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을 넘어서 - 사회와 타자
버나드 맥그레인 지음, 안경주 옮김 / 이학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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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경하는 범위가 조금씩 넓어지면서 관심도 다양해지는 것 같습니다. 인류학에 대한 관심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만, 인류학을 쉽게 설명하는 대중서가 많지 않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인류학을 넘어서>는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서구에서 논의되어온 ‘이질문화’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들의 역사를 기술함으로써 ‘인류학의 고고학’을 밝히려는 시도이다”하고 합니다.

인류학이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는 하지만 연구대상과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여 19세기 이후 들어서 학문으로 체계화되었음을 고려한다면, 인류학이라는 학문 전체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류학의 기본 개념에 해당하는 ‘타자’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찾아가는 것이 과연 적절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형질인류학, 고고학, 문화인류학 등이 인류학에 속하는 세부학문으로 나뉘고 있다고 한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논하고자 하는 ‘타자’의 개념은 문화인류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타자’에 대한 인식의 변천과정을 뒤쫓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인류학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사회가 제3세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닿게 되는 것 같습니다. 즉 주체로서의 유럽인들이 비유럽인들을 주체가 아닌 타자로 인식하여 그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를 찾아내려는 시도가 인류학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한 것이 아닐까합니다. 비유럽문화, 특히 오지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유럽 사람들의 원시모형으로 이해하려는 시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인들이 유럽 밖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계몽주의가 시작되던 시기 그리고 19세기 근대의 시기를 거쳐 오늘날의 인류학의 관점을 세우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우주론, 심리학, 진화론 등 다양한 이론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오히려 유일신으로서의 기독교 중심의 사고에 매몰되어 있던 유럽사회가 비유럽 사회의 다양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에서 문제가 출발한다고 보면 간단할 것 같습니다.

개명되었다는 오늘날에도 유럽 사람들은, 혹은 유럽 사람에 업혀가는 비유럽사람들까지 아시아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이슬람과 함께 유대교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뿌리는 같으나 예수와 무함마드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이들 종교의 차이가 아닐까 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성경의 근본을 뒤흔든 사건이었을 터인데, 이를 어떻게 봉합하여 수습했는지 궁금합니다.

유럽의 기독교는 그 세력이 많이 위축되어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그동안 믿음으로 믿어왔던 것들이 과학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사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충돌이 일어나고 있음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내용에 관한 생각 가운데,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지는 미개사회에 대한 생각들로 독자를 이끈다.’라는 관점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유럽사람들이 비유럽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은 르네상스 시대의 악마적이고 열등한 것이 아니고, 계몽주의 시대의 무지와 미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근대의 진화론적 발전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문화적 차이, 혹은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지만, 이런 인식은 그저 인류학을 전공하는 집단 내에서의 움직임으로 찻잔 속의 작은 소용돌이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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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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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을 쓰는 페터 비에리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비롯하여 <말의 격;> 등으로 이미 친숙한 느낌이었는지, 그의 신작이라는 <교양 수업>을 선뜻 골라들었습니다. 사실 ‘교양’이라는 단어는 아주 익숙한 편입니다. 아마도 대학에서 ‘교양과목’이라는 학과목들을 이수하면서부터 본격 교양수업을 듣게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제 경우는 의과대학의 예과과정에서 공부를 했는데, 생각해보면, 국사, 의학사, 문화사, 철학, 종교철학, 영어, 독일어, 라틴어 등 지금 생각해보면 주중에 한 시간을 빼고는 하루 8시간에 토요일 4시간까지 빼곡하게 들어차있는 수업시간표가 숨찰 정도로 강의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교양’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페터 비에리는 이 책에서 철학적 사유를 통한 교양의 정의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없지는 않습니다. 어떻든 서두에서 “교양이란 사람이 자신에게 행하는 그리고 자신을 위해 행하는 어떤 것을 말한다(9쪽)”라고 교양을 정의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교양을 쌓는 일은 남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혼자의 힘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교양 쌓기는 ‘무엇인가를 아는 것’과 ‘어째서 그런지 이해하는 것’을 양대 축으로 하여 앎의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이라고 정리합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알아야 할 것들의 비율적 관계를 이해하고, 정확함을 의식해야 한답니다.

교양을 정의하기 위하여 저자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 ‘깨인 사상’, ‘역사인식’, ‘표현’, ‘자아인식’, ‘주체적 결정’, ‘도덕적 감수성’, ‘시적 경험’ 등의 관점에서 교양의 의미를 살펴보고, 교양을 쌓는 길은 열정이 필요하다고 마무리를 합니다.

저자는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교양과 연결이 되었을 때 파괴적이고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즉 전체주의적 세계관이 교양이 가진 넓은 시선을 위축시키고 심지어는 질식시킬 수 있다는 지적인 셈입니다. 종교는 형이상학적 진실 여부를 가리기 보다는 각자가 자신의 삶에 부여하고자 하는 삶의 한 형태로서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이해의 다양한 모습을 논합니다. 그러니까 학문 언어와 문학 언어는 그 쓰임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에 대한 저자의 사유는 앞서 논한 교양 쌓기도 결국은 표현을 통하여 표출해야만 하는 것인데,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앎을 표현하는 언어는 ‘우리를 이해 능력이 있는 존재로 만든다’라고 규정합니다. 알고 있는 사실을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여, 적절하게 표현해야 교양이 있는 사람이 되는 셈입니다. 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소설을 쓰는 이유도 자신이 쌓아올린 앎을 적절한 표현방식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문학은 앎을 정확하게 서술하기 위한 방편인 셈입니다. 적확하지만 평범한 말로도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플라톤적 대화의 방법을 통하여 이 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문법적으로 잘 구성된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의 생각을 표현한다고 섣불리 말하지 말아야 한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문장도 실제로는 생각의 내용을 조금도 담지 않은 그저 헛소리인 경우가 숱하게 많다.(66쪽)”

저자는 자신이 쓰는 말과 글에서 철학적으로는 사고의 일치성이, 문학적으로는 사건에 투명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적절한 은유와 적확한 단어와 문장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철학적 깨어있음과 언어적 깨어있음이 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데 있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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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가로질러 - 밤, 잠, 꿈, 욕망, 어둠에 대하여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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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면 어떤 느낌이 떠오르십니까? 필자만 해도 ‘사방이 캄캄한 어둠에 싸여있는 세상’을 먼저 떠올릴 수 있습니다만,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그러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우리는 이미 밤을 잃어버린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밤’하면 또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요?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과학사를 가르치고 있는 에른스트 페트 피셔교수는 <밤을 가로질러>에서 ‘밤, 잠, 꿈, 욕망, 어둠에 대하여’하는 부제를 붙인 것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날이 밝을 때까지 밤새 잠을 자는 데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과 관련한 내용을 충분히 다를 것이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삶이 밤을 가로지르면서 어떤 속성을 획득했는지 살펴볼 것이다.(14쪽)”라고 적었습니다.

과학사를 전공하는 만큼 밤과 관련된 작은 주제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7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첫 번째 장은 우리의 선조들은 밤을 어떻게 인식했는가부터 시작하여 밤이 존재하는 이유를 지구과학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밤’하면 떠오르는 검은색이라는 이미지의 정체와 인간이 색조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도 설명합니다. 결국의 우주의 탄생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러한 서사구조는 이어지는 두 번째 장의 인류의 기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쩌면 밤이 존재했기에 인류는 단종되지 않고 이어져올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어서는 촛불과 마녀사냥 등 밤의 어두움이 주는 공포와 관련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어둠과 빛, 밤과 낮이라는 대비를 통하여 ‘올바로 보기’를 이끌어내고 있는데, 그 대목에서 ‘반대편의 말도 들어라’라는 참을 깨닫는 중요한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독일 자우얼란트의 성직자 마하엘 슈타페르트의 논문에 실려있는 안경의 알은 태양과 달이 그려져 있는데, 두 개아 안경알을 연결하는 부위에 Falsum an Vero et Verum a Falso(거짓을 참으로부터, 또한 참을 거짓으로부터)‘라는 라틴어 경구가 적혀있다고 합니다.

4장은 수면에 관한 내용입니다. 잠을 문학적으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선조들은 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짚은 다음 잠이 드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꿈으로 넘어갑니다. 사실 잠은 인간이 깨어있는 동안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수집한 앎을 기억에 저장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더하여 에너지를 절약하고 잠을 자는 동안 기력을 회복하며 성장과 재생이 일어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5장의 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연히 꿈의 해석 등 꿈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적에는 시시껄렁한 개꿈도 기억하던 것과는 달리,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도 무슨 꿈을 꾸었는지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일어났을 때는 잠시 생각이 나더라도 금세 잊어버리게 됩니다. 아마도 기억능력이 퇴보하면서 최근에 보고들은 것이 기억에 잘 남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에 나온 것들은 기억에 남을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6장 자연과학의 밤 측면은 밤에 관한 일종의 종합선물과 같습니다. 예를 들면 케쿨레가 벤젠고리 모형에 관한 영감을 얻은 것이 꿈이었다거나, 진화론을 착안한 다윈과 월레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과학의 발견에 인간의 낮측면과 밤측면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저자의 설명은 금세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7장 인간 속의 악은 더욱 그러합니다. 큰 주제의 흐름에서 이탈한 듯한 느낌이 남습니다.

저자는 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창조적인 밤을 믿는다. 왜냐하면 사람들 자신도 육체적으로 밤에서 기원하여 사랑을 통해 밤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삶은 밤을 통해 가치를 얻는다.(335쪽)”라고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낮, 즉 빛을 뒤쫓았지만, 여전히 밤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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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 할 만한 것 - 오시이 마모루가 바라본 인생과 영화
오시이 마모루 지음, 장민주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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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에 따르면 철학이라 함은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 원리 즉 인생관, 세계관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또한 존재, 지식, 가치, 이성, 인식 그리고 언어 등의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대상의 실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정의합니다. 이렇듯 심오한 의미 때문에 철학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런가 하면 개똥철학도 철학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비아냥거리는 듯하지만, 나름대로는 살아가는 의미에 대한 일반인의 뜻이 담겨있어서 그 또한 철학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철학이라 할 만한 것>은 <공각기동대>, <인랑> 등을 제작하여 ‘애니메이션을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오시이 마모루의 에세이집입니다. ‘오시이 마모루가 바라본 인생과 영화’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처럼 저자가 삶의 방식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세워왔는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작가는 SF를 통하여 인간을 이해하고자 시도해왔다고 하는데, 허구처럼 보이는 상황에 인간을 놓아보면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 가능해지더라는 것입니다. 즉 “끝까지 파헤치고 생각해가다보면, 모든 것은 해체된다. 그리고 의미는 사라져간다. 정말로 우리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이 세계는 존재하는가? 아니, 우리 자신은 정말로 존재하는가?(11쪽)” 등 철학적 의문이 커지게 된다고 합니다. 어떻든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조금 단순하게 ‘행복해지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것들을 나름대로 논고해보았다고 적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모두 6개의 범주로 구분해놓았는데, 첫 번째는 ‘버릴 것과 취할 것’입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행복의 기준을 만들어보라는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남의 행복을 탐내지 말고, 행복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지 말 것이며,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여러 요인들을 생각해보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두면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겠지요. 저자의 경우는 행복을 확인할 파트너로 아내나 딸이 아닌 개를 지정했다고 합니다. 언듯 보기엔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그의 판단이 그렇다면 그렇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주제인 ‘불완전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에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는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느 사회에 들어가던지 ‘자기자리를 만들어야 살아남는다’라고 말합니다. 흔히 ‘자기자리’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만, 그 자기자리란 반드시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시각입니다.

3,4,3(사시미)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조직의 구성원 가운데 30%는 조직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올리는 사람이고, 40%는 열 가지 가운데 서너 가지는 해주는 평범한 사람, 그리고 나머지 30%는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편이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30%도 조직에서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회가 건전한 사회라는 것입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개똥철학인가 싶었는데, 여기쯤 읽을 무렵 저자의 독특한 생각에 매료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탈원전과 관련하여 후쿠시마원전 사태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만, 탈원전하겠다는 발언을 심사숙고하지 않고 툭 던진 것 아닌가 의문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주장을 내세웠는지 궁금하다는 것인데, 결국은 정치인들의 자질 문제가 등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신 고질라>를 화두로 한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적은 것은 아마도 본업인 영화와 관련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철학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심오하지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경박하지도 않는, 정말 살아가는 문제에 대한 답이 보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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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기억이다 - 공공기념물로 본 서양 도시의 역사와 문화
도시사학회 기획, 권형진 외 지음 / 서해문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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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대한 관심이 큰 편입니다. 개인의 기억 뿐 아니라 집단의 기억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도시사학회가 기획한 <도시는 기억이다>는 일종의 집단 기억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저자들은 “인류 문명이 등장한 이래로 도시는 인간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활동성과물을 집약해 발전해왔다. 도시는 인간의 모든 삶의 흔적을 기억하고 전승하기 때문에, ‘도시는 기억의 산물이자 기억 자체’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억은 개인의 기억일 도 있지만, 아무래도 집단기억에 해당하는 부분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자들은 도시에 세워진 공공기념물이야말로 해당 도시의 역사문화경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아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13개의 도시의 공공기념물의 의미를 조명하여 이 책에 담았습니다. 모든 도시가 기억할만한 공공기념물을 가지고 있지만, 도시의 역사 등을 고려하여 지중해 권역에 속하는 아테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등 4개 도시를, 서유럽 권역에서는 마드리드, 암스테르담, 런던, 파리, 베를린 등 5개 도시를, 동유럽과 아메리카를 같이 묶어서 빈, 상트페테르부르크, 멕시코시티, 그리고 뉴욕 등 4개 도시를 대상으로 합니다. 물론 이들 도시를 선정한 것은 서양사의 전개과정을 보면, 도시마다 특별한 공공기념물을 만드는 전통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3개의 도시 가운데 물론 도시 전체를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암스테르담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2개 도시를 제외하고는 가본 적이 있어서 책에 적은 내용들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로마에서는 로만 포럼을, 베네치아에서는 산 마르코 광장에 세워진 마르코의 사자상을, 마드리드에서는 엘에스코리알과 망자들의 계곡을, 런던의 경우 트라팔가 광장만을, 파리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의 동상을, 독일에서는 뮌헨, 뉘른베르크, 베를린 지역에 나치가 세운 공공기념물을, 빈에서는 링슈트라세를, 러시아에서는 해체 이전에 세웠던 ‘대조국전쟁’ 기념비를, 뉴욕에서는 9.11으로 무너져 내린 세계무역센터의 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 도시에 있는 많은 공공기념물들 가운데 특정 주제에 국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공공기념물의 유래나 의미를 비롯하여 건립동기,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하는 역사적 사건들, 건립주체와 건립과정, 건립 이후에 대두된 갈등 등까지 상당한 깊이로 이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읽다보니 가본 도시에서도 미쳐 챙겨보지 못했던 기념물들이 있는 것을 보고, 진즉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물론 언젠가 다시 가볼 기회가 생긴다면 빼놓지 않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네치아의 경우는 두 번이나 갔는데도 산 마르코 광장의 원주 위에 세워진 마가의 사자상은 보았지만, 도제궁에 올려놓았다는 마가의 사자상은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여행은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알고 있던 내용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정리된 내용도 없지 않은 것 같아 다시 확인을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암스테르담이 번영하게 된 것은 스페인의 기독교세력이 국토회복에 성공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라공과 카스티야의 연합군이 이베리아반도에 남아있던 마지막 이슬람세력인 나스르왕국을 몰아낸 뒤로 들어선 가톨릭왕국의 종교탄압을 피해서 이슬람은 모로코로 유대인들은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던 것입니다. 이재와 상업에 밝은 유대인들이 유입되면서 네덜란드는 유럽의 상권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종교적 기적이나 청어잡이와 같은 경제적 요인이 핵심은 아닐 것 같습니다.

상당한 부피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흐름이 좋아서 금세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한번쯤은 다녀온 곳이고, 다녀온 후에 관련 지역의 역사나 볼거리에 대하여 정리를 해두었기 때문에 이해가 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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