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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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저도 큰 아이 덕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비롯하여 여러 작품을 읽었습니다. 그의 추리소설에서 유가와교수, 가가 형사 등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등장해왔습니다만,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는 심참 딱지를 뗀 닛타 고스케 형사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그리고 <매스커레이드 이브>,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에 이르는 삼부작에서 활약을 하게 됩니다.

제가 하는 업무 상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지방의 대도시로 출장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장을 가게 되면 대체로 무난한 숙소에서 묵게 됩니다. 예전에 정부에서 일할 때는 외국에 출장을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그때도 무난한 수준의 호텔을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스커레이드’ 삼부작에 등장하는 동경의 코르테시아도쿄 호텔 정도의 고급 호텔에 묵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목에 나오는 ‘메스커레이드’란 ‘가면’ 혹은 ‘가면무도회’를 의미합니다. 속마음을 모두 내비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속마음을 어느 정도는 감추기 마련인데, 특히 가면을 쓰듯 철저하게 속셈을 감추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호텔이라는 장소는 그런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장소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그런가 봅니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는 두 가지 독특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미 일어난 3건의 살인사건을 통하여 네 번째 살인사건이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서 일어날 것이 예고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세 건의 살인현장에 남긴 쪽지에서 발견된 두 개의 숫자에서 추리해낸 것입니다. 10월 4일 일어난 첫 번째 사건 현장에는 45.761871, 143.80303944라는 두 개의 숫자가 남겨졌고, 이런 형식의 숫자가 두 번 더 살인현장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개의 숫자의 의미를 생각해보려 머리를 쥐어짜 보았습니다만, 아주 오래 전에 추리소설을 졸업한(?) 탓인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에 많이 가보지 않아서 현지사정에 어둡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요소는 범인이나 범행대상이 오리무중이라는 것입니다. 즉 살인사건이 발생할 장소만 예고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둠 속에서 문고리를 잡는 식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서 묵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더 쏠쏠한 것 같습니다. 호텔방에 비치되어 있는 물품을 슬쩍 집어가는 사람들, 또 그런데 신경을 써야하는 호텔사람들을 골탕 먹이려는 사람들, 혹은 호텔에서 비싼 것들을 먹고는 달아나는 사람들, 호텔을 불륜 상대를 만나는 장소로 이용하는 사람들, 그런 현장을 덮치려는 사람들... 정말 그런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닛타 고스케 형사를 지원하는 호텔 직원 야마기시 나오미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 호텔직원의 전형 같습니다.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생각하고 응대한다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모습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고객이 왕이다’라고 생각해왔던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 ‘감정노동자의 권리’가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갑과 을의 역할이 바뀐 세상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이 갑이 되어가는 세상입니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읽다보면 연쇄살인의 개념도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모방범죄가 생긴다고 합니다만, 인터넷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비슷한 형태로 사건을 공모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범인이 비슷한 유형으로 사건을 벌여 수사진을 헷갈리게 만든다는 것인데, 동경 경시청 사람들은 또 그것을 해결해낸다는 것이니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그렇듯 흡인력이 대단해서 손에 들면 일단 끝장을 보아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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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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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회사에서도 외부회의는 대부분 서면으로 대체하고 내부회의마저도 자제하는 형편입니다. 아무래도 책읽기에는 딱 좋은 상황입니다. 우한폐렴이 확산되던 2월 정부가 심각단계로 격상하면서 제가 책을 빌던 동네 도서관이 문을 닫았습니다. 빌려온 책도 반납하지 못하고 새로 빌려오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사두고 읽지 못하던 책들을 읽었다가 그마저도 다 읽었습니다. 읽을거리를 찾다가 큰 아이가 읽은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예전에도 가끔 읽은 적이 있기는 합니다.

큰 아이는 기욤 뮈소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대체로 보면 읽으면서도 상황의 전개에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즐기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기욤 뮈소의 2013년 작품입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는 사람들이 노트북을 매개로 하여 과거에 있었던 불행한 사고를 막아보려 노력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니 무전기를 매개로 하여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추적하는 드라마 <시그널>이 있었고, 우체통을 매개로 한 영화 <시월애>가 있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처럼 기욤 뮈소의 <내일>에서도 이미 자살한 엠마가 남긴 노트북이 매개체가 됩니다.

우연히 노트북을 얻게 된 매튜가 노트북의 주인과 메일을 주고받는 가운데 그녀와 자신이 1년의 시차를 두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1년 전의 시점에서 앞으로 일어날 자동차 사고를 막아 사고로 죽은 아내를 구하려 합니다. 시간여행에서 중요한 점은 과거의 사건에 개입하면 미래의 상황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나비효과’를 말하는데, 나비효과는 미스터리소설 작가인 브래드버리가 1952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천둥소리>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나비효과가 널리 알려진 것은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초입니다. 1961년 컴퓨터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상변화를 예측하는 과정에서 소수점 세 자리 아래의 미세한 숫자가 더해지는가에 따라서 맑음과 폭우로 전혀 다른 예측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무전기나 우체통을 사용하여 시차를 연결한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던 반면 <내일>에 나오는 노트북의 경우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은 노트북에 설정된 시간이 과거의 것이라면 동일한 노트북에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3차원의 개념에서 보면 현재가 시간이라는 요소를 더한 4차원의 세계에서는 서로 시간대가 다른 동일한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세월의 흐름 속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에 대하여 작가는 다중우주의 개념을 짧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상응하는 또 다른 우주, 각기 다른 시간 선상에서 모든 게 실현가능한 우주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내세우는 학자들이 있다(195쪽)”라고 말입니다.

<내일>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내의 죽음 이후에 삶의 의미를 잃고 있는 매튜입니다만, 사랑이란 아무래도 상대적인 것이고,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엉똥한 일을 불사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아내의 죽음을 되돌리려는 매튜와 삶의 의미를 잃어가던 1년 전의 에마의 삶이 변하게 된 것은 나비효과가 적용된 까닭일 것입니다. 다만 나비효과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해가려면 두 주인공이 넘어야 할 새로운 장애물이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매튜의 아내 케이트는 잘나가는 심장외과 전문의입니다만, 이야기의 반전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그녀가 하려는 일은 제게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려면 심장이식수술이 유일한 해결책인데, 심장이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헬싱키’라는 아주 희귀한 혈액형을 가진 경우라면 이식할 심장을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멀쩡한 사람을 죽여서 이식할 심장을 얻겠다는 생각을, 과연 의사가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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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이란-페르시아 바람의 길을 걷다
김중식 지음 / 문학세계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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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이란에 가보려 했습니다만, 여성들이 여행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다고 해서 아내가 썩 내켜하지 않는 바람에 다른 곳을 다녀왔습니다. 이란은 고대 페르시아 왕국의 중심이었습니다. 유럽과 맞선 강국이었지요. 요즈음 이란과 미국의 관계가 대치국면에 서는 바람에 당분간은 여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호전되었던 몇 년 전에 다녀왔어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페르시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구입했던 책을 차일피일 미룰 수 없어 읽었습니다. <이란-페르시아 바람의 길을 걷다>는 주駐 이란 한국 대사관에서 3년 6개월간 문화홍보관으로 일한 김중식 시인이 쓴 페르시아 문화 답사기입니다. 시인에 따르면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리거나, 경쟁이 없는 불모지에 적응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정착하거나 혹은 유랑하거나’의 갈림길에서 김시인은 유랑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 무렵 찾아온 기회가 이란에서 일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바짝 마른 사막에서는 식물이든 동물이든 살아남기 어려운, 그래서 모든 삶이 평등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구요. 사막으로 숨어든 사람들은 죽지 않고 살기 위하여 풍요대신 안전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고 하는군요.

김시인은 이란식 문화유산답사기가 있으면 국내에 소개하려 하였지만, 찾아내지 못하고 결국은 직접 써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란의 역사와 문화를 녹인 기행문 형식인데, 야즈드-수사-페르세폴리스-시라즈-이스파한-커션-테헤란의 순서로, 여행의 일정을 고려한 순서가 아니라 이란 역사에 등장한 주요 왕조들이 수도로 삼았던 도시들을 연대 순서로 배열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순서대로 여행을 하기에는 불편할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저자는 이란에서는 보이는 것만 보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국의 궁성이 사막 속의 돌산처럼 보이고, 오아시스는 빨래터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적 상상력으로 과거를 입체적으로 복원해야 그림이 그려진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상상력이 지나치게 펼쳐진 것 같다는 느낌을 책 읽는 내내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만국의 문’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만국’은 제국 내 28개 민족과 부족이었다라고 설명하면 그만일 것을 “칼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했을 때, 그 만국은 유럽이었을 것이다(144쪽)”라고 덧붙인 것은 사족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책을 읽는 입장에서는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스스로 상상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인데, 시인의 상상력에 기대면 나름대로의 상상이 빈약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사파비 왕조의 수도였던 이스파한은 ‘세상의 절반’이라는 별명이 있기도 한데, 이스파한의 중심도로가 세계 최초의 가로수길이라는 것입니다. 사파비 왕조는 1502년부터 1736년까지 성립했던 왕국입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로수길은 기원전 10세기에 히말라야 산록에 조성된 ‘그랜드 도랑그’도로라고 합니다. 물론 ‘그랜드 도랑그’가 정확한 이름은 아닌 듯합니다.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도 기원전 5세기 무렵 가로수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란 여행에서 가장 불편한 점은 불확실성이라고 합니다. 정보가 통제되어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데다가 제공된 정보마저도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란 정부가 관광 사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관광사업의 활성화가 가져올지도 모르는 부작용을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페르시아 왕국의 유산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란의 역사적 유적에 대한 구체적이고 근거가 분명한 사실을 더 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다만 참고할만한 자료를 밝히고 있어서 앞으로 더 공부를 해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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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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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시작한 우리 회사의 독서동아리 독심회(讀心會)에서 두 번째 읽은 책입니다. 첫 번 읽은 책은 제가 추천했던 <내 인생 최고의 책; http://blog.yes24.com/document/9821751>이었는데, 이미 읽고 독후감을 썼던 책이라서 따로 독후감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김사인 시인의 <가만히 좋아하는>는 동아리 회원이 정했는데, 아마도 시집인 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독서동아리에서 시집을 읽는 경우는 드물 것 같습니다. 제 경우도 시를 읽고 느낌을 적는 것이 참 어려운 작업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돌아가면서 인상 깊었던 시를 읽고 자신의 느낌을 발표하는 순서로 진행해보았는데 의외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김사인 시인의 시집에 붙인 문학평론가 임우기님은 백석의 맥을 잇는 시인이라고 평했습니다. 백석의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http://blog.yes24.com/document/7632402>에 실려있는 백석의 시들을 감상한 느낌은 고향집, 고향마을을 떠올리게 만들더라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좋아하는>에서는 그런 느낌보다는 조금 투박하고 거칠면서도 솔직한 시인의 속내가 읽히더라는 생각입니다. 그런가하면 ‘자연과 세속의 가난 속으로 유랑하는 시’, ‘좌절의 기억과 죽음을 애써 찾아가는 길 위에서 얻은 시’라고 규정하는 임우기 평론가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좋아하는>에서는 독특한 시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시인의 시에서 운을 떠오거나, 시의 일부를 빌어오거나, 심지어는 전문을 빌어다 시를 엮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구요?”라고 합니다.

<가만히 좋아하는>을 읽은 회원은 「깊이 묻다」라는 제목의 시를 같이 나누어 읽고 싶은 시로 꼽았습니다. “사람들 가슴에 / 텅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 사람들 가슴에 / 길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 사람들 가슴에 / 겁에 질린 얼굴 있다 / 충혈된 눈들 있다 //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날선 조선낫 하나씩 숨어 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 이유는 ‘누구나 비밀은 있고, 누구나 사연은 있고, 누구나 슬픔은 있고, 누구나 분노도 있고, 열정도 있다’는 것입니다.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지내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어냈다는 것입니다.

이 시는 또한 ‘웃음 뒤에 칼을 감추고 나는 / 계면조 뒤에 핏발선 눈을 감추고 나는 / 비겁하게도 / 비겁하게도 / 사랑을 말하네 / 역수를 건너던 자객쯤이나 되나 / 비장의 이 허장성세 / 칼은 이미 /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라네 / 있는지 없는지도 다 잊었다네’라고 노래한 시, 「소리장도」와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자신에 대한 회한을 담았다고 생각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삼십육계’라는 병법 가운데 제 10계인 소리장도(笑裏藏刀/笑里藏刀)는 허허실실로 웃음으로 칼을 감춘다는 뜻입니다. 역수를 건너던 자객은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하여 역수를 건넌 ‘형가(荊軻)의 고사를 끌어왔습니다. 소리장도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독서동아리 회원들의 나이가 참 다양한 덕분에 다양한 세월의 흔적을 나눌 수 있는 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모른다」는 제목의 시에 등장하는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를 요즘 젊은이들은 전혀 모르는 놀이입니다만, 제 경우는 추억 속에 묻어둔 어린 시절의 놀이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이런 놀이를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만, 비슷한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의 추억 속에 오롯하게 살아있음입니다. 심지어는 난개발 때문에 사라진 옛 풍경들마저도 그때를 살았던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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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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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우한폐렴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네덜란드 중부 라런에 있는 싱어 라런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600만유로(약 80억원)의 가치를 가진 반 고흐의 그림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Parsonage Garden at Nuenen in Spring, 1884)』이 도난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범인들은 우한폐렴으로 휴관 중이던 미술관의 유리문을 깨고 훔쳐갔다고 합니다.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모양입니다. 도나 타트의 장편소설 <황금방울새>는 바로 네덜란드 화가 카렐 파브리티우스(1622~1654)의 동명의 그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카렐 파브리티우스는 1640년대에 암스테르담에 있는 렘브란트의 공방에서 수련을 했으며, 1650년에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고향 델프트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활동하던 파브리티우스는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집 근처에 있던 화약창고가 폭발한 사고입니다. 젊은 화가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뿐 아니라 『황금방울새』를 비롯한 10여점의 그림만 남기고 대부분의 작품들마저도 잃고 말았다고 합니다. 파브리티우스가 베르메르에게 그림을 가르쳤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황금방울새』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와 함께 네덜란드 화단에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도나 타트의 설명에 따르면, “이 화가는 렘브란트의 제자이자 페르메이르의 스승이었어. 이 작은 그림은 사실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를 잇는 잃어버린 고리야. 저 선명하고 순수한 햇빛을 보면 페르메이르가 빛을 그리는 법을 어디에서 배웠는지 알 수 있어.(41쪽)”라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아주 작은 그림으로 창백한 배경에, 홰에 묶인 사슬을 발목에 찬 노란색 방울새를 그린 것입니다. 사실 족쇄와 사슬에 묶여있는 새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앞서 파브리티우스가 화약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도나 타트는 소설 <황금방울새>에서 불행한 화약사고에서 살아남은 그림, 『황금방울새』가 미술품을 노리는 누군가 폭약을 터트린 사건에서도 살아남아 이야기의 주인공 시오에게 전해졌다가 결국에는 미술관으로 되돌려지기까지 과정을 따라갑니다. 그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 보리스를 거쳐 유명한 미술품을 암거래하는 조직으로 넘어갔다가 미술관으로 되돌려지게 돕니다. 그 과정을 보면 시오에게 『황금방울새』는 족쇄 같은 것이었던 셈입니다.

친부가 떠나고 어머니와 어렵게 살던 시오가 미술관에서의 폭발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뒤에 보호자 겸 후원자를 찾는 과정을 보면 뭔가 나사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잘 갖춰졌을 것으로 생각한 미국이 내막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친부 혹은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희망사항은 고려되지 않고 보호자가 된다는 점 말입니다. 시오의 경우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에 끌려 라스베이거스로 옮겨가지만 알코올과 도박에 빠진 아버지가 시오를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지내던 시오가 사고 후에 친구 엔대의 집에 위탁되었다가 갑자기 등장한 아버지를 따라 라스베이거스로, 그곳에서 아버지가 사고로 숨진 뒤에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서는 옛날 가구를 복원하는 호비 아저씨와 함께 살기에 이르지만, 일찍 시작한 마약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 모습을 이야기 초반부터 끝까지 아무렇지 않게 이어가는 것을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표현의 자유는 향유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가 곪아 가는데 문학도 일조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떻든 이야기는 긍정적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범죄가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주인공을 비극 속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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