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집
니콜 크라우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복잡하게 구성된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책 뒷장에 적힌 우리는 그저 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사는거야. 영원한 후회와 갈망에 빠진 채 그 기억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구절과 그 아래 적힌 하나의 책상에 얽혀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상실의 빈자리를 메우는 사람들, 그들의 외롭고, 고요하고, 비틀거리는 삶이라는 부가설명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처음에는 8편의 중편 소설을 묶은 줄 알았습니다. 사실은 네 명의 화자가 각각 2번씩 술회하는 이야기를 두 개의 묶음으로 나누어놓았습니다. 네 명의 화자는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따로 읽어도 무방할 듯한데, 문제는 책상을 고리로 하여 서로 연결되는 구조인 셈이라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편 이들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열심히 생각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사물이 고리가 되는 이야기라고 해서 최철수교수님의 <침대>를 떠올렸는데, <침대>의 경우는 시베리아 동토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자작나무를 베어 만든 침대가 우리나라까지 흘러들어와 온갖 풍상을 겪어내는 이야기를 침대의 입장에서 적은 소설이라고 하면, <위대한 집>은 서랍이 열여덟개 달린 책상을 쓰던 사람들이 책상을 매개로 하여 엮인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점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책상은 스페인의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사용했던 것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책상을 매개로 연결되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헝가리, 영국, 미국, 이스라엘로 흘러다닌 책상은 결국 어디로 사라졌는지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습니다. 유대인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신산한 삶이 인생의 여정에 미치는 영향이 기록되고 있는데, 조금 더 집중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강제수용소에서 죽지 않고 탈출한 유대인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등이 읽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기억을 조각내 흩어버렸다는 것일까요?


남녀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도 충동적일 때도 있고, 이성적일 때도 있는데, 과연 그들이 사랑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가는 대목도 있습니다특히 진정한 친절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화자는 특별한 아이를 둔 아버지입니다. 아마도 장성해서 판사가 된 아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만든 아버지의 회한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생각과 말이 따로 노는 상황에 답답해하면서도 아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던 것인데, 공감이 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듯한, 그러니까 저와 닮은 점이 있는 아버지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화자가 책상을 처음 만나던 순간에 대한 술회가 인상적입니다. “그가 제게 주는 게 그저 나무 덩어리와 덮개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 기회라도 되는 것 같았어요. 그럼 제가 처한 상황에 맞서는 건 저의 몫이 되겠죠. 말하기 부끄럽지만, 정말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어요, 판사님. 주자 있는 일이긴 했지만, 그 눈물은 그동안 생각하지 않고 지내려 했던 더 오래된, 이젠 흐릿해져버린 후회들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그 선물이, 낯선 이가 빌려준 가구가 그런 오래된 후회들을 흔들어놓은 거죠.(19)”


앞서 말씀드린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결국은 찾아냈습니다. 세 번째 화자의 두 번째 술회를 읽다보면 바빌로니아왕국의 느브갓네살의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유다왕국을 점령했을 때, 유다왕국의 궁전과 성전을 불사르고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끌어가는 바빌론의 유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위대한 집까지 불살랐다.(396)’라고 적었습니다.

모든 유대인의 영혼은 그 집 위에 서 있는 것인데, 그 집이 너무 크기 때문에 유대인들 각각은 아주 작은 부분밖에 떠올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유대인의 기억이 하나로 모이면, 성스러운 파편들이 마지막 한 조각까지 모두 모여 다시 하나가 되면 그 집은 다시 세워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메시아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는 유대인의 무한한 기억을 완벽하게 하나로 모은 그런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기억에 대한 기억 속에서 우리 모두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준비된 세상은 아니라고도 합니다. ‘우리 각자는, 그저 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너무 철학적이라서 이해가 쉽지 않은 대목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 해외편 - 삶의 푯대를 찾아 나선 묘지 기행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이희인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여행을 하다보면 유명한 분들의 묘를 볼 기회가 많습니다. 유럽의 경우는 교회에 유체를 모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프랑스 여행에서는, 툴루즈의 자코방 수도원에서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묘를, 지베르니에서는 클로드 모네의 묘를, 생폴드방스에서는 폴 세잔의 묘를 보았습니다. 오래전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는 성모성당에 안치된 바스쿠 다 가마와 시인 루이스 카몽이스의 관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리콜레타 묘지에 안장된 에바 페론의 묘를 보았습니다. 더블린의 성 패트릭교회에서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묘를 참배했다. 칼리닌그라드에서는 철학자 칸트의 묘를 참배했고, 베를린에 출장을 갔을 때는 병리학의 효시 루돌프 비르효의 묘를 참배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저도 위인의 묘를 찾아 참배한 적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는 여행 작가 이희인님이 젊은 날 많은 영감과 가르침을 준 사람들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그들의 업적을 되새겨보는 일종의 묘지인문학여행을 정리한 책입니다. 작가님이 묘지을 찾는다는 착안을 한 것은 책이 묘지이듯, 묘지는 책이다라는 명제를 세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망자들이 세상에 남긴 생각들의 결정체라고 할 책은 사실 그가 평생을 써내려간 일종의 유언장이자 한기의 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묘지를 방문하게 되면 망자가 세상에 남긴 바를 되새기게 되므로 묘지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셈입니다.


묘지를 찾아가는 작가님의 여행은 그 범위가 생각보다 넓은 느낌입니다. 1부에는 영국/스위스/러시아 등지에 있는 셰익스피어, 카를 마르크스, 헤르만 헤세, 표도르 도스토엡스키, 니콜라이 고골/안톤 체홉/미하일 볼가코프, 레프 톨스토이의 무덤을 찾은 소감을 정리했습니다. 2부에서는 독일/오스트리아/체코 등지에 있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게오르크 헤겔/베르톨트 브레히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니체, 루트비히 판 베토벤/프란츠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요하네스 바람스, 프란츠 카프카, 안토닌 드보르자크/베드르지흐 스메타나 등의 무덤을, 3부에서는 프랑스에 흩어져 있는 짐 모리슨/에디트 피아프/마리아 칼라스, 자크 루이 다비드/오노레 드 발자크/마르셀 프루스트/오스카 와일드/기욤 아폴리네르/프레데리크 쇼팽/조르주 비제, 사데크 헤다야트/이을마즈 귀네이, 스탕달/프랑수와 트뤼포, 수전 손택/시몬 드 보부아르/마르그리트 뒤라스, 샤를 보들레르/사무엘 베케트/외젠 이오네스코/만 레이, 볼테르/장 자크 루소/빅토르 위고/알렉상드르 뒤마/에밀 졸라, 빈센트 반 고흐 등입니다.


무려 49명이나 되는 유명인사의 묘역을 찾아다닌 셈입니다. 파리처럼 대규모 묘원의 경우 여러 분을 만날 수 있었지만,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들은 아주 시골이나 심지어는 산골 구석에 묘를 쓴 경우도 많습니다. 사진까지 넉넉하게 챙기다보니 무려 448쪽에 이르는 두툼한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어갈수록 작가님의 독서범위가 돌아가신 분이 남긴 대표작은 물론 평전, 심지어는 죽음이나 묘지와 관련된 총설 등도 두로 섭렵하여 이 책에 담아낸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묘역에 이르는 여로는 물론 묘역 주변 풍경까지 세심하게 그려낸 점도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49명이나 되는 분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희곡작가, 철학자, 소설가, 음악가, 평론가, 시인, 화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입니다. 물론 소설과 시 등 문학 분야의 유명인사가 많기는 합니다. 작가님의 말씀대로 젊은 날 영감을 받은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아무래도 대상이 산만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습니다. 차라리 분야별로 나누어 연작으로 처리했더라도 좋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방문한 묘지에 안장된 알로이스 알츠하이머박사의 묘는 언젠가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은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 눈에 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꼼꼼하게 목록을 일별하니 까맣게 잊었거나 그새 묘지에 묻힌 인물들, 책이나 영상 등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유명인들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258)”는 부분입니다. ‘일별하다1. 한 번 헤어지다, 2. 한 번 흘낏보다, 등의 의미입니다. 꼼꼼하게 목록을 일별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런 문장이 더러 눈에 띄어 읽는 흐름을 흐트러놓는 것 같습니다. ‘망자가 묘역에서 고단한 몸을 눕히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문장을 윤색하려는 의도가 지나쳤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이희인 지음

448

20191111

바다출판사 펴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탐정의 저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에서도 탐정이라는 직업이 공식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연작처럼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에 별다른 저항감이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만, <명탐정의 규칙>의 주인공인 탐정 덴카이치 다이고로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은 탐정놀음의 기본을 책 읽는 이에게 설명하는, 추리소설 작가의 일종의 해설서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명탐정의 저주>는 덴카이치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의 완결편이라고 할까요? 그런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바치는 헌정소설 같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일단은 주인공인 작가가 준비하고 있는 소설의 자료를 챙겨보려고 도서관에 가는데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다만 책장들 사이를 헤매고 있자니 꼭 묘지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11)’라고 한 점은 도서관이 인류가 쌓은 지식의 보고로 생각했던 보르헤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도서관의 책장들 사이를 헤매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보르헤스의 단편에서 자주 보는 미로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어서 현실과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보르헤스의 단편 알레프에서 말하는 다중우주의 개념을 차용한 것 같기고 합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들어간 비현실적인 세계에서는 덴카이치 탐정으로 변신을 하게 됩니다.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곳에서 살게 된 과정이나 이유를 모른다는 설정입니다. 사실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정하거나 아니면 선조가 정한 장소에서 살고 있습니다만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그 장소로 이주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역사가 되는 셈인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야기의 주인공이 들어간 세계에는 역사가 없는 셈입니다.


그런 세계에서 마을의 역사를 암시할만한 사건이 생깁니다. 마을의 생성과 관련이 있다는 기념관에서 비밀의 공간이 발견되고, 누군가 그곳에 보관되어 왔던 무언가를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마을의 시장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주인공을 초치한 데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장이 덴카이치 탐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는 어쩌면 덴카이치 탐정을 탄생시킨 작가, 즉 히가시노 게이고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타칭 덴카이치 탐정이 사라진 물건이 무엇인지 조사에 착수하자마자 기념관 보존위원들이 연달아 살해당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형식의 사건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열개의 인디언 인형>에서 보는 모임의 구성원이 다양한 이유로 잇달아 살해되는 사건의 형식을 닮았습니다. 당연히 범인은 그 안에 있는 셈이고, 사건을 저지르는 이유가 궁금해지는 셈입니다.


연쇄살인이 일어나는데, 심지어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등장인물이 희생되는 모습을 보는 공포분위기가 조성되고, 당연히 살해방법과 범인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어갑니다. 최후의 1인마저도 죽어버린다면 과연 범인은 누구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명탐정의 저주>는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의미가 담겼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저만의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사건 해결에 나서서 탐정놀음을 하고 있는 작가에게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다라는 저주하는 말까지 등장하게 되면 추리소설이 막장극처럼 느껴진다고 할까요? 덴카이치 탐정을 사건해결을 위해 초대했다는 설정이므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작소설을 인용하는 것도 잔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시간여행일 수도, 아니 공간을 뛰어넘는 여행일 수도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을 본래의 세계로 돌려보내는 방법도 흥미로울 수 있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는 처음이라 - 평범한 내 이야기도 팔리는 글이 되는 초단기 책 쓰기의 기술
김태윤 지음 / 다산북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만 년 전 지구라는 별에 현생인류가 처음 등장한 이후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어갔을까 궁금해집니다. 그 가운데 후세 사람들이 기억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어쩌면 기록하는 방법이 개발되기 이전 사람들을 후세 사람들이 기억할 방도가 없을 것 같습니다. 거창하게 인류사적으로, 작게는 가문 안에서 기억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되는 사람 이야기를 가져온 이유는 <작가는 처음이라>는 책을 읽은 때문입니다. 나라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누군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면, 자신의 삶 혹은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일기 등 개인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하나의 길입니다. 개인기록의 경우 후손들이 잘 보관한다는 조건이 붙게 됩니다. 그런데 책을 내는 경우에는 국립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 등 공공기관에서 보관해서 후세에 전해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쓸 수 있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처음이라>를 세상에 내놓은 김태윤 작가님처럼 책쓰기를 ‘소망목록’에 올려놓은 사람도 실천에 옮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김태윤 작가님은 그런 분들을 위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기에서부터 책이 세상에 나온 이후까지의 과정을, 작심-준비-기획-수집-집필-계약-홍보-소명 등에 이르는 8단계로 나누어 소상하게 설명했습니다.

 

이 책을 쓰신 김태윤 작가님은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직장생활을 20여 낸 해온 평범하다면 평범하신 분이 세 번째 책을 내셨다는데, 책을 어떻게 쓰는지 전혀 모르던 분이 불과 2년 만에 6권의 책을 계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처음 책을 낸 것이 김태윤 작가님처럼 40대 초반이었던 것을 보면, 40대에는 뭔가 살아온 날들을 정리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세상에 내놓았던 책을 재개정판까지 내고, 비슷한 분야의 책을 두 종류를 더 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분야가 조금 다른 책을 두 종류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7권을 냈는데, 김작가님의 2년 6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원고를 준비해서 출판사 문을 두드린 경우도 있었고, 출판사의 요청으로 집필한 경우, 자비출판 형태 등 다양한 경험이 있습니다.

 

일단 책을 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작가님 말씀대로 ‘작심’이 중요하겠습니다. 마음만으로도 쉽지 않지만,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아예 시작도 없으니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첫 번째 책을 준비하는 과정은 김작가님이 정리해놓은 과정을 그대로 따랐던 것 같습니다. 다만 작심에서 계약까지는 몇 해가 걸렸습니다.

 

‘작가는 평생 현역으로 산다’는 제목의 마지막 장을 읽다보면 ‘책을 안 쓴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쓴 사람은 없다’라는 대목에 크게 공감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책 쓰기도 거듭하다보면 진화를 하게 됩니다. 첫 번째 책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점점 다듬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하라는 작가님 조언이 아주 적절합니다.

 

작가께서도 <1천권 독서법>을 이야기했습니다만, 저 역시 책을 읽고 빠짐없이 독후감쓰기를 1천권이 넘어가면서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주제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후감쓰기가 2천개를 넘어가면서 그런 주제를 수도 없이 만들어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생각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마도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집필에 집중할 여유가 없는 탓입니다.

 

현재 두 권의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써두었던 원고가 출판사와 계약이 성립되어 초교작업 중인 것과 새로운 기획으로 써가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두 번째 책은 계약단계는 아닙니다만, 기획된 책의 내용에 공감하는 출판사가 있어서 계약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태윤 작가님의 <작가는 처음이라>를 읽고, 소망목록에 책쓰기를 올려두신 분들이 분명 책쓰기에 나서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쓰겠다는 꿈을 가진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니 책쓰기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이 책을 읽으면 책쓰기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 믿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잉 그레이 - 나는 흰머리 염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주부의 벗 지음, 박햇님 옮김 / 베르단디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불호가 분명한 탓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회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회색분자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인상도 작용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흰머리가 늘어가기 마련입니다. 젊어서는 까맣던 머리에 흰 머리가 조금씩 섞이기 시작하는데, 처음 흰머리를 발견하게 되면 대경실색(?)하는 수준으로 놀라고 당장 흰 머리를 뽑아내고야 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여기저기서 비집고 나오는 흰머리를 뽑는 일에 지치기 마련이고, 결국은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마련입니다. 바로 염색이죠.


흰머리에 대하여 관대하신 분들도 염색을 하면 훨씬 젊어 보일 거라는 주변의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결국은 염색과 타협을 하게 되는데, 염색을 시작하는 순간 고난에 발목을 잡히는 셈입니다. 염색을 하면 흰머리가 가릴 수 있지만 흰머리가 자라는 것까지 멈출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검게 보이던 머리카락이 시간이 지나면 뿌리에서부터 흰색이 올라오기 시작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보기 싫어지면 염색을 다시 해야 합니다.


사실 저 역시 나이가 나이인 만큼 반백을 넘어 백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염색은 해본 적은 없습니다. 제 경우는 십대 시절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저도 처음에는 새치를 뽑아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새치는 하나 뽑으면 둘이 나온다고들 하더니 흰머리가 많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사십대에는 관자놀이 부근은 하얀 색이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염색을 하면 젊어 보일 것이라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지만, 굳이 염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결혼한 다음이었던 탓에 흰머리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젊어 보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고잉 그레이>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골랐던 것 같습니다. 일본 잡지 주부의 벗에서 기획한 책으로 머리칼을 염색하던 것을 중단하거나 자연스럽게 흰머리가 늘어가도록 한 열여섯 사람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49세에서 80세에 이르기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가정주부에서 화장이나 패션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직업도 다양하였습니다.


나이 때문인지 머리칼이 흰 정도가 다양한 것 같습니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염색을 제외한 영역, 의상이나, 치장, 화장 등에는 신경을 많이 쓰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늙어가지만, 나이 듦을 감추려하지 않고 오히려 내세우는 쪽으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라는 느낌입니다.


흰머리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하시는 이분들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머리를 어떻게 다루는지 화장이나 의상은 어떤지 많은 사진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어서 책장이 수월하게 넘어갔습니다.


외국 책을 번역해서 소개할 때, 국내 인사들의 이야기를 더하는 책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만, 이 책에서는 예수정 배우님과 오금숙 화가님의 기고문을 더했습니다. 두 분 모두 염색을 해오다가 어느 시점에서 그만두었는데, 여러 모로 편한 느낌이 들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분들의 말씀과 모습을 소개한 뒤에 회색머리칼에 잘 어울리는 의상과 화장법을 별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성 독자라면 관심이 많을 듯합니다만, 아무래도 남성인 저는 그냥 건너뛰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일본의 헤어숍에 가면 헤어디자이너가 흰머리를 마치 질병처럼 취급해요라는 어느 분의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최근에 하버드대학에서 나온 연구에서는 나이 듦을 질병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만, 나이 듦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가진 운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생노병사는 지구를 건강하게 지키는 원칙이라고나 할까요? 인간만이 영생을 누리게 된다면 지구가 얼마나 복닥거릴까 상상만 해도 겁날 지경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