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폴 서루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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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관한 생각의 백과사전’이라는 제목으로 독후감을 썼던 <여행자의 책>의 저자 폴 서루의 단편집 <세상의 끝>을 만났습니다. 20대 초반에 아프리카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하면서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30대부터는 영국에 살면서 여행을 다니고 여행기를 썼는데, 아직 그의 여행기는 읽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프리카 방랑>이 소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끝>에는 표제작인 ‘세상의 끝’을 시작으로 모두 14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의 무대 혹은 등장인물이 경험한 장소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장소가 분명치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만, 첫 번째 ‘세상의 끝’의 경우 런던에 있는 구역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저자 자신이 여행을 통해서 가본 장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옮긴이는 ‘변경지대의 씁쓸한 풍경화’라는 제목의 후기를 “폴 서루의 단편소설들은 대체로 상징적 의미에서 ‘세상의 끝’에 놓인 인물들을 그려낸다. 그들은 낯선 곳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 혼란과 좌절을 겪기도 하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반응하기도 한다.(381쪽)”라고 시작합니다. 어쩌면 여행이라는 것이 대개는 낯선 곳에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일인데, 특히 저자처럼 자유여행을 하는 경우에는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하겠습니다.

옮긴이는 이어서 ‘폴 서루는 이 단편집에서 자의로든 상황에 의해서든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군상에 초점을 맞추고 이주자들의 행각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도 때로 공감적으로, 때로는 냉담하고 신랄하게 서술한다’라고 정리합니다. 하지만 문화가 다른 탓인지 읽는 입장에서 쉬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런던에 있는 세상의 끝이라는 구역으로 이주한 부부와 여섯 살난 아들의 한 가정이 가장의 의도와는 다른 결말로 치닫는 것을 보면, 과연 미국인 가정이 거처를 나라밖으로 옮기는 것을 가장 혼자서 결정했을까? 그리고 이름처럼 세상의 끝이라는 동네에서는 동네사람들이 각자 섬처럼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 와중에 아내와 아들은 누군가와 만나고 있었다는 설정이 낯설어 보인다 하겠습니다.

코네티컷주에 있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프랑스를 여행하는 동안 마르세유에서 아내가 ‘자기 삶을 살고 싶다’는 이유로 남편을 떠나고, 그렇게 혼자된 남편은 코르시카를 여행하면서 음식점에서 일하는 프랑스 유부녀를 유혹해서 달아나는 장면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보니 불문학교수는 12년의 결혼기간 언행이 일치하지 않아서 부인과의 관계가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던 것이고, 프랑스 여인 역시 코르시카 태생의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염증을 내던 참이었던 것이 함께 달아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목처럼 ‘말은 곧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던가 심지어는 섬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않고 즉흥적으로 일을 벌이는 것이 과연 성공할까 싶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특유의 기생충-사실은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파리의 유충이라고 했습니다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하얀 거짓말’에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버림받은 여자들이 자기를 속인 남자에게 유산된 태아를 보낸다는 이야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리지 않은 셔츠를 입으면 파리의 유충에 감염되어 온몸이 종기가 돋아나는 비상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은 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를 다녀오기 전에 이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아프리카 여행을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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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프랑스사 - 골 지방의 선사 시대부터 20세기 프랑스까지 이야기 역사 8
윤선자 지음 / 청아출판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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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박3일 일정으로 파리를 다녀온 적은 있습니다만, 업무로 방문한 탓에 파리를 구경할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길지 않은 일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프랑스에 대하여 조금 깊이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고른 책이 <이야기 프랑스사>입니다. ‘골 지방의 선사시대부터 20세기 프랑스까지’라는 부제처럼 통사적 개념으로 정리된 내용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의 왕가들이 혼인으로 엮여, 전쟁으로 땅을 주고받은 일이 무수히 반복되어왔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유럽대륙의 상당부분을 지배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로마제국이 가장 넓은 지역을 지배했고, 그 다음이 나폴레옹 시절의 프랑스가 될 듯합니다. 현대의 프랑스 지역의 지배구조를 중심으로 하여, 그 시대의 사회, 정치, 종교, 사상과 문화 등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특정 분야에 국한한 역사도 흥미롭지만, 시대의 전체 모습을 보려면 다양한 영역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옳겠다.

현대 프랑스의 영역을 고대에는 골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유럽의 골 지역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180만 년 전에서 1만 년 전의 구석기 시대였다고 합니다. 60만 년 전부터는 불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의 뼈가 도르뉴강 유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구석기 시대를 지나 중석기, 신석기를 거쳐 청동기에 이르는 다양한 고고학적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고 합니다. 소아시아의 히타이트 왕국에서 시작한 철기문화는 페니키아 사람들에 의하여 지중해를 거쳐서, 그리고 할슈타트 사람들에 의하여 중부 유럽경로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기원전 500년 철기문화를 가진 켈트족이 독일남부에서 대거 이주해왔고, 뒤이어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로마사람들이 진출하여 켈트족을 몰아냈습니다. 골지역을 장악한 로마사람들은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게르만족과 경계를 이루었는데, 라인강 동쪽 지방은 로마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임에 따라서 골지방 역시 드루이교 등 켈트족 특유의 종교가 기독교에 밀려났습니다.

훈족의 서진에 따라 밀려난 게르만족이 유럽대륙에 흩어지면서 이미 기울고 있던 로마제국이 멸망한 다음에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이 골 지방의 북쪽에 자리를 잡고 프랑크왕국이 성립되었습니다. 중부에는 부르군트왕국이, 서쪽에는 서고트왕국이 동쪽은 발칸반도에서 이탈리아반도에 이르는 동고트왕국이 차지했습니다. 프랑크왕국을 창건한 메로빙거왕조는 카롤링거왕조로 이어졌고, 다시 카페왕조로 이어지면서 중세시대의 프랑스를 지배했습니다. 왕국이라고는 하지만, 지역단위로 영주가 지배하는 장원을 중심으로 하여 분열되어 있는 모양새였다고 합니다. 로마제국 시절부터 기반을 다진 기독교와 왕국이 동조하는 그런 관계를 유지하면서 점점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갔습니다.

프랑스는 1589년 카페왕조 계열의 부르봉왕조가 들어서면서 왕권을 강화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태양왕 루이 14세에 절정을 맞았습니다. 그 무렵에는 에스파냐왕국 역시 부르봉왕조의 펠리페5세가 들어서면서 부르봉왕조의 전성기를 맞은 셈입니다. 하지만,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한 것처럼 부르봉왕조도 기울기 시작하면서 절대군주제를 벗어나 계몽의 시대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대혁명을 거쳐, 나폴레옹의 황제정, 왕정복고 그리고 공화정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양차 세계대전, 그리고 이후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등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통사이면서도 이야기로 풀어내는 역사인 만큼 쉽게 읽히는데, 다만 편집상의 미흡함 때문인지 읽는 흐름이 걸리는 부분들이 적지 않은 것이 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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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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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로 처음 만난 조지 오웰이었지만, 그를 인식하게 된 것은 <더 저널리스트 : 조지 오웰>을 읽으면서부터입니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는 그의 <동물농장>이나 <1984>를 읽은 것도 그 뒤의 일입니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이란 사람들이 ‘요즘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요즘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이라고 정의했다지만, 고전을 모두 읽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늦게라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로 주목을 받게 된 조지 오웰이 글쓰기에 전환을 모색하던 시기의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어 그에 대한 생각의 두께를 조금 더할 수 있었습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는 진보적 성향의 ‘레프트 북클럽’으로부터 실업상태인 탄광노동자들이 넘쳐나고 있던 영국북부 지역의 상황을 조사해달라는 청탁을 받아 쓴 것입니다. 오웰은 1936년 초 위건, 리버풀, 셰필드, 반즐리 등 랭커셔와 요크셔 일대의 탄광지역을 찾아 광부들의 집이나 광산노동자들이 묵는 하숙집에서 그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오웰이 청탁을 받아들인 이유는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기 위한 행보였다고 했습니다. 스스로가 사회주의에 호의적인지 확인하고, 당시의 상황이 용인할만한 것인지를 판단하고, 계급이라는 문제에 대한 입장도 확고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책의 1부가 그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실업을 다룬 세미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부에는 자신의 성장배경, 영국의 계급문제에 대한 소신, 그리고 정치적 견해에 관한 에세이 6편을 담았습니다. 2부의 내용을 보면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사뭇 높습니다. 박노자교수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했던 오웰을 ‘비판적 개인주의자’라고 정의한 것처럼, 오웰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도 당시의 사회주의자들에게 할 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악마의 대변인’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웰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애정이 담긴 비판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웰이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것은 당시 개인을 속박할 위험이 큰 전체주의가 부상하고 있다는 감을 잡았고, 그를 저지할 수단으로는 사회주의가 유일한 수단이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 급한 문제는 파시스트 세력이 유럽을 장악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주의를 효과적인 형태로 널리 그리고 빨리 확산시키지 못한다면, 파시즘을 타도할 가망은 없어진다. 사회주의야말로 파시즘이 상대해야 할 유일한 적수이기 때문이다.(288쪽)” 역시 오웰이 걱정했던 것처럼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세력을 얻었고, 스페인 역시 프랑코의 독재정권이 들어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과 이탈리아는 연대하여 자유진영의 말살에 나섰습니다. 물론 공산주의화된 소련이 동참하기는 했지만, 파시스트의 의도를 무너뜨린 것은 오웰이 꿈꾸던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이 변하는 것처럼 ‘주의’ 역시 세월의 흐름이 따라 변하는 것이라서 사회주의가 여전히 정답일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오도된 사회주의가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이 크다고 보이며, 특히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오웰이 우려했던 것보다 더 심한 전체주의를 추구하는 세력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주의에 편승한 어설픈 감상주의에 젖다가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무너트리는 불행을 자초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필자가 오웰로부터 배우려하는 것은 그의 비판의 기조입니다. 사회주의를 지향했지만, 나라에 대한 충심은 분명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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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 인문학자와 함께 걷는 인상파 그림산책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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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 미술에서 현대미술로 넘어가는 격변기의 예술사조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예술가와 그의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파리 미술관 역사로 걷다; >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고전주의 미술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인상파 등 다양한 예술사조를 이끌던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는 근대 프랑스 미술을 더 공부하기 위한 책읽기였습니다.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한국사회의 현실과 관련된 문화연구에 관심을 가졌고, 영국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문화이론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귀국해서는 대학에서 영미문화를 강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중문화분석을 통하여 정치 사회문제를 설명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는 근대화되던 19세기의 프랑스 미술계의 변화를 주도했던 인상파 화가들의 개별적 삶과 그들이 그런 삶을 택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지금이야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이 애호하는 바 있지만, 그들이 작품 활동을 할 때만해도 고전주의 미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때라서 비판의 대상이었고, 그림을 잘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상파 화가들의 다양한 미술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들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품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그런 작품을 그리게 된 배경, 즉 뒷담화가 주요한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저자의 서문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인상파는 시인 보들레르의 생각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화가들이었다(6쪽)’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 예술만을 복제하는 19세기 파리의 예술계를 개탄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성을 담아내는 것도 고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라는 것입니다.

인상파 화가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화가별로 구분하여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 인상파의 탄생, 인상파 화가들, 인상파와 자본주의, 인상파와 파리, 인상파의 종언 등의 제목으로 인상파가 태동하던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로부터 인상파가 해체되기까지의 과정을 사람 중심이 아니라 시대상으로 구분하고 있어서 인상파화가들을 모두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874년 4월 파리 카프신가에 있는 이전의 나다르 사진관에서 열린 카미유 피사로,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에드가 드가, 폴 세잔,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베르트 모리조, 아르망 기요맹 등의 작품으로 열린 전시회를 기점으로 인상파가 시작된 셈입니다. 전시회에 온 잡지 <샤리바리>의 비평가 르로아가 모네의 <인상-해돋이>를 거론하며 ‘날로 먹는 장인 정신의 자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라고 한 악담에서 시작되었는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팔아야 하는 미술상의 입장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아서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합니다.

인상파 화가들이 추구한 미술은 ‘빛의 변화에 따른 순간적인 형태의 변화를 포착하는 미술양식으로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깊이 없는 사물의 인상을 표현하고자 했다’라고 정의됩니다. 이들에게는 빛의 변화가 중요했기 때문에 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고, 따라서 일상에서 그림의 동기와 대상을 찾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인상파가 추구한 것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이 화가에게 남긴 인상, 즉 화가 내부의 정서를 그림에 담아냈기 때문에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 역시 나름대로의 감정에 따라 느끼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림에서의 인상주의는 문학의 혁신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 등의 작가들이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소설에 적용한 것입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각자 추구하는 바는 달랐는지 모르지만, 어려운 여건을 같이 겪어가는 과정에서 서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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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책마을에서
정진국 지음 / 봄아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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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이란 말이 그리 생소하지는 않지만 막연한 듯하여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보니 지난해는 ‘함께 읽는 2018 책의 해’였던 모양입니다. 책읽기를 좋아한다면서도 해를 넘겨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든 행사의 일환으로 책마을을 선정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추진 배경에는 “기존의 ‘책 읽는 도시’사업은 광역 또는 기초 지자체 단위의 행정기구 중심의 독서운동으로 확산중이나, 보다 생활과 밀착된 공간에서 책과 관련된 일상이 영위될 수 있도록 특성화된 마을 만들기 사업이 필요하며” 특히 ‘책으로 특성화된 마을, 책을 매개로 한 행복한 마을 공동체 조성을 위한 시범사업’이 제안되었던 것입니다.

시범사업의 대상 지역으로는 군포가 선정된 듯합니다.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주민과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책읽기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다양한 전시행사도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군포는 서울에서도 멀지 않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갈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업은 유럽에서 꽤 오래전부터 해오던 책 마을 사업을 표본으로 삼아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은 마침 <유럽 책마을에서>를 읽게 되면서 든 생각입니다. 구글에서 책마을에 해당하는 ‘book town’을 검색하면, ‘북타운은 중고책이나 희귀본을 파는 책방이 많이 있는 마을입니다. 뿐만 아니라 문학관련 축제도 열고 있어서 책읽기를 좋아하는 여행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타운들은 국제 책마을 기구(International Organisation of Book Towns)라는 단체를 구성하여 서로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유럽에 많은 책마을이 있고, 아시아에서도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 등에도 있다고 합니다.

<유럽 책마을에서>은 파리에서 미학을 공부한 미술평론가 정진국님이 경향신문에 연재하던 유럽의 책마을 탐방기를 묶어 2008년에 <유럽의 책마을를 가다>를 증보 개정한 책입니다. 유럽 각국에 흩어져 있는 책마을을 직접 방문하여 책과 관련된 사람들은 물론 마을 분위기, 책과 관련된 사업의 내용과 또 여행의 느낌 등을 다양하게 적었습니다.

유럽에서 책마을이 태동하게 된 배경은 도시에서조차 책방과 출판사가 크게 줄어가고 있는 상황이고, 농촌은 농촌대로 이농으로 인하여 마을이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황이 서로 맞물리면서 상보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으로 시작한 것 같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서점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들이 멀리 시골까지 책을 찾아갈 것인가에 의문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결국 책마을 역시 많지 않은 열혈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정도에 머무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연재하던 원고를 묶은 까닭일 것 같습니다만, 담겨진 내용이 단편적이라는 느낌이 남습니다. 대부분의 책마을이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이라거나, 유럽이나 영미권에서 나온 희귀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크게 매력을 느낄만한 점은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나라에서도 책마을을 조성하는데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참고할 점은 분명 있어 보입니다. 개정판이 2014년에 나온 탓인지 파주출판단지와 관련된 내용이 두어줄 나오는 것 말고는 2018년 시행이전의 책마을 조성에 관한 움직임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학 전공자답게 유려한 문장이 읽는 맛을 더합니다. 다만, 작가의 주관적인 글은 읽는 이를 헷갈리게 하는 구석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동포끼리의 부끄러운 대치야 말할 나위도 없고, 레바논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까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있다고...(289쪽)” 남북대치상황은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짚어야 할 것이고, 레바논 등의 파병은 전쟁터가 아니라 유엔 평화유지군의 일환으로 파병한 것인데, 마치 총탄이 날아다니는 지상군 전투가 벌어지는 것처럼 적은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저자가 유럽의 책마을에서 조우한 책들 가운데 국내에 번역소개된 것들을 한번 찾아 읽어볼만하다는 것도 책읽기의 수확하운데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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