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김희정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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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오전 8시, 전세계의 코로나 누적 확진자가 2천만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2019년 12월 1일 중국 우한에서 원인불명의 폐렴환자가 발생했다고 처음 보고된 이후, 우한 화난재래시장과 연관된 41명의 폐렴환자가 확인되었고, 이를 WHO에 보고한 것도 중국 정부가 아니라 WHO중국사무소였다고 합니다. 우한발 폐렴은 중국 내에서 급속하게 확산되었고, 이어서 이탈리아 등 중국과 관련이 있는 지역을 거점으로 하여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어갔습니다. 초반에 중국을 비롯한 제 외국으로부터 우한폐렴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차단한 대만 등을 제외한 많은 나라로 확산된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계절적 요인과 무관하게 부침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WHO는 이번 코로나의 대감염을 공식적으로는 COVID-19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우한폐렴’으로 불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과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스페인독감, 홍콩독감, 멕시코 독감으로 불렀던 것처럼 지구촌을 위협하는 급성전염병의 발생과 확산을 막기위한 범세계적인 경각심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WHO는 유독 중국에 우호적인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2002년 중국 광동성에서 처음 시작한 사스(SARS)의 경우 역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을 약해서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중동지방에서 발생했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라고 불러 발생지를 분명하게 함으로서 해당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는 이번 우한폐렴이 유럽으로 확산되는데 있어 거점 역할을 한 이탈리아에서의 지역적 유행이 시작될 무렵의 사회적 분위기를 정리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저자는 의외로 토리노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신 분입니다. 여러 편이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여 주목받고 있는 문인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환자가 처음 보고된 것은 2월 6일입니다. 중국 우한을 다녀온 부부였습니다. 65세 이상인구비율이 22.6%나 되는 이탈리아는 3월22일 기준 코로나 확진자 53,578명였는데, 사망자가 4,825명으로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특히 고령의 환자가 많았고,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시설이 충분치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저자가 이 책의 원고를 쓰던 2월 말일과 비교하면 각국의 코로나 발생현황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습니다.

지중해 연안 지역의 특성대로 낙천적인 이탈리아 사람들도 코로나 사태에 직면해서는 달라진 점이 많은 듯합니다. 저자가 ‘의롭고 의기 소침한’이라는 소제목을 달아 글을 쓴 것을 보면 말입니다. 사실 KF94 마스크를 쓰고, 대인접촉을 최소화하는 것 이외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를 차단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현실에서, ‘전염은 이미 우리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었고, 극심한 고독감을 안겨주었다.(32쪽)’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영국 성공회이 사제이자 시인 존 던의 말을 새겼습니다. 최소한의 인간관계는 유지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번 코로나 대유행에서의 특징을 보면 나이가 많거나 지병이 있는 고위험군을 제외한, 젊은층은 감염이 되더라도 무증상으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젊은이들은 마스크를 쓰는 것조차 거부하는 상황입니다. 자신은 감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나이든 부모나 친지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2018년 전세계적인 대유행을 보였던 스페인독감의 경우는 2018-2019년 사이에 전세계적으로 1,700만 ~ 5,000만 명이 숨져갔습니다. 당시 스페인독감의 특징은 젊은이들이 심각한 증상을 보이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면역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페인독감의 유행 이후에 각국 보건당국은 비롯하여 WHO가 독감에 유난히 민감한 것은 스페인독감의 대유행이 다시 올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우한폐렴 대유행의 초반이던 3월 무렵까지만 해도 중국, 싱가포르, 일본, 홍콩, 대한민국, 이란과 이탈리아는 코로나 감염의 G7이었던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무엇을 잘 못했는지를 분명히 해야 언젠가 다시 올 급성전염병을 잘 관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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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신경립 옮김 / 창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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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폐렴 사태 덕분에 큰 아이의 책읽기 취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전작읽기에 가까워지는 것도 큰 아이 덕분입니다. <동급생>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1993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그는 1985년에 <방과후>로 등단했는데, 학원을 무대로 한 작품으로는 <동급생>이 등단작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합니다.

추리소설을 읽은 감상을 적는 일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얼개를 넣으면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이야기의 얼개를 빼고 적으면 꼭 소가 없는 찐빵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동급생>은 추리소설인 동시에 고등학교 3학년 남녀학생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성장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교나 학생들의 분위기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사이에 일본의 학교의 분위기나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이 발표된 지도 어언 30년이 되어가는 데, 오래 전에 학교를 다닌 제 느낌으로는 30년 전의 일본 학원 분위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연쇄살인을 다루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급생>에서도 3건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죽음은 고3인 여학생인데 주인공 남학생이 죽음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죽음이 있기 전애는 몰랐지만 우연히 가진 관계로 인하여 임신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녀의 임신을 둘러싸고 학생지도를 맡고 있는 선생님들이 개입을 하고, 결국 사고로 이어진 것입니다.

한 여학생이 사고로 인하여 죽음을 맞았다는 것으로 사건이 종료되었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남학생은 원인을 제공한 자신의 책임을 피하지 않고 죽은 여학생의 부모에게 진솔한 사과를 드리고, 사건이 자신 때문에 일어났음을 밝혔습니다. 이런 학생을 요즘 보기 드문 OO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에는 ‘모름지기 매사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에 옮길 때는 주저하지 말며, 자신이 행한 바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학생이 여학생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관계를 가졌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결정한 행동이었는데, 여학생은 남학생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응한 것 같습니다. 남녀관계는 양쪽의 생각이 일치하여 행동이 결정되더라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도 있는 것입니다만, 일방의 생각으로 일이 벌어질 때는 좋은 결말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친구가 불행한 일을 당한 것을 보고는 그 책임을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주인공 남학생의 생각이 기특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죽음은 자살인 듯 타살인 듯 모호합니다. 사실 추리는 이 사건부터 시작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죽음은 두 번째 죽음에 관련된 선생님 죽음인데, 첫 번째 죽음에도 연관이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세 건의 죽음은 주인공 남학생의 연애사에서 출발하는 셈입니다. 남녀학생의 사랑에 부모의 생각이 개입되어 깨지는 경우도 있는 모양입니다. 30년 전에는 그랬을까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품인 까닭인지 탐정 가이스케, 갈릴레오 유가와 교수 등처럼 사건 해결을 주도하는 인물이 없고, 등장인물 특히 혐의를 받는 사람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건해결의 주체는 경시청의 형사들이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사건처럼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가리기 위하여 증거를 모으고 상황을 재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추리소설을 기본을 따라가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초보자이다보니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과정이 더디거나 형사의 조사를 보조하는 역할 정도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학원물은 유독 운동부와 관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작가가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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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게 권하는 영문학 - 청소년기에 영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10대에게 권하는 시리즈
박현경 지음 / 글담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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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습니다만,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영어였습니다. 어렵게 재수를 해서 대학에 입학해서도 영어 원서를 교재로 쓰는 과목이 문제였습니다. 교재 한쪽을 읽어내는데 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중학교 때 흥미를 돋우지 못하고 대충 시작했던 것이 평생 걸림돌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무렵 <10대에게 권하는 영문학>과 같은 책을 읽을 수 있었더라면 제 인생은 분명 다른 길을 따라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박현경교수님이 쓰신 <10대에게 권하는 영문학>을 읽게 된 것은 우연일 수도, 필연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께서 저의 옆집에 사셨다는 인연으로 책을 보내주셨으니 말입니다. 그것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셨으면서도 말입니다. 제게 보내주신 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책을 읽었으면 느낀 바를 적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 같은 것이 있는지라 몇 줄을 적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글담출판에서 기획한 “10대에게 권하는 (책)”의 연작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인문학, 문자 이야기, 역사, 공학 등에 이은 다섯 번째 주제로 영문학이 선정된 듯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제가 전공한 ‘의학’도 한 자리를 차지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성적이 되면 우선 의과대학을 지원하는 세태이다 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겠습니다.

저 역시 저자처럼 이과출신인지라 영문학과 영어교육학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보니 학원에서 반편성을 바꾼 이력도 비슷하네요. 저자께서는 이과반에서 문과반으로 바꾸어 영문과를 지원하셔서 입학하셨다고 했습니다만, 제 경우는 서울대반에서 기타 대학반으로 바꾸었고, 덕분에 한번 떨어졌던 의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어림없을 일이지만, 수능이 없던 옛날이라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10대에게 권하는 영문학>에는 영문학이란 어떤 학문인지, 영문학의 범주는 무엇이고, 영문학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리고 10대들에게 영문학을 공부하라고 권하는 이유, 즉 영문학을 통하여 무엇을 얻을 수 있는 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책을 쓸 때 사용하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식의 딱딱한 문체가 아니라, ‘~하거든요’, ‘~있어요’, ‘~이지요’ 등, 십대들의 눈높이에 맞춘 대화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소리를 내어 읽지 않아도 저자가 곁에 앉아 조근조근 가르쳐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들은 정말 다양합니다. 더 중요한 점은 무슨 내용인지 아는 책들이 많아서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영문학을 소개하는 책이라서 당연히 영문학 작품이 먼저 소개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제 나이쯤 되는 사람들이면 대부분 알고 있을 미국 가수 밥 딜런이 1962년에 발표한 <blowing in the wind(바람에 실려 오는)>을 제일 먼저 인용했네요. 아마도 밥 딜런이 201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를 노랫말 삼은 노래도 있고, 노랫말 가운데는 시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자께서 인용하는 많은 영문들에 우리말 번역을 달아놓으셨는데, 책이나 시의 경우는 이미 우리말로 옮겨진 것을 같이 인용하셨는데, 원문을 교수님께서 직접 번역하셨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제가 요즘 쓰고 있는 여행기에서는 많이 부족한 솜씨지만 직접 우리말로 옮겨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형편입니다.

책의 뒷부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미래의 주인공이 될 10대들에게 영문학을 공부하면 좋은 이유를 잘 설명하고 계신 듯해서입니다. 70을 바라보는 제가 영문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혹적(?)인 권유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을 읽을 기회를 주신 저자께 제가 쓴 책을 보내드릴까 생각을 해봅니다. 방법을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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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 디지털 시대는 어떻게 죽음의 의미를 바꾸었나?
일레인 카스켓 지음, 김성환 옮김 / 비잉(Being)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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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니 블로그를 시작한 지가 벌써 16년이 되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3년 전에 처음 시작했던 블로그가 문을 닫으면서 새로운 블로그를 열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했던 블로그는 천만이 넘는 방문객을 맞은 소위 파워블로그였는데, 보건의료 관련 자료를 많이 모아두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08년 광우병파동 당시 뜨거운 공방이 있었던 것인데, 블로그가 문을 닫으면서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블로그를 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가족이나 친지들과 관련된 사진은 동의가 없으면 올리지 않는다거나, 공개가 가능한 수준의 개인사를 요약해주는 일종의 주간 일기 형식의 글까지만 올리고 있습니다. 첫블로그에서는 자료를 수집하는데 주력했다면 지금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는 주로 제가 쓴 글을 모아두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온라인에서 만난 이웃들을 오프라인에서도 만나곤 했습니다. 블로그를 오래 운영하다보니 만나고 헤어짐이 오프라인과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웃들 가운데는 세상을 뜨는 분도 계셨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블로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죽은 뒤에 블로그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은 아직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전혀 생각해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심리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는 일레인 카스켓 박사가 쓴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를 읽고서 그런 생각이 분명해졌습니다.

저자는 블로그를 비롯하여 최근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SNS를 운영하던 사람이 죽은 뒤에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모야 분석했습니다. 특히 사고나 사건과 관련되어 갑자기 죽는 경우에 죽은 이의 SNS계정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경우도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고인의 SNS계정이 여타의 자산처럼 지정 상속인에게 물려질 수 있는 절차는 아직 업는 듯합니다. 다만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두었을 때는 폐쇄할 수도 있고, 죽은 이에 대한 추모공간으로 운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추모공간으로 유지한다면 해당 계정에 접속하여 소통을 하는 이는 일종의 유령과 대화를 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계정의 운영자가 바뀌었음을 분명하게 하고 전 주인이 남긴 자료는 필요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SNS계정에 올려둔 자료 가운데 남겨진 사람들이 보기에 불편한 것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데이트폭력으로 희생된 사람의 불로그에 가해자의 사진이 다수 올려있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가족들이 보기에는 제2의 충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계정의 주인이 아니면 해당 자료의 삭제가 불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계정에 접속하는 방법을 가족들이 안다면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사진과 함께 올리는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동의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큰 다음에 자신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간병일기를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올리고 책으로 묶어낸 이도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병으로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내보여도 괜찮다고 생각했을까요? 생각해볼 일입니다.

저자는 운영자의 사후에 SNS계정을 둘러싸고 일어난 복잡다단한 상황들을 수집하여 분석해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해볼 수 있도록 하는 10가지의 일반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지침이 될 수도 있겠고, 자신의 디지털 유산을 처리하는 방법을 미리 생각해두면 좋겠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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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에서, 느릿느릿
장다혜 지음 / 앨리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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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다녀온 프랑스 여행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시작해서 센강을 따라 모네가 작업한 마을을 따라갔다가 루아르계곡을 따라 내려와 프로방스 지방에 들어섰습니다. 장다혜님이 쓴 <프로방스에서, 느릿느릿>은 프로방스 지방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읽기였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은 것은 분명 프랑스를 여행하기 전이었을 듯한데, 독후감을 써두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삼 독후감을 쓰는 이유입니다. 저자가 자필로 적어둔 글이 책장에 있습니다만, 제게 주신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 잘 나가는 가수들이 부른 노래의 노랫말을 쓰시기도 했다는 작가님은 현재 칸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배낭을 매고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을 돌아다니다가 프로방스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야 말로 살아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여행 내내 수도 없이 보았던 지중해가 유난히 찬란하게 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단순한 여유로움 때문이었을까? 부자든 가난하든, 젊었던 늙었든, 하얗든 까맣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찬란한 햇빛과 해변, 그리고 이 특권을 매일 누리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팔자에 역마살이라도 끼어있는 듯, 칸에 살면서 프로방스 곳곳을 누볐던 모양입니다. 프로방스의 크고 작은 마을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것들을 8개의 주제로 나누어놓았습니다. 프로방스에서는 시간도 느리게 간다는 의미를 책제목에 달았는데, 작은 제목들도 꽤나 재미있습니다. 같은 해변 다른 느낌, 알록달록 빈티지 시장 구경, 아틀리에서 쉬다, 오감만족 페스티벌, 취향따라 즐기는 프로방스 취미생활, 살아 숨 쉬는 역사 속으로, 동화 속 마을 천천히 걷기, 달콤 쌉싸래한 와인 투어, 등입니다.

주제에 따라서 몇 번 씩 등장하는 도시나 마을도 있습니다만, 등장하지 않은 마을이나 도시도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행이란게 세상 구석구석을 샅샅이 돌아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심지어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동구 밖에도 나가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주유천하를 했음직한 철학자 칸트 역시 태어나 살던 쾨니히스베르크를 100km이상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행을 많이 한 분답게 여행에 관하여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적어두었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풍경들을 마주한다. 꼼꼼하게 이리저리 살펴보고, 그 조화의 의미를 읽어낼 때 비로소 느낌이 오는 심오한 풍경도 있고, 긴장을 풀어 미소 짓게 하는 정겹고 따뜻한 풍경도 있다. 또 한눈에 통하는, 말이 필요 없는 풍경도 있다.(22쪽)” 그런 느낌을 어떻게 적는가는 작가적 역량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생라파엘 해변 풍경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해변 패션도 극명히 갈린다. 이곳 할머니들은 색깔도 디자인도 과감한 비키니 차림으로 나다니는데, 그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처진 가슴도 자랑스러운 내 신체의 일부분일 뿐’이란 생각으로 어디서든지 과감하게 노출을 즐긴다.(39쪽)”

작가가 여행지에서 느낀 점을 적는 여행서가 주로 읽힌다는 이야기를 출판계 사람들로부터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행지에 관한 정보는 인터넷에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넘쳐나는 여행정보들 대부분은 두서가 없거나 현지 언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찾아 정리하는데 한 세월이 걸린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여행작가들이 여행서에 적어내는 그 느낌이라는 것이 대부분 주관적인 듯하면서도 천편일률적이다는 생각은 어쩌면 저만의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방스에서, 느릿느릿>은 작가의 느낌을 자신만의 독특한 필치로 적고 있으며, 여행지에 대한 정보 역시 간단하면서도 핵심 위주로 정리하고 있어서 저에게도 많은 참고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사진들도 프로방스의 여러 마을에 가보지 않아도 충분한 느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님이 이 책에 정리한 곳을 모두 돌아보지는 못했습니다만, 프로방스에서의 일정이 아주 촘촘하게 짜여 있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도시와 마을에서 버스를 멈추고 잠시라도 돌아볼 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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