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연구 6 (반양장) - 아놀드 토인비 59클래식Book
아놀드 조셉 토인비 지음, D.C.서머벨 엮음, 김규태.조종상 옮김 / 더스타일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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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6>에서는 ‘문명의 해체’와 관련하여 ‘영혼의 분열’과 ‘해체기 사회와 개인의 관계’을 논한 전편에 이어 ‘해체의 리듬’과 ‘해체의 리듬’에 대하여 논하고 이어서, ‘세계국가’에 대하여 ‘목적과 수단’, ‘불멸의 환영’, ‘누구를 위하여’에 대하여 논한 다음, ‘세계교회와 문명의 관계에 대한 견해’를 논하였습니다.

 

저자는 해체의 리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면서 ‘쇠퇴에는 쇠퇴에 따른 리듬이 시작되므로 새로운 응전은 도전을 극복하지 못한다’라고 전제하면서도, 도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도전을 극복하려는 노력 또한 계속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노력이 성공하면 다시 성장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해체기 사회는 하나같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세 계급으로 분열하고, 그 세 계급 모두가 제각기 창조적 사업을 성취하는데, 지배적 소수자들은 철학을 창시하고 세계국가를 세우고, 내부 프롤레타리아는 하나 같이 세계교회에 스스로를 구현되기 위해 고등종교를 발견하며, 외부 프롤레타리아는 하나 같이 전투단체를 결성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논리는 로마제국이 멸망과정에서 찾아낸 요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들을 다른 제국 혹은 문명의 멸망과정에서도 유사한 요소가 있다는 주장이나 과연 그러한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로마제국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이슬람왕국에서는 이슬람교가, 중국에서는 대승불교가 각각 세속적인 자기목적 달성을 위해 제국건설자들이 만든 주둔 부대와 식민지를 이용했다.(109쪽)고 정리했는데, 로마제국의 경우 제국의 전성기를 지나서 그리스도교가 은밀하게 전파된 것은 맞지만, 이슬람교의 경우는 왕국건설의 이념으로 출발한 차이가 있다고 보겠습니다. 중국의 경우 왕조가 이어졌고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해들어왔기 때문에 부대와 식민지를 이용했다는 설명이 타당할까 싶습니다.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논지가 산만해지면서 주제 또한 분명치 않아지는 경향이 느껴집니다. 세계국가편에 들어가면 ‘목적과 수단’, ‘불멸의 환영’편은 분량이 짧은 탓인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조차 쉽게 정리되지 않는 듯합니다. ‘누구를 위하여’에서도 ‘세계국가의 전파’와 ‘평화의 심리학’ 역시 비슷한 경향을 이어가는데, ‘제국의 여러 가지 유용성’에서 논하는 교통수단, 주둔부대와 식민지, 지방 제도, 수도, 공용 언어와 공용문자, 법률제도, 역법과 도량형 그리고 화폐, 상비군, 관료제도, 시민권 등 제국의 형성과 유지에 필요한 요소들의 변화가 잘 정리되고 있기는 합니다.

문명의 해체기에서 세계교회의 역할에 대하여 프레이저가 <황금가지>에서 종교가 국가 쇠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진단하였다면서 이는 잘못된 관점이라고 비판한 저자는 사회적 의무감을 파괴하기보다 오히려 증폭하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문명은 오히려 종교를 연결고리로 하여 이전의 세대와 동화될 수 있었다는 견해입니다. 그리하여 ‘문명의 흥망과 사멸은 종교를 전파할 목적으로 일으킨 바퀴의 혁명에 비교할 수 있다(270쪽)’라고 정리합니다.

그리하여 현대사회에 들어 종교가 쇠퇴하고 있는 것은 현대과학과 종교의 충돌이 야기한 결과라는 진단입니다. 과거 철학의 일부였던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서구기독교의 이념과 충돌을 빚어내고 사람들의 관념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므로 ‘종교는 과학이 이름붙일 수 있는 모든 지식 영역에서 물러나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종교와 과학은 서로 다른 진실에 관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스페인의 카탈루냐와 이라크의 쿠르드, 영국의 스코틀랜드 등이 독립을 위한 구체적 운동에 들어가는 등, 최근 지구촌에서는 국가가 분화되어가는 경향이 가속화되는 듯합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하여 ‘인간은 본래 극기 작은 사회에 알맞도록 만들어진 존재다.’라는 전제아래 열린사회와 모든 문명에 의하여 예시되는 닫힌 사회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고, 정신적 비약을 하지 않으면 그 간격을 극복할 수 없다고 한 견해를 인용하여, 저자는 ‘신의 개입 없이 인류의 통일은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굳이 인류가 통일을 이루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작은 사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평화롭게 지낼 수는 없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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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 5 (반양장) - 아놀드 토인비 59클래식Book
아놀드 조셉 토인비 지음, D.C.서머벨 엮음, 김규태.조종상 옮김 / 더스타일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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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5>에서는 ‘문명의 해체’와 관련하여 ‘해체의 성질’과 ‘사회체 분열’을 논한 전편에 이어 ‘영혼의 분열’과 ‘해체기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명의 해체기에 등장하는 종교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혼의 분열’에서는 사회가 분열하기 시작할 때 구성원들은 다양한 감정과 행동,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데 저자는 두 가지 양식을 두고 양자택일적 양상, 즉 두 피동적집단과 능동적집단으로 나뉜다고 보았습니다. 피동적 방종과 능동적 자제, 피동적 표류의식과 능동적 죄의식 등 대립되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삶의 방식은 외부세계에서 저변에 깔린 내면세계로 이동하는 움직임에 두 쌍의 양자택일적 반응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는 복고주의와 미래주의이며, 두 번째는 초월과 변모라고 보았습니다.

첫 단락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사회는 행동하는 각 인간이 활동하는 분야의 공통된 기반이다. 이 사회의 표면에 분열이 나타나면 그 밑바닥에는 반드시 인간 영혼의 분열이 숨어 있게 마련이다. (…) 해체기에 들어서면 사람들의 행동 방향이 모두 하나뿐이던 것에서 서로 대립적이고 서로 모순되는 한 쌍의 변형이나 대체물로 분열하게 된다. 따라서 도전과 응전은 양자택일의 두 가지 극으로 변한다.(17-18쪽)” 최근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한쪽은 피동적으로, 다른 한쪽은 능동적으로 변한다’라는 대목까지도 일치합니다. 보수는 피동적으로 진보는 능동적으로 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속살을 제대로 짚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 둘은 다 창조적이지 못하다’라는 대목까지도 어쩌면 그리도 닮았는지 말입니다.

저자는 해체기의 사람들의 영혼에 나타나는 행동, 감정, 생활의 양자택일적 양식으로, 방종과 자제, 일탈과 순교, 표류의식과 죄의식 등 여섯 가지를 들었습니다. 아마도 문명의 해체기에 나타나는 사회현상 가운데 종교와 관련된 것들을 짚어가기 위한 접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종교에 관한 내용이라서 종교인이 아닌 저로서는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만, 유라시아 여러 지역에서 등장했던 다양한 종교의 근본원리 및 변화까지도 상당한 수준으로 논하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대 사회의 다원화된 신을 숭상하던 것이 유일신을 숭배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조로아스터교는 물론 중국의 도교와 유교 심지어는 일본의 신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들이 어떤 연관을 맺어왔는가를 이야기하는데, 중요한 점은 관용을 보이는 종교는 세가 약해지고 공격적인 종교가 세를 얻어 확산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뿌리가 되는 야훼의 시원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야훼는 당초 서북아라비아의 한 화산에 살며 그 화산을 다스리는 신령으로서 비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시야에 들어왔다고 한다. 만약 그런 얘기가 신빙성 있는 것이라면 야훼는 그 기원으로 보아 말 그대로 토지에 귀속되는 지상신이었다. 어쨌든 그느느 기원전 14세기에 이집트 ‘신제국’의 영토였던 팔레스타인에 침입한 야만족 집단의 수호신이었다. 그 후 에브라임 및 유대의 산악지대로 옮겨졌다가 특정한 지방과 특정한 지방공동체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163쪽)”

지방적이던 야훼가 점차 세력을 얻어간 것은 ‘그는 홀로 숨 쉬고 나머지는 그림자였다’라는 오딧세이의 구절대로 배타성이라는 특징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야훼는 맹렬한 질투심을 바탕으로 로마제국의 국교였던 다신들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거머쥔 것도 가차 없는 불관용 덕분이었다는 것인데, 시리아 문명의 미트라나 이집트 문명의 이시스, 히타이트 문명의 키벨레가 관용과 타협적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야훼에게 밀려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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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 4 (반양장) - 아놀드 토인비 59클래식Book
아놀드 조셉 토인비 지음, D.C.서머벨 엮음, 김규태.조종상 옮김 / 더스타일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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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4>에서는 ‘문명의 성장’과 관련하여 ‘성장의 분석’, ‘성장에 따른 분화’에 대하여 논하고 이어서 문명의 쇠퇴에 대하여 논의한 전편에 이어 문명이 쇠퇴와 해체에 관하여 논합니다. 문명의 쇠퇴의 원인으로 지목한 자기결정능력의 감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창조성의 모방에 관한 설명을 마무리하고 군국주의의 성립이 문명 쇠퇴를 가속한다는 것과 문명의 절정에서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자기만족에 빠지는 것을 경계합니다. 이어서 문명의 해체에 관하여 ‘해체의 성질’과 ‘사회체의 분열’을 논합니다.

자기결정능력의 감퇴에서, 창조성의 모방을 통하여 제도와 기술을 우상화하게 되는 것이 문명 쇠퇴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헬라스 문명의 후반에 그리스는 도시국가 숭배라는 우상을, 로마제국이 무너진 원인은 정교 그리스도 사회의 해악을 꼽았습니다. 더하여 왕과 의회, 관료나 성직자와 같은 지배계급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사회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기술의 우상화에 관하여 저자는 생물학적 진화사례를 인용합니다. 완벽한 기술이 있거나 어떤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개체가 진화론적으로는 오히려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많고, 덜 특성화되고 과도기적인 유기체가 더 강한 생존력을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창조적 소수자에 의하여 이룩한 기술혁신에 안주하는 사회치고 살아남은 경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창조적 모방에 수동적으로 머물러 무사태평하게 지내다가 무너지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능동적 일탈 역시 쇠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저자가 인용한 사례는 멀리 아시리아문명인데 군국주의의 대표격인 아시리아 사회는 꾸준하게 기술의 혁신을 이어갔지만, 그들에게 배태되어 있는 공격성으로 인하여 이웃을 끊임없이 공격하다가 스스로 지쳐버린 끝에 무너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우스트라시아의 프랑크왕국과 티무르제국의 사례 역시 이에 해당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런가하면 기독교가 번성한 끝에 쇠퇴한 것은 스스로 성공에 도취된 나머지 터무니없는 목표를 위해 정치권력을 남용한데서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문명의 해체에 관한 설명은 해체의 성질을 규정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문명쇠퇴는 필연적으로 문명의 해체를 가져오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중심사회는 지배적 소수자, 내부 프롤레타이라, 외부 프롤레타리아의 셋으로 갈라진다고 합니다. 이들이 분리하여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투쟁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이들 세 집단은 각각 특징을 가지는데, 지배적 소수자는 세계국가를, 내부 프롤레타리아는 세계교회를, 외부 프롤레타리아는 야만족 전투단체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이 부분의 설명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문명의 해체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체의 분열에 대한 설명이 <역사의 연구4>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지배적 소수자들의 다양한 요소가 없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고정적이면서도 획일적인 면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배적 소수자 특유의 유형으로는 군국주의자가 있고, 그 뒤를 따라다니며 야비한 짓을 하는 착취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부 프롤레타리아에 대하여, 헬라스문명에서는 사회가 격변에 빠졌을 때 주권을 빼앗기고 붕괴한 도시국가들의 시민, 피정복민, 노예거래의 희생자들이 내부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종교가 희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외부 프롤레타리아의 예로는 미노스문명에서의 아카이아인을 들었는데, 이들에게는 올림푸스의 신이 종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외래 및 고유의 영감에 대하여 논하면서 ‘문명이란 독자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역사적 단위’라는 전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인도 통치에 대하여 온정있고, 더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로마제국의 통치과 비교한 것이기는 하지만)는 인식은 영국민의 시각이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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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 3 (반양장) - 아놀드 토인비 59클래식Book
아놀드 조셉 토인비 지음, D.C.서머벨 엮음, 김규태.조종상 옮김 / 더스타일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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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3>에서는 ‘문명의 성장’과 관련하여 ‘발육정지문명’과 ‘문명 성장의 본질’에 대하여 논의한 전편에 이어 ‘성장의 분석’, ‘성장에 따른 분화’에 대하여 논하였습니다. 이어서 문명의 쇠퇴에 대한 논의가 이어집니다. ‘문제의 성질’, ‘결정론적 해답’, ‘환경을 지배하는 힘의 상실’ 그리고 ‘자기 결정 능력의 감퇴(1)을 논합니다.

 

저자는 자기 결정이 성장의 기준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명화 과정에 있는 사회는 일반적으로 사회에 속하는 혹은 속하게 하는 개인을 통하여 스스로 분화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관하여, 사회란 단순히 개인의 집합이라는 견해와 사회란 하나의 유기체이고 개인은 그것의 일부라는 견해를 비교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결론은 두 견해가 모두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명의 발달은 창조적 개인 혹은 소수의 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적 개인의 행동은 물러남과 복귀라는 두 가지 움직임으로 설명한다고 했습니다. 개인과 사회에서의 창조적 개인의 행동 사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점이라고 할 것입니다만, 지구상에 존재했던 다양한 문명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인용하여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적 개인의 사례로는 성 바울, 성 베네딕트, 대교황 그레고리우스, 석가모니, 무함마드, 마키아벨리, 단테, 등입니다.

 

아마도 <역사의 연구>에서 가장 짧고 압축적인 장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만, 5쪽에 불과한 ‘성장에 따른 분화’에서 저자는 창조와 모방을 논하고, 이어서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하여 설명합ㄴ다. 창조적 개인이 성공적으로 사회를 이끌어 하나의 문명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처럼 모방을 통하여 앞선 사회를 따라가는 것 역시 하나의 문명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각기 다른 사회마다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서 서로 다른 방면에서 우월함을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술, 종교, 산업 등등 다양한 영역이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문명이 쇠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문제의 성질’도 앞장과 비슷한 분량입니다. 저자는 문명쇠퇴의 본질을 ‘원시적인 수준에서 어떤 종류의 초인적인 생활수준에까지 오르려는 대담한 시도의 실패’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이렇다고 할 때, 문명의 쇠퇴의 성질은 1. 소수자의 창조적 능력 상실, 2. 그에 따른 다수자 쪽의 모방 철회, 3. 그 결과로 발생하는 사호ㅚ 전체의 통일성 상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성질을 바탕으로 하여 문명쇠퇴의 원인을 규명하였습니다.

 

저자는 문명쇠퇴에 관한 결정론적 설명으로 네 가지를 들었습니다. 1. 문명의 쇠퇴는 우주의 태엽장치의 정지 또는 지구의 노화에 의한다는 설, 2. 문명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고유의 생물학적 법칙에 의해 미리 정해진 수명이 있다는 설, 3. 쇠퇴는 문명에 참여하는 개인의 자질이 그 순수혈통이라는 명목에 얽매여 너무나 오랫동안 문명화된 조상이 계속된 결과 퇴화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설, 4. 인간의 역사는 자연처럼 순환한다는 역사의 순환설입니다. 저자는 앞선 3가지 설을 검토후에 기각하였으며, 네 번째 가설 역시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지만, 반박하는 증거는 많다고 하였습니다.

 

자연환경 혹은 인문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통제력을 상실한 것을 문명쇠퇴의 원인이라는 설명에 대하여 저자는 반대합니다. 자연적 환경의 변화는 문명의 쇠퇴에 따른 결과인 경우가 많으며, 인문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문명이 쇠퇴하였다는 설명을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검토하여 기각하였습니다. 외부세력의 침투는 때로 발전을 가져오는 동력이 되기도 하며, 결코 파괴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마지막 장은 자기결정 능력의 감퇴가 문명의 쇠퇴를 가져온다는 설명입니다. 창조적 지도자를 일반 대중이 모방함으로써 문명이 발전하게 되는데, 모방의 기계적 성질에 의하여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이 둔화된다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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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 2 (반양장) - 아놀드 토인비 59클래식Book
아놀드 조셉 토인비 지음, D.C.서머벨 엮음, 김규태.조종상 옮김 / 더스타일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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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2>에서는 전편에 운을 뗀 문명의 발생에 있어서 환경의 도전과 황금의 중용을 다루었고, 문명의 성장과정에서 확장하지 못하고 스러진 문명들을 짚어보면서 문명성장의 본질을 다루었습니다. 제7장 환경의 도전편에서는 1. 환경의 혹독함이 주는 자극, 2. 새로운 땅의 자극, 3. 타격이라는 자극, 4. 압력이라는 자극, 5. 제재의 자극 등 5가지의 자극이 역사에 주는 영향을 설명합니다. 전편에 설명한 환경의 경우는 여건이 좋은 환경보다는 극복할 요소가 있는 환경에서 문명이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역별 사례를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두 번째 환경적 요소인 새로운 땅이라는 개념은 선주자에 의하여 개발이 완료되었다가 스러진 땅보다는 역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장소가 유리하다는 것인데, 첫 번째 요소, 환경이 혹독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새로운 문명을 창출해낸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타격과 압력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대치하는 세력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힘의 균형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정도가 심하지 않은 타격은 새로운 자극이 되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오스만제국과 오스트리아제국이 발칸반도를 경계로 하여 대치하고 있을 때, 서로 타격을 주기도 하였지만,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발전할 수 있었던 점을 들었습니다. 물론 정복당한 사회를 절멸시켰을 때는 다른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만, 견제하는 세력이 없는 사회 역시 쇠퇴의 과정을 밟기 마련입니다.

 

한편 도전과 반응에 있어서도 충분함과 과잉을 논합니다. 대응하기에 버거울 정도의 가혹한 도전이 주어질 때는 대체로 응전이 실패하여 소멸의 길을 걷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아이슬란드 정착에 성공한 바이킹이 환경적으로 열악한 그린란드에는 정착하지 못했던 사례를 들었습니다. 이처럼 문명의 씨앗은 틔웠지만, 발육이 정지된 대표적 문명으로 폴리네시아인과 에스키모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을 들었습니다. 이들 문명은 살아남는 일에 온 힘을 쏟아붓다보니 문명을 발전시킬 여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정착하는데 필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 문명을 발전시킬 능력이 없었다고 보았습니다.

문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도전의 강도는 정도가 극심한 도전과 격렬함이 부족한 도전의 중간 어디쯤되는 도전이 이상적이라고 했습니다. 격렬함이 지나치면 응전에 나설 용기를 내지 못하게 하며, 격렬함이 부족하면 응전에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적당한 도전에 대한 응전이 성공하게 되면 그것이 또 다른 도전을 불러와 새로운 응전을 이끌어냅니다. 월트 휘트먼은 이러한 성장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나의 성공이 달성되면 비록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거기서 더 커다란 노력이 필요한 무엇인가가 생겨난다. 이것은 사물의 본질 속에 갖춰져 있다.(214쪽)”

논리의 전개가 여기에 이르면서 저자는 “문명의 성장 기준이 인문환경과 자연환경을 다 포함하는 외적 환경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전과 응전이 충돌하는 두 영역에서, 중점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점차 바뀌면서 활동 무대가 이동하는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라고 중간요약을 합니다. 문명을 이끌어가는 것이 결국은 사람이고 동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가 문명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문환경 역시 문명발전에서 중요한 요소일수밖에 없으며, 환경적 요소 역시 중요한 것이지만, 결정적 요소는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자기결정을 하는 방향으로 진보는, 환경적 어려움을 극복할 사회적 에너지를 축적하고, 궁극적으로는 외부보다는 내부로, 물질적이라기 보다는 영적인 도전을 맞이하는 ‘승화과정’이 있어야 문명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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