1271년 베네치아를 떠나 쿠빌라이황제가 지배하던 원나라의 수도 북경까지 여행하고 1292년 베네치아에 돌아왔습니다.(동방견문록 해설에는 1295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298년 제노아의 감옥에 갇혔을 때 피사 출신의 루스티켈로라는 사람을 만나 자신이 보고들은 것들을 구술하여 기록한 것이 <세계의 서술>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동방견문록>은 일본어판의 제목을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원본은 전하지 않고 있으며 사본만도 160여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소개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필사하여 유통되는 과정에서 첨삭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서는 모두 232개의 장에 걸친 이야기를 서편을 포함한 여덟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이라고 합니다. 해설부분을 옮겨 두겠습니다. “서편은 마르코 폴로가 어떠한 연유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어떤 사정으로 돌아와 책을 구술하게 되었는가 하는 배경적 설명이지만, 1편은 대․소 아르메니아와 투르크메니아에서 시작하여 이라크와 페르시아 지방을 포함하는 서아시아에 대한 기술이고, 2편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미르를 넘어 타림 분지를 경유하는 중앙아시아를 다루고 있다. 3편은 쿠빌라이의 수도인 상도와 대도의 모습과 대카안의 통치내용을 다루고, 4편에서는 마르코 폴로가 원조에 체류하면서 체험했던 중국의 북부와 사천․운남을 거쳐 버마에 이르는 지역을 설명하며, 5편은 당시 ‘만지’라고 불리던 남송의 영역, 즉 중국의 동남부를 포괄한다. 6편은 폴로 일가가 중국을 떠나 귀환하는 길에 보고들은 인도양 각지(대인도․소인도․․중인도)의 사정이고, 마지막으로 7편에서는 중앙아시아 대초원을 중심으로 러시아와 북극지방까지 설명하고 있다.(26쪽)”


책을 읽은 느낌을 몇 가지 정리해보면, 마르코 폴로가 실크로드를 경유하여 북경까지 갔다가 바닷길을 통하여 인도양을 지나 다시 페르시아를 지나 베네치아로 돌아온 것은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동방견문록>에 기록된 내용들이 정확한 것인가 하는 점에는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역 간의 방위나 거리 등은 그 곳에 오래 살지 않으면 쉽게 알기 어려운 것들이며, 일종의 박물지에 해당하는 수많은 숫자들은 본인의 기억이라기보다는 추정이거나 혹은 참고자료에서 인용한 것들일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혹은 여행하면서 얻어들은 이야기도 포함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청장년 시절이면 기억력이 가장 뛰어난 시기라고는 하지만 20년이 넘는 세월의 체험, 특히 숫자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할 듯 합니다.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까지 중국에서 살았던 마테오 리치의 경우 기억술을 연마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조너선 D. 스펜서 지음, 기억의 궁전; http://blog.joins.com/yang412/13778310). 그리고 보통의 여행기라면 집을 나서서 집에 돌아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보통인데, <동방견문록>의 경우 페르시아지방에서 이야기가 끝이 나고 있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가 종교, 쿠빌라이와의 관계, 도시의 규모, 동물 등을 중심으로 천편일률적인 점도 그렇습니다. 어느 지방을 가더라도 그곳 나름의 특징이 있기 마련입니다만, 여기에는 그런 것들을 별로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중국의 학자들은 ‘만리장성, 중국의 기술이나 관습 등에 대한 언급이 없거나 미흡한 점’ 등을 들어 누군가로부터 들은 것이거나 자신이 지어낸 것이라고 추정하거나 심지어는 그가 실제로 동방을 여행한 적이 없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이국적 풍물을 강조하거나 허풍을 부리는 듯한 느낌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방견문록>은 동방을 향한 유럽사람들의 막연한 호기심에 불을 당기는 효과가 컸다고 하니, 작가가 바라는 대로 이룬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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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박물관 - 역사의 상식을 뒤집는 발칙한 고고학 여행
라인하르트 하베크 지음, 김희상 옮김 / 갤리온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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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상식을 뒤집는 발칙한 고고학 여행’이라는 부제를 보지 않았더라면 추리소설로 알았을 책입니다. 하긴 세상에는 설명이 안되는 일이 널려있으니 이해하려들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겠습니다만, 고고학 분야에서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역사가 마네토는 역사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선사의 왕조가 2만 4925년(태양력기준)을 다스렸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수메르문명이 남긴 암석기록에는 천지창조에서 대홍수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왕들이 45만6천년을 다스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신성문자가 발명된 것은 기원전 3000년, 수메르 쐐기문자가 발명된 것은 기원전 2,200년이므로 그 이전의 기록은 구전으로 내려왔을 터이므로 신빙성이 의심되는 것은 당연한 일 같습니다. 천지창조의 순간 왕이 통치했다는 개념도 가능하지 않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공유물, 즉 사람들이 만들어낸 물건들이 의외의 시간대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미스터리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상식의 틀을 벗어나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분류조차되지 못하고 박물관의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설명이 가능한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런 유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전시된 적이 있다니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고고학의 미스터리 첫 번째 이야기는 1921년 카브웨에서 발견된 고인류화석입니다. 170-250만년전에 네안데르탈인에 앞서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에는 동그란 구멍이 나있는데 지름 5밀리미터의 깔끔한 원형의 구멍과 반대편에 커다란 구멍은 고속의 탄알에 의하여 생긴 것으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1908년에 텍사스의 글렌 로즈에서 발견된 화석에서는 공룡의 발자국과 나란히 사람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다고 합니다. 화석은 생성당시 존재했던 사물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1억년이 넘은 석판에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뼈조각이 들어가 있다거나 인간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해머가 들어가 있는 것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파르티아유적과 이집트유적에서 배터리의 원리를 적용한 항아리가 발견되었다거나, 그리스 안티카레라의 바다밑에서 발견된 상선에 실려있던 기계는 모두 70여개의 톱니바퀴로 구성되어 태양계 행성의 운동을 계산해낼 수 있는 일종의 계산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지난해에 다녀온 콜롬비아에 있는 황금박물관은 서기 5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황금부적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꼭 우주왕복선을 연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황금부적을 확대제작하여 날렸더니 멋들어지게 날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멕시코, 에콰도르 등의 박물관에는 마치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의 형상을 한 조각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쩌면 당시 사람들의 제의를 묘사한 것들이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우주인처럼 보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스카유적에 나오는 우주인처럼 말입니다.


제가 살던 곳이라서인지 미네소타의 켄싱턴에서 발견된 룬 석판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1898년 스웨덴이서 이주한 농부 올로프 오만이 발견한 석판에는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미대륙에 상륙한 바이킹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해서, 위조된 것으로 취급되고 있는 유물이라고 합니다. 룬 문자와 라틴어를 섞어서 쓴 룬 석판은 여전히 위조된 것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다는 의견을 저자는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의 유물을 현대적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바빌론 신전에 새긴 생명의 나무를 DNA이중나선구조로 해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과거를 아는 자만이 미래를 꿈꿀 수 있다’라는 속담을 인용하여 미스터리하다는 이유로 과거의 유물을 방치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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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12
아돌프 히틀러 지음, 이명성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전세계의 전쟁의 소용돌이이 빠트리고, 전쟁의 와정에 유대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돌프 히틀러가 남긴 대표작입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젊은 시절 프라하로 도피해서 살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어서였고, 평범한 독일 사람들의 왜 그에게 홀딱 넘어가고 말았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히틀러는 1924년 4월 1일 뮌헨 국민재판소에서 금고형을 선고받고 레히 강변에 있는 란츠베르크의 요새에 수감되었는데, 뮌헨폭동과 관련된 죄목이었다고 합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을 결성을 주도하면서 운동의 목표와 발전상을 정리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더불어 자신의 발전과정까지도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나의 투쟁>은 반민주주의적, 독재주의적, 반유대주의적 세계관을 피력하고, 동유럽에서 유대인을 추방하고 게르만민족만의 대제국을 건설한다는 구상을 담았는데, 당시 1천만권 이상이 팔려나간 나치의 성전(聖典)입니다. 그는 독일과의 국경이 가까운 오스트리아의 브라우나우에서 태어났는데, 오스트리아에 살고는 있었지만, 독일인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 화가의 꿈을 키웠던 그는 아버지의 반대로 실업학교에 진학하였지만, 아버지 사후에 미술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다음에 빈으로 가서 치른 미술대학 입학시험에서 회화과에 낙방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회화과에 입학했더라면 세계의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빈의 사정은 부와 빈곤이 혼재되어 있는 복잡한 양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시절 히틀러는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독서하는 법에 관한 내용을 기억할 만합니다. “독서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첫째로 독서는 각 개인의 소질과 능력을 끌어내고 그 인격 형성을 충싥히 하깅 nl해서 조력하느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독서는 각 사람이 자기 직업에 필요한 도구나 자재를 공급해야 한다. 둘째로 독서는 일반적인 세계상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나 독서는 그 책의 내용이 목차나 그 읽은 차례대로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모자이크 무늬로 된 돌과 같이 일반적 세계상을 그 위상에 맞게 하며, 그것이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형성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의 혼란만 불러일으킬 따름이다.(31쪽)”


최근에 읽은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에서 소개된 유대인의 세계지배 음모를 파헤친 <시온의정서>가 20세기 초 러시아황제의 비밀경찰이 만들어낸 위서라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고 하는데, 그 파장이 히틀러에게 깊게 각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십대 무렵 이미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하기 시작했다는 고백도 적었습니다. 곳곳에서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을 토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성장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이 강화되어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바이에른연대에 입대하여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지만, 패전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고, 특히 파리강화조약으로 오스트리아가 부담하게 된 막대한 전비가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군에서 선전(宣傳)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고, 독일노동자당을 결성하는데 앞장을 서게 되는데, 초기부터 연설자로서의 자질을 드러내었던 모양입니다. 즉 타고난 선동가였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위대성은 어느 정도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던 고대의 철학적 의견과 타협 및 교섭을 시도한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교위를 전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는 불굴의 열광에 있었던 것이다(208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기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의외의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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