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기욤 뮈소 지음, 김남주 옮김 / 밝은세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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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 고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가끔은 세상사는 일이 이것은 아니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과감하게 변화를 선택하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새로운 일이지만 배워가면서 성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변화를 선택한지도 벌써 12년째인데, 또 변화를 선택하는 결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욤 뮈소의 소설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는 결혼을 앞두고 새로운 선택을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줄리아 로버츠와 리차드 기어가 주연한 <런 어웨이 브라이드>가 생각나는 설정입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두 개의 프롤로그를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는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 약혼녀와 절친을 떼어놓고 달아난 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순간 엘비스 프레슬 리가 부른 <이츠 나우 오어 네버>가 흐르는데, ‘지금 하거나 영원히 하지 않거나’하라는 것입니다. 즉 달아나거나 아니면 그럭저럭 살아가는 선택을 하라는 순간이었던 셈입니다.

두 번째 프롤로그도 있습니다. 그렇게 현실을 도피한 남자가 10년 후에 사랑을 하게 된 여성과 헤어지는 장면입니다.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유는 ‘당신과 함께 있으면 그녀가 위험해진다’라는 내면의 소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환청을 듣는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5년의 세월이 지난 뒤, 남자는 현실을 도피한 목적을 달성합니다. 잘나가는 정신과의사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이 의미가 있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07년 10월 31일 토요일 아침 8시에 눈을 뜬 그는 옆자리에 누운 여자의 정체도 확인할 겨를이 없이 바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방송출연에 이어 진료실로 와서 진료를 하게 되는데, 진료실에 보호자 없이 나타난 어린 여자아이의 진료를 거절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5년 전에 헤어진 연인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그녀를 버린 이유를 설명하고, 그 다음에는 차를 운전하다가 도박 빚을 받으러 온 해결사가 잘라낸 손가락을 들고 병원으로 가서 접합수술을 받고, 그날 밤 자정에 총에 맞아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야기가 그렇게 끝나면 싱겁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만, 죽음을 맞은 남주가 정신이 들고보니 2007년 10월 31일 토요일 아침 8시, 바로 죽음을 맞던 날의 아침이 시작되던 시간입니다. 어디서 한번쯤 들어본 듯한 상황입니다. 바로 빌 머레이와 앤디 맥도웰이 주연을 맡았던 1993년작 영화로 우리나라에는 <사랑의 블랙홀>로 소개되었습니다. 원제목은 Groundhog Day인데, 성촉절이라고 번역되는 이날은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지역에서 2월 2일에 지내는 기념일입니다. 이날 마멋이라고도 하는 그라운도호그가 굴에서 나와 자신의 그림자를 볼 수 없으면 굴을 떠나는데, 그러면 겨울이 끝나게 되지만, 그림자를 보면 도로 굴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겨울이 6주간 더 지속된다고 민간에서 믿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의 블랙홀>에서도 남주가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눈을 떠 반복되는 일상을 지내면서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간다는 설정이었습니다.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에서도 죽음으로 끝난 하루가 다시 반복되면서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아 사건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남주의 노력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를 통하여 뮈소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타로에 있는 ‘이름 없는 비밀’이라는 열세번째 카드, 즉 죽음이라 부르는 카드의 의미입니다. ‘그 카드는 한 단계의 끝을, 근원으로의 회귀를 의미(165쪽)’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서 뭔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죽음은 가장 위대한 교사’라는 것입니다. 일상이 세 차례 반복되는 동안 뒤틀려있던 상황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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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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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작가로 알고 있던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연애소설이라고 해서 궁금했습니다. 물론 제가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나이는 아닙니다만, 추리소설 작가가 쓴 연애소설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사토자와 온천장 스키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밀당이 주제입니다. 사토자와라는 지명을 썼습니다만, 구글지도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가상의 장소인 듯합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나가노현에 있는 노자와 온천스키장을 무대로 삼았다고 합니다. 작가가 동계스포츠에 관심이 많고, 특히 스노우보드를 즐겨 탄다고 하는데, 그런 작가적 성향을 고려하여 스노우보드 전문지의 청탁을 받아 연재한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대도시 도쿄에 사는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를 통해서 동계스포츠, 특히 스노우보드에 대한 홍보를 겸한 그런 기획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주로 스노우보드를 타기 위하여 스키장을 찾고, 그 와중에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추리소설 작가다운 역량(?)을 발휘하여 반전에 반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도쿄의 리모델링회사에 다니는 회사원들과 도쿄 시티호텔에 근무하는 호텔리어들, 그리고 도쿄 시내에 있는 백화점의 화장품코너에서 일하는 직원 등, 크게는 3개 회사에 다니는 젊은이들 사이에 펼쳐지는 짝찾기와 일탈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고 직장 동료라는 점에서 갈등보다는 서로 도와주는, 그런 분위기도 좋은 것 같습니다.

작가가 스토우보드를 전문가급으로 타는데다가 작가이기 때문에 스키장이나 스노우보드 타는 기술 등에 관하여 상세한 설명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운동신경이 둔한 탓인지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친구들이 이끄는대로 스키장에 가서 배워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사를 내려오는 동안 미끄러져 내동댕이쳐지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어렸던 탓인지 마찬가지로 스키를 타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 같아 결국은 우리 가족은 스키 배우기를 포기하는 바람에 여전히 스키장과는 거리가 먼 편입니다.

앞서도 사랑을 찾는 과정에서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배우기도 합니다. 사실을 운명이 정해준 짝이라면 어떻게든 인연이 엮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번 도전에서 실패했다고 해서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긴 그마저도 운명의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한 가지 더 조심해야 할 점은 자리에 없다고 해서 누군가의 뒷담화를 하는 것만큼은 자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뒷담화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본인의 귀에 들어가기 마련인 듯합니다. 스키장처럼 장비를 제대로 갖추는 경우에는 누군가 누군지 구별이 가지 않은 상황도 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자기변명을 늘어놓으려다가 생뚱맞게 남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는 특히 이미 발표한 작품에서의 표현을 다른 작품에서도 활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앞서 말씀드린 스키 타는 사람들이 두툼한 옷을 입고 설안경과 안면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에 진면목이 가려지기 마련인데, 이런 모습을 두고 마치 가면무도회에 참석한 듯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의 마스커레이드 호텔 3연작에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작가가 스노우보드를 즐긴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런 장점을 살려 스키장 혹은 설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써왔는데, <연애의 행방>이 네 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스노우보드 잡지의 청탁에 따라 쓰기도 했지만, 작가는 ‘도시 사람들을 스키장으로 데려가고 싶다. 스키장은 결코 멀지 않다. 도쿄에서도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깨우쳐 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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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 뉴노멀 - 대전환의 시대, 새로운 표준에 대한 인문학적 사고 퇴근길 인문학 수업
김경미 외 지음, 백상경제연구원 엮음 / 한빛비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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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매일의 작은 발걸음’이라는 소박한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 <퇴근길 인문학 수업>은 독특함이 돋보이는 기획입니다. 일정한 주제와 관련된 글을 매일 5~9쪽씩 읽을 수 있도록 이어가는 형식은 드물지 않습니다만, 열두 꼭지의 작은 주제들은 큰 주제의 범주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세 개의 큰 주제를 묶어 시즌제로 연결하고 있는 점도 독특합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즌 1은 ‘멈춤’, ‘전환’, ‘전진’ 등을 큰 주제로 삼았고, 시즌2는 ‘관계’, ‘연결’, ‘뉴노멀’ 등 세 개의 주제어로 구성하였습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이 개설될 때의 큰 주제 ‘멈춤’은 우선 신선하였습니다.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시즌2를 마무리하는 주제어 ‘뉴노멀’은 지금까지 두 글자였던 큰 주제어를 세 글자로 바뀌었다는 점부터 새롭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말이 아니라는 점 역시 새롭다 할 것이나, ‘좋은 우리말을 골라보았더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경우는 가급적이면 외래어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이라는 기획이 고유명사처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고는 있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시즌’, ‘뉴노멀’이라는 외래어를 쓰면서도 불편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뉴노멀>은 금년 초 세계를 강타한 우한폐렴의 영향을 고려한 점이 있는 듯합니다. ‘(이 질환이) 세계를 휩쓸면서 경제를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 사람과의 관계와 소통도 비대면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전례 없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뉴노멀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라고 한 서문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가 주로 사람들을 만나 공동의 관심사에 대하여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라서 우한폐렴 사태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대면회의를 서면심의나 화상회의로 대체하고 있습니다만 사안에 대하여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한폐렴의 사태를 일찍 종식시키고 원래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새로운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우한폐렴이 종식된 뒤에 옛날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우한폐렴에 대처하기 위하여 도입한 새로운 방식이 그대로 굳어질 것인가는 지금 고민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뉴노멀>은 ‘기술과 행복’, ‘우리의 삶’, ‘생각의 전환’을 중간 제목으로 정하고 각각 네 꼭지의 세부 주제로 강의를 구성하였습니다. 이번 기획에 참여한 필진은 저에게는 생소한 느낌이 있습니다. 생소하다는 느낌은 곧 새로운 시각을 가진 분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뉴노멀이라는 큰 주제어에 맞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 할 디지털기술을 바탕으로 한 ‘초연결’이 중요한 화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미래를 고민하는 자체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에 충실한 것으로 미래를 준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주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백년 미만의 짧은 인생을 굳이 주류에 편승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퇴근길 인문학 수업>에 실린 강의들을 읽으면서 나름 생각거리를 찾아내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뉴노멀>에서도 많은 생각거리들이 있었지만 한문학자 안나미교수의 첫 강의 ‘중국 명산 탐방으로 시간을 넘다’에서는 제가 하고 있는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찾아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누구나 중국에 가보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부여된 업무를 수행하는 이외에도 중국의 문물을 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명산 탐방으로 시간을 넘다’에서는 1712년 북경에 다녀온 김창업이 남긴 연행일기를 중심으로 그보다 100년 앞선 1616년에 북경 인근의 명산, 각산, 여산, 천산을 처음 오른 이정귀의 <삼산유기>, 김창업보다 100년 뒤인 1833년에 여산에 오른 김경선이 <연원직기> 등 세 편의 여산 기행문을 비교하였습니다.

안나미교수는 100년씩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여산이라는 같은 장소를 방문한 세 조선의 선비들은 어떤 느낌을 얻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결론은 ‘조선의 선비들은 앞 세대가 남긴 기록을 가지고 답사하며 선배와 공감하려고 노력했다’로 정리합니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공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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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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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이야기는 집중해서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시간여행은 드마마나 소설에서 자주 만나는 환상적인 요소인데, 뮈소 역시 즐겨 사용하는 편입니다. 환상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경우는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의 이야기라면 시간여행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때는 특히 마무리가 잘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은 시간여행인 듯 시작하였지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맥락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여행은 <시간여행자의 아내>에서처럼 등장인물의 신체적 특성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영화 <백 투더 퓨터>에 등장하는 자동차처럼 특별한 조건을 갖춘 물건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웜홀처럼 특정한 장소에서 시간이동이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서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케이프코드에 있는 오래된 등대의 지하실에 있는 방에서 시간여행을 시작합니다. 그 방에서 시간여행이 시작될 뿐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불특정의 시간대와 장소로 시간여행을 떠나야 하는 변화가 생긴다는 설정입니다. 주인공이 현시간대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 정도, 즉 하루인데,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은 1년을 기준으로 길수도, 짧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가 지나면 현실에서 1년이 자나는 셈입니다. 그 1년 동안 시간여행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코드곶에 있는 등대의 이름은 ‘24방위 바람의 등대’입니다. 지형적 특성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변화무쌍한데서 붙인 이름 같습니다. 바람의 방향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경우에 저는 동서남북풍이라고 부릅니다만, 뮈소는 바람의 방향을 더 세밀하게 구분한 것 같습니다. ‘24방위 바람의 등대’ 지하에 있는 시간여행이 시작되는 방에 있는 풍향도에는 라틴어 경구가 써있다고 했습니다. “postquam viginti quattuor venti flaverint, nihil jam erit.” ‘24방위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으리라.’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야기의 초반에 주인공의 조부가 등대에서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다는데, 사실은 조부에게 등대의 소유권을 판 사람 역시 사라졌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매사추세츠의 코드 곳에 있는 등대의 지하에 있는 방에서 시간여행을 떠난 주인공, 아서 코스텔로는 처음 뉴욕으로 시간과 공간이동을 하게 됩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성 패트릭 대성당이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여행에서 도착한 장소는 줄리아드 학생인 엘리자벳 에임스가 목욕을 하고 있는 욕실이었습니다. 결국 이야기는 엘리자벳 에임스와 시간여행자 아서 코스텔로가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을 그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얻은 두 아이가 교통사고로 숨진 비극적 사고로 인하여 생긴 갈등을 풀어가기 위한 과정을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것입니다. 사고 이후 엘리자벳과 아서는 각각 자살을 시도하는 등 불안증세를 보였지만, 결국은 이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시간여행은 스물네 번 반복되는 것으로 설정되었고, 스물네 번의 시간여행이 끝나면 시간여행을 통해서 겪은 모든 일이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24방위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으리라.’라는 주문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아서의 마지막 시간여행이 끝난 다음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않은 미완성의 이야기로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서가 쓴 시간여행의 이야기의 끝은 시간여행에 묶여있는 운명적인 결말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고, 세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라는 아서의 이야기는 어쩌면 뮈소의 철학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뮈소의 다른 소설 <내일: https://blog.naver.com/neuro412/221913977617>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사는 사람과 컴퓨터를 통해서 교신하게 된 주인공이 비극적 사고를 막으려는, 즉 운명을 바꾸어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344쪽

2015년 12월 01일

밝은세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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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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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의 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입니다. 책을 고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얄팍한 책 두께도 한 몫을 한 듯하고, 책표지에 담은 사진이 눈을 끈 것 같기도 합니다. 침대, 내복차림의 여성, 창밖을 지켜보는 모습 등이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는 것이 한 몫을 한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이유는 희곡 <관객모독>을 쓴 작가라는 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대학에 다니던 1977년에 연극이 초연되었는데, 파격적이라는 점에서 꽤나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읽는 동안은 물론 감상을 정리하는 지금도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합니다. 이야기는 제목처럼 ‘짧은 편지’와 ‘긴 이별’이라는 작은 제목의 글로 구성되었습니다. 시대적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어느 시점일 듯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작가인 화자가 미국을 방문했는데, 방문 목적은 분명치 않습니다. 옮긴이는 사라진 아내를 뒤쫓고 있다고 합니다만, 화자의 아내 유디트는 화자보다 나흘 먼저 미국에 도착한 것은 맞지만, ‘그녀가 무슨 돈이 있어서 여행을 떠났지?’하는 의문을 품은 것이나, 그런 아내의 흔적을 뒤쫓는데 몰입하는 것 같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려는 것인지 금세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옮긴이는 ‘한 인간의 내적 성장을 기록한 발전소설’로 해석합니다. 서두에 등장하는 유디트의 짧은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11쪽)” 주인공은 유디트가 묵었다는 뉴욕의 호텔로 향하기는 합니다만,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도착한 보스톤에서의 행적을 보면 딱히 유디트를 찾아나선 미국방문이라는 느낌이 와닿지 않습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받은 압박감이 불안을 조성하는 느낌, 그런가하면 초면인 사람들과 노름에 휩쓸리기도 하는, 종잡을 수 없는 행태를 보입니다.

뉴욕에 도착해서는 아내가 남겼다는 카메라를 찾고서는 생뚱맞게도 3년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만나 잠자리를 같이한 클레어 매디슨이라는 여자를 찾아 필라델피아 인근의 피닉스빌을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그녀가 딸과 함께 간다는 세인트루이스까지 동행합니다. 그들과의 여행을 보면 적극적으로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매디슨의 딸 베네딕틴을 돌보는 일이 중심이 되는 느낌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내 유디트와의 관계가 어땠는지 살짝 보여줍니다. ‘유디트와 나는 지난 반년 동안 깊은 증오심으로 무미건조한 생활을 해왔다.(86쪽)’ 매디슨을 만난 이유가 누군가 여자와 함께 있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아내를 뒤쫓을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 듯합니다. 이야기의 말미에는 드디어 만난 아내 유디트가 화자에게 권총을 겨누고 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그녀의 짧은 편지의 내용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아내가 쏜 총에 맞는 순간 이야기는 존 포드 감독과의 조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보면 유디트와의 만남이 현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야기의 전반에 걸쳐 언급되는 카를 필리프 모리츠의 <안톤 라이저>와 고트프리트 켈러의 <녹색의 하인리히>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와 계보를 같이 하는 성장소설이라는 점을 보면 페터 한스케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에서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개인의 성장과정인 듯합니다. 아내 유디트와의 관계를 청산한다는 것, 그리고 살아온 오스트리아를 떠나 미국이라는 생소한 장소를 여행한다는 것은 과거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 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고 불안이 고조되는 것은 자아와 타자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이 책에서 언급한 카를 필리프 모리츠의 <안톤 라이저>와 고트프리트 켈러의 <녹색의 하인리히>를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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