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서 삶을 배우다 - 김종회 문화공감
김종회 지음 / 비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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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산문에 대하여 관심이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멀었습니다만, 산문을 읽다보니 글에 담긴 작가의 진솔한 생각을 조금씩 느끼게 되어서입니다. <글에서 삶을 배우다>는 문인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통찰하는 평론을 비롯하여 아동문학 연구, 사회비평, 북한문학과 해외동포문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한 글을 써온 경희대학교 국문과 김종희교수의 산문입니다. ‘문화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라는 제목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문화적 시각으로 세상사의 여러 절목을 검토하는 글쓰기는, 세월이 지나고 보니 궁극적으로 나 스스로의 정진을 추동하는 과정으로 작용했다. 나는 글에서 삶을 배웠다.(5-6쪽)”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두 60편의 산문을 6개의 주제에 따라 고루 나누어 엮었는데, 여기 실린 글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이미 공개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여섯 개의 주제의 성격을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첫 단락 ‘꽃보다 밝은 문필’은 이순의 연륜에 이르도록 문학과 더불어 살아오는 동안 그 문학의 길에서 만난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두 번째 단락 ‘문화와 인문학의 뜰’은 우리 시대 문화 및 문학의 현실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思惟)의 기록이다. 세 번째 단락 ‘우리 안의 깊은 지혜’는 직접 또는 간접 체험으로 겪고 느끼며 살아가는 여러 유형의 삶 속에서 새롭게, 또 감동적으로 발견하는 지혜로움에 관한 글이다. 네 번째 단락 ‘함께 나누는 손길로’는 동시대를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 무엇을 아끼고 무엇을 누나누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요 다짐이다. 이어서 다섯 번째 단락 ‘그대 나라 사랑함’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일원이자 이 나라 국민으로서 국적 있는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발양해나갈 것인가를 궁구(窮究)한 결과다. 글쓰기가 한 개인의 중심 사상을 피력하는 것이라면, 이와 같은 실천적 고백은 문필가 누구에게나 공여되는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여섯 번째 단락 ‘인식의 경계를 넘어’는 그야말로 오늘과 같은 국제화 시대, 또 디아스포라 활성의 시대에 말과 글 그리고 그것의 주체인 사람이 어떻게 확장된 의식의 안마당을 활보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논거했다.(6-7쪽)” 글쓴이의 설명이니 내용이 적확하게 정리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글을 읽다보면 산문쓰기의 여러 가지의 전형을 발견하게 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주제에 접근하는 돌직구 화법이 있는가 하면, 주제에 적당한 이야기를 고사나, 문학작품 등에서 끌어와 앞세운 다음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슬며시 대비시켜 효과를 극대화하는 등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주 인용하는 고사나 사자성어도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타산지석과 반면교사의 의미를 분명하게 정리할 기회가 되었으니, 역시 읽기는 무언가를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다른 사람의 사례를 따라 배우는 것이지만, 반면교사(反面敎師)는 저래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을 거꾸로 얻는 것이다(76쪽)”라고 설명하고 있더 언뜻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타인 혹은 사물의 부정적인 면에서 가르침이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의 반면교사는 1960년대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이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비슷한 의미의 타산지석은 ‘다른 사람의 결점이라도 내 자신을 수양하는데 도움이 된다’라는 의미로, 시경(詩經)의 소아편(小雅篇)에 나오는 학명(鶴鳴)의 타산지석 가이공옥(他山之石 可以攻玉), 즉 ‘다른 산에 있는 하찮은 돌이라도 내 옥돌을 가는데 쓸 수 있다’라는 의미로 두 사자성어는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의미라고 할 것 같습니다.


이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저자의 글은 다소 현학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나 고답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쓴 글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요즘 대세라 할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점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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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의 인생수업
장석주 지음 / 한빛비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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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음악으로 영화로만 기억되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만, 다시 새겨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조르바의 삶에 매혹된 장석주 시인께서 쓴 <조르바의 인생수업>을 읽게 된 것입니다. ‘나는 왜 이 책을 쓰는가?’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살다보면 어떻게 살지 막막한 순간이 온다’라고 서두를 뗀 시인은 그런 순간에 구원을 내미는 ‘운명의 책’이 있고, <그리스인 조르바>가 그런 책이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스무번도 넘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언제 처음 읽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린다면서도, 가난한 청춘시절 방황의 시간 속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만났다고 적었습니다.


<조르바의 인생수업>은 게으름을 피우느라 3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어록들을 분류하고, 시인의 생각들을 덧붙이고 하나하나에 제목을 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책은 격동하는 시대를 용맹하게 뚫고 나아간 조르바라는 인물의 어록을 통해 그의 경험과 지혜를 배우는 ‘인생수업’이다(31쪽)”라는 요약이 가능하게 만들어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을 단숨에 써내려갔더라면 설익은 생각들이 제각각 춤을 추는 꼴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책은 2부로 구성되었습니다. ‘조르바의 인생수업’이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시인의 기힉대로 조르바의 어록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정리하였고, ‘피의 여로(旅路),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생애와 문학’에서는 실존인물 조르바로부터 배운 삶의 지혜를 <그리스인 조르바>에 담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대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1부는 마치 원작소설을 대역(對譯)하듯 배치하였습니다. 짝수 쪽에는 원전의 어록을 담고, 홀수 쪽에는 시인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주제들이 뒤섞어 헷갈리게 될 것을 우려한 탓인지 매 주제마다 새로운 쪽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다보니 여백이 많은 편이지만, 그 여백에서 읽는 이도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란 젊을 동안은 아주 야수와 같은가 봐요(46쪽)’의 경우처럼 아주 짧은 문장을 인용한 경우도 있는데, 시인은 조르바의 생각에 공감하면서, ‘이들은 세상의 모든 악과 부조리에 반항하고, 낡은 도덕들을 갱신하려는 열정에 가득 차 있다’라고 추겨 세웁니다. 이어서 ‘이 세상은 수수께끼, 인간이란 야만스러운 짐승에 지나지 않아요(50쪽)’라는 구절을 인용한 시인은 ‘인간이 다른 어느 동물보다 병약하며 불안정하고, 변화하기 쉽고, 불확정적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간은 한마디로 고뇌하는 동물이다’라는 니체가 <도덕적 계보>에서 갈파한 인간의 정의를 인용하여 ‘사유하고, 고뇌하는 것’만이 인간이 제안의 야만성을 넘어서는 길이라고 합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생애를 설명하면서 그가 시인이 태어난 해에 ‘공교롭게’ 죽었다고 적은 것에 슬그머니 웃음이 일었습니다. 시인 자신이 카잔차키스와의 연결고리를 맺어보려는 노력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크레타 섬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다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10세기 무렵 아랍인들이 점유하던 크레타섬을 차지한 비잔티움은 살아남은 아랍인들을 크레타의 바르바리에 몰아넣었고 합니다. 카잔차키스의 선조는 이들로 이어지는 까닭에 강한 자부심, 고집스러움, 모짊, 검약함, 비사교성과 같은 아랍인의 기질이 녹아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레타의 자유를 빼앗아간 터키에 대한 증오를 키워갔다는 것은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카잔차키스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것은 바로 1917년 기오르고스 조르바라는 인물을 만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인 조르바>는 실존인물 조르바와 같이 했던 시간들을 통하여 맺어진 열매였습니다. 무려 사반세기가 지난 1943년 <그리스인 조르바>의 초고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조르바를 다시 기억하고 시인의 재해석을 통하여 ‘자유로운 삶’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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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민화로 떠나는 신화여행 - 인도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신화와 민화 이야기 인문여행 시리즈 2
하진희 지음 / 인문산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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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하는 짬짬이 민화를 그리는 대학 후배가 있습니다. “민화는 생활공간의 장식이나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그려진 실용적 성격을 갖는 그림을 말한다. 민화는 백성들이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염원, 신앙과 생활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마음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나타낸 전통 사회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다음 백과사전은 설명합니다. 그만큼 민화는 그 사회의 바탕이 되는 다양한 인식이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즘 인도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인도 사람들의 대부분이 힌두교를 믿고 있고, ‘11억 인도인들보다 더 많은 힌두교의 신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신교인 것입니다. 불교가 탄생하였고, 이슬람교가 세력을 떨쳤던 적도 있는 만큼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힌두교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만큼 인도에서는 다양한 신들에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 즉 신화가 전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민화로 떠나는 신화여행>에서 저자는 “인도신화 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거의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생과 죽음, 행복과 불행, 정의와 음모, 희생과 배신, 축복과 저주, 진실과 거짓, 평화와 전쟁, 성자와 악마 등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것을 그들은 신화를 통해서 알아간다고 느껴질 정도(9쪽)”라고 적었습니다.


저자는 인도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면서 인도 미술품 수집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20여 년 동안 수집한 소장품 중 150점의 인도민화 작품에 담긴 인도신화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모두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인도 동북부의 마두바니 부족과 서부의 왈리부족의 민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민화그리기를 배운다고 하니, 이들에게 민화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그림일기이자 세상을 보는 관점의 표현’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가 정리한 인도 신의 계보를 보면, 불의 신 아그니, 비의 신 인드라, 태양의 신 수리야 등 베다의 3신이 있는가 하면, 창조의 신 브라마(부인은 사라스바티), 보호의 신 비슈누(부인은 락슈미), 파괴의 신 시바(부인은 파르바티) 등 힌두의 3신이 있다고 합니다. 신들과 인간세상의 왕들, 또 그들이 신이 되는 등, 인도신의 계보는 앞서 말씀드린 대표신을 제외하고는 정리가 어려울 것만 같습니다.


인도 민화는 다양한 것 같습니다. 선이 굵으면서 채색이 화려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이슬람의 세밀화에 못지않을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낸 것도 있고, 사물의 형상을 단순화하여 반복적으로 배치한 단색화도 있는 것을 보면 부족집단 마다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앞서 우두머리 신들이 있다고는 했습니다만 신들이 워낙 많으니 그들 사이의 순위를 정할 필요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의외로 신들이 영역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분위기인 듯합니다. 물론 어디나 있듯이 다른 신의 영역을 넘보는 신도 없는 것은 아니나 종국에는 제 자리로 쫓겨나는 모양새입니다.


인도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만큼 산업화와 도시화가 일찍 일어났을 것 같은데, 의외로 도시보다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합니다. 그것은 인도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숭배하는 전통 때문인 듯합니다. 인도인들이 생명체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외딴 집에도 동물이 먹는 물그릇을 두고 늘 물이 떨어지지 않게 한다니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인도 민화에 많이 등장하는 마을풍경을 보면 동식물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인도 민화가 다양하다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저자는 민화의 성격에 따라서 1. 신들의 이야기, 2. 여신들의 이야기, 3. 자연신 이야기, 4. 자연예찬, 5. 신과 인간의 이야기, 6. 왈리 이야기, 7. 왈리의 옛날이야기 등으로 구분하여 신화를 설명하거나, 민화의 성격을 설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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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나의 개미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3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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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아온 아프리카가 독립 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식민지배자들이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부족이 낳은 불행한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아프리카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펼쳐놓은 지도에 자를 대고 선을 그어 나라의 경계를 삼아 독립을 시켰는데, 같은 부족들이 서로 다른 나라로 갈라지는 일도 허다했던 모양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안방과 건너방이 다른 나라에 속하는 경우는 없었을까요?


두 번째 비극은 독립투쟁을 이끌던 지도자들이 자연스럽게 신생독립국가의 수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투쟁의 전문가가 국정의 전문가로서는 자질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고, 권력의 달콤함에 젖다보니 독재와 사리사욕 채우기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나이지리아 작가 치누아 아체베의 <사바나의 개미 언덕>은 캉안이라는 가상의 신생 아프리카국가의 독재권력 치졸한 속살을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처녀작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1958)>를 비롯하여 <더 이상 평안은 없다(1960)>, <신의 화살(1964)> 등 ‘아프리카 3부작’을 비롯하여 <민중의 사람(1966)>, <경계하라, 동포여(1972)>에 이르기까지 식민지배를 받던 아프리카국가들이 겪은 갈등을 그려왔던 저자가 이 책을 통하여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가들 겪어낸 비민주적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캉안의 공보처장관 크리스입니다. 대통령 샘과 유력한 신문 <내셔널 가제트>의 편집장 이켐 등과 함께 국가장학생으로 뽑혀 영국유학을 같이 다녀온 오랜 친구들입니다. 의사가 되는 꿈을 가졌던 샘은 학교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군인이 되었는데, 유학 후 정치적 야욕에 따라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초반에는 크리스의 조언을 받아 내각을 구성하는 등 민주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듯했지만, 쿠데타세력들의 일반적 특성대로 민심의 향배에 민감하고, 그러한 민심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점차 노골화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샘, 크리스, 이켐 그리고 크리스의 연인 비어트리스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은 바뀌어도 이야기 자체의 흐름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읽어가다 보면 독재자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의 보아주기 힘든 행태가 가감 없이 그려지고 있으며, 힘을 쥔 자가 잠시 방심하면 최측근 가운데 누군가에 의하여 뒷통수를 맞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치밀하게 조심을 하면서도 한순간의 방심이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는 불행한 진실도 깨닫게 됩니다.


옮긴이는 작품해설에서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가의 문제점을 등장인물을 입을 통하여 설명한다고 적었습니다. 하나는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단지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만을 생각했기 때문(384쪽)”이라는 민중의 시각과, “우리 지도자들이 바로 국가라는 존재의 심장부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고통스럽게 떨고 있는 이 나라의 빈곤층이나 경제적 파탄자와 긴요한 연결 고리를 확고하게 재확립하지 못하는 것(241쪽)”이라는 사회 지도층의 시각입니다. 사실 이러한 지적은 우리의 사정과 비교해보아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권력은 입맛에 쓴 소리를 점점 멀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귀에 감기는 소리만 하는 인간들로 둘러싸여 스스로를 국민들로부터 왕따 시키는 짓을 자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지름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목의 사바나는 본래 아프리카의 수단 지방에 있는 열대 초원을 말하는데,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고 연평균 강수량 750mm 정도이나 곳에 따라서는 1,000mm 이상 혹은 500mm 이하인 곳도 있다고 합니다. 건기에는 초원이 메마르지만 우기에는 초목으로 가득차 다양한 식생을 자랑하는 곳인데, 사바나의 개미언덕을 황량한 초원을 지키는 존재로 묘사한 것이 맞는지는 더 공부를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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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죽음 -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가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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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의 기세가 드높습니다. 세계바둑의 일인자 커제가 전패할 수밖에 없는 수준으로 발전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국 자체가 흥행을 노린, 전문기사에게 불리한 조건에서 진행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일본 바둑의 경우는 이틀 동안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전문기사에게 생각할 시간을 많이 준다면 더 나은 대국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료계에도 알파고가 등장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진단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비용효과성을 따져야 하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체계에서 수용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대하여 다양한 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진단에 접근하는 것인 만큼 얼마나 다양한 검사를 할 수 있는가에 따라 진단의 정확도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꼭 필요한 만큼의 검사를 하고 정확한 진단에 도달할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의사들의 오진율에 관한 여러 가지 사례들이 있습니다. 일본 도쿄의대 내과의 오키나가 시게오교수의 경우는 17년 동안 14.3%였다고 합니다. 그 옛날에 어떻게 산출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만, 그 고백에 대하여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고 합니다. 일반 대중의 경우는 “최고 권위를 가진 의사의 오진율이 그렇게 높다니…”라고 놀랐고, 의사들은 “역시 명의는 명의로군!”이라면서 놀랐다고 합니다. 놀란 것은 매 한가지이나 이유가 달랐던 것입니다.

의사의 과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한 치의 잘못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쪽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참 괜찮은 죽음>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는 주목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25사례 가운데 뇌수술을 통하여 생명을 건진 사람도 있지만, 젊은 호기에 욕심을 부려 수술을 했다가 뇌사상태에 빠트린 환자의 사례도 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초연함과 연민 사이에서, 그리고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외과 의사의 시도와 실패에 대한 것이다. 뇌를 수술하는 외과 의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려고 내 실패담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이 책으로 의사와 환자가 만날 때 서로가 느끼는 인간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라고 서문을 마무리하였습니다만, 아무래도 그 실패가 내가 되었을 때는 생각이 달라질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시에게라면 기꺼이 내 머리를 맡기겠다”라는 인디펜던트지의 레일라 사나이 기자의 말처럼 영국의 독자들은 ‘이러한 인간적이고 솔직한 모습에 그를 더욱더 신뢰하게 된다.’라는 것이 현지분위기라고 합니다.(동아일보 2014년 4월 19일자 기사, “英 신경외과 名醫 마시의 ‘환자를 해하지 말지어다’” 의사가 진료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설령 그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도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잘못이 있었더라도 진솔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옮겨진 책의 제목은 <참 괜찮은 죽음>이지만 원제는 <Do No Harm>입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의사는 그의 환자를 해하지 말라는 의무조항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참 괜찮은 죽음’은 생뚱맞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의 내용도 그렇습니다만, 저자는 ‘내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들’이라는 제목으로 다른 신경외과 의사들을 상대로 강연을 할 만큼 자신에게 가혹한 편인 듯합니다. 혹은 그만큼의 자신감인가요? 치료가 잘 된 사례는 이내 잊혀지지만, 실수가 있었거나, 치명적인 결과가 남은 사례들은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모든 외과의사는 마음 한 구석에 공동묘지를 지니고 살게 된다(16쪽)”라는 프랑스 외과의사 르리슈의 말을 인용하였을 것입니다.


전문적인 내용임에도 책읽기는 비교적 수월합니다. 어쩌면 제가 용어나 개념에 익숙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적인 내용을 사실과는 무관하게 문학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떻든 일주일에 120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영국의 신경외과 의사의 살인적인 업무량에 우리나라의 젊은 의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도 주목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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