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한중록 - 1795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혜경궁 홍씨 지음, 박병성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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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독서동아리에서 읽은 책입니다.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읽을 기회가 없었을 터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이 쓴 작품인데 규방가사 혹은 궁중소설이라고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영조-정조 간의 궁중비사를 다룬 영화나 연속극이 적지 않은 것은 그만큼 극적인 사건이었고 사건에 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은 임오화변에 관한 기록으로는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당시의 사건을 기록한 ‘승정원일기’를 정조가 세손시절 영조에게 주청하여 파기되었으며, 정조 또한 자신의 일기인 일성록을 사건 전후 2개월 이상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1999년 12월에 영조가 쓴 사도세자의 묘지문이 공개되었습니다. 묘지문에는 사도세자의 행적을 적고, 죽임을 당하는 이유가 이렇게 요약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면서부터 총명하였고 자라면서는 글월에도 통달하여 조선의 성군으로 기대되었다. 오호라, 성인을 배우지 아니하고 거꾸로 태갑의 난잡하고 방종한 짓을 배웠더라. 오호라, 자성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것을 훈유하였으나 제멋대로 언교를 지어내고 군소배들과 어울리니 장차는 나라를 망할 지경에 이르렀노라.(한겨례신문 2017년 12월 1일자 기사. ”영조가 사도세자 묘지문에서 직접 밝힌 죽음의 이유“ 참고)

이 점에 관하여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밝히기를 사도세자가 영민하였기 때문에 영조께서도 거는 기대가 컸다는 것입니다. 다만 사도세자의 마음이 여려서 영조의 하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면서 차갑게 대하였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가운데 사도세자도 장성하게 되었고, 자연 반발하는 심리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세자가 궁인을 포함하여 주살한 사람이 백여 명에 이르렀으며, 친모 영빈 이씨에게 영조를 죽이겠다고 토로했다는 사실을 영빈이 직접 영조에게 고하여 죽이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영화나 연속극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이 당시 노론과 소론 사이에 치열하게 전개된 당쟁의 희생이었던 것처럼 그려지는데, 사도세자가 소론에 기울었던 것을 노론 쪽에서 지나치게 경계한 탓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이 노론에 속하였는데, 평소에는 세자를 옹호하다가 그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포기한 것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한중록>은 모두 4편으로 구성되었는데, 1편은 혜경궁 자신의 출생부터 성장기, 9살에 세자빈으로 간택된 이야기를 거쳐 50년에 걸친 궁중생활을 간추렸습니다. 정조 19년(1795년)에 쓴 것으로 임오화변에 관한 기록은 차마 담을 수 없다 하여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후반에는 정적들의 모함으로 친정식구들이 화를 당한 전말을 기록하였습니다. 나머지 3편은 각각 순조1년(1801년), 순조2년(1802년), 순조5년(1805년) 등에 기록된 것으로 순조1년에 동생 홍낙임이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사사된 뒤에 적은 것입니다. 화완공주의 양면적인 행태를 고발(?)하고, 친정이 멸문지화를 당한 배경을 적으면서 손자인 순조에게 억울한 누명을 벗겨달라고 청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4편에는 임오화변의 진상을 밝히는데 사도세자의 광포한 행동이 정신질환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중궁궐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만, 궁궐 안에서는 아무래도 얻어들을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이 편향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친소관계에 따라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을 터이니 말입니다. 왕이라 할지라도 정보원을 다양하게 두지 않으면 특정한 세력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비극이 싹틀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왕가의 여인들이 국정에 깊숙하게 개입할 수 있었던 것도 조선왕조에서 수많은 비극이 벌어진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혜경궁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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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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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독서동아리에서 읽은 책입니다. 시, 소설 중심이던 책읽기가 확대되는 느낌이 좋습니다. 시선이 나 혹은 우리에서 세계로 넓혀진 느낌이랄까요? 제목이 아주 충격적입니다. 설마 세계인구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쓴 장 지글러교수는 사회학자이자 정치인이자 활동이기도 합니다. 2000년부터 국제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지도가 나오고 모두 23개의 국가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거론된 나라들입니다. 그 가운데는 기아문제가 심각하다는 소식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만, 러시아, 브라질과 같은 나라도 기아문제가 심각한 줄은 몰랐습니다.

성공회대 우석훈교수는 이 책의 서두에 붙인 해제, ’기아에 관한 어느 국제 전문가의 비망록‘에서 “이 책은 지글러가 어린이 무덤에 바치는 참회록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2006년 10월에 낸 보고서에 언급되어 있는,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5천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아들 카림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갑니다.

세계적인 기아문제에는 다국적기업과 선진국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선진국에서 필요로 하는 농작물이나 기호품을 생산하는데 매달리다보니 정작 자국민들이 먹어야 할 식량생산에는 눈을 돌리지 못하고 국제시장에서 비싸게 사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농지가 황폐화하고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 도시빈민이 되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꼬집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판적 시각으로 본다면 이들 국가의 내부적인 문제는 없는지도 짚어볼 일입니다. 그마저도 외부의 책임으로 돌릴 것인지도 말입니다. 특히 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의 개혁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동지에게 배신을 당한 상카라의 죽음으로 부르키나파소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예로 들기보다는 1966년 독립하여 2005년 일인당 국민소득이 11,410달러에 이른 보츠와나의 성공사례를 드는 편이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르키나파소와 보츠와나의 결정적 차이는 정책입안자가 어떤 철학을 가졌는가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기아로 고통받는 나라의 대부분은 권력을 쥐고 정책을 입안하는 집단의 철학이 무엇인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문제는 인구집단을 구성하는 종족 간의 갈등이 핵심일 수 있습니다. 이들 나라를 지배했던 유럽제국들이 힘겨루기를 통하여 설정했던 경계선을 바탕으로 독립이 결정되고, 그러다보니 서로 다른 종족들이 한 나라에 속하게 되면서 갈등이 내재되었던 것이라면 궁극적인 책임은 유럽제국에 있는 것이 옳겠습니다. 독립을 결정할 때, 일단은 단일 종족으로 중심으로 나라를 구성하고 국경을 정하도록 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의 기아문제를 두고 인도적 구호활동은 적지 않게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에게 주는 빵 한 덩이는 배고픔을 잠시 잊게 해주는 효과 밖에는 없습니다. 빵을 만들 수 있는 밀을 생산하고 빵 기계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작은 아이의 책인데, 책을 읽다가 2007년에 진료소 책모임에서 읽었다는 요약문을 발견했습니다. 서울역 노숙자들을 진료하는 봉사단체에서 활동할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약문 가운데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조차 바꾸지 못하는 상황인데, 하물며 다른 나라의 구조가 바뀌어야 해결될 일이라는 생각으로 막막하고 무력함을 느끼게 했던 책”이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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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
크리스틴 브라이든 지음, 김동선 옮김 / 인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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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예방, 조기 진단 그리고 초기 치매환자의 생활방식 등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오래 전체 출간 소식은 들었지만 챙기는 것을 깜박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05년에 소개되었지만, 원저는 1998년에 출간되었으니, 저자의 말대로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가 쓴 책으로는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뒤로는 웬디 미첼이 쓴 <내가 알던 그 사람>을 읽었고, 신경과 의사가 환자의 관점에서 쓴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등이 치매를 앓는 환자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웬디 미첼의 <내가 알던 그 사람>을 읽으면서 치매환자에 대한 저의 인식을 새롭게 한 바가 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치매에 관한 책에서 다룰 예정인 이야기의 핵심을 얻은 책읽기였습니다.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 역시 특히 치매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진단하는 과정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다만 진단 초기에 하던 일을 접고 퇴직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초기 치매환자의 삶을 설정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치매를 진단한 전문의가 퇴직을 권고한 것이 적절했나 싶습니다. 환자의 증상에 따라 적절할 때 퇴직을 고려해보라 권고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전문의의 권고에 따라 저자는 병이 더 심해지기 전에 퇴직하기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정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을 자문하는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행여 실수라도 할까 걱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의 퇴직 결정에 대하여 노령퇴직연금회사에서는 직장에 복귀해 재활훈련을 받으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연금회사의 이런 결정은 역시 관련분야의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타당한 결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자는 꾀병을 핑계로 연금을 타내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했던 모양입니다. 연금회사 입장에서는 연금수급을 늦출수록 유리하다는 판단이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되면 새로운 업무에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것을 스트레스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지적활동을 강화함으로서 질병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열심히 일하시던 분들도 은퇴를 하고 나면 자극이 줄어들고 생활이 느슨해지기 마련입니다. 결국은 치매의 진행을 저지할 동력이 없어지는 셈입니다. 따라서 하던 일, 혹은 새로운 일을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지속하는 것이 치매증상의 악화를 막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치매진단을 받고도 상당기간 운전을 계속한 것으로 보입니다. 방향감각이 사라져 어디로 운전 중에 어느 쪽으로 가야되는지를 헷갈리는 상황이 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운전 중에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해 우물쭈물하다보면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이 분 같은 경우는 일찍 운전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는 대중교통이 얼마나 활성화되어 자가용 없이도 이동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중교통의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없다면 누군가로부터 이동에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는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은 뒤에 바로 타크린이라고 하는 약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약제는 신경세포들이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분비하는 아세틸콜린이라고 하는 신경전달물질을 제거하는 아세틸콜린 에스테라제라고 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물질입니다. 즉 아세틸콜린이 일찍 사라지지 않도록 해서 작동시간을 길게 해주는 약제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 약제가 알츠하이머 병의 치료제가 아니라 증상의 악화를 저지하는 역할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물론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3분의 1에서는 치매증상의 개선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3분의 1의 환자에서는 증상이 유지되고, 나머지 3분의 1에서는 증상의 악화가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다행이 저자의 경우는 치매증상이 개선되는 효과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긍정적 효과가 하느님의 기적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치매의 예방 혹은 치료에 종교의 역할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교회를 통하여 정신적인 지지를 받아 긍정적인 심리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전적으로 신의 힘이라고 믿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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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구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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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연작’에 속하는 추리소설입니다. 경시청의 구사나기 형사가 사건 수사를 맡고, 데이도 대학 물리학부의 유가와 마나부 교수가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성녀의 구제>에서는 경시청의 수사관으로 우쓰미 가오루라는 신참 여형사가 등장합니다. 여성 특유의 감을 내세워 색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들여다보는 역할을 맡았는데, 특히 <성녀의 구제>에서는 뭔가의 이유로 구사나기 형사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유가와 교수를 사건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성녀의 구제>에서 보이는 색다른 면은 일종의 예고살인과 수사관이 용의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진다는 상황을 엮었습니다. 퀼트 공예가 아야네와 IT회사의 사장인 요시다카는 결혼 1주년이 가까워오는 신혼부부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 간에는 1년 안에 임신을 해야 결혼을 유지한다는 요시다카가 제시한 결혼조건이 있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결혼 1년이 다가오는데도 임신을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요시다카는 아내에게 무언가를 통보한 다음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야기 가운데는 요시다카를 살해할 방법을 암시하고, ‘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그런데 지금 당신이 한 말은 내 마음을 죽였어. 그러니까 당신도 죽어 줘야겠어(12쪽)’라고 살인을 예고합니다. 그리고는 장면이 바뀌어 회사 동료부부와의 작은 파티가 열리고, 다음날 아야네는 혹카이도에 있는 친정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아야네의 제자 와카야마 히로시를 불러들여 밀회를 즐긴 요시다카는 다음날 저녁 죽어있는 상태로 발견됩니다. 일단 밀실살인의 전형으로 범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추리하는 것이 <성녀의 구제>를 읽는 독자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입니다. 일단 용의자는 아야네가 되겠지요.

아야네를 처음 본 순간 구사나기가 마음이 기운다는 설정은 쫌 그렇습니다. 수사관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해야 사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인데, 구사나기형사가 과연 사건을 제대로 풀어갈 수 있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쓰미 가오루라는 신참 여형사를 등장시킨 것인지도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내놓은 주제, 허수해(虛數解)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쏭달쏭했습니다.  혼잣말인 듯 적어놓은 “구제와 단죄, 그 사이에 놓인 허수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설명이 더 헷갈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허수(虛數)란 곱해서 0보다 작은 숫자를 말합니다. 알콰리즈미에 의하면 모든 2차방정식에는 정답이 없을 수도, 하나일 수도, 2개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허수를 감안한다면 모든 2차방정식에는 두 개의 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자는 ‘구제와 단죄’라는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가를 찾아보라는 주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구제해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현대의 법인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법의 테두리에서 죄과를 판단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가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지요.

아야네가 예고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추론은 유가와 교수가 세우고,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수사는 구사나기형사와 가오루 형사가 제 몫을 다해서 범행 방법을 구체화시키고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건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을 둘러싼 인과관계가 드러나게 됩니다. 사실은 사건해결에 결정적인 동기가 되는 사실들은 사건 초반에 암시라도 해주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막히면 장면을 전환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상황을 던져놓으면 사건을 추리하면서 읽어가는 독자 입장에서는 뒷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숙제 가운데는 자신이 살해한 남편의 아이를 가진 제자 히로시에 대한 아야네의 배려도 있습니다. 과거에 남편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임으로 해서 누군가 상처를 입었던 것을 고려한 것일까요? 시앗을 본 여자의 심리가 그렇게 대범할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답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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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 호흡기 내과의가 만난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숨소리
이낙원 지음 / 들녘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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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진료의 현장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때로는 감동이 때로는 쓸쓸함이, 그런가 하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가르침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대체적으로 묻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잘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과대학 교육에 인문학교육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는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호흡기내과를 전공하고 수도권의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서민적인 의료현장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25꼭지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진료현장에서 흔히 만나면서도 피하고 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림이 큰 죽음과 관련된 7개의 이야기를 ‘죽음을 다시 생각하다’라는 제목으로 먼저 다루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소생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환자들이 극적으로 회생했던 9개의 이야기를 ‘우리 사이에 피어나는 생’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했고, 마지막으로 진료현장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던 환자들과의 이야기 8꼭지를 ‘환자와 나’라는 제목으로 정리해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치매가 중증의 단계에 접어든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 연명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연명치료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뇌졸중으로 쓰러져 대화도 되지 않는 남편을 15년째 간병하는 아주머니의 이야기처럼 족들의 요청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저렇게 누워만 있어도 신랑이잖아요 죽으면 안돼요’라는 아주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들으면 꼭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회생한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의료진들은 식물인간 상태로 판단하고 여러 차례 마음을 정리하라는 권고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되시는 분이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고 하는데, 의식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환자분은 모든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의식이 돌아왔을 때, 아내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였는데, 사람의 목숨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그런가하면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읽히는 대목도 있습니다. 다양한 환자들과 씨름을 하다보면 갈등을 빚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짜증 바이러스’라는 제목의 글에 등장하는 78세 된 이 할아버지와의 짜증대결의 경우입니다. 지금은 사연을 잊었지만, 지방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막 시작했던 무렵에 만난 환자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누구가의 부탁이 있었던 환자였는데, 치료에 필요해 부탁한 것을 지키지 않아서 입씨름을 벌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입씨름이 때로는 고성이 오가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다음 회진에 가서는 화를 내어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를 몇 번이나 했던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결국은 중환자실로 옮겨갔던 것인데, 다행히 일반병실로 옮겨 퇴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바로 저자의 글쓰기 내공이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소연 작가의 『마음 사전』에 나오는 ‘고민스럽고 복잡한 국면에서, 유쾌한 사람은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할 줄 알며, 상쾌한 사람은 고민의 핵심을 알며, (중략) 통쾌한 사람은 고민을 역전시킬 줄 안다.(22쪽)’라는 대목을 끌어다가 상황에 아주 걸맞게 녹여냈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글을 끌어다가 인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인용문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잘 펼쳐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간혹은 조금 현학적인 대목도 없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저자의 이런 글쓰기 내공은 분명 엄청난 책읽기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책들의 대부은 제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것들이어서 더욱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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