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시의 마법사 어스시 전집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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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 소개된 것을 보고 읽게 된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마도 등 뒤의 창문이 열리는 순간이란 제목의 글에서 인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단행본으로 생각을 했습니다만, 책을 모두 읽고 보니 6권으로 된 긴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까 <어스시의 마법사>는 어스시 연작의 첫 번째 책이었습니다.


<어스시의 마법사>, <아투안의 무덤>, <머나먼 바닷가>, <테하누>, <어스시의 이야기들>, 그리고 <또다른 바람>6권으로 된 <어스시 마법사> 연작은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더불어 세계 3대 환상 문학으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아마도 <해리 포터> 연작이 나오기 전의 이야기였을 것 같습니다.


1권인 <어스시의 마법사>1968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북동해의 거친 바다에 솟아난 외봉우리의 곤트 섬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곤트섬은 마법사로 이름난 땅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법사 혹은 현자로 어스시의 많은 섬에서 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어스시는 earthsea를 발음을 그대로 가져온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북동해의 땅과 바다가 무대가 된다는 의미 같습니다. 곤트섬의 마법사들 가운데 대현자까지 되었던 새매의 생애를 읊은 게드의 위업을 비롯한 노래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는 것입니다.


곤트의 마법사들은 룬문자로 기록한 마법서를 읽고, 룬문자로 된 마법 주문을 읊는 것으로 보아 북유럽의 고대문명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룬 문자는 게르만족이 로마자를 쓰기 이전에 사용하던 문자로 3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명문에 등장한다고 합니다.


<어스시의 마법사>는 새매의 어린 시절을 담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지어준 더니라는 이름을 썼는데, 돌이 되기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여섯명이나 되는 형들과 함께 홀아버지 슬하에서 자랐고, 제 앞가림을 하기 전에는 이모가 돌보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모가 마법사였던 모양입니다. 더니가 몰던 염소가 말썽을 부리자 이모가 주문을 외워 해결하는 것을 본 더니는 이모의 주문을 따라 해보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더니에게 마법의 재능이 있다는 것이 알게 된 이모가 간단한 마술을 가르치게 됩니다.


이모의 마술을 모두 배우게 된 더니는 곤트섬에 쳐들어온 카르그 제국의 군사들을 마법을 써서 물리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오지언이라는 마법사가 찾아와 더니에게 게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제자로 삼게 됩니다. 오지언을 따라간 게드는 룬문자를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찾아온 르 알비 노영주의 딸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냐는 꼬드김에 넘어가게 됩니다. 어린 아이의 영웅심리가 화를 부른 셈입니다. 오지언의 마법서에서 소환주문을 찾아낸 게드가 주문을 읽자 어둠보다 더 캄캄한 어둠이며 일정한 형체가 없는 그림자 덩어리가 등장하여 게드를 향해 뻗쳐 왔습니다.


그 순간 오지언이 나타나 게드를 구해주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로크섬에 있는 마법학교로 가서 마법공부를 하게 됩니다. 로크에서 만난 보옥이라는 상급생과 삐걱거리는 생활을 하던 중에 마법을 겨루어보자고 도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앞서 불러냈던 그림자가 다시 나타나고 그 그림자를 막으려던 대현자가 목숨을 잃게 됩니다. 겨우 목숨을 구한 게드는 마법사가 되지만 그림자에게 제압당할 수도 있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숨어사는 느낌이던 게드에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달아나지 않고 정면으로 맞붙어야 한다는 계시에 따라 그림자를 찾아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어스시의 마법사>가 끝날 무렵 로크에서 만난 마법사 친구 들콩과 함께 바다로 나서서 그림자와 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그림자는 게드의 검은 자신이었습니다. 게드가 검은 자신을 붙잡는 순간 빛과 어둠이 만나고, 합쳐지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아야기가 펼쳐지는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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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시간세탁소 -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하이디 지음, 박주선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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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이란 주로 입던 옷가지나, 사용하던 물품을 깨끗하게 하는 작업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의미는 때로 나쁜 일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부정한 돈의 근원을 감추기 위한 돈 세탁, 자금 세탁이 있는가하면, 심지어는 사람의 근본을 감추는 신분 세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이디(海帶)라는 필명을 쓰는 리자원(李家) 작가가 쓴 <시간 세탁소>는 어떨까요?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라는 부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기억 세탁에 관한 이야기 같습니다. 막다른 골목 안의 조용한 건물에 세탁소가 들어 있다는데,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찾아올 수도 없는 그런 집이라고 합니다. 세탁소이니 옷가지를 세탁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거리가 많지도 않어서 주인은 일이 없으면 책을 읽는다는 것이죠. 요즘에는 책방에서 차는 물론 음반, 잡화 등 다양한 것들을 판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집은 책방ㅡ세탁소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결혼도 안한 주인은 세탁만 하는게 아니라 인생상담도 해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탁물을 가지고 와서 맡기면서 자연스럽게 조언을 듣는다는 것이지요. 시간 세탁소에서 다룬 세탁물로는 첫사랑 손수건, 바쁘다 바빠 셔츠, 상실 속싸개, 작별 배낭, 자신감 가방, 비밀 축구화, 통제 스웨터, 망각 목도리, 과거의 기억 등 9건입니다. 그런데 세탁물을 맡긴 고객은 다섯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다섯 명이 맡긴 세탁물 이외에 나머지 네 건의 세탁물은 알고 보니 세탁소의 주인의 것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세탁물인 과거의 기억이야말로 이 책의 제목과 부제에 잘 어울리는 세탁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등장인물마다의 사연을 들어주는 주인장이 고객들에게 전하는 촌철살인하여 금과옥조가 되는 구절이 신박합니다. 작가와 편집자는 그런 구절을 굵은 글씨체로 표기해 주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에는 이런 댕속이 있습니다. "사실 인생의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에요. 사람도 헤어짐을 위해 만나는 것처럼요. 사실은 회자정리라는 점을 이야기했더라면, 첫사랑이 완성되지 못하고 헤어질까봐 걱정하는 어린 여학생을 이해시키는데 조금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요?


두 번째 이야기에는 일에 매달려 스스로를 혹사하는 젊은 여성에게 주는 "시간을 즐길 수 없다면 낭비라고 볼 수만은 없어요"라는 조언입니다.


가슴이 절절했던 이야기는 결혼 후에 우연히 가졌던 아이를 잃고 생의 허망함에 애를 태우는 젊은 어머니에게 주는 조언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 생명, 그리고 사람은 각자의 사명을 띠고 이 세상에 왔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일단 그들의 임무가 끝나면, 함께 했던 사람과 머물렀던 장소를 떠나는 거죠."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자카란다라는 푸른 꽃이 등장합니다. 남미가 원산지로 뉴질랜드에 갔을 때 처음 보았던 자카란다는 곤명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중국어로는 란화잉(藍花)이라 하며 꽃말이 '절망 속의 기다림'이라고 합니다. 누리망에서는 화사한 행복이라는 꽃말을 갖는다 되어 있어 자세히 찾아볼 노릇입니다.


세탁소에 놀러 오는 젊은이가 엮인 이야기에서는 첫 작품을 내고 생각이 꽉 막힌 젊은이에게 주는 조언은 "인생의 막다른 길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세요?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였습니다. 영화 니모의 대사라고 합니다. 사실은 돌아가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막다른 길에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작별 배낭, 비밀 축구화, 망각 목도리, 과거의 기억 등 4건의 이야기는 세탁소 주인의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적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외국으로 가면서 부모에게 아들을 맡건 채 돌아오지 못했던 엄마와 아들 사이에 뒷이야기가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이라는 세탁물이 등장한 것입니다. 아들에게 되돌아오겠다고 약속했던 어머니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은 지워야 할 나쁜 기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심리상담가로서 '이야기가 곧 인생'이라고 했던 알프레드 아들러에 경도되어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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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필리파 피어스 지음, 에디트 그림, 김경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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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서관에서 일하다가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정신적 긴장감, 동일본대지진의 충격 등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된 사서가 나라현의 산촌 히가시요시노무라에 있는 고택에 만든 사설도서관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삶을 적은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는 저자의 다양한 책읽기가 인용됩니다.


영국 작가 필리파 피어스의 만화 <한밤중 통의 정원에서>시간이 걸리는 일,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용되어 있습니다. 히로시마 교육위원회가 초등학교 3학년 대상의 평화 학습 교재 <히로시마의 평화 노트>에 실려 있던 만화 <맨발의 겐>의 내용이 피폭의 실상을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교체한 일을 언급한 대목입니다.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 우리 안에 흐르는 시간을 무시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산촌에 도서관을 열었다고 한 것처럼 <한밤중 통의 정원에서>에서는 시간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산촌 도서관에서 열리는 독서모임 살아가기 위한 판타지 모임에서 읽었다고 합니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는 주인공 톰이 동생 피터가 홍역에 걸리자 피병(避病)하기 위해 여름방학 동안 이모네 집에서 머무르게 되면서 겪은 이상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이모네 집에 도착한 직후에는 감염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층 방에 격리되는데, 톰은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모네 집에는 함께 놀 친구도, 마당도 없었던 것입니다. 동생 피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긴 정말 최악이야.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 괴롭다니까!”라고 써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층에 있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열 두시 다음에 열세 번 울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층으로 내려간 톰은 뒷문을 열어 달빛을 끌어들여 시계를 자세히 보려 합니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 눈앞에 아주 광활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나타났습니다. 그 정원에서 작은 소녀 해티를 만나게 됩니다. 이모는 뒷문밖에는 정원은커녕 잡동사니가 모여 있는 좁은 공간이라고 합니다.


뒷문밖 정원에서 톰은 해티와 만나는 동안 시간의 변화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종국에는 해티가 이층에서 살고 있다는 집주인 바살러뮤 부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서는 이 대목이 다음처럼 소개됩니다. “초반에는 그야말로 어린아이의 체감처럼 하루하루가 천천히 흘러가지만, 막바지에 이를수록 전개가 성난 파도처럼 빨라집니다. 이는 마치 인생 속의 시간 같습니다. 가령 여섯 살 아이에게 1년은 인생의 6분의 1이지만 나이를 먹으면 20분의 1, 40분의 1이 되어가는 느낌과도 비슷하지요.(56-57)”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열세번 울리는 시간에 뒷문을 통하여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해티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지만 톰의 시간은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과도 닮았습니다.


<한밤중 통의 정원에서>에서처럼 시간을 주제로 한 영화가 생각납니다. 80세의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지는 특이체질입니다. 12살이 되었을 때는 60대의 외모를 가지는데, 이때 5살 소녀 데이지를 만나면서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기억하게 됩니다. 중년이 되었을 때는 숙녀가 된 데이지와 만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의 시간의 흐름을 주제로 한 영화입니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가 주제곡이던 영화도 있었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네요.


이모와 이모부는 현실세계에 갇혀 시간을 되돌리는 열쇠, 괘종시계가 열세번 울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지만 호기심 많은 톰은 그 열쇠를 놓치지 않는다는 설정도 인상적입니다. 환상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만화입니다.


모두에 인용된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에 나왔다는 구절도 인상적입니다. “정원이 소설의 배경으로 너무 쉽게 쓰인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정원은 그 이상의 존재다. 사실 소설과 정원은 같은 과정을 통해 태어난다. 이야기를 쓰는 건 씨를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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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빛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8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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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상실, 기억의 속임수에 대한 섬세한 탐구라는 설명에 눈길이 가서 읽게 된 책입니다. <오래된 빛>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맨부커상, 프란츠 카프카 상, 유럽문학상 수상자인 존 밴빌의 장편소설입니다. 화자인 주인공 앨릭스는 70세 가까이 된 은퇴한 연극배우입니다.(물론 뒤에 가서 밝혀지는 사실입니다)


이야기는 앨릭스가 열다섯 살 무렵 친하던 학교 친구 빌리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빌리의 어머니 미시즈 그레이의 당시 나이는 서른다섯, 무려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이와 사랑을 나누었다면 요즈음의 법으로는 아동에 대한 성범죄로 중한 처벌을 받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났던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꽤나 긴 시간을 두고 성관계를 이어가다가 우여곡절 끝에 헤어졌다고 하니 가중처벌을 받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와의 사랑의 행각을 계속 곱씹는 것을 보면, 미시즈 그레이와 사랑(그것도 사랑이라고 한다면)했던 일은 앨릭스의 삶 전체를 관통하여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앨리스는 연극배우 일을 그만두고는 아내 리디아와의 관계가 데면데면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듯 변하게 된 것은 딸 캐스가 십년 전에 이탈리아의 해변에서 투신자살을 한 뒤부터입니다. 자살할 당시 캐스가 임신한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지는데, 뒤에 가서 판더가 모종의 관련이 있는 듯한 분위기로 풀려갑니다.


그러던 가운데 팬터그램픽처스의 배역담당 빌리 스카우트가 앨리스를 찾아옵니다. 악셀 판더라는 사람의 삶에 관한 영화를 촬영하게 되었는데 앨리스가 판더역을 맡아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연극무대에서 은퇴한 상태였던 앨리스는 요청을 수락하고 연습에 참가하는데, 돈 데번포트가 상대역으로 등장합니다.


촬영이 진행되는 가운데 돈 데번포트가 과민상태에 빠지면서 촬영이 중단되고 앨리스는 그녀에게 이탈리아 여행을 권합니다. 앨리스의 아내 리디아는 남편이 이런 결정에 반발을 하지만 영화를 찍기 위한 일이라고 둘러대고 말았습니다. 데번포트와 향한 장소는 딸 캐스가 자살한 장소와도 연관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앨리스와 데번포트 사이에도 서로의 삶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특히 캐스의 죽음이 화제가 됩니다. 1부의 핵심인물은 미시즈 그레이였다면 2부의 학샘인물은 돈 데본포트입니다.


미시즈 그레이와의 사랑이야기는 50년도 넘은 과거의 이야기임에도 작가는 미주알고주알 설명을 해가는데 사실 기억이란 것이 그리 정확한 것이 아니라서인지 읽어도 쉽게 몰입이 되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반면 데본포트와 엮인 이야기는 비교적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놓는 솜씨는 마르셀 푸르스트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황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해 놓아서 돌아가는 사정이 손바닥 보듯 분명한 느낌이었습니다.


읽어가다 보면 재치가 넘치는 구절이 적지 않습니다. 그 첫 번째로는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아니, 나는 걷는다, 고 말하고 거기서 끝내는 게 좋겠다. 그것은 캐스가 죽은 뒤 애도하던 처음 몇 달 동안 몸에 붙은 오랜 습관이다. 밖에 나가 산책을 하는 것의 리듬과 목적 없음에는 위로가 되는 뭔가가 있다.(126)” “이제 나와 은막, 나도 당신이 이 이야기를 꼭 듣고 싶어하리란 걸 안다. 물론 이제는 은막이 아니라 야하게 색을 입히는데 이건 개악에 불과하다.(134)” “악수를 하면 늘 그 전율, 그 근거 없는 끈끈한 친밀감, 뭔가가 뿜어져 나왔다는 그 끔찍한 느낌, 거기에 더해 정확히 언제 가엾게 움츠러던 손을 풀고 거두어들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이 찾아온다.(141)” “내가 평생 사랑했던 아우라 넘치는 모든 여자는, 지금 나는 사랑했다는 말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나에게 자신의 자국을 남겼다.(147)” “전면의 타원형 유리 패널 너머로 열심히 일하는 내부 장치가 보이는 커다란 괘종시켸가 구석에 보초처럼 꼿꼿하게 서서 깊은 숙고에 들어간 듯 똑딱거렸다. 똑 하고 딱 할 때마다 순간적으로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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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과 작가들 - 위대한 작가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음주열전
그렉 클라크.몬티 보챔프 지음, 이재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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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요즈음에는 술을 마실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만, 젊어서는 술을 좋아하던 적도 있었고, 술과 엮인 작가들의 사연을 소개할 것 같아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영감을 붙들어야 하는 작가들에게 술이란 중요한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작가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음주열전이라는 부제가 달린 듯합니다.


공저자인 그렉 클라크는 이 책은 몬티 보챔프 덕에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술작가예술가에 대한 역사를 삽화를 곁들여 함께 선보이자고 내게 제안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술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읽은 기억은 있습니다만, 저명한 작가들과 술을 엮은 책은 처음이지 싶습니다.


이 책은 와인, 맥주, 위스키, , 보드카, 압생트, 메스칼데킬라, 럼 등 서구에서 보편적인 8종의 알코올 음료의 역사는 물론 이 종류의 알코올 음료와 특히 연을 맺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펼쳐놓았습니다. 제 경우는 주로 소주를 마십니다만 이 책에서 다룬 8종의 술 가운데 압생트를 제외하고는 적어도 맛을 볼 기회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와인은 종류도 많고 즐기는 방법도 많아서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선뜻 좋아하기 어려운 술입니다. 맥주 역시 종류가 다양하고 최근에는 외국의 다양한 맥주를 수입하고 있지만, 이미 국산 맥주에 고정된 탓인지 다양한 맥주를 마실 생각이 별로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술들은 이러저런 이유로 쉽게 마실 기회가 없어서 깊이를 잘 모르는 편입니다.


<알코올과 작가들>에서는 8종의 술의 역사를 잘 요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와인의 경우 특히 셰익스피어가 그의 작품에서 언급한 내용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꼽은 대목은 <헨리8>14장에 나오는 좋은 일행, 좋은 와인, 좋은 환대가 좋은 사람을 만들지.”입니다. 맥주도 만만치가 않아서 찰스 디킨스는 그의 작품 속에 런던의 선술집에 대하여 언급을 했고, 그들 선술집은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건너뛰어서 보드카는 2019년에 발트연안국을 여행하면서 어디에선가 좋은 보드카를 사와서 집에서 마셔보았고, 럼은 대학에 다닐 무렵에 나왔던 캪틴Q를 마셔본 적이 있었고, 제대로 된 럼은 쿠바를 여행하면서 아바나의 양조장에서 시음해본 적이 있습니다. 데킬라는 어느 해던가 미국의 산 안토니오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을 때 지인과 마르가리타라는 칵테일을 마셔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압생트는 프랑스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지만 역시 포도주를 우선적으로 마시게 되면서 맛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압생트는 그 유독성이 문제가 되면서 1910년부터 2000년까지 생산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더욱이 마셔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작품이나 미술 등의 영역에서 많이 회자되었기 때문에 관심이 이어져왔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마셔볼 생각입니다.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다양한 작품들 가운데는 물론 읽어본 책도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도 많고, 꼭 읽어보고 싶은 작품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데킬라의 경우는 현재 작업 중인 <양기화의 BOOK소리-세계여행>편에 담을 책을 고르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맬컴 라우리의 <화산 아래서>로 바꿀 생각입니다. 더하여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을 조금 언급하게 될 것 같습니다.


럼은 쿠바의 아바나와 함께 다룰 <노인과 바다>에서 다루면서 <알코올과 작가들>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작가들의 재치가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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