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반격 - 디지털, 그 바깥의 세계를 발견하다
데이비드 색스 지음, 박상현.이승연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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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세상이라서인지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제목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종이책을 내는 일 자체가 버겁다는 출판계의 비명을 들어온 것도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스러져가는 아날로그가 힘겨운 반항이 아니라 반격이라는 거창한 전투태세를 갖출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레코드가게가 문을 열고 장사가 잘된다는 이야기를 프롤로그에서 읽는 순간 빈사상태에 빠져있던 아날로그가 반격의 실마리를 찾았구나 싶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날로그의 반격은 디지털 기술이 꽃을 피웠기 때문에 가능해졌다는 역설적인 설명을 내놓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아날로그가 회생가능하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기술의 진화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며. 한 편으로는 디지털 기술과 겨루어 살아남을 수 있는 내공을 쌓은 아날로그만이 회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아날로그의 반격>이 디지털 기술에 반대하기 위함이 아니라 어떤 아날로그 기술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습니다. <아날로그의 반격>은 2부로 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레코드판, 종이, 필름, 보드게임에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음을 확인하고, 디지털에 밀리던 이들 상품이 어떻게 돌파구를 찾았는지도 같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출판, 유통, 제조, 교육은 물론 실리콘밸리로부터의 교훈을 이끌어냄으로써 아날로그 기술이 가진 잠재력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사실 디지털이 가지는 편리성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 편리함 속에서 부족한 무엇을 느끼게 된 것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인간이 오래도록 누려왔던 오감 가운데 사라진 것들에 대한 향수가 아날로그의 부활이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첫 번째 주제가 된 레코드판의 경우 돈을 지불하고 확보한 유형의 소유물은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조부세대가 즐기던 아날로그를 외면하던 부친세대와는 달리 손주세대는 부친이 즐기는 디지털로부터 관심을 옮겨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년전에 내놓은 책은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외면하는 바람에 조금씩이지만 오랫동안 매출을 올리고 있는 건강서적을 출간해준 출판사에서 떠맡다시피 출간을 했던 것도 종이책으로 남겨야 오랫동안 기록이 남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책을 세상에 내놓을 꿈을 꾸고 있습니다. 뉴욕에서는 최근에 서점들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종이책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돌아오고 있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명동에 서점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것들(서점?)이 모두 사라져버린 곳은 더 이상 도시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서울에서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라랍니다.

디지털 경제의 퇴보는 결국 일자리 창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디지털 경제는 인간의 노동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기본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이테크산업은 편중된 일자리만을 늘려왔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스티븐 킹은 ‘모든 오래된 것이 머지않아 새로운 것으로 탄생할 것이다’라고 했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탄생’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미래 세대는 과거의 아날로그적인 것들을 단순하게 다시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과거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무엇이 미래세대의 입맛에 맞아야 아날로그 기술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디지털을 뛰어넘는, 즉 사람의 감성을 끌어들일 수 있는 무엇을 발견해낼 수 있다면 분명 아날로그의 블루오션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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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의 탄생 - 온전한 나를 위한 세상 모든 책과의 대화
장동석 지음 / 현암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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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을 북칼럼니스트 혹은 출판평론가라 부른다고 합니다. 하지마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해서 모두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딱 저처럼 책을 읽고 독후감 수준을 글을 쓰는 사람까지 그런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기는 ‘거시기’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까닭은 언젠가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생각의 탄생>은 북칼럼니스트 장동석님이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그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합니다만, 그 일을 ‘더불어 읽는 즐거움’이라고 풀어낸 것에는 금세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더불어 읽는 즐거움’이 세상에서 가장 큰 유희라는 것을 믿기에, 누군가 책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믿기에, 누군가 채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5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함께 읽는 즐거움’이라는 의미로 ‘더불어’를 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통하여 책의 내용을 파악한다는 것은 책을 읽었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기 때문에 ‘더불어 읽는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자 역시 책은 저자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라고 강조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책을 읽어 느끼는 바는 읽는 사람마다의 개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누군가와 더불어 읽는다라고 할 성질의 것은 아닌 것입니다.

저자는 또한 자신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김훈작가의 <남한산성>에 나오는 ‘다만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라는 구절로 설명합니다. 어쩌면 할 일을 할 뿐이라는 의미를 담고자 한 듯하나,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라는 의미는 그저 ‘올 것이 온 것’이라는 수동적 의미에 불과하여 저자의 온뜻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이렇듯 날을 세우는 듯한 글을 쓰는 까닭도 사실을 저자가 즐기는 바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생각의 탄생>에서 저자가 책읽기를 통하여 얻은 생각들을 음미하고 그 생각들을 이끌어낸 책을 찾아 읽어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회로 삼으려는 책읽기였습니다. 또한 책을 읽고 글을 써 책을 만드는 기술(?)을 엿보려는 불손한 의도가 있었다는 고백도 덧붙입니다. 일일이 헤아려보지는 않았습니다만, 하나의 글 꼭지에 여러권의 책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라는 개념은 만들어본 적이 있습니다마,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쓰기도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모두 76꼭지의 글을 읽기, 공부, 예술, 여행, 모험, 한국인, 민주주의, 문명, 생명, 평화, 자아, 부모, 우정, 사랑, 여성 이라는 15개의 주제로 나누었고, 이 주제들은 다시 ‘나를 다르게 만드는 것들’, ‘우리, 더불어 사는 세상’, ‘나, 세상을 이해하는 통로’ 등 3가지의 대주제로 묶었습니다. 세부적인 것으로부터 총괄적인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만, 아마 저자는 총괄로부터 세부로 기획안을 마련하고 글을 써갔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봅니다.

아무래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직업이라고 이야기를 한 만큼 ‘읽기’에서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읽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저자는 우선 읽는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설명하고, 이어서 독일의 언어학자 한스 요아힘 그립의 <읽기와 지식의 감추어진 역사>, 이광주의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독일의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내가 읽는 책과 그림>,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읽기>, 정수복의 <책인시공>, 슈테판 볼만의 <여자와 책>,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등은 물론 동양의 <회남자>, <장자>, <노자>의 한 대목까지 인용합니다. 이들 책에서 인용한 한 구절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단편적일 수도 있고, 원저의 내용을 가늠할 수 있는 무엇이 많지 않다는 아쉬움이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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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인간 -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는 내 몸속 작은 생명체 이야기
캐슬린 매콜리프 지음, 김성훈 옮김 / 이와우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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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전에 <연가시>라는 제목의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뼈와 살가죽만 남은 참혹한 몰골의 시체들이 한강에서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4대강을 타고 급속하게 번져나간다는 설정이 4대강 사업을 겨냥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게 합니다. 당시에는 영화적 설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연가시(학명: Gordius aquaticus)란, 곤충의 몸에 기생하는 가느다란 철사 모양의 유선형 기생체로 귀뚜라미나 여치와 같은 곤충을 숙주로 한다고 합니다. 성체가 되면 숙주동물로 하여금 물에 뛰어들게 하고, 물속으로 빠져나가서는 짝짓기를 하여 암컷은 알을 낳게 됩니다. 유충은 물속에서 헤엄치고 다니다가 모기 유충에 올라타서 낭종을 만들고, 모기 유충이 성충이 되어 귀뚜라미나 여치와 같은 숙주동물에게 잡아먹히면 낭에 숨어들었던 유충이 활동을 시작해서 성충이 된다고 합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물에 뛰어들거나 위험한 짓을 하도록 정신을 조종하는 기생생물이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만,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귀뚜라미에 기생하는 연가시로부터 열대 오브위버 거미를 조정하는 기생말벌, 심지어는 개미를 조종하는 동충하초와 같은 기생식물 등에 관한 연구를 정리한 <숙주인간>을 읽으면서 최근 저의 관심사이기도 하면서 정말 그렇다면 끔찍할 수도 있는 기생생물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바로 톡소플라스마 곤디라고 하는 고양이 기생충입니다. 이 기생충은 고양이 체내에서만 유성생식이 가능합니다. 고양이의 배설물에 섞여 나온 이 기생충은 쥐를 감염시킬 수 있는데, 이 기생충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고양이 앞에서 알짱거리다가 죽음을 맞게 되는데, 쥐가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는 것은 이 기생충이 쥐의 뇌에 작용하여 도파민이라고 하는 물질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결정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고양이와 가까운 인간 역시 이 기생충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연구가 있다고 합니다. 체코의 기생충학자 오토 이로베츠(Otto Jirovec)가 1950년대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현병을 앓는 사람 가운데 톡소플라스마 곤디에 감염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30%의 사람들이 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다고 합니다. 혹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서 그런 경향이 더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행히도 이 기생충은 정신병 치료제를 투여하면 성장이 멈춘다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양재천 산책길을 걷다보면 광견병 예방약을 뿌렸다는 안내문을 붙여놓은 계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광견병이 뱀파이어와 연관이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읽을 수 있습니다. 흔히 전해오기를 뱀파이어의 수명은 40일이라고 하는데, 광견병에 걸린 동물에 물린 희생자가 평균적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흉포한 야수에 물린 사람 역시 흉포해진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정신착란에 빠지며, 음탕한 욕망이 치민다는 것입니다.

서문에 적고 있습니다만, 기생생물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우리의 생각, 느낌 행동을 조작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기반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생생물의 생활사를 이해하고 감염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면 감염을 차단하는 방법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기생생물의 존재와 기생생물이 우리의 생각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우리들에게 있다고 하겠습니다.

서문의 말미에서 ‘(우리를 조종하는 기생생물이 있다는 사실을 읽고 나면) 여러분은 꽤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를 했습니다만, 정말 읽어가는 내내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제가 꽃청춘이었다면 이런 연구에 빠져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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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특이점이 온다 - 제4차 산업혁명, 경제의 모든 것이 바뀐다
케일럼 체이스 지음, 신동숙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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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들이 봇물이 쏟아지듯 나오고 있습니다. 몇 달 전에 ‘문화’가 4차 산업에서 핵심이 될 것을 예견한 <4차 산업혁명시대 문화경제의 힘>을 읽을 때 만해도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할 것이라는 주장에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과학 기술, 경제 전반에 정통한 작가 케일럼 체이스의 <경제의 특이점이 온다>를 읽으면서는 4차 산업혁명이 그리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체이스는 그저 ‘경제의 특이점(The Economic Singularity)’이라고 했을 뿐인데, 내용은 과학기술, 특히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으로, 근로자들이 일터에서 밀려나게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자본주의가 종식되고 인류의 분열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읽기 전에는 ‘제4차 산업혁명, 경제의 모든 것이 바뀐다’라는 부제가 지나친 것 아닐까 싶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머리말에서 책의 얼개를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책의 경우 맨 마지막 장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저자는 독특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흥을 깨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스포일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저자가 마지막장에 요약한 이 책의 얼개를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1장에서는 산업혁명의 역사를 돌아보고, 자동화가 영구적인 대량 실업을 유발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사실 무근임을 확인해보았다고 합니다. 2장에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어날 고용상황에 대하여 산업혁명 때와는 달리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부정적 예견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될 것이라는 낙관적 예견을 소개합니다. 3장에서는 인류가 오늘 날에 이른 것처럼 성공적으로 새로운 시대로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합니다. 4장에서는 그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경기 위축, 소득과 재산의 재분배, 삶의 의미와 행복, 재화의 배분, 결속이라는 문제들을 짚었습니다. 5장에서는 대여섯가지의 잠재적 대안을 살펴보면서 이런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다루었습니다. 6장은 요약입니다.

누구나 나신이 일하는 분야의 미래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할 것입니다. 그동안 전문직이라고 해서 선망의 대상이었던 ‘의사’들의 영역이야말로 인공지능이라는 괴물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왓슨이라고 하는 진단보조장비를 들여다가 진료에 사용하고 있는 병원이 등장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의사들이 오랜 훈련과 경험을 통하여 쌓은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환자의 건강문제에 접근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환자를 치료해본 의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왓슨 역시 이런 원리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축적된 수많은 환자의 사례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환자의 증상 혹은 검사결과를 입력하여 가장 근접한 사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오히려 경험이 일천한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진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하여 많은 검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비용이 비싼 흠이 있겠습니다만, 비용문제가 해결된다면 대부분의 의사들을 실업자가 될 판입니다. 그런 세상이 오기 전에 의사로서 활동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다행일 것 같습니다.

의사뿐 아니라 변호사, 판사, 기자 등등 다양한 전문직들도 사정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예술가만큼은 여전히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술가는 재능이 어느 정도는 뒷받침되어야 하는 직업이고 보면 세상 살기가 점차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계보다는 인간이 더 나은 분야를 찾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미래의 인간이 인공지능에 완전하게 의지하여 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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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대산세계문학총서 90
윌리엄 워즈워스 지음, 김숭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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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영국의 서북부 호수지역에 있는 원더미어와 글라스미어 지방을 여행하였습니다. 그때 호수를 둘러싼 아름다운 풍광을 생각하면서, 이곳에서 주옥같은 시를 썼던 윌리엄 워즈워스의 생각을 읽고 싶었습니다. 요코가와 세츠코가 쓴 <토토로의 숲을 찾다; http://blog.joins.com/yang412/15152542>와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을 이미 읽고 호수지역의 풍광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만, 막상 가보니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과 실망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호수를 둘러싼 야트막한 야산을 흘러내린 곡선이 너무 부드러워 절로 시가 쓰여질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워즈워스를 비롯하여 내셔널 트러스트 사람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호수지역이 이제는 물밀듯이 밀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더 이상 한적하지만은 않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한 몫을 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워즈워스의 눈을 통해서 고즈넉했던 호수지역의 분위기를 되새겨보기 위하여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http://blog.joins.com/yang412/15164580>를 읽었지만,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에 <서곡>까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서곡>에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삶의 족적까지도 느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서곡>에는 워즈워스가 유년기로부터 프랑스체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통해서 느낀 점을 모두 14권의 시에 담았습니다. 유년기에서부터 시를 썼던 것은 아니고 28살이 되던 해부터 전기적 시를 쓰기 시작해서 평생을 매달렸다고 합니다. <서곡>은 그 무렵 유행하던 성장소설에 대응한 일종의 성장시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시 영역에서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되는 셈인가요?

마들렌 조각이 떨어진 홍차 한 모금에서 유년시절의 기억을 되살린 프루스트처럼 워즈워스는 청명하고도 평화로운 어느 가을날, 은빛 구름이 떠있던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풀잎에 반짝이는 햇빛, 그리고 그늘 속에 가려져 또 다른 그늘을 드리우던 숲에 고요함이 감돌 때, 한 골짜기를 떠올렸고, 그 골짜기에 있는 언젠가 본 듯도 한 오두막의 문 앞으로 곧장 가기로 마음먹었다고 노래합니다. 그 오두막은 유년시절 살던 곳이었을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상념에 매달리는 시인의 특성에 따라 마음에 떠오르는 자신의 지난날을 기록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이 하게 될 일이 ‘어떤 영국적 주제도, 밀턴도 노래하지않고 남겨둔 어떤 오래된 낭만적 이야기를 택하게 되겠지’하고 예견하면서 말입니다.

‘골짜기를 휘감아 도는 안개의 은빛 화환, 혹은 공중에 걸린 구름 빛깔로 얼룩진 잔잔한 물의 평원으로부터 순수한 감각의 기쁨을 들이마시며ㅣ 천지창조만큼이나 오래된 미(美)와의 무의식적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니 워즈워스는 타고난 시재는 호수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얻어 화룡점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전적 시라는 한계와 번역되어 재해석된 시라는 제한점으로 인하여 <서곡>에 실린 시들은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에 실린 시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만, 그래도 곳곳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표한한 구절들이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곡>이자전적 기록에 머물지 않는 것은 떠올린 기억을 토대로 하여 사유한 결과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순전한 과거의 회상’과 ‘이후의 명상에 의해 변화된 과거’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한 것 같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떻든 <서곡>은 세 단계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정신적 성장의 단계, 두 번째는 무기력과 절망이라는 정신적 위기로 성장과정이 산산조각 나는 단계, 세 번째는 마침내 시인이 다시금 고결함을 회복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발전된 위치에 이르게 되는 단계 등입니다. 이런 과정은 워즈워스가 마음의 멘토로 모셨던 밀턴이 ‘인간에게 이르는 하느님의 길’을 설명한 서사시 <실낙원>에 비교하게 되는 것은 본인 스스로 밀턴의 위대한 전통의 계승자로 자처한 것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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