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기원 -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
데이비드 버코비치 지음, 박병철 옮김 / 책세상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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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간이 ‘나는 누구인가?’하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궁금해집니다. 40년전 미국 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뿌리>를 발표하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뿌리찾기에 눈을 뜨게 해준 바 있습니다. 헤일리는 일곱 세대를 거슬러 올라갔을 뿐인데도 한 권의 책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렇다면 ‘나’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우주의 시원에 이르게 된다면 도대체 몇 권의 책을 써내야 할까하는 궁금증이 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도서관을 하나 차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두꺼운 책을 누가 읽을까요? 우수한 젊은이들이 모인다는 예일대학의 학생들 역시 자세하고 두꺼운 나의 역사를 읽을 생각은 없었던가 봅니다. 다만 검증가능한 ‘커다란’ 가설을 통하여 과학을 배운다는 핑계로 나의 뿌리를 우주의 탄생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예일대학교 학부생의 뿌리찾기를 도와준 사람은 지구물리학을 전공하는 데이비드 버코비치교수였습니다. 한 학기에 걸쳐 진행된 세미나를 통하여 학부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고, 그 세미나의 내용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 <모든 것의 기원>입니다.


우주의 기원으로부터 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하루에 해당하는 24시간으로 압축한 영화로 만든다면 엔딩크레딧이 지나고 4/100초 만에 최초의 인간이 등장하고 (나의 역사는 눈깜박할 사이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1시간을 더 기다리면 최초의 동물이 등장하며, 지구와 태양계의 탄생은 다시 7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16시간을 더 기다려야 우주가 탄생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장구한 역사를 저자는 100쪽 남짓한 분량으로 요약했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말이 훨씬 서술적이었는지 우리말로 옮긴 이 책은 그 세배나 되는 296쪽이나 됩니다. 어쩌면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고 하면 될 구절을 “독자들은 치 책에 수록된 내용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대충 훑어본 경치’쯤으로 생각해주기 바란다”라고 장황하게 옮겨야 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한글세대를 위한 옮긴이의 심모원려 (深謀遠慮)일 것으로 생각한다.


우주의 탄생부터 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면 천체물리학으로부터 지구물리학, 생명공학, 생물학, 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문적 분야에 대한 심오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학문적 서술을 아주 쉽게 정말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저자의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읽다보니 의문이 생기는 부분도 있습니다. 빅뱅이론에 따라 계산된 우주의 나이가 약 140년이고 태양계의 나이는 50억년이라고 했습니다. 태양의 수명은 100억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핵융합의 원료가 되는 수소가 소진되고 나면 대책 없이 부풀어가는 적색왜성이 되면서 수성, 금성, 지구까지 집어삼켰다가 다시 수축되어 원래 크기의 100분의 1로 줄어드는 백색왜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왜성으로 쪼그라들지 않는 거성의 경우에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초신성이 되는데 이때는 살아생전에 만들어낸 무거운 원소들을 은하 전체에 뿌림으로써 차세대 별과 행성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40년 밖에 되지 않는 우주의 역사 가운데 초신성의 폭발이 언제 일어났고 그 잔해들을 모아 지금의 태양과 지구와 같은 별과 행성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지구물리학을 전공한 저자이다 보니 이 분야에 대한 설명에 조금 더 신경을 쓴 티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습니다. 의학을 전공한 저의 눈에 띄는 대목은 인류의 오늘이 있게 된 결정적인 선택은 직립보행이었고, 인류로 진화한 다음에는 불을 사용한 것과 의학을 발전시킨 것이 결정적 선택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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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독서 - 2016년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대상 수상작
잔홍즈 지음, 오하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여행에 흥미로운 책을 읽었습니다. 타이완의 3대 인터넷 포털 사이트 가운데 하나인 PChome Online의 잔홍즈대표이사가 쓴 <여행과 독서>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의 아들이 서문을 썼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건넨 원고를 다 읽은 아들은 ‘어디서부터 말하면 좋을까?’하는 막막한 느낌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글은 그의 인생의 즐거움, 여행과 독서에 관한 이야기였다. 때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때론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때론 여행을 통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여행에 대한 기록이므로, 지면의 대부분이 여행 중 먹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7쪽)” 하긴 요즈음 젊은이들은 여행을 가서도 볼거리보다는 먹을거리를 찾는데 더 열심이라고 합니다만,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자는 앞서가는 세대임이 분명합니다.


음식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과 독서>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어쩌면 아들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의 곁엔 언제나 독서가 있었다. ‘여행과 독서’런 마치 한쌍의 콤비 같은 것이다. ‘여행’이라는 녀석과 ‘독서’라는 녀석은 언제나 꼭 붙어 다닌다. 그 둘과 함께라면 아주아주 먼 곳까지도 갈 수 있다. 그래서 그 두의 온갖 기억이 한데 뭉치고, 수많은 자료는 조각조작 남는다. 좀 더 많이 기억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면 적어 두고 기록을 남기자(13-14쪽)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자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행과 독서는 상당히 미묘한 관계다. 독서는 여행을 떠나기 아주 오래 전 시작된다. 심지어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이미 시작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나는 종종 책에서 읽은 글귀가 그곳으로 떠나는 동기로 이어지는 경험을 한다. 특히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목적지로 떠나는 경우는 대개 역시 유명하지 않은 책 속에서 알게 된 경우가 많다. (…) 그렇다. 독서는 여행의 시작이다. 심지어 책을 통해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상상의 여행이란 각종 서적을 참고해 여행 계획을 세울 때를 말한다.(40쪽) (…) 독서는 여행이 끝났다고 해서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행이 끝난 후에야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책을 읽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의식하지 않아도 그 장소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증가해 저절로 관련 서적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직접 가 본 것을 계기로 <어린 왕자>속 여우가 말한 ‘길들여진 관계’가 되어, 어쩐지 친밀함이 생기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여행지에 관한 독서는 여행을 끝마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행지에 관해 여행 전에 읽는 것은 ‘상상’에 지나지 않고 여행하면서 읽는 것은 ‘새발에 피’라고 할 수 있다. 오로지 여행을 끝마친 후, 혹은 같은 곳을 여러 번 다녀왔다 하더라도 그 후에 관련 서적을 읽는 것이야말로 그 여행지에 대한 진짜 이해가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63쪽)”


<여행과 독서>에서 저자는 스위스, 인도, 보츠와나, 발리, 알래스카, 교토, 동일본, 도쿄, 그리고 터키 등을 누비면서 식도락을 즐긴 이야기들을 아주 상세하게 풀어놓습니다. 스위스에서 여행가이드북을 믿었다가 생고생한 이야기와 요리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인도엘 갔다가 바가지를 쓰고 양탄자를 샀던 이야기와 음식평론가인줄 착각한 호텔매니저 덕분에 인도 고유의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상세하게 볼 수 있었던 이야기 등을 늘어놓습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저처럼 여행사의 상품으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뒤져서 현지 여행사와 접촉을 하고 스스로 여행일정을 짜는 자유여행을 즐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유행이라는 혼행(혼자하는 여행)이 아니라 아내 혹은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을 주로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행사의 상품여행이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든 모두 나름대로의 특장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선택을 하면 되는 일입니다.


저자가 여행 중에 들고 가는 책들 가운데는 여행안내서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맛집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들도 꽤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행과 독서>라는 거창한 제목이 참 적절하지 않구나 싶습니다. 그밖에도 몇권 문학작품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들도 있어 기회가 되면 읽어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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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문학기행 - 러시아 문학의 뿌리, 시베리아를 가다
이정식 지음 / 서울문화사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대만작가 잔홍즈는 ‘독서는 여행의 시작이다’라고 했습니다. 책에서 읽은 글귀가 그곳으로 떠나는 동기가 되는 경험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만, 여행지와 관련된 책을 읽고 여행지에 대한 추억과 그 책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합니다.


아시아대륙의 북쪽 끝을 차지하고 있는 시베리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아마도 영화 <닥터 지바고>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젠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눈 덮인 시베리아를 가로지르고 싶기도 합니다. <시베리아 문학기행>은 그 여행에서 챙겨가기에 안성 맞춤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정식 작가에게 시베리아는 특별한 곳이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푸시킨, 도스토엡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작가적 상상력을 풀어낸 그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베리아가 우리 민족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장소였다는 사실도 찾아낸 것입니다.


여러 차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고 춥고 황량한 동토를 여행하면서 러시아 대문호들이 영감을 얻은 사건들을 되짚고 그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따져보기에 이르렀습니다. 더하여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 춘원 이광수의 소설 <유정>이 탄생한 배경도 뒤쫓고 있습니다.


시베리아가 러시아문학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된 사건의 시점은 1825년 12월 1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원로원광장에서 열린 니콜라이1세의 대관식에서 벌어진 혁명이었습니다. 차르체제를 전복하고 농노제도를 철폐함으로써 새로운 러시아를 건설하자는 취지로 모인 러시아의 귀족과 청년 장교들이 혁명을 일으켰지만 당인 진압되어 불발된 혁명입니다. 이들을 ‘12월 당원’으로 표현되는 데카브리스트라고 하는데, 12월의 러시아어 데카브리에서 온 것으로 ‘12월에 혁명을 한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데카브리스트들은 사형을 당하거나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강제노역을 하게 되었던 것인데,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 가운데 일부가 어렵게 나라의 허락을 얻어 유형지로 달려가 귀족으로서의 특권까지 버려가며 남편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러시아의 대문호들은 데카브리스트들을 둘러싼 사연에서 영감을 얻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써냈던 것입니다.


이런 사연이 깃든 시베리아에 관심을 둔 사람들을 위하여 작가는 먼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호수까지 가는 여정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고종황제의 특명을 받은 전권공사 민영환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이어서 시베리아의 전설이 된 데카브리스트 11명의 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들이 살던 집을 직접 방문하여 대문호들에게 영감을 준 시베리아 유배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전합니다. 그리고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체호프 등 러시아의 대문호들의 작품에 얽힌 사연들을 정리해냈습니다.


푸시킨의 경우 데카브리스트인 친구가 많았던가 봅니다. 그들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시를 지어 위로했다고 합니다. 외가쪽에 데카브리스트가 있던 톨스토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고, 데카브리스트들이 유배형을 마치고 귀환할 무렵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삶을 추적하여 작품에 녹여냈던 것입니다. 그 대표작이 <전쟁과 평화>입니다.

의사이자 작가였던 체호프는 악에 대한 무저항, 비폭력성을 추구한 톨스토이주의자였습니다. 그런 그 였지만,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데카브리스트의 유형지였던 사할린을 여행하고 돌아와서는 무저항주의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부분은 춘원 이광수의 시베리아행의 족적을 뒤쫓아 소설 <유정>이 탄생한 배경을 설명합니다. 춘원의 시베리아행은 독립운동과 연관이 있습니다만, 미국행이 좌절되면서 국내로 돌아와서는 동지들과 함께 투옥된 다음에 노선을 달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문학에 눈을 뜨는 기회가 되었고, 기회가 되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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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세계 - 두뇌 속 저장장치의 비밀 한림 SA: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3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엮음, 홍경탁 옮김 / 한림출판사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지구라는 행성에 수많은 생명체가 명멸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만, 덩치도 작고 힘도 변변치 못한 인간이 우세종으로 자리 잡게 된 데는 놀라운 학습능력이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습능력은 기억이라는 대뇌의 기능이 뒷받침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일 수있게 한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문제는 많이 연구가 되었지만, 풀어야할 것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과제입니다. 저 역시 기억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아 읽게 되었습니다.


<기억의 세계>는 미국의 대중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서 기억을 주제로 다룬 칼럼을 정선한 것들입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1845년 시작하여 17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할 뿐 아니라 에디슨과 아인슈타인 등 유명한 과학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하여 명망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억의 세계>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직도 알아내야 할 것이 많은 ‘기억’을 연구하는 29명의 전문가들이 쓴 칼럼을 7개의 장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기억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제1부은 기억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을 다루었습니다. 무언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비롯하여, 기억의 좋은 점과 나쁜 점, 기억에 대하여 잘 못 알려진 사실 등을 다루었습니다. 제2부 ‘기억의 해부’에서는 기억이 저장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보고 들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은 기억이라는 선물과 망각이라는 축복을 인간에게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망각 가운데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포함됩니다.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도 설명될 수 있습니다.


제3부 ‘학습과 기억’에서는 보고 들은 것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특히 수면이 장기기억의 형성에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제4부에서는 기억상실, 최면, 데자뷰와 같은 기억의 기이한 면을 다루었습니다. 제5부 ‘트라우마’에서는 나쁜 기억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즉 기억을 지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라고 하겠습니다.


제6부 ‘노화’에서는 나이듦에 따라 기억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를 다루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변하게 되는데, 기억력이 감퇴되는 것도 나이듦의 생리적 현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문제는 기억력이 병적으로 감퇴되는 경우인데, 치매가 대표적 질환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기억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나아가 치매를 치료하는 길이 열릴 수도 있겠습니다. 제7부 ‘기억력 향상’에서 바로 이런 노력을 소개하였습니다.


기억은 경험을 코드화하고, 그것을 저장하며, 필요할 때 저장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3개의 단계로 구성됩니다. 각각의 단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많이 밝혀졌습니다. 해마가 기억의 출발점이며 경험을 코드화하는 과정은 신경세포들간에 전기신호가 전달되면서 만들어지고, 저장과정은 분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경세포의 유전자게 관련 정보가 담겨 저장되었다가 기억을 끄집어내야 할 때는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단백질을 만들어내서 신경세포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향상시키는데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저장되는지가 더 흥미롭습니다. 기억의 생성과 저장, 그리고 인출에 관하여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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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산 형사 베니 시리즈 1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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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릴러물은 자칫 스포일러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독후감을 정리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줄거리를 끌어오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악마의 산>은 남아프리카 출신 작가 디온 메이어의 베니형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미 읽은 <13시간>과 함께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는데, 읽는 순서가 거꾸로 되었습니다. 아직 소개되지 않은 <세븐 데이즈> 등과 함께 형사 베니 시리즈 4권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시리즈물이기는 해도 각권이 개별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읽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주인공 베니형사의 신변에 관한 이야기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보니 베니형사의 신상문제가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케이프타운의 강력계 형사 베니 그리셜경위는 중독수준의 주정뱅인데다가 급기야 술김에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바람에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래도 아내에게 일말의 사랑이 남아있었던지 ‘6개월 안에 술을 끊지 않으면 이혼’이라는 말미를 얻었습니다. 술주정뱅이이지만 사건 하나는 깔끔하게 처리하기 때문에 강력사건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그가 마흔 넘도록 경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종료된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차별의 결과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강간, 마약, 납치, 인신매매 등 온갖 범죄의 전시장이 되고 만 남아공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스릴러물이니 형사 이외에도 범인이 또 다른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 토벨라 역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가 만들어낸 비틀어진 인물상입니다. 반(反)아파르트헤이트의 투쟁 요원으로 활동하던 토벨라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이후에는 범죄의 세계에 잠시 몸을 들였다가 은퇴한 상태입니다. 첫사랑이 남긴 아들을 입양할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던 중에 고작 주유소를 털던 잡범이 쏜 총에 아들이 눈앞에서 죽는 참변을 당합니다. 문제는 그 범인이 풀려나 행적이 묘연해졌다는 것입니다. 토벨라는 범인을 추적하는 한편, 아동 대상 범죄자들을 줄루족의 전통 무기 아세가이로 살해하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두 명이면 집중하기는 쉬우나 자칫 이야기가 단촐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을 보조할 주인공급 등장인물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투톱이니 포톱이니 하는 것 같습니다. <악마의 산>에서는 두 명의 주인공급 인물이 등장합니다. 고급 콜걸 크리스틴과 그녀에게 집착하는 콜롬비아에서 온 마약상 카를로스가 있습니다. <13시간>에서도 그렇습니다만, <악마의 산>에서도 이야기는 베니 그리셜, 토벨라, 크리스틴 등 세 사람의 삶이 따로 시작되지만, 이야기가 정점으로 치닫는 순간 하나로 만나 엮이게 됩니다. 즉 카를로스가 크리스틴의 딸을 납치하고, 이 사건을 아동대상 범죄자를 처단하는 범인을 체포하기 위한 미끼로 사용하는 작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베니 그리셜이 술에 빠진 사연은 강력계 형사라는 직업이 주는 중압감 때문입니다. 사건 현장에 들어가면 쓰러져있는 희생자가 죽어가면서 질렀을 비명소리를 듣게 되는데, 비명소리가 머릿속에 붙박인 것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부검의로 일할 때는 부검이 끝난 뒤에는 코끝에 배여 있는 피남새를 지운다는 핑계로 술을 마시곤 했던 적이 있습니다. 모두가 술을 마시기 위하여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과정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짜임새 있게 전개됩니다. 물론 반전에 반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덤으로 알게 되는 것도 수확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동 강간 사건의 40퍼센트는 아동과 성관계를 맺으면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다는 미신이 퍼져있다는 것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세계 마약상들이 몰려드는 곳이라는 것도,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찰이 범죄조직과 결탁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덤은 <악마의 산>은 케이프타운의 뒷배경이 되는 테이블마운틴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서쪽으로 올라선 봉우리이며, 다음 작품 <13시간>에 등장하는 시그널 힐과 함께 케이프타운의 좌청룡 우백호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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